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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듣는 강물
김진태 / 해냄 / 1996년 3월
평점 :
절판


추천 권유도 3

 

작품은 수월 스님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기독인으로서 불교에 대한 어떠한 편견이나 잘못된 시각을 갖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차원

에서 내 것이 중요한만큼 남의 것도 중요하다는 의미로 작품을 접해 읽었는데 역시 철학적

내용이 많아 솔직히 이해가 너무 어렵다.

과거 어느 고 스님께서 입적하시기 전에 남기신 말씀 중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를

들은 적이 있는데 본 작품도 그런 연장 선상에서 이해하려 노력은 해 보았으나 간간이 보여지는 수월스님의 행적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가 이제까지의 삶을 고정된 틀 속에서 바라보았던 나를

바깥으로 인도해 주는 듯한 느낌이 들기는 하였으나 대체적으로 난해하다고 밖에는 할 이야기가

없다. 어찌 되었던 불교와 관련된 여러 기초 상식을 알게 해 준 작품이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문구들

 

- 홀로 있을 때 나는 온전히 나다. 벗과 함께 있을 때 반쪽이 나다. 여럿이 있을 때 나는 없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P 29)

- 인도에서는 절을 상가라마(Sangharama)’라고 한다. 우리는 승가람혹은 가람이라 부른다.

  ‘상가우리, 여러 사람을 뜻하고, ‘아라마행복이 있는 곳’, ‘이라는 뜻으로 이것을 한

  뜻으로 해석하면 뭇 사람들의 행복이 있는 곳이 된다.(P 36)

- ‘천수경은 자비가 끝없는 관세음보살게 온몸 던져 욕심, 성냄, 어리석을을 없애고 끝내 깨달음
  을 이루고 말리라고 다짐하는 뜨겁고 간절한 바람이 담겨져 있는 노래로 천수경자비의

  경전이라고도 한다.(P 46)

- ‘지혜란 삶이 비어 있음을 보는 힘이요, ‘자비란 그 비어 있음 가운데 피어나는 눈부신 꽃이다.

(P 47)

- 부처님이 되기 전의 싯다르타는 우루벨라숲 속에서 여섯 해 동안의 긴고행을 끝내고 자신의

  수행 생활을 냉철하게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P 50)

- 예비승을 의미하는 사미승에서 사미란 인도말 사마네라(Samanera)’에서 온 말로 악을 그치고

  자비를 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P 54)

- ‘수행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참선을 하든 염불을 하든 하늘 천 따 지를 하든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P 61)

- 깨달음의 순간이 끊어짐이 없이 이어가 욕심과 어리석음의 옛 삶이 다시는 끼어들 수 없게

  하는 노력 아닌 이 노력을 보림(保任)이라고 한다.(P 76)

- 조실(祖室)이란 대중들을 지도할 수 있는 높은 수행력을 지닌 스승에게 올리는 자리이다.(P 85)

- 우리 선조들은 상투가 없는 사람을 반팽이(半便)이라고 불렀다.(P 97)

- ‘보현보살은 문수보살과 함께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는 보살이다.

  곧 문수와 보현은 부처님의 세계를 이루는 두 개의 만다라이며, 부처님은 문수와 보현이 서로

  만나서 피워낸 한 떨기 아름다운 꽃인 것이다. 문수가 존재의 참모습응 밝게 보는 눈이라면,

  보현은 그 밝은 눈이 끝없이 토해 내는 손이요, 발이요, 입이다.(P131)

- 불교의 진수는 화엄이고, 화엄의 결론은 보현이다.(P132)

- 1886년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공했을 때 이들을 목숨으로 막아낸 이들이 강계출신

  포수단 오백 명이었다.(P137)

- 삶과 세계를 해석하는 힘을 불가에서는 욕망으로 본다욕망이란 덧없음에 대한 무지(無知)이며

  비어 있음에 대한 눈가림이다.

- 참된 사랑과 자비심은 나 없음’, 곧 무아의 진실에 눈 떳을 때만 생긴다.(P156)

- ‘신발은 사람의 영혼을 망친다’(P170)

- ‘샛섬(간도)’의 유래?

  여진족의 자손인 청나라 사람들이 북경으로 터를 옮기자 그들이 살던 곳은 빈터가 된다.

  청나라 황제가 청나라 사람이든 조선 사람이든 들어가 살 수 없는 지역으로 선포하여 조선

  청나라사이에 갈 수 없는 섬이란 샛섬 혹은 '간도'라 칭하였다.(P190)

- 연해주란 프리(Pri, 연안), 모르스키(Morskii, 바다)라는 러시아말을 풀어 놓은 것으로

  블라디보스톡 지방을 말한다.(p192)

- ‘진실은 갈라설 수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삶을 떠난 진실은 한갓 관념에 지나지

  않으며 진실하지 못한 삶 또한 삶이 아니다.(P194)

- 승려들의 법복(法服)은 다른 말로 자비의 옷이라 부른다.(P195)

- 중국 도문애서는 두만강을 도문강이라 부른다. ‘도문이란 골짜기또는 원나라 때의 벼슬

  이름인 만호(萬戶)’를 뜻하는 여진족 말인 두맨을 중국글로 나타낸 말(P196)

  1931년 만주를 침략한 일제는 이 곳에 크게 번지고 있던 사회주의 사상과 그들의 무장 투쟁을

  막아 없애려는 한 방법으로 흩어져 있던 여러 마을을 어거지로 한 곳으로 모아 지금의

  도문시를 만들었다.(P197)

- ‘성냄이란 본디는 없는 거짓 나를 절대라고 생각하고 참으로 있다고 보는 데서 오는 삶의

  질병인 셈이다.(P223)

- 삶에서 바라봄의 중요함은 아무리 힘주어 거듭 말해도 지나침이 없으리라, 바라봄의 자리,

  이것은 모든 삶이 스스로의 삶의 길을 열어가는 갈림길이며 모든 종교와 철학이 그 모습을

  달리하게 되는 갈림점이기 때문이다.(P237)

- ‘관음이란 완성된 삶의 다른 이름이니, 나 아닌 나를 보는 밝은 지혜의 바다이며 너 아닌 나를

  노래하는 따뜻한 자비의 고향인 것이다.(P251)

- 죽음은 당하는 일이 아니라 이루는 일이다.(P273)

- ‘열반이란 모둔 맞섬이 사라져 버린 큰 평온이란 뜻이다.(P274)

- ‘깨달음이란 삶과 죽음이 본디 없는 것을 밝게 보는 일이며 사무치게 맛보는 일(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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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환상문학전집 14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추천 권유도 5 

 

런던의 어느 화실, 화가 배질 홀워드는 참으로 보기 드물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젊은이

도리언 그레이라는 인물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그려지고 있는 초상화를 바라보면서 청년

모델의 모습에 빠져 시종일관 감탄의 표정을 짓는 헨리 워튼.

그는 (),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지적인 표정이 시작될 때 끝나 버리는 것이지.

지성이란 그 자체가 과장의 한 형식이기 때문에 어떠한 얼굴의 상태이든 그것을 망가뜨리거든.

이 사람은 절대로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거야. 분명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 이 사람은 머리가

없는 아름다운 생물이니까

라고 말하는데 그 사람의 이 말은 본 작품을 관통하는 중심 구절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헨리 경의 이런 말에 동의라도 하듯 주인공은 악마적인 유미주의(唯美主義) 사상에 사로잡혀

자기가 어떻게 되든, 또는 무엇을 하든 언제까지나 젊고 아름답게 남고, 대신에 자신의 초상화가

늙고 추하게 변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우연한 기회에 주인공 도리언은 소극장의 여배우 시빌 베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여배우의

저급한 수준(여배우로서의 자질, 목소리 등)을 확인하고는 여배우와 결별하게 되는데, 이에

충격받은 그녀는 한껏 부풀었던 자신의 미래가 파탄난 것에 대한 실망감으로 자살로 생을 맞이

하고 만다.

그 직후 도리언을 탐욕의 세계로 이끄는 계기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헨리 경으로부터 전해받은

문제의 노란책’ - 나는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을 갖고 저자가 작품의 주제라고

생각되는 여러 이야기를 토해내고 있는데, 솔직히 작품을 접할 때는 이해가 되었더라도 돌아서면

무슨 내용이었는지 잊어버려 상당히 어려움을 겪으며 작품을 접할 수 밖에 없었다 을 받고

난 뒤의 도리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추악하게 변해가고 있음을 보았다.

이 내용은 도리언이 화가를 살인하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해당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당 부분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가 수반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 나는 3번 연속해서 읽고 또 읽었으나 아직도 부분적인 이해만 가능해 한스럽다 -

도리언은 자신과 관계된 추문을 전해주고 삶의 방식을 바꾸기를 원하는 화가를 살해한다.

- 위에서 언급한 노란책을 통해 얻은 추문에 대처하는 방식을 도리언의 방식으로 실행한 것이

- 그 이후 그의 삶은 더욱 피폐해져 가고 있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밤 그 저주스러운 초상화를 찢어버리려고 그림에 칼을 꽂지만 그것은 그

자신을 죽이는 칼이 된다. 늙고 초라하고 주름투성이의 얼굴로 변해 버린 그는 바닥에 쓰러진다.

그 앞에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움과 젊음으로 빛나는 그의 초상화가 벽에 걸려 있었다.

주인공 도리언은 영원한 젊음과 미모를 꿈꾸었지만 끝내는 추악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

것이었다.

도리언 그레이, 그는 자신의 외모가 아니 자신의 싱싱한 청춘이 언제까지 유지되기를 원했고

청춘에 대한 변화는 초상화에만 나타나기를 원하여 그가 원했던 외형적인 자신의 바램은

이루어졌으나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진실한 내면의 모습(초상화)이 시간이 갈수록 늙고 추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에 대한 반감(?)으로 그런 초상화에 기대어 살게 만든 화가를 살인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만다.

인간의 욕심이란 밑도 끝도 없이 확장되어 왔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가장 최초의 인간의 욕심이란 이브의 꾐에 넘어가 금단의 열매를 먹은 아담, 하늘에 닿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 당시만 해도 그러한 개념은 공동체의 주류적 사고였을 것이고 대다수의

인간들은 믿었을 것이지만 상상이었지만 대다수는 기대내지는 바램 속에서 한 마음 한 뜻으로

'바벨탑'을 쌓았을 것이다.

그 모든 게 허무하게 판정되었고 인간들은 이루어지지 않는 원죄에 대한 형벌을 받았다.

도리언 그레이 그가 진정으로 꿈꾸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가 어떤 꿈을 꾸었던간에 그것은 그의 것이지만 그 내용이 자연의 순리를 역행할 때는 그에

맞는 대가를 치를수 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초상화는 단순한 자신의 인물을 이야기하는 단어가 아닌 인간 본연의 야욕을 대변하는 도구

였던 것이며 사티로스의 얼굴을 한 사악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내린 결론은 주인공 도리언 그레이는 세상에 살고 있는 여러 타락한 인물 중

한 사람이라는 것과 쓸데없는 영원한 젊음을 지속시키기 위해 매달렸던 초라하고 나약한

인간이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작품의 말미에 언급되고 있는 한 문장이 나를 바라보고 웃고 있다.

 

늙은 사람의 비극은 늙었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실은 늙었음에도 여전히 젊다는 데 있다."

                                                                                                             (P356)

      

작품에 등장하는 문구들

 

-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지성의 표정이 시작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다.(P 18)

- 가장 흔해 빠진 것이라도 비밀에 감싸여 있으면 아름답게 변하는 것이다.(P 20)

- 웃음은 우정을 시작하는 썩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절교의 방법으로 최고(P 26)

- 예술가는 아름다운 사물을 창조해야 하지만, 자기 삶에 속하는 그 무엇도 작품 속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되네 우리는 사람들이 예술을 마치 일종의 자서전으로 대하는 시대에 살고 있네,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추상적인 감각을 잃어버렸어, 언젠가 나는 세계에서 그 감각이 무엇

  인지 보여 줄 걸세 그리고 그런 이유에서 세상은 결코 내가 그린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보지 못할 걸세.(P 32)

- 인생의 목적은 자기 계발에 있어, 자신의 본성을 완벽하게 실현한다.

  이것이 우리 각자자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인 거야(P 41)

- 사회가 강제하는 공포, 그것이 도덕의 토대이며, 신이 주는 공포, 그것이 종교의 비밀이야(P 41)

- 변덕과 일생에 걸친 열정이 유일하게 다른 건 변덕 쪽이 더 오래간다.(P 51)

- 세상에 가질 만한 가치가 있는 건 청춘 뿐이다.(P 55)

- 고통에는 동정을 느낄 수 없습니다. 너무 추악하고 너무 끔찍하고 너무 사람을 비통하게

  만드니까요. 현대인들이 고통을 공감하는 방식을 나는 병적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공감해야 할 것은 색채, 아름다움, 삶이 줄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삶의 고통에 대해서는

  말을 줄일수록 좋은 법이지요.(P 77)

- 인류는 스스로를 지나치게 대단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이 세상이 지은 원죄다. 동굴에 살았던 최초의 인류가 웃을줄 알았더라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P 78)

- 남자들은 인생에 지쳤기 때문에 결혼하고, 여자들은 무엇인지 알고 싶어 결혼한다.(P88)

- 삶에서 한 번만 사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천박한 사람들일세그들이 변함없는 사랑이라고,

  변치 않는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 나는 그것을 관습의 권태 또는 상상력의 부족이라고

  부르겠어.(P 92)

- 시작은 언제나 자신을 기만함으로써 시작되고 그 끝은 언제나 다른 이를 기만함으로써

  끝난다.(P 97)

- 이상하게 열정이 갖는 단단한 논리와 지성이 누리는 감정적으로 다채로운 삶을 보는 것,

  그 둘이 어디서 만나며 어디서 갈라서는지 관찰하는 것, 그것들이통합되는 지점을 보는 ,

  그것들이 어디서 불화하는지 보는 것, 이 안에는 큰 즐거움이 있었다.(P105)

- 경험에는 윤리적 가치가 전혀 없었다. 경험은 사람들이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붙인 이름일

  뿐이다.(P107)

- 지혜를 가장한 충고는 실은 겁쟁이들을 위한 책, 그 저자가 상식이라는 이름을 무의미하게

  반복할 뿐인 비겁의 책으로부터 인용한 구절 뿐이얶다.(P111)

- 자식은 우선 부모를 사랑한다. 그러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식은 부모를 판단한다.

  그리고 때로 자식은 부모를 용서하는 밥이다.(P120)

- 가난이 문간으로 들어올 때 사랑은 창문으로 날아간다.(P122)

- 여자들은 남자에게 걸작을 쓰겠다는 욕망이 생기도록 영감을 주지만, 언제나 그 욕망의

  실현을 죄절시키지.(P141)

-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감정은 결코 갖지 안는데 있다.(P149)

- 여자들은 자기들의 감정에 의지해 살아간다. 여자들은 자기 감정만 생각한다. 여자에게 여인이

  생긴다면, 그것은 극적인 장면을 함께 만들어 낼 사람이 생겼다는 뜻이다.(P161)

- 선의의 결단이란, 과학적 법칙에 개입하려고 하는 무용한 시도일 뿐이다.

  선의의 결단이란 것의 기원은 순전한 허영심이다. 선의의 결단은 호사스러운 불모의 감정을

  우리에게 주지, 그 감정은 약한 사람들에겐 분명 모종의 매력을 자는 감정이다.(P175)

-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쾌락을 발명해 낼 수 있는 것만큼이나 쉽게 슬픔을 끝낼

  있다. 나는 나의 감정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 감정들을 이용하고 즐기고, 또 그것들을

  지배하고 싶다.(P188)

- 감정을 되풀이해서 느끼는 건 감상주의자들 뿐이다.(P190)

- 관능은 길들이거나 죽여할 대상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향한 섬세한 본능을 지배적인 특징으로

  갖는 새로운 영성의 요소가 되어야 한다.(P221)

- 최소한 문명사회라는 곳은 부유하며 동시에 매력적인 사람들을 향한 추문을 결코 믿지 않으려

  한다.(P238)

- 인간이란 수많은 삶과 수많은 감각, 복잡한 여러 개의 형태를 가진 존재, 그 안에 여러 기이한

  생각과 열정의 유산을 지니고 있으며, 그 육체부터가 죽음이 거느리는 괴물 같은 질병의 오점과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존재였다.(P239)

- 여자들은 승산이 있을 때 운을 시험하고 남자들은 승산이 없는데도 모험을 한다.(P294)

- 관능을 수단으로 영혼을 치유하고 영혼을 수단으로 관능을 치유한다.(P303)

- 심리학자들은 죄를 향한, 아니 세상이 죄라 부르는 것을 향한 열정이 인간의 본성을 완전히

  장악하여 육체의 모든 신경섬유와 뇌수의 모든 세포가 끔찍한 충동에 지배될 때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순간에 인간은 의지의 자유를 잃는다. 인간은 마치 기계가 그러듯 저절로 무서운

  종말은 향해 움직여 간다. 선택의 자유는 박탈당하고 양심은 살해되거나, 살아있다면 반항에

  매혹을, 불복종에 황홀한 매력을 주기 위해 살아 있을 뿐이다. 신학자들이 지치지도 않고

  우리에게 상기시켰듯이 모든 죄악은 불복종의 죄악이다. 복종하지 않는 도도한 정신, 악의

  아침 별이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그것은 반항을 위한 추락이었다.(P312)

- 늙은 사람의 비극은 늙었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실은 늙었음에도 여전히 젊다는 데 있다.

                                                                                                           (P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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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 권유도 5

 

나는 본 작품을 두 번에 걸쳐 숙독했음에도 아직도 작가의 저작의도 내지는 작품이 주고자

핵심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 작품을 읽은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올라온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내가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해 생고생하며 찾아보았으나 흡족할만한 답을 찾지 못했다 -

 

역자의 후기를 읽어보면

오늘의 인간은 사랑을 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소위 사랑한다고 함은 자신을 속이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으로서 자신의 생각에 대한 배반이거나 아니면 실제에 대한

 배반이라고 본다. 이 같은 비정상적인 특이한 사랑의 이야기를 작가는 더없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되도록 형상화했다

소설이란 작가의 자백이 아니라 함정이 되어버린 이 세상에서 인간의 삶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추구하는 것

작품 속 주인공의 한 사람인 테레사의 코드는 육체‘, ’영혼‘, ’현기증‘, ’나약‘, ’전원시‘, 낙원이며,

 ’토마스의 것은 가벼움‘, ’무거움그리고 프란츠사비나의 것은 여자‘, 성실‘, ’배반‘, ’음악‘,

 ’어두움‘, ’‘, ’행진‘. ’아름다움‘. ’고향‘, ’공동묘지‘, ’강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이 너무 난해하다는 생각 속에 역자의 소회를 먼저 읽고 작품을 접하고 있지만 솔직히 내게

는 너무 벅찬 내용과 주제가 아닌가 생각하며 역자가 기록한 내용도 진정 내 맘에 조금도 들지

않는다.

어찌되었던 간에 두 번에 걸친 작품의 숙독 속에서 특정 부분을 갖고 전체를 아우르듯이 마치

작품 전체를 이해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으나 작품을 통해 내가 분명하게 느낀 것은 작품

속 주인공들이 나누고 있는 사랑의 행태, 사랑을 마주하는 그들의 의식 그리고 그에 수반되어

벌어지는 주인공들의 사랑과 섹스와 관련된 그들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또 다른 나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작품을 쉽게 놓지 못 하였다.

- 나의 이제까지 삶은 섹스에 있어서만큼은 주인공들과 유사하였음을 고백한다 -

 

작품은 인간의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주인공 4(토마스, 테레사, 프란츠, 사비나)을 통해 보여

지고 있는 사랑과 부부(연인)관계 그리고 섹스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과 무기력감을 이겨보려는

나약하기 이를데없는 인간의 내면적 모습과 함께 러시아의 체코 침공과 전쟁 부상자들을 돌보기

위해 사선을 넘는 의사들, 자신들이 키우는 애완견(카레닌)의 죽음 앞에 한없이 나약할 수 밖애

없는 무기력한 외형적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 작품에서의 애완견은 단순한 반려견 이상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후반부에 나의 의견을 제시해 보았다 -

 

내가 지난 1998년에 본 작품을 접했을 당시 기록해 두었던 독후감을 읽어보니 너무도 작품을

단선적으로만 이해했었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였는데, 시간도 흘렀고 삶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과 사랑과 섹스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도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에 새로운 각도에서

작품을 바라보려 노력하였으나 역시 사고의 폭이 좁고 깊이 있는 사색이 부족한 나로서는 당시

작품을 읽고 느꼈고 받아들였던 당시의 사고 연장선에서 오늘도 본 작품을 해석하고 이해할 수

밖에 없어 한계를 크게 느끼고 있다.

 

나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작품 제목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제목에서 언급되고 있는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먼저 생각해 보면,

살아있는 생명체들, 여기서는 작품의 주인공들이면서 생명체들인 이들이 자신의 지속적

으로 영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조건혹은 환경을 필요로 할 것이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 우선 물질적인 것만 들어보면

예를 들어 물, 바람, 공기, 소주, , 휴대폰, 생선, , 아이스크림 등등등(예가 너무 치졸함)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 옛날(?) 달 착륙선이 달에 갔을 때, ’달에 토끼가 정말로 살고 있을까?‘를 비롯한 여러 질문들

물이 존재할까?‘, ’공기가 존재할까?‘ 등과 같은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회자되었던 적이

있었다.

이 말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떤 단어든 생명과 연관된 단어를 지칭할 경우에는 대개 존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생명과 연관성이 떨어지거나,

생명 유지에 큰 연관성이 없을 경우, ’아이스크림같이 있어도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물이나 물건에 대해서는 존재의 의미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단어인 있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의미는 생명이 해당 사물에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기본으로 깔고

사용하거나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작품 제목에 사용된 단어인 존재는 단순히 ()‘, ’()‘를 이야기하기 위한 단순한

단어가 아닌 생명과 연관된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라고 보는 게 올바른 해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에게 있어 생명은 다른 의미로 해석해 본다면 곧 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여기서 강조되는 단어인 생명 = 이란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이것은 '살아있음

염두에 둔 단어로 보는 관점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존재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맞는 것일까?

최근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화성연쇄 살인사건의 주범 이 모씨, 희대의 연쇄 살인마 유 모씨

등에게도 생명의 귀중함이 녹아 있는 존재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평가를

붙이려는 판단이 맞는 해석일까를 생각해 본다.

그들이 지닌 생명의 가치는 그 누가 뭐라해도 인간이기에 귀중하고 소중한 것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겠지만 그들이 세상을 향해 반인류적 행위를 저지른 이상 그들의 고귀한 존재적 가치는

이제 더 이상 존중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욕심 혹은 야욕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존엄한 가치를 무참히 짓밟은 그들은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데 자신이 어떻게 타인으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적 가치가 소중한만큼 타인의 존재적 가치도 그에 상응하는 대응을 받아야 함에도

그들은 그러하지를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존재적 가치는 사회로부터 격리되었고 제대로 평가

받을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가혹할지 모르겠지만 심하게 이야기해서 그들은 존재라는 단어를 적용하기가 정말 어려운, 다시 말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무가치한 존재들이라 이야기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존엄적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또 죄는 미워해도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그들을 인간의 존재적 가치가 존재하는 삶이라는 논리로 그들의 편에 서서 이야기를 한다면 그들이 자신들의 반인류적 행동 이전까지는 그럴수 있을지는 몰라도, 참혹한 행위를 저지르고 난 뒤에 그들을 이전의 그들과 동일한 선상에서 평가를 한다면 이세상은 아마도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까지도 그런 인간의 부류로 평가해 버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따라서 생명체이면서 존재라는 단어가 적절히 사용되기 위해서는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타인에

대한 존중과 함께 삶과 생명을 제대로 존중하는 인간이어야만 존재라는 단어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어느 원로 정객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지만 나는 위와 같은 맥락에서

국회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별로 없다. ’국회의원이, 국회가 있다라는 말은 자주 쓴다.  

 

그렇다면 여기서 '참을 수 없다'라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

순탄하지 못하고 기대했던 것을 이탈한 것에 대한 반감으로 나는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제목 전체적인 의미는,

'일탈된 현실적인 생활의 단조로움을 깨버리려 하는 생활 속의 가치 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작품을 분석하였다.(지랄이고 잘난체 하고 있다)

 

어찌 되었던 나는 제목으로부터 얻은 결론은

이탈된 가치관을 이 세상 '마지막 낙원'이라는 '가정',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인 '부부관계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으나 너무나 존재들이 가벼워 제대로 찾지 못하고 헤매다 삶을 마감한 작품이라 평하고 싶다.

 

무의미한 사랑은 어떠한 가치도 찾을 수 없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좀 철학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사랑'을 매개로 맺어진 남녀 관계, 특히 부부만이 진실된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고 영위할 수 있다는 주제를 강조한 작품이었다고 여겨진다.

 

내가 위와 같은 결론에 다다른 이유는,

마지막 에피소드에 소개되고 있는 부부 사이의 핵심 매개체로 등장하는 애완견 외국의 경우

애완견이나 애완묘를 가족의 구성원으로 생각하지 별도의 객체로 평가하지 않는 게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인 점을 감안 했을 때 - 을 통해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하려고 하는 의도를 나름대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개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로 이해해 단순한 애완견이라는 이미지로 국한시켜 이해하지 말고 개가 속한 가정에 던져주는 본질적 특성 즉, 화목한 가정의 상징으로 개로 이해해 본다면 나의

이야기는 쉽게 이해될 것이다.

애완견은 죽어가는 모습을 그린 이유는 작품의 주인공 토마스가 자신의 사랑을 찾아 본부인을 버리고 떠나고 또 다른 주인공인 테레사의 어머니 역시 그러한 전철을 밟는 모습에 대비하여 징계적 의미로 사랑과 건전한 가정의 상징인 애완견을 인류의 가장 큰 불안요소 중 하나인 ''에 걸려 죽어가게 함으로써 가정과 사랑의 존재적 가치를 크게 일깨우려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형적 가정의 가벼움, 정도(正道)에서 이탈된 사실과 사랑에 대한 삐뚤어진 사고를 어떤 형식으로든 합리화를 통해 정당화하려는 치졸한 인간들의

저급한 사랑의 가벼움에 대해 경종을 울리려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싶다.

- 나의 이런 판단이 맞는지 모르겠다.....하여간 힘들게 읽은 작품이다...머리가 나빠서 -

 

작품에서 언급된 읽을 가치가 있는 주요 문장들

 

- 가장 무거운 무게는 동시에 가장 집약적인 삶의 충족 이미지다. 무게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더 땅에 가깝다.(P 11)

- 스케치는 언제나 어떤 것에 대한 초안, 어떤 그림의 준비인 데 반해 우리들 삶의 스케치는

  무()에 대한 스케치로서 그림 없는 초안이기 때문이다.(P 15)

- 상대의 삶과 자유에 대해 요구를 하지 않는 비감상적 관계에서만 두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

                                                                                                              (P 20)

- 존재의 달콤한 가벼움이 미래의 심원에서 자기에게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P 43)

- 무거움, 필연성, 가치는 서로 긴밀히 연관된 세 개념이다.(P 45)

- 책은 그녀에게 지난 세기의 멋쟁이들의 근사한 지팡이와 같은 것이었다.(P 63)

- 사랑이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자면 처음 순간부터 우연들이 사랑 위에 내려앉아 있어야 한다.

                                                                                                             (P 65)

- 대학 공부를 한 사람과 독한한 사람을 구분짓는 것은 풍부한 학식이 아니라 생활력과

  자신감의 차이다.(P 71)

- 꿈은 어떤(아마도 암호로 된) 보고 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한 미학적인 적극성을 뜻하는

  상상의 유희다. 그리고 이 유희는 그 자체 하나의 가치다.

  , 발생하지 아니한 것을 꿈꾸는 것이 인간의 깊은 욕구들에 속한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P 75)

- 현기증이란 허약을 통한 도취라고도 말할 수 있다.(P 96)

- ’배반은 대열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배반은 대열에서 이탈하여 미지를 향해 출발

  하는 것을 의미한다.(P113)

- 범죄자 정권(공산주의)들은 범죄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지상천국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을 찾았다고 확신하는 광신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P212)

- 정치적인 직업을 갖겠다고 결정하는 사람은 대중을 자발적으로 자신의 법관으로 삼는다.(P220)

- 외과 의술은 의사 직업의 근본적 명령을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이 서로 접하는 극단적

  한계에 이르기까지 수행했다.(P234)

- 여성을 쫒아 다니며 사냥하는 남자들은 언제나 동일한 꿈을 찾는다

  다른 카테고리의 남자들은 객관적인 여자 세계의 무한한 다양성을 지배하려는 욕구에 의해

  움직인다.(P242)

- 사랑은 메타포와 더불어 시작한다. 달리 말하면 사랑은 어떤 여자가 그녀의 첫마디로 우리들의

  시적 기억 속에 자신을 아로새기는 순간 싹튼다.(P253)

- 자기가 한 일을 모르는 사람을 벌한다는 것은 야만적 행동이냐?(P265)-오이디푸스

- 역사란 개별적인 인간의 삶과 똑같이 가벼운 존재다. 그것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휘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P271)

- 하나님은 인류의 범죄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똥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인간을 창조한 분이 진다.(P298)

- 낙원에는 관능적 쾌락은 존재했으나 흥분은 존재하지 않았다.(P299)

- ’키취란 인간 존재에서 본질적으로 수락할 수 없는 것은 모두 그것의 시야에서

  제외시킨다.(P301) 키취는 모든 정치가, 모든 정당, 모든 정치운동의 미학적 이상이다.(P305)

- 키취의 정체성은 정치전략을 통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고 이미지, 메타포, 말의 선택을 통해

  규정된다.(P316)

- 사람들이 우리를 망각하기 전에 우리는 키취로 바뀐다. 키취는 존재와 망각 간에 갈아타는

  정거장이다.(P335)

- 참된 인간적 친절이 절대적인 순수성과 자유를 지니고 나타날 수 있는 것은 오직 어떠한

  힘도 갖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뿐이다.(P350)

-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맴돌지 않고 직선으로 진행된다. 이것이 왜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가

  하는 이유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반복을 갈구하는 소망이기 때문이다.(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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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열린책들 세계문학 9
막심 고리키 지음, 최윤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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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3

 

-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이들에게 다가설 시간이 없으셔서 어머니를 창조하셨다.

- 세상에 가장 맛있는 음식의 숫자와 어머니 숫자는 동일하다.

- 열 자식은 한 어머니를 봉양하기 어렵지만 한 어머니는 열 자식을 거두어 주신다.

 

옛날에 욕심많은 아들이 있었다.

변변한 실력도 능력도 없는 녀석이 매일 무위도식하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느날부터

영생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래서 매일밤 뒷산 동굴에 제단을 만들어 놓고 자신의 영생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런 기도가 통했던지 꿈 속에 한 도사가 나타나 영생을 바란다면 인간의 살아

있는 심장, 그것도 자신의 모친의 심장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아들은 영생을 위해 어머니 심장을 바칠 것을 작정하고 으슥한 밤에 모친의

살아있는 심장을 꺼내어 밤 길을 달려 제단으로 뛰어갔다. 밤 길이고 달도 없는 밤이다 보니

너무나 급하게 뛰어가다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데 자신이 품에 안고 뛰던 보자기에 고이

싸두었던 어머니의 심장을 땅에 떨어뜨리고 만다.

이때 그 어머니의 심장이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들아 다친 데는 없냐, 조심하지 않고서...밤 길이 험하니 조심히 걷도록 하여라

모 연예인이 한 때의 잘못으로 도박에 전 재산을 탕진해 해외로 도망가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도박의 그늘에서 벗어난 그가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자신이 큰 돈을 빚지고 해외로 도망가 잠적해 있던 어느날 모친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다른 이야기는 없으셨고 살아 있으면 됐다. 힘내라는 말씀만

하셨다고 한다.

 

7살 먹은 아들 하나를 둔 어느 과부가 5살 먹은 아들 하나를 둔 홀아비와 재혼을 한다.

졸지에 과부는 아들만 둘을 둔 엄마가 된다. 두 아이 모두 잘 건사해 주어 튼튼하게 자랐으나

이상하게도 엄마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이 데리고 온 아들은 통통히 살이 오르는데 반해 남자가 기르던 아들은 이상하게 하루가 다르게 날로 여위어 가는 것이었다.

이를 수상히 여긴 동네 사람들이 여인을 향하여 낮에는 남자의 아이만 살갑게 챙기는 척하는

것이며 밤이 되면 아마도 자신이 데리고 온 아이만 살갑게 챙길 것이라고 연일 욕을 하는

것이었다.

급기야 그 여인을 동네에서 쫒아내기로 작정한 마을 사람들은 남자가 다른 먼 지역으로 장사를

떠나 여인과 아들 둘만 남게 되자 확실한 증거를 잡기 위해 그 집을 감시하기 위한 염탐꾼을

조직해 그 여인의 행동을 감시하기에 이른다.

그 날 저녁 밥때가 되어 밥 먹이는 것을 보니 자신이 낳지 않은 남자의 아들은 새롭게 한 따뜻한

밥을 비롯한 여러 맛있는 음식을 살뜰히 챙겨주는 대신 자신이 낳은 아들은 남자의 아이보다

훨씬 못 한 음식으로 차려주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예상이 빗나가자 동네 염탐꾼들은 아마도 잠을 잘 때 남자의 아이를 구박할 것이라는 생각에 깊은 밤까지 그 집을 엿보게 된다. 늦은 시간이 되어 세 모자가 자리를 깔고 자기

시작했는데, 남자가 낳은 아들은 자신의 품에 안고 잠이 드는 것이었고, 자신이 낳은 아들은

추운 밤 한데에 자리를 펴게 하고 잠을 청하는 모습을 본 것이었다.

어스름한 새벽, 남자의 아들을 구박한다는 증거를 포착하지 못한 동네 염탐꾼들은 남자의 아이가

마르는 이유와 여자의 아들이 토실토실 살찌는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고 여인이 잠든 집을 나서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여인의 방을 엿보게 되었다.

그 순간 동네 염탐조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잠을 자던 아이들 어머니의 몸에서 어떤 밝은 기운의 빛이 나와 한데에서 잠을 자고있던 여자가

낳은 아들을 포근히 감싸는 광경이었던 것이었다.

 

솔직히 작품은 위와 같은 감동이나 가슴에 와 닿는 내용의 이야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노동자들의 몸부림에 대한 이야기로 어느 노동자

(아들)가 사회주의 운동을 펼치다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평생 남편의 학대와 홀대를 여인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는 어느 여인이 아들이 감옥에 갇히자 아들을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방향을 찾으면서 어머니 자신도 깨어간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 과거같았으면 우리나라 진보주의 운동의 교재로 활용하기에 아주 적합한 내용이다 -

하지만 내가 그런 작품을 읽고 위와 같은 이야기로 작품의 내용을 대변하는 이유는 작품이 던져

주고 있는 의미와 주제가 나의 이야기와 동일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 어머니의 사랑, 희생, 봉사 정신은 시대와 사상 그리고 환경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결코

가볍게 평가되거나 그 참 의미가 훼손되어서는 안 될 가치라 생각하는 바이다.

이제는 불러도 대답이 없으신 나의 모친이시지만 또 사무치게 보고 싶은 어머니이지만 거울

속에 비춰지는 나의 모습 속에 생전의 어머니 모습으로 위안 받고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해 주시던 그리운 음식들이 생각날 때마다 보고 싶고, 그립고 또 목이

메일정도로 만나고 싶고 어릿광도 부리고 싶지만 이제는 다 부질없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기에

그저 답답할 뿐이지만 어쩌겠는가 오늘을 열심히 사는 수 밖에.

나는 모친이 떠나시고 부친과 합장을 해 드리고 온 날 스스로 다짐했다.            

그 어떤 경우가 생겨도 모친을 그리워하는 대신 그 시간에 더욱 더 열심히 살겠다고.

30여 년 전 아버님을 산에 모셨던 어느 공원 묘지에서 우연히 술에 취한 청년을 만났는데 그의 얼굴은 취한 상태였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거리는 상태였다.

그 청년은 울먹이는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모친 산소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하면서

어머니 생전에 불효를 너무 많이 해 용서를 구하는 마음에 매일 모친 산소를 찾는다

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그때 그 모습을 보시던 나의 모친께서 짠한 마음에 그 청년을

다독이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모습이 저 청년의 모친께서 살아계실 적에 그리던 아들에게 바라던

진정한 모습이었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때 난 다짐했다.

그런 슬픔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슬픔을 극복하고 뭔가 새롭게 그리고 힘차게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마도 그의 모친이 그리던 아들의 모습일 것이라고 말이다.

그 다짐 이후 나는 모친이 살아 계실 적에 자식으로서 최선을 다해 모셨고 열심히 모친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 누구보다 시간을 많이 가지려 노력했고 가졌다고 생각한다.

- 모친 생전에 나들이 나서던 길 어느 길목에서 마주했던 찔레꽃을 보시며 모친께서는 내게 

  "애비야, 이게 찔레꽃이라는 게다. 찔레꽃이 내 어릴 적 동네 입구에도 이렇게 피었었다"라며 

   해맑게 웃으시던 모습이 찔레꽃을 볼 때마다 기억나고는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찔레꽃 

   다발을 마주하게 되는 곳에서는 장소에 상관없이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더욱 짙어진다 -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모친을 잃은 슬픔이야 그 누구와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지만

그 슬픔을, 그리움을, 모친에 대한 애틋함을 가슴에 담아두고 오늘을 열심히 살고 있다.

분명 나도 언젠가는 떠날 것이다.

그때 어머니를 만나게 되면 어머니 당신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았었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분발하고 있다.

 

작품 속 아들도 사회주의 운동으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였지만 슬픔과 우울해하지 않고 나

열심히 감옥 생활을 하고 있었고, 어머니 역시 일상생활을 열심히 영위하고 있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나는 작품을 통해 통속적인 어머니의 사랑을, 아들에 대한 진한 사랑을 이야기하기 보다

어머니를 향한 진정한 그리움의 치유방식과 이를 어떻게 승화시켜 나가느냐에 촛점을 맞춰

작품의 소회를 정리해 보았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립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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