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삼례역에서 기차가 운다, 뿡뿡, 하고 운다, 우는 것은 기차인데

울음을 멀리까지 번지게 하는 것은 철길이다, 늙은 철길이다

 

저 늙은 것의 등뼈를 타고 사과궤짝과 포탄을 실어나른적 있다

허나, 벌겋게 달아오른 기관실을 남쪽 바닷물에 처박고 식혀보지 못했다

곡성이며 여수 따위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반하지 못했으므로

단 한번도 탈선해보지 못했으므로 기차는 저렇게 서서 우는 것이다

 

철길이란, 멀리 가보고 싶어 자꾸 번지는 울음소리를

땅바닥에 오롯이 두 줄기 실자국으로 꿰매놓은 것

 

그 어떤 바깥의 혁명도 기차를 구하지 못했다

철길을 끌고 다니는 동안 서글픈 적재량이 늘었을 뿐

 

그리하여 끌고 다닌 모든 길이 기차의 감옥이었다고

독방이었다고, 그 안에서 왔다갔다하면서 저도 녹슬었다고

 

기차는 검은 눈을 끔벅끔벅하면서 기어이

철길에 아랫배를 바짝 대고 녹물을 울컥, 쏟아낸다

 

 

- 안도현 《간절하게 참 철없이》p.22 <기차>

 

 

 

*

 

며칠 후에 타게 될 기차 생각에, 문득 떠오르던 이 시.

 

배반하지 못했으므로,

단 한번도 탈선해보지 못했으므로

 

그 어떤 바깥의 혁명도 구하지 못한 저 늙은 것, 기차는 저렇게 서서 우는 것이다.

 

제일 좋아하는 교통 수단이 기차인데,  KTX보다는 무궁화호가 그저 좋은 나로서는

이 시를 읽고 난 뒤 기차를 탈 때마다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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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지용은 여행을 '이가락離家樂'이라고 했다.
집 떠나는 즐거움.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우선 근사한 여행지를 전제하지 않아서 좋다.
그저 집을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그 뜻이 좋다.
집을 떠나면 우선 나는 달라진다. 낯선 내가 된다.
낯설지만 나를 되찾은 것 같아진다. 내가 달라진다는 게 좋다.
달라질 수 있는 내 모습을 확인하는 일이 무엇보다 좋다.


-김소연, 《어떤 날 :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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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르스틴 기어의 소설 <이토록 달콤한 재앙>.
글 중간 중간에 격언(혹은 명언)이 삽입되어 있는데,
소설의 내용과 참 잘 어울려서 격언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는데요,
격언이 나올 때마다 메모해뒀던걸 다 모으니 꽤 많아서 알라딘 서재에도 모아 올려봅니다 :) 

 

 

 

살면서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해선 안된다.

선택이란 그만큼 중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버트런드 러셀

 

*

 

서두르는 데서 실수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절대 불안한 상태에선 행하지 말라.

-중국 격언

 

*

 

좋은 것을 얻은 사람이 감사의 답례를 하는 것은 사랑받아 마땅한 풍습이다.

-빌헬름 부슈

 

*

 

아무리 바보라도 위기는 있는 법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바로 일상이다.

-안톤 체호프

 

*

 

여자는 남자보다 쉽게 실수를 범한다.

그래서 여자들이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는 것처럼 보인다.

-지나 롤로브리지다

 

*

 

세상의 문제는 사람들이 술을 너무 적게 마신다는 것이다.

-험프리 보가트

 

*

 

유혹에는 넘어가줘야 한다. 그 유혹이 또 온다는 법이 없으니 말이다.

-오스카 와일드

 

*

 

방향을 바꿨어야지. 고양이가 쥐에게 한마디 했다. 그리고 쥐를 잡아먹었다.

-프란츠 카프카

 

*

 

도덕은 호르몬의 반란에 대한 끊임없는 싸움이다.

-페데리코 펠리니

 

*

 

양심은 끊임없이 찾아오는 시어머니다.

-헨리 루이스 멩켄

 

*

 

경험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실수에 붙이는 이름이다.

-오스카 와일드

 

*

 

대화는 배를 타고 가는 여행과 같다.

모르는 사이 육지에서 벗어나고, 모르는 사이 해안을 떠나 멀리 나아가 있으니.

 -니콜라 샹포르

 

*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저마다 기쁨을 선사한다.

어떤 이는 방으로 들어올 때, 또 어떤 이는 방에서 나갈 때.

-헤르만 방

 

*

 

모든 것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좋은 결말을 안겨준다.

-레오 톨스토이

 

*

 

천 개의 숫자가 든 병에서 숫자 1000을 뽑는다면 우리는 놀라워할 것이다.

하지만 457을 뽑을 기회 역시 천 분의 1이다.

-라플라스

 

*

 

영리한 사람은 청춘과의 작별을 고할 때,

10년 단위로 여러 번에 나누어 작별하는 법을 알고 있다.

-프랑수아즈 로제

 

*

 

이성과 그것을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은 별개의 능력이다.

-프란츠 그릴파르처

 

*

 

행복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마리 폰 에브너에셴바흐

 

*

 

마리 폰 에브너에셴바흐는 어떤 상황을 생각했던 걸까? 나도 그걸 생각하고 싶다

-케르스틴 기어

 

*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는 사람은 한 번도 새로운 것을 시도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것은 가슴과 머리가 함께 협력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디 앨런

*

 
가족의 품보다 더 살기 좋은 곳이 있을까?

-장 프랑수아 마르몽텔

 

*

 

인생의 갈림길에는 이정표가 없다.

-찰리 채플린

 

*

 

전적으로 자신을 믿는 사람은 타인을 능가할 것이다.

-중국 격언

 

*

 

놀라움은 언제나 예기치 않은 곳에서 일어나는 법이다.

-빌헬름 부슈

 

*

 

최초로 콜럼버스를 발견한 아메리카인은 고약한 발견을 한 것이다.

 -게오르크 리히텐 베르크

 

*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호라티우스

 

*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실수를 되도록 일찍 저지르는 건 인생의 큰 행운이다.

-윈스턴 처칠

 

*

 

세상을 잠깐만 들여다봐도, 호러가 현실과 다름없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알프레드 히치콕

 

*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하나는 가슴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얻는 것이다.

-버나드 쇼

 

*

 

서로 총을 쏘는 것보다는 서로 욕을 하는 게 더 낫다.

-윈스턴 처칠

 

*

 

과거에는 겉치레가 더 많았다.

-로리오트(독일 코미디계의 황제)

 

*

 

옳은 말과 거의 옳은 말의 차이는 번개와 반딧불의 차이와 같다.

-마크 트웨인

 

*

 

문명의 창시자는 창 대신 처음으로 욕을 사용했던 사람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

 

결과를 예상했었더라면, 나는 시계 제조공이 되었을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비행기가 그렇듯, 사랑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가 있는 것은 언제나 조종사와 승객 그리고 도로일 뿐이다.

-프란츠 카프카

 

*

 

예감은 언제나 알게 될 것보다 먼저 오는 법이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

 

*

 

잘못을 아는 데서 치유가 시작된다.

-에피쿠로스

 

*

 

화를 낼 때 정말 화가 나는 건 상대방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자기만 손해를 본다는 사실이다.

-쿠르트 투홀스키

 

*

 

살다 보면 위험을 감수하고 일단 일을 시작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실수는 행하는 도중에 바로잡으면 된다.

-리 아이아코카

 

*

 

인간이 현명하게 행동하는 데는 세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충분히 생각한 후에 하는 것이고,
둘째는 가장 쉬운 방법인 남을 따라 하는 것이다.

셋째는 가장 어려운 방법으로, 바로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공자

 

*

 

친구란 내 면전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랠프 월도 에머슨
 

*


잡하지 않게 말하고, 천천히 말하고, 너무 많이 말하지 말라.

-존 웨인

 

*

 

새로운 것을 발견하러 떠나는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새로운 지역을 알아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눈으로 뭔가를 본다는 데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

 

*

 

여자란 티백과 같아서, 뜨거운 물에 들어가기 전에는 자기가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알지 못한다. -엘리너 루스벨트

 

*

 

사물의 본질에는 자신을 숨기려는 속성이 있다.

-헤라클레이토스

 

*

 

정신 차리고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벌거숭이 몸뚱이로 옷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하인리히 하이네

 

*

 

남자가 너에게 선물한 귀고리를 보면

그 남자가 너를 어떤 부류의 사람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

-오드리 헵번

 

*

 

적을 끌어안는 자는 적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네팔의 속담

 

*

 

비교는 행복의 끝이며 불만의 시작이다.

-쇠렌 키르케고르

 

*

 

작은 일을 하기에 자신이 너무 큰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부분 큰일을 하기에 너무 작은 사람이다.

 -자크 타티

 

*

 

당신이 아는 것을 모두 말하지는 마라. 그러나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두 알고 있어라.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

 

*

 

꿈꿀 수 있다면 이룰 수 있다.

-월트 디즈니

 

*

 

무덤가에 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베일로 얼굴을 가린 채 비통해 마지않는 건,

그들의 활력 없는 삶이다.

-게오르크 옐리네크

 

*

 

진실을 말하되, 말하는 방식은 상냥하게 하라.

-에밀리 디킨슨

 

*

 

행복이란 근본적으로 지금 이 생의 조건을 받아들이며 살겠다는 대단한 의지에 다름 아니다.

-모리스 바레스

 

*

 

생각에 한계가 정해져 있지 않다. 원하는 곳이면 어디로든,

그리고 얼마나 멀든 우리는 생각만으로 그곳에 갈 수 있다.

-에른스트 얀들

 

*

 

시대는 변하게 마련이다.

-밥 딜런

 

*

 

난 그 누구에게도 섹스와 마약, 미친 행동을 추천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 그것들을 언제나 큰 도움이 되었다.

-헌터 톰슨

 

*

 

마흔 살의 나이에도 아직 약물중독이 안 되었다면, 더 이상은 중독될 일이 없다.

-스팅

 

*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폭

 

*

 

드라마는 지루한 부분을 잘라낸 삶이다.

-알프레드 히치콕

 

*

 

너는 지금 내 자존심의 마지막 부스러기를 얻은 셈이다. 맛있게 먹기를!

-<어바웃 어 보이>

 

*

 

길가에 놓인 돌들로도 아름다운 것을 세울 수 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나를 변호하기 위해 했던 모든 것이 내가 했던 실수들이었다.

-찰스 부코스키

 

*

 

인생은 도박이다. 잃을 것을 감수하지 않으면 더 큰 것을 얻을 수 없다. -크리스틴 폰 슈베덴

 

*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것은 별로 생각하지 않고, 항상 우리에게 없는 것만 생각한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자, 위험 가운데서 죽게 된다.

-헤르베르트 아흐테른부쉬

 

*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카이사르가 되지만, 누구든 한 번은 자신의 루바콘 강을 직면하게 된다. -크리스티안 에른스트 카를 폰 벤첼 슈테르나우 백작

 

*

 

술에 취한 것처럼 세상에 빛이 가득해 보인다면, 그건 사랑이다.

-딘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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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는 기계의 리듬에 맞서 인간의 리듬을 유지하는 행위이다.

- 주노 디아스

 

*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 신용호 (교보문고 창립자)

 

*

 

우리는 모두 완성되지 않은 한 권의 책이다.

- 소피 카사뉴브루케

 

*

 

무엇인가 살아가고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어딘가로 열려 있고 시간이 기록되는 장부가 있다.

- 앙리 베르그송

 

*

 

때와 장소를 가려 책을 읽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일정한 경지에 올라 있는 사람이다.

- 이문재

 

*

 

한 사람이 어떤 책을 열여덟 살에 좋아했다고 해서

마흔여덟에도 좋아하란 법은 없다.

- 에즈라 파운드

 

*

 

정원을 바라보며 창가에 서 있는데, 서재를 채우고 있던

온갖 살아 있는 책들이 부드럽게 소곤대는 소리가 들렸다.

- 버지니아 울프

 

*

 

한 사람의 서재에 진열된 책들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 니콜 라피에르

 

*

 

어떤 책은 주방에서 읽히고, 어떤 책은 거실에서 읽힌다.

그러나 진정으로 좋은 책은 아무 데서나 읽힌다.

- 토머스 챈들러

 

*

 

책 읽기는 어디에서 이루어지든 간에 그 장소를 피정의 장소로 정화한다.

- 장석주, 『만보객 책 속을 거닐다』

 

*

 

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듯이 방 안에서, 도서관에서, 지하철에서, 기차에서,

버스에서, 나무 밑에서, 앉아서, 비스듬히 기대어서, 누워서 소설을 읽었다.

- 김화영, 『소설의 숲에서 길을 묻다』

 

*

 

기차, 침대, 풀밭 등 우리가 책을 읽는 공간은 책의 모습과 무게,

인쇄된 활자의 형태와 함께 우리의 독서행위에 영향을 미친다.

- 자크 루보

 

*

 

서점의 고요함과 외교적 면책특권을 누릴 수 있는 피난처다.

- 파트릭 모디아노

 

*

 

나의 '우주'. 이것을 다른 사람들은 도서관이라고 부른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바벨의 도서관」

 

*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은 독서하는 습관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다.

- 빌 게이츠

 

*

 

저 하늘나라에 있다는 천국은

엄청나게 큰 도서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가스통 바슐라르

 

 

 130326. 해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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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책 소개, ★ 별 표 뒤에는 그 책에 대한 코멘트 순으로 정리.

 

 

 

불온한 사회를 서늘하게 응시하며 우리 시대 삶의 비의를 날카롭게 파헤쳐온 소설가 안보윤의 첫번째 소설집. 2005년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로 제10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유사 이래 최고의 경제적 번영을 맞이하고 있는 세계에서 비인간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끊임없이 천착하며 무엇이 그들을 아프게 하는지, 과연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지 되묻는다.

이 소설집은 등단 후 십 년 동안 강렬한 작의와 거침없는 발상, 통쾌한 추진력으로 <오즈의 닥터>, <사소한 문제들>, <우선멈춤>, <모르는 척> 등 총 다섯 권의 장편소설을 상재하며 자기만의 소설세계를 개척해온 안보윤의 모든 문제의식이 집약된 총체적 결과물이다.

 

★ <악어떼가 나왔다> 이후 꾸준히 챙겨 읽고 있는 보윤님의 첫번째 소설집.

전작 <사소한 문제들>이 워낙 강렬하긴 했지만, 그래도 보윤님의 소설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싶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46권. 시집 <간결한 배치>(2005)와 <생물성>(2009)을 통해 최소화한 언어와 담백한 묘사, 간결하면서도 견고한 구조가 빚어낸 특별한 감각과 인식의 신세계를 그려온 시인 신해욱의 세번째 시집.

일상에서 채록됐지만 살짝 현실을 비껴가는 겹겹의 시간들, 검게 타들어가거나 하얗게 명멸하는 언어들, 그리고 '나'에게서 비롯됐으나 매일 아침 변신을 거듭하는 무수한 '나-들'의 투명한 목소리들이 행과 행 사이, 연과 연 사이에 남겨놓았던 '신해욱의 웜홀'은 이번 시집에서 좀더 전면화된 모습을 띤다. 바둑판 위에 흰 돌과 검은 돌이 종잡을 수 없는 방향과 형태로 놓이듯 신해욱의 시들은 조금 더 고요하게, 조금 더 정교하게, 조금 더 긴 보폭으로 마음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

그곳에서 '실물보다 큰 생각에 사로잡히게'된 시인은 '가청권 바깥에서/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소리들을 좇아 설령 가슴이 터질 지경에 이르더라도 기꺼이 '너-당신' 혹은 제3의 인물이 되어보는 '아름다운 악몽' 속에 발을 담근다. 이 악몽은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꿈이면서, 누구나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젖니들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동화 속 여정이기도 하다.

 

[뒤표지 글(시인의 산문)]

syzygy. 이 단어를 본 순간
난감한 에로티시즘에 사로잡혔다.

y가 세 개나 들어 있는 저 기묘하고 투박한 조합.
선뜻 읽히지가 않았다. 읽기보다는
만지고 싶었다.

어떻게 만져야 하나.
뜻을 새겨 탁본이라도 떠야 하나.

사전에 나오는 풀이는 다음과 같다: 삭망(朔望). 연접(連接).
천문학에서는 해와 달과 지구가 일직선에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한다.
생물학에서는 무슨 원생동물의 생식법이라 한다.
그 밖에 수학, 심리학, 철학, 심지어 시학에서도 쓰인다는데……
그렇다는데……

닿을 듯 닿을 듯
소리는 혀에 닿지 않고
뜻은 뇌에 닿지 않는다.
해와 달과 지구의 일직선은 나의 시야에 닿지 않고
원생동물의 생태는 나의 삶에 닿지 않는다.

닿지 않는다.

그러니 이 책의 이름을 syzygy라 짓는 수밖에 없다.
부적을 붙이는 심정이다.

 

★ 와! 해욱님의 새로운 시집ㅎㅎ 제목에 먼저 눈이 갔는데, 해욱님의 시집이었다ㅋㅋㅋ

 

 

김종은은 어떤 물리적 입자들 같은 도시적 인간들의 삶에 형식과 리듬을 부여하며 그저 비릿한 삶의 구석과 층층을 사선으로 비추는 소설로 2003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났다. 세상은 더 각박해졌고 심지어 잔인해졌다. 김종은은 여전히 지금 우리 사회에 밀착한 날렵한 문체로 너무 처량하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현실의 질곡을 녹여낸 소설을 쓴다.

그의 소설 여덟 편을 묶은 세번째 소설집, <부디 성공합시다>가 출간되었다. <부디 성공합시다>는 자의적으로 피로를 선택한 후 열정을 배합하여 도무지 알 수 없게 된 감정으로 하루를 꾸역꾸역 밀어내는 이 시대, 소소한 불행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김종은 소설 속 인물들은 붙들고 있는 것이 허상임을 짐작하면서도, 그 허상을 쥐기 위해('부디 성공'하기 위해) 분투한다. 그러나 종국에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모든 것을 떨어내며 소박한 각성에 도달하고, 일부는 나아가 그러한 삶을 실천하며 살아간다.

 

★ 표지 어쩔ㅠㅠㅠㅠㅠㅠㅠ 왜케 귀엽지ㅠㅠㅠㅠㅠㅠ 내용도 내용이지만, 표지 때문이라도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ㅎㅎ

 

 

 

소설가 김사과의 첫 번째 에세이. 여행도 아니고 거주도 아닌 채, 이방의 관찰자로 부유한 몇몇 도시에 관한 이야기다. 2007년의 뉴욕부터 포르투, 베를린, 그리고 다시 2012년의 뉴욕까지, '모든 것을 지나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버릇'을 가진 김사과 작가는, 여러 도시에서 만난 사람과 사건, 정서, 날씨, 기온, 마음의 내밀한 동요들을 독특한 질감으로 내레이션한다.

뉴욕의 오리지널 힙스터와 베를린의 핫한 클럽과 월스트리트 노동절 행진과 조울병에 걸린 금발미녀와 빈대 퇴치 매뉴얼과 지젝이 공존하는, 어쩌면 가장 김사과적이면서도 김사과적이지 않은 에세이. 2010년대 지구 위에 사는 현대인의 기본적인 정서상태에 관한 나른하고 건조한 리뷰다.

 

★ 나른하고 건조한 리뷰라는데 제목인 '설탕의 맛'과 대비되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ㅋㅋㅋ

사과님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지만 에세이부터 읽어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용택 시인의 에세이. 김용택 시인의 하루는 고요하고 심심하다고 했다. 심심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골은 너무 조용했고 심심해서 강물도 바람도 나무도 다 자세히 보였고 자연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시를 이야기하고 꽃을 꺾어들고 집에 가는 일이 그의 행복이고 시의 영감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조용하게 심심하게 살다보니 사람들이 너무 서두르기만 하는 것이 보인다고 그가 말한다. 사람들은 분명 무언가를 잃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모르고 질주하고 있다.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과 일상과 자연과 예술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는 아내와 함께 먹을 밥을 푸면서도 예술을 만나고 어린 제자들의 시를 보면서도 예술을 만난다. 자신이 만나는 일상을 고마워하며 모든 사람과 자연에 가득찬 풍요로운 예술을 발견한다. 이 책에 실린 산문은 그가 그동안 느낀 일상의 아름다움과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잃어버린 작은 것들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글이다. 소중한 하루를 기쁘게 즐겁게 받아들이는 그의 순수한 마음이 시적인 산문으로 그려져 있다.

 

 

★ 심심한 날의 오후 다섯 시라니ㅠㅠ 이런 제목 참 좋다ㅠㅠㅠㅠㅠ 시인의 하루는 고요하고 심심했고, 심심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김용택 시인의 에세이. 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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