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윤정 옮김, 무라카미 요오코 사진 / 문학사상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번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여행의 테마는 위스키였다.

스코틀랜드의 아일레이 섬에서 그 유명한 싱글 몰트 위스키를 실컷 마신 다음,

아일랜드에 가서 도시와 시골 마을을 여기저기 둘러보며 아이리시 위스키를 음미할 작정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 모두 술꾼들이지만) 거 참 멋진 생각이라며 칭찬해주었다.

 


 

야구장에서 멋지게 날아가는 야구공을 보고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는 독특한 이력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난 그의 소설보다는 그의 에세이를 더, 더, 더 많이 좋아한다. 그가 쓴 [먼 북소리]는 내가 제일 좋아하며, 일년에도 몇 번이나 다시 꺼내 읽어보는 책 중 하나이다.

내가 그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것은? 글쎄 그의 에세이에서는 적당한 삶의 냄새가 묻어나면서도,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그의 취향, 세세한 것들까지 드러나서 좋아한다.

 

내가 그동안 읽은 몇 권의 에세이를 통해 알아낸 그의 취향 몇 가지.. 그는 재즈음악을 좋아하고, 쉐이빙 폼을 좋아한다. 그리고 당당히 담을 넘을 수 있는 여고생을 지지하며, 자신의 옆에서 책을 읽어 줄 목소리 좋고 얼굴까지 예쁜 여자비서가 있었으면 한다. 만년 꼴지여도 야쿠르트 스왈로우즈의 왕팬이며, 그의 작품속에는 유독 '노보루'라는 이름의 남자 캐릭터가 자주 등장한다. 이렇게 마이너한 것 말고, 대중적으로 알려진 그의 취향 몇 가지는 바로 그가 와인을 매우 좋아하고 재즈를 좋아하며, 생긴 것과는 어울리지 않게 음악회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가 음악을 즐겨듣고, 와인을 좋아하며 즐길 수 있었던 데에는 그가 매우 성공한 작가라는 사실이 아주 중요하다. [노르웨이의 숲]으로 일약 대 히트를 친 후 그는 정말 글쓰는 모든 이들이 바라는 '돈 걱정 하지않고 글만 쓸 수 있는' 그런 삶을 산다. [위스키 성지여행]도 사실 그가 성공한, 많은 독자층을 가진 작가라는 점 때문에 쓰여질 수 있었던 책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견학 또는 여행을 다니며 글을 많이 썼다. 한국과는 달리 잡지 문화가 많은 발전을 이룬 일본에서 그는 집에서 자신의 작품만 쓰는 것과는 별도로 꽤나 다양한 종류의 잡지에 글을 기고한다. 우동을 테마로 일본 곳곳을 돌아다니며 글을 쓰기도 했고, 공장을 테마로 여러 공장을 다니며 글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엔, 위스키다.

 

이번 책은 하루키 혼자만의 책은 아니다. 그 동안 그의 에세이 곳곳에서 '범상치 않을'것 같은 분위기를 풍겨주시던 그의 마나님께서 찍은 사진이 그의 글과 짝을 이루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졌다. 습하고 바람이 많이 불고, 때로는 우중충하기까지 한 영국의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무라카미 부부는 이런 곳에 오직 '위스키'를 마음껏, 종류껏 음미하고자는 세부적 목표를 가지고 여행의 첫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위스키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최초로 주조되었다. 스코틀랜드를 이루는 많은 섬 중 하나인 아일레이는 그 중에서도 '위스키의 성지'라 부를만큼 뛰어나고 맛이 좋은 위스키를 생산한다. 수천종에 이르는 블랜딩 스카치 위스키 중 아일레이의 싱글몰트를 배합하지 않은 것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아일레이 위스키의 세계에는 각자의 개성이 존재하며, 존중된다.

 

 

아일레이의 위스키는 곳 아일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초내음이 물씬나는 바닷바람이 이탄에도 수풀에도 깊숙히 베어든 아일레이. 아일레이의 위스키에서는 그 갯내음이 물씬 풍겨난다. 그리고 그 맛과 향은 그 출신 증류소에 따라 다르다. 증류소를 지키며 자신의 고유한 맛을,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들은 결국에 자신들의 퍼스낼리티가 뛰어난 위스키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퍼브란 꽤 심오한 곳이다. 말하자면, '율리시즈'적으로 심오하다.

비유적으로, 우회적으로, 단편적으로, 종합적으로,

역설적으로, 호응적으로, 상호참조적으로, 켈트적으로, 전세계적으로 심오하다.

 

이렇게 앉으나 서나 위스키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퍼브란 아주 중요한 곳이다. 탄산수도 아닌 그냥 수돗물 약간에 위스키를 섞어 들이키며 하루의 노곤한을 잊을 수 있는 곳이 바로 퍼브이며, 말 한 마디 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며 교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퍼브이다.

 

개인의 사생활을 지켜줄 줄 아는 그 곳을 떠나올때, 무라카미 부부가 그 여행의 짧음을 아쉬워했던 이유는. 처음에 꿈꾸었던 대로 그 많은 위스키를 마음껏 음미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보는 그 자체가 하나의 풍경이 되고 의미가 되는 그 곳에서 만났던 그 기분좋은 나른함과 그 갯내음 물씬 풍기는 공기탓이 아니었을까?

 

실제로도 무라카미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도쿄의 품격있는 바에서 고가의 위스키를 마실때도, 아일레이와 아일랜드의 그 풍경이 떠오른다고 했다. 위스키가 품고있는 맛과 향 그 이상의 것을 무라카미는 짧은 여행을 통해 일본으로 얻어온 것이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빈 손으로 돌아와도 마음에는 무언가를 한 가득 가져와 때때로 꺼내어 추억할 수 있게하는 것, 돈의 가치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것 그게 바로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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