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전문가적인 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도화지 속에 찍어 놓은 점처럼 느껴지는 그림에 담긴 절대적인 지식이 없다면 그 그림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석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대단하기는 하다만 내 눈에는 그냥 점으로만 보일뿐이다. 그리하여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란 생각이 든다. 혼란하고 모호한 의미란 결국 '암호'일 뿐이다. 암호에는 보통 해법이 있지만, 현대회화에는 객관적 해법이 없다. 결국 현대회화가 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과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것이리라. 제들마이어는 이것이 "인간 행위의 근본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본다.(21쪽) 이 글을 읽는 순간 무릎을 탁 쳤다. 정말 백퍼센트 공감이 가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어떤 책에서는 현대예술에 비아냥거림을 유머로 승화시킨 경우도 있었는데 현대에는 너도 나도 다 예술가가 될 수 있단다. 매우 개인적인 취향에 의해서 말이다. 누군가는 이렇게도 말했다고 한다. 저런 그림 나도 그릴 수 있다고 말이다. 평면에서 순수를 찾고 그 모든것을 배제해야 한다면 그냥 하얀 도화지로 있어야 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에 대한 고뇌나 시도가 예술을 향하는 길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말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싶지만 자신이 직접 생각하고 그려보고 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였다. 초등학교 시절에 광주 비엔날레를 갔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실험적이고 충격적인 작품도 몇몇 있었지만 그때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인 작품들이 많았다. 그때는 소풍을 차를 타고 나가기만 하면 행복했던 단거리 시절이라서 마냥 좋았었다. 선생님이 내 가정통신표에 적어 놓았던 것처럼 의욕은 넘치나 .... 이였던 것처럼 비엔날레의 시도는 좋았으나 이래저래 설명이 나온다던 헤드셋은 망가지고 알수 없는 영상이 너울지듯이 나오는게 엽기적으로 느껴졌었다. '그래 예술의 세계를 초등학생이 이해하기에 힘든거야.' 그것이 현재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그 그림을 알고 가도 모를 것 같은 그림들이 꽤 많다. 여러 양식들을 살펴보며 재미있기도 하며 그 당시의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 없듯이 예술의 변화하는 흐름도 잡을 수 없는듯하다. 초현실 주의의 미술을 바라보면 왠지 괴기스럽다고 해야 할까, 극단적으로 치닫는 듯한 느낌을 준다. 초현실주의는 오브제를 조각과 대등한 위치에 올려 놓았고, 그로써 현대조각은 오브제를 기초로 자신을 재규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회화가 전통적 회화의 규약을 파괴하려 한 것처럼, 오브제가 전통적 조각의 관념을 뒤흔들어놓았던 것이다.(243쪽) 새로운것이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것에 금방 질려버리기도 한다. 공간과 시간은 삶을 건설할 유일한 형식이다. 따라서 예술은 구축되어야 한다. 우주가 자신을 구축하듯이, 엔지니어가 교량을 구축하듯이, 수학자가 궤도 공식을 구축하듯이, 우리는 작품을 구축한다.(269쪽) 회화가 평면을 벗어나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핸드폰은 4G로 뛰는데 예술도 질 수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