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태워봐.
기름을 바르고 내 몸에 불 붙여봐.
마녀처럼 날 화형시켜 봐.
쓰레기 봉지로 날 포장해서 소각로 속으로 집어던져 봐.
나는 다이옥신이 되어 너의 폐 속으로 들어간다.
내 얼굴을 면도칼로 가볍게 긋고 스며 나오는 피를 빨아봐.
고양이처럼 그 맛을 즐겨봐.
그래서 나는 피투성이가 되고 싶어.
내 안에 있는 나는 무엇인지, 어떤 추악한 것인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채로 이 세상을 떠나가게 되는 것이 두려워.
나는 마지막에 비명을 지르면서 눈물을 흘리리라.

나는 살아온 지금까지도 슬픔이란 무엇인가 잘 알 수가 없다.
강렬하고 선명하게 내 가슴에 찾아오는 사나운 폭도 같은 슬픔.
그런 것이 무엇일까.
우리의 모든 일상과 권태와 반복과 연극을 투과해서
스며 들어오는 슬픔이라는 것이
살을 찢는 고통이나 발바닥에 박히는 유리조각처럼
정말로 존재하는 어떤 것인가.

-배수아 [철수] 중에서...

200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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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07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이군요. 담아가겠습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