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마다가스카르 - 스물넷의 달콤한 여행 스캔들
Jin 지음 / 시공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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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내게 용기가 없다는게 참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여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돈이 없다는 가장 중요한 경제적 이유때문에 쉽사리 여행이라는 꿈을 꿔보지 못하지만, 사실 나는 겁이 많다. 그래서 여행을 가는 것을 갈망하면서도 쉽사리 용기를 내지 못한다. 유치원에 다닐무렵 혼자 버스를 탔다가 길을 잃어 반나절 동안을 미아로 보냈던 경험탓일까? 그래서 나는 서울 시내라도 혼자 모르는 곳을 갈때면 가슴이 쿵쾅거린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서울땅에서도 그런데 하물며 다른 곳은 어떻겠는가?
몇해 전인가? 이름을 가지고 성명학을 본적이 있었다. 그 때 본 성명학 결과에 내 인생에는 역마살과 그 비슷한 살 하나, 떠돌아 다니는 살이 두 개나 껴있다고 했는데, 겁이 많은 탓인지 나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 보다는 집 안에 머무르는 편이 더욱 좋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씩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온 몸을 감싸고 활활 타오르기도 한다.

jin. 그녀는 나와 공통범이 3가지가 있다. 하나는 대한민국의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 둘째로는 올해 방년 25세로 나이가 같다는 것, 그리고 세번째로 그녀와 나 모두 jin이라는 이름을 즐겨 쓴다는 것. 약간은 말도 안되는 억지 공통점이라고 할 수 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jin이 쓴 [호텔, 마다가스카르]라는 책을 봤을때 운명을 느꼈다. 하하하. 책 한권에 운명까지야. 하며 웃어넘길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그 때 느낀 감정은 '운명'이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되었을때, 나는 참으로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지겹도록 운없고 능력없는 나를 비롯한 나와 연관된 모든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여행'보다는 '탈출'이 더더욱 하고 싶었던 때이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나 내 앞길을 가로 막는 것은 너무나도 지겨운 '겁'과 '용기없음'이랄까.
아무튼 그렇게 그녀의 책을 만나고, '절대 못가'였던 마음이 '어쩌면'이라는 2-3%의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다.

jin. 그녀는 24의 나이에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로 향했다. 취업을 목전에 둔 예비 사회인으로서 그녀를 갑갑하게 만들었던 현실에서 그녀는 잠시간의 휴식, 혹은 유예기간을 가졌다. 부모님의 원조는 바라지 않았다. 명문대에 다니는 덕분일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몇 개의 과외를 해서 비행기 티켓값을 비롯한 여비를 마련했다. 그리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그렇게 자유롭게 떠났다.
그녀가 한국을 떠날때, 그녀에게도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그런 무모한 도전을 할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은 친구의 단 한마디였다. 대학생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은 많다. 다른 이의 시선따위 신경쓰지 말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친구의 도전. 사실 그 말은 , jin에게 그 말을 해주었던 그 친구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너무나도 흔하디 흔한 말이었다. 하지만 jin은 그 말을 계기로 여행을 떠났다.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 이름만 들어도 눈앞에 무성한 수풀과 모래사막, 찌는 듯한 더위와 작렬하는 태양이 연상된다. 원색의 옷을 입은 까맣고 건강한 피부의 아프리카 원주민이 연상이 된다. 그렇게 상상만으로도 눈앞을 화려하게  만드는, 아프리카는 미지와 상상의 공간이다.그 상상의 세계에는 아프리카 경제의 99%을 점유하고 있는 1%의 백인들과 기아에 허덕이는 다수의 아프리카 흑인들의  말도 되지않는 불평등함은 끼어들 여지가 없을만큼 견고하고 단단하다.  jin은 그 미지의 공간에 용기를 내어 발을 딛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만났다. 그리고 불합리한 모습을 목격하고 때로는 부르르 화를 내기도 한다. 사자가 뛰어다니고 기린과 얼룩말이 풀을 뜯을 것 같았던 처음의 상상과는 달리, 그녀는 가는 곳마다 돈을 요구하는, 가난의 근성에 물들어버린 어린영혼들을 만난다.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이지만 그들을 까맣게 물들이고 있는 그 게으름과 가난의 찌꺼기. 그녀는 돈에 눈을 떠버린, 지나치게 되바라진 아이를 만날때마다 사탕과 꽃을 내밀었고, 그 마음은 때로 땅바닥에 쓰레기처럼 내동댕이 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차치하고 그녀는 여행을 통해 많이 많이 행복하다.

하얀이를 환히 드러내며 웃어주고, jin을 만날 때마다 가장 좋은 옷으로 차려입으며 마음을 다하는 친구와 그리고 렁드리. 그녀가 만약 여행을 가지않고 한국에서 취업준비에 열중이었다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인연들을 만난다. 아프리카 인기가수의 노래를 부르고, 아프리카 인들과 클럽에서 몸을 부딪히며 춤을 추고, 렁드리와 애틋한 마음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여행을 마친 jin. 그녀의 여행은 절대로 헛되지 않았고, 후회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어쩌면, 혹시'라는 마음으로 예전과는 달리 조금은 긍정적인 마음으로 '여행'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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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보다 소중한 우리미술가 33 - 오늘의 한국미술대가와 중진작가 33인을 찾아서
임두빈 지음 / 가람기획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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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다닐 그때에 내가 가장 좋았던 순간 중의 하나가 바로 새학기에 배울 표지가 판판하고 깨끗한 새책을 받던 순간이다.그렇게 받은 십여권의 교과서 중에서 가장 먼저 펼쳐봤던 것이 바로 미술책. 공책만큼이나 얇은 두께의 미술책에는 글은 별로 없고 페이지마다 형형 색색의 그림과 사진으로 가득차 있어 눈이 참으로 즐거웠었다.

나는 그 얇은 책을 통해서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마르셀 뒤상의 [샘]을 보았고,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작품도 처음 접했다. 아직까지 내 기억에 선명하게 기억되는 그 작품들을 소개해 준 그 책은 사실 수업시간에는 한번도 페이지가 넘겨진 적이 없었다. 그저 미술시간에 따라오는 부록같은 책이 바로 미술책이었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나는 점점 미술과 점점 멀어져만 갔다. 하지만 그 때 본 세계적인 작품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하지만 내 기억에는 한국화가의 작품은 남아있질 않다. 피카소나 고갱, 그리고 세계 유명 작가의 작품은 아니어도 기본적인 구도를 잡는 모습까지 기억이 나는데, 이상하게도 한국작가의 작품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 미술교과서에는 한국작가의 작품도 싣려있었을 텐데.. 아마도 이건 우리 사회에서 국내 미술가가 받는 대우와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미술작품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다들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아무튼 고등학교 졸업 이후, 미술과는 그렇게 점점 멀어졌던 내 귀에 고흐니, 클림트니 하는 외국 화가들의 이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천경자와 박수근, 그리고 이중섭 화백의 이름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미술품이 경제적 가치로 이어져 하나의 제테크적인 수단으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부수적인 세간의 관심들이 그 쪽으로 쏠리기 시작한 것이다.

 

임두빈의 [고흐보다 소중한 우리 미술가33]인은 한국 미술가 33인을 그들의 대표적인 작품과 함께 대중에게 소개하는 책이다.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고흐와 고갱을 알아도, 같은 공기를 마시며 숨쉬는 한국의 미술가는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을 위해 '고흐 보다 소중한' 그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큰 수확은 바로, 암흑속에 묻혀있던 내 기억속의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발굴해 낸 것이었다. 초등학교였던가? 중학교무렵에 미술책에서 보았던, 하지만 누구의 작품인지는 몰랐던 그 작품들과 그 작품을 세상에 선보인 그들을 알게된 것이다.

 

아직 현존하는 그들과 그들의 작품을 소개받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즐겁고 소중한 일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33인의 다양한 작품을 보면서 좋아하는 미술가란에 한국작가의 이름을 채워넣을 수 있는 것도 너무나 좋은 일일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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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를 사랑한 남자 -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를 푸는 심리학 탐험 16장면
조프 롤스 지음, 박윤정 옮김, 이은경 감수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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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 사나도 한때는 심리학을 전공하고 싶은 꿈을 가졌던 적이 있다. 모든 가능성에 문을 열어놓았던 그 시절, 나는 교련 교과서에 실린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칼 융의 이론에 가슴이 설렜었다. 사람들의 의식 속에 숨어있는 무의식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것, 누군가의 의식 저 편을 내 마음대로 넘겨다 볼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발칙한 생각에 가슴이 떨리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랬던 시간들 위로 먼지가 켜켜이 덮여갈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유모차를 사랑한 남자]는 잊고 지냈던 그 설렘과 호기심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혹시 자신의 부모의 손에 강제로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여자를 아는가? 혹 유모차와 핸드백에 성적인 욕구를 느끼는 남자는? 기적이라고 말 할 수 밖에 없는 경이적인 기억력을 가진 남자는? 자신의 몸 속을 다른 인격과 공유하고 있는 여자는? 오랜 실명생활 끝에 시력을 되찾은 후 절망감으로 자살을 해 버린 남자는?

세상은 참 넓고 그 넓은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중 굉장치 독특한 사람들도 있다. 이 책에서는 세계적으로 자신의 독특함으로 정신분석학, 혹은 심리학 분야에 이름을 남긴 16명의 이야기이다. 좀 더 확실히 말을 하자면, 이 책은 그 16명에 관한 사례연구에 관한 짧은 보고서라고 할 수 도 있겠다. 독특하고 때로는 기괴하기까지 한 사례를 들어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호기심을 자극한 후 그에 대해 이루어진 좀 더 자세한 연구를 독자에게 소개한다.

 

우리는 우리와 매우 다른 사람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거부감을 가진다. [유모차를 사랑한 남자]에 실린 사례연구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독특함과 유별남은 너무나도 두드러져서 개성이란 이름으로 덮어버리기엔 부족하다. 그렇게나 ‘이상한’ 사람들을 우리는 사례연구라는 것을 통해 과거 그 ‘이상함’과 ‘독특함’을 치료하기 위해 행하여졌던 많은 시도와 오류를 지켜본다. 그리고 그 시도와 오류를 통해 얻어낸 지식과 학설을 토대로 우리는 그 ‘이상한’ 사람들을 사회의 범위에서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게 이해하게 된다.

 

심리학에 대해서 모른다고? 프로이트나 칼 융은 이제 머리가 아프다고?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그런 사전의 준비운동은 필요치 않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약간의 호기심 정도다. 그대의 호기심이 당신을 심리학의 세계로 자연스레 이끌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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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윤정 옮김, 무라카미 요오코 사진 / 문학사상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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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여행의 테마는 위스키였다.

스코틀랜드의 아일레이 섬에서 그 유명한 싱글 몰트 위스키를 실컷 마신 다음,

아일랜드에 가서 도시와 시골 마을을 여기저기 둘러보며 아이리시 위스키를 음미할 작정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 모두 술꾼들이지만) 거 참 멋진 생각이라며 칭찬해주었다.

 


 

야구장에서 멋지게 날아가는 야구공을 보고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는 독특한 이력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난 그의 소설보다는 그의 에세이를 더, 더, 더 많이 좋아한다. 그가 쓴 [먼 북소리]는 내가 제일 좋아하며, 일년에도 몇 번이나 다시 꺼내 읽어보는 책 중 하나이다.

내가 그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것은? 글쎄 그의 에세이에서는 적당한 삶의 냄새가 묻어나면서도,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그의 취향, 세세한 것들까지 드러나서 좋아한다.

 

내가 그동안 읽은 몇 권의 에세이를 통해 알아낸 그의 취향 몇 가지.. 그는 재즈음악을 좋아하고, 쉐이빙 폼을 좋아한다. 그리고 당당히 담을 넘을 수 있는 여고생을 지지하며, 자신의 옆에서 책을 읽어 줄 목소리 좋고 얼굴까지 예쁜 여자비서가 있었으면 한다. 만년 꼴지여도 야쿠르트 스왈로우즈의 왕팬이며, 그의 작품속에는 유독 '노보루'라는 이름의 남자 캐릭터가 자주 등장한다. 이렇게 마이너한 것 말고, 대중적으로 알려진 그의 취향 몇 가지는 바로 그가 와인을 매우 좋아하고 재즈를 좋아하며, 생긴 것과는 어울리지 않게 음악회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가 음악을 즐겨듣고, 와인을 좋아하며 즐길 수 있었던 데에는 그가 매우 성공한 작가라는 사실이 아주 중요하다. [노르웨이의 숲]으로 일약 대 히트를 친 후 그는 정말 글쓰는 모든 이들이 바라는 '돈 걱정 하지않고 글만 쓸 수 있는' 그런 삶을 산다. [위스키 성지여행]도 사실 그가 성공한, 많은 독자층을 가진 작가라는 점 때문에 쓰여질 수 있었던 책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견학 또는 여행을 다니며 글을 많이 썼다. 한국과는 달리 잡지 문화가 많은 발전을 이룬 일본에서 그는 집에서 자신의 작품만 쓰는 것과는 별도로 꽤나 다양한 종류의 잡지에 글을 기고한다. 우동을 테마로 일본 곳곳을 돌아다니며 글을 쓰기도 했고, 공장을 테마로 여러 공장을 다니며 글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엔, 위스키다.

 

이번 책은 하루키 혼자만의 책은 아니다. 그 동안 그의 에세이 곳곳에서 '범상치 않을'것 같은 분위기를 풍겨주시던 그의 마나님께서 찍은 사진이 그의 글과 짝을 이루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졌다. 습하고 바람이 많이 불고, 때로는 우중충하기까지 한 영국의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무라카미 부부는 이런 곳에 오직 '위스키'를 마음껏, 종류껏 음미하고자는 세부적 목표를 가지고 여행의 첫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위스키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최초로 주조되었다. 스코틀랜드를 이루는 많은 섬 중 하나인 아일레이는 그 중에서도 '위스키의 성지'라 부를만큼 뛰어나고 맛이 좋은 위스키를 생산한다. 수천종에 이르는 블랜딩 스카치 위스키 중 아일레이의 싱글몰트를 배합하지 않은 것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아일레이 위스키의 세계에는 각자의 개성이 존재하며, 존중된다.

 

 

아일레이의 위스키는 곳 아일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초내음이 물씬나는 바닷바람이 이탄에도 수풀에도 깊숙히 베어든 아일레이. 아일레이의 위스키에서는 그 갯내음이 물씬 풍겨난다. 그리고 그 맛과 향은 그 출신 증류소에 따라 다르다. 증류소를 지키며 자신의 고유한 맛을,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들은 결국에 자신들의 퍼스낼리티가 뛰어난 위스키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퍼브란 꽤 심오한 곳이다. 말하자면, '율리시즈'적으로 심오하다.

비유적으로, 우회적으로, 단편적으로, 종합적으로,

역설적으로, 호응적으로, 상호참조적으로, 켈트적으로, 전세계적으로 심오하다.

 

이렇게 앉으나 서나 위스키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퍼브란 아주 중요한 곳이다. 탄산수도 아닌 그냥 수돗물 약간에 위스키를 섞어 들이키며 하루의 노곤한을 잊을 수 있는 곳이 바로 퍼브이며, 말 한 마디 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며 교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퍼브이다.

 

개인의 사생활을 지켜줄 줄 아는 그 곳을 떠나올때, 무라카미 부부가 그 여행의 짧음을 아쉬워했던 이유는. 처음에 꿈꾸었던 대로 그 많은 위스키를 마음껏 음미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보는 그 자체가 하나의 풍경이 되고 의미가 되는 그 곳에서 만났던 그 기분좋은 나른함과 그 갯내음 물씬 풍기는 공기탓이 아니었을까?

 

실제로도 무라카미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도쿄의 품격있는 바에서 고가의 위스키를 마실때도, 아일레이와 아일랜드의 그 풍경이 떠오른다고 했다. 위스키가 품고있는 맛과 향 그 이상의 것을 무라카미는 짧은 여행을 통해 일본으로 얻어온 것이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빈 손으로 돌아와도 마음에는 무언가를 한 가득 가져와 때때로 꺼내어 추억할 수 있게하는 것, 돈의 가치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것 그게 바로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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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눈을 가진 아일랜드
임진평 지음 / 위즈덤피플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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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Nation that keeps one eye on the past is wise.

A Nation that keeps two eyes on the past is blind.

벨파스트의 유서깊은 펍의 벽면에 쓰여 있던 글귀가 마음에 남았다.

두 눈을 모두 과거를 돌아보는 데 쓰는 나라나 민족은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지혜로운 나라(민족)는 한 눈으로는 과거를 돌아보되,

또 다른 한 눈은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 남겨두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아일랜드. 하면 무엇이 떠오르느냐고 물었을때 나는 쌩뚱맞게도 드라마 '아일랜드'라고 대답했다. 마이너 매니아 드라마였던 '아일랜드'라는 드라마는 사실 즐겨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나영이 연기한 중아라는 캐릭터는 그저 스쳐지나는 듯 본 것인데도 내 머릿속에 깊히 각인되어 버렸다.

아일랜드로 입양되어 양부모와 함께 즐겁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던 중아, 그러던 어느날 중아의 양오빠가 IRA의 한 사건에 연류되어 모든 가족이 처참하게 숨을 거둔다. 그렇게 상처받은채 심신이 피폐해진 상태로 한국으로 돌아온 중아. 내게 있어 아일랜드는 곧 중아였다.

 

영화감독을 꿈꾸며 준비한 영화가 개봉도 되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서 임진평을 아일랜드로 떠난다. 그도 나처럼 아일랜드는 '중아'의 나라이기도 했다. 아일랜드라는 조금은 생소하고 익숙치 않은 나라로 떠날 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드라마 '아일랜드'의 인연으로 만나게 된 '두번째 달'의 에스닉 퓨전밴드 '바드'와 함께였다. 언제 개봉하게 될지, 아니 과연 관객이 볼 수 있을지조차 희미해져버린 영화는 잊어버리고, 그는 '바드'와 함께 아일랜드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영국이면서도 영국이 아닌 아일랜드, 아일랜드 특유의 하늘아래로 '바드'와 임진평이 탄 비행기가 내려섰다. 영국안의 또다른 나라, 아일랜드임은 아직도 여전했지만 IRA는 이미 옛날 이야기가 되어있었다. 꽤나 많은 영화들에서 우리는 피튀기는 그들의 전쟁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무력싸움도 옛말이 되었고, 아일랜드 토박이말을 사용하는 사람보다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렇게 한차례 엄청난 몸살을 앓은 아일랜드는 이제 '음악의 나라'로 세상에 또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바드'는 음악페스티벌에 참여하기 위해 아일랜드를 찾았다. 그리고 임진평은 그러한 '바드'를 통해 음악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위해 아일랜드를 찾았다. 그래서 [두 개의 눈을 가진 아일랜드]에서 우리는 많은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 턱시도를 차려입고, 나비넥타이를 매고 무게를 잡아야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펍이건 거리이건 무대를 가리지않고 자신이 가진 예술적 재능을 펴는 그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술가다. 그리고 아일랜드 곳곳에서 '바드'와 임진평은 많은 예술가들을 만났다. 음악을 즐기고, 전통을 이어가고, 음악을 통해 가족간의 유대감을 돈독하게 만들어가는 아일랜드 사람들.. 그들은 IRA와 전쟁을 바라보는 눈과는 다른 아일랜드의 두번째 눈이었다.

 

과거를 바라보는 것을 잊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만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음악을 통해 자신들을 치유하며 그 것을 통해 변해갔다. 그동안 세계가 그들을 '전쟁'으로만 기억했다면, 이제부터는 '음악과 예술'로 기억하기를 바란다.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꼬마친구들 끼리,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들도 음악에 있어서는 언제나 진지하다. '바드'는 그러한 음악의 풍부한 토양안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나이많은 할아버지 밴드앞에서 세션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유서깊은 펍에서 쫓겨나기도 하며 아일랜드 전통음악에 가까워간다. 그리고 밴드가 아닌 솔리스트로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그들은 아일랜드에서 과거만 바라보며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보며 모험을 할 줄 아는 용기를 배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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