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태워봐.
기름을 바르고 내 몸에 불 붙여봐.
마녀처럼 날 화형시켜 봐.
쓰레기 봉지로 날 포장해서 소각로 속으로 집어던져 봐.
나는 다이옥신이 되어 너의 폐 속으로 들어간다.
내 얼굴을 면도칼로 가볍게 긋고 스며 나오는 피를 빨아봐.
고양이처럼 그 맛을 즐겨봐.
그래서 나는 피투성이가 되고 싶어.
내 안에 있는 나는 무엇인지, 어떤 추악한 것인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채로 이 세상을 떠나가게 되는 것이 두려워.
나는 마지막에 비명을 지르면서 눈물을 흘리리라.

나는 살아온 지금까지도 슬픔이란 무엇인가 잘 알 수가 없다.
강렬하고 선명하게 내 가슴에 찾아오는 사나운 폭도 같은 슬픔.
그런 것이 무엇일까.
우리의 모든 일상과 권태와 반복과 연극을 투과해서
스며 들어오는 슬픔이라는 것이
살을 찢는 고통이나 발바닥에 박히는 유리조각처럼
정말로 존재하는 어떤 것인가.

-배수아 [철수] 중에서...

200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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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07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이군요. 담아가겠습니다~ (웃음)
 

당신의 창의력은 몇 점일까?
 
 
  창의성 : 70 점    폐쇄성 : 14 점 

호기심 많은 만능엔터테이너 유형.  
 
 
 
 
 당신은 선천적으로 기발하고 창의적이다. 그러면서도 융통성도 있고 사람도 잘 사귄다. 비록 오래 가는 친구는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나, 오래 가는 친구 많은데/ 히히히)), 외로워서 힘들거나 하는 일은 별로 없다. 당신이 친구를 사귀는 이유는 그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음속에서는 내가 친구들을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싶고,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죄책감도 느낄지 모른다. 당신이 친구를 이용하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야. 쳇. -_-;)) 하지만 죄책감을 느낄 것까진 없다. 어차피 당신은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이해 받기는 불가능한 존재이니까. 
 
 
 
 
 
 
 
 
 보통 기발한 사람들은 너무 기발해서 남들과 소통을 못한다. 하지만 당신에겐 융통성도 있다. 남들에게 당신의 생각을 보여주고 소통하기를 좋아한다. 물론 늘 기대한 결과를 얻지는 못하지만 당신은 포기하지 않는다. 언젠가, 누군가는, 당신의 생각을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다행히도 당신에겐 남들의 몰이해를 받아넘길만한 배짱이 있다. 그 적극성과 융통성은 언제고 당신에게 도움을 준다. 


 
 
  
 
 
 남들에게 거만하다는 소리를 듣기 쉽다. 기발한 생각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면 재앙이 된다. 사람들을 만나느라 당신이 하는 일을 게을리할 가능성도 있다. 
 
 
 당신은 언제나 남들에게 자신의 독특함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미움을 받기도 쉽다. 잊지 말라. 당신은 기본적으로 비정상이다. 물론 당신이 이해 받지 못하는 것은 당신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문제다. 당신이 보기에 다른 사람들은 왜 그런 평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불쌍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당신의 그런 생각이 드러날 때, 사람들은 당신을 단순히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싫어하기 시작한다. 당신은 주변 사람들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당신의 독특함은 당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때에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끈기이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하라.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 당신밖에는 그 일을 할 사람이 없다. ((<- 이건 뭐냐; 그럴 리가 없잖아 -_-;))


 
 
   백남준
 
1932년 생. 전세계 가장 영향력 있는 현존 예술가 중 한명. 스스로 급진적인 비주류, 반기득권, 반서양적 예술가의 길을 택함. 그의 예술적 시도는 미국과 유럽 미술계에서 엄청난 논란과 찬사를 불러일으키며 세계 미술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국내 손꼽히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전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지만 항상 금전적인 곤란을 겪을 정도로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술 활동에 투자함. 지나치게 과격하고 급진적인 예술 활동을 했음에도 다수의 지지를 받았던 행복한 예술가였음.  
 
 
 
  이상(李箱)
 
1910-1937, 본명 김해경. 겉보기에 서울의 중인 계층 출신에 일제 강점기에 고등공업 교육을 받아 총독부 기사 노릇을 한 평범한 조선 청년. 그 안으로는 폐병으로 속이 썩어 들어가는, 평생을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던 기이한 작가였음. 그는 이런 공포와 대적하며 한국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시와 소설을 창작함. 전대미문의 강렬한 창의력에 놀기 좋아하는 성격으로 많은 사람들과 어울렸으나, 부족한 생활력과 처세술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았음.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스페인이 낳은 전세계 현대 미술의 대명사. 미술 교육자의 아들로 태어난 피카소는 어린 시절 학업 성취도가 뛰어난 수재였으나 선천적으로 천재성을 보인 화가는 아니었음. 피카소는 다른 사람의 창의력을 답습하는데 뛰어난 재주를 보인 화가로 주변의 모든 미술 테크닉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데 능했음. 그는 자신만의 독창성을 개발하기보다는 유행사조를 따르고 발전시키는데 더 관심이 많았음. 세계 미술사에 손꼽힐 정도의 다작을 한 화가로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스테미너를 자랑했음. 작품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스타일로, 그림 그리는 것이 성행위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열정적이었으며, 사람들(특히 여성들)로부터 엄청난 사랑과 존경을 받은 축복 받은 예술인. 
 

 
  로드 바이런(George Gordon, Lord Byron)
 
1788-1824. 18-19세기 유럽의 낭만주의 사조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영국 시인. "돈 주앙" "맨프레드"와 같은 걸작을 남긴 바이런은 작품 속에서 우울하지만 열정적이고, 죄책감에 꺾이지 않는 강철 같은 의지의 방랑자를 그림. 초월적인 자의식과 의지를 소유한 이 "바이런 스타일의 영웅"은 낭만주의 시대의 가장 "모던(modern)"한 인물로, 이후 괴테, 발자크, 스탕달, 푸쉬킨, 도스토예프스키, 멜빌, 들라크르와, 베토벤, 베를리오즈 등 수많은 서구 예술가들에게 직접적인 영감을 줌. 바이런은 발이 안으로 굽은 기형으로 태어나 평생을 절름발이로 지내야 했음. 이런 장애에도 불구하고 바이런은 수영, 복싱, 펜싱, 승마 등 모든 종류의 스포츠의 섭렵했으며, 성적으로도 매우 조숙했음.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 작가였으며 보기 드물게 잘 생긴 외모를 가진 바이런은 주변에 여자가 끊이질 않았으며, 이로 인한 추문 또한 끊이질 않았음. 
 
 
  쇤베르크(Arnold Schonberg)
 
1874-1951. 오스트리아 출신의 현대 음악 개척자. 유태인인 그는 2차 대전 당시 미국으로 망명, 음악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며 왕성한 활동을 한다. 그는 독학으로 음악을 배웠으며, 우리에게 불협화음으로 유명한 현대 관현악의 기초를 세운 인물. "아무도 그런 인간이 되려 하지 않아 내가 그런 사람이 됐다"는 이 기이하고 창조적인 음악가는 기존 서양 7음계로 만들 수 있는 음악에는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을 인식, 자신이 직접 새로운 음계를 창조한다. (그는 당시 7음계에 의존하던 작곡법으로부터 과감히 탈피, 12음에 의한 작곡법을 완성시킴.) 그는 음악뿐만 아니라 20세기 미술계 새로운 사조의 탄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심지어 악보용 타이프라이터, 안과용 기구, 버스 전용차선 등 쓸 만한 발명을 하는데도 재능을 보였다. 
 

 
  빌라 로보스(Villa-Lobos)
 
1887-1959. [브라질 풍의 바흐(Bachiana Brasileira)]로 유명한 브라질의 민족 음악가. 거의 독자적인 힘으로 브라질의 음악을 세계적인 음악으로 키워낸 인물. 서양의 전통 작곡법을 배우면서도 그들의 양식과 스타일에 영향 받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그는 거의 음악을 독학으로 공부했으며, 가장 "브라질스러운"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일념 하에 브라질 방방곡곡을 답사해 세계적인 브라질 민족 음악들을 탄생시킨다. 로보스는 독단적이고 직관적인 성품으로 주변인들과 마찰이 많았음. 하지만 극단적으로 창의적이고 개혁적인 인물로, 작곡을 할 때 오선지 대신 그래프 차트를 이용하는 등 기상천외한 작곡법을 선보였으며, 브라질의 음악 교육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마이클 크라이튼(Michael Crichton)
 
1942년 생. 미국 태생의 의사, 영화감독, 영화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 사업가, 소설가, TV 프로듀서. 20세기 가장 천재적인 사이언스 픽션 작가로 불리는 마이클 크라이튼은 주라기 공원, 콩고, 타임라인, 폭로(Disclosure), 라이징 선(Rising Sun) 등의 베스트셀러 소설뿐 아니라, 트위스터(Twister) 같은 영화 시나리오, ER 같은 TV 드라마를 창작하기도 했음. 크라이튼은 한해 최고의 도서(주라기 공원), 영화(주라기 공원), TV 프로그램(ER)을 모두 석권해 금세기 최고의 대중 작가로 기록됨. 잘생긴 외모에 키가 190cm가 넘는 우수한 신체조건으로 고등학교 때 스타 농구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으며, 하바드 인류학과를 수석 졸업할 정도로 학업 성적도 우수했음. 이후 하바드 의대를 다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으나, 이런 학벌의 이점을 모두 버린 채 전업 작가의 길로 뛰어듦.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관심이 많아 직접 소프트웨어 제작 회사를 운영하는 등,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이 작가는 뛰어난 문학적 감수성으로 평론가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음. 
 

*다른 분 서재에서 발견하고 테스트 한 후, 그림은 빼고 그냥 글만 복사해서 붙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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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밑줄 긋기 등록 완료★

 

 

 

 

*리틀 바이 리틀

밑줄 긋기 완료, 리뷰 준비 중▷

 

 

 

 

*나의 피투성이 연인

 

 

 

 

*입술

독서 중▶

 

*글쓰기 전략.
- 2번째 읽고, 밑줄 긋기를 하고 있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 많다고 해도, 사례나 뒤집는 글(;) 소개가 있어 나름 좋다고 생각하며 읽는 중.

 

 

*기록실로의 여행.

- 적립금으로 구입했던 책. 드문드문 밑줄 긋기를 하고 있다. 얼른 읽고, 이미 읽었던(오래전이라 밑줄 긋기랑 리뷰 등록을 하지 않음)그의 다른 작품들을 손에 쥐어야지 다짐 중.

 

*7월 24일 거리.
- 퍼레이드가 국내에 소개되었을 때, 친구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해주었다. 내 문장을 보는 것 같았단다. (가네시로 카즈키 씨와 더불어)

그 동안 ‘캐러멜 팝콘’이라던가, ‘나가사키’에는 그리 끌리지 않아 요즈음 그의 소설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책꽂이 정리를 하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이것을 빼어들었다. 그 후에, ‘일요일들’과 ‘파크라이프’ ‘열대어’를 차례로 잡을 계획이다.

+밑줄 그을 표현은 발견되지 않았다.
굉장히 쭉쭉 나간다.
개인적으로, 주인공의 성격과 글의 표면적인 느낌은
미묘하게 어긋났다는 생각을 했다.
어째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까.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 신간 코너에서, ‘상속’ 이후로, 그녀의 오랜만의 단편집이라 방방 뛰고 싶었던 것을 간신히 참았다. 오디오북 이벤트도 하고 있어 더욱 끌렸다. 당장 사고 싶었지만, 잠시 미뤄두었다. 그러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헉, 하고 놀라서는, 뒷걸음질 치며 책 사기를 포기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그럼에도 평을 올리는 여러분들의 글을 보았고, 무지무지 끌리는 바람에 아무래도 읽어야겠지? 읽고 싶다! 생각이 들어 며칠 전 구입.^^

 

*외면
- 이미 리뷰를 올린 단편집이지만, 무작정 밑줄 긋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덜컥 집어 들었던. 두 번째 단편을 읽는 중. 번뜩이는 재치가 담긴 표현을 찾았고, 기록해두었다.


 

*인생 베스트 텐
- 그녀의 작품을 ‘대안의 그녀’ 제외하고는(-_-), 여럿 읽었고, 많이 좋아함에도 꼼꼼히 살펴보니까 리뷰를 하나도 올리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다. 이런. 그래서 두세 번째 읽으며 밑줄 긋기와 리뷰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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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
이명랑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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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0505)

허리춤에 칼을 꽂은 조련사들이 쓰레빠를 끌고 다니듯 여기저기로 코끼리들을 끌고 다녔다. 코끼리들의 배설물 위로 또 다른 배설물처럼 쏟아져 내리는 이국의 언어와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어진의 시선은 어쩔 수 없이 한 사내에게 붙박여 있었다.
… 최소한 자신의 화려했던 전성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만은 ‘몰락’이라고 해도 될 만큼 초라하게 변해버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을 테니까.-(13쪽)쪽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지. 이해 못 하는 걸 무서워하는 인간과 이해 못 하는 걸 찾고 만들려 하는 인간."-(23쪽)쪽

일 달러를 벌려다가 뭔지도 모르는 병에 걸려 죽어가는 소녀들, 그 소녀들의 몸과 그 소녀들의 연인과 그 연인의 아비와 어미와, 헐벗었으나 수천 년 동안 힘들게 지켜온 그네들만의 삶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리는 일 달러에 대해 다른 사람 아닌 타이 한이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진은 그 순간만큼은 타이 한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이 약기운이 아니라 부당함에 대한 분노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26쪽)쪽

마약에 취하거나 돈에 집착하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결국은 모두, 더 불행해지지 않으려는 안간힘일 뿐이다.-(33쪽)쪽

그러나 들썩이는 어깨와 토해내듯 ‘한국’이라는 말을 뱉어놓고는 그 말이 불러일으킨 파문에 휩싸여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흐느껴 우는 목소리만으로도 어진은 알 수 있었다. 타이 한이라는 사람이 이 말을 얼마나 오래 참아왔는지를. 겉으로는 모든 것에 초연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 타이 한의 내면을 채우고 있는 것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었다. 마약을 하거나 뚜쟁이 노릇을 하면서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살아가는 것도 실은 실패와 후회로 얼룩진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흘러간 것들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떠나간 시간을 저토록 아파할 수 있다면 아직 싸우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36쪽)쪽

냄새는 묘사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냄새는 정직해서 은유와 상징으로 포장할 수도 없다. 냄새는 그저 발가벗는다.
(…) 너는 동굴 같아. 네 속으로 들어가면 동굴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처럼 까매져. 분명하던 것들의 윤곽이 흐려지고 어둠만 남는 거야. 그러면 이렇게 가만히 어둠 속에 쪼그려 앉아 있다가 사라져버리는 거야.-(42쪽)쪽

노트를 하나 마련해봐. 거기다 다 써버려. 쓰다보면 기억이 날걸? 네가 네 속에 숨겨놨던 것들이 너를 찢고 나올 거야. 다 받아 적어. 그리고 묻어버려.-(59쪽)쪽

그 순간에 내가 느낀 그 아득함이 실제의 물리적 거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심리적 거리감이라는 사실에 나는 더 당황하고 있었다.-(69쪽)쪽

테이프를 되돌려 감듯, 지나온 삶을 되돌려 감을 수 있는 사람이란 그 인생에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한 사람, 그는 리와인드 버튼을 한 번 더 누를 시간마저 갖지 못했다. 설령 이제 누군가가 그를 기억해내어 그를 대신해 리와인드 버튼을 눌러준다 해도 끝까지 돌다간 그의 테이프는 절대로 되감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은 …… 죽었으니까.
(…) 죽음 앞에서는 어떤 말도 변명일 뿐이다. 참회를 하고 눈물을 흘려도 여기, 살아 숨 쉬는 자의 참회와 눈물은 트로피를 거머쥔 승리자의 한때의 도취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 지금 내 뱃속에서 나를 쥐어뜯고 있는 저 정체 모를 통증……나쁜 짓을 한 것도, 내가 원한 것도,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불쑥불쑥 나를 찾아와 들쑤셔대는 저 통증…… 동그랗게 말아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익숙하면서도 매번 낯설기만 한 저 통증을 향해 나는 주먹질을 했다. 내 몸이 아파야 한다면 차라리 내 주먹으로 내가 내 몸에 멍을 만들리라.-(84~85쪽)쪽

모든 것이 0과 1로 단순화되는 디지털 세계의 일원이 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한 주변인의 이야기란, 죽은 자에게 목덜미를 잡혀 자신의 삶으로 죽음을 대신해야 했던 영식이 아저씨의 이십 년 세월 앞에서는 가짜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1975년 4월 28일에 신체검사를 받았다는 한 남자의 생이 이쪽 원에서 저쪽 원으로 건너가고 있는 테이프를 매만지며 가짜와 진짜, 이쪽과 저쪽, 그 사이에서 소설의 자리는 어디인가.-(92~93쪽)쪽

"그대로 놔둬. 방이 환해지는 거, 뭔가가 이 방으로 들어오는 거 모두 귀찮아졌어."
(106) 방 바깥에서 들어온 사람은 그렇게 한바탕 소리를 지르다 나가버린다.-(103쪽)쪽

빛을 가로막고 있는 블라인드를 본다. 이제 저 블라인드를 걷어올리는 일은 없을 거야. 상상 속의 고래가 늘 훌쩍 뛰어넘어가버리곤 했던 그 문턱을 본다. 방문은 닫혀 있다. 문은 꼭 잠겨 있다.
… 내 등에 그가 꼭꼭 눌러 새겨준 그 검은 글자들이 아프게 아로새기고 있는 무늬가 무엇인지 안다. 그는 지금도 날카로운 조각칼을 들고 어디선가 무늬를 새기고 있을지도 모른다.-(120쪽)쪽

우리의 열아홉은 아직 포장의 리본을 풀지 않은 선물상자 같은 것이었지. 발신인이 분명하지 않은 그 선물상자 속에는 ‘내일’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 무엇이 들어있었어.

(…)아직 포장의 리본을 풀지 않았을 때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니야, 아니야, 부정할 수도 있고, 그렇지만으로 시작되는 변명을 늘어놓을 수도 있고, 어제 연필로 휘갈겨 쓴 영어 단어 위에 오늘치의 영어 단어를 붉은색 볼펜으로 휘갈겨 써 어제의 시간을 지워버리듯 선물상자 바닥에 몇 번이고 다시 새로운 밑그림을 그려 넣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누군가 내 앞으로 부친, 발신인이 분명하지 않은 그 선물상자를 앞에 놓고 나는 그 속에 들어있을 알맹이를 상상하며 상자 바닥에 밑그림을 그려 넣곤 했지.-(199~200쪽)쪽

나는 뒤로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앉아 이제 막 사진액자의 네모난 틀 안에 붙박여버린 어떤 풍경을 지켜보았지. 인생을 둘러싼 모든 것들…… 화살이 되어 다시 돌아오는 상처들마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그 풍경은 내게는 너무나 낯설어서 나는 질끈 두 눈을 감아버렸단다.-(218쪽)쪽

밑동에서 조금 올라가다 제 몸을 기꺼이 반으로 나누어 땅을 향해 휘어 있는 저 나무라면 그 뿌리로 전설 하나쯤은 움켜쥐고 있을 법도 하지 않니?
너와 내가 서로 다른 길로 갈라져버리게 된 곳, 그곳은 어디였을까?-(223~224쪽)쪽

길 양편으로 갈라져 서 있는 낡은 집들이 안개 속에서 길을 연다. 나는 그 길 위로 올라가 희뿌연 안개 너머에서 아른거리는 그 무엇을 쫓는다. 그것은 손짓하는 듯도 하고, 따라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는 듯도 하다.
(…)공원은 쇠와 장구와 북과 징이 만나 얽히고 풀리고 맺히고 꿈틀거리는 소리로 깨어나고 있었다. 저 자리에 내가 있었으면…… 저리로 달려가서 이 지랄 같은 열기가 내 몸에서 다 빠져나갈 때까지 진저리치고, 뛰고, 날아올랐으면……-(254쪽)쪽

검은 땅에서 날아올라 하늘에 길을 내는 새, 강으로 흘러들어가 강 너머의 들판과 맞닿고, 돌을 뚫고 들어가 땅속에 더 너른 길을 예비하는 길…… 손끝으로 더듬거리며 찾아낸 길, 책을 뒤져 찾아낸 길들이란 저 살기등등한 바다 앞에서는 전부 무효였다.-(284쪽)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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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바이 리틀
시마모토 리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시공사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영상 만들기 놀이.

 

 

(05.04)


  2004년 출간 당시, 서점에서 바로 발견해서 약간 기간이 지나 구입하고, 읽었던 기억. 최연소 수상작가라고 거창하게 소개한 띠지와, 너무나 얄팍한 분량에 처음엔 그저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 번 쓱 봤다가 도로 그 자리에 꼽아놓았다. 그러다 표지와(좋아하는 타입의 일러스트;) 팔랑팔랑 책장을 넘기다 보니, 소소한 일상이 펼쳐지고 있어 읽기에 별 무리가 없을 듯 판단해서, 그 후엔 이것저것 따지기를 접고 구입했다. 그 당시, 복잡하고 까다로운 교재와 거듭 파고들어도 제대로 의미를 파악하고 건지지를 못해 잠시 미뤄두고픈 소설책이 여럿 있었기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간절히 원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두세 번 되풀이해서 읽을 수 있을 만큼, 책 두께는 한없이 얇다. 그리고 스타트를 접했을 때, 굉장히 싱거운 맛이 났다. 갓 20살이 된, 여자아이의 시선에 닿는 가족, 풍경, 그리고 기다림과 아기자기한 사랑 에피소드.
 

  커다란 충격을 몰고 올 사건은 터지지 않고, 이렇다 할 외적갈등은 없으며, 여자 아이의 내면에서 생긴 불안이다. 그렇다고 그런 불안이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매일 겹쳐지는, 어쩌면 무지 사소한 일상에서 자그마한 구석에 웅크린 심리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후미는 그 ‘무서움’을 표면에 드러내지 않는다. 거의 결말이 다가올 즈음, 남자친구 슈에게 조그마한 단서를 넌지시 비출 뿐이다.

 

“가끔은, 무서워.”
“무슨 말이야?”
“모든 것이, 하나같이 전부. 오늘 자고 나면 내일 아침 아르바이트, 인파, 따분한 평일, 잠들기 전, 전부.”
“그런 때는 어떻게 하는데?”
“죽은 것처럼 눈 꼭 감고 참아. 그러면 언젠가는 지나가니까.”
“왜 무섭다고 말 안 하는데?”
“말로 하면 분명해지니까. 한 번 말이 된 것은 절대 지워지지 않으니까.”
“하지만, 말을 해야지 안 그러면 다른 사람은 모르잖아.”
“무섭다고 느낄 때마다, 그렇다고 말하면 되잖아.”

- 160~161.

 

  전체적으로, 이 소설의 분위기와 전개되는 양상은 마치 투명 유리병 캡슐 편지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안에 캡슐이 들어있다는 건 뻔히 보인다. 편지(소설의 분위기랄 수 있는)라는 건 대강 짐작이 가지만, 곳곳에 숨겨놓은 주인공의 심리 변화(캡슐 안, 편지 내용)를 보여줄 하나하나 에피소드는 알아차릴 수 없는 것처럼. 살짝살짝 궁금하여, 잠깐 휴식에 책을 덮어놓고도 이내 슬그머니 들추게 만든다.

  *어릴 적 좋아했던, 비가 시원하게 바닥을 간질이듯 톡톡 떨어지는 풍경이 비친다. 내내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충동적으로 마루에서 내려와 마당을 거닌다. 손바닥을 내밀어 조그마한 물방울이 그 위에 퐁퐁 연주를 하면, 히죽 웃으며 바라보았던, 한 장면. 어렸을 적에는 때때로 학교 현관에서 한참 지켜보다가, 마지못한 듯 우산을 켜고 집으로 갔다. 여전히 비 내리는 그 회색빛 풍경은 마구 좋아한다.(오직, 풍경만 좋아할 뿐. 통행에 불편해서, 다닐 적에는 구시렁구시렁;)취향의 음악을 틀어놓고, 멜로디를 짚어나간다. 현재도, 띄엄띄엄 지나가는 비는 좋아하지 않지만, 한 타이밍에 과감하게 쏟아지는 비에 열광.
더불어 자랑하듯 마루에 책을 늘어놓으며(구연동화를 펼치고, 빗줄기랑 속닥거리기)뿌듯해하던, 한 장면.
구불구불 골목길을 더듬어가다, 미로처럼 숨겨진 길을 발견했을 때의 신기하고 흥미로운 호기심, 한 장면.……*
소설을 읽으며, 나름 유쾌한 조각이 등장할 때, 내 어릴 적 겹쳐지는 기억 파노라마를 풀어놓고 동동 띄우며 함께 하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모드, 답답하고 불안할 때, 꽁꽁 숨기다가, 그나마 조심조심 비밀리에 소설을 건드리곤(썼다, 는 다른 의미를 부가한 내가 좋아하는 단어)했던, 한 장면.
소설이란 도화지에 여러 바탕을 칠하고, 갖가지 물감을 짜놓고 추상미술을 펼치듯, 내가 만들어낸 주인공에 각각의 색을 입혔던, 그 장면.……*
그리고 소설을 읽으며, 나름 숨이 턱 막히듯 후미의 심리가(내가 겪기도 했던)떠오를 때, 또한 겹쳐지는 과거랑 현재의 이야기 퍼레이드를 펼치며, 따라간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밑바닥에 보이는 기운이라고 해야 하나, 꼭 old fish의 음악이 겹쳐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몽롱한 기운에 영상 만들기 놀이를 할 수 있었던 것까지는 일단, 색다른 경험으로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허나, 어디까지나 그냥 괜찮다는 거지, 소설이 대단하다고 평할 단계는 아니라는 거다. 신인상과 아쿠다가와 후보작이라기엔 어딘가 엉성한 데도 많았고, 좀 더 깊이 담기지 못한 심리 표현도 몇 가지 내 눈에 띄었다.(주관이 섞였을 거라는 것도 인정한다.)
언젠가 다시 또 책을 끄집어내 파락파락 넘길 때, 다시금 끌어당기는 요소를 쥐고 굴릴 수 있도록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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