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에 찬 전문가들의 견해는, 간접적으로는 남성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치며, 보다 직접적으로는 여성에게 횡포를 부리게 된다. 지난 세기에는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공통된 경험이었으며 결코 낭만화되지 않았던 결혼과 출산 같은 사건은 이제 이들과 같은 전문가에 의해 여성이 추구해야 할 영혼의 호사로 과대 포장된다. 과거에 (가난, 질병, 요절 등과 마찬가지로) 선택의 여지 없이 불가피했던 것들은 정신분석가들에 의해 20세기 여성의 구원 신화로 부활되었다. - P213

프로이트식 관점에서는 여성을 본질적으로 "종족의 양육자이자 열매 맺는 자"이며 잠재적으로 따스한 가슴을 가진 피조물로 보지만, 그보다는 흔히 자궁을 가진 변덕스러운 아이이며 남성의 생식기와 남성적인 정체성을 상실한 것에 대해 영원히 애도하는 자로 본다. 프로이트가 자신의 여성 환자들에 대해 그토록 정밀하게 기록했던 두통, 피로, 만성적인 우울증, 불감증, 편집증, 압도적인 열등감은 이보다 더 정확한 용어로 해석된 적이 없었다. 프로이트는 여성의 ‘증상’을 노예 심리의 특징인 간접적 의사소통으로도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증상을 ‘히스테릭’하고 ‘신경증적’인 산물로 여겼으며, 악의에 가득 차 있고 부조리한 집안의 독재자, 심술궂고 퉁명스럽고 자기 연민에 찬 여성에게서 나타나는 것으로 간주했다. 여자로서 행복해질 수 없는 여성들의 무능력은 해소되지 않은 남근선망, 해소되지 않은 엘렉트라 콤플렉스에서 기인하거나, 일반적으로 도무지 고치기 힘들고 종잡을 수 없는 여성의 고집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았다. - P215

여성에 관한 프로이트의 전체 혹은 일부 견해가 카렌 호나이, 클래라 톰슨, 마거릿 미드에 이어 시몬 드 보부아르, 베티 프리단, 케이트 밀릿,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에바 피지스, 저메인 그리어 등의 여성 이론가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검토되고 반박되었다. 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 알프레드 아들러, 헤리 S. 설리번, 빌헬름 라이히, 로널드 랭, 데이비드 쿠퍼, 토머스 사즈와 같은 남성 이론가들도 프로이트를 반박한 바 있지만 여성에 관한 그의 견해 때문은 아니었다. - P220

라이히는 일단 환자들이 건강한 성기를 회복하게 되면 일과 사랑에서 훨씬 의미 있는 관계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만약 환자들을 충분히 꿰뚫어볼 수 있다면 모든 환자들에게서 ‘점잖은 본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언제나 ‘성 경제’는 강박적인 도덕보다 우월한 자연스러운 도덕으로 조정된다. - P227

라이히는 성 에너지가 성기에서만이 아니라 몸 전체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본다. 그는 변태적인 성욕과 건강한 성욕을, 성욕과 생식(임신과 출산을 위한 성욕으로서의 생식)을 조심스럽게 구분한다. 그는 경멸하는 마음 없이, 진지한 태도로 여성들이 평생 동안 경험하는 성적인 불행의 결과를 관찰한다. 그리고 몸의 역할과 몸과 마음의 통합이 얼마나 힘든지에 집중한다. 그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굴복’이 ‘건강한’ 이성애 성교의 본질임을 이해한다. 하지만 라이히는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이성애 중심 성교에 대한 여성의 ‘굴복’을 지나치게 많이 언급한 측면이 있다. 여성 권력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여성의 성적인 행복의 중요성에 관해서만 지나치게 거론하는 것은 너무 낭만적이다. 약물처럼 섹스 역시 스스로를 규정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편과 같은 강제적인 진정제가 될 수 있다. - P229

전반적으로 볼 때, 랭이 정신분열증의 과정을 사회적 환경에 배치시킨 것은 타당하다. 또한 우리 사회가 고집스럽게 주장해온 것이 본질적으로 비상식적이었다는 것을 이해한 점도 옳다. 이상적으로는 이것이 모든 정신과의사들이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정신건강’에 관한 그의 기준은 프로이트의 기준만큼이나 부재에 가깝거나 모호하다. 그가 가끔, 그러나 점차 빈번하게 대중의 정치 혁명이나 예술 형식을 광기와 동일시한 것은 부정확하며 혼란만 야기한다. 광기와 예술은 여러 형태의 억압에 저항하는 동시에 그런 억압으로부터 도피하는 수단일 수 있는데, 이 두 가지 모두 고통과 차별과 연관이 있다. 하지만 완전히 개인적이고 비가시적인 광기의 양태와, 잠재적으로 공적이며 구체적인 예술 양태 사이에는 여전히 ‘차이가 있다’. - P236

쿠퍼는 라이히의 주장 중 많은 부분과 ‘반문화’ 신화 혹은 보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희망을 신봉한다. (1) 프로이트의 염세주의, 즉 부르주아 개념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우리 안에 무한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2) 우리는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3)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자발적인 ‘집단’은 핵가족 중심의 일부일처제 가족과는 분명히 다르며, 그보다 분명 나은 것이다. 다른 모든 사회제도와 달리 자발적으로 형성된 집단은 제도를 반영하지 않을 것이며, 개인의 자유 위에 군림하는 가족이나 국가와 같은 독재를 강제하지도 않을 것이다. (4) 카리스마가 있는 반지도자적인 지도자들은 지도자가 아니다. 역으로 말하자면 지도자들의 ‘지도력’은 본질적으로 해악이다. (5) ‘광기’는 다소 ‘혁명적인’ 것이다. 사실상 우리 문화에서 광기는 무자비하게 처벌받는 무기력한 외침이다. - P242

사즈는 시민의 자유에 굳은 의지를 가진 도발적이며 정치적인 사상가이며 대단히 격조 높은 도덕적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다. 하지만 심리치료가 대단히 ‘사적’이라거나 다양한 사회적 권력 남용으로부터 개인을 반드시 자유롭게 하리라는 그의 생각에는 문제가 있다. 나는 ‘광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광기’는 ‘억압’과 ‘조건화’와 관련해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이런 이해만으로 억압이 초래했던 것을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하다고 확신하지도 않는다. ‘광기’에 대한 우리의 치료 자체가 비윤리적이며 억압적이라는 사즈의 말은 분명히 옳다. 하지만 사즈는 뿌리 깊게 조건화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자기희생과 심리적인 자기희생에 순응하는 여성들의 본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대다수의 여성 정신질환자들은 자신을 ‘병들’거나 ‘나쁜’ 사람으로 여기며, 대단히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 몸을 맡긴다. 경제적 육체적 성적 박탈이나 처벌에 대한 공포가 여성들에게 자기희생을 대단히 고귀한 가치로 여기게끔 가르치기 때문에 그들은 대단히 ‘자연스럽게’ 자기희생을 수행한다. 이 자연스러운 자기희생에 관한 여성들의 분노가 스스로를 ‘미치게’ 만들고 나면, 병원의 관행이 그들의 희생을 어쨌거나 강요할 것이다. - P249

심리치료 제도는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일시적인 위안과 자유에 대한 환상과 자기 인식이라는 자기 탐닉을 제공하여 사회적 정치적으로 통제하는 형식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또한 이 제도는 그와 같은 환상에 비용을 지불할 수 없는 사람들의 불행을 어쩔 수 없이 정신병적이라거나 위험하다고 낙인 찍고, 사회가 그들을 정신병원에 넘기도록 도와줌으로써 그들을 처벌하는 제도라고도 할 수 있다. 심리치료 제도는 임상의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관없이 가부장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임상의는 우리 문화의 다른 누구보다 더 신성한 영감을 받거나 자기 자신의 감정과 접촉하지 않는다. - P251

젠더 폭력은 고통이나 진단 가능한 정신질환적 증상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의 진단 방식에 대해서는 비판할 것이 많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나 젠더 폭력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억압과 폭력이 다양한 "정신질환"을 초래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여성들이 진정으로 고통받고, 아울러, 다양한 방식으로 병리학적 진단을 받는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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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다.


#1

아침부터 뉴스 보다가 아래 소식 보고 깜짝 놀랐다.

https://v.daum.net/v/20211224073447462?x_imp=dG9yb3NfY2xvdWRfYWxwaGE=&x_hk=NzU1ZmVmMDU4NjZmZjJlMDdm


연말 사면 결정 리스트에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한명숙 전 총리가 포함되었다는 소식이다.

한명숙 전 총리는 수긍이 가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아무리 건강상 이유라해도)

삶은 고구마 몇 개 먹은 것처럼 답답해진다.

이건 아니지 싶은데.


#2

알라딘 인문/사회 레터를 매주 금요일마다 받고 있다.


에세이가 처음 눈에 띈다.


제목부터 딱 끌린다. 《숭배 애도 적대》라니. 자살률이 높고 정치가 실종된 한국에서 그동안 숱하게 싸워온 투사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저자부터 천정환님이니까.



오바마와 빌게이츠가 추천한 책이라고 한다. 

1940~41년을 배경으로 영국의 윈스터 처칠이 총리로 임명되고 나서 1년간을 다뤘단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영국 안팎의 정세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독일의 하이델베르그에 있으면서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에 대한 독일 기사를 확인하고 몇 년간 자료 발굴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써 낸 책이다. 생각보다 대한제국이 저평가되었다고 하는데 그 자세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3

작년에 이어 올해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소소한 기쁨으로 보내보려한다.

올해는 크리스마스 캐롤 LP도 사고 클래식 LP도 사서 집에선 그걸 듣고

집-회사 오며 가며 이동할 땐 캐롤을 많이 들었다.

이렇게 하니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나고 좋은 것 같다.


어제 퇴근하면서 옆사람이 크리스마스 케잌을 사왔다.

오늘은 그거 먹으며 집에서 조용히 보내려고 한다.



아! 어제 게이샤 커피도 도착했으니 그것도 맛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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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2-24 1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커피, 케익.

거리의화가 님, 메리 크리스마스! :)

거리의화가 2021-12-24 10:41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도 행복한 크리스마스 연휴 되시길요^^

mini74 2021-12-24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메리 크리스마스 ~

거리의화가 2021-12-24 10:42   좋아요 1 | URL
미니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scott 2021-12-24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리의 화가님!
가족 모두 행복 가득! 하시길 바랍니다.
메리크리스마스!
🎄 ℳ𝒶𝓇𝓇𝓎 𝒞𝓇𝒾𝓈𝓉𝓂𝒶𝓈 🎅🏻

(\ ∧♛∧ .+° °*.
(ヾ( *・ω・) °・ 🎁
`し( つ つ━✩* .+°
(/しーJ

거리의화가 2021-12-24 12:10   좋아요 1 | URL
스콧님도 가족과 함께 평안하고 행복한 연휴 보내시길 바라며. 메리크리스마스!

바람돌이 2021-12-24 1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 화가님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책과 커피와 케익이면 저절로 따뜻해질듯요. 사실은 저도 어제 케익 먹었어요. 자꾸 자꾸 뚱뚱해지는 크리스마스예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1-12-24 14:31   좋아요 0 | URL
크리스마스와 연말은 케잌이 빠질 수 없죠. 이렇게 합리화해봅니다ㅎㅎ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
 

임상의학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다섯 가지 편견
1. 사람은 누구나 ‘병들었다’
2. 오직 남성만이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3. ‘진정한’ 여성은 어머니, 그런데 잘못된 것은 모두 어머니의 탓
4. 레즈비어니즘과 동성애는 질병이다
5. 어떤 임신은 불법적이다, 어떤 여성은 난삽하다

오늘날 (대부분의 비전문가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무분별하게도 여성에게 일어난 일보다 남성에게 일어난 일을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한다. 남성의 정신적 질환이나 ‘장애’는 여성의 질환보다 좀 더 심각한 ‘불능 상태’로 여겨진다. 남성이 여성보다 정신장애로 진단받는 경우가 적은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성은 소모품이자 ‘아웃사이더’라는 인식이 알게 모르게 정신의학 및 심리학 관련 논문 구석구석에 흐르고 있다. 심지어 여성의 질환을 논문의 주제로 삼은 경우마저도 그렇다. (남성의) ‘덕목’은 여성에게 거의 기대조차 되지 않는다. 여성들이 그런 덕목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며, 심지어 별로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이런 덕목의 결여로 인해 여성이 사회적으로 평가절하되고 신경증이나 정신병으로 진단받게 되는데도 말이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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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에 비해 여성이 정신병원과 같은 의료기관에 반복적으로 드나들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끔찍하게도 여성들이 그곳을 ‘집처럼’ 편안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여성은 여자아이로서 제대로 양육받지 못했고, 성인 여성으로서 남성에게 ‘보살핌’ 받는 것을 갈망하거나, 적어도 주기적으로라도 한바탕씩 가짜 ‘보살핌’, 즉 환자로서 보살핌 받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 여성의 역할에 대해 양가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이를 아예 거부하는 여성들은 그것의 궁극적인 결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 그처럼 위험천만하고 대담한 행동으로 처벌받기를 갈망한다. 많은 정신병원에서는 그런 여성들을 위협하고 처벌하거나 오도하여 진짜로 복종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약삭빠르게 복종하는 것처럼 만든다. - P155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여성은 우울증, 불감증, 피해망상, 자살 기도, 공황장애, 불안증, 식이장애 같은 ‘여성적’ 정신질환 증상을 드러내고, 남성들은 섹스중독, 알코올중독, 약물중독, 성격장애, 반사회인격장애, 뇌질환과 같은 ‘남성적’ 질병을 드러낸다. ‘여성적’ 증상으로 인해 여성이 입원하는 것에 비해 ‘남성적’ 증상으로 남성이 입원하는 사례는 훨씬 적다. 전형적으로 여성적 증상은 한결같이 ‘행복에 대한 두려움’을 공유하고 있는데, 이것은 토머스 서즈가 만든 용어로서, ‘노예심리’를 특징 짓는 ‘간접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 P160

(일반 여성과 마찬가지로) ‘우울한’ 여성은 오로지 언어적으로만 적대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남성들과 달리 그들은 자기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에게는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물리적으로 자신의 적대감을 표현하지 않는다. 여성 입장에서 물리적으로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보다 ‘우울한’ 것이 더 안전하다. - P164

남성들이 생산과 재생산의 수단을 통제하고 있는 한 여성들은 결코 성적으로 자신을 실현할 수 없을 것이다. 여성들은 자신의 성(또는 성적 쾌락을 위한 그들의 능력)을 경제적인 생존 및 모성과 맞바꾸어왔다. 익히 알다시피 여성의 불감증은 그와 같은 맞교환이 없어져야만 없어질 것이다. 매춘, 강간, 가부장적인 결혼이 혼외 임신, 강요된 모성, 비모성적인 부성, 나이 든 여성의 성적 박탈과 같은 개념(관행)과 더불어 존재하고 있는 한, 여성들은 ‘성적’일 수가 없다.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여성의 불감증은, 여자아이들이 불감증을 겪지 않고 있는 여자 어른에게 돌봄을 받고, 그런 어른들을 보고 자랄 때 없어지게 될 것이다. - P168

여성의 자살 시도는 현실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거나 적개심으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기보다는, 무력한 목을 드러내놓음으로써 자기희생을 위한 제례의식을 준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이다. 여성의 눈물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자살 시도는 체념과 무기력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행동이다. 이것만이 일시적인 구원 아니면 부수적인 보상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스로를 죽이려고 시도한 여성들이 반드시 친절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자살시도는 ‘여성성’의 숭엄한 제례의식이다. 이상적으로 말해 여성은 ‘이기기’ 위해 ‘지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자살에 성공한 여성은 비극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여성적’ 역할을 넘어서거나 거부하는 것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말이다. 심지어 죽음까지 불사하면서. - P172

남녀 모두에게 있어 정신분열증은 언제나 자신의 성별과 반대되는 행동까지도 보이게 만든다. 예를 들어 여성 정신분열증 환자는 여성 우울증 환자에 비해 적대적이거나 폭력적으인 행동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공공연하게 성적 쾌락(양성 쾌락)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지각을 불신하고, 열등감과 무력감을 느끼고, 의존적이라는 점에서는 두 집단 모두 ‘여성적’ 특성을 공유한다. 정신분열증이 여성을 위한 권력의 입구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우울증, 편집증, 난혼, 불감증, 식이장애, 자해, 공황 발작, 자살 시도와 같은 ‘여성적’ 질병 역시 그렇지 않다. 이러한 ‘장애’는, 입원을 하든 하지 않든 여성의 역할 의식이 되고, 대다수 여성들이 그 의식을 수행한다. - P173

‘광기’라는 것은, 남자에게 나타나든 여자에게 나타나든 간에, 과소평가된 여성 역할을 수행하거나 혹은 개인에게 부과된 상투적인 성역할을 총체적 혹은 부분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조건화된 여성의 역할을 완전히 수행하는 여성들은 임상적으로 ‘신경증적’이거나 ‘정신병적’이라고 간주되었다. 그들이 입원당하는 것은 우울증, 자살 시도, 불안신경증, 편집증, 식이장애, 자해 또는 난잡한 성교등과 같은, 대체로 여성적인 행동을 보이기 때문이다. (중략)
여성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남성, 즉 의존적이고 수동적이며 성적 신체적으로 두려워하거나 혹은 무기력한 남성들, 혹은 여성처럼 남성을 성적 파트너로 선택하는 남성들은 ‘신경증적’이거나 ‘정신병적’으로 간주된다. 그들은 대체로 ‘정신분열자’나 ‘동성애자’로 분류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들은 여성에 비해 스스로 ‘병든’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정신병원에 입원하지 않고서도 상투적인 성역할을 좀 더 오랫동안 거부할 수 있다. - P182

‘범죄’나 ‘정신질환’으로 간주되는 행동은 성별에 따라 유형화되어 있다. 물론 그런 행동들은 인종과 계급에 의해서도 유형화된다. 남성에 비해 여성이 더 많은 도움을 요청하며 ‘정신질환자’로 분류되어 입원한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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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적인 성역할로 구분된 사회에서는 어디든 예외 없이 같은 성별의 어른과 어린아이 사이에 기형적일 만큼 가혹함이 존재한다. - P131

가부장적 사회에서 기본적인 근친상간(어머니와 아들 사이, 아버지와 딸 사이)의 금기를 ‘심리적으로’ 남성은 따르고 여성은 따르지 않는다. 우리 문화권에서 4분의 1에서 3분의 1에 이르는 여자아이들이 아버지 혹은 남성 친척들에 의해 강간당하고 성적 괴롭힘을 당한다. 어머니에 의한 근친상간은 훨씬 드물다. 심리적으로 여성은 근친상간적인 유대관계를 끊어버리는 데 필요한 성년의식을 치르지 않는다. 대부분의 여성은 생물학적인 아버지와 근친상간을 범하지는 않지만, 가부장적인 결혼, 매춘, 대중적인 ‘로맨틱한’ 사랑은 심리적으로 볼 때 딸과 아버지 같은 인물 사이의 성적인 결합에 기초를 두고 있다. - P132

우리 시대 여성들은 ‘자유로운’ 노예다. 그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굴종을 선택한다. 여성들은 정서적으로 너무나 쉽게 ‘홀딱 빠져들도록’ 배워왔기 때문에 생각을 한다손 치더라도 분명하게 생각할 수 없다. - P135

잔 다르크와 기독교의 성모마리아는 남성의 부활을 위한 처녀(페르세포네)의 희생과 연관된다. 마리아의 경우에 부활은 고전적인 가부장적 강간(근친상간)을 통해 이뤄진다. 잔 다르크의 경우에 부활은 처음에는 군사적인 승리를 통해, 이후에는 가부장적인 십자가형(patriarchal crucifixion)과 축성-속죄(sanctification-expiation)를 통해 이뤄진다. - P141

가부장제 신화에서 여성 전사는 필연적으로 생물학적인 모성을 포함한 성욕의 일부를 부정당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비극이다. - P142

기독교신화는 마리아에게 딸도, 남성 및 남성 신과 교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데메테르의 권력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기에 빠져든 여성들은 세상(그리고 자기 자신)을 새롭게 탄생시키고자 갈망한다. 그러면서도 잔 다르크의 십자가형은 피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동정녀 어머니가 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또한 그들은 스스로 요구했던 그런 어머니가 되고 싶어 한다.
마리아는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은 피했지만 무성의 삶과 찌르는 듯한 슬픔을 겪어야 했다. - P143

젤다 피츠제럴드, 실비아 플라스, 엘렌 웨스트 등은 어머니의 사랑을 원하고 필요로 했다. ‘고유성’이나 영예를 잃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 그 사랑을 갖고 싶어 했다. 그들은 아마도 궁극적으로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성의 요구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삶 속 모성의 부재로 미칠 지경이었을 것이다. 양육 박탈과 함께 그들의 고유성이나 영웅주의에 가해지는 제약이 그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그들은 그냥 ‘여자’로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창조적인 인간으로, 혹은 그냥 인간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가 허용되지 않았다. 이에 반해 남성의 창조성은 대체로 너무 고귀하여 그들이 보여준 기행과 잔인함과 정서적인 유치함은 간과되거나 용서되었으며, 심지어 ‘기대되기’까지 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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