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이 필 때는,

내가 죽은 날 바로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새 한 마리

 

 

우리는 누구도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지만 이 넓은 우주의 지구라는 곳에 나라는 존재는 생겨났다.

수없는 관계와 관계 속에서 인연을 맺고 집착하며

희노애락의 감정을  느끼며 살다 언젠가는 한 생을 마감할 것이다. 

태어난다는 것, 존재는 기쁨이지만 또한 슬픔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엔 이 시에 나온 새처럼 되지 않을까?

모든 세속의 고통과 번민과 집착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새 한 마리.

기쁨, 슬픔, 노여움, 안타까움, 그리움 등 그 모든 감정들의 찌꺼기마저 훌훌 털어내버린 새 한마리.

이제는 이 세상과 무관한 한 마리 새가 되어 자신의  삶을 돌아 보며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초연하게 우는 새 한 마리, 영혼의 모습이 떠오른다.

 

   
인물사진 

 

천상병 시인

1930년 1월 29일 (일본) - 1993년 4월 28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스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도종환 지음, 이철수 그림 / 한겨레출판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연히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집어들었다. 그리곤 하루만에 이 책을 다 읽어버렸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를 쓴 베스트셀러 시인으로만 알려진 도종환 선생님.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주시는 자신의 삶과 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내 가슴도 젖어들었다.

난 선생님을 그냥 시 잘 쓰는 시인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그의 시가 왜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젖게 할 수 있는지, 절망으로 눈물 흘리고 있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고 용기가 될 수 있는지 이 책을 읽고야 알게 되었다. 도종환, 그 자신 또한 인생이라는 길에서 모진 비바람, 눈보라 맞아가며 절망에 부딪혀 한없이 눈물 흘리고, 넘어져 또다시 일어나고, 또 눈물 흘리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온 삶이었고 그것이 그의 시가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생님은 울면서 시를 썼고 자신이 울면서 쓰지 않는 시는 남들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 때문에 부모님과 떨어져 외로움에 사무친 삶을 살아야 했고, 가난 때문에 화가가 되고 싶었던 꿈은 접어야 했다. 결혼한 지 채 얼마 되지 않아 아내가 암에 걸려 세상을 뜨는 고통을 겪어야 했으며 전교조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해직을 당하고 10여년을 교단 밖에서 온갖 모욕을 겪으며 철창에 갇히고 경찰들의 곤봉에 맞으며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다. 10년 만에 겨우 복직이 되어 시골 중학교로 가서 교사로서 소임을 다하려 애쓰며 살고 있는 그에게 또다시 병마가 찾아들었다.

신은 그에게 어떻게 이렇게 가혹할 수 있을까 왜 그렇게 시인에게 절망을 주신 것일까?

 

 

강으로 오라 하셔서 강으로 나갔습니다.

처음엔 수천 개 햇살을 불러내어 찬란하게 하시더니

산그늘로 모조리 거두시고 바람이 가리키는

아무도 없는 강 끝으로 따라오라 하시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숲으로 오라 하셔서 숲속으로 당신을 만나러 갔습니다

만나자 하시던 자리엔 일렁이는 나무 그림자를 대신 보내곤

몇 날 몇 밤을 붉은 나뭇잎과 함께 새우게 하시는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

상처와 고통을 더 먼저 주셨습니다 당신은

상처를 씻을 한 접시의 소금과 빈 갯벌 앞에 놓고

당신은 어둠 속에서 이 세상의 의미 없이 오는 고통은 없다고

그렇게 써놓고 말이 없으셨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지금 풀벌레 울음으로도 흔들리는 여린 촛불입니다

당신이 붙이신 불이라 온몸을 태우고 있으나

제 작은 영혼의 일만팔천 갑절 더 많은 어둠을 함께 보내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본문 231쪽 <당신은 누구십니까> 중에서

 

 

그러나 시인은 절망이라는 컴컴한 벽 앞에서 눈물만 흘리고 있지 않았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내어 놓은 삶을 살았다. 그의 시 ‘흔들리며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처럼 그도 순간 순간 흔들렸으리라. 그러나 그는 흔들리며 나약하게 눈물 흘리면서도 결코 변절하지 않았다. 엄마도 없는 두 남매를 부모님께 맡기고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으로 철창에 갇힌 신세가 되었을 때, 그의 아버지가 찾아와 전교조 탈퇴서를 쓰면 풀어주겠노라는 말을 전하며 쓰지 않으면 의절을 하겠노라고 한다. 그때 그도 흔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전교조를 탈퇴하지 않았다. 경찰서 담에 이마를 대고 울고 계시는 어머니를 보았을 때 자식으로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쇠창살에 이마를 대고 어두워 오는 하늘을 봅니다

벽에 어린 내 그림자는 미동도 않습니다.

어두워 오는 하늘 먼 곳을 불안한 천둥소리가 질러갑니다.

장마가 시작되려나 봅니다

지금쯤 아이들은 울음을 그쳤을까

하루아침에 고아가 돼버린 내 아이들

며칠째 울먹였다던 학교의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

 

그러나 이 세상에 가장 버리기 힘든 게 마음이어서 가슴 아픕니다

명예는 버릴 수 있어도 못 버리는 게 마음이어 아픕니다.

목숨까지 버릴 수 있어도 못 버리는 게 마음이어 아픕니다.

평생 눈물밖에 드린 게 없는 어머님께

두 아이와 눈물 한 무더기들을 더 얹어드리고 돌아오면서도

버릴 수 없는 게 마음이어 아픕니다.

 

본문 167쪽 <쇠창살에 이마를 대고>

 

 

참교육을 위해 그 큰 고통 감내하고 10년 만에 시골학교 교사로 다시 복직해서 열정을 다해 가르치는 시인의 모습은 참 아름답게 보였다. 그런데 너무 몸과 마음을 혹사한 탓일까? 그에게 병마가 찾아오고 결국 교단을 떠나 산방으로 가게 된다. 거기서 그는 더 깊어진 눈으로 자신과 자연을 응시하고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게 된다.

 

이른 봄 내 곁에 와 피는

봄꽃만 축복이 아니다

내게 오는 건 다 축복이었다

고통도 아픔도 축복이었다

뼈저리게 외롭고 가난하던 어린 날도

내 발을 붙들며 떨어지지 않던

스무 살 무렵을 진흙덩이 같던 절망도

생각해보니 축복이었다

그 절망 아니었으면 내 뼈가 튼튼하지 않았으리라

세상이 내 멱살을 잡고 다리를 걸어

길바닥에 내팽개치고 굴속에 가둔 것도

생각해보니 영혼의 담금질이었다.

한 시대가 다 참혹하였거늘

거인 같은, 바위 같은 편견과 어리석음과 탐욕의

방파제에 맞서다 목숨을 잃은 이가 헤아릴 수 없거늘

이렇게 작게라도 물결치며 살아 있는 게

복 아니고 무엇이랴

육신에 병이 조금 들었다고 어이 불행이라 말하랴

내게 오는 건 통증조차도 축복이다

죽음도 통곡도 축복으로 바꾸며 오지 않았는가

이 봄 어이 매화꽃만 축복이랴

내게 오는 건 시련도 비명도 다 축복이다.

 

본문 320쪽 <축복>

 

 

시인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와 시를 읽으면서 지나간 한 시대를 되돌아보며 촉촉이 젖어드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의원으로 시인이 국회의원이 된단다. 시인은 이제 건강이 회복되어 산방을 나오신 것일까? 도종환 시인과 정치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생경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나는 믿고 싶다. 앞으로도 시인의 삶은 이제껏 살아왔던 삶과 다르지 않을 거라고.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더 좋은 세상을 위하여 노력하는 삶을 살아갈 시인이자 정치인이 될 거라고.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본문 208쪽 <담쟁이> 전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