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아있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아있다 - 고형욱의 영화음악 오디세이
고형욱 지음 / 사월의책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영화사를 연대기로 나누어 추린 영화와 음악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네러티브 설명과 감독과 캐스팅 등 영화제작의 에피소드, 영화음악과 관련한 토막이야기, 그리고 영화사적 의미에 대해 짤막한 메모들이 따라온다. 영화음악에 관한 이야기이다보니 초기영화에서는 뮤지컬영화가 주를 이룬다. 전체적으로 주옥과 같은 영화들이기는 하지만 저자의 영화와 음악 소개는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영화음악으로 이미 유명한 영화들이 대체적으로 소개되고 장면과의 어울림을 중요시여긴다. 서두와 제목만으로도 저자가 향수를 가진 영화와 음악에 목적성을 가지고 주내용을 이끌어나갈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편에서 오드리 헵번의 편지를 인용하거나 저자의 부가설명으로도 알 수 있듯, 저자는 영화음악이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미를 연기와 장면의 분위기와 몰입을 고양시키는 역할로 보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영화로의 몰입을 방해하고자 오히려 예상을 깨는 음악 혹은 음향을 사용하거나 아예 음악을 배제하기도 하는 영화들의 존재를 밝히고 영화임을 오히려 드러내는 음악사용등의 예시도 함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아쉬움을 달래주는 노력들이 전반부 이후에 이어지고 있기는 하다. 영화 ‘록키’의 테마음악이 듣는 이들에게 낙관적인 기분이나 흥분상태를 불러일으킨다는 기사의 내용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우리가 영화와 음악을 얼마나 밀접하게 여기고 있으며 무의식적으로 그 결합으로 인해 음악만으로도 감정을 영화에서 받았던 감정으로 융합시킬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록키의 경우 뿐 아니라 다른 이미지와 음악의 결합에서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예이다. 또 다른 영화음악의 의미를 부여한 부분도 있다. ‘스타워즈’를 소개하는 토막글에서는 다른 음악과 차별적이었던 ‘Cantina Band'가 ’리듬감을 색다르게 처리함으로써 우주의 다양한 악당들이 모여드는 공간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라며 공간의 의미를 음악으로 (대체가능한) 표현수단으로 본 것으로 눈여겨 볼 만하다. 저자의 말대로 ‘플래툰’이 아니라 ‘지옥의 묵시록’이 전쟁음악영화로서 거론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전쟁의 광기를 더욱 정면에서 적시하게 되는 ‘발퀴레’가 너무도 적절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왜 그 음악이 우리에게 보통 전쟁장면에서의 음향보다 더욱 전쟁에 대한 고발의 느낌을 갖는지에 대해 설명할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미 개봉관에서 스크린으로 만날 수 없는 영화들을 각종 영화제 혹은 특별상영관에서 찾아보는 열정을 지녔다. 내게도 저자의 영화에 대한 열정이 자극이 된다. 영화를 찾아 보러 다니던 추억이 있던 이들에게 그러한 저자의 열정은 다시금 지금의 나를 생각하게 할 것이다. 아마도 모두들 크고 작은 영화제들과 특별상영 기획 등을 유심히 보게 되지 않을까. 고전들을 함께 보는 관객들과 호흡하면서 영화가 주는 향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을 저자를 예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음악만으로 영화 혹은 특정장면의 분위기를 기억해내고 그와 더불어 자신의 과거를 반추해내고 공통의 대화를 끌어내는 데에서 이번 책이 기획된 듯 하다.

그래서 이 책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향수로 이끌어, 잊고 있었던 영화의 감동도 다시금 돌이켜 보게 한다. 내게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화양연화’가 특히 그러했다. ‘화양연화’의 경우에는 ‘Quizas, Quizas, Quizas' 보다는 현장음을 그대로 살린 영화장면들이 더욱 기억에 남긴 하지만 둘 다 영화음악이 기억에 굉장히 오래남았던 그리고 한동안 나를 좀 더 시니컬하게 만들었던 영화들이기도 하다. 두 번 구매했다가 두 번 잃어버리는 에디뜨 피아프의 CD징크스를 조금은 대체해줄 그녀의 노래도 CD에 실려있으니 정말 반가운 일이다. 또 이 책을 통해 영화의 음악에 대한 역할에 대해 좀 더 생각하게 되기도 했고 사운드의 활용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도 된 듯하다. 그리고 ‘모정’이나 ‘배리 린든’처럼 보지 못한 영화들에 대한 호기심도 발동시켰다. 그러고 보니 이미 경험한 것에 대한 향수 말고도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한 독자들에게는 이 영화들을 만나고 싶은 욕망을 줄 글들이다. 저자의 영화와 음악에 대한 애정과 열정어린 이야기에 푹 빠지다 보면 꼭 이 중 하나정도의 영화를 찾으러 DVD를 검색하고 있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크슈미트의 이상한 대중문화 읽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마크 슈미트의 이상한 대중문화 읽기 - 당신을 속여왔던 대중문화 속 주인공들의 엉큼한 비밀, 개정판
마크 슈미트 지음, 김지양 옮김 / 인간희극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크 슈미트의 꽤 오래전 스머프 읽기는 생각보다 강렬했다. 마크 슈미트의 이름이 잘 알려진 것은 아니었지만 공산주의 사회와 게이즘으로서의 스머프라는 그의 해석은 꽤 회자되었고 그로 인해 불붙은 스머프 토론은 스머프들이 이성애자라는 전제 하에 스머펫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담론 또한 뜨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내에서 스마트폰의 아이콘으로 다시금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스머프들은 캐릭터성이 부각되고 있을 뿐이지만 이렇게 현재 가까이에 있는 스머프 세계를 읽음으로써 여전히 유효한 사상들을 들여다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시기적으로 스머프가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된지는 30여년이, 지면만화로 등장한지는 50여년이 되었다고 하지만 새롭게 스마트 폰으로 재등장한 스머프 세계를 읽는 마크 슈미트의 이야기는 현 세대들에겐 흥미로운 해석일 것으로 믿는다. 또 아직 국내에 개봉되지는 않았지만 3D 애니메이션 ‘스머프’가 2010년에 제작된 바 있다. 뉴욕의 스머프라 버섯모양의 집에 사는 우리가 아는 스머프 마을을 읽을 수는 없겠지만 현재의, 그것도 트렌디한 뉴욕의 스머프라니, 이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더라도 아마도 이 영화는 마크 슈미트의 사회주의적 스머프 사회와 동성애에 대한 주장을 뒤엎는 스머프들이 될 것이 명백하다.

이미 08년 당시에도 여러 해를 거친 글을 엮었다는 시대적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마크 슈미트의 비평이 여전히 유효한 것은 캐릭터라는 유동하는 의미 외에도 존재한다. 마크 슈미트의 비평방식은 주로 네러티브와 캐릭터 읽기에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그만의 개성있는 시선을 유지한다. 이러한 마크 슈미트 식의 미디어 읽기가 미디어와 이미지를 읽고 글로 쓰는 연습을 하는 학생들에게 단초를 제공할 듯 하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도, 그리고 개성있는 이미지 읽기의 방향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학생들이 마크 슈미트를 참고할 때 디즈니의 공주 담론이나 브랏츠 인형 담론들이 이제는 결코 새로운 논의는 아니라는 것을 전제해야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접해왔던 그리고 현재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미디어 이미지들이 대부분 마크 슈미트의 비평소재이기 때문에 그의 비평은 이해와 공감이 쉽다. 마크 슈미트의 의견에 쉽게 동의하기보다는 그의 의견을 현시점에서 다시금 비평하고 다른 의견을 글로 옮기는 연습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마크 슈미트의 논리성보다는 마크 슈미트가 논제를 제시하는 새로운 시선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다.

마크 슈미트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동의를 구하기 보다는 독자에게 자신만의 시선을 찾는 단초를 제공하는 데 가장 큰 매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소 정치적인 몇권의 책의 영향이었을까. 나는 세계와 폭력에 관한 혼자만의 사유에 빠져있곤 했다. 그래서인지 마크 슈미트의 수퍼맨이야기가 영웅을 통한 또 다른 지배이데올로기 창출에 관한 생각을 부추긴다. 수퍼맨처럼 다소 파괴적이고 폭력적이며 때로 부도덕한 면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영웅’이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다. 폭력에 대한 폭력의 보복은 영웅에 의해서만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폭력을 폭력으로 보복해야 한다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숱한 헐리웃 영화에서도 학습되어 우리의 판단과 행동을 결정짓고 있기도 하다. 마크 슈미트의 ‘수퍼맨의 변명’ 편에서 제시된 미국의 예방적 선제공격이었던 이라크 침공에 대해 수퍼파워라는 옷을 입고 세계의 옳고 그름을 자국 내에서 결정했다는 의견은 특정한 비평가의 시선이라기보다 세계의 시민들의 다수가 한번쯤 생각해보았을 내용이다. 그러나 감히 바지위에 팬티를 입은 미국에 대해 반발하는 목소리는 비실하다. 마크 슈미트의 눈치를 본다는 말처럼 국제사회에서 미국이외의 국가 차원에서 관심가져야 하는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예방적 선제공격의 대상 혹은 국제사회에서의 소외로 가는 비판에 휩싸일 위험을 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게이관련 영어 표현들이 부정적인 의미와 함께 사용의 변화를 ‘사우스 파크’ 등의 미디어에서 읽는 작업 또한 눈여겨 본 부분이다. 엄연히 말하면 뉘앙스만 남고 의미는 전혀 다르게 변화하는 언어문화의 유동성은 언어파괴의 논란을 떠나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면서 우리가 인터넷의 발전을 필두로 굉장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신조어들에 대한 미디어 재현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듯하다. 또, 특히 한국에서 우리에게 마크 슈미트의 작업이 의미있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점은 그가 한국과 인연이 있으며 그로 인해 그가 읽어내는 한국영화들이 기존의 한국 평단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논점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민족문화의 바깥에서 보는 우리의 영화읽기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반가웠다. 영화 ‘친구’와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영화를 조폭과 북한에 대한 한국인들의 같은 반응으로 읽는 마크 슈미트의 이야기가 새롭다. 마크 슈미트의 이야기가 국외의 반응을 대표하거나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외부에서 새롭게 우리의 민족성을 미디어에서 읽어내는 그의 작업은 우리끼리 이야기하는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보다 더 다양한 다른 외부의 해석들을 접하고픈 욕심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축콘서트>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건축 콘서트 - 건축으로 통하는 12가지 즐거운 상상
이영수 외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펴기 전에 두가지 기대감이 있었다. 건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내게 건축이란 무엇인가 건축가란 무슨 일을 하는가 하는 기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해주리라는 기대와 디자인에 그친 건축일것인가, 진정 미래와 삶을 위한 공간일 것인가에 대한 건축가의 고민을 보게 되리라는 기대이다. 그 기대는 크게 엇나가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약식으로나라 한국의 건축과 세계의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듣고 현재 건축의 고민에 대해 공감하게 되었다.

이 책의 표지는 어두운 벽 위로 위로부터 빛이 쏟아지고 있는 책이 놓인 단상과 문이 있는 공간의 사진에 대각선의 인위적인 선이 그어져 있는 이미지이다. 어떤 의도의 표지인지 궁금하여 표지설명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내용 설명 중에 하나의 예시겠거니 내용과 주어지는 사진들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는데 유명희 저자의 글에 등장하는 프랑스 동부 벨포트에 있는 <롱샴성당>의 제단부 사진인 듯 하다. 아직 상징적으로 그어진 대각선의 의미에 대해서는 물음표지만, 빛이 어두운 공간에 들어와 공간을 의미있게 하는 사진에 대해서는 이 책을 대표할 만 한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건축가와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인것 같지만 내가 본 건축콘서트는 빛과 공간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궁금해지는 것도 많고 더 많이 보고픈 욕구가 느껴진다. 더 인터랙션하는 공간과 마주치고 싶고 어느 공간이건 읽고 그 안에서 이야기도 읽어내고 싶어진다. 때문에 주변을 유심히 살피게 되고,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듯 건축물 하나가 아닌 주변공간과의 어울림, 도시계획 중의 건물이 차지하고 있는 공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또, 건축물 뿐만 아니라 공간의 의미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스마트폰을 이용해 특정 공간에 메모를 띄워두는 증강현실 어플로 공간의 다양한 이야기를 읽어내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던 경험이 있다. 김수진 저자가 잠시 제시한 비어있는 공간인지, 어떤 물질로 채워진 플레로마로 볼지에 대한 공간에 대한 논란은 이제 의미가 없는 듯 하다. 어떤 과학적 물질로 채워져 있는 것보다는 건물의 안에서 밖의 공기가 관통하고 있는 길목으로서의 공간, 증강현실적 공간, (아직 상상이지만) 미드 <프린지>처럼 다른 차원이 겹쳐져 있어서 전혀 다른 물건과 사람이 놓여 있을 수 있는 공간, 사이버 공간 속의 무한확장된 개인공간 혹은 공유된 공간들은 이제 물질적 공간에 대한 논란으로만은 설명되지 않는 확장된 공간의 의미로 변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영화 <김씨표류기>의 여자주인공(정려원 역)은 자신의 방에 침실, 운동, 취미, 업무의 공간을 구분하여 사용한다. 스스로 방안에 갇혀 있지만 김수진 저자의 말대로 혼자일때는 밖과 소통하기를 무의적으로 원하는 법이다.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과 비슷한 이유로 우리는 사이버공간에 존재한다. 그 공간 또한 자연의 빛과 공기는 들일 수 없지만 확장된 공간으로 볼 수 있으며 공간읽기작업은 개인이 그린 그림으로 심리를 읽는 것과 같다. 사이버의 공간 또한 현대인에게는 실제의 집과 매우 흡사한 심리를 제공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2명의 저자의 글 중 유명희의 ‘공간의 탐독’이라는 제목은 이 책을 대표하고 있기도 하고 건축의 개념을 넘어선 다음 시리즈의 테마로도 적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건축은 나에게 디자인의 부산물, 작품 개체로 그치지 않고 읽는 대상으로서의 공간으로서의 건축을 읽게 했으니 말이다. 건축은 조형물이라기 보다 환경과 어우러져 환경과 함께 읽혀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따라서 공간은 채워져 있던 비워져 있던, 그 공간을 읽고 공간을 경험함으로써 각자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독서나 감상과 같은 다른 비평의 정점을 제공한다.

역사 속 세계관이 형성해낸 공간이라는 김수진 저자의 설명처럼 당시의 사상은 건축과 공간으로 구조화된다. 이렇게 역사 속에서 짓고 허물고 하면서 이제는 새로운 공간에 자연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실용적 목적의 새 공간을 생성해내는 것이 현대건축의 이슈인 듯 하다. 물론 지금의 환경이라는 이슈와 사상을 담고 이들은 자연 안에 탄생될 것이다. 건축은 사이버 공간을 통해 먼저 실현된다는 박영태 저자의 글처럼 상상력의 실현은 기술을 필요로 하고 이는 현재 필요한 생태학적 건축과 대립을 이룰지도 모른다. 건축에서의 (자연과 인공적, 모두의) 빛에 대한 연구는 건축내의 채워있는 곳과 비어있는 곳에 대해 매순간 모두에게 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건축의 색과 빛에 영감을 주는 것들은 김선영 저자의 글처럼 ‘자연’이다. 어쩌면 인간의 상상력은 애초부터 자연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자연에 기초한 기술의 발전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산업혁명과 인구를 수용할 효율적인 공간의 추구는 오히려 비인간적인 생활공간과 작업공간을 낳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건축콘서트가 제시하는 역사 속의 그리고 지금의 건축물들을 보면서 말이다.(예로 제시된 건축물들이 간혹 겹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각 저자가 다른 면에서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복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이 책안의 서울의 건축과 풍경은 매번 보는 장면에 대해 신선한 상상력과 공간읽기의 단초를 제공했다. 하나의 모습, 한자리에 서있는 건축은 스스로 매일 매순간 변화하기도 한다. 김정신 저자의 글에 등장하는 서울 스퀘어의 LED 전경처럼 건축의 디자인이 매순간 변화하기도 하고, 박영태 저자의 글에 등장하는 안젤로 인베르니치의 <해바라기 주택>이나, 영국 서폴크의 <슬라이딩 하우스>처럼 스스로 움직이는 건축을 실현한다. 이는 인간의 경험을 보다 증폭시키면서 인간의 예술적 경험 혹은 생태적 삶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건축가들이 들려주는 건축퍼포먼스를 즐기다보니, 우주를 부유하는 <파피용>(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도시처럼 우주적 공간의 건축물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이 책에서 우리는 모더니즘에서 포스트 모더니즘, 나아가 전위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구상을 볼 수 있다. 내 취향으로는 초현실주의적인 건축들을 보다 더 보고 싶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건축을 하지 않는 우리라도 건축에 대한 무한한 상상을 하게 한다. 이 책에서 언급된 모든 건축들이 모두 건축미술로서, 하나의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지만 보다 건축미술을 전문적으로 실천하는 예술가들의 작품과 철학적 공간의 재현인 건축과 비교대조를 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다음 시리즈에 대한 기대로 접으려 한다. 건축콘서트를 읽고, 아니 콘서트를 보고 나니, 계속해서 건축콘서트를 보고픈 기대감이 생겨서인지 자꾸 다음 시리즈에 대한 언급을 하게 되는 듯 하다.


목적이 무엇이었든, 강한 태양 빛에 손바닥을 펼쳐 빛을 막아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이때 빛이 통과한 손가락 사이의 피부는 투명해진다. 마치 물갈퀴와 같은 이 얇은 피부층은 빛으로 인해 나와 공간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어디까지가 나인지, 빛인지 공간인지 구분할 수 없는 순간이다. 인간의 삶과 자연이 이렇게 경계를 구분짓지 않고 같은 공기와 다르지 않은 빛으로 공간을 이뤄내기를 기대해본다. 분명 이는 새로운 것을 많이 만들어낸다고 실천될 이상향을 아닐 것이다. 기존의 것을 고민하고, 인간의 삶을 조금씩 늦춰가며 어울리는 공간으로서의 건축을 서울에서도 많이 보게 되기를, 그리고 더 많은 건축콘서트가 열리길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진의 극과극>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진의 극과 극 - 카피라이터 최현주의 상상충전 사진 읽기
최현주 지음 / 학고재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사진의 극과 극’은 각 챕터를 통해 우리가 서로 반대의미로 생각하는 개념(ex.전쟁과 평화, 꿈과 현실 등)으로 해석가능한 두 작가(작품)를 읽고 세상을 이야기하는 다른 방법들을 보여준다. (학고재의 ‘디자인 극과극’(현시원 저)도 같은 구성일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의 글에 내포된 바와 같이 저자가 제시하는 꿈과 현실, 일상과 결정적 순간과 같은 대조적 개념들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지극히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들여다보건 내다보건 개인의 시선이 포함되어 있음이 공통적이고, 꿈은 어떤 의미에서 현실이 되기도 하고, 현실은 꿈과 같기도 하다.


‘사진의 극과 극’은 저자의 사진읽기를 모토로 하고 있지만, 일반 독자들에게 사진 혹은 현대미술, 그리고 나아가 시각적 이미지의 모든 것에 대한 읽기의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기도 하다. 해석이란 개인마다 모두 다를 수 있는 것으로 저자의 느낌을 읽어가다 보면 독자 스스로 공감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며 독서가 주는 토론의 즐거움을 알게 될 것이다.


한편 저자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작가들의 독특한 작품들에서는 사진을 매개로 한 다양한 표현방법과 무엇을 어떻게 찍고, 인화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작업들을 만날 수 있다. 이는 우리에게도 사진작업에 대한, 그리고 나아가서는 표현에 대한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자신만의 메시지를 여러 매체를 결합한 사진으로 표현하고픈 욕구를 느낄 것이다.


사진에게서 느껴지는 미술적 매력은 우리가 여느 미술품 전시를 보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교묘히 미술과 접합점을 가진 사진은 그 표현방법이 무궁무진할 것이며 보다 쉬운 접근성 때문에 메시지 전달에도 보다 효과적이다. 광고에서 사진을 많이 이용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상업적 사진에 우리가 너무 길들여진 것 같지만 공익광고에서 퓰리처상을 휩쓰는 반전의 사진들에 이르기까지 사진이 주는 현장성과 감동은 전달의 용이성이라는 장점을 가진다.


또 ‘사진의 극과 극’은 평소에 접하기 어려웠던 한국의 사진작가들의 현주소를 읽을 기회다.나처럼 한국사진작가들의 사진을 많이 접하지 못했던 독자라면 그들의 훌륭한 작업에 감탄할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의 사진작업은 모두 매력적이지만 그 중 이정진 작가의 사진은 인화의 차이가 주는 다른 느낌을, Georges Rousse는 내가 상상해보던 다른 차원의 공간의 공존을, 김인숙의 작품은 내게 또 다른 형식의 영화에 대한 영감을 주어서인지 기억에 오랫동안 남았다. 저자는 작가들의 사진을 비평하면서 작가들의 스타일과 작품을 읽는다. 결과물로만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사진을 만들어가는 과정, 작가들만의 특유의 스타일은 몽타주이기도 하고 조소 혹은 설치미술과 같은 미술들과의 결합이기도 하다.


단지 우리는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주도양의 작품처럼 인간의 눈으로 인지할 수 없는 프레임이기도 하고 장보윤의 작품처럼 폐기되고 말았을지도 모를 누군가의 어느 기억을 드러내기도 한다. 또, 김아영의 작업처럼 순간은 재구성되고, 천경우나 이원철의 사진처럼 수시간이 담기고 Dionisio Gonzalez 혹은 원성원의 사진처럼 수십곳의 장소가 한 장의 곳곳에 배치되기도 하는 작업들은 보면 사진이 순간의 미학이라는 말은 (물론 여전히 유효하긴 하지만) 약간은 오래된 유물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다양해진 표현방식의 사진을 읽는 관람객의 시선 또한 확장 될 필요성을 느낀다. 카메라 스펙과 피사체에 따라 달라지는 순간을 포착하는 한 장의 사진의 강렬한 메시지에서 현대미술의 한 분야로서의 사진은 보다 장인이 만들어낸 예술작품에 가깝다.(‘예술로서의 애니메이션(김윤아 저)’ 참조 : 저자는 수년간의 수작업의 결과물인 일부 애니메이션들에게서 장인으로서의 애니메이터를 발견하고, 장인이 만들어낸 한 컷 한 컷의 예술로서의 애니메이션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저자는 세계의 사진작가 외에도 한국사진작가들의 세계적 활동을 알리고 체험하게 할 뿐 아니라 그들의 장인적인 작품활동까지를 말하고 스스로 읽기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대중적인 책 한권이 주는 의미가 고무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 선사 삼국 발해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한국미술사하면 쉽게 떠올리는 이미지들은 선사시대의 토기 등 생활용품으로 시작된 한반도의 미술에서부터, 무덤의 양식과 그 안의 벽화, 각종 아름다운 도기들과 장식용품 등이다. 이는 우리의 도퇴된 박물관 문화와 의무교육 내의 교과서수준의 한국미술사에 대한 관심의 깊이가 얼만큼인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독자에게, 그리고 한국미술사에 대한 현시점의 텍스트가 절실한 학생들에게 저자는 한국만의 기와미술과 비문의 글체, 사리장엄구, 사리감, 사리병, 불상에 이르는 불교미술까지 개성과 아름다움이 함께한 우리미술을 듣고 보게 한다.

이 책은 고미술에 까막눈인 내게 소중한 부록을 선사했다. 참고서목은 나 뿐만 아니라 한국미술사를 공부하고픈 이들에게 소중한 텍스트들이 될 것이며 미술사학의 방법론과 불교미술의 기본원리는 불교미술을 보는, 그리고 미술사에 대한 책을 읽는 데 앞으로 큰 자산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책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알게 된 일제의 가야의 고분도굴로 인해 현재까지도 일본도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문화재들의 현실이 아쉽다.(최근 뉴스 안의 일제시대의 도서가 반납된다는 소식과 함께 이러한 이야기를 보는 것은 더욱 식민시대의 문화정책을 생각하게 한다. 광복 65년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일본의 박물관에 진열된 우리문화재와 위안부할머니들에 대한 사죄 등이 이루어지지 않고 독도논쟁이 이어지는 현재는 아직까지 일본의 식민정책이 계속되고 있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애초에 국토탈환과 자원확보를 위한 전쟁과 약탈의 연속인 세계사가 회의적이지만 최대한 자국력에 대해 의식해야 하는 교육된 민족의식이 더욱 회의적이다.) 또한, 신라의 수입공예편의 유리병들, 북한에 남아있는 고구려의 청룡, 현무, 주작, 백호의 환상적인 벽화들, 집안다섯무덤의 벽화들에서 나는 우리의 미술이 이토록 환상적인 색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최근 TV를 통해 천마도를 ‘기린도’로 보는 재해석이 다뤄진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저자는 이러한 다양한 견해까지도 놓치지 않고 최근 문화재담론을 담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이 개론서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는 믿음을 준다. 이 책으로 인해 한국미술사는 국내 안에서만이 아닌 역사 안에서 세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도 있으며 역사와 문화의 탄생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며 이는 교과서적 역사교육과 한국미술사 교육에서 더 옳은 교육에 대한 영감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어느 독자나 소중한 역사자산으로서의 한국미술작들에 대한 애정을 가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과거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즐겁게 독서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한국미술사 강의’는 우리나라의 역사 내에서의 유물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기대감을 가지고 만나게 되지만 제목에서와 같이 이는 저자의 강의교재에 가깝다. 선사시대에서 발해까지의 한국의 역사와 함께 한 각 국가를 중심으로 미술품들의 특색을 살펴보는 ‘한국미술사강의’는 그 내용에 충실한 제목을 가졌다. 수능의 영역으로 따지자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주로 언어영역에서 출제되었다면 ‘한국미술사강의’는 사회영역에서 출제로 다뤄질 듯 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공간에서 시간을 되돌아보았다면 ‘한국미술사강의’는 시간에서 공간을 발견한다. 지역보다는 역사와 국가별로 문화를 구분한 것은 우리에게 친근한 역사공부와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선사시대에서 발해에 이르는 한국미술사를 설명하고 있으니 이후 저자가 연작에서 들려줄 차기시대의 미술사가 등장할테고 이 시리즈는 한국미술사개론서를 경신하게 될 것이다. ‘한국미술사강의’는 지금까지 조각조각 흩어져있던, 혹은 최근 업데이트된 고대의 한국미술작들에 대한 개론을 완성시킨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 책은 말그대로 개론서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소개와 고증된 역사의 해석에서 다른 시도를 하기 보다는 한국미술사에서 현재 알려진, 혹은 지금의 진실대로 해석된 내용을 나열하고 있다. 아마도 이후에 유홍준의 책은 한국미술사 중 집중적인 어느 시기 혹은 어느 지역의 유물과 역사 속의 삶을 깊게 조명하는 책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