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우리시대의 논리 27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안녕하세요. 여기 모이신 분들 모두 가내 평안하시고 건강하시지요? 

 사실 저는 그렇지 못합니다. 겉보기에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 같지 않아 보인다고요? 멀쩡하고 건강해 보인다고요? 아니오. 하나도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제가 부러 앞에 선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려고요. 그래서 왔어요. 허허. 시작하기 전 글 하나 읽고 가실까요.






처참하게 뭉그러진 환자들을 목격한 그는 죽음에서조차 계층 차이가 존재한다며 한탄했다. 김기태가 내게 말했다.
-세상이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를 건조하게 응시하다 대답했다.
-원래 세상이 이런 건데요.
김기태는 말이 없었다. 지옥 같은 한 해가 앞이 보이지 않는 채로 저물고 있었다. 

-골든 아워, 이국종





 인용은 골든 아워구요, 오늘 이 책은....그러니까 이 책은 임계장 이야기입니다. 책 제목이 임계장 이야기인데 무슨 말이냐고요? 거기 앉아계신 보라색 티셔츠 입으신 분, 임계장이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임 씨 성을 가진 계장 이야기...네, 아닙니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줄여부른 거랍니다. 저는 이런 말을 할 때 '그런 말도 있어요? 처음 듣네요.'라는 반응이 제일 싫어요. 처음 들을 수 있죠. 저도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가 있었어요. 누구나 처음 뭔가를 접할 때는 있으니까요. 

 그런데 듣고는 저 말이 왜 있는지 생각하느라 '아, 그런 말이 다 있네요'라고 말하는 것과 '나는 그 말을 들을 이유가 없고 알 필요도 없는데 무슨 상관이람?'이라고 생각해서 말하는 것은 느낌이 달라요.  계란도 그래요. 계란,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저는 이 책이 나온 출판사의 다른 책 '웅크린 말들'에서 처음 들었어요. 에스로 시작하는 모 기업의 에어컨 설치 및 수리 기사들이 스스로 부르는 말이에요. 

 부활하냐고요? 예수 재림이라도 했으면 좋겠네요. 사실은 에어컨을 수리하거나 설치할 때 안전장치도 하고 거드는 사람도 필요한데 그게 없이 외벽에 매달려서 일해야 하거든요. 추락하면 반반이죠. 다치거나 죽거나. 둘 다 이러나저러나 깨져 죽는 건 마찬가지니까 네, 그래서 계란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공기업에서 평생 일하시다가 퇴직 이후 계약직으로 일하는 저자가 쓴 글이에요. 노동의 현장에서 실제 겪은 일을 썼는데..오탈자도 없고 읽기에 깔끔합니다. 제가 발견한 오탈자는 '금세' 하나뿐이었는데 개정판이 나오면 고쳐지리라 믿어요. 

 그러나 그보다는.....읽는데 제 옆에서 누가 물어봐요. 뭐 읽는데 얼굴을 오만상을 다 찡그리고 있냐고. 그래서 말했죠. 멀쩡한 사람이 똥물 속에서 뒹구는 이야기인데 이게 실화라고. 그 사람은 내가 비유를 하는지 알았나 봐요. 사실 이 책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진짠데. 





 여러분, 일을 한 번이라도 무엇이라도 해보신 분들. 왜 일하셨어요? 왜 지금은 일하고 계신가요? 

 버틀란트 러셀이 그랬다지요. 일은 적성에 맞지 않다. 하면 피곤해지는 게 그 증거다. 라고.

 그런데 피곤해 지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다치고 부러지고 으스러지거나 죽으면 어떨까요? 저는 위에 이국종 교수의 골든 아워를 인용했는데 그분이 강연에서 그러셨어요. 대충 제가 기억하는 대로 옮기자면....'외상센터에서 일하면 대부분 보는 분들이 말 그대로 중증외상을 당해 위급히 실려 오십니다. 그리고 보통은 공사장에서, 마트에서, 길에서 일하다가 오세요. 위험한 일들을 하시니까요. 지금 이것 듣고 계신 분들, 무슨 생각 하세요? 나는 그런 데서 일 안하니까 다행이다? 그런데 어쩌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인데.'


 네, 저의 소회를 밝히자면...저는 '그런데 어쩌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인데' 저 부분에서 너무너무 부끄러웠어요. 이 책을 읽다가도 그랬어요.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서 책을 덮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혀 평안하지 못하다고 앞서 말씀드린 거에요. 이 책은 읽기가 고통스러워요. 책장이 더디 넘어가는 것도 아닌데, 계속 마음을 추슬러야 읽을 수 있었어요. 이 책이 쉬우셨다면......글쎄요, 거리두기를 상당히 잘 하시는가보다, 이외에도 많은 생각이 들지만 그건 그냥 제 느낌이니까 굳이 이 자리에서 밝히지 않겠습니다.




 저는 앞서 일을 왜 하시냐고 물었었죠. 이 말에 대한 답에 저는 계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슬로의 욕구 이론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자아실현은 모든 욕구 충족 이후 최상위 단계 피라미드에 있어요. 많은 임계장들이 사실 젊은 시절의 성실함과 무관하게 생계에 직면해서 일합니다. 아파트 경비  하시는 분들, 청소하시는 분들, 택배나 공공근로 하시는 분들이 젊었을 때 게을러서 당장 나오신 게 아니에요. 지금 코로나 사태로 더 여실히 느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당장 경기가 나빠지는 게 아니라 우리의 격차가 벌어진다는 겁니다. 로또나 유튜버 말고는 답이 없다면 그것이 과연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일까요? 나는 노후자금 벌고 있고 유산도 있다고 말씀하신다면, 네, 사실 제가 그에 입찬소리 할 입장은 아니지요. 





 단지 저는 우리 사회의 절벽이, 돌부리가 너무 많은데 그에 비해 안전망은 너무 부족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도 요즘은 재난기금도 나오고 공공근로도 있고 일자리센터도 있으니 살만하지요. 

 그런데 여러분, 이건 그럼 어떻게 생각하세요. 의사 부부인데요, 개원을 둘 다 앞두고 서류상 무직 상태였어요. 부인은 아기를 낳았어요. 그래서 복지 혜택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공무집행상 허점을 노린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응당 가야 할 돈이 가야 할 곳으로 간 겁니다. 그러나 세 모녀가 돈이 없어 라면 하나로 몇 끼를 나눠먹다가 미안하다며 동반자살을 했어요. 이들은 방법을 몰랐고 많은 비슷한 사람들이 막상 서류 신청에서 아주 근소하게 자격이 미달되어 지원을 못받아요. 이건 불합리한 거죠. 이런 그림자가 참 많아요. 그리고 임계장의 업무는 그림자투성이다 못해 아주 암흑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행정상의 허점이 아닌 근로계약상의 돌부리가 너무 많아요. 






 그런데 그것 뿐일까요. 이 책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이분이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실 당시, 음식물 쓰레기통을 수돗가에서 씻는데 뒤에서 누가 호통을 쳤대요. 그리고 이랬답니다.




 "어이, 경비! 이 새끼, 너 전에 공기업에 근무했었다며? 거기서 국민 세금을 마구 쓰던 습관을 아직도 못 고쳤군! 주민들 피 같은 돈 들어가는 공동 수돗물을 펑펑 써? 이 새끼, 당장 잘라야 할 놈이네. 네가 버린 수돗물 값은 네 월급에서 까게 해주마. 너 오늘 아주 제대로 걸렸어."


 "이거 먹고 기죽지 말고 일 잘해. 내 말만 잘 들으면 오래 일할 수 있게 해줄게."




네에....그렇습니다. 동일 인물이고요, 두번째 말은 나중에 '껍질이 쭈글쭈글하고 일부는 상해 있었던' 사과를 내밀며 한 말이랍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른 일로 민원을 받고 이런 대목이 나와요. 




 화장실에서 거울을 봤더니 내 눈에 우울함이 잔뜩 서려 있었다. 한참 동안 나를 바라봤다. 지금쯤 그들은 내게 했던 일들을 모두 잊었을 텐데 나 혼자 잊지 못하고 눈물을 쏟고 있었다.




 그저, 정직하게 일해서 돈 받고 그 돈으로 생계도 꾸리고 자식들 학교도 보내고...그게 그렇게 큰 바람이 된 세상이 있어요. 저 대목에서 부끄럽지 않다면 그건 저는 방관자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런 태도죠.




 구청 직원, 지원센터 관계자, 구의회 의원들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여러분은 고령자가 일하는 모범 사례이십니다. 집에서 따분하게 노는 것보다 일을 하시니 건강에도 좋고 용돈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좋아 죽겠네요.(웃음) 저는 여기서 다른 나라의 책이 생각났어요. 바버라 애런라이크가 쓴 '노동의 배신'인데 저자는 청소 도우미 일을 합니다. 그런데 저자의 청소 일을 지켜보던 고용자가 한마디를 해요. '이렇게 몸을 움직이시니 운동도 되고 돈도 버시고 참 좋으시겠어요' 

 전 그 대목을 읽다가 '그렇게 좋으면 네가 하든가' 소리가 절로 나왔는데요, 네, 일이란 건 앞에서 이국종 교수님의 말에서 가져왔듯이, 누군가 언젠가는 해야 하는 겁니다. 

 

 단, 제가 이 책을 읽고 생각한 건 하납니다. 누군가 언젠가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기왕이면 기본을 지키고 원칙은 지켜야 하는 거 아니냐고. 

 간단해요. 휴게시간 정확히 주고, 휴게시간엔 무슨 일이 있어도 쉬게 하고. 방한복 작업도구 지급하고 존대말 하고, 일하다 다치면 치료비 시간 지원해주고요. 

 워라밸, 주 40시간 근무, 큐오엘, 다 좋아요. 모든 좋은 것들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고 봐왔으니까. 그런데 터미널 고속의 경비원 숙소가요, 공중화장실 앞에 있어요. 잘 때도 무전기 켜고 자야 해요. 그리고 까는 침구 덮는 침구 세 개씩인데 공동으로 쓰는 거고, 세탁 한 번도 안 해서 벌레와 곰팡이와 냄새가 쏟아져요. 거기서 어떻게 자냐고요? 글쎄요. 다들 마스크하고 손 소독 하고 사회적 거리 유지하시는데, 그곳은 아직도 그럴는지......





 솔직히 저는 이런 일자리들만 더 늘어나고, 거기에도 지원자가 수두룩 모일 수밖에 없는 세상이 겁나요. 이제 4차 산업혁명이 닥치면 많은 업종이 사라지겠죠. 그럼 사람은 기계보다 못해질거에요.  그럼 어때요, 사람은 이제 더 막 대해도 되는 존재가 될겁니다. 그래서 굳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 책이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게 해달라고, 그저 '어머, 이런 일이 다 있네!'하고 책꽂이에 꽂아놓고 잊어버리지 말라고. 많은 이가 제각각 다양한 곳에서 일하고 있고, 지금 당장 내가 등 따시고 배불러도 영원히 그러란 법 없고요, 그리고 그저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우리가 지금껏 사람 갈아 넣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도 그러란 법은 없잖습니까? 사람이면 사람답게 살면 좋겠어요. 최소한으로 라도요.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모두 가내 평안하시고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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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5-23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신문에서 이 책 저자분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Jeanne님 글을 마주치고 놀랐네요. 얼마전 극단적 선택 하신 경비분 사연에 남 일이 아니란 생각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 하시는데 참 마음 아팠어요. 극소수의 독하고 나쁜 사람들이 문제지만 대다수인 방관자에 나도 속하겠지 싶어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월급주는 사람이니까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어요ㅠㅠ;

Jeanne_Hebuterne 2020-06-03 02:06   좋아요 0 | URL
달밤님!
이 책은..그러니까 이 책이 다른 책들 아래 쌓여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책이었어요. 가끔, 준 사람은 잊는데 왜 받은 사람만 아파야 할까 싶습니다. 아직도 마음의 생채기들을 생각하면, ‘나의 힐링에는 사람이 없어야 해!’라고 말하는 이수정 교수의 말이 떠올라요. 타인도 나랑 비슷할거라는 기본값 때문에 사기치는 사람들한테 넘어가는거라는 친구 말도 떠올랐고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직도 모르겠어요. 계속 이런 상황들을 넘기지 않는 것, 그것이 출발이 아닐까 하는 거친 생각이 남아서 좀 거칠게 쓴 리뷰였어요. 언제나 조용한 제 서재에 와주셔서, 계속 여기 있어주셔서 고마워요, 달밤님.

Jeanne_Hebuterne 2020-06-03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덧붙이기-‘금세’는 제가 잘못 알고 있었고, 옳은 표기라고 어느 분께서 친절하게 일러주셨습니다! 제가 잘못 알았고, 출판사 글이 맞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