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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 - 오래된 사물들을 보며 예술을 생각한다
민병일 지음 / 아우라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사물이 주는 위로란 어떤 것일까. 저자가 서두에서 사용한 ‘인간화 된 사물’이라는 표현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후반부의 포도주 이야기에서는 포도주를 ‘사유하는 사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무엇이든 이름을 부여하기 좋아하는 나도 인간화 된 사물에 중독 상태는 아닐까. 어떤 작은 사물이라도 생명을 가졌다고 상상하면 즉시 따뜻한 온기가 돌고 내게 체온을 나누어주는 것 같아서 큰 위로가 된다. 사물 뿐 아니라 집이나 도서관처럼, 공간이 그런 역할을 해 줄 때도 있고 조각조각의 시간으로 엮인 추억이 우리를 다독여 줄 수도 있다.

저자의 목소리는 편안하고 차분하며, 오래전에 만들어진, 복고적 사물에 대한 예술적 고찰이긴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에세이를 대하면 좋겠다. 그의 이야기는 여행 이야기이기도 하고, 벼룩시장에 대한 애정이기도 하고, 사물이 살아온 시공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저자의 고백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소재도 다양하다. 사물에게서 시작되는 이야기들은 건물로, 역사로, 도시로, 예술가에 대한 상상이나 이름 모를 과거의 사람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다. 거장들의 그림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실은 그들의 삶에서 주목받지 못한 부분을 들여다보고 있기도 하고(헤세나 괴테의 그림처럼), 누군가 직접 수집한 들꽃을 넣어 만든 액자나 단추들, 촛대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따뜻한 시선을 가진 이에게 주변 모든 세상은 사람에게 위로와 기운을 주는 것인가보다.

책에서 언급된 표현 중 ‘낭만적 시대의 유물’이라는 표현이 기억난다. 이 책에 등장한 모든 사물들(편지까지도)은 영화 ‘이퀄리브리엄’의 기준에 의하면 즉각 소각처치 뿐 아니라 소장자는 처형감이다. 과연 이러한 사물들은 감정을 유발시키고 그 감정에서 욕심과 적대감이 생겨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게 되는 것일까. 영화에서 권력자가 이러한 유물들을 전멸시키기 위해 행사하는 폭력을 생각하면 이 또한 틀렸음이 분명하다.
사물은 어떻게 감정을 유발하는 것일까. 인간과 얽힌 역사가 없었다면 우리가 사물을 추억할 일도, 위로받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과 함께 보낸 시공간에서 사물은 체온을 가지게 된다. 저자는 일부의 사물에 ‘낭만적 시대의 유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책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사물과 공간들이 사실 ‘살아있는 낭만적 조각들’이다. 그 기억을 가진 채 현재 존재한다는 것 때문에 그렇고, 실용성이 아닌 사물이 가진, 혹은 유발시키는 이야기 때문이며 그 역사들은 아프거나 설레이는 마음을 자극하기에 더욱 그렇다. 그 사물과의 커뮤니케이션과정을 저자는 ‘낭만적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사물을 보고 만질 때 우리의 마음과 기억을 만지게 되는 과정의 이름이 참 예쁘다. 

시종일관 따뜻한 저자의 시선뿐 아니라, 저자가 어루만지듯 찍어낸 사물들은 심장이 천천히 뛰고 체온과 역사를 가진 것이라서, 이렇게 따뜻한 빛깔로 가득한 책을 사랑하지 않기란 어려울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서 꼭 연장통을 하나 구입하든지, 만들고 싶어졌다. 저자의 지도교수의 방에 있던 그것처럼 꽉꽉 물건이 차기까지는 시간이 걸릴테지만, 저자처럼 일단 통을 마련하고 이것저것 물건과 기억을 채워나가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저자가 연장통 이야기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모든 물건들은 (개인의 추억이 담긴 직접 만든 액자처럼 고유한 탄생이었을 수도 있지만) 거의 기성제품, 대량생산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은 각각의 독특한 나이듦을 겪는다. 일곱 살 어린애의 낙서가 그려질 수도 있고, 주인의 실수로 모서리가 뭉그러진 모양이 될 수도 있다. 그 나이듦의 과정에서 이들은 레디메이드에서 일상의 예술이 된다.

덧붙이는 말 :
1) 이 책은 이 세상 모든 것의 예술화에 대한 저자의 시선이 주를 이루는 에세이다. 전문적인 예술작품 혹은 수집품의 학문적 역사와는 거리가 있다.
2)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고서에 눈이 반짝반짝 했던 독자라면 베버신부가 만든 동영상(영화) ‘고요한 아침의 나라’도 구해보길 바란다. 당시 필름으로 기록되고 독일에서 상영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서는 소중한 사료가 되는 영상물이며 옛 한반도의 삶의 모습과 당시 파견된 신부들의 모습까지 볼 수 있어서 매우 흥미롭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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