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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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보통에게 푹 빠져있었다. 아니, 지금도 빠져있다.

하지만...

그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성의 모습이 내가 아니길,

그리고 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성이 훗날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니길...

보통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랑이 나의 사랑이 아니길...

보통식 사랑이라면 노 땡큐!!

그렇지만 그의 책엔 별 다섯개를 줄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사랑일까?

보통: ㅋㅋ사랑이 별 거인줄 알았니??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보통: '너'이기에 사랑하는 이유는 하나도 없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는 사랑하고 싶은 순간 너를 만났기 때문이지.

         그 순간 너를 만났기 때문에 너를 사랑했고

        지금은 다른 사람을 만났으니 그 사람을 사랑해.

 

사랑의 효력요건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요건이란 몇 가지가 되었든 다 채워져야

효과가 나타나는 법인데 사랑의 효력요건은 그렇지가 않다.

몇 가지가 부족하다 해서 사랑이 시작되는데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람에 따라선 우월한 의미를 가진 단 한가지 요건이 나머지 많은 요건의

흠결을 극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존속요건은? 사랑에 과연 존속요건이 있긴 한 걸까?

언제부터인가 사랑은 '존속'이란 말보다 '유통기한'이란 말이 더 친하게 지낸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랬는지도 모르지만..(설마 그건 아니겠지??)

 

남녀가 처음 만나서 결혼에 골인할 확률이 가장 높은시기는 만난지 6개월 안이라고 한다.

그 후부터는 점점 결혼할 확률이 낮아지는데 그건 사랑의 유효기간이 6개월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6개월이 지나면 보통 사랑은 식고, 사랑이 식은 그 순간부터는 성격과 인격이 사람의 관계를

결정하는 것이란다. 물론 좋아하는 마음은 계속 지속되지만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성격과 인격에 관한 문제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 누군가의 분석이다.

성격, 인격, 좋아하는 감정, 사랑...이런게 다 별개의 것이라는게 통설인가 보다.

하지만  성격과 인격이 사랑의 효력요건이자 존속요건이라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사랑의 효력요건은 사람에 따라  어떤 것이든 가능할 수 있지만

존속요건은 어떤 사람의 사랑이든 성격과 인격으로 공통되지 않을까...

 

보통은 사랑이 별개 아니라는 걸 말하지만 나는 사랑이 존속할 수 있는 별거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순간에 만난 사람이 아닌 존속할 수 있는 사랑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찾아오는 사랑을 막지 말고 떠나가는 사랑에 미련을 두지 말라지만,

사랑은 그렇게 끊임없이 왔다가 떠나고 또 다른 사랑이 오고 그런 거라지만,

스쳐지나갈 사랑이라면 절대 오지 못하게 막아버릴테다.

아무튼 보통의 책이라면 언제든 웰컴이지만

보통이 말하는 사랑은 글쎄.... 

2006. 11. 21.  

 

 

사랑과 죽음은 그 너머로 가 보기 전엔 절대 알 수 없다는데 

이제 와서 다시 보니 참....어렸구나 싶다.  

원하는 대로 안되는 일이 참 많다는 것도, 그 중에서도 사랑이 가장 어렵다는 것도 그때는 몰랐다.   

아무튼 나는 이 책으로 인해 보통 아저씨와는 결별을 선언했다. ㅋ 

보통 아저씨의 책에 대한 마음은.... 

정말로 아끼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과 환상....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별 다섯개랑 웰컴이란 표현도,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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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까지 해야 할 스무 가지 1
질 스몰린스키 지음, 이다혜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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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 올해 24살.

내 인생은 지금 위기다. 위기란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 어디에나 있게 마련인 것,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지만 지나가는 동안은 역시나 고통스럽다.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결국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건 빈곤도, 재난도 아니다.

불확실함이야말로 인간의 불행의 근원이지 않을까?

희망이라는 말로 아름답게 속삭이는 것....

기대할 것이 없는 것보다 더 잔인한 고문이다.

기대할 것이 없다면, 더 나아질 것이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차라리 이 순간 나의 본능과 욕구에라도 충실할 수 있겠지...

참고 또 참았는데 나중에 내 손에 주어지는 게 없다면....

 

24살의 마리사는 25살 생일까지 완수하고 말겠다는 계획 20가지를 세웠다.

하지만 얼마 후 불의의 사고로 죽고 만다.

20가지 중에 마리사가 성공한 항목은 단 두가지...

그녀는 존재하지도 않을 내년 생일을 위해 쓸데 없는 짓을 한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계획을 너무 늦게 세운 것일까?

 

 

"인생은 재미있는 거야.

사람들의 삶에는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거나 너무 적은 일이 일어나.

적당한 경험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까."

                                                          -준 파커-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

신은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준 파커의 어머니-

 

그래서 말인데...카르페 디엠! 그리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여 성실하게!

 

2007. 9. 14.  

24살에 나 어땠길래.... 

이제는 손에 쥐게 되는 게 없을까봐 두렵지 않다.   

어제 라디오에서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이 성장하며 낙타의 과정을 지나 사자가 되고, 그 과정을 잘 극복하면 온전한 사람으로 설 수 있다고...낙타에서 멈춘 사람은 자기 생각이 없고 주체적이지 못하단다. 사자에서 멈춘 사람은 폭군....누구도 견딜 수 없어서 결국은 자신이 불행해진단다.   

20살, 21살....25살까지.... 사자의 과정은 너무 늦게 찾아왔고, 너무나 오랫동안 익숙해져 버린 낙타의 가죽도 벗어버리는 것이 두려웠나 보다. 그때 쓴 글들을 읽으면 깜짝깜짝 놀란다. 그리고 현재에 감사하다.

이제는 낙타의 과정과 사자의 과정이 거의 말기에 이르렀나 보다. 마음이 편안해 진다. 가끔 롤러코스터를 타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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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12-30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살에는 뭘 이루고 또 몇살까진 이정도는 되어야하고...사실 이런 규정은 의욕을 고취시키기보다는 떨어뜨리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요. 다만 인생을 멀리보고 장기계획과 단기계획을 나누는 것은 개인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하지만요. 두가지의 차이점이라면, 타인에 대한 의식에서 오는 나의 자리매김이냐, 순수한 나 자신을 위한 목표냐 겠져?...ㅎㅎ롤러코스터는 누구나 탄답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이룰 수 있는 한계와 목적을 정확히 고찰해 보는게 제일 중요할 것 같네요.

교자만두 2009-12-30 13:25   좋아요 0 | URL
'누구나 롤러코스터는 탄다'는 걸 알았을 때 아주 조금 더 성장했던 것 같아요.^^나만 탄다고 생각했으니 얼마나 어리석었던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옛날에 쓴 글 읽으면...나 왜 이래...싶어요.ㅋ
 
[블루레이] 브루스 올마이티
모건 프리먼 외, 톰 새디악 / 브에나비스타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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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직 짐 케리만이 소화해 낼 수 있는 산만한 캐릭터 덕분에 지금 생각해도 피식 웃음이 터져나온다.

특별히 웃기는 장면이 있어서 웃는다기 보다는, 보다보면 전혀 웃기지 않는 장면에서도 픽픽 터져나오는 웃음을 어찌할 수 없는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본지도 꽤 오래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이 영화가 떠오른 건 영화관에서 친구와 웃고 있을 때는 그냥 흘려버린 한 가지, 그 한 가지가 실마리가 되어 이 영화를 다시 떠올려 본다.

 

시간이 덮어버린 기억을 불러낸 실마리는 바로 이영화에서 진짜 올마이티 역을 맡은 배우가 모건 프리먼이였다는 것이다. 사소한 것이긴 하지만 모건 프리먼은 흑인이다.

모건 프리먼이 2005년 아카데미 남우 조연상을 수상할 당시 시상자였던 줄리아 로버츠가 수상 축하 키스도 제대로 못했다는 뒷 이야기가 있다.

백인 여배우가 흑인 배우에게 키스해 주는 장면이 어떤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까 두려워서였다나...

아무튼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니 그렇다 치더라도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역할을 모건 프리먼에게 맡겼다는 것, 지금 생각해 보니 감독이 마음 단단이 먹고 결정한 일이 아닐까 싶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 장관도 백인이 아니긴 하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사회에서는 인종을 기준으로 사회적 신분과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작년 카트리나 상륙 당시에도 수해 복구와 구조작업에서의 백인과 흑인 차별이 문제되기도 했고 

언론은 백인 여성이 상점에서 물건을 가져오는 것은 생존을 위한 긴급피난,

          흑인 여성이 상점에서 물건을 가져오는 것은 양심을 버린 약탈행위로 표현하기 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건프리먼이 하느님의 역할을 맡은 것은 이 영화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특히 피부색으로 확연히 대비되는 짐 케리는 불만 많고 철없는 하찮은(?) 인간의 역할을 맡았는데도 말이다. 더욱이 모건 프리먼으로부터 잠시 빌린 전지전능한 힘을 짐 케리는 제대로 쓰지 못해서 돌려주는 역할인데도 말이다.  

 

 미국사회에서 백인과 흑인의 관계라....

그러다 문득 '우리나라와 미국의 관계는?'이란 생각도 든다. 

이것저것 따져 보지 않더라도 FTA협상 당시 미국측에서 요구하는 것만 봐도 우리나라의 위치가 어떤지 대충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뻔뻔해도 정도가 있지 저런 요구를 하면서 무슨 협상을 하겠다는 건가란 생각도 들었지만 미국이 과연 알까?? 우리도 부국강병하고 싶어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강자가 생각하는' 강자와 약자의 관계와, '약자가 생각하는' 강자와 약자의 관계는 분명 다를 것이다.

그러니 미국이 생각하고 있는 미국과 우리나라의 관계....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미국과 우리나라의 관계와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 혼자만의 오해이듯,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위치, 우리만의 오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차별받고 무시당한다고 우리나라도, 미국에 사는 우리 교포들도 흑인을 덩달아 무시하지만 그들은 그래도 그 나라의 국민이다. 백인과의 관계에서는 차별받을지 모르지만미국사회에서 사회적 신분을 따진다면 한국인 교포, 유학생은 흑인 다음..그것도 한참 아래...'기타 소수 민족'으로 분류된다는 것을 한 번쯤 생각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미국의 오만함은 누구한테 당해본적이 없어서 고쳐지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반만년 역사동안 고래싸움에 등 많이 터지고 맞을만큼 맞고 울만큼 울었다. 그러면 우리가 아픈 만큼 아픈 곳을 감싸안아 줄줄 알아야지...

여기저기 붙어 있는 국제결혼 문구들을 보면 도대체 어디서 저런 발상이 나올까 싶은 생각이 든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 때는 우리나라 미혼 여성들에게 미국행 비자 발급이 아주 까다로웠다고 한다. 미국 남자와 결혼해서 아예 미국에 눌러살까봐 그랬다는데....사실, 이것도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니 하기가 참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이런 말이 들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여성들, 그 여성들을 딸로 둔 우리나라 국민들은 많이 억울했을 것이다.

그 억울함을 지금 당한대로 갚아주는 심보는 당해보지 않고 아무렇게나 대하는 것 보다 더 나쁘다.

 

이상 '모건 프리먼'에서 시작된, 이 영화의 '짐 케리'보다 더 산만했던 푸른국화의 한 마디, 아니 여러마디였습니다. ^^

 

2006. 07. 30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미국에서 검은 피부의 대통령이 탄생하리라 상상도 못했다.   

시간이 흐른다. 하지만 시간만 흐르는 건 아니었다.  

 '흑인' 이런 말 쓰면 안되는데....다시 보니 영 껄끄러운 표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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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12-28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영화 저도 봤어요. 짐 케리와 모건 프리먼이 아니었다면 영화하되지도 못했겠다 싶을 정도로 짜임새 있는 플롯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랬던가요? 기억이 가물가물해서리 ㅋㅋ 지금 든 생각인데 전지전능한 신을 흑인으로 캐스팅한 건 아마도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나올 때가 됐다는 암시 아니었을까요? 감독도 물론 오바마라는 걸출한 정치인이 등장하리라곤 미처 예상하지 못했겠지만요 ㅋㅋ

교자만두 2009-12-28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그냥 짐 케리 영화였어요. 친구가 보자고 하길래 봤는데, 보고 나오면서 대놓고 말은 안했지만 대체 이걸 왜 보자고 한거야...속으로 그러면서..ㅎㅎ옛날엔 이런 영화 싫었는데 요즘은 코드를 맞춰가고 있어요. ㅋ 저 선호가 불분명해서ㅋㅋ 변형 코드..^^;;
 

어떤 상황에서든지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면 애정이나 동정을 표시하듯 그 사람의 팔을 만질 것처럼 손을 뻗어라. 그러다가 자신이 하는 행동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은 것처럼 다시 팔을 굽혀라. 그러면 애정뿐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에티켓까지도 표시하는 것이다.
-레일 라운즈, <마음을 얻는 기술>, p.47


의도적인 것은 아름다울 것 같지 않은데. 하지만 약간은 서툴고 소심한 스킨십 미수(?)가 마음을 흔든다는 것에는 동감이다.

그 사람
대학교 입학했을 때, 학교의 기숙사가 모자란 탓에 얼마간은 친척댁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 후 차츰 대학생활에 적응하면서,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집이 어디냐는, 별 뜻없이 물어보는 말들이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던 것 말이다. 혼자 살게 된 후부터는 집이 어디냐는 질문이 난감하고 싫었다.
그러니 늦었으니까 데려다 준다는 말도 좋을리가 없었다. 기사도 정신에서 나온 그들의 호의는 나에겐 배려가 아니라 폭력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같이 가면 안될까?"
아주 사소하지만 그는 달랐다. 늦었으니까 데려다 줄게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같이 가면 안되겠냐고....매번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의 입구에서 돌아섰다. 입구에 있던 편의점....딱 거기까지만. 몇 동, 몇 호로 혼자 들어가는 모습을 낯선 남자에게 보여야 하는 난감함을 한번도 겪게한 적이 없었다. 데려다준다는 핑계로, 사실은 집 앞까지 쫓아와서, 그럼 이제 됐다고 말해도, 여기까지 왔는데 너 들어가는 건 보고 가겠다고 막무가내로 우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좋은 사람이구나....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말없이 차도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이 좋아서 그 사람이 좋고, 그 사람이 좋아서 그 모습이 좋았다.

"멍청아, 그게 뭐라고 그런 게 좋냐? 이 바보탱이야!"
그게 별건 아니지만, 또 별거였다.

연인사이가 되고 나서 그가 말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집에 데려다 줘도 마음을 몰라주냐고....그리고 우리 처음으로 같이 봤던 영화....너무나 몰입해서 보는 나때문에 섭섭했다고....손을 잡고 싶어서 계속 텔레파시를 보냈는데, 그때 나는 화면에 빨려 들어갈 기세였단다. 그냥 확 잡아버릴까 하다가 놀랄까봐 눈치도 주고 돌려돌려 말했는데 끝까지 못알아 듣더란다. 그동안 그 사람이 늘어놓던 실없는 소리들...생뚱맞은 화제들...이해가 되려했다. 투덜투덜 그동안의 불만을 끝 없이 쏟아내던 그 사람....나는 그날 그 사람이 더 좋아졌다. 손 한번 잡아 보려 안달하면서도 함부로 잡지 못했던 그 사람....그 사람이 참 좋았다.

그 아이
그 아이의 마음을 알았다면 그렇게 힘들게 하지는 않았을텐데. 고의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 아이에게 많이 잘못했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희망고문을 했고 싸늘하게 돌아섰다.
우리는 아주 친한 친구사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막역한 친구 사이. 성별의 구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절대 흑심 따윈 있을 수 없는. 우정은 흑심을 이길 수 있고 더 고귀한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날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그 아이를 희망고문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는 군 복무 중이었다. 제대할 때까지 편지 한 장 못써준 한 선배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보상하겠다는 심리로 그 아이가 군대 갔을 때는 신나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오랜만에 손편지 쓰니까 기분도 색다르고 나쁘지 않았다. 휴가 나왔다고 연락하면 기꺼이 만나러 갔다. 군대에서 매일 남자만 볼텐데 얼마나 갑갑할까 싶어서. 아기자기하고 분위기 좋은데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것도 보고....여자 친구 없으니 나 아니면 그럴 기회도 없을거라며, 나같은 친구가 있다니 그 아이 참 복도 많다고 뿌듯해하며 말이다.
그 아이가 휴가 나왔다고 연락한 날, 여의도에서는 불꽃 축제가 한창이었다. 밥 먹고 영화 보러가자는 그 아이의 말에 멜로는 안 땡긴다며, 불꽃놀이 보러 한강가자고 제안한 건 나였다. 사람 많다고 투덜대고, 춥다고 투덜대고...투덜투덜...그만큼 그 아이가 편했다. 투덜대고 제멋대로인 내가 밉게 보일법도 한데...한창 불꽃 구경하느라 정신 없는데, 그 아이의 팔이 나의 어깨를 감싸려 했다. 당황스러웠다. 이러면 안되는데...하면서 뭐라 할지 몰랐다.
그 순간, 얼마전 학교에서 실시한 성희롱 예방교육(이렇게 말하려니 미안하지만) 내용이 생각났다. 그 아이가 나쁘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잘못된 신호를 보내게 된다는 점이 떠올랐다.
"하지마!"
덕만에게 손을 뻗는 비담에게 "치우거라!" 라고 말하던 덕만처럼 싸늘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는, 그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 반, 화가 난 마음 반이었다.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데, 또 별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아이와는 사이가 아주 멀어져 버렸다.

레일 라운즈의 <마음을 얻는 기술>이란 책이 아주 센스 있는 시점에 도착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비즈니스북스가 나의 산타가 되어주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심코 펼친 페이지가 47쪽. 의도적인 행동이라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마음이 담긴 행동이라면 수긍이 갔다. 스킨십 보다는 스킨십 미수가 마음을 설레게 했었다는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추억은 산타가 준 선물이었을까? 
 

2009.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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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12-25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아이고 귀여운 울 국화님~. 여기에도 선덕과 비담이 출현하는군요. 국화님의 그 순수함과 귀여움이 남자를 사로잡는 매력이지요. ㅎㅎ하지만 옆에 있는 이성의 마음도 가늠해보고 밀고 당기는 기술도 정말 필요해요. 잘 할꺼야, 울 국화님은^^*

교자만두 2009-12-25 12:42   좋아요 0 | URL
ㅋ선덕여왕에 완전 빠져있었어요. 다음 월요일부터는 어찌하나 걱정이에요ㅠ.ㅠ 마기 님, 감사합니다.^^ 남은 시간도 행복하게 보내세요~ㅎㅎ

비로그인 2009-12-25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거 좀만 길게 쓰면 짜임새 있는 단편이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앗 죄송, 국화님의 아픈 사연을 소설거리로만 생각했으니... 그래도 '그 사람' '그 아이'라는 소제목의 단편이 자꾸 떠오르네요^^*

교자만두 2009-12-25 14:31   좋아요 0 | URL
ㅋ이제 그냥 추억이에요. 가끔 아팠지만..^^;사실 '그 사람'은 단편으로 좀 길게 써봤는데요,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고 하다보니 뒤죽박죽되어 버렸어요. ㅠ.ㅠ

까까~ 2009-12-28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브라보~ 소설같은 추억이야기 마음이 쓰리지만 그렇기에 거기까지인 둘 만의 인연의 추억!! 지금 생각하면 아련하지만 기뻤고 슬펐던 그 사람과 그 아이 ...그러고 보니 저도 그 분과 그 아이가 생각이 나네요.^^ 어허~ 산타가 다녀간게야~ 그런게야~ 추억을 떠올려주고 가신게야~ 아~~ 나의 산타는 언제 다녀가셨지?

교자만두 2009-12-28 17:27   좋아요 0 | URL
ㅋ우리 담에 소주잔 기울이며 추억 얘기 뭉게뭉게 피워봐요^^까까 님~방가방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3 (완전판) - 할로 저택의 비극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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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그녀에게 사랑이란 소유하는 것. 그리고 소유란 이용,  수익, 처분의 자유를 말한다. 그녀는 그런 사랑을 원했고 그렇게 밖에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크리스토에 대한 그녀의 욕망은 그런 것이었다.


헨리에타: 그녀는 사랑에 소모할 일부를 따로 떼어두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에너지, 감정, 시간, 재능.....사랑에 쓸 만큼만 떼어놓고 그만큼만 사랑에게 허용했다. 그녀를 온전히 가질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그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분배했다. 그리고 어떤 것도 할당된 그 이상을 넘보지 못하게 했다. 더 필요하다고 소리쳐도, 애원해도....그녀는 차갑게, 그리고 고요하게 지켜보기만 할뿐. 조금의 동정심도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 그녀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람에 대한 사랑에 올인할 수 없는 사람. 일부만을 사랑에 할당하는 사람. 그것이 그녀의 사랑이었다.


게르다: 그녀의 모든 것을 아낌 없이 주는 사람. 그녀는 그렇게 사랑했다. 하지만 조건 없는 사랑은 아니었다. 비굴함도, 비참함도 참을 수 있는 것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그녀의 사랑은 숭배였다. 완벽한 존재에 대한 숭배. 그래서 기꺼이 헌신했다. 불완전한 존재인 자신은 응당 그러해야 하고, 또한 그것이 불완전한 존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과 행복이라 생각했기에. 완전한 대상에게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감사했다. 그것이 그녀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크리스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크리스토는 완벽한 존재이고, 그러해야만 했다. 그녀도 역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크리스토: 그에게 베로니카는 벗어날 수 없는 상처였고, 헨리에타는 영원한 목마름이었다. 그는 무조건(사실은 무조건이 아니었지만, 그는 그렇게 느꼈던) 헌신하는 게르다를 늘 무시하고 업신여겼지만, 진심으로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여자는 게르다 하나뿐이었다고 헨리에타는 말한다. 그리고....사람은 결국 자신의 것을 사랑하고 자신의 것을 지키고, 자신의 것에게 돌아간다고. 그가 베로니카를 잊지 못하는 것은 상처를 돌보지 못해서이고, 자신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영원히 자신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고, 게르다를 업신여기는 것은 게르다는 너무나 당연한 자신의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결국 크리스토가 사랑하는 사람은 게르다라고.


소유하지 못해서 분노하는 베로니카, 크리스토보다 크리스토의 진심을 더 잘 아는 헨리에타(그러니 섭섭했겠지), 숭배했던 대상에 대한 실망과 그로 인한 혼란의 게르다, 모든 것이 너무 늦어 버린 크리스토.....
어긋난 사랑은 결국 죽음으로 이어졌다.


사람마다 가진 사랑의 모습은 다양하다. 그리고 한 사람이 가진 사랑의 모습도 한 가지가 아니다. 사랑이 고통스러운 것은 누구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선택할 만큼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자신의 그릇만큼 사랑하고, 상대방이 담을 수 있는 만큼만 줄 수 있는....그러니 사랑에 우월을 따질 수도, 점수를 매길 수도 없다. 다만, 그릇이 반듯하도록 열심히 다듬고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사랑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사람부터 아름다워야 하지 않을까?

 

2009.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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