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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정신
로버트 헨리 지음, 이종인 옮김 / 즐거운상상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조언들일뿐 아니라 예술을 보는 이들에게도 열린 시각을 권유하고, 행복하기 위한 삶의 태도에 대한 조언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독자층은 예술가를 꿈꾸고 있는 이들, 특히 한국에서 입시미술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목이 지시하고 있는 예술의 정신은 공식적으로 들어맞는, 기술적으로 매끈한 작품이기보다는 감성교류적인 의미와 표현에 있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주장은 다소 공식적인 입시미술에서 예술가의 영혼을 성장시켜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은 본문에서도 직접적으로 언급된 바와 같이 기본적으로 예술을 ‘확장된 언어’로 보는 저자의 예술관을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열린 시각, 다른 시각, 기록이 아닌 의식적인 선택, 감정과 자신만의 색 등 창작을 앞두고 우선시 해야 할 것들을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으며 창작에 임할때는 유연한 감수성, 독창성, 집중력 등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명백하게 감동은 기술에서 오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실기이론과 구상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보다는 인생과 철학, 경험을 강조한다. 드로잉을 하는 회화 입문자들에게 드로잉에 앞서, 혹은 드로잉을 배우고 연습하면서도 피사체와의 교감을 우선시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행동으로도 보여지는데 대규모 단체의 일치성보다는 소규모 구성으로 개성유지가 중요하다고 주장한 바와 같이 저자 본인 또한 여덟명의 소규모 그룹을 이끌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예술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의 작품이 너무도 궁금해진다. 미술계에서는 교육으로도, 작품활동으로도 권위자로 알려진 그의 이름이 사실 내게는 조금 생소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기 위해 여기저기 뒤적여 보았다.(이 책에서는 만날 수 없음) 인물화에 크게 감동을 받은 기억이 별로 없었던 나는 인물화가 화가보다 모델의 캐릭터에 순간적으로 몰입하게 창작할 수 있다는 데 놀랐다. 화풍보다는 모델의 캐릭터가 뚜렷하게 하나의 표정에서 느껴졌다. 그렇다고 착하고 사납다는 정형화된 동화속 인물의 구사도 아니다.

개인에 따라 소감들이 다르겠고 말로 어떻게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으니 역사 속의 실제 살아있었던 인물들이라는 느낌이 가장 먼저 났다고만 해두자. 나는 저자가 사실주의적 화가였다고 해서 그에 대한 선입견을 가졌었던 것 같다. 사실주의적 그림에 대한 오해도 분명 있었는데 극사실주의 회화와의 혼돈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적 표현을 우선시하고 표면적 리얼리티만을 중시했을 것이라는 예상은 인물화를 많이 그렸던 로버트 헨리의 작품들을 보고서는 달리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그림에는 모델의 캐릭터성과 순간의 모델의 감정을 잘 드러내고 있어서 그의 집중력이 남달라서 사진과 같은 기록의 의미를 가진 초상이 아닌 인물화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고 있다. 삶과 역사성, 여자와 아이들을 주로 그린 그림 안의 모델들은 모두 다른 배경과 환경와 감정상태들을 가졌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주의에서의 표면적 리얼리티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도 없을뿐더러 로버트 헨리와 같이 그 또한 ‘재현’은 ‘재현’이었을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저자의 이 글들과 그림을 연결하면서 화가의 시선과 감정의 재현 또한 사실적 표현의 옷을 입은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의 예술관람에서는 분명 프레임 밖에 관람객과 겹쳐지는 위치의 예술가를 매번 의식하고 느낄 수 있을 듯 하다.


이 책은 주로 19세기의 유럽회화 뿐 아니라 중국, 일본의 19세기 초반 작품들을 예로 들고 있다. 이 책은 1923년에 발간된 책으로 저자가 예로 들고 있는 예술가들과 작품들이 1500년대~ 1800년대 작들인지라 평소에 접하기 어려웠던 당시의 예술들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이렇게 예시로 제시된 그림들은 저자의 1923년 출판시에도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출판을 거듭하고 번역과 국내출판을 하면서 그림의 예시는 등장하게 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또 다른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여러 예술가와 작품제목이 등장하지만 그림에 대한 정보적 지식을 중요시하고 있지 않은 저자의 태도는 뚜렷하게 느껴질 것이다. 예로 언급되는 예술가들과 작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보기 힘들다. 주로 모델, 화가의 심리와 움직임의 표현과 프레임의 구성, 삶의 재현과 캐릭터성 등에 관심이 있었던 저자이지만 그림에서 화가의 의도까지를 말해버리지는 않는 것이다. 화가가 모델과 그리고 자연에서 순간의 느낌을 포착해내고 그 감정을 그리는 내내 집중하여 기억하고, 프레임에 담는 것에서 나오는 아름다움, 그 교감과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이 잘 전달되길 바라지만 그 뿐, 과학적으로 드로잉 기술과 붓질(스트로크)의 섬세함, 구도의 완벽한 안정성을 관객이 이해하기를 바라지는 않는 듯 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저자가 예술해석에 있어서는 열린 가능성을 두는 것을 중요시 했을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불친절하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의미를 가르쳐줘버리는 정보성 예술도서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알려줘버리지 않는 전시와 도서야말로 독자 혹은 관람객과의 교감을 자극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알아내려는 해석경향이 있고 정보성 예술도서에 익숙하다. 미술관에만 가 보아도 도슨트의 친절한 설명으로 우리는 작가의 의도를 상상할 여지를 상당부분 잃는다. 이는 정답에 접근하고자 하는 우리교육의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예술가가 피사체를 접하고 창작하면서 어떤 감정과 생각을 했는지... , 어떤 경험(공감각적 체험)이었는지 보는 이의 경험과 결합해 그 경험을 상상해내는 것이 예술관람의 즐거움이 아니던가. 다소 불친절하게 예술작품들을 만나볼 필요성을 느낀다. 충분히 교감하고 사유한 후 정보를 얻고 보다 풍부한 해석을 해보는 것도 늦지 않다.


저자는 언어이건 물질이건 그 자체로는 아름답지 않으며 판단과 표현으로만 의미가 발생한다고 믿는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처럼 말이다) 로버트 헨리의 말에서 조금 더 나아가 회화도 마찬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로버트 헨리의 저작이 이어졌다면 이러한 관람의 태도 또한 분명 언급되었을 듯 하다. 저자의 자연과 화가의 교감에 대한 언급을 생각해 볼 때, 나아가 작품을 탄생시킨 예술가의 작품은 예술가의 손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과 만나서 그 교감이 형성될 때 비로소 예술이 된다. 마치 꽃이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에게 자문을 구한 이들(제자)에게 보내는 비평의 서신은 감동이다. 난관에 봉착한 이들에게 꿈을 잃지 않게 격려하고 사조들과 타협하지 않게끔 애정어린 충고와 그가 생각하는 예술의 정신을 강조한다. 이 서신들이 분명 제자들의 주머니 사정을 돕지는 않았을테지만 역사가 평가할 작품활동과 예술가로서의 긍지를 잘 다독여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선생 자신의 업적을 위해서라도 당장 인정받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제자를 원하고 가르치는 데 있어서도 그렇게 유도할 수 있었을 법도 한데 로버트 헨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강조한 예술의 정신에 부합하는 일치적 실천을 보여줌으로써 아마도 그는 더욱 존경받았을 것이다. 그가 학생들에게 비현실적인 꿈만을 강요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선생으로서 저자는 스스로 미술계의 일률적인 비평과 수상시스템을 비난하여 미술이론과 미술계를 압박하는 등 진정 학생들과 고매한 정신을 지키는 예술가들을 옹호하는 실천을 도모한 것이다. 
 

포스트 모던 시대의 예술작품을 생각해보면 부유하는 표면적인 재현들마저 의미를 가질 수 있을텐데 의문을 품으면서 그의 이야기가 지금으로서는 시대착오적 교육이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잠시 들지도 모른다. 그저 한명의 독자로서 나는 선행해 읽었던 ‘미술은 똑똑하다’에서 공부했던 당시의 미술이론들과 아카데미 미술에 대한 이해가 더 풍부해진 듯 해서 뿌듯하고 ‘우리는 왜 예술작품을 원하는가. 그리고 왜 표현의 욕구를 가지는가’를 생각했을 때 저자의 이야기는 가장 근본적으로 예술이 추구해야 할 제목 그대로 ‘예술의 정신’에 대해 백번 옳은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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