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고대의 기원이자 현대의 요람이다. 도시는 그 주변을 이끌어가고, 권력을 행사하고, ‘상대적’으로 진취적이기 때문에 우월한 위치에 서 있다.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진실이었다. 그렇다면 19세기의 도시에서 새로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 P760

도시는 지구의 보편적 현상이다. 국가는 유럽인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도시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도시문화는 (북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를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독립적으로 일어났다. 중동의 나일강 유역과 지중해 동부, 중국과 인도, 훨씬 훗날의 일본, 중부아메리카, 사하라 이남지역에서 각기 독자적인 도시문화가 형성되었는데 대부분의 경우 농업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었다.
도시의 물리적 형태와 생활방식은 유럽에서 전래된 것이 아니다. 유럽에서 발생한 ‘근대적인’ 도시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지만 거의 하나도 예외도 없이 강인한 토착 도시문화와 충돌했다. - P763

19세기 동안 ‘도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특히 19세기 후반은 도시화가 고도로 진행된 시기였다. 역사상 어떤 시대도 사회생활에서 19세기와 같은 공간 밀도의 변화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도시인구의 증가속도는 이전 몇 세기보다 훨씬 빨랐다. 영토가 광활한 몇몇 국가에서 유사 이래 처음으로 도시 주민의 생활방식이 경제와 문화 영역에서 주도적인 생활방식이 되었다. - P764

도시의 찬란한 현대성은 (긴 역사에 비추어보면) 순간일 분이다. 때로는 현대성이 지속된 기간은 수십 년에 불과했다. 현대성은 질서와 혼란의 평형, 인구의 유입과 유효한 기술구조의 융합, 구조화되지 않은 공공 공간의 개방, 탐색과 시험 가운데서 흘러나온 에너지였다. 현대화의 전제는 ‘전통’ 시대가 끝났을 때에도 도시가 여전히 특정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며, 동시에 비도시와 구분되는 특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광대한 면적과 분산된 인구, 여러 개의 위성도시로 구성된 다축 방사형 거대도시에는 내부의 경계도 외부의 경계도 모호하고, 도시의 착취대상이자 도시주민이 ‘소풍’이란 명분으로 소비했던 교외지역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의 19세기는 대도시의 형성과 함께 종말을 고했다. - P771

지금까지 도시화는 기계화된 공장식 생산의 보편화와 함께하는 도시 규모의 급속한 성장이라는 좁은 의미로 해석되어왔다. 도시화와 공업화는 동전의 양면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관점은 이제 설득력을 잃었다. 오늘날 도시화란 더 넓은 의미에서 사회발전의 가속화, 인구 밀도의 증가, 전혀 다른 환경 아래서 진행되는 사회구조의 재편과정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과정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인간이 더 긴밀하게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의 형성이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더 빠르게 정보를 교환하고, 그것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양호한 제도적 환경에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 P773

근대 초기에 유럽 도시 인구의 절대치는 중국 일본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고 동아시아에는 더 많은 거대도시가 있었다. 유럽은 1550년 이후 첫 번째의 도시화 물결을 경험했고 1750년 이후 두 번째의 물결을 경험했다. 도시인구의 비중은 1500년에서 1800년 사이에 두 배로 높아졌다. 1650~1750년에 유럽의 도시화 정도는 일본에 비해 약간 낮았고, 장강 하류지역과는 근접했고 중국 전체의 수준보다는 높았다. - P782

도시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흔히 비교분석을 통해 도시의 구조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관심사는, 대 중 소도시 사이의 관계가 궁극적으로 ‘협조적’이냐 하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19세기에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온전한’ 도시 등급체계가 있었다. 코펜하겐과 스톡홀름으로 대표되는 덴마크와 스웨덴은 이런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로 상트페테르부르크(1913년 유럽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였다)와 모스크바를 제외하면 큰 도시라고 할만한 게 없었다. 19세기 90년대 러시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사라토프의 인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1/10에 지나지 않았다. 국가 중앙권력의 명령에 따라 건설된 전형적인 주청부 청사 소재지인 이 도시는 주로 행정과 군사적 고려에서 나왔고 그 기능 또한 시종 이 범주를 넘지 않았다. 역동적이었던 제정시대 말기에도 이 도시의 인구는 5만 명을 넘지 않았다. 등급이 분명한 도시체계가 없는 것이 러시아 현대화의 중요한 장애였다. 일본은 반면에 등급이 분명한 도시 계보의 이상에 비교적 근접한 나라였다. 중국도 역사적으로 이런 특징을 갖추었으나 19세기에 인구 1~2만 명 사이의 소도시는 중국에서 찾기 어려웠고, 대도시의 빠른 성장도 소수 대도시에 국한되었으며, 이 도시들조차도 한결같이 해안지역 또는 해안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 P784

한 사회의 탈도시화는 개별 도시의 위축을 수반한다. - P789

19세기에 도시의 성장은 과거의 어떤 시기보다도 시장과 민간 추진력의 영향력을 많이 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역동적인 몇몇 대도시의 성장은 ‘민간부문’의 역량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런 도시는 더는 권력과 귀족문화의 중심이 아니라 정치적 위상이 높은 도시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업의 중심지였다. - P794

대부분의 도시체계는 개방적이었다. 19세기에 민족국가가 이미 형성된 지역에서는 국가는 점차 국가경제의 조직자로 진화해갔고 도시의 공업화는 국가경제 안에서 역할의 중요도가 높아갔다. 이와 동시에 ‘거대’도시는 교역 이주 통신의 국제적 네트워크와 직접 연결되었다. 대도시는 자본의 집적과 분배를 담당하고 동시에 ‘국가 간’ 연결의 기반 역할을 했다. 도시의 발전은 국가형성의 직접적인 결과도 아니고 공업화의 부수현상도 아니다. - P796

도시체계의 함의는 두 가지 방식—수직과 수평—으로 해석될 수 있다. 수직적 해석은 피라미드 모형을 차용한다. 가장 밑바닥에는 무수한 마을이 자리 잡고 있고 정상에는 핵심 지역이 자리잡고 있다. 중간에 규모에 따라 여러 정착지가 계층을 이루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농촌의 정기 시장도 있고, 고정된 시장 조직을 갖춘 소도시도 있고, 서비스와 관리기능을 함께 갖춘 중형 도시도 있다. 수평적 해석에서는 도시 사이의 관계, 도시가 소속되어 있으면서 도시 기능과 발전을 지원하는 네트워크를 관찰 대상으로 한다. - P798

한 도시가 일정 규모를 넘어서게 되면 단일한 기능으로 그 도시의 성격을 분류하기 쉽지 않다. 이때 도시는 여러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도시는 흔히 다원적이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 노동력을 고도로 특화된 분야에 집중하는 도시가 있다. - P803

한 국가의 수도는 인구의 다소에 관계없이 정치적 군사적 권력 중심으로서 다른 도시와 구분된다. 그 밖의 특징도 모두 여기서 비롯된다. 수도는 최고 통치자의 거주지이며 중앙 관료기구의 소재지이다. 수도의 노동시장은 흔히 다른 도시에 비해 서비스업에 기울어 있다. 수도에서 사는 주민들에게 통치자가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어떤 정치체제이든 수도는 대중정치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 P809

19세기에 지구상에서 극히 소수의 도시만 런던과 파리 모형을 따라 각종 기능을 한곳으로 집결시킨 전능형 도시로 발전했다. 수백 년의 역사를 갖고 있고 활력이 넘치는 대도시라도(예컨대, 도쿄와 빈) ‘제2도시’와의 경쟁을 피할 수 없었다. 로마에서는 이원관계의 연원이 다른 곳에 있었는데, 그것은 세속정권과 바티칸 사이의 대립이었다. - P814

19세기 30, 40년대의 맨체스터가 ‘충격의 도시’라고 불렸던 이유는 도시의 구체적 공간 때문이었다. 이 도시에 들어선 많은 7층 높이의 공장건물들은 미학적 고려나 도시경관과의 조화라는 개념은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 이런 풍경이 흔하게 늘어선 곳은 도시의 중심지역이 아니라 교외지역이었다.
어떤 도시는 완전히 공업지역으로서 건설되었고 오랫돈안 공업이 도시의 유일한 존재목적이었다. - P820

맨체스터, 버밍엄, 리즈 같은 도시는 대중의 참여라는 자신만의 자원을 동원하여 공업화 초기단계에서의 혼란을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이들 도시는 박물관과 시립대학을 설립하여 공동체 기반시설을 개선했으며, 위엄 있는 건물을 세워 장소의 권위를 높였다. 공장지역 주거지의 형태는 다양했다. 대형 공업도시의 빈민굴처럼 생활환경이 열악한 원시적인 판자촌도 있었지만 작업장과 노동자들의 주거환경이 견딜만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기업적 가부장제의 전시장으로서 공장주도 함께 사는 주거지역이 있었다. - P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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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21년이 다 끝나가고 있다.


오늘은 회사 자체적으로 일괄 연차 쓰고 휴무라

여유 있게 일어나서 집안일 좀 하다가 먹다 놀다 책 한 권 읽으니 하루가 후딱 갔다.

2021년 마지막날이라고 해서 별다를 것은 없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일상을 어떻게 보내는가 삶의 모습들이 다를뿐.


춥기는 해도 미세먼지 없고 께끗해서

오후에는 길을 걸었다.

잘 안 움직이지만 걷는 것은 좋아한다.

발목이 좀 좋지 않아서 아주 많이 걷지는 못하지만 만보 정도는 괜찮다.

나온 김에 다이소 가서 이것저것 눈요기도 하고

커피 테이크아웃해서 길을 걷는데 참 좋았다.



- 알라딘 인문 레터에서 건진 책들


고려사 전문 박종기 선생님께서 고려사만이 아닌 이후 사료들을 통해서 입체적으로 본 고려사 인물 열전을 펴냈다.

고려사 시기별로 몇 명의 인물을 뽑았다.


이미 보관함에 담아둔 책이지만 보자마자 반가워서^^

이리가레의 철학박사 학위논문인 『반사경』은 수많은 남성 철학자 및 프로이트와 라캉의 이론을 남근중심주의 담론이라고 날카롭게 비판하며 서양철학사를 새롭게 다시 쓴 문제적 저작이라고.

11월에 읽었던 하나이지 않은 성 처음부터 막혀서 골머리를 앓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 좀 도움이 될까 싶다.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들이 자유주의에 등을 돌리고 좌경화된 까닭을 담고 있다 한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 밀레니얼 세대들은 어떠한가 비교하는 지점도 생길 것 같다.




이렇게 2021년이 저물고 있다.

2022년도 건강하게,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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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2-31 22: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괄연차 좋네요~!! 날씨가 춥고 발목도 안좋으신데 만보나 걸으셨다니~! 21년 마지막남은 두시간 잘 보내시고 22년 복 많이 받으세요 ^^

거리의화가 2021-12-31 22:23   좋아요 3 | URL
네 꿀휴가를 보냈습니다. 날씨는 추운데 낮에 돌아다닌거라 괜찮았어요ㅋㅋ
새파랑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년에도 화이팅입니다!

mini74 2021-12-31 23: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득템하신건가요. 내년엔 발목 좋아지시길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거리의화가 2022-01-01 07:26   좋아요 0 | URL
네 매주 알라딘 인문 레터를 받고 있는데 그 와중 괜찮은 책들은 찜해놓고 읽곤 해요 발목은 예전에 일본 갔다가 너무 많이 걸어서 발목에 염증이 생긴 이후로는 컨디션이 안 좋거나 무리해서 걸으면 발목이 시큰해지더라구요. 미니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cott 2021-12-31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별다를것 없었던 마지막날이였지만 화가님
2022년 새해 행복가득 복🐯 마뉘

거리의화가 2022-01-01 07:27   좋아요 1 | URL
별다를 것 없는 하루가 요즘은 제일인 것 같아요 건강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게 행복인 것 같습니다. 스콧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책읽는나무 2022-01-01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화가님^^
평범한 하루 하루도 알고 보면 소중한 하루인 거겠죠?
올 한 해도 평안하시고 행복하시길요♡

거리의화가 2022-01-01 09:29   좋아요 1 | URL
네네 나무님도 매일 소중한 일상 만들어나가시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레이스 2022-01-01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거리의 화가님 2022년 첫날 만나뵙네요~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책으로 좋은 이야기 만들어가요~^^

거리의화가 2022-01-01 10:18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반갑습니다 오며 가며 계속 만났는데 이제야 친구신청을ㅋㅋ 뒤늦었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앞으로 자주 뵙고 이야기 나누어요!
 
대한계년사 5
소명출판 / 200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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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에서는 어떤 모임도 경계하려는 고종, 기득권의 자기 밥그릇 싸움이 나온다. 후반부에는 청나라 의화단 운동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소개된다. 

만주족의 기원과 청나라의 성립, 그리고 의화단 운동의 배경에 이르기까지 긴 분량을 다루고 있다.


4권에서 독립협회 핵심 세력이 구속되고 해체되는 안타까운 모습으로 결말을 맞았다. 


독립협회를 끌어내린 고종과 수구세력(황국협회 보부상)은 이후에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민회마저 탄압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대체 왜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에만 혈안이 되었단 말인가.

당시 민회 회원은 체포와 암살을 두려워하여 미국 및 일본인 집에 많이 숨어 행방을 감추었다. 이때 거리에서는 정부가 은밀히 자객 30여 명을 보내, 민회 회원을 죽이려 한다는 말이 떠돌았다.

한 사람이 깜깜한 밤 큰 거리에서 몰래 들으니 어떤 두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우리들이 어찌 은화 몇 닢의 이익 때문에 차마 임금께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민회 회원을 해치겠는가." 하면서 서로 오랫동안 탄식했다고 한다. - 31p

민회 회원으로 유명한 사람들은 몸을 보호하는 도구로 모두 권총과 몽둥이 칼을 지니고 있었지만 밤에는 잠을 깊이 들 수 없었다. - 47p

그 와중에도 서울에는 전차가 다니기 시작했고 외국과의 우편 업무가 시작되었다.

개화의 바람으로 훈풍을 지속할 수도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 와중에 찬물을 끼얹는 세력은 어김없이 존재했다.

등짐장수란 이름이 나라 안에 가득 차고 퍼져, 위로는 벼슬아치와 선비로부터 아래로는 염치없는 종부치와 천한 무리에 이르기까지 다투어 상무사에 투신했다. 무리를 지어 재빨리 상무사로 달려가 한패거리가 되어 서로를 비호하면서 온 나라와 백성들에게 끼친 폐단은 말로 다할 수 없다. - 71p

1899년 8월 대한국 국제가 반포된다.

1조와 2조의 내용이 눈에 띄는데 1조는 대한제국은 자주독립국이라는 내용이고 2조는 전제정치에 대한 내용이다. 


- 대한국 국제를 정하다.

8월 17일 지시하였다. 같은 날 법규교정소 총재 윤용선, 의정관 서정순 등이 나라의 제도 9조를 아뢰었다. 

제1조, 대한국은 세계의 온 나라가 공인하는 자주독립의 제국이다.

제2조, 대한제국의 정치는 과거 500년간 전해 내려왔고, 향후 영원히 내려가도 변치 않을 전제 정치이다.

... -73p

이 부분을 볼 때마다 시대를 역행했다는 생각이 든다.

자주국은 좋다. 근데 왜 전제정치일 수밖에 없었는가. 

민의는 성장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독립협회 등의 단체가 생기고 국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텐데...


명이 쇠퇴하고 청이 흥기하는 과정 속에서 조선은 끊임없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미 대세는 청으로 기울었음에도 군대를 파견하라는 청의 요구에 군대를 파견하면서 뒤로는 재조지은이라는 명목 하에 명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김상헌, 임경업 등은 명에 신의를 지켜야 한다며 끝내 청에 무릎꿇지 않는다. 

효종은 송시열을 등용하고 청을 정벌하려는 계획을 호시탐탐 노린다. 하지만 성공 확률이100%가 아닌 상황에서 백성을 담보로 한다는 것은 옳은 일이었는가. 


송시열이 대답하기를, 

"제갈량의 재주로도 끝내 한나라의 왕실을 다시 일으킬 수 없었으니, 만에 하나 차질이 생겨 나라가 엎어져 망할 근심이 생긴다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했다. 

임금이 말하기를,

"천하의 떳떳한 의리가 분명하다면 비록 사직이 망하게 되더라도 또한 천하에 대대로 밝은 빛을 낼 것이니 어찌 부끄러움이 있겠는가? 또한 나는 가만히 하늘의 뜻이 나로부터 머지않아, 아마 이러한 걱정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 -145p

명은 결국 멸망한다.

그럼에도 조선은 숙종 이후 끊임없이 명을 위한 사당과 제단을 조선에 세운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것이 역사이던가.

승승장구하던 청도 세상을 보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내부의 분열과 외국과의 전쟁 등을 통해 국력은 쇠퇴하고 있었다. 


황제는 뒤늦게 변법자강운동을 받아들여 개혁하려했으나 이마저도 서태후 세력에 밀려 자강 개혁에 실패하고 서양 세력에 강제로 문호를 개방하고 만다. 

당시 공부 주사 강유위가 상소하여 변법자강의 방법을 온 힘을 다해 아뢰니 청나라 임금이 기꺼이 받아들였다. 

4월에 지시를 내려 변법자강을 국시로 결정하고 강유위를 불러들여 곧바로 총리아문장경에 임명했다. 또한 거인 양계초에게 6품직을 띤 판리역서국사무의 관직을 내렸다. ...

서태후는 변법자강 운동을 싫어하여 8월 수렴청정의 지시를 내리고 청나라 왕을 서원에 있는 태액지 안의 영대에 깊숙이 가두고, 담사동 강유부 양심수 양예 임욱 유광제 등 여섯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 강유위는 영국 관할령 싱가포르로 도망나갔고 양계초는 일본으로 도망쳤으니, 이것이 무술정변이다. -169~170p

조선의 마지막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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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2-01-01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님 덕분에 역사에 대해 보다 더 깊이 관심을 갖게 됩니다. 내년에도 좋은 글 부탁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거리의화가 2022-01-01 08:41   좋아요 1 | URL
별말씀을요. 저야말로 겨울호랑이님의 폭넓은 지식에 많이 배우고 놀라곤 합니다. 항상 감사드려요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현대 여성 심리학은 무기력하고 박탈된 조건을 반영한다.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여성의 많은 특질들, 즉 직관력이나 동정심과 같은 특질들은 생물학적인 경향이나 자유로운 선택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어떤 결함이나 가부장제가 부과한 필요를 통해 개발되어왔을 것이다. 여성의 정서적인 ‘재능’은 성차별에 의해 발생한 전반적인 비용의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자유와 위엄을 판 대가로 사들인 특질들을 낭만화하는 것은 비논리적이고 위험하다. 그런 특질이 비록 ‘훌륭한’ 것이며, 노예 상태를 조금이나마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고 하더라도, 압제자의 분노와 슬픔을 달래어 하루 정도 더 그의 손을 붙들어둘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 P484

많은 면에서 서로 유사하기는 하지만 여성들은 집단과 관련해서 볼 때 남성들보다 훨씬 더 많이 고립되어 있다. 여성들은 공적인 집단이나 권력집단으로 통합되지 않는다. 어머니로서 여성들은 (성장하고 나면 어머니를 떠나는) 아이들과 ‘집단화’되어 있으며, 일시적이고 피상적으로만 다른 여성들과 연결되어 있다. 공원에서, 여성이 보조적인 기능을 하는 곳에서, 이성애주의자들의 파티 등에서만 서로 뭉친다. 이처럼 여성들은 필수적인 임금 노동보다는 ‘자유롭게’ 선택한 사적인 생활에서 연결될 때 서로 일시적으로 친구가 될 뿐이다. - P494

전통적으로 남성뿐 아니라 여성은 남성의 희생이나 협력보다는 다른 여성의 도움이나 희생을 보다 쉽게 기대하고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런 기대가 비교적 안전하고 성공 확률이 높다. 이는 심리적으로 우리 문화가 남성에게 보다 높은 가치를 매기면서 남성이 최고가 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도록 여성들끼리 서로를 ‘감시 단속’하는 역할을 부여했음을 나타낸다. 심지어 페미니스트 운동에서도 여성은 남성으로부터 특정한 지원을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알고 지내는 남성으로부터도, 혹은 자선 기관이나 산업체, 정부와 같은 공적이고 남성적인 관계당국으로부터도 지원을 요구하지 않는다. 특정한 지점을 넘어서면 여성은 남성에게 무엇을 하도록 강제할 수가 없다. 남성들의 신체적 성적 보복이나 더 나아가 경제적으로 버림받는 것에 대한 공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 P501

페르세포네-프시케-신데렐라로서의 여성은 특정한 것을 성취할 수 없다. 여성이 여성의 자격으로서 세계 평화나 보편적인 개인의 행복과 같은 목적을 남성이 성취하는 것보다 쉽고 빠르게 성취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와 반대로 힘없는 인간으로서 여성은 남성보다 더욱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특히 남성은 사회계급상 상대적으로 힘이 있기 때문에 ‘여성적’ 특성이 공적인 영역으로 흡수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성이 공적 영역에 참여하기 위해 ‘남성적’ 특성을 갖추도록 장려하는 것에 반대할 것이다. 여성이 처음으로 조직화해 성취를 이룬 것은 ‘여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자녀 양육, 낙태, 피임과 같은 이슈와 관련된 것들이다. 집단으로서, 이익집단으로서 혹은 개인으로서 여성들은 이제야 경제 종교 전쟁 평화 과학 예술 등의 보다 ‘중대한’ 이슈들을 다루기 시작하고 있다. - P506

나는 이성에 의한 강간과 임신이라는 생물학적인 사실과 의미가 가부장제 가족을 구성하는 주요 요인이었다고 믿는다. 남성들이 자신의 유전적 불멸성을 증명하려는 욕구 또한 주요 요인이었다. 이러한 욕구가 너무 강렬해서 남성들은 자녀가 자신의 정자로부터 창조되었다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 당연히 여성의 몸을 식민화하고 여성의 자유를 제한할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여성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어 강간에 대해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니라 혁명적이다. 여성이 잠재적인 전사(물리적인 방식을 포함하여 단어가 지닌 모든 의미에서)로 간주되는 것 역시 시대착오적이 아니라 혁명적이다. 만약 이런 일들이 실현된다면 현대 생활에 급격한 변화가 일 것이다. - P516

의식이 기적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여성이 권력을 획득하지 않고 가부장제를 물리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은 없다고 생각한다. - P517

내가 성별 간 전쟁을 시사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언제나 전쟁을 치러왔다고. 그리고 그런 전쟁에서 여성은 언제나 패자였다고. 여성들이 이런 사실을 거의 눈치채지 못한 것은 남성이 ‘승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 반면 여성은 ‘패배’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여지껏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왔던 것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그것을 변화시키려고 할 때 우리가 이미 치르고 있었던 성별 전쟁의 비전은 좀 더 확실해질 것이다. - P523

여성은 다른 사람의 힘과 기술에 대한 사랑과 의존을 자기 자신의 모든 힘과 기술에 대한 사랑으로 전환해야 한다. 여성은 정서적 현실의 핵심으로 곧장 들어갈 수 있다고 간주되는 만큼이나 신체적 기술적 지적 현실의 핵심으로도 곧장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훈련과 용기와 신념과 분노와 행동할 수 있는 능력과 벅찬 기쁨과 절박함이 요구된다. 풍부한 자원을 가진 지략 있는 여성만이 다른 여성과 이런 것들을 공유할 수 있고 필요한 자원을 축적하기 위해 이런 것들을 이용할 수 있다. - P525

여성은 세계를 ‘구하기’에 앞서, 남편과 아들을 ‘구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과 딸을 ‘구하기’에 나서야 한다. 여성은 오로지 배우자나 생물학적 자녀를 갈망하고, 보호하고, 보살피는 외골수의 무자비함을 자기보존과 자기계발에 집중하는 ‘무자비함’으로 바꾸어야 한다. - P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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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발룬티어스 - 정규 1집 The Volunteers [180g 12인치 LP]
더 발룬티어스 (The Volunteers) 노래 / 블루바이닐 / 2021년 12월
평점 :
절판


오래 기다렸는데 LP 상태가 좀 아쉽지만 음반 수록곡들의 퀄리티가 좋으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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