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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자의 아내 - The Time Traveler's Wif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고등학교 시절, 시간 채우려 하는 봉사활동이지만 그래도 제대로 해야하지 않겠냐며,
친구와 지체 아동을 돌보는 복지관을 찾았다.
장애를 안고 태어난 것 만도 서러운데, 부모에게까지 버림 받은 아이들....
나는 여자임에도 그런 상황에 참 서툴다.
마음 다친 아이들의 마음을 안아주고 정을 나누는 거 말이다.
예전에 고아원에 다녀온 친구 말이, "언니가 다음에 또 올게."했더니
아이가 "안 올거잖아." 싸늘하게 말하며 고개를 돌리더란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설프게 아이를 달래는 거,
동정으로 보여 아이를 더 다치게 하는 거란 생각이 들어 나는 기계처럼 시키는 일만 했다.
(우리 어머니는 이런 나를 무심하고 정 없다 하신다. 사실, 좀 그런 것도 같다.)
그런데 같이 간 친구는 정이 많고, 마음이 여린 아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고 그 때는 철딱서니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 친구는 아이와 끊임 없이 대화를 나누고 같이 놀아주었다.
"엄마 안 보고 싶어?"
친구가 이 말을 하기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봉사활동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친구를 다그쳤다.
"뭐하러 그런 말을 하니? "
그 때는 그랬다. 묻지 않는 것이,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대학교 시절 과외 아르바이트를 할 때,
한 문제를 몇 분이나 낑낑대고 있는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답답한 티를 냈었나 보다.
"선생님, 공부 못하는 애들 이해가 안가죠?
내 친구가 그러던데.....자기는 분명히 교과서에 있는데, 그걸 틀리는 애들이 이해가 안간다고...
솔직히 공부 못하는 애들은 이해가 안간대요. 선생님도 그렇죠?"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리고 철렁했다. 한참 감수성 예민할 이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 주어야 할지....
나는 참 서툰 사람이었다.(이었다?....진행형인듯 -.-;;)
그래서 봉사활동 신청했을 때, 복지관에서 학습지도를 하라는 요청에 망설였다.
나: 저....학습지도 말고 다른 거 하면 안되나요?
조교 님: 뭐 하고 싶은데요?
나: 학습지도 빼고 뭐든지요. 당장 선생님 필요한 거면, 그냥 하구요.
그래도 웬만하면 다른 거 했으면 좋겠는데요.
조교 님: 특별히 뭐 하고 싶은 거 없으면 그냥 하셨으면 좋겠어요.
기관에서 우리학교 학생들한테 원하는 것도 주로 학습지도구요,
그리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나: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인지 잘 모르겠어요.
조교님, 저희 학교 다닐 때 모범생이라 집이든 학교에서든 사랑받았어요.
공부 하기 싫어하는 아이들 마음, 공부 못해서 야단 맞는 아이들 마음, 잘 몰라요.
아이들 마음을 잘 헤아려주지 못할 것 같아요. 모르는 사이에 상처 줄지도 모르구요.
조교님: ......그건 학생 말이 맞네요. 그런데, 다른 건 뭐 할줄 알아요?
그나마 ....제일 낫지 않나요?
나:.........(할 말 없음)
자신 없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러 갔다. 내가 맡은 학생들은 중학교 1학년 학생들....
부모님이 안계시거나 한 부모 가정 아이들이었다.
나는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몰랐다.
또 기계처럼 진도만 나갔다.
물어보면 자존심 상하지 않을까, 말하기 싫어서 다음 시간부터 안오는 거 아닐까....
소심한 나는 혼자 애만 태우고 인상만 쓸 뿐이었다.
그 중 한 아이....부모님이 안계시고 할머니와 단 둘이 산다는 그 아이는....
말하는 게 아이같지가 않았다.
고맙게도,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해 주었는데,
(이런 것도 어떻게 반응해야하는 지 정말 모르겠다.ㅠ.ㅠ
어설프게 대꾸했다가 자존심만 건드리는 거 아닌지....ㅠ.ㅠ)
할머니께 항상 미안하다던 그 아이는, 누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지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 사회구조가 잘못되었다, 요즘 애들(? 자기는 애가 아니라는 듯이) 큰일이다....그런 말들로 나를 놀라게 했다.
그런 건 나중에 알아도 될텐데.....지금은 갖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그런 것만 생각하면 좋을텐데...
꿈이 뭐냐고 물으니, 자기는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한단다.
어차피 성적 따라 대학가고, 대학따라 직업 정해지는 거 아니냐며,
과학자나 대통령이 꿈이라고 말하는 건 철없는 초딩뿐이란다.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애들은 조금이라도 좋은 대학 들어가서 공기업 들어가는 게 목표라고.
돈 있고, 빽 있는 애들은 유학 가고 더 나은 삶을 살겠지만
평범함 아이들의 목표는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그 아이....그 날 처음 와서 나에게 충격을 주고는 다시는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건지.....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어린 시절의 상처가, 그 아이의 창창한 미래를 지배하지 않기를....
성인이 되었을 때, 부디 상처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가끔 그 아이 생각이 난다. 누군가의 어린시절을 닮기도 했고.....
그 누군가도, 이제 마음의 짐을 내려 놓았으면.....이제 이겨낼 수 있기를.....
2009. 10. 3.
드라마 <선덕여왕>의 마지막 장면에서 선덕여왕이 어린 덕만을 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덕만아, 많이 힘들거야. 그리고 외로울거야.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네 사람들이 돌아설테고, 모든 것을 다 가진것 같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할거야. 하지만 이겨내야 해. 견뎌야 해. 힘들어도. 알았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힘들었던 자신을, 서럽고 외로웠던 자신의 곁을 지켜줄 수 있겠구나....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고, 꼭 안아 주고,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그리웠던 그 시절의 나의 곁을 지켜줄 수 있겠다....
그리고....비담의 어린시절을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
정이 고프고 어머니의 사랑이 절실했던 그의 곁을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
그랬다면....그 시절 비담을 찾아가서, 사랑으로 그의 어린시절을 함께 했다면....
그는 어두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