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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 - 오래된 사물들을 보며 예술을 생각한다
민병일 지음 / 아우라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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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이 주는 위로란 어떤 것일까. 저자가 서두에서 사용한 ‘인간화 된 사물’이라는 표현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후반부의 포도주 이야기에서는 포도주를 ‘사유하는 사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무엇이든 이름을 부여하기 좋아하는 나도 인간화 된 사물에 중독 상태는 아닐까. 어떤 작은 사물이라도 생명을 가졌다고 상상하면 즉시 따뜻한 온기가 돌고 내게 체온을 나누어주는 것 같아서 큰 위로가 된다. 사물 뿐 아니라 집이나 도서관처럼, 공간이 그런 역할을 해 줄 때도 있고 조각조각의 시간으로 엮인 추억이 우리를 다독여 줄 수도 있다.

저자의 목소리는 편안하고 차분하며, 오래전에 만들어진, 복고적 사물에 대한 예술적 고찰이긴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에세이를 대하면 좋겠다. 그의 이야기는 여행 이야기이기도 하고, 벼룩시장에 대한 애정이기도 하고, 사물이 살아온 시공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저자의 고백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소재도 다양하다. 사물에게서 시작되는 이야기들은 건물로, 역사로, 도시로, 예술가에 대한 상상이나 이름 모를 과거의 사람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다. 거장들의 그림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실은 그들의 삶에서 주목받지 못한 부분을 들여다보고 있기도 하고(헤세나 괴테의 그림처럼), 누군가 직접 수집한 들꽃을 넣어 만든 액자나 단추들, 촛대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따뜻한 시선을 가진 이에게 주변 모든 세상은 사람에게 위로와 기운을 주는 것인가보다.

책에서 언급된 표현 중 ‘낭만적 시대의 유물’이라는 표현이 기억난다. 이 책에 등장한 모든 사물들(편지까지도)은 영화 ‘이퀄리브리엄’의 기준에 의하면 즉각 소각처치 뿐 아니라 소장자는 처형감이다. 과연 이러한 사물들은 감정을 유발시키고 그 감정에서 욕심과 적대감이 생겨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게 되는 것일까. 영화에서 권력자가 이러한 유물들을 전멸시키기 위해 행사하는 폭력을 생각하면 이 또한 틀렸음이 분명하다.
사물은 어떻게 감정을 유발하는 것일까. 인간과 얽힌 역사가 없었다면 우리가 사물을 추억할 일도, 위로받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과 함께 보낸 시공간에서 사물은 체온을 가지게 된다. 저자는 일부의 사물에 ‘낭만적 시대의 유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책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사물과 공간들이 사실 ‘살아있는 낭만적 조각들’이다. 그 기억을 가진 채 현재 존재한다는 것 때문에 그렇고, 실용성이 아닌 사물이 가진, 혹은 유발시키는 이야기 때문이며 그 역사들은 아프거나 설레이는 마음을 자극하기에 더욱 그렇다. 그 사물과의 커뮤니케이션과정을 저자는 ‘낭만적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사물을 보고 만질 때 우리의 마음과 기억을 만지게 되는 과정의 이름이 참 예쁘다. 

시종일관 따뜻한 저자의 시선뿐 아니라, 저자가 어루만지듯 찍어낸 사물들은 심장이 천천히 뛰고 체온과 역사를 가진 것이라서, 이렇게 따뜻한 빛깔로 가득한 책을 사랑하지 않기란 어려울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서 꼭 연장통을 하나 구입하든지, 만들고 싶어졌다. 저자의 지도교수의 방에 있던 그것처럼 꽉꽉 물건이 차기까지는 시간이 걸릴테지만, 저자처럼 일단 통을 마련하고 이것저것 물건과 기억을 채워나가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저자가 연장통 이야기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모든 물건들은 (개인의 추억이 담긴 직접 만든 액자처럼 고유한 탄생이었을 수도 있지만) 거의 기성제품, 대량생산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은 각각의 독특한 나이듦을 겪는다. 일곱 살 어린애의 낙서가 그려질 수도 있고, 주인의 실수로 모서리가 뭉그러진 모양이 될 수도 있다. 그 나이듦의 과정에서 이들은 레디메이드에서 일상의 예술이 된다.

덧붙이는 말 :
1) 이 책은 이 세상 모든 것의 예술화에 대한 저자의 시선이 주를 이루는 에세이다. 전문적인 예술작품 혹은 수집품의 학문적 역사와는 거리가 있다.
2)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고서에 눈이 반짝반짝 했던 독자라면 베버신부가 만든 동영상(영화) ‘고요한 아침의 나라’도 구해보길 바란다. 당시 필름으로 기록되고 독일에서 상영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서는 소중한 사료가 되는 영상물이며 옛 한반도의 삶의 모습과 당시 파견된 신부들의 모습까지 볼 수 있어서 매우 흥미롭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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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 - 형태로 이해하는 문화와 예술의 본질
한명식 지음 / 청아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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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책을 함께 읽다보면 기억만으로는 구분이 어렵다. 나에게 독서란 내 주변 세계를 조금씩 이해해 가는 과정이지 a책의 내용은 이렇다, b책은 이렇다, 식으로 구별해서 기억에 저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 주변은 그대로 있고, 그것들을 이해해가는 방식이 책으로 하여금 조금씩 열리면서 주변을 선명하고 풍부하게 내다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특히 예술에 대한 시선에 영향을 주는 책들은 더욱 나의 주관적인 시점을 혼돈시키고 사유하게 하고, 결국에는 명료하게 잡아가는 데 영향을 끼치는 듯 하다.
요사이 한참 예술관련 책들과 개념사를 함께 접하다보니 저자가 소개한 말 중 중국인민대학교의 미학자 장부어 교수의 말이 내게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장부어 교수는 ‘말은 의미전달이 목적이므로 의미를 파악하고 나면 말 자체를 잊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이 책의 저자의 예술의 형태에 대한 가치관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사물은 존재 그 자체이지 언어와 분명 동등한 의미라 할 수 없다는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지 못한 예술을 언어로 전달받고 머리 속에 손으로 느낄, 귀로 들릴 예술의 부분들은 이미지와 함께 언어로 저장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물의 존재를 우리는 기억하는 것인가. 완전히 재구성된 다른 예술이 기억 속에 창작되는 것인가. 특히 이를 다시 언어로 풀어냈을 때 그 재구성은 기존의 사물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언어)를 가진 문자(물질)이 된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참 많은 예술을 스스로 창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예술을 창작하는 입문자들에게 이러한 지나치게 비약되는 생각들은 무엇이든 시도하는 데 망설임을 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다시 책 ‘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으로 돌아가자.
저자는 예술의 형태를 중요시여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술의 발생의 여러 부분을 들여다보는 데 많은 관심이 있었던 듯 하다. 예술작품의 발생하게 된 동기와 그 예술작품의 형태를 결정짓는 배경이 되는 당시의 시공간적 세계관 등을 들려줌으로써 예술을 읽어가는 시선을 단지 시각적 심미안에 그칠 수 있는 시선을 보다 깊게 하고 현재의 창작 또한 여러 사상과 개념의 집약체일 수 있다는 점을 거꾸로 강조한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재미난 예를 제시한다. 이집트 미술이 상당부분 거론되는데 피라미드의 발생이 우리가 생각하는 파라오의 개인적 영생을 위한 노동착취였으리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나일강의 범람으로 인한 농한기 농부들에 대한 대안정책이었거나 파라오 뿐 아니라 이집트인들이 종교와 동일시한 파라오의 영생이 곧 이집트인 자신들의 평안이라는 믿음으로 피라미드 건설에 임했을 수 있다는 주장들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를 사는 그 누구도 당시를 증언할 수 없겠지만 예술을 읽는 데는 이렇게 하나의 사적자료를 맹신하는 것보다는 열린 자세로 여러 가능성을 타진하고 상상해 보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저자의 의도이기도 할 것이다.
저자와 고대의 여러 예술작품들이 말하듯 아름다움 자체를 위한 창작보다는 실용적 차원에서 남겨진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형태의 추상화’라는 디자인으로 흘러간다. 요사이 미술의 경계의 무한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참에 저자의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나마 들을 수 있어서 디자인의 대량생산적 측면과 예술의 의미, 실용성을 가진 예술과 순수예술과의 경계성 등 여러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이렇게 디자인의 경우처럼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예술의 경계에 대한 의문과 함께 특히 넓은 의미의 미술작품들이 이제 더 이상 시대 반영의 결과물들이 아닌(굳이 반영이라고 보자면 개개인인 창작가들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특별한 기술적 필요성이 아니라면 시대적 의미 또한 사라진, 의미 구현의 또 다른 형태, 언어와 다른 표현방식, 사물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가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언급했던 키워드들을 참조하자면 저자의 궁극적인 의도는 예술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예술과 창작은 ‘고유성’을 가진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을 가지는 조형이라는 점이라는 것이 생각하게끔 해주고 싶었던 듯 하다.
쉽게 이해가능하게 풀어쓴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이 아홉 챕터의 공부는 예술을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예술을 읽거나 창작하기 위한 시선을 준비하는 데 좋은 입문서라고 생각하지만 예술의 존재의 이유와 예술이 왜 그러한 형태로 나타나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에게 왜 중요하지를 알게 하는 데 있었던 집필의 목적에 100%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세계간의 교류가 거의 없었던 문화 내에서 발생된 예술을 읽는 데 있어, 저자가 말하고 있는 동서양의 인식차이가 시대적 예술의 특이성을 읽는 데 매우 도움은 될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책의 전반부에 언급된 동서양의 시선의 차이에 대한 실험결과 등은 일반화의 심각한 오류의 가능성의 여부를 열어두고 모든 예술이 아닌 오래전에 발생한 문화라든가 하는 제한을 두었어야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저자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의도했겠지만 글만으로는 비약된 느낌이 들지 않도록 말이다. 자연적 배경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현대미술과 세계 곳곳의 건축 등을 읽는 데 적용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으며 이는 동양 혹은 서양 어느 시기 양식의 영향과 어느 시기의 사상을 표현했다는 식의 구체적 시기성을 언급할 수 있는 해석 정도에서만 유효한 것임을 생각할 때 말이다.
예술작품의 예시가 없는 유일한 두 챕터 진화와 모나드 편에서는 예술작품을 읽는 예시가 없어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어려웠으나 아마도 형태의 넓은 의미를 이해하고 자연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의 운동성과 그 본질까지를 예상 혹은 관찰하게 하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예술을 보는 시선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예시가 있었더라면 좀더 쉽게 모나드 개념 등을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이러한 여러 과학적 개념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예술적 창의성과 작품과 작가를 읽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이는 예술을 공부하려는 입문자들 뿐 아니라 일반인의 미술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주변의 모든 사물을 읽어내는 시선을 키우는 데도 충분한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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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문학에 취하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그림, 문학에 취하다 - 문학작품으로 본 옛 그림 감상법
고연희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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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시화전을 떠올리게 된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우리나라 선인들의 그림은 타인의 시들의 일부에서 전문, 혹은 약간 자신만의 해석이나 유희적인 의도에서 변형된 시들이 함께 그림을 이루기도 하고 한명의 문인이 시와 그림을 하나로 묶고 있기도 하다. 그림을 그린 선비나 화가들의 가치관과 당대의 세계관이 함께하는 책 속의 그림들 속에서 그들은 등장인물이 되기도 하고 관찰하거나, 이미지를 상상하여 구축해 가기도 한다. 저자의 시 원문 해석과 덧붙이는 설명 등 풍부한 사료와 함께 그림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혹은 인물 설명들 덕분인지 16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의 옛 그림들이 더 빛나 보인다.
나는 고그림에 완전한 무지의 상태였고 그나마 기억 속에 있는 우리 옛 그림이란, 학창시절의 교과서에서 본 게 전부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색바랜 종이 위의 정적이고 평면적인 옛 그림이라면 저자의 이름과 그들이 자주 쓰던 소재, 혹은 시험에 나올 법한 서체의 종류와 대표 인물들이나 외고,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감상의 포인트 정도를 생각한다면 특히 오래전 그려진 수묵화에서는 내러티브가 가장 강조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었던 듯 하다.
하지만 우리가 시를 해석할 때는 그렇지 않다. 그 비유적 표현에 감탄하고, 소리를 문자로 옮기는 저자의 표현력과 운율 등에도 눈을 돌린다. 그렇다면 시와 함께하는 그림에서 이 또한 읽지 못할 게 무어란 말인가.
저자는 우리의 적극적인 관심밖에 있었던 시화의 그림과 시를 함께 읽기의 즐거움을 깨닫게 한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과 공을 들인 자료조사와 집필기간이 들었을 이 책을 만나면 또 한명의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학자 한명을 발견하게 된 데 기쁨을 느낄 것이다. 나도 모르게 주변에 책을 보여주며 소개하고플 정도로 감탄하게 된 데는 그만큼 우리가 고문학과 우리의 옛 그림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을 반증하는 듯도 하다. 또 고시들을 읽으며 그림과 함께 배우는 듯한 기분은 그림을 참고로 하는 쉽게 읽을 수 있는 고문학 입문서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어느 학문이건 입문자들을 위한 그림책들처럼 말이다. 고문학이 눈 앞에서 그림으로 펼쳐지며 한자로 씌여진 문자의 표현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서구예술에서는 카툰이나 플럭서스의 일련의 작업, 그리고 지금 거의 모든 디자인 등이 문자와 함께 하는 그림이라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는데 우리의 옛 예술에 이렇게 문자와 함께 하는 독특하고 운치있는 예술장르가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글자와 의미의 배치를 생각해볼 수 있는 모더니즘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여러 미술작품들을 생각해보면 우리의 옛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학적 표현과 서체, 화체가 모두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평면예술은 말그대로 시적이면서도 지금 스토리텔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꿈과 현실이 어우러진 자연과 삶들로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었다.
내가 특별히 감동했던 책 안의 작품들은 강세황의 ‘괴석’, 이재관의 ‘오수도’ 등 여러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옛 그림과 싯구들이었다. ‘괴석’의 경우에는 돌덩이 가에 숨겨진 여린 꽃의 선때문이었는지, 움직이지 않지만 왠지 힘이 들어간 바위의 형상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림의 힘이 ‘변치 않는다’는 시 속의 내용과 함께 그대로 전달되어 위로가 되었고, ‘오수도’는 그림 당시의 선비들의 서재에 대한 로망처럼 책에 대한 애정이 들어있는 책배게와 ‘현실의 그림자’라는 창문과 책상과 선반 사이의 작은 틈으로 갈 수 있는 숙수념의 세계가 내게는 굉장한 매력이었다. 현실을 도피하기 보다는 숙수념의 세계로 가는 명상과 오수를 즐길 수 있는 당시의 선비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삶의 태도가 느껴지기도 하고 현재 우리의 삶에 필요한 상상력과 건강한 여유를 위해서도 귀기울일만한 그림 속 이야기가 아닐까.
무엇보다 움직이지 않는 이미지에서 소리를 느끼려고 애써본 경험이 거의 없는 이들에게는 조선시대의 옛 그림에 관한 이야기에 귀가 솔깃할 것이다. 구양수의 ‘추성부’를 그린 김홍도의 ‘추성부도’가 그렇다. 구양수의 한자와 중국어 발음을 생각한 소리의 시적표현에도 감탄하게 되지만 김홍도의 그림을 다시금 영상으로 상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림 속 가을바람과 고즈넉한 낙엽 떨어지는 소리며 풀벌레 소리며 나무 사이를 흐르는 바람소리가 약간은 차다싶은 가을공기와 함께 느껴진다. 시와 함께 하였기 때문에 그림 또한 시각적이거나 촉각적인 심상만이 아닌 부분까지를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우리 옛 그림, 아니 모든 그림을 대할 때 후각적이고 청각적인 부분까지를 읽어내려고 감각을 더욱 열 수 있을 듯 하다. 새가 날면 퍼덕이는 날개짓 소리와 새의 울음소리가, 물 흐르는 풍경에서는 물 떨어지는 소리가, 음식과 사람의 표정에서 후각과 미각을 예상하고 심플한 네러티브에서 그치지 않은 스토리텔링으로 나아갈 것만 같다.
이야기를 담은 그림들도 그저 기록이 아닌 캐릭터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세심하게 살피고 있는 저자의 연구와 칸만화를 연상하게 하는 연속화면 식의 회화 표현들의 소개만으로도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는 다양한 고미술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조금은 따분한 박물관의 죽은 미술로 여겼던 우리 옛 미술을 시적 표현의 문자와 그림이라는 하나의 독특한 예술장르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 가장 큰 변화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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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정신>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예술의 정신
로버트 헨리 지음, 이종인 옮김 / 즐거운상상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조언들일뿐 아니라 예술을 보는 이들에게도 열린 시각을 권유하고, 행복하기 위한 삶의 태도에 대한 조언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독자층은 예술가를 꿈꾸고 있는 이들, 특히 한국에서 입시미술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목이 지시하고 있는 예술의 정신은 공식적으로 들어맞는, 기술적으로 매끈한 작품이기보다는 감성교류적인 의미와 표현에 있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주장은 다소 공식적인 입시미술에서 예술가의 영혼을 성장시켜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은 본문에서도 직접적으로 언급된 바와 같이 기본적으로 예술을 ‘확장된 언어’로 보는 저자의 예술관을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열린 시각, 다른 시각, 기록이 아닌 의식적인 선택, 감정과 자신만의 색 등 창작을 앞두고 우선시 해야 할 것들을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으며 창작에 임할때는 유연한 감수성, 독창성, 집중력 등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명백하게 감동은 기술에서 오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실기이론과 구상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보다는 인생과 철학, 경험을 강조한다. 드로잉을 하는 회화 입문자들에게 드로잉에 앞서, 혹은 드로잉을 배우고 연습하면서도 피사체와의 교감을 우선시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행동으로도 보여지는데 대규모 단체의 일치성보다는 소규모 구성으로 개성유지가 중요하다고 주장한 바와 같이 저자 본인 또한 여덟명의 소규모 그룹을 이끌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예술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의 작품이 너무도 궁금해진다. 미술계에서는 교육으로도, 작품활동으로도 권위자로 알려진 그의 이름이 사실 내게는 조금 생소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기 위해 여기저기 뒤적여 보았다.(이 책에서는 만날 수 없음) 인물화에 크게 감동을 받은 기억이 별로 없었던 나는 인물화가 화가보다 모델의 캐릭터에 순간적으로 몰입하게 창작할 수 있다는 데 놀랐다. 화풍보다는 모델의 캐릭터가 뚜렷하게 하나의 표정에서 느껴졌다. 그렇다고 착하고 사납다는 정형화된 동화속 인물의 구사도 아니다.

개인에 따라 소감들이 다르겠고 말로 어떻게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으니 역사 속의 실제 살아있었던 인물들이라는 느낌이 가장 먼저 났다고만 해두자. 나는 저자가 사실주의적 화가였다고 해서 그에 대한 선입견을 가졌었던 것 같다. 사실주의적 그림에 대한 오해도 분명 있었는데 극사실주의 회화와의 혼돈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적 표현을 우선시하고 표면적 리얼리티만을 중시했을 것이라는 예상은 인물화를 많이 그렸던 로버트 헨리의 작품들을 보고서는 달리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그림에는 모델의 캐릭터성과 순간의 모델의 감정을 잘 드러내고 있어서 그의 집중력이 남달라서 사진과 같은 기록의 의미를 가진 초상이 아닌 인물화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고 있다. 삶과 역사성, 여자와 아이들을 주로 그린 그림 안의 모델들은 모두 다른 배경과 환경와 감정상태들을 가졌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주의에서의 표면적 리얼리티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도 없을뿐더러 로버트 헨리와 같이 그 또한 ‘재현’은 ‘재현’이었을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저자의 이 글들과 그림을 연결하면서 화가의 시선과 감정의 재현 또한 사실적 표현의 옷을 입은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의 예술관람에서는 분명 프레임 밖에 관람객과 겹쳐지는 위치의 예술가를 매번 의식하고 느낄 수 있을 듯 하다.


이 책은 주로 19세기의 유럽회화 뿐 아니라 중국, 일본의 19세기 초반 작품들을 예로 들고 있다. 이 책은 1923년에 발간된 책으로 저자가 예로 들고 있는 예술가들과 작품들이 1500년대~ 1800년대 작들인지라 평소에 접하기 어려웠던 당시의 예술들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이렇게 예시로 제시된 그림들은 저자의 1923년 출판시에도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출판을 거듭하고 번역과 국내출판을 하면서 그림의 예시는 등장하게 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또 다른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여러 예술가와 작품제목이 등장하지만 그림에 대한 정보적 지식을 중요시하고 있지 않은 저자의 태도는 뚜렷하게 느껴질 것이다. 예로 언급되는 예술가들과 작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보기 힘들다. 주로 모델, 화가의 심리와 움직임의 표현과 프레임의 구성, 삶의 재현과 캐릭터성 등에 관심이 있었던 저자이지만 그림에서 화가의 의도까지를 말해버리지는 않는 것이다. 화가가 모델과 그리고 자연에서 순간의 느낌을 포착해내고 그 감정을 그리는 내내 집중하여 기억하고, 프레임에 담는 것에서 나오는 아름다움, 그 교감과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이 잘 전달되길 바라지만 그 뿐, 과학적으로 드로잉 기술과 붓질(스트로크)의 섬세함, 구도의 완벽한 안정성을 관객이 이해하기를 바라지는 않는 듯 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저자가 예술해석에 있어서는 열린 가능성을 두는 것을 중요시 했을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불친절하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의미를 가르쳐줘버리는 정보성 예술도서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알려줘버리지 않는 전시와 도서야말로 독자 혹은 관람객과의 교감을 자극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알아내려는 해석경향이 있고 정보성 예술도서에 익숙하다. 미술관에만 가 보아도 도슨트의 친절한 설명으로 우리는 작가의 의도를 상상할 여지를 상당부분 잃는다. 이는 정답에 접근하고자 하는 우리교육의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예술가가 피사체를 접하고 창작하면서 어떤 감정과 생각을 했는지... , 어떤 경험(공감각적 체험)이었는지 보는 이의 경험과 결합해 그 경험을 상상해내는 것이 예술관람의 즐거움이 아니던가. 다소 불친절하게 예술작품들을 만나볼 필요성을 느낀다. 충분히 교감하고 사유한 후 정보를 얻고 보다 풍부한 해석을 해보는 것도 늦지 않다.


저자는 언어이건 물질이건 그 자체로는 아름답지 않으며 판단과 표현으로만 의미가 발생한다고 믿는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처럼 말이다) 로버트 헨리의 말에서 조금 더 나아가 회화도 마찬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로버트 헨리의 저작이 이어졌다면 이러한 관람의 태도 또한 분명 언급되었을 듯 하다. 저자의 자연과 화가의 교감에 대한 언급을 생각해 볼 때, 나아가 작품을 탄생시킨 예술가의 작품은 예술가의 손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과 만나서 그 교감이 형성될 때 비로소 예술이 된다. 마치 꽃이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에게 자문을 구한 이들(제자)에게 보내는 비평의 서신은 감동이다. 난관에 봉착한 이들에게 꿈을 잃지 않게 격려하고 사조들과 타협하지 않게끔 애정어린 충고와 그가 생각하는 예술의 정신을 강조한다. 이 서신들이 분명 제자들의 주머니 사정을 돕지는 않았을테지만 역사가 평가할 작품활동과 예술가로서의 긍지를 잘 다독여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선생 자신의 업적을 위해서라도 당장 인정받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제자를 원하고 가르치는 데 있어서도 그렇게 유도할 수 있었을 법도 한데 로버트 헨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강조한 예술의 정신에 부합하는 일치적 실천을 보여줌으로써 아마도 그는 더욱 존경받았을 것이다. 그가 학생들에게 비현실적인 꿈만을 강요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선생으로서 저자는 스스로 미술계의 일률적인 비평과 수상시스템을 비난하여 미술이론과 미술계를 압박하는 등 진정 학생들과 고매한 정신을 지키는 예술가들을 옹호하는 실천을 도모한 것이다. 
 

포스트 모던 시대의 예술작품을 생각해보면 부유하는 표면적인 재현들마저 의미를 가질 수 있을텐데 의문을 품으면서 그의 이야기가 지금으로서는 시대착오적 교육이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잠시 들지도 모른다. 그저 한명의 독자로서 나는 선행해 읽었던 ‘미술은 똑똑하다’에서 공부했던 당시의 미술이론들과 아카데미 미술에 대한 이해가 더 풍부해진 듯 해서 뿌듯하고 ‘우리는 왜 예술작품을 원하는가. 그리고 왜 표현의 욕구를 가지는가’를 생각했을 때 저자의 이야기는 가장 근본적으로 예술이 추구해야 할 제목 그대로 ‘예술의 정신’에 대해 백번 옳은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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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똑똑하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미술은 똑똑하다 - 오스본의 만화 미술론 카툰 클래식 13
댄 스터지스.리차드 오스본 지음, 나탈리 터너 그림, 신성림 옮김 / 서해문집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각각의 미술이론을 이해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목적이었겠지만 저자들의 설명을 듣고 있자면 가장 먼저 ‘미술사는 미술이론으로부터 탄생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 정확하게 이해가 될 것이다. 문화적 배경, 종교적 가치관과 기술에서 탄생했을 미술들을 대하는 잣대이면서 거꾸로 회화, 조각, 건축을 만들어가기도 하는 당시의 담론이 즉 미술이론이었다는 정의를 외워서가 아니라 저자의 설명방식에서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한 미술이론은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사 안의 다양한 미술사조의 언어들을 창출했다.

부제가 ‘오스본의 만화 미술론’이다. 표지의 영제는 분명 ‘입문자를 위한 예술이론(미술이론)’ 이지만 만화를 도입해 설명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 만화미술론이라는 부제를 가져왔나보다. 책을 만나기 전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물론 누구나 혼돈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나는 이 부제가 혹시 만화미술에 대한 논의로 들릴까봐 노파심이 든다.

이 책에는 원작 그대로의 사진 혹은 그림이 단 하나도 없다. 미술이론을 제시했던 많은 사상가들의 주장은 캐리커쳐에 말풍선으로 제시된다. 작품 또한 스케치로 다시 재현되니 원작과 함께 공부하고픈 독자들이라면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재현된 것을 다시 재현하는 작품들에서는 바로 지금, 현재의 미술이론가들인 저자들의 의도가 살짝 보이는 것도 같아 웃음이 날 것이다. 그림이 워낙 많으니 지루하지 않고 결코 욕심내지 않고 키워드로 묶어 짤막하게 설명하고 가장 핵심적인 주장만을 이해시키니 부담스럽지 않다.

저자는 미술이론의 흐름을 제시하고 그 한계까지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이론이야기까지 끄집어낸다. 얼핏 보면 키워드를 통해 토막들을 묶고 있어서 하나의 이론을 개별적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성이지만 당대의 논의과 그에 대한 반박, 동조자들과 반세력으로서의 다른 미술이론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개별미술이론을 이해하려고 할때보다 상대적 이해로 독자를 이끌고 각 이론의 배경의 이해를 돕는다. 결과적으로 비교대조를 통한 이해로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각 이론을 기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 방대한 내용을 너무도 명료하고 명쾌하게 말하고 있어서 각각의 이론을 이 책만을 읽는다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론의 흐름과 가장 중요한 키워드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는 입문서의 자세에 충실했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로서 나무의 기둥부분이 세워진 것이고 커다란 가지가 어디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인지 대략적인 그림이 완성될 것이다. 이제 굵은 가지에 잔가지로 담론의 살을 붙여나가면서 공부를 해 나가면 될 일이다.

단지 미술이론이나 미술사를 공부하려는 이들에게만 도움이 될 입문서가 아니라 인문, 사회, 문화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도 같은 내용의 입문을 필요로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우리가 문화예술계열의 공부를 하다보면 언급되는 거의 모든 사상가들과 시대적 담론들이 시간의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는데 그들이 미술과 예술에 대해 언급한 저서와 주요부분이 인용되고 그 인용문들은 사상가의 사상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곤 했다. 콕 집어 서머리한 압축강좌처럼 느껴지니 이 두 저자가 2년간의 강좌를 정리한 것인 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
  

초반부분에서 저자의 ‘누구나 자신만의 미술이론을 가지고 있다’는 언급이 있어서였는지 이 책은 지속적으로 나의 미술론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듯 하다. 여러 생각 끝에 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개인의 경험과 사유에 의한 어떤 의미를 사물 혹은 행위로 재현하는 방법으로 미술을 대하고 저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과 표면적 외형이 그로서 사유하게 되는 독자 혹은 관람자로서의 나의 해석(이는 순전한 관람자의 개인적 경험과 배경에 의거할 것이다)이 만났을 때 나는 그 미술을 비로소 만.났.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나의 이러한 미술이론은 저자의 말대로 가장 최근의 미술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호기심의 미학’으로 보는 것과 흡사하다. 그 미술이론은 절로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고대에서부터 있어왔던 문화예술담론에서부터 다양한 미술의 탄생과 미술에 대한 이론, 그리고 다시한번 미술이론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미술의 탄생 등의 반복이 이루어낸 다양성의 결과이다. 이 책은 미술이론이라는 말로 한정짓고 있지만 앞에서도 말했듯 결코 미술이론으로 그치지 않고 ‘호기심의 미학’일 수 있는 모든 예술, 혹은 문화를 읽는 사상에 대한 정리였다고 말하고 싶다.
 

ps.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교과서적으로 자주 접하지 못하는 개념미술 이후의 예시를 좀더 많이 제시해주었더라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급되었던 시각문화를 넘어선 비시각적 매체 미술에 대한 예시도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최근에 미술관에서 만난 마클레이의 영상을 소재로 한 사운드아트가 떠올라서 더욱 그 부분에 대한 다른 사례에 대해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친절한 저자의 분류별 추천도서와 용어, 인명, 작품별 색인과 역시 친절한 역자의 참고도서와 함께 ‘방대한 영역의 입문서를 찾을 수 없어’ 직접 책을 만들어버린 좋은 선생님들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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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x_konii 2011-02-19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s2. 책의 내용을 모두 알릴 순 없겠지만 이는 밝혀두어야겠다. 미술이론뿐 아니라 다른 문화예술분야의 입문서로도 좋은 책일 수 있다고 말한 가장 큰 이유는 루소, 괴테, 푸코, 마르크스, 아도르노, 벤야민, 크리스테바, 식수, 이리가레이, 호미 바바 등의 여러 시대에 걸친 다양한 사상가들이 거의 모두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미술이론뿐 아니라 사회와 문화를 보는 가치관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의견에 부합하거나 토론하고픈 사상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