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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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 표지 사진을 띄워놓고 며칠째 멍 때리며 시간을 보냈고, 이제는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너무 좋아서 오히려 쓰기 머뭇거려진다고 하면 될까. 좋은 정도를 어떤 말로 어떻게 전달해야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전에 읽었던 황정은 작가의 『백의 그림자』 생각이 났다. 전체적인 인상으론 두 소설이 비슷하게 좋았는데, 순간순간 멈춰읽은 부분들을 생각하자면 내게는 『계속해보겠습니다』가 더 강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그리 강렬하지도 않고 담담한데 무언가 콕콕 찌르는듯한 인물의 대사 한 줄이 아로새겨지는 순간들. 그것을 생각하자면.

 

소라, 나나, 나기. 세 인물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담담한 어조지만 고백이라 할 수 있는 깊은 말들을 꺼내놓는다. 소라와 나나는 자매, 나기는 옆집에 살던 가족 같은 친구(오라버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함께 해온 사이로 굳이 무엇인가를 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며 살아간다.

 

- 그런데도 때때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순자의 전심전력보다는 애자의 전심전력이 완전한 것은 아닐까. 남몰래 이렇게 생각하고는 하는 나나는 아무래도, 애자와 가장 닮은 천성을 지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심전력, 그러므로 나나는 그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154쪽)

 

셋의 고백이 모두가 소중하지만, 서사로 따지자면 중심에 있는 것은 나나의 고백이다. 나나는 임신을 하고, 소라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눈치채고, 나기는 그들에게 생겨나는 자그만 균열들을 지켜보며 과거를 회상한다. 나나의 임신이 그리 큰 균열이 될만한 것이냐 묻는다면 그것이 혼전임신인 것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애자'라고 부르는 나나와 소라의 어머니와 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허무에 빠져버리고 아이들도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애자. 사랑이 넘치는 이름이었던 애자는 어느 순간부터 '아무래도 좋을 것'들로만 세상을 채우고, 마치 인생이 중단된 것처럼 살았었다.

 

"엄마가 되는 것은 애자가 되는 것"이라는 말을 꺼내던 소라와, "애자와 같은 전심전력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는 나나는 변해가기 시작한다. 태어나고 싶다고 열심히 꿈을 보내오는 뱃속의 아이를 통해 계속해보리라, 다짐한다.

 

그리 밝지 않은 세계에 놓여있는 그들이지만, 작가가 만들어낸 언어들이 처연한 그들의 세계를 덮고, 계속해서 살아가리라 다짐하는 모습은 우울함을 씻는다. 또한, 썩은 떡을 먹고 있던 아이들에게 "이 떡이 맛있으니 아줌마네 밥과 바꿔 먹자"며 끝까지 삼키던 나기의 엄마 순자, 아픔이 있지만 자매를 보듬는 나기의 모습은 '어쨌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큰 힘이 된다. 책의 제목이 '계속하겠습니다'가 아닌 '계속해보겠습니다'인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찮고 무의미해 보일지 모르지만 작은 시도와 희망이 담겨 있으므로. 멸종이 아니라 어쨌든 '살아가고' 있으므로.

 

 

12쪽,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살아가려면 세계를 그런 것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좋다고 애자는 말한다.

26쪽,
어, 할 새가 있었을까? 어, 할 새도 없었을까? 누구도 모르지, 그 빈틈없는 회전 사이에서 시간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흘렀는지도 몰라. 어쩌면 어, 만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긴 순간이었는지도 몰라. 어, 만으로는 부족해서 어어어어어 그렇게 한동안 이어지고도 부족할 만큼, 그건 긴 순간이었는지도 몰라. 길고 길어 누구의 생각보다도 긴, 이윽고 그가 그 틈을 다 통과했을 때 그건 더는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거야. 모습도 아닌거야.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그런 모습이 되고 만 거야. 그렇게 될 뿐. 인간은 그렇게 될 뿐.

104쪽,
사랑에 관해서라면 그 정도의 감정이 적당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윽고 괜찮아지는 정도. 헤어지더라도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느 한쪽이 불시에 사라지더라도 이윽고 괜찮아, 라고 할 수 있는 정도. 그 정도가 좋습니다.

119쪽,
집으로 모세씨를 불러들여 소라에게 소개한다는 것은 나나의 세계에서 가장 연한 부분을 모세씨와 만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나기 오라버니만이 접근하고 접촉할 수 있던 그 세계를, 금주씨의 죽음과 이미 상당히 죽어버린 애자와 뒤틀림이 담긴 세계를 열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나나의 내면에서 그 부분은 잠잠한 듯 보여도 끊임없이 떨고 진동하는 곳, 가장 민감한 비늘이 돋는 곳.

160쪽,
잊지 마. 내가 이렇게 아플 수 있으면 남도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거. 제대로 연결해서 생각해야 해. 그런데 이렇게 연결하는 것은 의외로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닐지도 몰라. 오히려 그런 것쯤 없는 셈으로 여기며 지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는 정도인지도 몰라. 그러니까 기억해두지 않으면 안돼. 안 그러면 잊어먹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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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D 2017-07-16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서 머뭇거리셨다는 말씀에 ‘아핫!‘했습니다.
전 왜그런지 너무 완벽하게 맘에들었던 책들은 리뷰를 거의 쓰지 못해요. 마치 제 못난 리뷰가 그 책의 감동을 축소시킬 것이 염려되서랄까요.^^ 머뭇거리신 리뷰 꼼꼼하게 잘 읽고 좋아요 누르고 갑니다^^ 잘 읽어용 :)

시읽는리니 2017-08-05 03:07   좋아요 0 | URL
공감해요. 그래서 더 어렵게 읽었고, 어렵게 쓴 리뷰에요. 좋은 마음을 제대로 전달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ㅎㅎㅎ 꼼꼼하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제님 :)
 
삶의 한가운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
루이제 린저 지음, 박찬일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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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쓴 소설에는, 그의 자전적 체험이 필히 들어갈 것이라 여긴다. 손톱만큼이든 넘칠 정도로 그득한 한 바가지의 경험이든 글쓴이의 삶과 삶에서 느낀 생각들과 어떤 연유에서 '무엇을 쓰리라 구상하는' 생각까지 자전적 요소라 볼 수 있다면, 소설과 글쓴이의 삶이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독자는 책을 통해 작가의 삶 일부를 받아들인다. 때로는 아주 작은 끄트머리를, 때로는 비스듬히 살짝 스치는 정도로 만난다. 그러나, 마치 삶 전체를 끌어다 놓은 것 같은 자전적 소설을 읽을 땐 왠지 조금 힘겨울 때가 있다. (나는 이런 이유로 헤세의 작품을 사랑하면서도, 읽을 땐 폭삭 늙는 느낌이다) 삶의 정중앙을 뚫는 소설의 방식 때문이다.


  바로, 이 소설이 그랬다. 표지에 수록된 작가 루이제 린저의 눈빛, 입꼬리, 자잘한 주름살은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풍겼고, '삶의 한가운데'라는 제목과 만난 첫인상은 무척이나 강렬했다. 글의 형식 또한 독특했다. 주인공 '니나'의 언니인 '마르그레트'가 오랜 세월을 거친 후에 만나 편지와 일기장을 읽는다. 일기장 속에는 평생에 걸쳐 '니나'를 사랑한 '슈타인'의 절절한 사랑이 담겨있지만, 작가는 그의 시선을 통해 '니나'라는 인물과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전한다. 독일을 넘어,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열광해마지않았던, 작가의 분신과도 같았던 인물. 그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때로는 냉정하며, 엄청난 고집과 객기를 부리는 성격이며, 자유를 갈망하며 세상의 부조리에 치를 떤다. 우연과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다. 실패도 여러 번 반복되고 나치에 맞서 싸우다 투옥되기도 하며, 여러 번 고통을 겪으며 자살을 기도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어떤 고생을 해도 얼굴엔 생기가 넘친다. 도대체 이 얼굴에 감도는 생기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대부분의 문학작품들이 그렇듯이, 『삶의 한가운데』 속 '니나'도 시대와 결부되지 않을 수 없다. 한차례 전쟁이 휩쓸고 간 세계, 사람들의 희망과 용기는 참담하게 말라붙었고 젊은이들도 허무주의에 빠져들었다. 온갖 좌절을 경험하면서도, 새로운 곳으로 떠나 "잘 살고 있다"라고 편지를 전해준 '니나'의 삶은 과연 신드롬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 자유를 갈망하고 체제에 굴복하지 않았던 모습은 (당시 독일 평단에선 작품을 미치광이로 표현했다고 한다), 맥없이 인생을 포기하려 했던 이들에게 더한 인상을 남겨주었을 것이다. 내게는 '니나'라는 캐릭터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만큼의 큰 인상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시종일관 날카롭거나 신경쇠약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그의 당당한 발언과 확고한 자의식에는 순간순간 멈칫하며 놀랍게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지 못한 나를 합리화하려는 속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에서 주인공인 '니나'라는 인물만 유독 강조된 감은 있으나, 소설 속 다양한 이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가 있다고 덧붙이고 싶다. 니나를 동경했던 '슈타인'의 마음, 니나의 전남편 '퍼시',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를 읽고 있는 평범하게 현실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마르그레트'의 모습. 중요한 것은 소설 속에서 다뤄진 다양한 인물의 삶이 작가가 가진 인생관과 대비되는 의미로 쓰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각각의 생이 있고, 우리는 그 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며 모든 것에 부딪혀봐야 한다는 작가의 인생관에 따르면, 어쩌면 니나에게 끈질기게 구애했던 '슈타인'의 삶도 그리 나쁜 삶은 아니었을지도.


"우리는 생의 의미를 알려고 했어요. 그래서는 안 되는 거죠. 만약 의미를 묻게 되면 그 의미는 결코 체험할 수 없게 돼요. 의미에 대해 묻지 않는 자만이 그 의미가 뭔지 알아요. (319쪽)"


  왜인지 모르겠지만, 양귀자의 소설 속 문장이 떠올랐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라는 말이. 고정된 인생의 진리는 없으며 스스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가야된다는 공통적 의미가 두 소설에 담겨 있다.

 

 



65쪽,
온갖 아름다움이란 것이 일시적이고 다만 얼마 동안 빌려온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 그리고 우리가 인간들 틈이나 나무와 극장과 신문 사이에 있으면서도 마치 차가운 달 표면에 앉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독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은 누구나 다 우울하지.



71쪽,
아주 낮게 니나는 덧붙였다. 여기에는 법칙이 있고, 저기에는 삶이 있다는 식은 정말 끔찍해. 우리가 하는 것은 반대인데, 우리가 삶을 극복하면 좀 더 높은 삶을 얻는다는 것이 사실일까?



77쪽,
자기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자아가 보여. 어느 것도 진정한 자아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수백 개의 자아를 다 합친 것이 진정한 자아인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게 미정이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사실은 이 여러 자아 가운데 하나의 자아만을, 미리 정해져 있는 특정한 하나의 자아만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지만.

100쪽,
나는 저기 서 있는 니나를 보았다. 창백했고 잠을 못 잔 얼굴이었다. 걱정 때문에 손질도 못한 얼굴, 절망적이고 침울한 얼굴이었다. 그렇지만 생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폭풍우에 의해 약간 손상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깊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바람을 안고 가는 배와 같았다. 이 배를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 배는 원하는 곳에 도착하거나, 아니면 어딘가 자기의 행운을 잡을 수 있는 새로운 대륙의 새로운 해안을 가게 되리라고 믿을 것이다. 니나의 절망이 진정에 와 닿고 나의 가슴을 후벼팔지라도 내가 이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이런 데 있는 것이 아닐지.



349쪽,
당신은 행복한가요? 그렇지 않아요. 행복이 무엇인지 당신은 전혀 몰라요. 그러나 나는 행복해요. 나는 당신이 나의 인생을 당신 인생처럼 만들려고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요. 당신의 인생은 마치 일요일을 망쳐버리는 재미없고 어려운 학교 숙제 같아요. 얼마든지 나를 부박하다고 생각하세요. 아마 삶에 대한 당신의 불안이 삶을 사랑하는 내 방식보다 더 부박할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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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독약 창비세계문학 28
엔도 슈사쿠 지음, 박유미 옮김 / 창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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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느 때와 같이 책을 고르다가, <깊은 강>이라는 작품을 발견하였다(물론 발견만 하고 아직 읽지는 못했다). 단조롭지만 큰 물결이 이는 듯한 책이었다. 작가의 이름은 '엔도 슈사쿠'라고 쓰여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톨릭 신앙에 영향을 받아 평생 동안 신과 구원, 선과 악에 대해 몰두했다는 일본의 대표 작가였다. 그리고 <깊은 강>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문학적 집합체와도 같은 작품이었다. 흥미가 일었으나, 작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첫 발돋움을 할 작품이 필요했다. <바다와 독약>은 이러한 점에서 가장 적합한 작품이었다.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실제 일본에서 행해진 '큐슈 대학 생체해부 사건'을 소재로 한다. 살아있는 미군 포로를 끔찍한 실험으로 '살해'한 실화를 토대로 하여, 동네 의원 '스구로'의 미묘한 행동과 모습을 지켜보는 화자의 서술, 그리고 과거 생체해부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액자식 구성으로 그렸다. 의문을 제기하는 도입부는 다소 평범하나, 본격적으로 작가의 문제를 드러내는 2장부터가 백미라 할 수 있다. 전쟁통 속에서도 권력싸움이 한창인 대학 병원 안에서 생체 해부 사건에 가담하게 되었던 세 사람의 입장이 차례대로 전개된다.

 

 작가는 생체 실험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기 보다는, 세 사람의 내면을 묘사함으로써 '죄의식'의 문제를 끈질기게 묻는 방법을 택한다. 실험 참가를 거절할 용기가 없어 평생 양심에 시달린 의사 '스구로'와, 비슷한 이유로 권력 싸움에 휘말린 간호사 '우에다'보다 더 흥미로운 인간은 '토다'라는 인물이다. 아마도 작가가 가장 공들여 만들었을, 죄의식이 부재한 인간. 그는 수기에서 이렇게 쓴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지금 가책을 느껴 이러한 경험을 쓰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예전의 작문 시간 때의 일이나 나비를 훔치고 그 벌을 야마구찌에게 덮어 씌운 일, 그리고 사촌과 간통을 저리는 일이나 미쯔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일을 추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추악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 무섭다는 건 좀 과장된 이야기이고 이상하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이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여러분도 역시 나처럼 한꺼풀을 벗기면 타인의 죽음이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한가. 약간의 나쁜 짓이라면 사회로부터 벌받지 않는 이상 별다른 가책이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면서 오늘까지 살아왔는가. 그리고 어느날 그런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진 적이 있는가." (136쪽)

 

  읽으면 읽을수록 소름이 끼치는듯한, 어쩌면 사회적 처벌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일본인 (또는 가해자들)의 모습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글이다. '모두가 죽어나가는 세상'이라고 체념하기엔 너무 큰 문제 상황 속에서 양심과 죄의식을 잃어버리고 무감각해져버린 인간은, 독약을 한껏 머금은 바다라고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끝으로, 나는 이 책을 최대한 이성적으로 읽어보려 노력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큐우슈우 대학 생체해부 사건'뿐만 아니라 '731부대'가 자행한 끔찍한 마루타 실험에 대하여 알고 있었기에, 그 실험의 대상자에 한국인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전범국가로서 일본이 벌인 참혹한 일들을 열거하기엔 이 공간으로는 부족하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부끄러운 치부를 가감없이 드러내며 인간의 존엄을 탐구했던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46쪽,
‘모두 죽어나가는 세상 아이가. 병원에서 죽지 않더라도 매일밤 공습으로 죽어가는 거야.‘ 스구로는 토다가 오늘 오후 화난 듯이 중얼거린 말을 떠올렸다. 회진이 끝난 뒤 공동 입원실에서는 한바탕 헛기침이 울려퍼지고 환자들이 박쥐처럼 침대를 기어서 오르내리고 있었다. 스구로는 만일 인간의 죽음에 냄새가 있다면 그건 분명 이 어두운 방의 악취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83쪽,
아무래도 좋다. 내가 해부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그 파르스름한 숯불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토다의 담배 냄새 때문이었는지도. 이것이든 저것이든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생각하지 말자. 잠이나 자자. 생각해본들 별도리도 없다. 나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세상인 것이다.

130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나는 자신을 양심이 마비된 남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내게 양심의 가책이란 지금까지 쓴 대로 타인의 눈이나 사회의 벌에 대한 공포일 뿐이었다. 물론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누구라도 한꺼풀만 벗기면 나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연의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해 벌을 받거나 사회의 비난을 받은 일은 없었다.


183쪽,
‘그럴까? 우린 영원히 지금과 마찬가지일까?‘
스구로는 혼자 옥상에 남아 어둠속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무언가를 찾고자 했다.
‘양떼구름 지날 때‘ ‘양떼구름 지날 때‘
그는 애써 그 시를 읊으려 했다.
‘뭉게구름 피어오를 때마다‘ ‘뭉게구름 피어오를 때마다‘
하지만 스구로는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입안이 메말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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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F/B1 일층, 지하 일층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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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물컹물컹한 자의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 나라 문학판에 작가 김중혁이 버티고 있음은 하나의 축복이다" 책 뒤편에 적힌 문학평론가(김윤식)의 찬사는 다소 불편한 감은 있지만, 왠지 마구 부정할 수는 없는 말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재미만 추구하면 시시하고, 너무 무겁기만 하면 부담스럽다. 그 중간을 타기가 무척 어려울 것 같은데 작가 김중혁의 소설들은 이 중간쯤을 교묘하고 재치 있게 머무르는 듯하다.

 

 직접 발을 딛고, 냄새를 맡고, 벽을 만져봐야만 알 수 있는 도시의 느낌이 있다. 이쪽 동네는 저쪽 동네와 다르고, 각 동네에 사는 사람의 성향들도 다르다. 오래전 다른 곳으로 이사를 와서 십 년 동안 거닐지 못했던 나의 옛날 동네는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못 보던 간판들이 생겼다. 벽에 풀이 자라고, 도로도 변했다. 어딘지 모르게 세련되고 발전된 것 같다는 느낌과 아직도 예전 그대로의 공기가 남아 있다는 느낌이 혼재했다. 아마도 그 공기 속에 내 어린 시절의 삶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도시의 골목 곳곳과, 그곳에 사는 제각기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김중혁의 소설들은 내가 거쳐간 도시의 풍경과 그 속의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한다. 어릴 적 동네 놀이터에 얽힌 믿거나 말거나 전설을 친구들과 속삭이던 모습을 추억하게 하는 ('냇가로 나와'), 도시의 변두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상상하거나 ('바질'), 미래의 좌절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과 어떤 부정적인 상황 ('유리의 도시')을 그리기도 한다. 독특한 상상력 속에서 작가의 섬세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도 있다. <1F/B1>은 수많은 건물들의 '사이'에 숨어 도시의 흐름을 관찰하고 돌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크라샤>는 마술이라는 소재를 통해 소멸과 기억에 대하여 이야기를 펼친다.

 

"내가 만들고 싶은 도시가 있었다. 모든 골목과 골목이 이어져있고, 미로와 대로의 구분이 모호하고,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또 다른 풍경이 이어지며, 자신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갈래길이 존재하는 도시를 만들고 싶었다. 도시의 외곽에는 바다가 있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다가 문득 코끝으로 비린내가 훅 끼치는 순간 파도가 자신에게 몰려드는 풍경을 사람들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32쪽, C1+y = :[8]:)

 

 수록된 일곱 편의 소설들이 모두 재미있었지만, 특별히 좋았던 단편은 책의 맨 앞에 위치해 '이런 소설을 보여줄게'라고 말하는 듯한 <C1+y = :[8]:>라는 작품이었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아이들의 거칠고 원초적인 낙서를 따라가다 보면, 도시 속의 작은 도시 같은 보드빈터가 등장한다. 왁자지껄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바퀴자국이 섞인 도시 속 가장 후미지고 눈에 띄지 않는 곳, 숨겨진 골목길을 따라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는 경험은 정글 속 못지않게 흥미롭다. 우리가 거닐지 못한 길, 가보지 못한 곳, 도시를 형성하는 작은 하나하나, 도시 속의 '사이'를 쫓는 작가의 섬세한 시선이 좋아서 그의 작품을 더 읽어보려 한다.

 

 

96쪽, 바질
좁은 골목을 걸어 경사가 작은 언덕을 올라가면 사방으로 또다른 골목길이 그물처럼 얽혀 있는 곳이었다. 박상훈은 하늘 위에서 골목들을 꼭 한 번 내려다보고 싶었다. 그물은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촘촘한지 보고 싶었다. 손가락으로 골목길을 따라 선을 그어보고 싶었다.

133쪽,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
모든 곡선은 직선이야.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돼.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안개가 더욱 짙어져 있었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시간은 충분했다. 오늘밤 안으로만, 아침이 되기 전까지만 모든 작업을 끝내면 됐다.

179쪽, 1F/B1
일층과 이층 사이, 이층과 삼층 사이, 삼층과 사층 사이… … 저는 그 표지판들을 볼 때마다 우리의 처지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특히 숫자와 숫자 사이에 있는 슬래시 기호(/)를 볼 때마다 우리의 처지가 딱 저렇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층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우리는 언제나 끼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곳도 저곳도 아닌, 그저 사이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273쪽, 크라샤
그러나 나는 분명히 안다. 소멸된 것들은 되살아날 수 없다. 그리고 찢어진 것들은 절대 다시 붙지 않는다. 나는 삶과 마술을 때때로 바꾸고 싶어진다. 화장지가 붙는 대신 어머니가 되살아나는 장면을, 스카프가 비둘기로 변하는 대신 돈으로 변하는 장면을, 꿈꾼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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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6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서은혜 옮김 / 민음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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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과 그리 친하지는 않지만, 주워들은 것은 많아 '아쿠타가와'라는 이름은 낯설지 않다. 일본 순수 문학을 창작하는 신인들에게 발판을 마련해주는 '아쿠타가와 상'이 바로 작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비참한 현실과 신경쇠약으로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작가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작품 해설을 보면 그가 죽기 전 남겼던 마지막 시구 이야기가 있는데, "자조, 콧물만 코끝에 살아남았네" (304쪽)라는 대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이 시구와 『라쇼몬』이라는 책의 전체적인 느낌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것 같았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란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수록된 열네 편의 소설들은 짧지만 정곡을 찌르고, 인간사의 비틀린 지점을 정확히 꿰뚫는다. 인간의 본성을 풍자하거나 ('코', '마죽'), 어떤 한 지점에서 몰려오는 불안 ('다네코의 우울', '꿈') 등을 그린다. 선과 악의 경계를 파헤치고 ('라쇼몬), 인생의 중요한 무언가를 제시하는 우화 ('거미줄', '두자춘')를 그리기도 한다. 가히 천재적이라 할만한 점은, 여섯 페이지 남짓한 짧은 단편에서부터 비교적 분량이 많은 단편까지 어느 하나 비슷한 이야기는 없으면서도, 무거운 주제를 희극과 비극,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해 다룬다는 것이다. (이 분위기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나와는 안 맞는 것인데도 중독될 지경이었다.)

 

이는 몇몇 작품에서 절정에 달하면서 절대 잊히지 않을 인상을 남겨주었다. 예술적 욕망과 충돌한 가장 비극적이고 참혹한 장면을 다룬 <지옥변>은 '예술의 이상향'을 꿈꾸었던 그의 실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또한 일본의 상상 속 동물들의 세상을 통해 염세적인 시선을 드러낸 <갓파>에는 그가 가장 궁지에 몰렸을 때에 집필한 것으로, 모든 것을 털어놓은 듯한 자조적인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일본 고전 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라쇼몬」 (구로사와 아키라, 1950)의 원작이 되기도 한 <덤불 속>이라는 작품은 새로운 형식과 '중유(中有:이승과 저승 사이, 49재)'를 떠도는 인간의 모습을 새로운 형식으로 다룬 것인데, 생동감 있는 영화로 보고 싶은 마음이 진해지는 작품이다.

 

"아뇨, 너무 우울해서 거꾸로 세상을 바라본 거예요. 그래봤자 마찬가지로군요." (259쪽, 갓파)
현실과 가장 가까운듯하면서도, 또 멀기도 한듯한 세계를 그려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인간의 내면과 부조리한 세계를 다뤄낸 (그리고 재밌기까지 한) 작품들 속에서 그 이름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25쪽, 마죽
물론 그는 그것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아니 그 자신조차 그것이, 자신의 평생에 걸친 일관된 욕망이라고는 뚜렷하게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실 바로 그것 때문에 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인간은 간혹 충족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욕망을 위해 일생을 바쳐 버리기도 한다. 그것을 어리석다고 비웃는 자는 필경, 인생에 대한 방관자에 불과할 것이다.

48쪽, 라쇼몬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든 하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릴 여유가 없다. 가리고 있다가는 담벼락 아래나 길바닥 위에서 굶어 죽을 뿐이다. 그리고 이 문 위로 실려 와 개처럼 버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뭐든지 가리지만 않는다면…… 하고 하인의 생각은 몇 번이나 똑같은 길을 오가던 끝에 마침내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않는다면‘이라는 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결국 ‘않는다면‘에 머무를 따름이었다.

89쪽, 엄마
도시코의 목소리에는 지금까지 없었던 격렬한 힘이 담겨 있었다. 사내는 와이셔츠 어깨와 조끼를, 이제는 가득 비치기 시작한 눈부신 햇살로 도금하면서 그 물음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무언가가 앞을 턱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159쪽, 지옥변
요시히데의 그 얼굴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우마차 쪽으로 달려가려던 그 사내는 불이 타오르는 것과 동시에 발을 멈추고 여전히 손을 내민 채 집어삼킬 듯한 눈초리로 차를 휘감은 화염을 빨려들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온몸에 불빛이 비쳐 주름투성이의 추한 얼굴은 수염 터럭까지 똑똑히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커다랗게 치켜뜬 눈이며, 찡그린 입술 언저리, 혹은 끊임없이 씰룩거리는 뺨 근육 등이 요시히데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오가고 있을 공포와 비통함과 경악을 역력하게 얼굴에 그려놓았습니다. 목이 잘리기 전의 도둑이라도, 아니면 시왕청에 끌려 나간 십억 오악 죄인이라도 그렇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186쪽, 두자춘
큰 부자가 되면 듣기 좋은 소리를 하다가도 가난해지면 아는 척도 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나 고마운 마음입니까? 얼마나 애틋한 결심인가요? 두 장춘은 노인이 타일렀던 것도 잊어버리고 엎어질 듯 그 곁으로 달려가더니 두 손으로 빈사 상태인 말의 목을 끌어안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어머니."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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