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이곳에는 여름이 시작되었다. 친구들과 근처 펍(레스토랑?)에 갔다.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갑자기 날이 좋아진 때문일 것이다. 많은 여인네들이 어깨가 없는 드레스를 시원스레 입고 있었다. 잔잔한 강물 위에는 청둥오리(?)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우리는 몇번을 옮겨다닌 끝에 강가쪽 테이블을 차지할 수 있었다. 맥주와 피쉬 앤 칲스, 바베큐 갈비, 핫 윙 등을 마시고 먹었다.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음식이 다 비워질 즈음에도 날은 훤했다. 그러나 시간은 이미 9시 반을 넘기고 있었다. 우리는 헤어지면서 다음을 기약했다. 친구와 집으로 돌아오면서 음식 품평을 했다. 지난 주에 갔었던 펍이 음식 맛은 훨씬 낫더라... 요즘은 철학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가지 잡다한 일들(예를 들면 영어 공부)이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삶에 있어 최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언제나 철학이다. 내가 지금 영국에 있는 주요 이유도 그렇다. 마을에 어둠이 내리면 철학자의 시간이 시작된다... 어떤 철학자의 말이려니. 어둠을 기다리기엔 요즘 날이 너무 길다. 그만큼 시간은 빠르게 지나갈 것이다. 여름의 시작을 보면서 나는 스산한 가을 바람을 걱정한다. 까르페디엠. 음식을 추가로 주문하면서 우리는 핫 윙이 너무 맵더라고 카운터에 얘기하며 웃었었다. 카운터 사람도 웃으며 변명을 했다. 나는 입이 근질근질했다. 유 돈 노 더 데피니션 오브 스파이시... 그러나 이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음식 맛을 갖고 왈가왈부하다니! 일년 전 한국에서 용접사로 일할 때의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은 아니었다. 내가 충분히 현명하기를. 낮을 충분히 즐기고 밤엔 치열하게 싸우기를. 밤을 동경하여 낮의 명랑함을 피하지 말기를. 낮에 흠뻑 젖어 밤의 외로움에서 도피하지 말기를. 까르페디엠. 그것은 낮과 밤에 모두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낮과 밤은 우리의 날을 정의할 것이다. 그러니 카르페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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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모처럼 날씨가 좋았다. 가까운 공원으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 사람들이 커누 연습하는 것을 바라보며 강변을 따라 걸었다. 가족 단위로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함께 나온 개들이 미칠 듯이 좋아하는 것을 본다.

근처 펍에 갔다. 마당이 넓고 푸르다. 마당 한가운데 테이블에서 버거와 감자 튀김을 곁들여 까맣고 진한 기네스 맥주를 마셨다. 나는 영국의 감자 튀김(칲스)을 무척 좋아한다. 굵을수록, 그리고 기름기가 쪽 빠져서 기름에 튀겼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수록 좋다. 이 집 칲스도 아주 맛이 있어서 아껴가며 먹었다. 마당의 푸른 잔디 위로 아이들이 뛰어 다니며 부산을 떤다. 아이들은 금방 친구가 된다. "영국 아이들은 절대 엇될 수가 없을 거야. 이렇게 좋은 환경이라니!" 나는 내 말에 뭔가 미심쩍음이 느껴져서 웃고 만다. "여긴 부자 동네라니까..." 여전히 미심쩍다. 미소를 계속 머금을 수 밖에 없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넓다란 공원에서 사람들이 크리켓을 하고 있었다. 영화에서 종종 보던, 사립 학교 다니는 부유한 학생들이 입는 것 같은 흰 바지에 흰 셔츠 차람들이었다. 벤치에 앉아 잠시 구경을 했다. 규칙을 유추해 낼 작정이었다. 심판 자리도 계속 바뀌는 것 같고, 타자 자리도 계속 바뀌는 것 같았다. 뭐가 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검색을 해보니 11명이 한 팀이고, 한 경기를 몇 날 몇 칠 할 때도 있다고 한다. 공원 한쪽에 펍같이 생긴 건물이 하나 있었다. 점수를 기록하는 전광관이 달려 있다. 크리켓 클럽이란다. 클럽 입구에 사람들이 나와 앉아 경기를 지켜 보고 있었고 입구에는 맘씨 좋게 생긴 개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더니 외로운 척을 했다. 안에는 중년의 백인 남자들로 북적였다. 우리가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들어왔다. 벽에 걸려 있는 텔레비젼에서는 럭비 경기를 중계하고 있었다. 우리는 클럽을 나왔다. 왠지 그게 예의일 것 같았다.  

영국 사람들의 삶을 알고 싶어서 이스트엔더스라는 드라마를 본다는 나에게 학원 선생이 진짜를 알고 싶으면 런던 바깥으로 나가보라고 하더라. 나는 그가 이스트엔더스를 보지 말라고 나를 계속 설득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것은 전혀 사실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시청자를 잡아두기 위해 자극적인 소재들을 지속적으로 다루는 것이라고... 음주, 폭력, 살인, 울부짖음, 사기, 찌질함, 그리고 또 찌질함... 글쎄, 연휴 때 텔레비젼 뉴스를 보면 스페인 휴양지 같은 데서 개같이 술을 먹고 비틀거리며 도로 한복판을 걷는, 기괴한 화장의, 기괴한 복장의 영국 젊은이들이 나온다. 진행자가 한숨을 짓는다. 금요일 저녁이 되면 기괴한 화장을 한, 위의 옷도 짧고 아래 옷도 짧은 파티걸들을 지하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인터넷에는 술먹고 고주망태가 된 쿨한 영국 사람들 사진이 널려 있을 거다. 참으로 극단적인 대비들이다. 나는 한국에서 양보 정신이 투철했었다. 그런데 영국에 왔더니 너무 조급하게 굴어서인지 툭하면 양보를 당하고 있다. 이렇게 예의바른 사람들과 술먹고 고주망태가 되어 토사물을 뒤집어 쓴 채 길거리에 누워 자는 사람들이 같은 사람들인가?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작품을 쓴 사람은 분명 영국 사람이렷다! (하긴 나도 학교 다닐 때 그랬군... 평소엔 나름 진지하고 예의바른 사람이지만 축제 같은 때 술 먹으면 끝장을 보려고, 자신이 문약한 사람이 아님을 과시하려고 했었던 것 같다. 결과는 아스팔트를 침대 삼아...-.-)

지난 주중엔 날씨가 무척 변덕스러웠다. 해가 났다가 구름이 꼈다가 비바람이 몰아쳤다가 우박이 쏟아져 내렸다가... 일년 날씨가 하루 날씨 안에 다 들어 있는 듯 했다.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터운 털코트로 둘러싸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스페인에서 온 학생들은 영국 날씨에 진저리를 친다. 영국 날씨에 대한 무수한 비난이 쏟아진다. 이럴 때 영국 사람들이 하는 대사는 딱 정해져 있다. "디스 이즈 앵글랜드." (내가 사는 곳이 잉글랜드이므로...) 영국의 비합리성, 기괴함, 변덕, 모순이 있는 곳에 이 대사가 있다. 온수, 냉수 나오는 수도꼭지가 따로 있어 꼭지를 오가다가 기어코는 "아 뜨거!"를 외치게 될 때도 "젠장, 여기는 잉글랜드라지!"로 마무리를 하게 된다. 영국 드라마를 보다보면 "점프!"라는 말을 흔하게 듣는다. 성취에 만족하지 말고 새로운 환경에 도전해 보라는 뜻이다. "점프! 아이 데어 유!" 나도 도전 정신을 높이 사는 영국의 문화에 감명을 받곤 한다. 솔직히 오늘도 "닥터스"라는 드라마에 이 대사가 나오기에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잠깐 더 생각하면, 영국은 "왜 바꿔야 하지?"하는 보수성이 극단적인 나라이기도 하다. 진취성을 고양하는 것도 세계 최고 수준이고, 기존의 것에 집착하는 것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둘이 어떻게 한 문화에 공존할 수 있을까? 깊게 들어가려 하지 말고 그냥 그러려니 해라... 이 말을 영어로 번역하면 디스 이즈 잉글랜드가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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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2-05-21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스 이즈 잉글랜드라는 영화도 있지요. ㅎㅎ 추천작입니다.

weekly 2012-05-22 15:15   좋아요 0 | URL
아,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주말에 꼭 챙겨봐야 겠습니다.
 

TEDiSUBTITLE 앱은, 적어도 내게는 아이패드의 킬러 앱 중 하나이다. 다른 태블릿이나 일반 컴퓨터에서도 이런 종류의 앱을 이용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잘 모르겠다. 내 노트북에는 안깔려 있었고 유니버셜 앱으로 내 아이폰에 깔려 있는 것에는 중요 기능 하나가 빠져 있다. 자막을 별도의 창에서 보여주는 기능. 내게는 이 기능이 엄청나게 소중하다. 나같이 영어 공부에 쩔쩔매고 있는 사람 모두에게 그러하리라.   

다음은 TEDiSUBTITLE로 영어 공부를 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1). 그냥 보던 자막을 켜놓고 보던, 한번 보던 여러 번 반복해서 보던 하여튼 테드 에피소드를 본다.
2). 자막 창의 대사 일부를 외운다. 적어도 2분 길이 정도는 외운다. 단어를 찾고, 반복해서 읽고, 따라 읽고, 눈감고 외우고, 눈뜨고 외우고, 외운 것을 스마트폰의 녹음기 앱에 녹음해놓고 자막과 비교하면서 외우고 하면서 하여튼 외운다. -TEDiSUBTITLE은 이 단계에서 필수적이다. 대사가 시간대 별로 배열되어 있어 대사의 시간대를 클릭하면 그 시간대부터 동영상이 재생되기 때문이다. 
3). 대사 일부를 외우고 나서 다시 한번 동영상을 본다. 외우지 않은 부분까지도 잘 들릴 것이다. 
4). 어떤 에피소드를 외우는 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전체를 다 외우면 좋겠지만 꼭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반복적으로 읽고 외우고 따라하며 투여한 시간이 중요할 것 같다. 그러자면 흥미있는 주제, 매력적인 연사, 혹은 아름다운 발음을 가진 인물의 것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아무튼 지루함이 가장 늦게 찾아올 만한 에피소드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외워야 할 것을 외운다는 전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지휘자는 몇 백편의 총보를 다 외워야 한다. 그렇게 해야 새로운 악보가 주어져도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있으리라. 이런 건 모든 영역에 다 적용가능한 얘기일 것이다. 하물며, 혹은 그러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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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8 0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weekly 2012-05-18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예, 외울 건 외워야 겠지요. 외울 건 외워 놓으면 사고에 집중하기가 훨씬 쉬워지니까요. 암기가 악이 되는 순간은 암기로 사고를 대체하려 할 때이겠지요...
 

여호와의 증인들 신자 두 분이 집에 왔다 갔다. 지난 주에 벨이 울리기에 나가봤더니 이 분들이 미소를 함빡 머금고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내가 영국에서 배운 것이라고는 사람을 대할 때 호의와 관심을 보이라는 것 뿐이다(물론, 영국 사람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라면 "그런 거 관심없으니 가세요."라고 했을 걸 일단 그 분들이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여 보기로 했다. 그리고 내 생각을 말했다. "나는 신이나 종교에 관심이 없다. 그러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긴 하다. 나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당신들에게는 시간 낭비일 수 있을 거다. 그래도 괜찮다면 시간을 잡아서 다시 한번 방문해 주어도 좋겠다." 그 분들은 좋다고 했다. 우리는 시간 약속을 잡고 통성명을 하고 헤어졌다.

그분들을 보내고 나서 탁자에 앉아 그분들이 건네 준 팜플렛을 대충 읽어 보았다. 익숙한 그림체. 한국에서 종종 보던 여호와의 증인들이었다. 나는 이 종교에 아무런 반감이 없다. 내 기억에 이 종교의 신자들은 다 착했고 교리는 합리적이었고 태도는 일관적이었다. 예를 들면, 내가 알기로 여호와 증인들은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거총을 거부한단다. 나는 이걸 이치에 맞는 일이라 여긴다.

그분들이 다시 방문했을때(어제) 나는 현관문 앞에서 다시 한번 주의를 환기시켰다. 나는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다. 나는 철학적인 것에 관심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될까봐 걱정이 된다. 그 분들은 그런 것은 아무 문제도 안된다고 했다. 내가 집에 들어서서 맨발로 있자 그분들도 신발을 벗었다. 커피나 차, 물을 권했는데 내가 뭘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자기들은 괜찮다고 했다. 그분들은 외투도 벗지 않은 채 밥상이자 책상인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내가 입고 있던 티셔츠에는 하얀 치약 자국이 묻어 있다. 두 분 중 젊은 친구의 소매에는 약간 때가 타 있었다. 그 친구가 주로 말을 했다.

그 분들은 지구적 재앙에 대해 먼저 얘기했다. 성경의 예언,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 지금이 마지막 날의 근방이라는 것이다. 나는 계속 머리를 갸우뚱 했다. 그것은 인류가 여지껏 벌여 왔던 역사의 한 부분일 뿐이다. 지진, 쓰나미 등의 자연 재해도 자연의 역사의 일부일 뿐이다. 고대에도 폼페이의 대재앙이 있었지 않았나? 당신이 지적해 준 성경의 예언들이 어떤 사건을 특정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재앙들이 지속되는 것을 마지막 날의 전조로 본다면 인류는 언제나 마지막 날을 살고 있는 것이다. 당신들이 말하는 마지막 날이 이런 것을 뜻하는가? 젊은 친구는 아니라고 했다. 그럼 어떤 특정한 시점을 말하는가? 젊은 친구는 10년 후라고 얘기했다. 나는 그것이 성경적 근거가 있는 얘기인지 되묻지 않았다. 젊은 친구(스콧)가 너무 나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이런 것들에 관심이 없다고 대꾸했다. 

나는 우리가 어떻게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스피노자의 "지성개선론" 서두에 나오는 질문과 같다. 스콧은 마태 복음 5장을 펴들고 읽어 주었다. 아름다운 귀절이었다. 나는 "아름다운 문장들이다"라고 무신론자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해당 페이지를 노트해 놓았다. 거기서부터 우리의 얘기는 많이 순해졌다. 나는 많은 부분을 긍정하며 얘기를 들었다. 그러다 이야기가 다시 창세기로 갔다. 누가 이 세상에 죄를 도입하였는가, 라는 몇 천년 닳고 닳은 신학적 논쟁이 잠시 스쳐갔다. 세속의 정부에 대한 이야기도 잠시. 나는 마태 복음의 문장들에 표한 감탄의 댓가로 성경을 한 부 선물받았고(잠깐 기다리라더니 교회에 가서 가져다 주었다), 윤리(종교)와 정치 사이의 관계에 관심을 보인 이유로 "종교와 정치"라는 제목의 팜플렛을 또 하나 받았다. 지금 내 책상 위에 숙제처럼 쌓여 있다. 나는 그것들을 읽겠노라고 약속했고 그분들은 다음 주에 다시 찾아 오겠노라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한 의지를 공유하고 있다는 믿음을 서로에게 갖고 있다. 그것은 윤리적인 부분이다. 나는 이차대전때 영국과 독일의 종교 지도자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아일랜드의 대기근 때 영국 정부가 어떤 일을 했는지를 얘기하며 그분들과 완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리적인 부분은 건널 수 없는 다리다. 이 교리적인 부분이 핵심일까? 아마도 그분들에게는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그것은 극히 사소한 부분이다. 그분들과 나 사이의 교집합은 어떻게 그려질까?

그분들을 떠나 보내면서 나는 다시 한번 주의를 환기시켰다. 다시 방문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내가 늘 염려하는 것은 내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종교적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등등. 나는 신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 신은 실체가 아니다. 아니, 스피노자는 신을 실체라 하지 않았는가? 바보들이나 그렇게 믿어버린다. 이렇게 저렇게 벌이는 활동들을 통털어 수학이라 했더니 수학을 실체라고 믿어 버리는 사람은 도저히 구제불능이다. 그러한 활동들, 운동들을 일컬어 수학이라 한 것 뿐이고, 그러한 활동들, 운동들을 일컬어 신이라고 한 것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활동들, 운동들이다. 우리는 그러한 활동들, 운동들에 대해 얘기할 때 형용사를 동원한다. 다시 말해 신은 형용사다. 그리고 형용사는 언제나 구체적이다. 밥이 나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좋은 사고를 하게끔 해준다면 밥이 곧 신이다. 그 "밥"이 신이라는 것이 아니라 밥이 한 계기를 이룬 어떤 긍정의 과정 전체를 일컬어 신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언제나 "더 좋은, 더 긍정적인"이란 가치가 개입되어 있다. 그러므로 신이라는 단어를 통해 우리는 사실과 가치를 함께 담아낸다. 이러한 장치없이 우리는 사고를 할 수 없고, 판단을 할 수 없고,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러한 장치 위에서 우리는 인간이다. 말할 것도 없이 나의 이러한 관념은 고대 그리스에서 빌어온 것이다. 나는 이러한 관념에 의심을 품어본 적이 없다. 나는 스스로 도전에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관념을 재고해 볼 필요성을 아직 느껴보지 못했다. 만약 재고하게 된다면, 그 또한 한 진전일 것이다. 즉, 그 또한 신일 것이다. 신은 언제나 관계를 묘사할 때 등장한다. 그러므로 신은 관계에 열려 있음, 그리하여 관계가 긍정적으로 이루어짐을 묘사하는 말이다. 이것이 내가 영국에서 배운 유일한 것이다. 관계에 열려 있으라는 것, 즉 사람에게 호의와 관심을 보이라는 것. 그러므로 내가 영국에 온 첫날 만났던, 나의 책꾸러미를 보관해 두고 있었던 그 아가씨는 나에게 신이다. 나는 그분에게 정말 많은 것을 빚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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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 산 지 20일 가까이 된다. 나의 넷북은 인터넷 뱅킹할 때 빼고는 별로 꺼낼 일이 없다. 나는 아이패드를 집과 카페에서만 이용하고 이동 중에는 예전과 같이 종이 책이나 종이 신문을 읽는다. 그래서 역으로 넷북만으로 충분했지 않느냐는 지적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다. 카페 가서 안경집에 아이패드를 받쳐 놓고 블루투스 키보드로 글을 작성하다가 문득 문득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걸까? 하며 스스로를 비웃기도 한다. 작으마한 넷북이면 휴대나 이용이 더 자연스러울 터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나의 아이패드를 정의하는 아주 사소한 몇 가지가 있다.

1. 모모노트: 아주 좋은 메모용 앱이다. 아이패드에서는 주로 일지를 쓰는 데 사용하고 아이폰으로는 이동 중 떠오른 아이디어를 적는데 사용한다. 매일 하루를 정리할 밤시간에 간단하게 몇 자라도 적어놓는다. 다음날 이동 중에 확인하며 전날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되새긴다.  

(모모노트는 아주 훌륭한 앱이다. 개인용 블로그를 앱으로 구현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태그 시스템을 갖고 있는데, 일반적인 폴더 시스템보다 훨씬 편리하다. 검색 기능도 막강하다. 일지용 앱으로 이 이상의 것을 나는 상상할 수 없다.)

2. Priorities: 일종의 GTD 앱이다. 대단히 훌륭한 컨셉을 갖고 있어 쉽고 강력하다. 매주 할 일을 아이패드로 작성해 놓고 아이폰에서는 매일 매일 할 일 목록을 지우는 재미로 산다. 

3. PlainText: 지금 이 앱에서 이 글을 작성하고 있다. 모모노트에서 일지를 쓸 때 빼고는 모든 글을 이 앱 상에서 작성한다. 이 앱은 환상적인 전체 화면 모드를 갖고 있다. 사실은 그저 하얀색(미색?) 전체 화면을 제공할 뿐이다. 그러나 아이패드의 선명한 디스플레이와 결합하면 환상적인 글쓰기 환경으로 변한다. 넷북으로 도저히 돌아갈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얼마 전에 무려 10 달러 가까운 돈을 주고 한컴오피스, 그러니까 아래아 한글을 샀다. 나는 한국어 철자 체크 기능 등을 원했던 것인데 그런 기능은 들어가 있지 않았다. 내장 폰트는 깔끔하고 예뻤다. 그러나 앱으로서의 컨셉이 훌륭한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txt 확장자로 작성한 파일은 전부 깨져 버리더라. 버그도 많고 여러 가지로 미완성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차분히 업데이트를 기다릴 생각이다. 

*아이패드는 대단히 훌륭한 읽기 도구이지만 나는 아직 아이패드에서 단 한편의 논문이나 단 한권의 책도 읽지 못했다. 이유 중 하나는 아이패드 밖에 읽을 것들이 넘쳐 난다는 것.

아무튼 이러하므로 아이패드가 늘상 안경집에 받쳐진 채 집이나 카페의 탁자 위에 블루투스 키보드와 함께 꼴사납게 놓여 있어도 나는 그것을 넷북으로 되돌릴 생각을 도저히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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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5-15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모노트와 플레인텍스트는 정말 침이 꼴깍 넘어가게 탐나는 어플들이군요.
일단은 아이패드부터...

Weekly 2012-05-15 22:5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 둘 다 아주 단순하고 한가지 개념에 충실한 어플들이지요. 특히 플레인텍스트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하고요. 그래도 값비싼 만년필과 질좋은 종이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문제는 그걸로 뭘 하느냐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