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열린책들 세계문학 9
막심 고리키 지음, 최윤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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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3

 

-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이들에게 다가설 시간이 없으셔서 어머니를 창조하셨다.

- 세상에 가장 맛있는 음식의 숫자와 어머니 숫자는 동일하다.

- 열 자식은 한 어머니를 봉양하기 어렵지만 한 어머니는 열 자식을 거두어 주신다.

 

옛날에 욕심많은 아들이 있었다.

변변한 실력도 능력도 없는 녀석이 매일 무위도식하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느날부터

영생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래서 매일밤 뒷산 동굴에 제단을 만들어 놓고 자신의 영생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런 기도가 통했던지 꿈 속에 한 도사가 나타나 영생을 바란다면 인간의 살아

있는 심장, 그것도 자신의 모친의 심장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아들은 영생을 위해 어머니 심장을 바칠 것을 작정하고 으슥한 밤에 모친의

살아있는 심장을 꺼내어 밤 길을 달려 제단으로 뛰어갔다. 밤 길이고 달도 없는 밤이다 보니

너무나 급하게 뛰어가다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데 자신이 품에 안고 뛰던 보자기에 고이

싸두었던 어머니의 심장을 땅에 떨어뜨리고 만다.

이때 그 어머니의 심장이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들아 다친 데는 없냐, 조심하지 않고서...밤 길이 험하니 조심히 걷도록 하여라

모 연예인이 한 때의 잘못으로 도박에 전 재산을 탕진해 해외로 도망가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도박의 그늘에서 벗어난 그가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자신이 큰 돈을 빚지고 해외로 도망가 잠적해 있던 어느날 모친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다른 이야기는 없으셨고 살아 있으면 됐다. 힘내라는 말씀만

하셨다고 한다.

 

7살 먹은 아들 하나를 둔 어느 과부가 5살 먹은 아들 하나를 둔 홀아비와 재혼을 한다.

졸지에 과부는 아들만 둘을 둔 엄마가 된다. 두 아이 모두 잘 건사해 주어 튼튼하게 자랐으나

이상하게도 엄마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이 데리고 온 아들은 통통히 살이 오르는데 반해 남자가 기르던 아들은 이상하게 하루가 다르게 날로 여위어 가는 것이었다.

이를 수상히 여긴 동네 사람들이 여인을 향하여 낮에는 남자의 아이만 살갑게 챙기는 척하는

것이며 밤이 되면 아마도 자신이 데리고 온 아이만 살갑게 챙길 것이라고 연일 욕을 하는

것이었다.

급기야 그 여인을 동네에서 쫒아내기로 작정한 마을 사람들은 남자가 다른 먼 지역으로 장사를

떠나 여인과 아들 둘만 남게 되자 확실한 증거를 잡기 위해 그 집을 감시하기 위한 염탐꾼을

조직해 그 여인의 행동을 감시하기에 이른다.

그 날 저녁 밥때가 되어 밥 먹이는 것을 보니 자신이 낳지 않은 남자의 아들은 새롭게 한 따뜻한

밥을 비롯한 여러 맛있는 음식을 살뜰히 챙겨주는 대신 자신이 낳은 아들은 남자의 아이보다

훨씬 못 한 음식으로 차려주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예상이 빗나가자 동네 염탐꾼들은 아마도 잠을 잘 때 남자의 아이를 구박할 것이라는 생각에 깊은 밤까지 그 집을 엿보게 된다. 늦은 시간이 되어 세 모자가 자리를 깔고 자기

시작했는데, 남자가 낳은 아들은 자신의 품에 안고 잠이 드는 것이었고, 자신이 낳은 아들은

추운 밤 한데에 자리를 펴게 하고 잠을 청하는 모습을 본 것이었다.

어스름한 새벽, 남자의 아들을 구박한다는 증거를 포착하지 못한 동네 염탐꾼들은 남자의 아이가

마르는 이유와 여자의 아들이 토실토실 살찌는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고 여인이 잠든 집을 나서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여인의 방을 엿보게 되었다.

그 순간 동네 염탐조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잠을 자던 아이들 어머니의 몸에서 어떤 밝은 기운의 빛이 나와 한데에서 잠을 자고있던 여자가

낳은 아들을 포근히 감싸는 광경이었던 것이었다.

 

솔직히 작품은 위와 같은 감동이나 가슴에 와 닿는 내용의 이야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노동자들의 몸부림에 대한 이야기로 어느 노동자

(아들)가 사회주의 운동을 펼치다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평생 남편의 학대와 홀대를 여인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는 어느 여인이 아들이 감옥에 갇히자 아들을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방향을 찾으면서 어머니 자신도 깨어간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 과거같았으면 우리나라 진보주의 운동의 교재로 활용하기에 아주 적합한 내용이다 -

하지만 내가 그런 작품을 읽고 위와 같은 이야기로 작품의 내용을 대변하는 이유는 작품이 던져

주고 있는 의미와 주제가 나의 이야기와 동일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 어머니의 사랑, 희생, 봉사 정신은 시대와 사상 그리고 환경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결코

가볍게 평가되거나 그 참 의미가 훼손되어서는 안 될 가치라 생각하는 바이다.

이제는 불러도 대답이 없으신 나의 모친이시지만 또 사무치게 보고 싶은 어머니이지만 거울

속에 비춰지는 나의 모습 속에 생전의 어머니 모습으로 위안 받고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해 주시던 그리운 음식들이 생각날 때마다 보고 싶고, 그립고 또 목이

메일정도로 만나고 싶고 어릿광도 부리고 싶지만 이제는 다 부질없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기에

그저 답답할 뿐이지만 어쩌겠는가 오늘을 열심히 사는 수 밖에.

나는 모친이 떠나시고 부친과 합장을 해 드리고 온 날 스스로 다짐했다.            

그 어떤 경우가 생겨도 모친을 그리워하는 대신 그 시간에 더욱 더 열심히 살겠다고.

30여 년 전 아버님을 산에 모셨던 어느 공원 묘지에서 우연히 술에 취한 청년을 만났는데 그의 얼굴은 취한 상태였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거리는 상태였다.

그 청년은 울먹이는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모친 산소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하면서

어머니 생전에 불효를 너무 많이 해 용서를 구하는 마음에 매일 모친 산소를 찾는다

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그때 그 모습을 보시던 나의 모친께서 짠한 마음에 그 청년을

다독이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모습이 저 청년의 모친께서 살아계실 적에 그리던 아들에게 바라던

진정한 모습이었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때 난 다짐했다.

그런 슬픔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슬픔을 극복하고 뭔가 새롭게 그리고 힘차게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마도 그의 모친이 그리던 아들의 모습일 것이라고 말이다.

그 다짐 이후 나는 모친이 살아 계실 적에 자식으로서 최선을 다해 모셨고 열심히 모친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 누구보다 시간을 많이 가지려 노력했고 가졌다고 생각한다.

- 모친 생전에 나들이 나서던 길 어느 길목에서 마주했던 찔레꽃을 보시며 모친께서는 내게 

  "애비야, 이게 찔레꽃이라는 게다. 찔레꽃이 내 어릴 적 동네 입구에도 이렇게 피었었다"라며 

   해맑게 웃으시던 모습이 찔레꽃을 볼 때마다 기억나고는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찔레꽃 

   다발을 마주하게 되는 곳에서는 장소에 상관없이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더욱 짙어진다 -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모친을 잃은 슬픔이야 그 누구와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지만

그 슬픔을, 그리움을, 모친에 대한 애틋함을 가슴에 담아두고 오늘을 열심히 살고 있다.

분명 나도 언젠가는 떠날 것이다.

그때 어머니를 만나게 되면 어머니 당신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았었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분발하고 있다.

 

작품 속 아들도 사회주의 운동으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였지만 슬픔과 우울해하지 않고 나

열심히 감옥 생활을 하고 있었고, 어머니 역시 일상생활을 열심히 영위하고 있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나는 작품을 통해 통속적인 어머니의 사랑을, 아들에 대한 진한 사랑을 이야기하기 보다

어머니를 향한 진정한 그리움의 치유방식과 이를 어떻게 승화시켜 나가느냐에 촛점을 맞춰

작품의 소회를 정리해 보았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립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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