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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 - 남자 없는 출생
앤젤라 채드윅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3월
평점 :
-가끔 지독하도록 매혹적인 책들이 있다. 홀린 듯 품에 안아 놓고도 왠지 모를 두려움에 손에 들기를 망설이게 되는 작품. 한스미디어에서 작년 3월에 출간 된 <XX : 남자 없는 출생> 이 나에겐 그런 책이었다. 과학의 발전으로 난자와 난자를 결합해 ‘여자’아이 만을 낳을 수 있다는 가상의 이야기. 시작하기 전부터 흥분되고 긴장되는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페미니즘이 유행을 하면서 본래의 의도와 다르게 성과 성의 무의미한 전쟁이 반복되는 시대라 더욱 손에 들기 무서웠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호기심이 이겼고,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절대 단순히 sf 소설이나 페미니즘 소설이 아니라 우리에게 좀 더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즈비언인 줄리와 로지는 로지의 강렬한 소망으로 아이를 가질 계획을 하게 되고, 마침 ‘난자 대 난자’ 결합의 임상 실험자를 모집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르는 남자의 정자 없이, 오롯이 두 사람을 닮게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신청서를 작성하게 된 그녀들은 운좋게도 첫 번째 실험자로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되고, 정상적으로 임신에 성공한다. 기자로 일하는 줄리는 언론에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임신 과정과 사실을 전한다. 그런데 어느날 기자가 찾아와 인터뷰를 권하고, 줄리는 누군가 유명 신문사에 자신들의 이름을 팔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배신감은 잠깐, 수 많은 언론과 사람들의 적대심을 느끼고 공포에 사로잡힌 줄리는 로지와 아이를 안전하게 지키고자 하루하루 발버둥 치며 살아가게 된다.
-난자와 난자의 결합이라는 매혹적일 수 밖에 없는 발달한 과학이 담긴 sf적인 큰 틀에 현대 시점으로 펼쳐지며 현 시대의 문제가 담긴 사회정치적인 소재, 거기에 외부의 방해로 어긋나기 시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내적인 갈등까지. 이 모든게 한 권의 책에 담겨져 있다. 게다가 모든 과정이 다소 느리고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스토리 전개는 빠름에도 불구하고 조금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답답함은 책이 별로여서가 아니라, 너무 뛰어나서 느껴지는 답답함이다.
-제목을 쓰는데 한참을 고민했다. 어떤 제목이 적절할까 생각하다가 아직 채 수그러들지 않은 분노를 담기로 하고 조금 과감한 단어를 선택했다. 내가 분노한 이유는 이 책이 ‘페미니즘 도서’이기 때문이 절대 아니다. 내가 페미니즘 도서를 읽을 때마다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페미니스트도 반페미니스트도 아니다. 그냥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다. (이 문제를 조금 깊게 들어가자면, 요즘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칭하며 역성차별을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은데, 네이버에 ‘페미니즘’을 다시 한 번 검색해보길 권한다. 페미니즘은 차별을 없애자는 움직임인데 왜 역성차별을 하는지?) 내가 분노한 이유는 선택의 자유와 개인의 존엄성이 무참히 밟히고 그걸 조롱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이 넓고 깊게 묘사 되어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숨이 막혔고, 숨이 막힌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답답하고 먹먹했다. 타인에 의해 받는 고통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조금씩 서먹해지는 장면에서는 모든 감정이 극에 달해 페이지를 계속 넘기기가 힘들었다. 첫 작품으로 이런 글을 써낼 수 있는 저자의 능력이 경외롭게 느껴진다.
-마지막 페이지로 다가갈 수록 감정이 벅차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XX>를 읽는 동안에 현실과 소설이 구분이 안 되어서 힘들기도 했다. 조금도 스포하지 않고 이 모든 감정을 적어내려하니 너무 어려워서 (아직은 내 능력 밖의 일이라) 결국 조금도 담아내지 못했지만, 재미와 감동 그리고 현대 사회의 문제까지 가득 담긴 소설이라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정말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