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것에 대한 분노
베키 매스터먼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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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우연(정말일까..?)이 <죽어가는 것에 대한 분노>를 읽게 만들었다. 작가이름도 낯설고, 출판사 이름도 낯설었기에,내가 찾아 읽어낼 수..있었을까 싶다. <죄를 지은 모두 피를 흘리리>를 인상깊게 읽고 보니, 출판사가 궁금해졌다. 포크너의 책을 읽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분노' 제목이 들어간 책이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죽음' 과 고함'을 비슷한 의미로 이해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직 포크너의 책을 읽지 않았으니,나의 예상이 지나치게 앞서간 것일수도 있겠으나, 이 책을 읽게 된 이유에는 포크너의 지분이 있음을, 인정하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미드를 애정하지도 범죄를 다룬 영화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오랫동안 그알을 시청하는 이유를 굳이 설명하자면, 명확한 증거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누구도 범인으로 의심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이해받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의심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명확한 증거조차, 조작일때도 있으니까.그러나 더 무서운 건 전혀 그럴것 같지 않은 인물이 가해자로 밝혀지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죽어가는 것에 대한 분노>를 읽는 내내 갈피를 잡을수 없었기 때문에, 흥미로웠고, 그래서 결말이 싱겁게 끝날까 조바심을 냈다. 어느만큼의 싱거운 결말일수도 있었겠으나, '가면' 이란 화두로 접근하자면 이런 결말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강렬했다. 마치 영화의 장면을 보는 듯한. 뻔한 시작일 것 같으나, 전혀 뻔하지 않았던 시작.. 왜냐하면 그녀는 전직 FBI요원이었다. 현직이지 못한 이유는, 여러 사건사고가 그녀에게 트라우마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현재 사랑하는 남편에게 조차 자신의 직업을 밝힐수 없을정도니까..가해자를 잡은 줄 알았던 남자는, 껍데기였다. 그리고 그녀가 죽이게 된 남자로 인해, 진범을 찾아가는 여정이 계속 긴장감을 주었다. 범인일것 같지 않은 인물이 범인일거란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다. 결국 진범을 찾아냈지만, 그는 살아남지 못했다.많은 이들을 죽인 그에게 왜 그랬을까를 묻는 질문조차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죽어가는 것에 대한 분노>는 그러니까... 죽은 사람들에 대한 '분노' 였을 지도 모르겠다. 나를 죽인 가해자를 어떻게든 응징해달라는 외침... '분노' 하는 자만이 그 외침에 답할수 있다는 사인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죽어가는 것들에 분노하지 않는 다면 더 많은 희생자들이 나올테니까. 사건현장을 다룬 프로를 볼때마다 사명감 없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겠다 생각했는데, 소설을 읽는 동안에도 내내 하게 된 생각이다. 사명감을 갖고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그럼에도 분노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이 있어.. 이만큼이라도 세상이 안전한 건지도 모르겠다. 누가 범인일까? 왜 그랬을까? 에 대한 물음보다, 고통에 귀울이며 살아가는 이의 또 다른 고통이 가장 크게 다가온 듯한 기분이다.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는 없다. 인생이라는 것이 단지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의 문제라면 과연 행복이라는 단어를 언급할 수 있을까?"/4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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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무릇 침착할 줄 알아야 한다고들 한다. 분노 같은 것은 에스트로겐과 함께 다 빠져나가 버리기도 하는 것처럼 목숨을 걸어도 좋을 만큼의 일생일대의 분노도 스크랩북에 고이 접어 담거나 인류 공동체를 의한 기금 마련 봉사 활동으로 소멸시켜야 한다

뭐, 나 역시 그런 여자가 될 수 있다고 스스로 속여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흘러갈 것이 아니었나 보다.아니, 그렇게 흘러가면 안 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외우고 있는 시 구절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소리치고 소리치고... . 분노하고 분노하오.. 사라죠가는 빛에 대해'/ 300~301쪽











포크너의 책을 읽으려고 한 순간 <죽어가는 것에 대한 분노>가 보였다는 것이 신기했다. 두 이야기가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일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고함.분노..이런 단어들에서 희망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든것이 신기해졌다. 적어도 <죽어가는 것에 대한 분노>만 놓고 보면 그렇다. 아직 이야기를 끝낸 건 아니지만.. 해서 나는 틈 사이 비쳐지는 빛이란 단어 앞에서 또 한 권의 책을 리스트에 담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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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읽은,성해나 작가의 <빛을 걷으면 빛>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역시 멋진 레너드 코헨님^^

"고난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항상 기독교적인 것은 아니야. 빅터프랭클을 봐.그리고 누군가 이런 말도 했지 ‘세상 모든 것에는 틈이 있기 마련이고 바로 그 틈으로 빛이 스며든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기도 해"
나는 그의 책을 가리켰다.
"비트겐슈타인?"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레너드 코헨" /236~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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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 벤치에 앉아 있다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27
자크 프레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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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에서인가, 소개 받은 시집인데,기억나지 않는다. 다행인 건 소개받은 시집의 제목을 메모해 둔 덕분에, 2025년이 가기 전에 읽을수 있게 되었다. 올해 유난히 벤치를 사진에 많이 담았던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시집의 제목만 놓고 보면, 외로워서 뭔가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제목 자체가 이미 시처럼 다가왔다. 그런데 막상 시집을 펼쳐 보았을 때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많이 쓸쓸해서...조금 힘들었다.


(중략)

당신은 거기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다/ 당신은 안다 당신은 안다/이제 다시는 저 아이들처럼/

놀 수 없음을/ 이제 다시는 저 행인들처럼/조용히 지나갈 수 없음을/ 당신은 안다/ 이제 다시는 저 새들처럼/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갈 수 없음을/ 당신은 안다 // '절망이 벤치에 앉아 있다' 부분


콕 찍어 '절망' 이란 단어가 들어갔으니, 벤치에서 행복한 시선을 느낄수 없을 거란 건 예감했으나, '늙음'을 상징하는 단어일거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아직은 거기까지 가 있지 않아서일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늙어감에 대한 생각을 여전히 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해서 처음엔 마냥 슬펐고, 반복해 읽으며 마냥 슬퍼해 하지 않기로 했다. 마냥 벤치에 앉아 있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아니 오게되더라도 절망을 그냥 잘 끌어안고 싶다. 그러나 이 마음이 쉽지 않다는 건 얼마전 서경식선생님 책을 읽으면서도 느낄수 있었다. 그래서 바람은, 고독한 노년의 시간이 절망으로 채워지지 않는 다양한 무언가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거다. 시 하나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마음이 무거워질 인가 싶지만,앞으로 우리가 더 심각하게 마주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어느 복잡한 이론보다 심플하고 간결하게 노인문제를 설명해준 기분.. 그런데 또 다른 시선으로 보자면, 유한한 삶에 너무들 아웅다웅 살지 말라는 메세지로 읽혀지기도 했다. 다른 시들에서 내내 이런 은유가 보인 탓일게다. 특히 '불어 작문' 같은 시를 읽을 때는 시인들의 시선이 부러워질 따름이다.


아주 젊을 때 나폴레옹은 말라깽이였고/포병 장교였네/나중에 그는 황제가 되었네/그러자 그는 배가 나오고/많은 나라를 삼켰네/그가 죽던 날 그는 아직/배가 나왔지만/그는 더 작아졌다네/ '불어 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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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지은 모두 피를 흘리리
S. A. 코스비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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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결단코 변할 수 없는 걸까..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는 변할 수 없는 걸까?


내가 살고 있는 자그마한 나라에서도 서로 생각이 달라 싸운다. 싸우는 정도가 아니라 혐오를 넘어선다. 나도 그 속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니 남의 나라에서 인종문제, 종교문제로 싸우는 문제에 놀랄일도 아닐텐데,흡인력 있는 작가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크리스마스에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건 제목에 대한 끌림이 있었다. '죄'라는 단어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 큰 이유가 되었을 터. 종교는 없지만, 한 해 동안 내가 잘못한 것들과 마주할 용기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있어.공적인 얼굴, 사적인 얼굴 그리고 우리의 진정한 얼굴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자신과 똑같은 인간에게 사진에서 보이는 짓거리들을 감행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 모든 가면을 벗어던지고 나면 아무것도 없어. 전부 껍데기에 불과한 거야.그래서 그 공백을 환상으로 채우는 거지. 보통 사람이라면 역겹다고 할 만한 욕망으로 가득한 환상.(...)"/217쪽~218쪽



학교에서 일어난 총격사건. 백인선생을 쏜 흑인학생. 그런데 대치하는 중에 라트렐도 죽고만다. 경찰은 정당방위였다고 말하지만, 흑인시민사회에서는 과잉방어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짜 이야기는 라트렐을 죽인 경찰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그가 왜 백인선생을 쏘게 되었는가로 흘러간다. 모두가 우러러 보는 훌륭한 선생님의 실체가 들어난다.파도파도 넘쳐나는 사건들. 다크한 이야기인데, 너무 잘 읽혀져서 놀랐다. 타이터스처럼 외면하고 싶은 순간,장면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죄를 지은 모두 피를 흘리리>는 어느 한쪽만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균형' 잡기. 어느 때보다 필요한 화두가 아닌가 싶다. 백인이라고 모두 백인우월주의를 지향하지 않듯,라트렐같은 학생이 모두 피해자로 보는 것도 위험하다는 뜻이다. 해서 읽는 내내 주제의 무거움과 흡인력의 놀라움에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결말조차 개운한 해피앤딩이었다고 말할수 없는데.. 만약 해피앤딩으로 끝났다면, 앞서 진행된 이야기 모두가 허구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타이터스가 살아 남은 것에 안도를 했다.비록 보안관이란 옷을 벗었야 했지만,지금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범죄문제에 대해 더 심오하게 공부를 하게 될 거라 믿고 싶다. 그가 어릴적 지닌 트라우마 관련 부분은 작위적이란 인상을 받았지만, 그 역시 '죄'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자의든 타의였든...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죄를 지은 사람들이고,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피를 흘릴수 밖에 없는 운명인데..이 명제를 부정할 수도, 부정해서도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부정하는 순간 혐오의 대열로 들어가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응징을 받았다. 그래서 또 개운하지 않은 지점도 남았지만.... 지금으로싸는 그게 최선은 아닐까..여전히 악독한 짓을 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이들을 보는 건 불편하지만..그럴수록 명심해야 할 말은,그들과 나를 구분해서 생각하지 말아야한다는 점일지도 모른다.우리 모두 같은 사람이란 사실(요즘은 이런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다..ㅠㅠ) 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덜 피를 흘리며 살아갈텐데..나부터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가는 수밖에 


"어디 출신이든 어디에 살고 있는 상관없이 사람들은 다 똑같아.질투하고 미워하고 비비 꼬이거나 역겨워하지, 훔치기도 하고 거짓말도 해.훔친 것에 대해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서로의 남편이나 아내 혹은 아들 딸들을 탐하지.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형제애를 외치며 하나님 안에 살고 있다고 맹세하지만 교회 밖으로 나오자마자 당신이나 내게 게으른 깜둥이 새끼들이라고 욕하고(...) '저들은 죄인들이야,저들은 괴물들이야,우리는 아니여.카론은 달라' 라고"/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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