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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온다는 소리도 없이 조용히 세상에 나온 하루키의 에세이 [비밀의 숲]. 전에도 몇 번이나 밝혔다시피 나는 하루키의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 그의 [먼 북소리]는 초기의 그 지루함에도 불구하고 그 지루함을 견디며 몇 번이나 읽어낼 정도로 좋아한다. 때문에 2008년이 시작하면서 세운 계획 중에는 하루키의 에세이만 모두 all collect 하겠다는 계획도 있다. 그래서 그 이른바 [하루키 에세이 ALL COLLECT]이라는 프렌차이즈 하에 새롭게 구입한 것이 바로 하루키의 [비밀의 숲] 이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시리즈]와 [먼 북소리], 그리고 [하루키의 여행법]에 이르기까지 나의 기대를 한번도 저버리지 않던 하루키가 2007년 말에 와선 나에게 사정없이 뒤통수를 갈겼다. 뭐랄까? 믿었던 옆집 총각이 내일모레 장가간다고 청첩장을 보내온 느낌이랄까?
하루키의 [비밀의 숲]은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하던 글을 모아 책으로 내던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과 [THE SCRAP]을 비롯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 그 점 때문에 실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알지 못하는 그의 글을 볼 수 있어서 오히려 즐겁다.
그럼 혹시 그가 쓰는 에세이들의 상당수 주제가 겹쳐있기 때문은 아니냐고?
솔직히 [비밀의 숲]은 그가 이전에 낸 수필집과 겹치는 주제들이 상당부분 있다. 뮤즈라는 고양이의 기묘한 출산(하루키의 손을 꼬옥 잡고 응차! 하고 새끼를 낳는..)이라던가 알몸으로 가사일을 하는 가정주부에 관한 것이라던가 하루키의 수필집을 몇 권 읽어본 사람이라면 단박에 ‘아하! 맞다!’하고 무릎을 칠 주제들이 이번에도 또 수록되었다. 하지만 하루키 자신이 성의 없어 그런 것이 아니라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아 중복해서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고 먼저 선수를 쳐 양해를 구했으니 그도 문제는 아니다.
이번 [비밀의 숲]을 읽으면서 [도쿄기담집]만큼의 실망을 느꼈던 것은 나도 자세히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왠지 그도 이제 한 풀 꺾이는 건가 싶다. [비밀의 숲]에 수록된 글들이 아사히 신문에 언제 기고되었던 글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이전에 아사히 신문에 글을 기고 했던 게 그로부터 10년 전이라니 아무튼 나름 근래에 쓰인 글일 것만은 틀림이 없다.
하루키의 에세이 신작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도쿄기담집’을 읽었을 때 느꼈던 씁쓸한 감정을 다시 느끼다니 그다지 기분이 좋지가 않다.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다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