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브 - 곧 시간의 문이 열립니다
김소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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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은희&형호 부부는 여느 커플들처럼 열렬하게 사랑해서 결혼 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이 초등학생이었을때, 오토바이 사고로 하늘나라로 먼저 보냈다. 그 사건을 시점으로 부부는 한 집에서 살기는 했지만, 평범한 대화가 없어지고, 서로 눈길을 주고 받는 일도 없어졌다.

 

아들의 죽음이 상대방의 잘못인 양, 서로를 무시하는 것으로 벌 주는 듯이 보였다. 서로가 서로를 눈에 안 보이는 투명인간 처럼 여기며 살았다. 말 없이도 일상을 사는데는 지장 없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아들의 사고 이후로 벌써 4년이 흘러 있었다.

 

그렇게 빈 껍데기처럼, 투명인간처럼 지내던 아내가 사라졌다. 며칠 여행이라도 갔으려나... 친정에 갔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증오와 미움도 느껴지지 않는 아내지만, 아직 남편의 역할이 끝난 게 아니어서 일말의 의무감으로 그녀를 찾아나선다. 막상 찾아나서려니 아내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 없다는게 막막했다. 짚이는 데라도 있어야 하는데,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게 이런 심정일까. 참으로 답답했다. 4년 동안 변변한 대화조차 없던 부부였고, 아내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식은지 오래였으니 당연한 얘기였다.

 

그러다 아내의 일기장이 발견되고,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 차근차근 하나씩 단서를 쫓아간다.

그러나 밝혀진 진실은 어이없고, 황당했다.

 

UFO?  시간의 문이 열린다고?  코카브?

 

이상한 단체의 꼬임에 넘어갔는지도 모를일이다. 사이비 종교에라도 가입이 된거면 이혼으로 갈라서기 전에 골치 아픈 일에 엮이게 될지도 모른다.

 

아내를 찾는 길에는 십여년의 결혼생활을 했지만 그가 몰랐던 사실도 드러난다.

아내가 장인, 장모의 친 딸이 아닌 입양아라는 사실이 그랬고, 아들의 죽음은 사고가 아닌 자살일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사실이 그랬다. 믿기 힘든 혼란스러운 얘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혼란스러움과 충격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게 되자,  그 모든 충격을 먼저 겪었을 아내의 마음은 어땠을까에 머물렀다. 그동안 그녀가 방황했을 시간이 아프게 느껴졌다.  아픔과 고통, 혼란스러움이 얼마나 많은 시간 아내를 혼자 울게 했을까 하는 마음에 한없이 가엾게도 느껴졌다.

 

'코카브' 라는 곳은 UFO를 믿는, 또 다른 세계를 믿는 사람들의 단체 이름이다.

코카브의 회원이면서 시간의 문을 통해 또 다른 세계로 떠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시간의 문'이 열리는 D-day 가 언제일지 궁금해 했다. '시간의 문'이 열리는 장소와 시간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데, 그 중요한 날짜와 장소는 코카브 회원이 아니면 알 수가 없다.

 

현재로서는 코카브의 위치조차 수수께끼다.

아내는 분명 그 코카브를 향해 떠났을텐데 그 코카브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코카브를 찾는 과정이 중요하지는 않은 듯, 생각보다 쉽게 코카브의 위치를 알아내고 코카브에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  그 안에서 쓰는 용어다. 사람을 지칭하는 계급 정도로 보면 되는데, 델타의 지위(?)인 그는 베타의 아내를 당장은 만날 수 없다고 한다. 교육을 받고 코카브 내부 프로그램을 이수한 후에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아내를 만나기 위해 코카브의 회원인 척 하면서 교육을 받고, 숙식을 해결하며, 믿음이 있는 양 사람들과 어울린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또 하나같이 아픔을 간직한 공통점이 있었다.  공통적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했고, 행복했던 시간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 이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채 5~6명 단위의 여러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처음엔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사람들이 모두 미쳤거나, 철저히 세뇌 당한게 아닐까 했었다.

그러나 차츰 그 자신도 코카브에 빠져들고 있었다. 

 

과연 그들이 말하는 '시간의 문'은 열릴 수 있을까?

그들 각자가 원하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책 초반에 "UFO" 라는 단어가 나와서 '아! 내 취향이 아닐 수 있겠다!' 성급한 결론을 내렸었다.

그러다 중반 이후로 가면서는 코카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졌다. 저자와 함께 아내를 찾고 있었고, 코카브의 시스템과 최종 목표가 뭔지 함께 궁금할 정도로 소설에 몰입되어 있었다.

 

코카브 회원들의 저마다의 사연을 보면서는 훌쩍 거리기도 했다.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형호가 느끼는 회한과 뉘우침을 보면서 어쩌면 과학적인 지식으로 무장한 불법단체처럼 보이는 코카브가 여러사람의 삶을 구원해 주는 좋은 단체일 수 있겠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손상된 생각과 상처를 고쳐주고 치료해주는 훌륭한 병원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목적한 바는 따로 있었겠지만 말이다.

 

역시 이 책도 아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 자리에서 금방 읽더니,

"엄마! 마지막 부분이 슬펐어? 아까 훌쩍거렸지?" 한다.  

"넌 그 부분 안 슬펐어? 뭉클하지 않았어?"

"어. 조금 그런 부분도 있기는 한데, 많이는 아닌데... 아형이 '배신자'라고 하는 부분은 재밌잖아."

 

실제로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소리내어 킬킬 거리기도 했다.

일정부분 아들에게는 동감이 덜 될 수도 있었겠다. 아직 어린 아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아들도 나도 재밌게 읽었다.  주위에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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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뺄셈 - 버리면 행복해지는 사소한 생각들
무무 지음, 오수현 옮김 / 예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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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잘 모르지만, 한국화의 특징 중에 "여백의 미" 라는 게 있다.

얼핏 보면 허전하고 심심하다. 그러나 뭔가 더 그려 넣어도 충분할 만한 공간을 일부러 비워두는 것이 한국화의 특징이자 매력이라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한마디로 '속도전'이다. 무한 경쟁의 시대이고, 대부분의 것들이 속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하루라도 빨리 개발하고, 경쟁자보다 먼저 선점하는 걸 성공한 사례로 꼽는다. 성공을 꿈꾸는 자들이 그토록 이루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그런 지금의 시대에 역행하는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고 있다.

루저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실패한 사람들의 행보일 것 같은 뺄셈의 철학을 지속적으로 설득한다.

뺄셈, 마이너스, 손해보는 삶... 그런 일화와 에피소드들로 책 한 권을 채웠다.

 

(...)

" 어렸을 때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뭐든지 다 안다고 착각했으며, 졸업을 한 후에야 배운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또 중년이 되어서는 뭐든 다 안다고 착각을 하다가 만년에 이르러서야 그 어떤것도 제대로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지요."

(...)

 

 

손 안에 이미 유리공을 쥐고 있으면서 더 많은 공을 손에 넣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좀 더 크고 예쁜 공이라면 서둘러 바꿔치기 한다. 한 손에 하나씩 가졌으면서 더 이상 욕심 부리지 않아도 되는데, 탐욕과 욕망의 괴물은 좀 더 가지라고, 좀 더 큰 걸로 바꾸라고 부추긴다. 욕망이라는 괴물은 허락도 없이 언제부턴가 내 몸 어딘가에 찰거머리 처럼 붙어서 떠날 줄을 모른다.

 

비워야만 다시 채울 수 있는 컵 안의 물처럼... 새로운 뭔가를 얻으려면 손 안에 것을 내려 놓아야 한다. 그 간단한 규칙을 우린 자꾸 잊어 버린다. 어쩌면 잊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눈 감고 귀 닫은 채 모른척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왜? 남들도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렇지 않으면 나만 뒤쳐지는 것 같으니까.

 

우리는 수시로 욕망한다. 하나라도 더 소유하고 싶고, 남보다 앞서 걷고 싶어한다. 남에게 자랑스레 보여주기 위한 삶에 모든것을 집중시킨다. 충분히 행복할 삶도 남과 비교하며 내 자신을 불행으로 집어 넣는다.  남과의 비교에서 우위에 있으려면 조금 더, 많이 더 가져야 만족이 된다. 만족이 없는 무한의 욕구를 위해 오늘도 우리는 자신을 속이고, 괴물의 손아귀에서 정신줄을 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슬림 라이프, 슬로우 라이프. 빠르게 변해가는 초고속의 시대에 제동을 거는 내용이었지만, 묘한 울림이 있다.  잠시의 여유조차 그리울 만큼 우리 모두는 속도를 늦출 수 없는 경기장 한 복판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용서하고 양보하고... 한번 더 친절을 베풀고 인내하고...

힘 주어 움켜진 손에서 힘을 빼고 손을 펴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홀가분함과 평화로움, 편안함이 손에 쥐어지게 될 것이다.

 

더하기만 하려하지 말고 버릴것은 버리고, 나눌것은 나누는 것도 필요하다. 내 것을 자꾸 남에게 퍼주는 후원자나 기부자, 봉사자들의 얼굴에서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덧셈의 공식에서는 절대 보기힘든 큰 행복과 열매를 보게 되는 것이 그 증거겠다.

 

"비움을 실천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삶과 진실하게 마주할 수 있다"고 한다

아직 경험은 없지만, 이 말을 머리속에 저장해야겠다.

비웠을 때 뭔가 채워지는 느낌.  가치있고 보람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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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이창래 지음, 나중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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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겪고 소중한 이들을 잃은 경험을 가진 서로 다른 세 명의 인물이 주인공이다.

서로 다른 주인공들은 한국의 한 고아원에서 몇 달간 함께 지냈다.짧은 시간의 생활은 세월이 흘러서도 그들의 삶에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중요한 시기였다. 제일 행복했던 시기이면서 또 가장 아프고 힘든 시간이기도 했다.

 

준.

그녀는 한국전쟁으로 아버지와 오빠, 엄마와 언니 그리고 동생들까지 차례대로 잃었다.  가족의 죽음을 눈 앞에서 지켜보며 혹독한 삶을 경험한다. 그때 준의 나이 고작 열한살 이었다.

 

고아가 되어 군인과 사람을 피해 떠돌다 한 고아원에 몸을 의탁하게 되면서 풍족하지는 않지만 1차적인 배고픔과 추위로부터는 해방될 수 있었다.

 

생존을 위한 아주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자, 그녀를 괴롭힌 것은 전쟁이 준 상처로 삐뚤어진 마음이었다. 사람들과 사교적이지도 못하고 불쑥 화를 내기 일쑤인데다 마음에 안들면 폭력을 휘두르는 등 통제가 불가능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누구도 말 걸기 싫은 스스로 왕따를 자처한 꼴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천사처럼, 엄마처럼 때론 친구처럼 나타난 '실비'.  실비의 마음에 들기위해 그녀는 변화를 시도한다. 좀 더 친절하게 굴려고 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헥터.

고향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큰 걱정없이 살았다. 평소에는 존경하는 아버지이나 술만 먹으면 늘 싸움으로 끝나는 술 버릇때문에 금요일 저녁이면 늘 아버지 곁을 지켜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보디가드 역할이 그날은 유난히 하기 싫었다. 마침 그를 유혹하는 뭔가가 있었고, 하루만 자신을 위해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 먹고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낸다.

처음으로 아버지 곁을 떠나 있던 바로 그날 아버지는 사라졌고, 며칠 뒤에 물 속에서 발견되었다.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 전쟁에 참여할 결심을 한다. 자신을 벌 주려는 의도로 한국전쟁에 참가하는 헥터. 그러나 전쟁은 생각보다 잔인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 했다. 죽고 부상당하고 하는 아비규환의 한 복판에서 못 견디고 차라리 죽은 사람을 처리하는 사상자 수습부서로 가게된다.

살생보다는 나았지만, 죽음과 가까운 곳에서의 생활이 유쾌할 리는 없었다. 그 일도 곧 그만두고 여기저기 떠돌다 고아원에까지 발길이 닿았다. 그곳에서 며칠 지내다 보니 헥터가 쓸모가 많은 사람이었다. 폐교를 고쳐 고아원을 만드는 일은 끝이 없었다. 헥터가 큰 도움이 되면서 지내는 시간은 길어지고, 헥터 자신도 아무 생각없이 일에만 파묻혀 지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게 그에겐 힐링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곳에서 만나게되는 '실비'.  목사의 아내인 그녀와 특별한 사이가 되면서 행복함과 고통을 동시에 맛보게 된다. 헥터에게는 사랑이었는데, 실비에게도 그가 사랑이었을까?

 

 

실비.

선교활동을 하는 부모님을 따라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여기저기 세계 곳곳을 누빈다. 주로 찾아다니는 곳은 당연히 관광지는 아니었다.  한국전쟁 당시의 우리나라처럼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곳이다. 쉽게 말해 고생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었다.

1930년대 중반 만주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당시는 중공군과 일본군이 서로 대립하면서 본격적인 전쟁 초읽기에 들어간 초긴장의 시기였다.

 

교회를 운영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 중에도 군인들의 눈치를 보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부상당한 중공군 포로를 숨겨두고 치료를 해준 이후로 교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끼리도 의견이 엇갈렸다. 중립을 지키는 길만이 살 길이니 부상당해 죽어가더라도 선의를 베풀면 안된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여러 차량을 이끌고 막무가내로 들이닥친 일본군! 먹을것과 잠자리를 제공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그들의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빨갱이를 찾는다는 명분아래 외국인 선교사도 개의치 않고 한 사람씩 불러다 취조를 시작하는데.. 일본의 잔인함은 거기에서도 드러났다. 

그곳에 지내던 사람들을 사소한 이유로 상해를 입히고 죽였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전시상황이긴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필요 이상으로 잔혹했다. 그 사상자들 속에 실비의 부모도 들어 있었고, 부모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하게 된다. 그 자리에서 함께 죽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후회가 있었지만, 실비는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전쟁을 경험했다는 것이고, 가족을 잃었다는 것이다.

또, 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하지 못한 채,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죽는 날까지도 그들은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충족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는 듯 무엇인가에 중독된 것 처럼 보이는 삶을 산다. 마약에 빠져들고, 돈을 버는데 온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힘들고 남들이 기피하는 일을 찾아 다니며 자신을 혹사시키는데 몰두한다. 오히려 뭔가에 빠져 있을때, 깊이 생각을 하지 않을때 그들은 정상인으로 보이기도 한다.

 

소설 초반에는 전쟁에서 살아남았으면 남들보다 배로 행복하게 살면 될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었다. 그러다 뒤로 갈 수록 반전이 될 만한 이야기가 드러나면서 '이래서 였나?' 하는 이해할 만한 이유들을 하나씩 끼워 맞추기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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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의 싱글맘 스토리
신현림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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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복의 비단실을 만드는 시간

2. 씩씩우먼으로 가자, 헝그리정신으로

3. 수컷들이 그립다

4. 인생에서 핵심만 생각하자

5. 누구나 라이프 아티스트

6. 에필로그

 

 

시인이기도 한 그녀가 이혼하고 딸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으로는 에세이집 1권 읽은 게 전부이다. 큰 감명을 받았다거나 혹은 실망스럽다거나 하는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이전 작품을 읽을 때는 결혼 유무를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그녀의 사생활을 조금 알게 되었다.

 

이 책에는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일하면서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고단함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전 남편과의 이별도(책이 끝날 때까지도 일부 소송은 진행 중이었다)아직 진행 중인 것 같다. 이혼을 해도 아이 때문에 완전한 '남'으로 돌아서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가 보다.

 

그 지난한 과정에서 겪는 마음의 상처, 서로 할퀴고 물어뜯고, 흉기를 휘두르는 것 같은 심적 고통이 간접적으로 느껴졌다. 저자는 지독한 악취가 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매듭이 덜 묶여진 상태의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소송과 법정 다툼이 남아있었지만, 그 고뇌 속에서도 일을 해야 고, 살림도 해야 했고, 딸아이도 길러야 한다. 어린이집을 다니긴 하지만 한참 손이 많이 가는 나이의 아이였다. 그런 고단함이 내가 직접 겪지 않은 일임에도 충분히 상상되었다.

 

그래도 저자는 씩씩하게 는 모습을 보여 준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노력을 성실히 이행한다. 햇빛, 시원한 바람 등 소소한 것에서도 기쁨을 만끽하려고 하고, 아이와의 행복을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으로 삼는다.

 

이혼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 동정하는 타인의 시선을 경험하면서, 낯선 사람과의 대화에서 '이혼'은 가급적 드러내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임을 터득하기도 한다. 가까운 곳에 내 사람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해 허전해 했고, 휴일이나 명절에 싱글들은 더 외롭고 고독함을 느낀다고도 했다.

 

첫 사랑에 실패해서 많이 신중해지고 위축된 게 사실이지만, 여전히 새로운 사랑을 꿈꾸고 있는 모습에서 행복해 준비는 끝낸 듯 보였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 싶은 바를 몇 가지로 요약해 보았다.

 - 돌아온 싱글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사절!! 친절의 탈을 쓰고 동정을 품은 조언이나 잔소리도 사절한다.

 - 이혼이라는 꼬리표가 부정적으로 쓰이는 한국사회에서 그 사고와 편견을 깨고 싶어했다. 작가의 능력으로 이런 책을 통해 그 부조리함을 폭로하고 개선시키고 싶어했고, 작은 인식의 변화도 기대하고 있었다.

 - 매일 서로 죽일 것처럼 으르렁대며 사느니, 쿨 하게 이혼하고 편하게 각자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것도 좋은 해결책임을 설득하고 강조한다.

 - "실패한 결혼이 큰 아픔과 고통을 줬지만, 우울함에 떨어지거나 자살하는 대신 예술로 승시켜 좋은 작품이라는 결실을 맺어 주니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되돌리고 싶고, 지우고 싶은 인생의 페이지도 절대 긍정으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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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의 모든 것
델핀 드 비강 지음, 권지현 옮김 / 문예중앙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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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글쓴이 자신을 노출시킬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이 글 속에 녹아들 수 밖에 없는데, 이 소설은 작가의 실제 이야기여서 책으로 묶으면서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다. 숨기고 싶은 가족사가 고스란히 나오기 때문이다. 공개하지 않아도 될 흠집을 다시 들춰 내고, 곪은 상처를 건드려서 가족들에게 새로운 고통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엄마를 보면서 어떤 힘듦이 있어서 자살까지 감행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었다. 엄마의 일생을 거꾸로 되짚으면서 자살 이유를 찾아 과거를 조사하고 그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또 작가 자신이 '엄마'이야기가 아니면 다른 어떤 글도 쓸 수 없을 것 같아서 이 책을 시작했다고 한다. 엄마의 형제자매와 친구들, 가족들에게서 엄마와의 관계를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엄마의 일생을 더듬어 간다.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엄마의 어린 시절을 주로 담았다. 엄마를 포함해 9명이나 되는 많 형제를 가졌지만, 하나의 사건을 놓고  때 형제들의 기억이 서로 달라 이야기를 끼워 맞추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현재에서 먼 과거로 갈 수록 기억은 더 희미하다. 또, 자신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기 때문에 이야기는 서로 달라지기도 한다. 아귀가 안 맞는 사건들이 조각 조각 짝이 맞지 않는 퍼즐처럼 존재한다. 그러나 1부의 이야기는 소설처럼 매끄럽다. 작가의 능력이 빛을 발한 단락이겠다.

 

 

잡지와 매스컴에 나오는 어린이 모델을 할 정도로 미모가 뛰어난 엄마 '뤼실'은 어린아이였을 때도 여느 아이들처럼 발랄하고 수다스런 아이는 아니었다. 많은 형제들 틈에서 함께 어울리기 보다는 홀로 떨어져서 고독을 즐기는 편을 택했다.

 

2부로 넘어 오면서 엄마가 겪은 고통이 하나씩 드러난다. 이혼, 정신이상증세, 형제의 죽음, 조울증 그리고 암과의 싸움 등이 복합적인 고통을 준다. 정신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친아버지가 어린 자신을 강간했다고 고백하는 엄마 뤼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엄마의 고통은 아주 오래 전부터 치유되지 않은 채 계속 따라다녔던 셈이다.

 

소설 초반에는 형제들의 증언에 의존해서 그들의 눈에 비친 엄마였다면, 중반을 넘기면서는 딸이 바라보는 엄마가 묘사된다. 후반부에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엄마를 가까이 지켜보며 보살피는 딸에게서 단함 느껴진다. 뤼실의 두 딸도 결혼해서 각자 가정을 꾸려 살아가는데, 든든한 친정엄마이기 보다는 골치 아픈 짐이 되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워야 할 엄마지만, 근심과 걱정을 주는 엄마였다.

 

생전에 딸들에게 고단한 엄마였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죽음 에는 늘 후회 다.

좀 더 잘해주지 못하고, 따뜻하게 안아 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두 딸을 괴롭힌다.

 

 

힘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내가 갖고 있는 트라우마를 고치는 방법 중에 '고통에 정면으로 맞서기'라 게 있다. 상처를 잊기 위해 온갖 애를 쓰며 마음 속 깊은 곳에 꽁꽁 숨겨 두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절대 고통을 이겨낼 수 없다. 치유할 수 없다.  

언젠가 한 번은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거나, 상처 부위에 소독는 행위가 있어야만 그 고통을 이겨낼 수가 있다.

 

엄마의 자살은 딸에게 큰 죄책감과 고통을 안겨 줬다.  작가인 딸은 이렇게 소설화 함으로써 자신의 고통과 맞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처를 아물게 하고 슬픔에서 해방되려는 본능이 글을 쓰도록 켰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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