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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 - 테오에세이
테오 글.사진 / 삼성출판사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여행, 왜 떠나는가
나도 가끔은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끈적하게 온몸으로 내려앉는 요즘과 같은 때에는 여행생각이 더 간절하다. 이 답답하고 지루한 공간을 벗어나 누구의 눈도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남들의 시선에 맞추어 고정되어 온 내 삶의 리듬과 결계를 깨부시는 그런 일탈을 해보고싶다. 하지만 진정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얼마되지 않는다. 해외로 떠나는 관광객의 숫자는 해마다 늘고 있지만, 관광객의 목적은 관광일뿐, 여행은 될 수 없다.
세상이 참 많이 바빠지고, 야멸차졌다. 때문일까? 하나 둘 씩..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여행을 떠나는 누군가에게 물었다. "왜. 여행을 떠나시나요?". 나에게 돌아온 답은 너무나 당연해서 지루하고, 멋도 없는 말 하나였다. "나를 찾기 위해서요."
너무 진부하고 지루한, 단물이 다빠져버린 껌같은 그말이 사실은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찾기위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반기를 든 채, 현재의 자신에서 멀리 떨어져 보기로 용기를 내는 사람. [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의 저자 , 테오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누구나 가슴속에 "역마살"하나쯤은 있는 거에요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은 멋지게 떠나고 싶어한다. 방구들을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보다 더 좋아하는 나도 그렇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속에 '역마살'이라는 '살'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토정비결에 나타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긴 하지만, 이건 그냥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실행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당신의 소금사막에..]의 저자 테오는 인생에 '역마살'이 아주 또렷히 새겨져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아프리카에 이어, 중국과 일본은 알아도 한국은 모르는 그 미지의 공간, 볼리비아로 떠났으니 말이다.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뿌리라는 그것이 희미해지는 공간으로 떠나 주변을 둘러보고, 깨달음을 얻고, 타인에게서 가르침을 얻은 그는 자신의 역마살을 세상에 자랑스레 내보이는 듯 하다.
깨달음으로 다가온 사람들
테오는 볼리비아로 가서 많은 인생들과 조우했다. 과자와 껌을 팔며, 다음에도 자기를 찾아와 물건을 사달라던 할머니, 닌텐도게임기는 커녕 컴퓨터라는 물건도 한번 보지 못하고 양만 지키며 살아야하는 여자아이, 나란히 장에서 물건을 팔던 꼬마 자매.
세속의 눈으로 그들의 삶은 지루하고 따분하며, 힘겹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테오는 그들과 더듬거리는 대화를 나누었고, 그 대화를 통해 세속의 눈이 아닌, 그들의 눈으로 그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꼭 오늘이 아니어도 좋다. 꼭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만을 위한 것보다 '우리'를 위한 것이 더욱 좋다... 테오가 그들에게서 배운 것들은 우리도 익히 들어 알고있지만, 바쁘게 내 욕심을 챙기며 사느라 잊어버린 것들이었다.
비가 내린 소금사막, 당신은 무엇을 만났나요?
들어가기 어렵다는 볼리비아 국경에서 한참을 지나, 테오는 누런 모래 대신에 하얀 소금이 눈부시게 펼쳐져 있는 소금사막에 도착한다.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 비에 맞은 소금이 녹아내려 하늘이 지상으로 연장되는 장관이 펼쳐지는 그곳에서, 테오는 누구도 묵어가지 않으려한다는 짠맛나는 소금호텔에서 일박을 한다.
우르르 다들 몰려와서 시끌벅쩍 떠들며 연신 사진을 찍어대다가 시간이 되면 우르르 다들 떠나버리는 유우니 사막. 그곳을 지키는 호텔 지배인과 욕심을 모르는 소금장수.
다른 것에는 상관없이, 자신과 자연이 정한 법칙과 임무에 충실한 그들과 함께보낸 그 하루. 그 하루는 아마도 테오에게 있어서 '정화'를 의미할 것이다. 비단 깨끗한 공기에서 하룻밤 잠을 자고 일어났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그런 싸구려 '정화'가 아닌, 타인을 통해 자신을 보고 깨달음을 얻는, 혹은 세속에 찌는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 온전히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었던 그런 영혼의 '정화'말이다.
아마도 당신이, 혹은 내가 그 곳에 가게된다면 무엇을 만날지 모르겠다. 비가 오기 전과 후가 너무나 다른 유우니의 모습처럼, 우리가 만날 그 무언가도 모습을 달리하여 우리에게 다가올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