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너 자신을 알라”

아테네의 지식세계는 이전의 지식세계와는 사뭇달랐다. 이전의 철학자들은 대개 이오니아 지방이나 이탈리아 지방에서활동했고, 대중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현자‘에 가까웠다. 그들 중 어떤사람들은 종교의 교주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이 사유한 내용들은 일반 대중과는 전혀 동떨어진 사변들이었다. 그리고 지식세계는 대체로 서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중해세계 곳곳으로부터 아테네로 집결한이 새로운 유형의 철학자들은 고객을 두고서 서로 경쟁하는 지식인들이었고, 종교의 교주나 철학적인 현자들이라기보다는 독특한 유형의 전문 - P203

가들이었다. 이들이 사람들에게 가르쳐준 것은 우주에 관한 순수한 사변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 필요한 기법들, 특히 언어에 관련한 기법들이었다. 이들은 숭고함보다는 친밀감을, 지적 순수함보다는 현실적 감각을, 진리의 영원함보다는 당장의 효용성을 무기로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 등장한 이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들을 사람들은 ‘소피스트들‘
이라 불렀다. 이 말을 ‘궤변론자들‘이라 번역하는 것은 플라톤적 관점을 전제하는 것이다. 보다 중립적인 번역어를 택한다면 아마 ‘전문가들‘,
‘지식인들‘ 같은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들이 ‘소피스트들‘이라 불린것은 그들이 ‘소피아=지혜‘를 가진 인물들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 P204

소피스트들이 말하는 주관성은 어디까지나 한 개인의 주관성이다. 경험이란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소피스트들에게는 인식 주체를 넘어선 무엇,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을 넘어서 - P210

는 무엇은 의미를 상실한다. 단적으로 말해, 한 대상은 "너에게 그렇게보이지만 나에게는 이렇게 보인다." 결국 소피스트들은 객관성만이 아니라 보편성 또한 거부한다고 할 수 있다. - P211

와 노모스를 명확히 구분한 점이다. 자연철학자들이 모두 ‘퓌지스‘를 탐구했고 ‘자연‘ 또는 ‘본성‘에 입각한 사유를 펼쳤다면, 소피스트들은 이전 사람들이 퓌지스라고 생각했던 것에 노모스의 맥락에서 접근함으로써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했다. 이것은 사물들의 ‘본성‘ 자체를 부정하는이들의 존재론으로부터 따라 나오는 결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노모스의자의성을 통해 ‘지스‘ 탐구가 함축하는 본질주의를 해체한 것이다. - P215

소크라테스는 엄밀한 ‘논변(辯)‘을 통해서 사유를 펼치려 했고, 이 점에서 이들과 구분될뿐만 아니라 사유의 역사에서 어떤 결정적인 지도리를 마련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그리스의 사유를 다른 문명들에서의 사유와 핵심적으로구분해주는 특징이 되었다. 소크라테스야말로 독단을, 나아가 권위를 넘어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의 ‘철학‘을 탄생시켰다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적 논변의 이런 궁지(窮地)는 흔히 ‘아포리아(問)‘라 불린다. 이는 사유가 막다른 골목에 부딪쳤을 때 만나게 되는 근본 물음, 풀리지 않는 난문이다. 철학적 사유의 매력은 이미 존재하는 어떤 문제에 해답을 제공했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삶에서 궁극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근본 물음, 심오한 아포리아를 드러낼 때 두드러진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아포리아들은 심오한 형이상학적 난문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일상에서 부딪치게 되는 윤리적 난문들이었다. - P228

소크라테스는 본래 ‘생명‘이라는 자연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던 ‘psyche‘라는 말에 ‘정신‘이라는 의미를 새롭게 부여함으로써 철학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 정신을물질의 부대효과 정도로 환원하려 애쓰고 있는 것과 정확히 대조적이라하겠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델피 신탁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해답은
‘영혼‘이었다. 인간이란 영혼을 가진 존재이며 이 영혼이야말로 인간이 윤리적 존재가 될 수 있는 근간이라는 생각이 소크라테스 사유의 핵을 이루고 있다. - P232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일정한 나이에 도달한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민주주의이다. 따라서 알키비아데스처럼 사람들을 지도해야 하는 입장에 선 사람만이 문제가 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오늘날 모든 정치적 결정은 근본적으로는 대중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다. 정치를 지배하는 요소들은 숱하게 많지만, 형식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오늘날 거의 파시스트 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되는 것도 또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이 쫓겨나는 것도 결국 대중의 여론에 의해 결정되는 세계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있다. 그렇다면 알키비아데스에게 준 소크라테스의 교훈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정치가를 꿈꾸는 자들에게 주는 교훈이라기보다는 오히려민주주의 정치에 참여하는 대중에게 주는 교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즉, 핵심적인 것은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시민이 되는 것이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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