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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대학 - 대한민국 청춘, 무엇을 할 것인가?
이인 지음 / 동녘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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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바쁘고, 혈기 왕성하며, 생각이 많은 청춘. 우리는 그 청춘에 무엇을 하고 사는가? 한국에 사는 청춘들은 그 시간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그 시간을 '자신'답게 살지 못하고 떠나보내고는 후회하는 일이 많다. 생각을 키우고, 미래를 제대로 사는 힘을 얻는 게 청춘일진데 너무 쉽게, 보이지 않는 강요에 밀려 수동적으로 사는 게 우리들의 청춘의 모습 아닐까. 

한 청춘이, 자신과 같은 청춘을 위해서 이 책을 발간했다. 청춘들에게 조언을 해 줄 사람들을 찾고, 그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많은 쟁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이미 많은 책들과 글, 강의를 통해 알려진 분들을 찾아다니며, 그는 자신이 가야할 길에 대한 의문을 풀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질문은 가끔 원초적이기도 하다. 

이 책은 청춘에 대한 물음을 갖는 이들에게, 혹은 방황한 이들에게 필요해 보인다.  
김선우, 고미숙, 강신주, 박남희, 이택광, 조정환, 김시천, 고병권, 김미화, 홍세화, 구본형, 우석훈, 한완상, 고은광순, 임지현, 한홍구, 서동은을 만나 우리들의 시간에 대한 답을 구하려고 노력한다. 그가 발품을 팔아가며 인터뷰한 이 분들은 자신이 말한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제대로 살기 위해 공부한 대로 살기 위해, 그리고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무엇을 해야할 지 잘 알고 있으며,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서 그 무엇을 쌓아가고 있는 분들이다.  

   
 

 지각은 외적인 것이고 사유는 내적인 것이지만 이 둘은 맞물리며 이뤄지죠. 생각은 자기 삶의 표현이에요. 몸이 불편하고 자기 삶이 힘들면, 그걸 표현할 수밖에 없어요. 무겁게 생각하는 사람은 표정에서 무거운 삶이 드러나요. 이건 비유가 아니고 정말로 그래요. 그래서 사람의 말보다는 표정을 많이 보고 있어요. 때론 표정이 말보다 더 많은 걸 말해주니까요. - 189p 고병권

 
   

 우리의 청춘들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표현하고 살까? 취업에 갇혀, 돈에 갇혀 점점 무거운 삶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을 잃어버린 채 그 뻘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청춘의 명랑함은 그들의 특권이다. 특권을 누리지 못하면, 결국 지나간 후에 땅을 치고 후회하며 살게 된다. 가장 명랑하게,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인생을 살아야 할 청춘. 우리는 그때를 잘 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이들의 말이다.  

이들은 사회에 문제를 제기한다. 바꿔나가려고 노력한다.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공부를 한다. 이러한 과정들은 모두 주체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이며, 사회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각과 사유가 맞물려, 자신의 올곧은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젊음이들을 독려한다. 생각한대로 살고, 말한대로 살기 때문에 그것이 어렵지만, 그 속에서 얻고 알게 되는 많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청춘들에게 할 말이 많다.  

   
  존재하는 것 자체가 곧 공부니까요. 지금까지 사람들은 번뇌를 앓는 영역은 종교인들에게 맡겨놓고 몸이 아프면 의사에게 달려갔죠. 내 몸의 주인은 의사, 내 영혼의 주인은 목사님이나 스님이라고 보는 게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내 몸과 영혼의 주인은 바로 나예요. 나 자신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하지요. 공부는 지식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내 존재의 해방과 자유를 위한 길이에요. 여기는 외부가 없어요. 어디까지는 내가 하고 나머지는 스님과 목사님 몫이 아니에요. - 52p 고미숙  
   

 공부 좋아하는 고미숙 선생님은, 나 자신에 대한 공부를 하라고 말한다. 공부는 끝과 시작을 함께 한다. 공부는 죽을 때까지 이루어내야 할 숙제. 공부로 자신을 다스리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고, 살아갈 힘을 배우라고 말이다. 공부하지 않으니, 세상이 살아가는대로 살 수밖에 없고, 남이 살아가는 길을 쫓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제가 1980년대 대학 다닐 때보다 지금이 진보했다? 엄청나게 퇴보했어요. 요즘엔 아무도 서로를 돌보지 않잖아요. 겉보기엔 화려하죠. 퇴보한 만큼 겉모습이라도 치장해야 하니까요. 요즘 젊은 친구들 중에는 지성인을 찾기가 힘들어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할 것 없이 젊은 친구들을 보면, 자기 삶을 긍정하는 것을 배우는 게 아니라 생존을 배워요. 걔네들에게 인문학 통찰을 요구하기에는 너무 많은 장애가 있어요. - 71p 강신주  
   

 뼈아픈 말이다. 생존에 몸부림 치는 청춘. 누구를 탓해야 할까? 아니 탓하는 게 의미가 없을까? 결국, 하나만 믿고 하나만 추구하며 살아온 세월은 시대를 퇴보하게 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화려하고, 자본으로 만들어낸 세상은 편리해졌지만 그것만 쫓는 청춘들은 더 큰 걸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청춘이 해야 할 진짜 공부는 놓치고 사는 게 아닌지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바뀌길 기다리는 것은 청춘의 자세가 아니다.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청춘의 자세다. 정부를 비판하고, 시민의식을 갖고, 사회구조를 비판하며, 그 사이에서 반성하고, 공부해서 알아내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청춘의 모습이라고 할 것이다. 과연 우리는 귀담아 듣고 있는가. 귀담아 듣지 못한 세상이 된 것을 언제까지만 탓하고 있을 것인가. 대학에 가고도 대학생답지 못하게 살아가는 청춘들은 과연 무엇을 찾고 있는가. 결국, 남들이 가는 길을 나도 똑같이 갈 수밖에 없다는 하찮은 변명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이런 말을 하죠.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너무 모른다고"요. 맞아요. 우리는 우리의 잠재성을 너무 몰라요. 그런데 이 잠재성을 시험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뭘 할 수 있는지를 모르고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그러무르 공부를 해야죠. 살아 있다는 것이 공부고, 해보는 것이 공부예요. 하면 할수록 정말로 잘하게 되거든요. 긍정도 고도의 훈련으로 얻어진 산물 같아요. 한 번 긍정을 잘하면 다음 긍정이 더 쉬워지는 것 같고, 그 다음 긍정은 훨씬 더 쉬워져요. 신의 경지에 오르는 단계가 100까지 있다고 하면 1, 2, 3단계가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나머지 50단계는 하루아침에 오를지도 몰라요. - 197p 고병권  
   

이 한 마디로 청춘이 해야할 일들이 다 요약된다. 대기업에 취직하고 공무원이 되어 돈 많이 벌고, 안정된 삶을 산다는 비슷비슷한 꿈에서 벗어나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시간을 가져야 할 청춘. 나를 사랑하고, 꿈을 꾸는 삶을 살기 위해선, 공부하고, 찾고, 갈구하라는 그들. 입아픈 말들이 청춘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며, 눈을 뜨는 청춘이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하다. 왜 그들은 하나같이 하나의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져보길 바란다. 경험과 깨달음으로 전해지는 진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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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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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와 나는 팔 년 만에, 그는 수화기 저편에 나는 수화기 이편에 있다. 시간은 언제나 밀려오지만 똑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젊은 날에 인식하고 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누군가는 작별하지 않고 누군가는 살아남았을지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 또다른 일이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 11p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정윤의 독백이다. 윤교수님이 위독하다는 전화를 명서의 전화를 받은 정윤. 정윤은 침묵과 아무렇지 않은 통화 사이에서 어슴프레 떠오르는 기억들을 끄집어낸다. 아니, 그것은 어슴프레 떠오르는 기억이라기 보다, 그녀 가슴이 박혀 절대 빼낼 수 없는 시간들과 기억들이다. 시작할 이야기에 대한 복선은 정윤의 독백 여기저기에 깔려 있다. 그녀의 한 마디는, 알고 보니 아픈 회한이었고, 기억이었고 상처였으나 이제 그녀를 지탱하게 해주는 의미이기도 하다. 

   
 

 살아보지 않은 앞날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앞날은 밀려오고 우리는 기억을 품고 새로운 시간 속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기억이란 제 스스로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속성까지 있다. 기억들이 불러일으킨 이미지가 우리 삶 속에 섞여 있는 것이지, 누군가의 기억이나 나의 기억을 실제 있었던 일로 기필코 믿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고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면 나는 그 사람의 희망이 뒤섞여 있는 발언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그렇게 불완전한 게 기억이라 할지라도 어떤 기억 앞에서는 가만히 얼굴을 쓸어내리게 된다. 그 무엇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던 의식들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기억일수록. 아침마다 눈을 뜨는 일이 왜 그렇게 힘겨웠는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은 왜 그리 또 두려웠는지, 그런데도 어떻게 그 벽들을 뚫고 우리가 만날 수 있었는지. - 21p

 
   


기억, 그것은 너와 나의 기억, 우리들의 기억. 하지만, 다 각기 다르게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 기억. 정윤, 명서, 단이, 미루는 교차되는 기억을 공유하며 서로 돈독해진 사이다. 명서와 미루, 정윤과 단이가 각각 공유하는 기억과 그 시간 속에 살며 서로를 위로했던 기억. 정윤과 명서 사이의 미루, 정윤과 명서 사이의 단이. 그리고 미루와 단이의 소멸. 그 사이에 수많이 뿌려진 기억들. 어느 날, 전화벨이 울리고 그 기억들이 빵처럼 부풀어 올라 하나하나 떠오른다. 명서의 기억과 정윤의 기억은 그렇게 교차되며 그들의 청춘, 청춘 속의 그들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시작은 죽음의 그늘로부터 비롯된다. 그들의 청춘에 큰 자리를 차지했던 윤교수님의 위독함은 그의 죽음을 예상하기 충분하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언급들, 기억에 대한 이야기, 정윤의 독백 속에는 갖가지의 슬픔들이 내포되어 있다.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은 그녀에게 고통이면서도, 그녀를 성장하게 한 또 하나의 이유다.

   
 

 인생은 각기 독자적이고 한 번 뿐이다. 모두들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려 하고, 사랑하고, 슬픔에 빠지고, 죽음 앞에 가까운 사람을 잃기도 한다. 지금 병원에 누워 있다는 윤교수도, 팔 년 만에 전화를 걸어온 그도, 나도, 그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다. 단 한 번, 그럴 것이다. 우리에게 청춘이 단 한 번만이 아니었다면 오늘 이렇게 내 책상 위의 전화벨이 울려 팔 년 만에 그의 목소리를 드는 일도 없을 것이다. - 23p

 
   


팔 년 동안 봉인했던 기억을 깨운다. 모질게 잊고 지낸 시간이었다. 그 시작을 깨운 전화벨, 그리고 윤교수의 위독함. 결국, 죽음이 기억의 봉인을 해제한다. 그리고, 기억의 시작에는 죽음이 있다. 엄마의 죽음. 정윤은 엄마가 죽고, 도시로 나온다. 엄마의 죽음을 견디기 위해 도시로 나와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혼자만의 시간 말이다. <말테의 수기> 첫 문장,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 도시로 모여드는 모양이다(33p)에 정윤은 눈물을 떨어뜨린다. 정윤은 엄마가 죽고, 살아보기 위해 도시로 왔다. 그 다짐, 외로움, 슬픔이 한 번에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혼자 도시를 걷고, 책을 읽고 외로움과 싸워가면서 그녀가 찾은 윤교수님의 수업. 그곳에서 윤교수, 미루, 명서, 정윤이 만난다. 책 속에서 정윤의 존재는 하나의 다리처럼 느껴진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정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상처와 고통도 함께 치유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정윤이다. 

우.리.는.숨.을.쉰.다  

글자 사이 사이의 숨결들. 숨쉬지 못하는 청춘들. 숨쉬고 싶은 청춘들. 암울한 시대적 배경 속에 놓인 청춘들은 지극히 사적인 일들이 시대의 사건들과 맞물려 새로운 고통을 만들어 낸다. 미루의 화상이 바로 그런 것이고, 미루의 화상을 넘어 미루가 쫓는 것을 바라보는 명서의 고통이 바로 그런 것이고, 단이의 의문의 저항이 그런 것이고, 청춘들을 붙잡아 보려 했으나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기력한 고통을 느낀 정윤의 슬픔이 바로 그런 것이다.  

정윤은 미루의 고통의 비밀을 듣게 되고, 명서의 고통을 마음으로 이해한다. 단이의 고통을 쓰다듬지만, 결국 모든 것이 자신의 고통으로 돌아온다. 정윤을 중심에 두고 쏟아내는 그들의 고통. 정윤이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려 할 때, 자신이 더 힘겨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저, 그들의 고통을 감싸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나는 갑자기 윤미루에 대해 격렬하게 솟구치는 나의 궁금증이 두려워졌다. 그렇게 알게 되는 것들은 그와 나 사이를 가깝게 할까, 멀어지게 할까? 서로에 대해 알게 되는 것. 비밀을 공유하는 것이 서로의 관계를 가깝게 해준다고 여겼던 적이 있었다. 가까워지기 위해서 내키지 않는 비밀을 털어놓은 적도. 혼자만 간직하고 있던, 말로 꺼내기 어려웠던 소중했던 비밀이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어 다른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의 상실감.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은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가난해지는 일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도 같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은 오히려 침묵 속의 공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 111~112p 

 
   


타인에 대해 더 알고 싶으나, 알고 난 뒤 느끼게 될 두려움. 정윤은 그녀에게 일어날 일들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비밀을 듣게되면서 가까워지긴 했지만, 그 가까워짐 때문에 큰 고통을 떠안게 되기도 한다. 그들과 함께 고통의 숲을 걸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 순간, 대책없이 무너져버리는 모래성처럼 스르르 소멸하고 말았던 이들.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의 경악과 추억 속에 갇힌 그들에 대한 사랑. 그 때문에 받아들여야 하는 일들. 

미루의 가슴 아픈 고백이 그녀의 마음을 흔들고, 미루가 정윤에게 다가오면서 함께 잘 싸워낼 수 있을 거라고 여긴 순간도 있었다. 미루가 가진 죄책감, 그 안의 슬픔, 상흔. 미루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왔을 때, 한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순간들을 하나씩 통과해나가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찾아온 미루의 죽음 앞에서 그녀는 또 다른 고통을 맞이했고, 단이의 죽음 앞에서는 기억과 현재를 혼돈하며 고통받기도 했다. 그 고통 속에서 교수직을 사표 쓰고 낙향한 윤교수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어떤 가르침을 듣게 된다.  

   
  자네들보고 잊으라고 하지는 않겠네. 생각하세,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더이상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생각해. 이 부당하고 알 수 없는 일에 대해 질문하고 회의해. ...(중략).... 인간은 불완전해. 어떤 명언이나 교훈으로도 딱 떨어지지 않는 복잡한 존재지. 그때 나는 뭘 했던가? 하는 자책이 일생 동안 따라다닐걸세, 그림자처럼 말이네. 사랑한 것일수록 더 그럴 거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절망할 줄 모르면 무슨 의미가 있겠다. 다만...... 그 절망에 자네들 영혼이 훼손되지 않기만을 바라네. - 341p  
   

기억은 명서의 기억, 정윤의 기억으로 나뉜다. 정윤의 기억 속에는 또 다른 명서의 기억도 있다. 둘의 기억이 교차되는 지점도 분명히 있다. 그들은 커다란 폭풍을 지나왔고, 시간이 흐르자 그 폭풍은 잠잠해지고 폭풍은 가슴에 묻게 된다. 팔 년 동안 정윤과 명서는 각자의 삶을 산다. 한 때는 함께 살려고 마음을 먹었으나, 그것은 그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직감하고, 이별을 감행한다. 그 이별은 슬픈 이별이 아니라, 다시 만나기 위한 이별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고통이 휘몰아치던 그 순간, 그들이 함께 했다면. 잊혀지지 않는 고통 때문에 서로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내며 서서히 망가져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명서는 또 다른 기다림을 택했고, 기다림 뒤의 조우에는 윤교수님의 죽음이 있다. 윤교수님이 소멸하면서 봉인된 청춘의 시간들은 아름답게 묻힌다. 팔 년은 많은 것을 변하게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명서와 정윤의 성장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왔다는 것. 아이들에게 윤교수님식 강의를 하며, 웃음짓는 정윤. 시위대 속에서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명서는 낯선 나라에서 포옹하는 사람들을 찍어 전시를 열기도 한다. 서서히 치유된 고통은 그들의 또다른 성장을 만들어냈다. 

상처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치유하기 위해 애를 쓰고, 타인의 고백에 마음 아파하고, 타인의 고통을 함께 하려하던 그들은 그 시간 속에서 자신들을 채워나간 것이다. 다시, 함께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새로운 기억을 걸었던 팔 년.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며, 나를 찾는 전화벨은 우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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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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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凡人)'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삶 속에, 시간 속에, 역사 속에 도처에 널려 있는 차별과 무시,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말들.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던가? 아님 모른척 하는 걸까? 우린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그 기준이 도대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과 맞지 않다고 해서 배척하고, 차별하고, 무리에서 내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것은 또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얼마 전 한 기사를 읽었다. 대도시를 벗어난 농촌에는 꽤 많은 수의 다문화 가정이 살고 있다고 한다. 국제 결혼이 별 특별할 게 없는 마을들이지만, 학교에서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따로 남겨 한글 공부를 더 시키고, 집에서는 엄마의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꿈도 못꾼다고 한다. 식구들은 영어를 가르치지 못할 망정, 베트남어, 태국어, 필리핀어가 웬 말이냐며 호통을 치고, 학교에서는 한글이 뒤떨어질지도 모른다는 편견에 아이들을 남겨 방과 후 공부를 시킨다고 한다. 참 배려없는 이기심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한국인들의 잘난 마음씨다.

<불편해도 괜찮아>에서는 많은 인권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청소년 인권, 성소수자 인권, 여성과 폭력, 장애인 인권, 노동자의 차별과 단결,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검열과 표현의 자유, 인종차별의 문제, 제노싸이드.
이 책을 읽고 있자면, 인권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나는 청소년을 거쳤으며, 여성이며, 노동자이다. 다른 나라에 체류할 때는 인종차별의 문제와 만나게 될 수 있다. 이 인권 문제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맞을 것이다. 깨닫고 있지 못할 뿐.

김두식 교수는 이러한 인권들을 영화로, 문학으로 알기 쉽게 설명한다. 그래서 더 맛깔나고 이해하기 쉽다. 어쩌면 그는 인권의 대중화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인권은 쉬워지고, 가치있는 것이 되며 생각해야 할 문제가 될 것이다. 

청소년 인권에서 말하는 '지랄 총량의 법칙'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우린 누구나 지랄 총량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유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지랄 총량의 법칙은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법칙입니다. 나중에 늦바람이 나서 그 양을 소비하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죽기 전까지 반드시 그 양을 다 쓰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춘기 자녀가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게 다 자기에게 주어진 '지랄'을 쓰는 것이겠거니,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도 했습니다. 사춘기에 호르몬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설명도 가능하겠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마음에 와닿는 표현이었습니다.  -18p  
   

어른들도 '지랄' 떨며 살지 않는가? '지랄' 떠는 모습을 자식에게 보이며 가슴아프게 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며, 왜 청소년기에 미친듯이 날뛰는 모습을 찍어 누르려 하는가? 그 시기에도 자유는 분명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이기심이 청소년기에 누려야 할 인권을 헤치고 있진 않는지. 옷도, 꿈도, 자신의 계획도 철저하게 통제 당하는 아이들에게 인권은 얼마나 목마른 것일까?

영화 300에서 배신자를 척추장애인으로 묘사한 것, 오아시스의 장애인 여성이 자주적이지 못한 형태로 그려진 것, 이렇게 비장애인에게는 별 생각없이 받아들여지는 일들이 장애인에겐 크나큰 상처가 되리라는 것. 섬세하지 못한 마음에서 누군가의 인권은 침해받고 있다.
MPAA에 대한 진실, 영화 화면을 개인의 기준에 따라 자르고 그 사실마저 철저하게 은폐하고 있는 권력자들. 영화 '똥파리'가 보여주는 '폭력'에 관한 이야기.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에서 만나는 가부장주의와 혈연주의를 벗어난 가족의 재구성, 밀양에서 만날 수 있는 기독교 안에서의 고통, 군대 안에서 박탈당하는 자유와 신념 등 알고 보면 경악할 정도로 우리의 인권은 여기저기서 침해당하고 있다.

결국,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지도 모르며,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며, 알려하지 않으면 어둠 속에 은폐된 채로 스물스물 우리의 정신을 좀먹는 권력도 있다. 얽히고설혀 복잡하여도 우리는 파헤치고, 항의하고 저항해야 많은 이가 다함께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모두를 죽이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그 속에 살고 있다면,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내가 죽이는 자가 되고, 피해자가 아닌 것에 기뻐하고 사는 것만은 다가 아닐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그것을 신념으로 생각하는 자들은 모두 가해자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냉혹한 완벽주의와 힘만을 추구할 뿐이다. 욕망만을 따라가는 사회에서는 인권이 무시되기 일쑤다. 소수의 행복도 생각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만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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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공부 - 김열규 교수의 지식 탐닉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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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뭘까?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우리나라처럼 많이 주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공부를 싫어하게 되는 이유는, 그것이 '자발적'이 아닌 '강요'에 의해 행해진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공부에 대한 '재미'를 찾기도 전에 '지루함'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그것이 의무일리도 없고, 강요가 되서도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비틀린 목적, 그것도 자신이 설계한 꿈에 맞닿는 게 아닌 부모나 선생님이 설계해준 목적에 의해 강요된다. 

 '공부'라는 단어만 들어도 진저리치는 아이들이 많은 나라. 그게 현실이지만, 사실 공부는 죽을 때까지 이루어져야 할 어떤 과정이고 과제라고 생각한다. '공부'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은 발전도 없고, 자기만족도 없을 거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공부는,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활을 하든 행해져야 마땅한 인생의 숙제 같은 것이다.  

김규열 교수의 지식 탐닉기 <공부>는 공부의 개념부터, 공부의 풍경, 방법, 그리고 그 끝에 이르는  실행까지 차근차근 풀어간다. 어쩌면 이것은 잠언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공부 공화국'인 우리나라에 살면서 공부가 싫고, 공부를 멀리할 수도 있겠지만 자기 성찰을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한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영어 공부만 하는 청춘들을 꼬집는 말을 하기도 하신다. 시대가 변할수록 공부를 하는 방법도, 공부를 하는 분야도 자꾸 바뀌고 있고 운동을 한다고 해서 공부를 안 하는 시대도 아니라는 말도 전한다. 공부는 절대 배신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자신의 공부 방법도 전한다. 

'공부'는 이제 생활이다. 공부는 책과 떼려야 뗄 수 없고, 공부를 하면 생각이 바로 선다. 글쓰기는 공부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논리는 공부를 통해 정립된다. 이제 공부는 나이도 상관없는 떄가 왔다.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 길은 공부라는 가르침. 그것이 교수님께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 책은 공부를 왜 해야 할까라는 의문을 가진 청소년들이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공부를 하는 목적을 잃은 이들에겐 공부 자체가 힘든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를 위한 공부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향해 나가는 공부는 즐거움을 주고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국어, 산수, 영어만이 공부가 아니다. 세상에는 얼마든지 공부할 것들이 널려있다. 그 것을 제대로 택해 끝까지 놓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으셨던 것은 아닐까?  

공부의 고통을 즐길 줄 안다면, 학력이 아니라 인력이 되어 싸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공부는 당신에게 즐거운 인생으로 흡수될 거라고. 죽는 날까지 멈출 수 없는 공부의 세계로 빠져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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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별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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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은 은유를 헤아릴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사만엔 칼로 자른 듯 선명한 두 개의 세계 외엔 없다. 빛과 어두움. 그러니, 운명의 모호함에 질린 사람이라면 누구든 중독될 수밖에 없는 거지. - 23p

 
   

 승, 보라, 바바, 로랑은 각자의 운명에서 지그재그로 만난다. 운명과 욕망, 알 수 없는 이끌림 사이에서 서로의 삶을 걷고 있다. 누군가를 '찾기' 위해 사는 승, 그 '찾음' 때문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보라, 아름다운 보라를 곁에 두기 위해 그녀가 원하는 것을 '찾는' 바바,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기 위해 '찾아' 다니는 로랑. 그들은 빛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아프리카의 사막에서 생존하고 있다.

   
  불가능할 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일까? - 149p  
   

자신이 찾는 것을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승'과 '로랑'. 그 사이에 끼인 두 아이 '보라'와 '바바'. 아름다움을 찾다고 죽음에 이르는 '로랑'과 그 아름다운 욕망을 돈으로 바꾸고, 그 돈으로 아내와 친구를 찾는 '승'. 그들이 찾는 것은 결국, 그들의 삶이 되어 버린다. 삶을 좀먹는 '찾음' 속에서 존재 이유가 '찾는 것'이 되어 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 멈출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단 한 가지를 위해 달리지만, 그것이 그만큼 소중하고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는 상황.


   
  인간은 결국 원하는 걸 갖기 위해, 그걸 선택한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갖은 핑계를 만들어내곤 하지. 우선 자기부터 설득해야 하니까. - 218p  
   


결국, 로랑은 로랑대로 승은 승대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사막을 헤매는 것도 돈을 쏟아 붓는 것도, 딸을 방치하는 것도 합리화한다. 불법 거래도 혈육의 아픔도 원하는 하나 때문에 다 합리화 되는 것이다. 사막이 감추고 있는 것들은, 그들의 욕망만이 아니다. 그들이 제대로 봐야 하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감정마저 감춰버린다. 그들이 진정 '찾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에게 없는 것. '위로'. 일상을 순식간에 파괴해버린 무엇은 위로 하나 남기지 않고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위로',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선물해줄 수 있는 '위로'를 찾기 위해 사막을 헤매는 그들.

'보라', '바바'도 위로가 필요한 아이들이다. 엄마를 잃은 아이는 아빠의 손에 이끌려 아프리카로 흘러왔다.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하고, 혼자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아빠. 그 곁에는 '바바'가 있다. 아빠의 매질과 너무 어릴 때부터 알아버린 '노동'. 그 고통 안에서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어디선가 온 '보라'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 

어떤 물건 때문에 알게 된 보라, 바바, 로랑. 로랑은 그 물건을 감추는 수단으로 바바를 택하고, 그 대가로 로랑의 정원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게 된 보라와 바바. 보라와 바바는 길바닥 삶과 다른 그의 삶의 배경에 놀라워하지만, 결국 아름다움을 탐하다 죽어버린 로랑에게 연민을 갖는다. 

   
  신문 기삿거리가 될 만큼 외로운 사람이었다는 걸 알았더라면, 그와 있는 동안 좀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을 나누었을 텐데. 사소하지만 나누는 순간엔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 252p  
   

이런 보라의 독백은, 자기가 원하는 이야기를 하는 듯 가슴이 아리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을 나누어본 것이 언제인지. 외로움 안에 갇히면서, 사막에 홀로 갇힌 듯 외로워진 보라. 그런 보라가 누군가의 손목을 붙잡고 어설픈 타투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자신을 위로하는 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떠한 물건 때문에 보라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바바. 바바는 그 추하지만 아름다운 것을 짊어지고 사막으로 향한다. 자신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다. 보라가 사라지는 것은 바바의 세계가 사라지는 것이고, 바바는 보라를 찾아 헤매고 싶지는 않다. 곁에 두고, 서로를 위로하며 하루하루의 시간을 함께 채우고 싶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이렇게 그의 갈망과 나의 갈망이 부딪치는 순간이 있구나. 장소가 아니라 시간이라고 말하지만, 그 시간이란 어떤 장소 속에서의 기억을 말하는 것이겠지. - 233p  
   

바바의 독백은 보라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을 보여주지만, 승과 로랑의 '찾음'에 대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부를 얻고 싶었던 승의 갈망, 승을 유혹해 부를 얻고자 했던 친구의 갈망, 승을 버리고 친구와 떠나고 싶었던 아내의 갈망, 애인을 보내고 싶지 않았던 로랑의 갈망, 엄마를 찾고 원래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보라의 갈망. 그 갈망 속에는 시간, 시간 속의 장소가 있다. 잊혀지지 않는 고통. 그 고통은 사막의 빛과 어둠만큼이나 극명하다.

그들이 '찾기' 위해 '쫓았던 것들'. 사막의 신기루처럼 스르르 사라지는 것들. 그들의 욕망은 결국, 사막을 이기지 못했다. 사막의 태양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욕망들은 결국 잡히지 않은 채 사라졌다. 승이 살아남기 위해 죽도록 찾아다닌 것은 허상이었을지 모른다. 살아남기 위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으니. 보라의 기다림은 바바와 함께 사라지고, 아무리 가져도 채워지지 않는 아름다움에 대한 로랑의 욕망은 숙명처럼 사막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삶에서 독한 황폐를 겪은 그들은, 각자의 사막에 중독되어 사막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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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o 2010-12-16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아프리카의 별을 읽고 있어요, 책이 무지 읽고 싶은데 오늘 책을 안가져와서, 잠시나마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해서 리뷰들을 읽어 보고 있어요, 님의 리뷰 넘 감동적으로 잘 읽었습니다, 책이 더 읽고 싶어 지네요, 빨리 집에 가야겠어요 *^^*

청춘의반신상 2010-12-17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재밌게 봐주셔다니 고맙습니다. ^ ^ 개인적이로 정미경 작가를 좋아해요. 좋은 감동 느끼셨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