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부터 여러 사정상 끔찍이도 책을 안 읽었는데 여름 들어 증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
가뜩이나 난독증인데 책을 멀리하다 보니 이제 책을 집어들어 페이지를 펼치는 것도 힘들어지고 있다. 아니, 사실 긴 문장을 읽는 게 무섭기까지 하다. 침대 한켠에 쌓아둔 책더미들은 천장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르고, 그러다가 무너지기를 여러 수십 번이지만, 그마저도 아예 치워버리면 영영 책에 손을 안 댈까봐 저어되어 압사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냥 놔두고 있다. 요즘 내 3대 소원 중의 하나가 난독증 완치일 정도니, 말 다했다.

최근 만든 리스트도 읽다가 팽개친 책들에 대해서였는데, 최근 열흘 사이에도 읽다가 내던져둔 책이 만만치 않다. 물론 얘네들은 아예 포기한 건 아니고 다시 집어들고 읽을 예정이지만 솔직히 좀 막막하기도 하다. 아, 어쩐다냐.. 여름 되면서 남들은 식욕도 줄고 잠도 없어져 독서량이 늘었다는데 난 남들 2배만큼 먹고 3배만큼 자면서 10분의 1만치도 못 읽고 있다. -_-;;;



알베르토 망구엘 <나의 그림 읽기>
재미도 있고 도판도 좋은데 모르는 화가들이 많이 나와서 그런지 진도 안 나감.
게다가 지난주에 어수선한 상황에서 미가 어쩌고 예술이 어쩌고 하는 내용이 도저히 머리에 안 들어와서 팽개친 이후로 다시 못 집어들고 있다. 빨리 읽어야 하는데..

 




미셸 깽 <처절한 정원>
위의 애를 던지고 집어든 게 얘다. 사놓은 지는 몇 년 되는데 이 얇은 책을 아직도 안 읽었었다. 제목과 역자 서문에서 풍기는 암울함 때문이었는데, 기분이 이럴 때 읽어야겠다 싶어서 집어들었다.
근데 그넘의 역자 서문이 훌륭한 스포일러 역할을 해주시는 바람에 맨 뒤의 반전 부분만 낼름 찾아 읽고 30분 동안 운 다음 다시 안 읽고 있다. 우느라 기운 빠져서 그런가..




조세핀 테이 <시간은 진리의 딸>
요새 추리소설을 별로 안 읽어줬기에 도서관 가서 빌려온 책.
표지가 끔찍하게도 뼈다구;;;라서 적당한 크기의 빳빳한 종이를 찾아서 스카치테이프로 꼭꼭 붙여 절대 표지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끔 예방조치도 취해놨다.
근데, 3페이지 읽었다... -_-;;;

 



댄 브라운 <다빈치 코드>
다른 분들과의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책 오자마자 읽으려고 했었는데 주춤하는 사이에 수많은 리뷰들을 읽어버렸고 덩달아 실망해버렸다. 쯥.
너, 그러면 안 되지.. 그렇게 선전을 빵빵하게 해놓고 말이야..

 




알베르 코엔 <내 어머니의 책>
제목이 좋아서 샀는데 내용은 음.. 음.. 상당히 프랑스적이다.
표지에서 알 수 있듯이 약간 암울하기도 하고 늘어지기도 하고, 단숨에 읽어치우려고 작정했는데 한 반쯤 읽다가 그만..

 




표정훈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
요새 신문 잡지에서 자주 보는 이름이다. 책에 대한 책이기도 해서 집어들었는데 문장이 그리 훌륭하다는 생각이 안 든다. 소재도 그냥 그렇고.. 지금까지 수없이 읽어온 독서 에세이와 그닥 차별화되지 않아 계속 읽을 맘이 나질 않는다.






6월 들어서 책 몇 권 읽었는지 말하면, 알라딘 서재쥔장님들이 다시는 같이 안 놀아줄 것 같아서, 아예 서재에 발도 못 들이게 할 것 같아서 말 못하겠다. ㅠㅠ 빨리 제대로 된 내공을 쌓아서 돌아와야지. (어느 세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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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4-06-28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너무 너무 안읽히는 시기가 있는것 같아요....근데, starry님이 읽다 만 책들 다 재밌어뵈는데요..^^

starrysky 2004-06-28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다 꽤나 재미있는 책들이지요. (제가 재미없어 뵈는 책은 아예 접근도 안 한답니다. ^^)
제 상태가 이렇게 메롱스럽지만 않으면 위의 책들 1주일 안에 다 읽을 수도 있을 텐데 늘어놓고 다시 봐도 참 안타깝네요.. ㅠㅠ

미네르바 2004-06-28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다가 팽겨쳐 놓은 책이 지금 천정 높은 줄 모르고 책상에 쌓여 있답니다. 요거 조금, 저거 쬐끔...책을 잔뜩 사다놓고 보니 그냥 흐뭇해서 바라만 보고 읽지도 않고 있으니... 이젠 숙제가 되었고, 짐이 되었습니다. 빨리 방학이 되어서 밀린 책 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님에게 저는 지금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습니다요.^^

starrysky 2004-06-28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은 방학도 있으시고 정말 좋으시겠어요~~~ 이제 한 3주만 있으면 방학인 거죠? 아, 그리운 그 이름, 방.학!!! 미네르바님도 진/우맘님도 새벽별님도 미라님도 호랑녀님도 그 외 방학하시는 분들은 다다다 부러워요! 어흑. (대학생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불량 2004-06-28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월 들어서 책 몇 권 읽었는지 말하면, 알라딘 서재쥔장님들이 다시는 같이 안 놀아줄 것 같아서, 아예 서재에 발도 못 들이게 할 것 같아서 말 못하겠다.
--> 서..설마 그러실라구요.......(뜨끔뜨끔뜨끔뜨끔....;;;;;;;;;;;)

로렌초의시종 2004-06-29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동안 읽어 둔 걸로 당분간 우려먹으렵니다.(그러니까요 starry sky님 제가 놀아드릴께요~^^) 안그래도 저도 벌써 3년째 난독인지라...... 가끔 풀리면 잘 읽히고 걸리면 또 터덕터덕......제가 사다놓은 책중에는 진리는 시간의 딸이 있군요. 어서 읽어야 하는데......ㅡ ㅡ
다빈치 코드는 초기의 대단한 열풍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정말 의외로 냉소적인 평이 많아 관망하길 잘 했다는 안도감이^^;;;;;;;;;

starrysky 2004-06-29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량유전자님, 다행히 다른 서재쥔장들께서 다 외면하셔도 같이 놀아주겠다는 자상하신 로렌초님이 계십니다. 우리 같이 놀아요~ ^-^
로렌초님. 님처럼 책 많이 읽으시는 분이 난독이라 하시면 진짜 난독인 저는 접시물이 필요합니다. ㅠㅠ 그래도 같이 놀아주신다니, 덕분에 살았어요. 우울증 따위 빨리 극복하시고 방학 동안 즐겁게 놀아요 우리. (니가 방학이 어딨냐??) 책 같은 거 좀 덜 읽으면 어때요~ 건강을 위해 햇빛 아래서 물장구 치고 다람쥐 쫓으며 맘껏 뛰어놀아야죠. 캬캬~ >_<

밀키웨이 2004-06-29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다가 그냥 휙 던지고 던지고 하는 사람이 저만 있는 줄 알았더니만...휴~~ 다행입니다.
이리 동지가 많을 줄이야.

근데 저 다빈치 코드...ㅠㅠ
왜 다들 그리 차가우신 겁니까?
큰 맘 먹고 구입한 사람, 가슴 떨리자노요...ㅠㅠ

물만두 2004-06-29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빈치 코드... 또 혈압이... 그러면서 단테 클럽샀는데 이것마저 그러면 전... 그나저나 전 <아버지들의 아버지>, <흑묘관의 살인사건> 언제 읽을 지 참...

로렌초의시종 2004-06-29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빈치 안 사고 단테로 샀어요. 아무래도 이 쪽이 더 취향에 맞는 듯 싶어서요^^;;; 행운을 빌어주세요~^^

panda78 2004-06-29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렌초님 빨랑 읽고 평 써 주세요- 오늘 안 지르기로 결심.
미네르바만 딸랑 주문하면 알라딘에 미안하니까 조금 기다렸다 해야지.
스타리님, 내 어머니의 책 사려고 했었는데, 안 사길 잘 했네요. 저는 프랑스쪽하고는 사이가 별로 안 좋아서요.. ^^;; 진리는 시간의 딸은 꽤나 재미있던데요-
그나 저나 스타리님은 저 가소로운 뼈다구도 못 보시니, CSI 드라마나 법의학 관련 책은 접근 금지시겠네요? 저는 그런 거 디게 좋아하는데.. ^-^

starrysky 2004-06-29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키님. 저도 다빈치 코드 몇 장 안 읽은 상태에서 딴 님들의 리뷰에 좌절해버렸어요. ㅠㅠ 그래도 올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어떻게든 읽을 작정이긴 한데 잘 될지 모르겠네요.
물만두님. 에고고, 혈압이 오를 정도인가요. 진정하시어요. 근데 <아버지들의 아버지>, 저는 별로였어요.. <흑묘관의 살인사건>은 제목부터 오싹~하군요. ^^
새벽별님. 맞아요, 우리 5000원 받았었죠. 마일리지도 20% 받고.. 음, 그럼 됐죠 뭐. 그때 판다님 계산하신 거 보면 권당 삼천 얼마라고 하셨는데, 싼 게 비지떡이려니 해야죠 뭐.
로렌초님. Good Luck!!! (앗, 얼마만의 영어냐~~ ^^) 성공이든 실패든 감상 꼬옥 들려주셔야 해요.
판다님. 저는 미네르바랑 마이클 무어 책 주문할 거예요(마이클 무어 선전원 ^^v). 저는 저런 뼈다구도 차마 눈뜨고 못 보는 주제에 법의학에는 또 관심이 많아서 한밤중에 하는 디스커버리 채널의 법의학 프로그램도 즐겨 본답니다. 물론 아주 무서운 부분이 나올 것 같다 싶으면 잽싸게 채널을 돌렸다가 한참 뒤에 다시 돌아가지만요..;;; CSI도 너무 재밌어요. 묘사가 지나치게 생생해서 당황스럽지만.. CSI 책도 보고 싶어요.

panda78 2004-06-29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아저씨 마이클 무어 좋아요! 근데 멍청한 백인들이란 책은 그저 그랬던 기억이 있어서.. 흠. 이번 건 더 괜찮으려나? 볼링 포 콜럼바인 진짜 재미있게 봤는데, 화씨 911은 언제 개봉한대요?
스타리님, 저희 집에는 디스커버리도 히스토리도 안나온답니다.. T^T 흑흑.. 법의학 책은요, 절대 못 보실 것 같은데요? 물에 빠져 부패된 시체 사진도 나오고 눈 멀거니 뜨고 있는 애들도 있고.. CSI 무지 재밌죠! 전 요즘 그렉이 젤로 좋아욤! >.<

starrysky 2004-06-29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씨 911은 그냥 7월 개봉.이라고만 하는데 날짜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요새 나라 분위기가 뒤숭숭해서 이러다가 개봉이 미뤄지거나 취소되면 어쩌나 걱정이랍니다.
근데.. 디스커버리 채널 디게 재밌는데.. (약올리는 중. ^^) 법의학 책에 대한 설명은 읽기만 해도 끔찍합니다. ㅠㅠ 제 눈에 안 보이게 투명펜으로 살짝 가려주세요. ㅠㅠ CSI 소설에는 설마 그런 사진 안 나오겠죠??

Fithele 2004-06-29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죠세핀 테이는 서설이 너무 길죠. 저도 1/3을 넘긴 후에야 속도가 붙더군요. 다 빈치는 1권의 2/3을 넘겨서야 비로소 하나의 줄거리가 되죠.

starrysky 2004-06-29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델님, 코멘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님께서 쓰신 <다빈치 코드> 리뷰에 문제 생긴 거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너무 속상하시겠어요. 그분이 쓴 리뷰도 읽어봤는데, 자기가 읽은 감상과 다른 사람의 감상이 다르다고 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참 슬픈 일이네요. 부디 기운 잃지 마시고 좋은 리뷰 계속 올려주세요.

Fithele 2004-06-29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려 고맙습니다. 저도 잘 해결되고 다시 기운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panda78 2004-06-29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약올라.. ㅡ.,ㅡ

starrysky 2004-06-29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왜요, 판다님.. 뭐가 약오르신데요.. 삐질..;;; 제가 무신 잘못이라도..? ㅠㅠ

mira95 2004-06-29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안 읽은 책들로 책장이 가득 찹니다... 제 친구와 저는 이걸 책 사재기라고 부르지요... 올 여름방학땐 왕창 다 읽어버릴 예정인데요.. 잘 될까나~~~

starrysky 2004-06-29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라님은 방학도 있고 을매나 좋으실까아아아... ㅠ_ㅠ 정말정말 부럽습니다!!!
근데요, 저도 여름휴가를 좀 길~게 잡고 사다 쟁여둔 책 읽기 프로젝트 같은 거 해봤는데, 휴가 끝나고 나면 오히려 읽어야 할 책이 더 늘어 있더군요. -_-;;; 여행 가서 읽을 책 또 사고, 재충전용이라고 또 사고, 이 기회에 공부 좀 해보자고 또 사고, 그러다 보니..

panda78 2004-06-30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리님, (약올리는 중.^^) 이거..... -> 아, 약올라.. 인데요? ^^

비로그인 2004-06-30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중에 읽어야지 라고 생각만 했던 책들이 잔뜩 있군요... @.@

starrysky 2004-06-30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아항~ 이제야 이해했음. 끄덕끄덕. 제가 이렇게 형광등이예요. 자기가 쓴 글도 기억 못하고.. ㅠㅠ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려요. 흑.
평범한여대생님. 오오, 님을 제 서재에 모시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여전히 책 많이 읽으시고 멋진 리뷰 남겨주시는 여대생님, 진정으로 님을 본받고 싶사와요. ^-^
 
 전출처 : 밀키웨이 > [캐릭터는 살아있다] 미피 "겁많아도 귀엽잖아요?"


저는 미피예요. 50년쯤 전에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아기토끼죠. 아주 어린 아기용 그림책에 나오는 동물 중 하나 정도로 여기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래 봬도 제가 나오는 책은 세계 40여개 국에서 1억 권 가까이 팔렸고, 어떤 조사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에 미키 마우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구요!

어린 아기들 친구답게 저는 아주 단순해요. 대단한 모험을 하는 것도 아니고 뭘 많이 가르쳐 주지도 않는답니다. 아기토끼라는 건 정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요. 하다못해 생쥐도 코끼리를 놀래 준다든가 밧줄을 쏠아 사자를 구해 준다든가 할 수 있는데 말예요. 풀잎이나 오물오물 먹고 있다가 뭔가에 놀라 도망가는 게 고작이잖아요.

하지만 딕 브루너 아저씨는 바로 그 때문에 저를 아기들의 친구로 삼은 게 아닐까요? 능력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의미있고 기쁨을 주는 아기와 가장 비슷한 게 토끼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요? 저를 통해서 뭔가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것을 나타내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제가 왜 그렇게 단순한 색과 단순한 선으로만 그려졌는지도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제 책에 주로 쓰이는 빨강, 노랑, 파랑은 그냥 단순한 색이 아니라 ‘삼원색’이에요. 그러니까 가장 기본적인 색이면서도 서로 섞여 온갖 색깔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도 담고 있는 거죠. 저나 제 친구들이 보여 주는 단순한 형태와 동작도 실은 브루너 아저씨가 수백 번 그려본 끝에 “이거다!” 하고 내놓는 거래요. 독자들이 그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형태와 색깔 너머로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예요.

 

그래요. 가장 제한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가장 널리 펼쳐져 있는 세계를 갖고 있는 게 바로 저랍니다. 그리고 저는 그걸 말 없는 말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가만히 보세요. 제 입은 언제나 x자로 꼭 다물어져 있잖아요. 하지만 또 거의 언제나 귀를 높이 세우고 눈을 반짝 뜬 채 정면으로 가만히 여러분을 쳐다보고 있어요. 여러분도 저를 가만히 쳐다봐 주세요. 그러면 다 들리고 보이는 것 같지 않으세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 뒤에 있는 모든 것들이 말예요.


김서정(동화작가·공주영상정보대교수)

 

출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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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rysky 2004-06-27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부터 좋아하던 캐릭터 미피. 이름도 귀엽다. 내 닉네임 중 하나랑 비슷하기도 하고..
근데 풀리지 않는 궁금증 하나. 입을 왜 X 모양으로 그렸을까. 그게 가장 어울리는 모양이라서?
저 X 모양 때문에 가끔 미피가 슬프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건 또 무슨 마음일까..

불량 2004-06-28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왜 입 모양이 X자 일까요..
예전에 누군가 미피를 보고 "왜 이 토끼는 입을 꿰맨거야?"라는 말을 했었는데..누구였더라..
침묵시위 중인 걸까요?? ^^;;;

starrysky 2004-06-28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요.. 실제로 미피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그림책을 한번도 못 봤기에(아, 불쌍한 인생)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X자 모양의 입을 벌려서 소리내어 말하는 모습은 왠지 상상하기가 힘들죠? 미피는 정녕 말을 못하는 아가 토끼일까요? (그러고 보니 먹을 땐 어떻게 입을 벌릴까요.. 너무 현실적인 고민인가)

밀키웨이 2004-06-28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을 할 때도 늘 X인디요? ^^;;;

스타리님 결혼하시면 제가 축하선물로 미피그림책을 드립지요 ^^

starrysky 2004-06-28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X자 입으로 말하고 밥 먹어야 하는 불쌍한 우리 미피.. ㅠㅠ
그나저나 제 결혼선물로 약속되어 있는 멋진 선물들이 너무 많아서, 아무래도 남자 하나 찾으러 먼 길 떠나야 하려나 봅니다.. 하나 찾아 걸리면 꼬옥 연락드릴게요. ^-^

불량 2004-06-28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피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이 있었는데.. 미피..말 할 줄 알던데요.^^
말할 때도 입 모양은 X였던듯...X자 모양이 꼼지락꼼지락 움직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애니의 낭창한 분위기가 꽤나 맘에 들었어요...ㅋㅋ

starrysky 2004-06-28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애니메이션이요?? 제목이 뭔가요, 제목제목!!!
'낭.창.한. 분위기'라니 확~ 땡깁니다. 흐흐. (왜 이렇게 웃는 거시냐;;)

밀키웨이 2004-06-29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요, 스타리님 ^^;;;
아가월드라는 회사에서 나오는 저 미피전집에 포함된 비디오가 아닐까 싶네요 ^^;;;

얼른 남자나 하나 찾아오소서 ^^

불량 2004-06-30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는 예전에 호빵맨이 공중파에서 방영되던 당시에..
텔레비젼으로 봐서요..^^;;; 제목은 '미피와 친구들' 이었을 거에요. 아마.
기억력에 자신은 없어요..

starrysky 2004-06-30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공중파에서요???? 저는 왜 못 봤을까요, 왜에에에에??!!!! ㅠ__ㅠ
아, 아가월드에서 나온 미피 비디오를 사야 되나? 휴우.. 남자나 찾으러 가볼까.. (먼 산)
 
 전출처 : Fox in the snow > 김선일씨의 죽음_진중권

김선일씨의 죽음
원고 쓰고 막 자려다 김선일씨 죽음에 관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착잡함에 오늘도 다시 밤을 새는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희망적 관측이 흘러나와 기대를 걸었으나, 그 희망은 무참히 깨졌습니다. 가장 우려 했던 최악의 사태가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비디오를 생각해 보십시요. 대한민국의 한 국민이 처절한 몸짓으로 절규하며 국가에 자신의 생명을 지켜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 호소에 귀를 막고 국가는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추가파병에 변함 없다."

이라크 전쟁은 우리의 '안보'와 아무 상관이 없는 전쟁입니다. 대한민국이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지 않는다고 우리의 생명이 더 위험해지는 것도 아니고, 군대를 보낸다고 우리의 생명이 더 안전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아니, 외려 그 반대지요. 군대를 보내서 이미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목숨을 잃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껴왔습니다. 이것을 저들은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안보'라고 부릅니다.

김선일씨가 납치된 것은 지난 17일이라고 합니다. 그 전에 납치가 이루어졌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 동안 파병 준비에 바빴던 노무현 정권이 자국민이 피납된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답니다. 미국도 이 사실을 한국 정부에 통보를 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니, 통보를 해줬는데 우리 정부가 추가파병을 발표하기 위해 일부러 모른 척 했다는 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게 저들이 말하는 '안보'입니다.  

정권은 김선일씨를 납치한 사람들의 정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약속대로 김선일씨를 잔혹하게 살해함으로써 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드러냈습니다. 그 와중에도 정권에서는 무슨 자신감에선지 아주 신속하게(!) 파병 원칙을 재확인하고, 이라크의 서희, 제마 부대가 얼마나 cool하게 활동하는지 홍보할 생각이나 하고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테러리스트들이라면 미국에 협조하는 한국군이 이라크 사람들 돕는 것을 고운 눈으로 보겠습니까?

2.

김선일씨가 납치당했는데도 어제 광화문에 모인 사람은 고작 2천에 불과했습니다. 선거법 위반 발언하다 탄핵 당한 노무현을 구하자고 수만이 모여든 반면, 국가의 부당한 파병으로 생명에 위험에 처한 김선일씨를 구하는 자리에는 고작 2천이 모였습니다. 그 많던 촛불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노무현이 아니라 이회창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면, 아마 거리는 파병반대의 물결로 넘쳐났을 것입니다. 이게 정치의식입니까? 이게 민주주의입니까?

도대체 이런 전쟁에 반대하고, 파병을 결정한 책임자들을 비판하는 것도 죄가 됩니까? 소위 노빠들의 극성 때문에 파병반대 얘기하는 것도 '모험'이 되어버렸습니다. 파병에는 반대해도, 그 결정을 내린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파병 결정해놓고, 비난도 받기 싫다는 겁니까? 파병을 하되 비난은 받기 싫으면 정권을 한나라당에 넘길 일입니다. 그럼 우리의 비판은 한나라당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저 역시 원칙적인 평화주의자는 아닌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정당한 전쟁과 부당한 전쟁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프간 전쟁의 경우 9.11로 3천명의 무고한 시민이 희생당했고, 그 범죄를 저지른 빈 라덴이 아프간에 있었고, 아프간 정부는 그의 신병 인도를 거부했고, 그 전쟁은 유엔의 승인을 받았고, 유럽의 여러 나라를 포함해 다국적군이 참전을 했습니다. 이런 전쟁에 군대를 보내는 것은 이해를 해 줄 여지가 있습니다. 정치인으로서 그 정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은 다릅니다. 후세인과 알카에다는 아무 연관이 없고, 이라크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없었고, 그래서 유엔의 승인을 받지 못 했고, 누가 봐도 명백한 침략전쟁입니다. 게다가 무차별한 미군의 사격과 폭격으로 인해 수많은 이라크 민간인들이 희생당했고, 포로로 잡힌 이라크의 군인들은 감옥에서 짐승 취급을 당했습니다. 이런 전쟁에 군대를 보내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범죄'입니다. 왜 이런 범죄적인 전쟁에 한국군이 참여를 해야 하는지, 누가 제게 납득할 만한 이유 좀 대 주세요.

3.

김선일씨를 죽인 자들은 해방투사들이 아니라 테러리스트들입니다.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다는 점에서 부시와 똑같은 전쟁 범죄자들입니다. 그들은 규탄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파병할 경우 그들이 파병국 국민을 상대로 테러를 저지르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파병을 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국가의 기본임무를 져버리는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무책임한 일을 청와대에 앉은 분들이 '안보'라는 이름으로 져질렀습니다.

파병을 할 경우, 이와 유사한 일은 앞으로 계속 벌어질 것입니다. 적어도 파병 때문에 이라크와 그 주변 아랍국에 사는 우리 교민들, 거기서 활동을 하는 우리 상사원들의 생명이 위태로워졌습니다. 이게 현 정권의 '안보' 정책입니다. 그렇게 제 나라 국민을 위험에 빠뜨려놓고,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더 안전해졌을까요? 김선일씨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기 삶에 더 안정감을 느끼는 분들 계시면 한번 나와 보세요.

김선일씨가 당한 비극은 언제라도 '나'의 불행, 내 가족의 불행, 내 친구의 불행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김선일씨의 부모도 파병에 찬성했다지 않습니까? 설마 자기 자식이 거기에 희생당할 것이라 꿈앤들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저마다 다 그건 남의 일이라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불행은 불행하게도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고 안 찾아오는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잠재적인 희생자입니다. 우리 모두가 잠재적인 김선일입니다.

"한 사람 잡혀간다고 파병철회하는 나라 있냐?" 이게 정부여당의 일반적인 분위기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한나라당 애들이야 원래 그런 애들이라고 치고, '개혁'을 외치는 정부여당까지도 이런 무서운 생각을 서슴없이 내뱉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이런 분들에게, 어떻게 이런 나라에 우리의 생명을 맡겨놓을 수 있습니까? 파쇼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전체주의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납치된 상황에서 버젓이 저런 발언할 수 있는 저 대담함, 저런 끔찍한 발언을 허용하는 우리 사회의 무감함, 그게 전체주의입니다.

4.

미국이 문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극단적인 입장을 배격해야 합니다. 하나는 NL류의 극단적인 반미 전민항쟁론입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이익이 곧 우리의 이익이라 강변하는 극단적인 친미주의입니다. '한미동맹'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예, 중요하지요. 하지만 '동맹'이란 무엇일까요? 미국이 하자는 대로 간까지 빼주는 게 과연 '동맹'일까요? 그것은 '동맹'이 아니라 주종관계입니다.

대한민국의 국군통수권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노무현 대통령에게요? 아니지요. 국군통수권은 국군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권한을 누가 갖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권한은 부시가 갖고 있습니다. 부시는 대한민국 국군을 아무 데나 갖다 박을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왜? 노무현 정권이 부시에게 국군통수권을 양도했기 때문입니다. 주권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자기의 기본적 직무를 유기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조차 부시 정권이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해쳤다"는 비난이 나오는 판에, 제 나라 국익을 져버리고 진정한 동맹관계를 해치는 부시의 깽판에 장단 맞춰 춤이나 추는 게 과연 '동맹'입니까? 이것은 한 마디로 무능함과 나태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겁니까? 제 나라 국민이 이국땅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사태를 보고도 여전히 부시 눈치나 봐야 합니까? 이 나라에 도대체 외교전략이 있는 겁니까? 안보전략이 있는 겁니까?

파병철회해야 합니다.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이라는 한국에서 파병을 거부할 경우, 부시 정권은 막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대선에서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당하고만 있을 게 아니라 우리 역시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한미동맹' 좋다, 하지만 그 방식은 너희들 멋대로 정하게 놔둘 수 없다. 우리도 너희를 날릴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부시는 미국이 아닙니다. 미국의 절반도 채 안 됩니다.

5.

김선일씨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와서 울부짖던 그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는 우리에게 구조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호소를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점에 관한 한 우리 모두가 공범입니다. 파병을 결정한 이들은 주범이고, 파병을 묵인한 이들은 종법이고, 파병을 반대하되 힘있게 밀어내지 못한 모든 이들은 넓은 의미의 공범입니다. 앞으로 이런 비극적인 사건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파병반대, 한국군철수를 위한 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 나라는 정치가 사람들의 의식을 개발시키는 게 아니라, 외려 사람들의 비판적 의식을 마비시킵니다. 선거를 앞두고 있지 않으면 아무리 중요한 사건이 터져도 사람들이 안 모입니다. 특정 정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면 촛불도 켜지지 않습니다. 이게 그 잘난 인터넷 민주주의의 수준입니다. 어제 모인 2천 명, 그게 이 나라 평화주의 역량의 전부입니다. 바로 그래서 이런 비극적인 일을 막을 수 없는 것이지요.

박노자가 그랬던가요?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어서 다행이라고. 그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끔찍할 뻔 했다고. 배울 만큼 배웠다는 지식인이라는 분의 정치의식이 이렇게 나이브합니다. 차라리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한국인 특유의 정치의식이 발동하여 아마 지금쯤 거리가 파병반대의 물결로 차고 넘피고 있을 겁니다. 아무리 정치에 환장을 해도 그렇지, 어떻게 시민들이 저토록 완벽하게 현실의 정당세력에 포섭될 수가 있을까요? 이럴 때는 정말 절망적인 생각이 듭니다.

성급하게 '희망'을 말하는 사람은 아직 절망의 끝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희망이 없어도 저항하기를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쉽게 '열정'에 빠지는 사람은 아직 현실의 냉혹함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열정에 들떠 어떤 일을 하기는 쉽습니다. 그것은 창조력이 고갈된 가수가 대마초를 피고, 한계에 도달한 운동선수가 약물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진정한 가수는 대마초 없이도 상상력을 가질 수 있고, 진정한 선수는 약물 없이도 체력의 한계를 극복합니다. 진정한 저항은 섣부른 희망이나 뜨거운 열정 없이, 현실의 냉정함을 보고 존재의 밑바닥에서 힘을 끌어올리는 용기에서 시작합니다.

파병반대, 국군철수. 여당과 야당이 동조하고, 조중동의 지원을 받고, 김선일씨의 운명을 제 것으로 느끼지 못하는 수많은 무감함의 덩어리들에 맞서 싸우는 싸움입니다. 엄두가 안 나지요. 어제 MBC 저녁뉴스에 파병반대 움직임은 테러범들에게 놀아나는 것이라는 뉘앙스의 얘기를 하더군요. 그것을 들으며 얼마나 끔찍했던지. 하지만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진정한 진보의 전선은 열우당과 한나라당 사이도 아니고, MBC와 조선일보 사이도 아니고, 한겨례와 조선일보 사이도 아니고, 바로 거기에 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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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rysky 2004-06-24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많은 글을 읽고 많은 말을 들었다. 그리고 많은 생각도.. 아니, 사실 생각은 그닥 하지 않았다. 나 자신 생각에 잠기고 싶지 않았고, 주변에서 그럴 여유도 주지 않았다.
오늘 나를 스쳐간 수많은 목소리들 중에서 가장 내 맘과 비슷한 글이다. 지금 당장의 상황보다 일의 본말을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 사람의 정치적 생명이 수천 수만 명의 실제 생명보다 중요시된다는 건 슬프지 않은가.
 

오늘은 1년에 딱 한번 있는 특별한 날이다.
바로 1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
1년의 24절기 중에서 내가 그 날짜를 확실히 기억하면서 제대로 챙기는 절기는 하지뿐이다. 해마다 이날을 기점으로 세상에 대한 내 태도가 확 바뀌기 때문이다.

겁이 많은 나는 어렸을 때부터 밤을 굉장히 무서워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아름다운 노을을 보는 황홀함에 기쁘기도 했지만 그 순간 등 뒤에서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는 어둠이 너무 두려웠다. 밤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세상 모든 무서운 일 나쁜 일은 다 밤에 일어난다고 생각했기 떄문이다. 그래서 마음 놓고 잠들 수도 없었다. 내가 자는 동안에 나나 내 가족의 신상에 끔찍한 일이 닥쳐올까봐, 아니면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내 잠자리 주변을 어슬렁거릴까봐, 그것도 아니면 자는 동안에 지구가 멸망하기라도 할까봐..

밤에는 가급적 잠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어떻게든지 밤을 밝히면서 그 어둡고 무서운 시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내 눈으로 확인한 후, 태양빛이 비쳐들기 시작할 무렵에야 겨우 이 끔찍했던 시간이 다시 한번 무사히 지나갔음에 안도하며 잠들곤 했다. 하지만 어린 내가 이런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데는 장애가 많았다. 아침이면 학교도 가야 했고 엄마아빠는 얘가 자나 안 자나 감시하기 위해 시도때도 없이 내 방문을 열었고.. 그래서 나는 내 비뚤어진 생활 사이클에 정당성을 부여해야 했다.

우선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면 무조건 침대로 직행했다. 그때 시간이 4시건 5시건 7시건 상관없이, 밥도 안 먹고 그냥 해 떠 있는 동안 잠들어 버리는 거다. 맘 같아선 그대로 아침까지 내처 자고 싶었지만 하루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매일매일 15시간 이상을 잘 수 있겠는가. 보통 잠에서 깨면 11~12시 정도. 그때쯤 느지막이 저녁을 먹고 밤을 샐 준비를 한다. 시험 기간에는 이런 방법이 아주 잘 통했다. 밤에 조용한 시간에 공부할 거란 말이야~ 라고 하면 엄마야 당연 껌뻑 넘어간다. 어이구 내 새끼~ 하면서 밤참도 챙겨주고.. 시험 기간이 아닌 평소에는 약간 무리수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평소에도 공부를 미리미리 해둬야 한다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내 생각에)를 지껄이며 그 방법을 고수했다.

물론 1년 365일 이렇게 살지는 못했다. 여러 변수도 작용했고, 제발 좀 정상적으로 살라는 엄마의 강력한 권고도 있었고 해서.. 하여튼 그렇게 밤을 밝히는 시간 동안에도 마음 편하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건 절대 아니고, 계속해서 몰려오는 공포와 싸워야만 했다. 사방이 어둡고 조용하니 온갖 끔찍한 상상들은 다 떠오르고, 아주 조그만 소리에도 신경이 바짝 곤두선다. 눈길 닿는 곳마다 불을 환히 켜놓아도 어딘가에서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화장실 가는 것도 무섭고.. 해서 믿지도 않는 온갖 신들의 이름을 불러대며 빨리 날이 밝게 해달라고 해를 달음질치게 해서 어서 떠오르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그렇게 1년 내내 밤의 공포에 떨던 내게 하지가 다가온다는 것은 신의 축복이었다. 무서운 밤은 짧아지고 낮은 길어지는데다 해도 더 빨리 떠서 두려움을 떨치고 평온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으니까.. 덕분에 하지를 기점으로 앞뒤 2달 정도씩은 마음이 편해지고 만사가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날짜가 점점 동지로 다가갈수록 인생이 우울해진다. 이런 버릇은 밤에 잠 못 드는 경향이 예전보다 조금 나아진 요새도 비슷하다. 사실 하지가 지나면 다시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므로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기쁘면서도 우울하달까.. 오히려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를 더 좋아해야겠지만 동지 자체가 방미 가장 긴, 끔찍한 날이기 때문에 그날은 도저히 기뻐할 맘이 들지 않는다.

하루 24시간 낮만 있는 나라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물론 별을 좋아하니까 그 나라의 어느 곳에선가는 별들을 맘껏 볼 수 있어야 한다. 단, 내가 원하는 시간 동안만 별을 보다가 다시 문을 열고 나서면 눈부신 햇살이 나를 반기며 내 마음을 안도케 하는, 그런 곳이라야 한다.

* 이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완벽한 '저녁형' 인간이다. 덕분에 올 상반기에 온나라를 뒤흔든 '아침형' 인간 붐이 심히 껄쩍지근했다. 아무리 음모론을 주장해도 귀기울여주지 않고 내 주변의 믿었던 올빼미들마저 하나둘 배신을 때렸다. -_- 그러나 최근에, 저녁형 인간이 억지로 아침형으로 살려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는(쬐끔 과장) 기사를 읽었다. 덕분에 맘이 아주 편해졌다. 움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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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4-06-21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대단하십니다.
하긴 저도 저녁형에 가깝긴 하옵니다만...
원체 잠이 많은 인종인지라^^;;;

ㅎㅎㅎ
좋은 날 축하하옵니다^^
맥주에 부침개라도 쨍!!!

지금 밖은 천둥에 번개에 난리가 아니군요...잠도 안오고...
열어둔 창틈으로 들리는 빗소리가 참 좋군요...

starrysky 2004-06-21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잠은 디게 많아요. 그러니 괴롭지요.. ㅠㅠ
하지만 오늘은 기쁜 날 좋은 날. 비록 날이 우중충해서 해 뜨는 건 안 보이겠지만 구름 뒤로도 해는 일찍 떠오르겠지요. 저희집은 내일 부침개가 아니라 만두를 해먹는대요. 만두 귀신인 제가 요새 한동안 만두 결핍증에 시달렸더니 두고 보다 못한 엄마님이 자비를 베푸셔서.. ^-^
근데 반딧불님은 저랑 많이 먼 곳에 사시나 봐요. 여기는 사위가 조용하고, 바람만 약간씩 부는데.. 천둥은 무섭지만 번개 좋아하는데, 그리로 구경 갈까요? ^^

반딧불,, 2004-06-21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쓩 날아오세요~~
윗쪽은 비 그쳤다더니 맞나보군요.

여긴 그곳에선 서너시간 걸리는 곳이지요.
그나저나...간만의 빗소리 좋네요.

반딧불,, 2004-06-21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머감각 없음이 싫네요.
꼬리가 이리 재미가 없을까요^^;;

starrysky 2004-06-21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쓴 말씀이세요~ 전 반딧불님의 코멘트, 늘 재미있게 즐겁게 따뜻하게 읽고 있는데요.. 님의 불빛이 반짝이지 않는 글은 너무 외롭고 쓸쓸해 보여요. ㅠㅠ (앗, 이런 식으로 코멘트 압박을.. 크크)
근데 대략 서너시간이 걸린다면 날아서는 얼마나 걸리려나요.. 음, 근데 비 때문에 고생하시는 분들 많으신데 번개 구경하러 간다고 하니까 너무 찔리네요. 반성할게요. ㅠㅠ

mannerist 2004-06-21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 중 정말 적응하기 힘들었던게 10시 넘어서야 해가 지고, 다섯시만 되도 밝아지는 거였지요. 대신 겨울에는 네시면 어둑어둑해진다더군요. 나중에 넉넉해지신 다음에, 하지 즈음에는 북유럽쪽에서 보내시고, 동지 즈음에는 남반구 케이프타운 즈음에서 보내시면 어떨까요? =)

불량 2004-06-21 0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헷..밤 샜습니다. 날이 밝아오네요..^^ 창문이 밤새 덜컹거렸습니다.
스타리님의 밤에 대한 공포 부분을 읽다가 엉뚱하게도 알퐁스 도데의 '별'을 떠올려버렸습니다. 중학교 책에 나왔던가.. 양치기가 주인집 아가씨와 함께 여름 밤을 새우게 되잖아요. 그 때 나왔던 묘사가.. "밤은 낮은 생물들의 세상이다.' 뭐 그런 거였어요..낮에는 그 흔적조차, 존재 조차 알 수 없었던 힘없고 작은 생물들이.. 움직이고 빛을 발하고 소리를 내고 그 생명력 하나하나를 인간도 고요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새벽 직전의 밤이잖아요..
전 그래서..그 시간을 좋아해요.. 무생물조차도 살아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요..
알고보면 같은 현상을 두고 스타리님은 무서워하고..저는 기뻐하고 있는 것이군요..^^;;
밤을 즐기세요~~~라고 권하고 싶지만.최근엔..그 낮은 생물들이란 것들이 모기와
바퀴벌레의 움직임이 대부분이라.. ㅋㅋㅋㅋ (뭣하자는겨..)

starrysky 2004-06-21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너님. 유럽 쪽은 '백야'라는 훈늉한 현상이 시작되는 시기로군요. 세상에 있지도 않은 상상의 나라를 갈망하느니, 말씀대로 해가 길어지는 나라를 따라다니면서 살아보는 것도 멋지겠군요. (돈 마니마니 벌면요.. ㅠ_ㅠ)
불량유전자님. 오늘은 날이 흐려서 해가 안 떴지요? 그래서 별로 하지 기분이 안 나서 슬펐어요. '무생물조차도 살아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 바로 그 느낌 때문에 제가 밤에 잠을 못 이루지요. 크흐흑. ㅠㅠ 그래도 무슨 이유로건 불량유전자님이 저와 같은 시간에 깨어서 알라딘 어딘가에 계신다고 생각하면 무서움이 한결 덜하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계속 저와 함께해주십사 하는 프로포즈인 거죠. 아잉~ 부끄러워라~ ^///^ (이 글을 읽으신 후, 오늘밤부터 불량유전자님의 자취를 알라딘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가 되는 게 아닐지..;;)

Laika 2004-06-21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이제부터는 starry님의 전성기 인가요? 겨울이 다가오면 제가 등불 들고 starry님의 뒤를 따르지요.걱정말고 지내세요.....^^

panda78 2004-06-22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리님께는 분명히 심각한 일일 텐데, 왜 저는 슬며시 웃음이 나올까요.. ㅋㅋ
저도 저녁형, 혹은 밤형 인간인데, 스타리님과는 반대 이유로 그런 것 같아요.
밤이 좋고 낮이 싫어서, 낮에는 주로 자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 버리고
밤에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노는 거죠..
(하루키가 비슷한 말을 한 걸 읽은 기억이 나는데)스타리님이랑 저랑 둘이서 편의점이라도 하면 좋을지도... ^^

starrysky 2004-06-22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이카님. 제 전성기는 보통 3월부터 10월까지죠. 11월이 다가올수록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도 안 되면서 잠은 더 안 오고.. 심신이 피폐해진답니다. ㅠㅠ 하지만 요새는 아쭈 즐거워요 ^^ 그래도 이번 겨울에는 라이카님이 저를 위해 등불을 켜주신다니, 이렇게 좋을 수가요~ ^-^ 이제 겨울 따위 두렵지 않아요!!!
새벽별님. 음, 저는 그럼 좀 낙관적인 편인가요? 후후, 사실 저처럼 단순한 사람은 비관적이 되기도 쉽지 않답니다. 겁은 좀 많지만, 나쁜 일 따위 금방 까먹고 '뭔 일 있었냐?'가 되어 버리거든요. ^^
판다님! 웃지 마셔욧! 저는 심각한데.. -_-;; 후후, 농담이예요. 심각하긴요.. 저도 이렇게 밤을 낮 삼아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까 밤의 매력에 점점 푸욱 빠지게 되더군요. 조용하고 별도 많이 보이고 불빛들도 아름답고 집중도 더 잘 되고.. 놀기에 아주 좋아요. ^^ 진짜 우리 둘이 심야영업이 가능한 뭔가를 하나 하면 참 좋을 텐데요.

로렌초의시종 2004-06-22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많은 생각을 하는 글이네요. 저는 작년부터야 낮과 밤의 길이가 달라지는 순간순간을 민감하게 느꼈더랬지요. 그 순간의 복잡한 감정이란......

starrysky 2004-06-22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부터라면 고3 때부터? 음.. 밤새 공부를 하시다가 동터오는 하늘을 보셨나 봐요.. 맞죠? ^^
저희 집은 약간 남서향이라 베란다 오른편으로 해지는 게 보이는데, 해가 길어질수록 해지는 위치가 점점 더 오른쪽으로 음직여 간답니다. 그런 걸 보면서도 계절의 변화와 낮과 밤의 길이 변화를 느낄 수 있지요. 노을은 너무 좋아요~ ^-^

마태우스 2004-06-26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낮의 황제시군요^^ 전 밤이 좋은데... 응큼한사람은 밤을 좋아하고, 떳떳한 사람은 낮을 좋아하는 법입니다.

starrysky 2004-06-26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햇살 환한 낮이 좋지만, 정작 활동량이 많은 시간은 밤이랍니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요괴와 악의 기운을 물리쳐야 하는 막중한 사명이 있거든요. 음하하하~ (누가 보면 미친 줄..;;;)
 

영화 '화씨 9.11', 저작권 침해 논쟁 휘말려 
 
[아이뉴스24 2004-06-20 13:35]

부시 대통령을 정면 비판해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화씨 9.11'이 이번엔 저작권 침해 논쟁에 휘말리게 됐다.
소설 '화씨 451'의 작가인 레이 브래드버리가 "마이클 무어 감독이 내 허락 없이 작품 이름을 영화 제목으로 도용했다"고 주장했다고 BBC가 19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브래드버리는 "(화씨 451은) 그의 소설이 아니다"면서 영화 제목을 원작대로 바꿀 것을 요구했다.

1953년에 출판된 '화씨 451'은 소방관들이 책을 없애기 위해 집과 도서관에 불을 지르는 암울한 미래 사회를 그리고 있다. '화씨 451'이란 제목은 책이 불타는 온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자유가 불타는 온도'란 의미를 살리기 위해 영화 제목을 '화씨 9.11'로 붙였다. '화씨 9.11'은 오는 25일 미국 전역에서 개봉된다.

브래드버리는 "6개월 전 마이클 무어 감독의 회사에 전화해 항의했다"면서 "당시 무어 감독이 자신에게 전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사들끼리 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영화 '화씨 9.11'의 대변인인 조안 도로쇼는 "영화 제작자들은 레이 브래드버리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는 브래드버리의 작품을 통해 이 영화의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면서 "그가 영화를 보게 되면 9.11 이후 실제 삶을 잘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브래드버리는 소송은 원치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는 "무어 감독이 내 책 제목을 돌려줄 경우엔 '신사 대 신사'로 문제를 해결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레이 브레드버리(Ray Douglas Bradbury) (1920 ~ ) 
  
미국의 소설가, 에세이스트, 극작가, 시나리오작가이자 시인.

Bradbury는 1938년 로스앤젤레스 고등학교를 졸업 후에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고 밤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낮에는 타이피스트로 일하면서 독학을 했다. 
첫번째로 출간된 그의 소설은 "Hollerbochen's Dilemma' 1938)로 아마추어 팬진 Imagination!에 실렸다. 원고료를 받고 출판한 첫 소설은 "Pendulum" (1941)로 Super Science Stories에 실렸다.  1942년에 발표한 "The Lake"에서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The Martian Chronicles(1950)으로 그는 과학소설의 지도자급 작가로서 명성을 쌓는다.
다른 Bradbury 최고의 소설로는 Fahrenheit 451(1953)가 있다.(프랑스의 트뤼포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었다) 아직도 활발히 작품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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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브레드버리, 꽤 좋아하는 SF 작가다. '화씨 451'도 물론 읽었고. 섬찟하면서도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 그의 목적이 무언지 도대체 모르겠다. 내가 상상해오던 그라면 마이클 무어 감독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며 수고하라고 따뜻하게 한마디쯤 건네줄 사람 같았는데 엉뚱하게 영화 제목이나 걸고 넘어지면서 소송이니 뭐니 해대다니..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이 브레드버리의 소설 제목을 패러디한 거란 사실은 누구라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그리고 오히려 그건 '화씨 451'에 대한 동감과 존경의 뜻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브레드버리의 속내가 대체 뭘까. 그냥 단순히 제대로 허락 안 받고 써서 기분 나쁘다? 아니면 '화씨 911'의 명성을 등에 업고 자신의 이름도 널리 알리고 50년 전에 나온 책(물론 고전의 반열에 들었지만)도 좀 더 팔아보자?
에잉. 우울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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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im 2004-06-20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냐.. 책의 내용을 도용했다는 것도 아니고.... 참.. 거시기하네요;;;;

불량 2004-06-20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네요...울 나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네요..


starrysky 2004-06-20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말이 그 말이여요. 책 내용을 무단으로 가져다 쓴 것도 아니고, '화씨'라는 말이 겹칠 뿐인데 '화씨' 개념을 자기가 도입한 것도 아니고 어차피 '화씨'보다는 그 뒤의 '911'에 더 무게가 얹혀 있는 거 아닌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불가예요. 느림님 말씀처럼 영 거시기한 것이.. -_-
근데 불량유전자님 왠지 오랜만인 듯하지요? 요새 글도 안 쓰시고.. 바뿌신감유? ^^

조선인 2004-06-20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맞아. 저도 이 기사 보고 흥분했었어요. 마이클 무어가 수상소감에 지 이름이라도 들먹여주지 않은 게 서운했나? 아님 저작권료가 탐나나? 흥흥흥.

플레져 2004-06-20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우지마세요... 미오요...

starrysky 2004-06-20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정말 이름 좀 비슷하게 붙였다고 저작권료까지 줘야 하는 건가요? 그럼 같은 단어 들어간 영화들은 다 걸리게요? 어후, 정말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요. -_-
정말 브레드버리 아저씨, 자꾸 싸움 걸면 미워할 거예요. (왠지 부시의 사주를 받은 태클걸기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드는 것이..)

반딧불,, 2004-06-20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름 한 번 드날리고 픈가봅니다^^

superfrog 2004-06-20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괄호 안에 쓰신 내용처럼 의심이 드는군요.. 아님 정말 순진하게 이름을 드날리고 싶은 맘에..^^;;

starrysky 2004-06-20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시의 음모설이 점점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여든다섯 넘으신 할배가 힘도 좋으셔..라는 얘기까정 나왔습니다. 레이 브레드버리, 정말 글은 재미있게 잘 쓰는데.. 좋은 작가인데 말예요.

sayonara 2004-06-27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시 음모론'에 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