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
이창래 지음, 나중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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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겪고 소중한 이들을 잃은 경험을 가진 서로 다른 세 명의 인물이 주인공이다.

서로 다른 주인공들은 한국의 한 고아원에서 몇 달간 함께 지냈다.짧은 시간의 생활은 세월이 흘러서도 그들의 삶에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중요한 시기였다. 제일 행복했던 시기이면서 또 가장 아프고 힘든 시간이기도 했다.

 

준.

그녀는 한국전쟁으로 아버지와 오빠, 엄마와 언니 그리고 동생들까지 차례대로 잃었다.  가족의 죽음을 눈 앞에서 지켜보며 혹독한 삶을 경험한다. 그때 준의 나이 고작 열한살 이었다.

 

고아가 되어 군인과 사람을 피해 떠돌다 한 고아원에 몸을 의탁하게 되면서 풍족하지는 않지만 1차적인 배고픔과 추위로부터는 해방될 수 있었다.

 

생존을 위한 아주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자, 그녀를 괴롭힌 것은 전쟁이 준 상처로 삐뚤어진 마음이었다. 사람들과 사교적이지도 못하고 불쑥 화를 내기 일쑤인데다 마음에 안들면 폭력을 휘두르는 등 통제가 불가능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누구도 말 걸기 싫은 스스로 왕따를 자처한 꼴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천사처럼, 엄마처럼 때론 친구처럼 나타난 '실비'.  실비의 마음에 들기위해 그녀는 변화를 시도한다. 좀 더 친절하게 굴려고 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헥터.

고향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큰 걱정없이 살았다. 평소에는 존경하는 아버지이나 술만 먹으면 늘 싸움으로 끝나는 술 버릇때문에 금요일 저녁이면 늘 아버지 곁을 지켜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보디가드 역할이 그날은 유난히 하기 싫었다. 마침 그를 유혹하는 뭔가가 있었고, 하루만 자신을 위해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 먹고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낸다.

처음으로 아버지 곁을 떠나 있던 바로 그날 아버지는 사라졌고, 며칠 뒤에 물 속에서 발견되었다.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 전쟁에 참여할 결심을 한다. 자신을 벌 주려는 의도로 한국전쟁에 참가하는 헥터. 그러나 전쟁은 생각보다 잔인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 했다. 죽고 부상당하고 하는 아비규환의 한 복판에서 못 견디고 차라리 죽은 사람을 처리하는 사상자 수습부서로 가게된다.

살생보다는 나았지만, 죽음과 가까운 곳에서의 생활이 유쾌할 리는 없었다. 그 일도 곧 그만두고 여기저기 떠돌다 고아원에까지 발길이 닿았다. 그곳에서 며칠 지내다 보니 헥터가 쓸모가 많은 사람이었다. 폐교를 고쳐 고아원을 만드는 일은 끝이 없었다. 헥터가 큰 도움이 되면서 지내는 시간은 길어지고, 헥터 자신도 아무 생각없이 일에만 파묻혀 지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게 그에겐 힐링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곳에서 만나게되는 '실비'.  목사의 아내인 그녀와 특별한 사이가 되면서 행복함과 고통을 동시에 맛보게 된다. 헥터에게는 사랑이었는데, 실비에게도 그가 사랑이었을까?

 

 

실비.

선교활동을 하는 부모님을 따라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여기저기 세계 곳곳을 누빈다. 주로 찾아다니는 곳은 당연히 관광지는 아니었다.  한국전쟁 당시의 우리나라처럼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곳이다. 쉽게 말해 고생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었다.

1930년대 중반 만주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당시는 중공군과 일본군이 서로 대립하면서 본격적인 전쟁 초읽기에 들어간 초긴장의 시기였다.

 

교회를 운영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 중에도 군인들의 눈치를 보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부상당한 중공군 포로를 숨겨두고 치료를 해준 이후로 교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끼리도 의견이 엇갈렸다. 중립을 지키는 길만이 살 길이니 부상당해 죽어가더라도 선의를 베풀면 안된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여러 차량을 이끌고 막무가내로 들이닥친 일본군! 먹을것과 잠자리를 제공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그들의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빨갱이를 찾는다는 명분아래 외국인 선교사도 개의치 않고 한 사람씩 불러다 취조를 시작하는데.. 일본의 잔인함은 거기에서도 드러났다. 

그곳에 지내던 사람들을 사소한 이유로 상해를 입히고 죽였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전시상황이긴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필요 이상으로 잔혹했다. 그 사상자들 속에 실비의 부모도 들어 있었고, 부모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하게 된다. 그 자리에서 함께 죽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후회가 있었지만, 실비는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전쟁을 경험했다는 것이고, 가족을 잃었다는 것이다.

또, 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하지 못한 채,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죽는 날까지도 그들은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충족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는 듯 무엇인가에 중독된 것 처럼 보이는 삶을 산다. 마약에 빠져들고, 돈을 버는데 온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힘들고 남들이 기피하는 일을 찾아 다니며 자신을 혹사시키는데 몰두한다. 오히려 뭔가에 빠져 있을때, 깊이 생각을 하지 않을때 그들은 정상인으로 보이기도 한다.

 

소설 초반에는 전쟁에서 살아남았으면 남들보다 배로 행복하게 살면 될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었다. 그러다 뒤로 갈 수록 반전이 될 만한 이야기가 드러나면서 '이래서 였나?' 하는 이해할 만한 이유들을 하나씩 끼워 맞추기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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