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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평점 :
'범인(凡人)'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삶 속에, 시간 속에, 역사 속에 도처에 널려 있는 차별과 무시,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말들.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던가? 아님 모른척 하는 걸까? 우린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그 기준이 도대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과 맞지 않다고 해서 배척하고, 차별하고, 무리에서 내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것은 또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얼마 전 한 기사를 읽었다. 대도시를 벗어난 농촌에는 꽤 많은 수의 다문화 가정이 살고 있다고 한다. 국제 결혼이 별 특별할 게 없는 마을들이지만, 학교에서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따로 남겨 한글 공부를 더 시키고, 집에서는 엄마의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꿈도 못꾼다고 한다. 식구들은 영어를 가르치지 못할 망정, 베트남어, 태국어, 필리핀어가 웬 말이냐며 호통을 치고, 학교에서는 한글이 뒤떨어질지도 모른다는 편견에 아이들을 남겨 방과 후 공부를 시킨다고 한다. 참 배려없는 이기심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한국인들의 잘난 마음씨다.
<불편해도 괜찮아>에서는 많은 인권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청소년 인권, 성소수자 인권, 여성과 폭력, 장애인 인권, 노동자의 차별과 단결,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검열과 표현의 자유, 인종차별의 문제, 제노싸이드.
이 책을 읽고 있자면, 인권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나는 청소년을 거쳤으며, 여성이며, 노동자이다. 다른 나라에 체류할 때는 인종차별의 문제와 만나게 될 수 있다. 이 인권 문제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맞을 것이다. 깨닫고 있지 못할 뿐.
김두식 교수는 이러한 인권들을 영화로, 문학으로 알기 쉽게 설명한다. 그래서 더 맛깔나고 이해하기 쉽다. 어쩌면 그는 인권의 대중화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인권은 쉬워지고, 가치있는 것이 되며 생각해야 할 문제가 될 것이다.
청소년 인권에서 말하는 '지랄 총량의 법칙'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우린 누구나 지랄 총량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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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지랄 총량의 법칙은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법칙입니다. 나중에 늦바람이 나서 그 양을 소비하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죽기 전까지 반드시 그 양을 다 쓰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춘기 자녀가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게 다 자기에게 주어진 '지랄'을 쓰는 것이겠거니,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도 했습니다. 사춘기에 호르몬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설명도 가능하겠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마음에 와닿는 표현이었습니다. -18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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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도 '지랄' 떨며 살지 않는가? '지랄' 떠는 모습을 자식에게 보이며 가슴아프게 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며, 왜 청소년기에 미친듯이 날뛰는 모습을 찍어 누르려 하는가? 그 시기에도 자유는 분명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이기심이 청소년기에 누려야 할 인권을 헤치고 있진 않는지. 옷도, 꿈도, 자신의 계획도 철저하게 통제 당하는 아이들에게 인권은 얼마나 목마른 것일까?
영화 300에서 배신자를 척추장애인으로 묘사한 것, 오아시스의 장애인 여성이 자주적이지 못한 형태로 그려진 것, 이렇게 비장애인에게는 별 생각없이 받아들여지는 일들이 장애인에겐 크나큰 상처가 되리라는 것. 섬세하지 못한 마음에서 누군가의 인권은 침해받고 있다.
MPAA에 대한 진실, 영화 화면을 개인의 기준에 따라 자르고 그 사실마저 철저하게 은폐하고 있는 권력자들. 영화 '똥파리'가 보여주는 '폭력'에 관한 이야기.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에서 만나는 가부장주의와 혈연주의를 벗어난 가족의 재구성, 밀양에서 만날 수 있는 기독교 안에서의 고통, 군대 안에서 박탈당하는 자유와 신념 등 알고 보면 경악할 정도로 우리의 인권은 여기저기서 침해당하고 있다.
결국,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지도 모르며,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며, 알려하지 않으면 어둠 속에 은폐된 채로 스물스물 우리의 정신을 좀먹는 권력도 있다. 얽히고설혀 복잡하여도 우리는 파헤치고, 항의하고 저항해야 많은 이가 다함께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모두를 죽이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그 속에 살고 있다면,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내가 죽이는 자가 되고, 피해자가 아닌 것에 기뻐하고 사는 것만은 다가 아닐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그것을 신념으로 생각하는 자들은 모두 가해자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냉혹한 완벽주의와 힘만을 추구할 뿐이다. 욕망만을 따라가는 사회에서는 인권이 무시되기 일쑤다. 소수의 행복도 생각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만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