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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박스 세트 - 전2권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아마데우스]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물론 나는 절대절대!!! 모차르트가 그렇게 품위없는 기이한 웃음을 터뜨리지 않았을거라고 믿고 있지만..

그정도의 허구성만 빼면.. 그 영화는 참.. 너무나 뛰어난 천재와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범인의 괴로움을 너무나 잘 드러내고 있다.

'하늘이시여... 왜 살리에르를 낳으시고 또 모차르트를 낳으셨습니까!'라는 탄식에서 우리는 살리에르의 질투심과 그리고 괴로움을 너무나 잘 읽어낼 수 있다.

만약.. [바람의 화원]의 김홍도라면 신윤복의 작품을 보고 이런식의 탄식을 터뜨리지 않았을까?

 

세계에는 뛰어난 여러 화가들이 있지만 우리나라에도 못지 않은 화가들이 있다.

바로 신윤복과 김홍도.

김홍도는 하층민의 삶을 신선하고 생생한 필치로 그려내었고, 신윤복은 조선시대 화가치고는 대담하고 화려한 색채로 양반들과 기생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 것으로 유명하다.

연배의 차이는 있지만.. 김홍도와 신윤복은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살았고. 또 너무나 뛰어난 작품들을 남겼다.

그런데...

이 두사람은 서로를 그저 동료 화가정도로만 생각했을까?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처럼.. 사실은 그 둘도 서로에게 질투와 경외심등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가지진 않았을까?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은 여기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느정도의 사실을 기반으로 한 [팩션]의 경우 순수 픽션보다 쉽게쓰여졌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누군가에 의해 (그 누군가가 작가 그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인물의 성격과 나이 그리고 배경이 규정되어져 있는 상황에서 한편의 이야기를, 그것도 재미있게 끌고 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한 면에서 보았을때 [바람의 화원]은 매우 잘 쓰여진 팩션이다.

실제로 김홍도와 신윤복이 그린(혹은 그렸다고 추측되어지는) 작품들에 대한 세심한 학습과 두 인물이 살았던 그 시대의 정확한 파악, 인물에 전해지는 후일담과 학설등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다소 황당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의 구성도 '그렇구나'하고 자연스레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한 팩션의 측면이 아닌 픽션의 측면에서 보아도 [바람의 화원]은 이야기가 매우 잘 구성되어져 있다.

제자인 신윤복을 보는 스승 김홍도의 뿌듯함 그리고 그에 반하는 동료 화원으로서의 질투심 이라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매우 잘 표현되어있고, 거기에 더해 이 이야기는 단순한 두 인물의 일대기 뿐 아니라 약간의 미스테리 스릴러의 분위기까지 적절히 띄고 있다.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스승과 지기, 그리고 사라진 지기의 가족과 그의 작품.

이렇게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가 어진과 만나 조선왕조를 뒤흔들만한 거대한 스케일로 발전해 나가지만 그 스케일에 인물이나 소소한 사건들이 묻히기 보다는 오히려 더 생동감을 가지게 된다.

 

[바람의 화원]은 [다빈치 코드]이후 봇물 터지듯 쏟아진 팩션들의 범람 속에서 오랫만에 건진, 탄탄한 토대위에 쓰여진 작가의 상상력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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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성당 2
일데폰소 팔꼬네스 지음, 정창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겉으로보면 화려해보이기 그지없는 시대. 바로 서양의 중세이다.
수많은 문화와 예술작품이 이룩되었고 태양왕과 절대왕정이라는 철옹성에 둘러쌓인 이 시대는 정말로 감히 넘볼수 없는 위용을 뽐낸다.

하지만... 사실.. 그 속에는 그들을 지배했던 귀족과 왕족들보다 몇백갑절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있다.

백조가 우아하게 물위를 유영하기 위해서 물아래서 끊임없이 발버둥치는 두 발이 있듯이.

우리에게 새겨진 중세의 이미지에는 지배층이 되지 못한 보잘것없고 나약한 인간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확한 사실이다.

 

인간에게도 계급이 있고 그 계급에 따라서 누가 누군가를 지배하고 학대를 일삼아도 무방했던 그 시절에..

너무나도 많은 권력을 손아귀에 쥐게된 지배층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리만을 오만하게 뽐내었을뿐 정작 자기가 행해야할 의무에는 무감각해져 있었다.

누군가의 아내가 될 새신부를 빼앗아 강제롤 겁탈하면서 '초야권'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오히려 그 더러운 얼굴을 뻔뻔히 들고다니고,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잘보살피고 돌보기는 커녕 오히려 괴롭히고 서슴없이 죽음으로 몰아넣던 지배층에게 피지배층이 반감과 역겨움을 느끼겐 된 것은 당연할 것이다.

 

스페인 바로셀로나에 세워진 '바다의 성당'은 다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고귀한 성당을 만들때 오히려 낮고 평범한 외양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성당임을 표방하며 세워졌다.

[바다의 성당]의 작가 일데폰소 팔꼬네스는 이런 바다의 성당이 세워지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 가족의 일대기를 그려내고 있다.

자신이 먹고살기 부족함 없을정도의 땅을 가졌던 자유농이 귀족들의 싸움으로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늦은나이에 맞은 아내를 '초야권'이라는 이름아해 망가트려버리고, 버려진채 죽어가던 아들을 위해 귀족으로부터 도망쳐야했던...

광인 할아버지와 자식을 위해 목숨을 건 아버지 베르나뜨, 그리고 도망자에서 환전상으로 엄청난 신분상승을 하게된 아르나우.

이 삼대의 이야기는 정말 처절하다.

 

그냥 내버려두었다면 행복하게 살아갔을 것을...

귀족으로 인해 아버지 베르나뜨는 아내를 빼앗기고 도망자신세가 되고 아르나우는 자신의 사랑을 잃어버린다.

모든것이 다 그 말도안되게 부조리한 귀족들 탓이었다.

 

하지만 아르나우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끝없는 어둠으로 빠져들지 않는다.

그냥 처참한 삶에 순응하며 살아가지 않고 아버지의 처참한 죽음을 생생히 기억하며 마침내는 그들을 향해 침을 뱉고 조롱했으며 자신의 사랑마져 강탈해갔던 그들앞에서 진정한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리고 [바다의 성당]은 자신의 등에서 피를 내면서 돌을 옮기던 짐꾼 아르나우가 환전상이되고 남작이 되고 만인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묵묵히 바라보며 아르나우의 지지대가 되어준다.

[바다의 성당]은 우리가 알고있는 귀족들의 화려한 이야기가 아니라 못살고 더럽고 처참한 소외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들이 처해있던 불합리한 사회적 상황과 그들에게 지워진 엄청난 의무들.. 그리고 그 의무에 반하는 대접들...

읽으면서 이 이야기에 빠져들수 밖에 없는 것은 베르나뜨나 아르나우, 그리고 창녀가 되어버린 프란세스까에 이르기까지 나름 자신들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그 처절한 몸부림을 자세히 그련낸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바로 그런 극한 상황이 한 사람을 어떻게 투지에 불타오르게 하고 또 어떻게 그 사람이 변해가는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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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퍼 1 (보급판 문고본) - 순간 이동
스티븐 굴드 지음, 이은정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누구에게나 방랑벽, 혹은 역마살이 있다. 때문에 누구나 한번쯤은 순간이동을 꿈꿨을 것이다.
나도 한창 어린시절에 눈을 꼭 감았다 뜨면 다른 공간에 가있는 꿈을 꾸곤했다. 타임머신을 믿던 순수했던 어린시절을 훌쩍 뛰어넘어 어른이 되었고, 이제 더이상 타임머신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마음만은 변함이 없다.

아프리카? 그리스?터키?
나이가 들면서 세상에는 일본과 미국, 그리고 중국말고도 엄청나게 많은 나라가 있다는걸 알게 되었지만 동시에 여권과 비자, 그리고 비행기표라는 현실적인 조건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때문에 당장에라도 모든걸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고 싶나는 나에 꿈은 여전히 ing다. 계속해서 머릿속 마음속에서 꿈만 꾸지 현실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 어린시절의 꿈을, 현재의 나의 욕망을 멋지게 이루어낸 영상하나를 보았다.
어느 늦은밤과 새벽의 경계에서 도심의 심야극장에서 본 영화의 예고편.
마음먹은데로 자신이 가고싶은 곳을 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 [점퍼].
3편에 걸친 심야영화상영이 끝난 후에도 짧은 예고편은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리고 그 영화의 원작 [점퍼1-순간이동]과 [점퍼2-그리핀]이야기가 내손에 들어왔다.


어느날, 아버지의 폭력에 위협받던 데이비드는 자신에게 순간이동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맨날 술에 절어있고 취해있지 않으면 혁대를 휘두르며 자신을 위협하는 아버지와 그러한 아버지를 피해 이미 오래전에 집을 나간 어머니. 데이비드는 이렇게 답답하고 짜증나는 자기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순간이동능력을 이용한다.

어머니와의 마지막 추억이 있는 뉴욕에서 아버지에게서 훔쳐나온 돈으로 근근히 생활을 하던 데이비드는 길거리에서 퍽치기를 당해 자신의 모든재산을 도둑맞는다. 출생신고서, 학교졸업장등등..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데이비드가 넓고 황량한 뉴욕한복판에서 돈 한푼없이 살아가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서 데이비드는 나쁜 마음을 품게된다. 그건 바로 은행털이!!!

데이비드는 은행털이에 성공하고 그 돈으로 집을 얻고, 옷도 사고, 가짜 신분증을 얻는다. 그리고 기존의 자신-아버지에게 두드려맞고 항상 굶주리며 나약한-과는 전혀다른 삶을 살게된다.

예전이었으면 꿈도 못꿨을 각종 공연을 순간이동능력으로 돈한푼 들이지 않고 보러다니던 데이비드는 한 공연장에서 대학생 밀리를 만나게 된다. 연상의 밀리에게 자신이 그리워하던 모성애라도 느낀 것인지 데이비드는 밀리에게 빠져든다.
그리고 밀리 덕분에 예전에 집을 나간 어머니를 찾아볼 생각도 하게된다.

그냥 그렇게 어머니와 다시 만나고, 사랑하는 밀리와 만날수만 있다면 데이비드는 더이상 바랄 것이 없었을텐데, 십수년이 지나 겨우 만난 어머니의 급작스런 죽음-테러리스트에 의한 폭발사, 거기다 그 광경은 각종 매스컴을 타고 세계로 퍼져나간다.-으로 인해 큰 변화를 가져온다.

어머니를 죽게한 그 테러리스트를 자신의 손으로 잡아내 꼭 복수하리라!!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테러리스트에 대한 분노에 휩싸인 데이비드의 삶은 엄청난 속도로 변화한다.
경찰과 fbi에 쫓기고,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속에 내제되어있는 폭력성을 저주하면서 데이비드는 18세의 소년에서 온전한 성인으로 거듭난다.

[점퍼1-순간이동]을 읽는 내내 아버지, 경찰 혹은 트럭운전수에게 쫓기는 데이비드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점퍼1-순간이동]은 단순히 순간이동이라는 능력을 다룰줄 알게되고 그것을 즐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데이비드라는 어린영혼이 성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데이비드가 다른 가족폭력의 피해자를 돕고 가해자에게 응징을 가하고, 매스컴으로 전해지는 '이슬람교도는 테러리스트'라는 공식에서 벗어나 과연 테러리스트의 정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게된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의 아픔을 겪으면서 성장하게된다.

비록 영화에서처럼 내가 가지 못하는 곳을 획획 넘나다니며 온갖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무려, 그 비슷한 묘사 끄트머리도 안 보인다), 점퍼에는 한 소년이 성인으로서 성장하면서 겪는 좌절과 극복을 보여준다. 이것은 이국적인 풍경들을 보는 것 만큼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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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전
쓰카 고헤이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나는 치열하지 않은 대학시절을 보냈다.

민주주의를 외치며 매운 최루탄 연기속에 서본적도 없다. 나는 나름 평안한 시대에 대학을 다녔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때, 우리 엄마는 나에게 한가지 약속을 받아냈다.

학생운동이니 뭐니 그런거에는 눈한번 두지 않기로...

민주화운동을 하던 대학생이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가 며칠뒤 한강에 시체로 떠오르던, 그런시절을 겪은 엄마에게 대학에 가는 철없는 막내딸은 걱정의 대상이었다.

사실 대학운동이니, 최루탄이니 하는 것도 이젠 옛날의 일이 되어버렸다.

많은 학생들이 '등록금투쟁'이니 하는 것보다는 토익시험과 취업준비에 목을 맨다.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오가는 재미없고 뻔한 대학생활을 한 나에게 있어 "비룡전"의 참 의미를 이해한다는 건 처음부터 무리한 도전이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민주화항쟁마저도 먼 옛날 이야기로 들리는 내가, 한국도 아닌 일본의 70년대 전투공을 배경으로한, 그 것을 주요한 소재로 삼고있는 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은 선천적인 맹인에게 코끼리를 묘사해주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다.

 

혼돈...

"비룡전"은 앞서 말했듯이 70년대 일본학생운동을 다루고 있다.

지방 유지가 밖에서 낳아온, 하지만 공부는 잘해서 의학부에 수석으로 입학한 긴바야시. 그녀는 그저 전투공이고 뭐고 상관치 말고 처음 그 마음대로 의학공부에만 매진하면 되었다. 기한이 정해진 아버지의 매정한 후원과 원인모를 병을 앓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 이 두가지면 긴바야시가 공부에만 매진해야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긴바야시는 전투공을 선두에서 이끄는 가쓰라기에게 마음을 줘버렸고, 혼란하기 그지없는 70년대의 그 상황에 휘말려버렸다. 그리고 결국에는 학생운동을 이끄는 선두자가 되었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전투공을 저지하는 최일선의 기동대의 대장 야마자키와 위장으로 결혼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야마자키를 사랑하게된다.

 

70년대 일본의 그 상황처럼, "비룡전"의 인물들과 이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데 거리낌 없다. 거기에 재일한국인인 오니시마와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까지, 이야기에 좀처럼 숨을 쉴만한 틈이없다. 그냥 혼란한 그 시대를 느끼고 지켜보라는 작가의 의도일까?

 

"당신은 가장 사랑하는 남편에게 살해당하지만, 그 남편은 당신의 자식들에게 살해당할 것입니다. 그것이 여자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 사람은 다시 자식에게 살해당하는 그런 운명이 행복하다고? 운명처럼 "스테파노"라는 세례명을 받아들인 긴바야시는 그런 운명을 살아간다.

자신이 목숨처럼 지켜야할 대의와 야마자키를 사랑하는 여자로서의 감정 앞에서 긴바야시는 무력하다. 어느 한쪽을 강하게 선택하지 못하고 양쪽다 유지하려고 하는듯 하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운명에 쫓긴다.

 

그까짓게 뭐라고 목숨까지 거는거지?

70년대 일본의 수많은 청춘들을 고통스럽게, 혹은 열정 그 이상으로 미치게 만든 그 전투공의 목적인 무엇인지 나는 잘 감이 잡히지 않는다.

쓰카고헤이...

재일한국인, 한국계인 그가 70년대 그 치열한 시기를 경계자로 살아오면서 이 글을 남긴건 그 치열했던 젊음들을 추모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경계자이건 아니건은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일까?

 

나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나는 치열하지 않은 대학시절을 보냈다.

민주주의를 외치며 매운 최루탄 연기속에 서본적도 없다. 나는 나름 평안한 시대에 대학을 다녔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때, 우리 엄마는 나에게 한가지 약속을 받아냈다.

학생운동이니 뭐니 그런거에는 눈한번 두지 않기로...

민주화운동을 하던 대학생이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가 며칠뒤 한강에 시체로 떠오르던, 그런시절을 겪은 엄마에게 대학에 가는 철없는 막내딸은 걱정의 대상이었다.

사실 대학운동이니, 최루탄이니 하는 것도 이젠 옛날의 일이 되어버렸다.

많은 학생들이 '등록금투쟁'이니 하는 것보다는 토익시험과 취업준비에 목을 맨다.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오가는 재미없고 뻔한 대학생활을 한 나에게 있어 "비룡전"의 참 의미를 이해한다는 건 처음부터 무리한 도전이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민주화항쟁마저도 먼 옛날 이야기로 들리는 내가, 한국도 아닌 일본의 70년대 전투공을 배경으로한, 그 것을 주요한 소재로 삼고있는 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은 선천적인 맹인에게 코끼리를 묘사해주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다.

 

혼돈...

"비룡전"은 앞서 말했듯이 70년대 일본학생운동을 다루고 있다.

지방 유지가 밖에서 낳아온, 하지만 공부는 잘해서 의학부에 수석으로 입학한 긴바야시. 그녀는 그저 전투공이고 뭐고 상관치 말고 처음 그 마음대로 의학공부에만 매진하면 되었다. 기한이 정해진 아버지의 매정한 후원과 원인모를 병을 앓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 이 두가지면 긴바야시가 공부에만 매진해야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긴바야시는 전투공을 선두에서 이끄는 가쓰라기에게 마음을 줘버렸고, 혼란하기 그지없는 70년대의 그 상황에 휘말려버렸다. 그리고 결국에는 학생운동을 이끄는 선두자가 되었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전투공을 저지하는 최일선의 기동대의 대장 야마자키와 위장으로 결혼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야마자키를 사랑하게된다.

 

70년대 일본의 그 상황처럼, "비룡전"의 인물들과 이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데 거리낌 없다. 거기에 재일한국인인 오니시마와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까지, 이야기에 좀처럼 숨을 쉴만한 틈이없다. 그냥 혼란한 그 시대를 느끼고 지켜보라는 작가의 의도일까?

 

"당신은 가장 사랑하는 남편에게 살해당하지만, 그 남편은 당신의 자식들에게 살해당할 것입니다. 그것이 여자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 사람은 다시 자식에게 살해당하는 그런 운명이 행복하다고? 운명처럼 "스테파노"라는 세례명을 받아들인 긴바야시는 그런 운명을 살아간다.

자신이 목숨처럼 지켜야할 대의와 야마자키를 사랑하는 여자로서의 감정 앞에서 긴바야시는 무력하다. 어느 한쪽을 강하게 선택하지 못하고 양쪽다 유지하려고 하는듯 하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운명에 쫓긴다. 

그까짓게 뭐라고 목숨까지 거는거지?

70년대 일본의 수많은 청춘들을 고통스럽게, 혹은 열정 그 이상으로 미치게 만든 그 전투공의 목적인 무엇인지 나는 잘 감이 잡히지 않는다.

쓰카고헤이...

재일한국인, 한국계인 그가 70년대 그 치열한 시기를 경계자로 살아오면서 이 글을 남긴건 그 치열했던 젊음들을 추모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경계자이건 아니건은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일까?

 

나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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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에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6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hard-boiled


  • <달걀 등을> 단단하게 삶은;단단하게 풀칠한
  • 《구어》 무감각한;<태도·심정 등이> 정에 얽매이지 않는;딱딱한(tough);실속 차리는, 현실적인
  • 《미》 【문학】 비정한, 하드보일드의 《감상적인 데 없이 순객관적으로 표현하며 도덕적 비판을 가하지 않음》
      - novels of the hard-boiled school 하드보일드파의 소설

  •  《미·속어》 (소매 등에) 풀을 먹인

hard-boiled egg : 완숙으로 삶은계란, 《미·속어》비정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
 
     

완숙계란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책 한 권.

딱딱하지만, 여린 껍질을 벗기면 단단하게 익은 뽀얀 속살이 드러나는 계란.

하드보일드에그(HARDBOILED EGG)라는 제법 기발해 보이는 책과의 첫만남에서 내가 느낀 것은 '이건 뭐야?'하는 식의 호기심이었다.


노란 배경에 까만 계란모양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는 표지를 넘기자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것은 '맛있는 완숙계란 삶기'따위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책장너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바로 엉뚱하다 못해 실소가 터지는 탐정이야기였다.

 

15세의 어느날, 슌페이는 학교 도서관에서 일생일대의 큰 만남을 가지게된다.

명탐정 필립말로의 쿨한 수사담에 흠뻑 빠진 슌페이는 레이먼드 챈들러가 그려낸대로  필립말로와 같은 명탐정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하드보일드 그 자체인 필립말로를 꿈꾸는 슌페이이지만, 사실 현실 속에서 그의 전공은 '가출 애완동물 찾기' 80%, '불륜커플 뒷조사'가 20%정도인 심부름꾼 정도이다.

집나간 애완동물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과일 하나 사먹기도 수월한 형편을 아니지만, '나'는 꼴에 본 건 많아서 예쁘고 섹시한 여자 비서의 업무보조를 받으며 수사할 그 날을 꿈꾼다.  하지만 그의 비서모집 공고에 낙찰된 것은 다이너마이트 바디의 섹시미녀가 아닌 88세의 꼬부랑 할머니 아야다.

어떻게 해서든 탐정사무소에 출근하려고 하는 아야와 어떻게 해서는 아야를 해고시키고 섹시미녀를 비서로 들어앉히고 싶은 '나'.

매일 매일 투닥거리며, 집나간 동물을 찾아내서 집으로 돌려보낼 궁리를 하던 이 수상쩍은 탐정 커플에게 기다리던 큰 사건이 터진다.

 

실종을 가장해 유기된 시베리안 허스키 '꼬맹이'의 갑작스런 실종과 동시에 동물에게 물려죽은 사람이 발견되었다.  

과연 '꼬맹이'는  정말로 사람을 물어죽인 것일까?

아니면 야쿠자가 살해후 그 죄를 '꼬맹이'에게 뒤집어 씌운 것일까?

 

솔직히 이 소설을 추리소설로만 장르를 한정해 생각하고 읽는다면 하드보일드에그는 그다지 뛰어난 추리소설은 아니다. 연쇄살인이라던지, 국보급 보물이 없어졌다던지, 하다못해 살인예고장이 나온다던지 하는-이른바 읽는 이로 하여금 긴장을 유발케하는 요소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추리소설로서 [하드보일드에그]는 그다지 재미난 혹은 잘쓰여진 추리소설은 아니다.

 

[하드보일드에그]에서 '무엇이 사람을 왜 죽였는가?'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등장인물들이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고 현재는 필립말로와 같은 탐정이 되기위해 노력하는 슌페이,

의사아들을 두었다고 자랑하지만 사실은 사람이 그리운 독거노인이었던 아야,

전화를 걸을 곳이 유료 음성전화방(?) 뿐인 노숙자 겐,

외국에서 돌아와 학교에서 적응 하지 못하는 등교거부자,

그리고 버려진 동물에게 애정을 넘어 집착까지 하게 된 가츠유키 부부...

 

[하드보일드에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세상에서 소외된, 빛에서 벗어나 어둠쪽에 더 가까운 인물들이다. 하지만 자칫 어둡고 칙칙하게 되버릴 인물들을 개개인마다 나름의 특징과 개성을 주어서 밝고 즐거운 이야기로 만들어 냈다는 것이 [하드보일드에그]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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