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에 비해 여성이 정신병원과 같은 의료기관에 반복적으로 드나들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끔찍하게도 여성들이 그곳을 ‘집처럼’ 편안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여성은 여자아이로서 제대로 양육받지 못했고, 성인 여성으로서 남성에게 ‘보살핌’ 받는 것을 갈망하거나, 적어도 주기적으로라도 한바탕씩 가짜 ‘보살핌’, 즉 환자로서 보살핌 받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 여성의 역할에 대해 양가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이를 아예 거부하는 여성들은 그것의 궁극적인 결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 그처럼 위험천만하고 대담한 행동으로 처벌받기를 갈망한다. 많은 정신병원에서는 그런 여성들을 위협하고 처벌하거나 오도하여 진짜로 복종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약삭빠르게 복종하는 것처럼 만든다. - P155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여성은 우울증, 불감증, 피해망상, 자살 기도, 공황장애, 불안증, 식이장애 같은 ‘여성적’ 정신질환 증상을 드러내고, 남성들은 섹스중독, 알코올중독, 약물중독, 성격장애, 반사회인격장애, 뇌질환과 같은 ‘남성적’ 질병을 드러낸다. ‘여성적’ 증상으로 인해 여성이 입원하는 것에 비해 ‘남성적’ 증상으로 남성이 입원하는 사례는 훨씬 적다. 전형적으로 여성적 증상은 한결같이 ‘행복에 대한 두려움’을 공유하고 있는데, 이것은 토머스 서즈가 만든 용어로서, ‘노예심리’를 특징 짓는 ‘간접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 P160
(일반 여성과 마찬가지로) ‘우울한’ 여성은 오로지 언어적으로만 적대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남성들과 달리 그들은 자기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에게는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물리적으로 자신의 적대감을 표현하지 않는다. 여성 입장에서 물리적으로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보다 ‘우울한’ 것이 더 안전하다. - P164
남성들이 생산과 재생산의 수단을 통제하고 있는 한 여성들은 결코 성적으로 자신을 실현할 수 없을 것이다. 여성들은 자신의 성(또는 성적 쾌락을 위한 그들의 능력)을 경제적인 생존 및 모성과 맞바꾸어왔다. 익히 알다시피 여성의 불감증은 그와 같은 맞교환이 없어져야만 없어질 것이다. 매춘, 강간, 가부장적인 결혼이 혼외 임신, 강요된 모성, 비모성적인 부성, 나이 든 여성의 성적 박탈과 같은 개념(관행)과 더불어 존재하고 있는 한, 여성들은 ‘성적’일 수가 없다.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여성의 불감증은, 여자아이들이 불감증을 겪지 않고 있는 여자 어른에게 돌봄을 받고, 그런 어른들을 보고 자랄 때 없어지게 될 것이다. - P168
여성의 자살 시도는 현실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거나 적개심으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기보다는, 무력한 목을 드러내놓음으로써 자기희생을 위한 제례의식을 준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이다. 여성의 눈물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자살 시도는 체념과 무기력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행동이다. 이것만이 일시적인 구원 아니면 부수적인 보상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스로를 죽이려고 시도한 여성들이 반드시 친절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자살시도는 ‘여성성’의 숭엄한 제례의식이다. 이상적으로 말해 여성은 ‘이기기’ 위해 ‘지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자살에 성공한 여성은 비극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여성적’ 역할을 넘어서거나 거부하는 것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말이다. 심지어 죽음까지 불사하면서. - P172
남녀 모두에게 있어 정신분열증은 언제나 자신의 성별과 반대되는 행동까지도 보이게 만든다. 예를 들어 여성 정신분열증 환자는 여성 우울증 환자에 비해 적대적이거나 폭력적으인 행동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공공연하게 성적 쾌락(양성 쾌락)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지각을 불신하고, 열등감과 무력감을 느끼고, 의존적이라는 점에서는 두 집단 모두 ‘여성적’ 특성을 공유한다. 정신분열증이 여성을 위한 권력의 입구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우울증, 편집증, 난혼, 불감증, 식이장애, 자해, 공황 발작, 자살 시도와 같은 ‘여성적’ 질병 역시 그렇지 않다. 이러한 ‘장애’는, 입원을 하든 하지 않든 여성의 역할 의식이 되고, 대다수 여성들이 그 의식을 수행한다. - P173
‘광기’라는 것은, 남자에게 나타나든 여자에게 나타나든 간에, 과소평가된 여성 역할을 수행하거나 혹은 개인에게 부과된 상투적인 성역할을 총체적 혹은 부분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조건화된 여성의 역할을 완전히 수행하는 여성들은 임상적으로 ‘신경증적’이거나 ‘정신병적’이라고 간주되었다. 그들이 입원당하는 것은 우울증, 자살 시도, 불안신경증, 편집증, 식이장애, 자해 또는 난잡한 성교등과 같은, 대체로 여성적인 행동을 보이기 때문이다. (중략) 여성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남성, 즉 의존적이고 수동적이며 성적 신체적으로 두려워하거나 혹은 무기력한 남성들, 혹은 여성처럼 남성을 성적 파트너로 선택하는 남성들은 ‘신경증적’이거나 ‘정신병적’으로 간주된다. 그들은 대체로 ‘정신분열자’나 ‘동성애자’로 분류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들은 여성에 비해 스스로 ‘병든’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정신병원에 입원하지 않고서도 상투적인 성역할을 좀 더 오랫동안 거부할 수 있다. - P182
‘범죄’나 ‘정신질환’으로 간주되는 행동은 성별에 따라 유형화되어 있다. 물론 그런 행동들은 인종과 계급에 의해서도 유형화된다. 남성에 비해 여성이 더 많은 도움을 요청하며 ‘정신질환자’로 분류되어 입원한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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