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게도 국수 - 인생의 중심이 흔들릴 때 나를 지켜준 이
강종희 지음 / 비아북 / 201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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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식사로는 국수가 좋다

영혼이라는 말을 반찬 삼을 수 있어서 좋다


퉁퉁 부운 눈두덩 부르튼 입술

마른 손바닥으로 훔치며

젓가락을 고쳐 잡으며

국수 가락을 건져 올린다


국수는 뜨겁고 시원하다

바닥에 조금 흘리면

지나가던 개가 먹고

발 없는 비둘기가 먹고


국수가 좋다

빙빙 돌려가며 먹는다

마른 길 축축한 길 부드러운 길

국수를 고백한다


-이근화, '국수' 중에서.



 


 편안한 옷, 오래 걸어도 아프지 않은 신. 선글라스도 없이 선크림도 바르지 않은 맨피부가 햇살에 눈부시게 빛난다. 어디를 가나 바람이 춘삼월 봄바람처럼 부는 곳에 와있다. 골목 모퉁이마다 다른 방향의 회오리바람이 몰아친다. 언제나 떠났던 곳. 그림자가 또렷했고 커피는 진했고 무지개빛이 선명하다. 햇빛과 바람을 온 피부로 받고 싶다. 이제 이곳에 당분간 뿌리를 내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다이어리를 펼치면 연필 대신 모나미 153으로 볼펜 잉크를 닦아가며 쓴 메모. 꽃노래도 한철이어라. 이제는 몇 번을 들여다본 남의 일기장이 더는 궁금하지도 않을 지경이 되었을 때 들려오는 고백 따위, 무슨 상관이람. 그래서 이곳의 바람을 온 피부로 받으며 스쳐 보내고 싶었나 보다. 




 몇 번 들렀던 편지지와 카드 따위를 파는 가게에 들어간다. 고양이 그림이 있는 카드를 구경하다 문득 집에 있을 고양이들이 생각난다. 궁금함과 그리움이 아니다. 그들이 내게 해주었던 곡진한 위로, 웃음 그 자체의 웃음, 격렬한 감정이 떠오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온종일 공기만 들이마실 때 내 옆에 종일 누워있던 그 털 뭉치. 맹렬하게 뛰어가다 문에 박치기 하던 슬랩스틱. 조금 전까지 내게 뽀뽀, 골골이, 꾹꾹이를 해대며 애정을 표현하다가 내가 억지로 잡아챌 때 드물게 하던 하악질. 그 작은 털 뭉치가 고양이가 되고 그 작은 비누거 품이 단단한 그림자가 된다. 




 그들에게는 완벽한 일체의 감정이 없다. 좋아 죽겠는 순간에조차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다. 너는 너의 일을 했고, 나는 나의 일을 했어. 이 말이 이렇게 완벽히 성립하는 관계가 오랜만이다. 그간 얼마나 이 선을 등신처럼 못 그어서 전전긍긍, 많은 검은색을 희게 칠했나. 사실은 아직도 등신이고 앞으로도 바보 천치일지도 모른다. 속을 알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그 속이 내 속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고 싶어서. 이것은 죽은 정자와 죽은 난자가 만나 죽은 아이를 잉태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에의 열망이다. 최선을 다하여 미쳤던 시절 찾아낸 최선의 미친 모습을 아직도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니. 결코,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으로 고리를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지쳤고 나의 사랑은 늙었다. 지침과 늙음을 상쇄하기 위해 이렇게도 거리를 없애려 기를 쓰고 또 쓰다가, 결국, 그것은 내 마음이 아니라 내 사랑이 제멋대로 가는 것임을 깨달았다. 아니,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려 애쓴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나는 나의 사랑이 지닌 것 이외의 모든 것이다. 나는 흰 피부로 햇빛과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다. 삶에 대한 비관적인 낙관이 가득하다. 그럴 리가 없다는 불신, 닫고 절대 열지 않는 서랍을 가진 주제에 다른 서랍을 넘본다. 사랑 그 뒤의 쓸쓸함.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을 뒷모습까지 알아챘을 때 나는 더 무섭고 대담해졌다.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서 헤더가 그리 말했듯, 비밀을 고백하는 것은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이다. 나는 결코, 내 비밀을 고백하지 않을 것이다. 좀 더 걸어서 이번엔 다른 가게를 찾는다. 





 작은 골목 안에 숨은 더 작은 골목에 그 국숫집이 있었다. 벽에 붙은 메뉴에는 그저 2인분, 3인분, 4인분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식당 안에는 휠체어를 탄 여인을 데려온 가족 한 팀이 있었고, 외국인 노동자 한 명이 어색하게 낀, 아마도 고용주인듯한 남녀 일행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자 테이블 네 개가 고작인 작은 식당이 꽉 찼다. 다들 막걸리에 소주까지 반주를 하는 눈치였다. 나도 그때는 정말 술 생각이 났다. 아쉽지만 아이를 데리고 몸을 못 가누는 형편이 될 수는 없으니......사이다와 2인분을 주문했다.

 10여분을 기다린 끝에 커다란 양푼에 담긴 국수와 김치 한 보시기가 나왔다. 마그마처럼 붉고 뜨겁게 끓어오르는 국물을 훌훌 저어가며 국수를 양껏 대접에 퍼 담았다. 한눈에도 매운탕이나 어탕 국수에 더 가깝지 않을 까 싶게 걸쭉한 국물과 제법 튼실한 생선 토막들이 눈에 띄었다.

-책속에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이지만 분위기가 길마다 많이 다르다. 아무렴 그 국숫집은 명품샵이나 고급스러운 호텔 옆에 있지 않았다. 좀 많이 허름한 간판, 들어가면 와글와글 각국어로 외치는 소리. 강한 타이 억양은 목소리를 한층 더 높게 만든다. 한 명, 먹고 갈 거에요. 이렇게 말하면 주로 바 자리를 내어준다. 벽을 마주하거나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창밖의 한무리 사람들이 보인다. 구중 구월 생활처럼 그들은 자주 오는 사람을 보고도 아는 체하지 않아 좋다. 후덥지근한 공기를 달구는 것은 온갖 해산물 볶음, 생숙주의 향, 고수, 향신료 냄새. 내 왼편의 여자는 내 그릇을 흘깃 보더니 뭔가를 길게 이야기한다. 채식주의자가 먹을만한 국수를 주문한다. 오른편의 여자는 자기 앞에 놓인 국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찰칵, 소리를 내고는 한 입 후후 불어먹기 시작한다. 오늘은 뭐 먹느냐는 문자에 가끔 나도 사진을 보내기도 했고, 국수를 먹는다고 말하기도 했다만 주로 이 가게에 와서는 이제 그러지 않는다. 책도 잘 읽지 않고 그저 내 앞에 나온 국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국물을 삼킬 뿐. 






 




 언젠가는 잔치국수를 해먹고 싶어 애호박, 표고, 국물용 멸치, 시금치, 당근, 양파, 새우, 오이 등을 사 온 적이 있었다. 때마침 집에 새로 냉장고와 냉동고 기능을 겸한 기기를 장만했다. 사용설명서가 없었고 다이얼을 2로 맞추어 놓았더니 당근이 야구 방망이로 변했다. 다이얼을 5로 하자 이번엔 포도주병이 터졌다. 그 뒤로 다시 장을 봐와서 국수를 삶아 먹으면 그만이었겠으나 나는 대장금처럼 경합과 역경을 딛고 스스로 재창조해나가는 인간이 아니었던지라 그때 냉장고에 기분 상한 그 마음은 아직도 회복되질 않고 있다. 대신 내게 위로를 건네고 싶거나 따뜻하게 내가 나를 안아주고 싶다......싶을 때. 정신 차리고 보면 나는 그 국숫집에 가서 앉아있다. 이 따끈한 국물을 삼키고 면을 훌훌 불어 젓가락으로 감아 입에 밀어 넣는다. 국수는 참 바쁘고도 고즈넉한 음식이다. 뜨거운 국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더욱. 국물이 뜨거울 때 삼키고 싶어 국물을 마시다 보면 면이 불어난다. 쫄깃한 면을 먹다 보면 국물이 조금씩 식는다. 혀를 델 만큼 뜨거운 통각, 몸을 녹이는 샤워, 그 뒤 머리카락을 말리며 마시는 따끈한 검은 커피. 살다 보면 이런 것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콩나물, 그 날 들여온 생선, 기계로 뽑은 납작한 칼국수 면을 고춧가루 듬뿍 풀어 끓여낸 모리국수는 원래 고된 뱃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부들을 위해 만들어주던 음식이었다. 국물이 시뻘개지도록 투하한 고춧가루도 그렇지만 마늘이 듬뿍 들어간 데다 생선과 국수의 전분으로 걸쭉해진 국물이 칼칼하고 든든했다. 거기에 2인분이 웬만한 3~4인분에 해당할 만큼 그 양이 푸짐했다. 마늘이 잔뜩 들어간 김치는 생선을 넣은 개성 강한 칼국수와 함께 먹기에 적당한 맛이 들었다. 

-책속에서




 스물아홉 개의 국수 이야기를 담은 책.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많이 흘려 국수 국물이 넘치는 느낌이 좀 아쉽지만, 그런대로 국수를 먹고 싶어서 국수 대신 흘깃거린 책. 야근의 밤을 넘어가며 동료와 함께 들이키는 두부 국수. 아이와 함께 먹는 모리 국수. 엄마와 함께하는 명동 칼국수. 





 미각은 기억이며 음식은 추억이다. 박찬일의 요리 이야기는 쉐프의 부엌을 보여준다. 용윤선의 커피는 눈물을 삼킨다. 카모메 식당이 품은 따뜻한 마음, 바베트의 만찬이 펼치는 우정. 강종희의 국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인간은 생존을 위해 먹다가, 막상 생존을 위해 먹는다는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각종 조미료를 뿌리고 더 많은 재료를 찾고 다른 맛을 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장면의 달콤한 캐러멜 소스가 주는 기억. 누군가 내게 차려준 스파게티의 느낌. 애써 품고 온 팟타이의 아삭한 숙주의 식감. 오빠와 동생이 같이 먹는 한밤의 라면, 지글지글 불판 위의 고기를 구우며 원시 부족처럼 동지애를 다진 다음 먹는 열무 냉국수. 계속된 야근의 끝에 고기를 불판에 굽다가 마지막 순간, '밥 할래, 냉면 할래?'라는 물음을 받고, 총무는 밥은 몇 명, 냉면은 몇 명...되내이며 주문을 하던 밤. 그 와중에 '소주 하나 더요'라는 목소리가 옆에서 새어 나오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그렇게까지 갉아먹을 필요가 없었을 텐데. 길게 살다 보면 다 거기서 거기일지도 모르는데.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든다. 천만의 말씀. 불판의 열기를 느낄 때가 있고, 냉면의 냉기를 속에 들일 때가 있다. 






누군가가 그랬다. 생선은 낯설고 잔인하다고. 육지의 생명인 나와 다른 세계, 비밀의 바다에서 온 생명을 먹는 나라는 존재의 생존을 직시하는 행위다. 낯설과 원초적인 바다의 존재, 생선이 그득한 국수 냄비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했던가.

 버텨.' 불과 수시간 전에도 넘치는 생명력으로 바다를 헤엄쳤을 아귀가 소근, 내게 던진 귓속말은 이랬다. '날 먹고 버텨봐. 길게 가늘게 이어지는 국숫발처럼 그렇게 버텨. 괜찮을 거야.'

-책속에서




 강종희의 기억과 인물이 화려한 만큼 국숫집의 정보는 맛 기행 블로그를 넘지 않을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책이 어느 한쪽으로 더 나아가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함이 슬쩍 스민다. 웃음이나 눈물을 더 채웠더라면. 혹은 지도나 좌표를 더 찍었더라면. 어떤 책은 스스로 위치를 더없이 확실하게 해주어 명쾌함을 더한다. 론리 플래닛의 여행 시리즈가 그렇고 이케아 카탈로그가 그렇다. 반대의 명쾌함을 주는 경우는 김영하와 김연수의 에세이가 그렇다. 여기서 적당한 타협을 찾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일 거란 짐작을 다시 한 번. 임원직을 맡은 워킹맘의 고단하고 치열한 마음이라는 개인의 경험이 국숫발에 그대로 녹아들기는 조금 힘들었나 보다. 

 모름지기 햇빛을 향해 줄기차게 뻗어 나간 나뭇가지를 자르기란 힘든 노릇. 쓰는 자와 읽는 자의 틈, 벽은 이럴 때 조금씩 자라난다. 쓰는 자는 하나이지만 읽는 자는 여럿이므로. 읽는 이가 걷는 평행우주, 이해하면서도 비교하고 추억하는 저울질을 감당하기에 저자의 목소리 힘이 조금 강하고 높게 느껴진다. 재료 하나를 두고 떠올리는 깊은 통찰과 보편성 대신 야트막한 언덕과 누군가의 다이어리를 잠시 엿보는 느낌을 대신 택한 책. 제목만큼은 그러나 분명하고 당연하며 지당하다. 어이없게도 나를 지탱시켜준 국수. 국물과 면발을 홀홀 들이키고 싶은 날 불현듯 생각난 책.



 





끝이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우린 이미 알고 있었지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이라는 걸
이것이 마지막 잔이라는 걸

눈빛을 나누고 건배를 하고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
내 마음 속에 버려두었던 사진기를 꺼내 찍는다

'찰칵' 울림이 없는 소리,
그 소리를 따라서 얼마나 걸었던가
'찰칵' 이제는 무엇을 따라
또 얼마나 걸어가야 할까

마시자 마시자 마시자
서라벌 호프에 우린 사라지겠지만
서울의 꿈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마시자 마시자 마시자
서라벌 호프는 다시 오지 않겠지만
서울의 꿈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마시자 마시자 마시자
서라벌 호프에 우린 잊혀지겠지만
서울의 꿈은 이제부터,
우리들의 꿈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아립, 서라벌 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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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1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2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몬스터 2015-07-21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Jeanne Hebuterne님, 저도 지난 달에 아기 고양이 입양해서 함께 살고 있는데 고양이는 처음이라 여러가지로 낯설고, 예쁘고 , 신기하고 그래요. 개와는 정말 많이 다른 생명체더라구요. 에너지가 많은 건지 , 제가 많이 놀아주지 못해서 그런건지,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제 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늘 후다닥 후다닥이거나, 뭔가를 가지고 혼자 놀거나 그래요. 퇴근하고 집에 가면 잠깐 반겨주고 , 식사때 되면 가까이와서 살살 비벼대는 것이 전부인 너무나 독립적인 녀석과 살고 있어요. 제가 일하는 동안 필요한 잠을 다 자는 듯 해요. 세 녀석을 들이기 쉽지 않으셨을 듯 싶은데 , 녀석들 행운이네요.

Jeanne_Hebuterne 2015-07-22 09:10   좋아요 0 | URL
몬스터님

어므낫, 냥이 집사시로군요! 저도 냥이 셋을 지켜보다 보니 정말 정말 정말 신기한 생명체 같아요. 소설가 김영하도 그러더라구요. 고양이는 인간보다 훨씬 작고, 약하고, 빨리 죽는데 한없이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낯설고 예쁘고 신기하다는 말 정말 동의해요. 그 많은 이들이 집사가 되고나서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냥이로 도배하는 것도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했고, 2년 전 죽은 고양이 이야기를 하며 우는 친구도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했고.

식사 때 살살 비벼대는 것이 전부, 잠깐 반겨주는 것이 전부. 그 구분이 명확한 이 생명체가 참 좋습니다. 사람이 제각각이듯 고양이도 제각각이어요. 제 곁에 있는 님부스는 제가 다른 고양이들 등을 만져주면 꼭 `냥!` 하고 소리를 내며 빤히 쳐다보고서는 천천히 다가와요 셜록은 슬랩스틱의 대가죠. 칼리는 얼마나 새침한지요. 다들 사료 앞에서 야옹거리며 펄쩍거리는데 칼리는 늘 물그러미 바라보며 자리에 앉아있어요. 칼리가 사료 앞에서 우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죠. 지금은 셋이서 챔피언스 리그 나간 것처럼 소리지르며 뛰어다니고 있습니다만, 고참 집사들에게 물어보니 이 우다다는 성묘가 되면 그리 많지 않을거라고들 하더라구요.

캣닙 줄까? 하고 물어봤을 때에도 `그 당시는 여러가지로 미친 시기이므로 좀 더 커서 늘 식빵굽기만 할 때 주어도 된다`라는 답변도...

코코 잘 있죠? 아, 이제 다른 고양이들도 궁금해지는 시기!

덧-냥이는 넷이었는데 차마 넷은 감당 못하고 한 마리는 입양 보냈어요ㅠㅠ

아무개 2015-07-22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잔치국수, 비빔국수, 칼국수. 짬뽕, 우동, 라면 등등
면 요리를 정말 좋아해요.
그래서 이 책을 보관함에 넣어 두었었는데,
쟌님의 페이퍼로 읽은 셈 치렵니다. ㅎㅎㅎ

Jeanne_Hebuterne 2015-07-22 09:16   좋아요 0 | URL
아무개 님
면 요리 정말 좋죠! 밀면, 잔치국수, 막국수, 평양냉면, 자장면, 짬뽕, 우동, 라면, 비빔면! 비빔면은 하나는 약간 부족한 것 같고 늘 두 개는 좀 많은 것 같고..아, 그러고 보니 간짜장도 떠오르고..제가 살던 곳에서는 꼭 간짜장에 계란을 같이 얹어서 줬는데 다른 지역에서 시켜먹을 때 계란이 없어 놀랐던...문화충격이 떠오릅니다. 뭐! 간짜장에 계란이 없어! 뭐! 순대에 장이 안나오고 소금만 나온다고! 뭐! 소고기전을 안해먹는다고!! 종종 어떤 문화충격은 먹는 것으로 더 격하게 다가와요.

사실 이 책은 기대가 꽤 컸는데, 저자의 화려한 경력과 바쁜 일상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공감할까, 하는 의문이 살짝 들었습니다. 물론 모든 이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것이고 특수성을 띠지요. 그가 백수든, 학생이든, 사장이든, 의사이든 자기 일상에 대해 깊이 이야기할 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전문성으로 치자면 막상막하일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훨씬 낯설고 생명스러운 러시아 이야기, 통역하며 일어난 일들이 오히려 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쪽으로 펼쳐졌던 것을 떠올려 보면, 이 일말의 차이는 글쓴이가 얼마나 상대를 덜 의식하고 쓰는가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