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 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여 어느 사이엔가

이 흰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나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백석 (백기행) 시인

출생-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사망- 1996년 1월

학력 -아오야마가쿠인대학교
데뷔-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
( 출체--네이버에서 인물정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고등 시 (최신판)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시리즈
오연경.이삼남.표영조 엮음 / 창비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올해 고 1이 된 우리 딸을 위해 산 책이다. 국어교과서 작품읽기, 고등시, 소설, 수필 이렇게 세트로다  거금 들여 공부 잘하라고 사준 것인데 슬프게도 울 딸은 읽지 않고 내가 다 읽었다. ㅠㅠ 울 딸은 언제나 읽을라나 ㅠ ㅠ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창비가 역시 책을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 16종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시를 그냥 끌어다 만든 게 아니다.  참 잘 만들었다!!

구성을 보면 크게 네 영역으로 나누었다. 한 걸음--나로부터 출발, 두 걸음--바깥을 향하여, 세 걸음--너와 나의 거리, 네 걸음--우리들의 삶 이렇게 나눈 뒤 또 작은 소제목을 붙여 두 개나 세 개의 작은 영역으로 다시 나눈 다음, 함께 읽으면 좋을 시들을 두편씩 짝지어 싣고 뒤에 도움글을 실었다.  

나로부터 출발해서 세상이라는 큰 우리들의 삶으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시를 나누어 구성한 점이 참 마음에 든다. 100편이라는 시를 그렇게 잘 나누고 또 두편씩 묶어 감상하게 하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도움글로 시를 이해하게 하는 구성이 정성껏 잘 만들었다는 느낌을 준다.

100편의 시들은 교과서에 실린 정도이니 그 작품성은 다시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좋은 시들이다.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공부로서가 아니라 그냥 즐겁게 읽었으면 좋겠다. 고등학생들이 읽기에 여러 모로 유익한 참 좋은 책이고 나 같은 어른이 읽어도 좋은 책으로 강추한다. 예전에 학창시절에 배우지 않았던 시도 많이 실려 있고, 이미 알고  있는 시라도 학창시절에  읽었던 때와는 그 감흥이 다르다. 아이들과 함께  읽고 어떤 시가 와 닿았는지 서로의 느낌을 말해 보며 시를 사랑하는 부녀, 모녀, 부자, 모자의 시간을 가지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나도 우리 딸 빨리 읽게 하고 같이 시감상을 나눠야겠다. 참고로 이 책은 빌려보지 말고 꼭 사보자. 두고두고 볼 만한,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일곱, 울지 마!
노경실 지음 / 홍익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노경실 작가의 청소년 소설이다.

무이라는 중산층 청소년의 일상적인 모습이 앞 부분에 조금 지루하고 길다는 느낌이 들게 나온다. 전형적인 중산층으로 남부러울 거 없이 부모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라는 아이가 무이다. 세상에 오로지 하나밖에 없는 귀한 존재라는  '유일무이'하다는 뜻으로 이름도 무이다. 집도 어느 정도 살고, 잘 나가는 오빠도 있고, 부부사이 좋고 다정한 부모님이 있는  행복한 가정이라는 든든한 울타리에서 공부까지 잘하며 부러울 거 없이 자신의 꿈을 펼쳐나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무이다.

그런 무이에게 어느 날 느닷없는 일이 일어난다. 잘 알지도 못하는, 곧 미국으로  떠날 선배에게 어이없이 엉겹결에 성폭행을 당하고 만다. 어찌 보면 재수가 없어서, 또 너무 순진해서 일어난 일인데 덜컥 임신을 하고 만다.

그 이후의 내용은 무이가 부모님께 털어놓지 못하고 온갖 고통과 두려움에 휩싸여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른인 내가 볼 때 무이가 그냥 엄마에게 솔직히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서만 끙끙 앓으며 힘들어 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나도 열일곱살의 딸이 있기에 무이의 고통에 더욱 공감이 가고 안타까웠다.

결국 나중에는 엄마가 알게 되는데 당황해하고 힘들어하는 엄마의 모습에 무이는 더 상처를 받고 자살에 이른다.

끝부분의 결말을 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왜 그렇게 끝을 맺었는지 지금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야기에 몰입되지 않는다고나 할까? 이야기 속에 푹 빠져서 읽어야 하는데 앞부분이 그렇게 재밌게 읽히지 않았고 끝부분의 결말에서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건지 의도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모라 해도 딸의 임신을 쉽게 받아들일 순 없지 않은가. 엄마와 세상의 싸늘한 반응 때문에 무이가 자살에 이른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수지 싶다. 10대의 임신을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으로 한 소녀가 끝내 자살하고 만다. 좀더 그들을 이해해줘야 한다. 뭐 이런 것이 이 책의 주제란 말인가?  무이에게 닥친 현실을 어떻게든 건강한 모습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무이와 엄마(어른으로 대표되는)의 모습이 그려졌어야 한다고 본다. 마지막 결론을 그런 식으로 낸 작가의 모습이 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10대의 임신이라는 소재 자체는 새롭지만 그 내용의 전달 방식은 그리 흥미롭지 않고 주제도 모호하다.

 열일곱 살인 우리 딸에게 원치 않는 임신을 했을 땐 절대 무이처럼 혼자 끙끙 앓으면 안된다는 교훈의 의미로 읽어 보라고 할 순 있지만,  재미있고 감동적인 책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공감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는 소설이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 - 제5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43
김이윤 지음 / 창비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아하고 깔끔한 느낌의 책표지와 책 제목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이라는 말이  신선하다고 느껴지면서 알싸한 슬픔이 전달되어져 왔다. 꼭 읽어 보고 싶어져서 책을 구매했고  한번 잡아 놓지 않고 읽었다. 역시 창비의 책은(제 5회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이 책은 엄마의 죽음이라는 청소년에게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소설화하였다. 그러나 전체 내용은 너무 무거운 느낌이 들지 않으며 차분하고 담담한 모습으로 엄마와의 이별이 그려져 있다. 

 엄마를 암으로 잃게 되는 것이 여여에게는 가장 큰 두려움이겠지만 고등학생이 되도록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아버지의 존재를 찾아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또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던 선배와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도 여여에게는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고 나약하기에 언제나 두려움을 가지고 산다. 그 두려움의 종류는 여러 가지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두려움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일 것이다.  어느 순간 예기치 못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  그때 우린 너무도 슬프고 또 두려워 어딘가로 숨어 버리고 싶은 나약한 모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두려움에게 떨리는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그를 내 안으로 기꺼이 맞아 들여야만 한다.

이 소설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먼저 떠나 보낸 경험이 있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더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난 보낸 슬픔은 인간의 어떤 말로도  쉽게 위로가 되지 않기에, 그냥 이 소설을 읽으며 눈물 한번 흘리라고 말하고 싶다.

가장 예민한 청소년이라는 시기에 이런 큰 고통을 겪어야 하는 맑고 순수한 주인공 여여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가슴에 품고  용기를 내어 잘 살아가자고 등 한번 토닥거려 주고 싶다. 시기만 다를 뿐 언젠가는 우리 모두 사랑하는 이와 영원히 이별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언젠가 우리도 우리 자신의 죽음이라는 가장 큰 두려움에게도 인사를 해야만 할 때가 올 것이 아닌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월은 잔인하다. 지독히도 눈부신 이 아름다운 계절을 보아라. 연녹색의 작은 이파리들이 갓난 아기처럼 귀엽게 미소짓고,갖가지 꽃들이 화사한 모습으로 피어나는 이 봄날을 보아라. 게다가 새들의 맑은 지저귐은 봄의 대축제 라는 영화 한편의 배경음악이 되어준다. 말로는 표현 불가다. 아무리 감정없는 목석이라도 이 시기의 자연이 보여주는 그 아름다움 앞에 감탄하지 않을 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화사한 계절에 우리 아이들은 누렇게 뜬 얼굴빛으로 학교에서 학원을 오가며 오로지 죽도록 공부만 해야 한다. 4월 말부터 시작되는 중간고사 앞에 스트레스 만빵으로 잔뜩 긴장한 채 벚꽃잔치를 즐길 여유가 없다. 내일부터 우리 아파트는 축제란다. 야시장도 열린단다. 근데 우리 아이들은 즐길 수가 없다. 이 좋은 봄날에는 무조건 야외로 나가야 한다. 어른이든 아이든 나가서 자연을 보고 느껴야 한다. 그게 다 공부다. 이런 때 야외 수업 얼마나 좋은가? 왜 하필 4월말에 중간고사를 봐야 하는가? 정말 잔인하다!!

교육감에게 제안한다!!  4월말 중간고사 싹 없애버리자. 중고생 다 지금같이 며칠씩 보는 지필 시험은 한 학기에 한 번으로 족하다. 그럼 시험범위가 너무 많다구? 쪽지 시험도 보구 수행 평가도 해서 성적내면 되지 지금처럼 꼭 1년에 4번 시험봐야지만 되냐구요?~~~~

죄발죄발~~~  애들 좀 숨 좀 트게 해줍시다. 어른들과 애기들만 벚꽃구경하지 말구 학생들도 벚꽃구경도 하고 봄날도 즐기며 살게 해주자구요.   중간고사 폐지하자!!! 폐지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