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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 - Unbowed
영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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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난다. 사회적 정의의 최후의 보루라고 여겨진 법정에서의 불법이 자행되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저급한 표현이겠지만 법원의 판사들과 검사들에게 국민들이 혈세를 들여 월급을 주는 이유는 억울한 일을 막아달라는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요구사항은 묵살됐다. 그래서 그들은 독재다. 사회의 악의 근원이 재벌일 수도 있고 조폭일 수도 있지만 법원이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다. 기득권이란 권리 아닌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벌인 악행은 영화 ‘부러진 화살’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말 이런 판검사들을 왜 국민들이 먹여 살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대입시험의 수학 문제의 오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 문제의 원인은 반성과 사과를 통해 해결했어야 했다. 그러나 조직의 원리와 상위 1%의 자존심을 위해 진실은 묻혀졌고, 오만만이 득세하게 됐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성균관대 김명호 교수의 석궁테러 사건을 영화화한 ‘부러진 화살’에서 그런 추악한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한국은 아직 정직한 사회가 아니었다.
석궁을 통해 위협만 하려 했느냐, 아니면 죽이려고 작심했냐 하는 쟁점을 갖고 석궁테러 사건의 심리는 진행됐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실존인물 김명호 교수를 본뜬 ‘김경호 교수(안성기)’에 대해 사법부와 법원, 그리고 대법원과 그 수장은 이미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법정에서 요식행위만을 하려고만 했다. 사건의 진위와 그에 따른 판단을 하지 않고 법원에 대한 도전이란 이유로 그를 단죄하려고만 한다.
증거는 중요하다. 범인이 왜 범인인지를 밝히는 가장 구체적이고 근본적인 실체니까 말이다. 동시에 법원은 공정한 판정을 위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법관을 통해 사건을 확인하고 판단하고 마지막으로 단죄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 속 어디에도 법원은 중립적이지도 못했고 공정하지도 못했고, 동시에 증거조차 제시하지 못했다. 김경호 교수의 행동이 다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가중처벌하는 것도 아닌데 그는 자신이 하지도 않은 죄목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그 잘난 사법부의 자존심 때문에 말이다. 이미 그 자존심은 오만이란 사악함으로 바뀐 지 오래다. 단순한 이익집단으로 하락한 사법부가 과연 제대로 뭘 할 수 있는지 의심이 들게 하는 장면들이 시작부터 끝까지 나오고 있었다.
엉망진창인 법원에도 양심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최초로 법정을 이끌었던 법관이 사직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빚어졌다. 그러나 다음이 더 가관이었다. 더 엉망인 법관을 통해 심리를 진행하려 했고, 이 대목에서 사법부와 법원의 사악함이 또 한 번 드러났다. 이미 대법원과 사법부는 착해질 마음이 없었다. 과거 독재정권의 만행을 정의의 마지막 보루에서 또 다시 나온 것이다. 거기에 김경호 교수의 자존심을 뭉개기 위해 감옥에서 벌어진 만행은 한국 사법부의 야만성이 도대체 어디까지 뿌리내렸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사법부가 범죄의 온상인 것이다. 그래서 김경호 교수는 결국 유죄를 받았다. 사법부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살 수 있는 이 기막힌 판결이 21세기를 시작한지 훨씬 지난 한국에서 벌어졌다는 것이 슬프다.
국민들은 이런 엉망인 판결을 막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런 억울한 일에 국민들은 막을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한국민 자체가 그런 불평등하고 추악한 판결에 익숙해졌을 것이고, 그런 부당함을 막아봐야 자기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문제가 많은 이명박 정권을 최고의 지지율로 당선시키기조차 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악영향이 부메랑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영화 속 박준 변호사(박원상)가 이민 가고 싶다는 표현은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았다.
창피했다. 수출이 얼마냐, GDP가 얼마냐 하면서 한국의 성장을 축하하는 말들은 많았지만 한국민들의 삶은 나아진 것이 없다. 그것은 3심재가 마련되고 헌법재판소가 마련돼도 국민들이 느끼는 법적 서비스는 요원한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아무것도 좋아진 것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분노한다. 증거 하나 없는 조작된 증거만 날뛰었던 법정에서 어떻게 그런 엉망인 판결을 내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판결을 내린 판사와 검사가 혹시나 고속승진하고 있을 것 같아 더욱 그렇다. 한국은 자성이 너무 필요하다. 그러면서 기득권이 자신의 고고함을 사악함을 지키고 있는 이때, 이들에 대해 준엄한 비판을 하지 못하는 한국사회는 스스로 채찍을 휘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