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을 처음 본 것은 올해 5월. 동네 길고양이들 밥을 주곤 했다. 그들은 검정 점박이, 카오스 자매, 올블랙, 아메리칸 숏헤어 무늬의 장모종 하나, 그리고 샴 링스포인트.
해질녘이면 캔 하나, 건사료 두어 접시, 물그릇 하나를 뒷마당에 내놓았다. 조용한 손님. 말없이 먹고 말없이 쉬다 사라지곤 했다.
녀석을 처음 본 것은 그날 저녁.
날 기다리고 있었다.
사료 그릇을 달그락거리며 다가가자 얼른 도망친다.
가지 마. 가지 말고 밥 먹어야지. 밥 먹고 가라. 괜찮아. 밥 먹자.
녀석이 뒤돌아서서 날 빤히 쳐다보았다. 말없는 몇 초, 그때부터 몇 달. 녀석은 내게 다가오더니 물을 마시고, 사료를 먹었다. 먹는 것에 방해가 될까봐 난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러면 안된다고들 하던데 녀석과 매일 눈인사를 했다. 어느날은 일이 있어 해가 진 다음 귀가했는데 불켜진 뒷마당에 녀석이 뒷문을 보고 앉아있었다. 그날도 밥을 주고 몇마디 건네고 돌아섰다.
펀딩을 해볼까..아니면 동물보호센터에 데려가 볼까..
생각하게 되었다. 녀석은 귀가 쫑긋, 줄무늬 꼬리의 샴 링스포인트. 품종 고양이인만큼 유기묘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코가 없었다. 생살이 너덜거렸는데 하루 자세히 들여다 보았더니 구더기가 보였다.
펀딩은 시간이 걸리고 동물보호센터는 무료 진료기간이 정해져 있어 한 달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그나마 스노트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아마도 안락사 할 거란 답을 듣고 그 날 저녁, 이동장에 스노트를 넣어 야간응급진료 병원을 찾아갔다. 깨끗하고 24시간 진료도 하는 곳인데 진료소 뒷쪽에서 고통스런 개의 울음소리가 계속 들렸다. 병원 로비의 텔레비전에서는 고든 램지가 참가자들에게 욕을 퍼붓고 있었고 나는 스노트를 꺼냈다.
직원들의 한숨소리. 어차피 예상했지만 그날의 진료 내용은 예상하지 못했다.
보호자분 고양이가 아니고 길고양이라니까 말씀드리는건데요, 안락사 시키세요. 이런 길고양이는 안락사가 제일 나아요.
무슨 병인가요?
피부 암이에요. 안에 구더기도 파고 들어갔네요.더 정확한 건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지만 만약에 단순처치 하실거라면 지금 이렇게 액수 들거고요, 정밀검사 원하시면 견적 낼 수 있어요. 근데 안락사 하시죠?
한참 생각하다가 지금 결정 못하겠으니 일단 데려가겠다고 했다.
스노트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정말 달게 잤고 뒷마당에 돌아와서는 습식 캔 하나를 다 먹었다.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날은 더 그러했다.
아침 일찍 경찰이 서류를 들고 나를 찾아왔다.
병원에서 이야기 들었는데, 길고양이를 어제 데려오셨다고요. 안락사 시켜야 할 고양이라고 듣고 왔어요. 저희가 데려가서 안락사 시킬게요.
온 세상이 이 조그만 샴 고양이에게 죽으라고 등을 떠밀고 있었다.
혹시나 치료받을 가능성도 있는지, 입양될 수 있는지 물어보자 아마 어려울 것 같다고, 최대한 치료하겠지만 의사 소견으로는 치료가 힘든 경우였고 안락사 대상일거라는 말을 들었다.
제가 뒷마당을 혹시 봐도 될까요? 지금 데려가려고 차량을 갖고 왔거든요.
그날 내가 불렀지만 스노트는 나오지 않았고 나는 24시간 이내 스노트를 잡아 대령하여야 한다는 공문을 받았다. 시간이 없었다.
조그만 샴 링스포인트. 찡찡이. 스노트 스노트! 부르면 늘 장난스럽게 겅중겅중 뛰어나와 나와 장난을 치고 갸르릉대는 고양이. 하늘같은 파란 눈이 예쁜 용감한 고양이.
나이 열 살 이상 추정, 중성화 된 수컷. 아마도 누군가가 키우던 고양이. 얼굴 절반이 없고 구더기가 있는 늘 파리가 들끓는 고양이.
나는 그날밤 스노트를 이동장에 불러들였다. 내일아침이면 스노트는 어디론가 가야한다. 시간이 없다. 스노트에게 시간이 없는건지 내게 없는건지 우리에게 없는건지는 몰랐지만 다음날 아침 일단 차에 스노트를 태웠다. 그리고 경찰서가 아닌 동물병원으로 스노트를 데려갔다. 다른 동물병원, 더 친절한 곳. 스노트가 비명을 지르지 않을 곳. 이름은 뭔가요? 어이구 녀석, 성격 참 순하다. 자 한번 볼까. 라고 말을 건네주는 곳. 스노트의 상처를 보고도 한숨쉬지 않는 곳.
헉 소리나는 진료비를 치르고 몇시간 걸려 구더기도 빼고 상처도 치료했다. 경찰서에 전화해서 내가 입양했다고 전하고 진료 후 스노트를 집으로 데려와 기존의 고양이들과는 격리했다. 이동장 문을 열어도 어리둥절 나오지 않던 스노트는 내가 말을 건네자 마취도 덜 깼으면서 비틀비틀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내 손을 잡아라, 내 고양아. 놓지 말고 잡아라. 내가 모든 걸 다 해주지는 못하겠지만, 따뜻하거나 시원한 집. 신선한 밥과 물, 가족을 주고 싶었다. 모두가 그렇게 네 등을 떠밀지만은 않는다고, 누군가는 너를 사랑한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검사결과는 기록적인 비용과 함께 좀더 후에 나왔다. 박테리아와 피부암이었다. 전염은 안되지만 눈에 보이는 상처 뿐만이 아니라 얼굴 대부분을 잘라내는 공격적인 수술을 해야 했다. 아마 눈까지도. 그런 다음에는 재건수술을 해야 하는데 스노트 경우 이식할 피부가 없으니 기증해줄 고양이(과연 그런 고양이가 있기나 하다면)를 구해야 했다. 이 모든 과정 중 항생제를 다량 투여해야 하는데 2 킬로그램 좀 더 넘는 열 살 넘은 스노트가 이걸 다 견뎌내기에는 무리였다. 의사는 수술보다는 항생제를 조금씩 써서 상황을 늦추는 쪽으로는 할 수 있다고, 자기 고양이였다면 안락사를 생각해 보았겠지만 고양이의 경우 살겠다는 의지라든지 성향이 중요하니 내가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항생제를 택했다. 오늘은 아니야. 내일도 아니겠지. 그럼 괜찮아. 이건 명백히 더 데이 애프터 투머로우였다. 내일은 아니야. 당장의 이별이 아닌 언젠가의 예정된 이별. 나는 죽고 싶을 것이다. 나였다면 스스로의 안락사를 택할 것이다. 그러나 스노트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약도 잘 먹고 밥도 잘 먹었다. 숨지 않고 장난을 치고 기운도 왕성해서 살도 더 쪘다.
자만했었다. 내가 잘 돌보고 있다고, 몇 달이 걸려 천천히 시간을 들여 기존 삼남매와 합사도 잘 되었고 스노트는 아직 잘 버티고 있다고. 만약에 힘들어지면 그땐 보내주겠지만 잘 있다고. 삼남매와 스노트는 아침마다 서로 냄새를 맡고 함께 산책도 했다. 12월, 스노트는 잘 뛰고(내가 잠에서 깨면 늘 나를 쫓아다닌다), 잘 먹고(캔 하나를 한 번에 다 먹는다), 잘 자고, 화장실도 잘 갔다. 나는 스노트가 올해를 나와 함께 보낸다고 확신했다. 그날도 그랬다. 스노트는 아침 일찍 일어나 나를 쫓아다녔다. 산책을 나와서 햇빛을 한참 쬐고 바람냄새를 맡더니 팔랑거리는 셜록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 또 햇빛에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스노트는 고개를 가누지 못했다.
조언을 구해보니 곡기를 끊으면 이삼일에서 일주일 내에 무지개 다리를 건넌다고 했는데 스노트는 아침도 먹었으니 아직은 시간이 있을거라 생각했다. 새벽 두 시까지 몸을 주물러주고, 수건에 물을 적셔 입을 축여주고 세수도 시켰다. 새벽 한 시 즈음엔 내가 자장가를 부르자 이삼초간 골골거렸다. 우리의 일과. 자장가와 골골송을 기억하는구나 스노트. 눈물이 났지만 내가 울면 스노트가 제대로 앓지도 못할까봐 일부러 아무일 없는척 했다. 그저 계속 이야기하고 몸 주물러 주고. 지금 가려면 그 안락사 종용 병원밖에 선택이 없으니까 내일 아침 가던 곳 가야지. 수액이라도 맞게 하면 그래도 가는 길이 편안할거야. 그리고는 스노트에게 인사후 새벽 다섯시 반까지 눈을 붙였다.
우리 용감한 스노트. 내일 아침 또 같이 산책도 나가고 우리 재미있게 놀자.
그게 마지막 인사였다. 다섯 시 반, 스노트가 똑같이 누웠는데 뭔가 이상해서 손을 대어보니 몸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런데 숨을 쉬지 않았다. 다시 귀를 대보아도 심장도 뛰지 않았다. 혹시나 사람처럼 청신경이 살아있을까 싶어 마지막 인사를 했다.
우리 용감한 고양이 스노트, 그렇게 귀여운 꼬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당당한 걸음으로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첫째날은 눈물만 계속 났고 둘째날은 그리웠고 셋째날은 스노트를 아는 사람들의 인사에 스노트를 묻어주었다. 지금은 없는 용감한 고양이. 나는 누구에게나 스노트의 죽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나와 아무리 친해도 반려동물의 의미를 모를 이에게는 일상적으로 대하고 있다. 스노트의 죽음은 오로지 스노트를 처음부터 애틋하게 보아주고, 스노트를 잘 아는 이에게만 말했다. 그리고 여기 내 내밀한 서재에 이제 마지막을 정리를 한다. 나는 이제야 내 가장 고마운 고양이가 떠났음을 깨닫는다.
안녕, 우리 용감한 고양이 스노트. 못해준 게 많아서 미안해. 사랑하는 스노트, 안녕.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2017년 12월 15일 새벽 세 시에서 다섯 시 반 사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