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 풍요로운 삶을 위한 바이블
클래스케이 지음 / 케이미라클모닝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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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각자의 내면에는 이미 마스터가 존재한다로 시작하는 이책. 마스터가 뭘까? 현실창조 관련 책이라는데 현실 창조란 또 뭐지? 뉴에이지 같은 건가? 애매하게 이야기 해고 안되면 니 능력이 부족해서다 라고 생각하게끔 하는 책인가 싶기도 했다.

 

저자는 어린시절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그것을 극복해내기 위해서 여러 방법들을 찾았을 것이다. 나도 또한 뭔가 까닭을 모르게 집중이 안되고 불안정하고 불안해하며 예민하고 신경질적일때가 많았다. 제일 심각한 것은 무기력증이었다. 또한 어린시절의 어떤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있었고 무엇인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나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신념의 힘은 과학에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 너무나 유명해서 다들 아는 플라시보효과의 포인트는 그게 가짜약인줄 모르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핵심은 속임 이라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 최근 연구 결과는 가짜약인줄 알고 있어도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참 신기한 일인데 굳건한 믿음이라는게 참 쉽지 않은 것이다. 잘못된 믿음을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은 남들이 보기에 어리석다. 그러나 자기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고집이 있다. 신념의 깊이가 고집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면 그 사람들의 신념은 적어도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서는 진실이 되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그래보이지 않는다. 그 사람들도 속으론 자신들의 신념에 대해서 자신이 없고 빈약하단 말인가?

 

삶을 결정짓는 것은 환경이나 사건이 아니라 신념이다. 한 번 굳어진 신념은 무의식과도 같다. 캐릭터 설정과 같다고 하는데, 글쎄. 잘모르겠다.

마음은 의식적으로 산다고 늘 착각한다. 사실은 몸이 마음에게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변화를 모색할 때마다 몸은 익숙하고 편안한 상황으로 마음을 진정시킨다. 몸은 뇌에게 신호를 보내 변화를 하지 못하게 설득한다. 우리가 같은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간단하다. 몸의 모든 세포가 생각과 감정이 만들어내는 화학물질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십여년 전에 열풍이 불었던 시크릿 류의 뉴에이지, 영성과 관련있는 책인것 같다. 뉴에이지는 종교인들이 참 싫어하는 것인데 비슷하다. 알랭드 보통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처럼 종교의 장점을 신을 믿지 않고도 취하자는 것인가?

나야 독실한 무신론자라 영성이나 뉴에이지에 대한 반발은 전혀 없다. 그러나 믿음도 별로 없다. 현대 과학이 명상이나 뇌과학의 신비를 밝혀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신비한 부분이 옳았다는 것도 조금씩 증명이 되고 있긴 하다. 마음의 힘이나 신념의 힘, 생각의 힘 등 뇌 관찰 실험으로 증명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솔직히 좀 너무 간거 같기도 하다.

마스터와의 대화는 다소 유치하게 구성이 되어있다. 은유적 표현이거나 유머의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글로서만 보면 솔직히 형편없다. 인터넷 소설같은 대화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많이 유치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도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좋다면 문학이 아니기 때문에 넘어갈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의 이야기들이 엉터리라는 증거도 없다. 물론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저 멀리 우주는 지금 현 인류가 모두 죽을 때까지 밝혀지지도 않을 방대한 미스터리의 세계이다. 너무 방대하고 신비해서 무기력함을 느낄 지경이다. 과학자들도 당장 외계에 너무나 방대한 지역이 있고 그 곳에 외계생물체가 살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우주 뿐만 아니라 지구에도, 당장 내 자신의 신체의 비밀도 다 밝혀진 것이 없다.

 

그렇다고 밝혀지지 않은 것을 그대로 믿기도 그렇다. 그들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정보가 넘처나는 시대인 만큼 가짜 정보가 너무나 많기에 쉽사리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맞다고 하면 옳은 것일까?

신의 존재는 확인된 명확한 근거가 없는데 믿는 사람들은 굳게 믿는다. 그건 자신들의 집단과 가까운 공동체를 믿는 것과 다름 없다. 믿지 않을 수 없어서 믿는 경우도 있다. 만약 우리가 이슬람 국가에서 태어나면 어찌 그쪽 종교를 안 믿고 배기겠는가? 그러나 실제 신이 있다고 해도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의 모습은 아닐거란 것이다.

절대 그럴리가 없다. 왜냐하면 현대에 새롭게 밝혀지고 있는 것들이 예상과 맞는 것도 있지만 맞지 않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온갖 사기꾼들과 협잡꾼들이 자신과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 진실에 거짓을 살짝 짬뽕 시켜서 믿게 만드는 행위를 해온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게 세력이 크다고 진리일까? 그저 권력 뿐인 것은 아닐까? 역사를 보면 승리한 국가의 종교가 살아남았지 진리라서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로마가 다신국가에서 통치를 위해 그리스도교를 변형한 천주교를 제정하고 그리스도교가 번영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얼마전에 읽은 박물지라는 책은 세계최초의 백과사전이다.

서기 77년에 쓴 책으로 그때 사람들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헛소리지만 그당시엔느 불사조나 늑대인간등이 실제 한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것들이 아니더라도 여러 체계면에서, 국가나 정치관, 도덕관, 인생관에 있어서 굉장히 당연하게도 자기 중심적, 로마 중심적, 시대 중심적 사고관을 가지고 그것이 옳다는 굳건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 중에서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는 인간이 쉽게 예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믿는 것을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은 뒤에도 진실로 밝혀질지 아닐지 모르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도 있다. 그 과정이 인간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고 절대 진리인 양 고집하는 것은 자기 종교만 옳다고 고집하는 여러 일신교도들과 다를 바 없다.

여기서 일신교가 여럿이라는게 포인트다. 하나만 존재해야 되는데 여럿이 존재하며 각자 자기가 유일하다고 싸우고 분쟁을 일으킨다. 미래에서 지금의 기록이나 생각을 보면 그 어이없음이 늑대인간이나 불사조가 실제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이 책의 이야기 들이 진실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참 좋은 이야기도 많다. 내 어릴적의 내면아이를 달래는 방법이나 무의식에 관한 이야기는 심리학이나 과학에서 말하는 것과 비슷한 부분도 있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내면 감정과 습관의 내실을 다지는 이야기는 입증과 관련없이 좋은 이야기들이다. 감정을 카르마로 보는 것은 유전 정보가 부정적 감정의 일부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고 7세 이전 어린시절에 형성된 가정과 사회의 관습에 의해 형성되고 저장되어 자동화된 감정발동의 기제들로 본다. 그래서 감정을 나 자체와 동일시 하지 않고 분리해서 보라는 좋은 조언을 한다. 감정을 내가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한다. '지도는 실제 땅이 아니다' 라는 NLP의 개념과도 비슷하다.

 

다만 이 책에 있는 이야기들이 모두 전적으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다고 본다. 저자가 깨달았다는 무엇에 대한 이야기가 딱히 명확하지도 않고 이미 마스터라는 것과의 대화 그 마스터라는 존제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다. 호노포노포노를 우주위원회가 고안한 백신 프로그램이라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는 그저 마스터와 케이의 대화를 표현하는 상상력의 표현인것 같기도 하고, 실제 내면에 생성된 삶을 이끌어주는 독립적인 존재를 이야기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전생운운 하는 것도 좀 황당하다. 전생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이야기 하는데 그것도 입증할 수 없는 것이거니와 그저 상상력이나 꿈, 가수면 상태에서의 정신적 작용일 수도 있다. 자신의 자아를 신의 목소리라고 생각했던 옛날 사람들처럼.

 

원래 인간에게는 자아가 없거나 아주 희미했다고 하는 설이 유력하다.

자아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개념이다. 영장류 중에서 침팬치나 오랑우탄 고릴라 등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자신인줄 안다고 한다. 다른 동물들은 그런 능력이 없다. 서기 전 약 1000년 경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인간에게 없던 자아라는 것이 생기고 내면의 목소리를 최초로 가졌던 그 시대 사람들은 그것을 신의 목소리라고 착각했는데, 그 마스터라는 것이 자아와의 대화를 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그저 상징적인 도구로 쓰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뇌혁명의 하루야마 시게오에 따르면 좌뇌는 내 자신의 경험과 이성의 뇌이고 우뇌는 인류가 쌓아온 유전정보를 담은 뇌라고 확신하면서도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본인도 인정을 했다. 그게 맞다고 가정하에 여기서 나오는 이야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이 책을 표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대화는 그저 은유적 표현 방법의 하나이고, 여기서 나오는 기법들 중에서 효과가 있을 것 같은 기법은 한 번씩 사용 해보는 식으로 이용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내면의 추상적인 이야기들은 옳은지 아닌지 밝히고 말게 없다.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활용할 수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내면아이 달래기나 정화에 관한 이야기는 활용해봐도 좋을 것 같다. 자기 암시라는 얼핏들은 기법과도 비슷한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정화는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닌, 내 안에 있는 자신을 미워하는 '정보'를 향해서 하는 거라는 말은 좋은 이야기 같다.

 

다만 너무 맹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플라시보 효과는 가짜약인줄 알고 먹어도 나타난다고 한다. 이 책의 이야기를 플라시보 쯤으로 생각하고 활용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앞서 저자가 믿음을 강조한 것은 여기에 나오는 말들을 굳게 믿고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받아들이라는 이야기 같은데 플라시보처럼 추상적인 것들에 대한 믿음의 효과를 믿는 것이지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믿기는 솔직히 어렵다.

 

판단은 독자 각자가 하면 될 것이다. 추상적인 것들은 증명하기가 애매하다. 증명할 수 없는 것들, 종교나 신 같은 것들을 믿고 안믿고는 개인의 자유이듯 믿고 싶으면 믿고 효과가 있다면 활용하면 될 것이다. 믿고 안믿고에 너무 집착하지는 말자. 남의 믿음을 내 마음대로 침범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독실하고도 철저한 무신론자지만 신앙인을 설득할 마음도 간섭할 마음도 없다. 다만 나에게 간섭할때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남을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논리로 자꾸 간섭하려 하거나, 추상적인 것을 물리적인 증거로 증명하려들면 어떤 종교처럼 자꾸 물리적 증거를 찾고 유사 과학이 되려 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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