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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아니 조금 범위를 좁혀서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모든사람들이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식단으로 식사를 해야한다고 상상해보자.
의식주 모든 것에서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고, 또 세상에는 규칙과 명령 그리고 그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만이 있을 뿐이라면???
아마도 정말 살기 싫은 삶이지 않을까?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가 나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자존감을 가지고 작게는 의상이나 식단부터 크게는 진로등의 인생의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에서 두려움과기대감등의 복잡다단한 하나의 즐거움이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이 내가 아닌 다른사람에 의해 결정된다면... 과연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어떠한 의미가 있을지? 아마도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삶은 무의미한 삶이라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로이스 로이가 지어낸 <기억전달자>에 나오는, 12살 기념일을 앞두고 있는 소년 조너스의 마을이 이러한 곳이다.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 평화로워 보이는 조너스의 마을. 하지만 그 곳에는 소수의 특별한 몇몇사람들이 모든일-자전거를 타야할 적정한 나이를 결정하는 것 마저도!-에 결정을 내리고 그외의 다수는 그 결정과 그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규칙과 명령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고 가끔씩 옷집마다 설치되어있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아나운서의 지시에 따르면서 조너스는 동생과 엄마, 아빠와 함께 11살의 마지막을 살아가고 있다.
매년 12월이면 온 동네사람들이 모여 어린아이들이 나이를 먹고 성장하는 것을 축하하는 기념식이 있다. 그 중에서 12살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기념식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기념하는 기념식이기 때문이다. 12살이 된다는 것은 조너스가 사는 세상에서는 성인이 된것과 다름이 없다. 12살이 된다는 것은 더이상 '노는 것'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고 준비하는 과정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것이다.
조너스는 이 날 수년만에 처음으로 '기억보유자'의 임무를 맡게된다. '기억보유자'는 원로중의 원로이고,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막대한 권력을 가진 인물이다. 여러 원로와 선생님들로부터 태어나서 평생을 관찰당하면서 그가 가진 특기와 기질을 고려해 결정된 그의 임무. 그의 임무는 그야말로 막중하고 중요한 임무이다.
언제나 혼자서 살면서 묵묵히 일만하는 '기억보유자'의 제자로 들어간 조너스는 스승의 전수를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가 아니라 오래전의 '과거'에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기쁘고 즐거운 기억뿐 아니라 고통과 기아마저도 혼자서 감내해야하는 '기억보유자'의 임무를 배우게 된다.
왜 누군가가 혼자서 다른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짊어지고 외로이(자의라 할 수도.. 타의라 할 수 도 없는 이별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왜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간섭하며, 왜 아무도 그런 부조리함에 대응하지 않고 순응하는 것일까?
조너스는 이러한 사회에 대한 불합리함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어린나이지만 이미 어린아이가 아닌 조너스는 그러한 사회에 한번 힘껏 맞서보기로 한다.
이 황당하면서도 일견 '어쩌면...'이라는 생각을 들게하는 이야기는 곰이나 코끼리가 상상의 동물이 되어버릴 만큼 아주 오래된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조지오웰이 <1984>를 쓸때, 공산주의가 득세한 미래를 그렸던 것 처럼 로이스 로리 또한 조지오웰과 비슷한 상황설정을 해놓았다.
태어나서 평생을 절대적 권력을 가진 몇몇의 관찰을 빙자한 감시를 당하고, 자연이 정해놓은 수명을 다 살지 않고 '임무해제'를 당하고, 매년 하루를 정해 같은해에 태어난 아이들이 같이 한 살씩 나이를 먹을 만큼 너무나도! 평등한 사회!!!!
어느 측면에서는 공산+사회주의가 과잉된 측면이 없지 않아 있긴하지만, <기억전달자>와 <1984>가 닮은 꼴이라는 사실을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로이스 로리는 이책의 서문에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에게 이 책을 드립니다."라고 썼다.
이서문을 통해 <기억전달자>가 조지오웰의 <1984>와 너무나 닮은 꼴이긴 하지만, 비단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어두운면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는 것은 바로 이렇게 타인에 의해 지배받는 삶을 통해 자신의 의지로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큰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또 그 행위를 얼마나 고심과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내려야 하는 것인지 아이들에게 알려주려하였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