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아델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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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작가의 다른 소설 <달콤한 노래>를 읽고 받은 충격과 놀라움을 기억한다. 간결한 문체, 현실적인 스토리와 기가 막히게 어우러졌던 날카로운 장면들. 그때의 충격은 작가의 데뷔작인 <그녀, 아델>을 통해 되살아난다. 이 책에선 강렬하게 두드러지지 않고 은은한 느낌의 제목으로는 다 상상할 수가 없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원제가 <식인귀의 정원>이라 하면 어느 정도 예감할 수 있을까. 물론 ‘식인귀의 정원’은 소설의 내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제목이고, 살인이나 끔찍한 장면이 등장하진 않는다. 하지만 소설의 초반부터 독자는 어떤 불안과 충격, 곧 다가올 불안을 감지한다.

 

주인공 ‘아델’은 님포매니악, 색정증을 앓고 있다. 남편과 아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다른 남자들과 잠자리를 갖는다. 임신으로 망가진 몸, 의무감과 무감각으로 대하는 남편과의 관계, 육아 스트레스가 드러나지만, 불륜의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아델의 성생활은 단지 습관적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정도다. 본능과 충동에 이끌린다. 비이성적이며 갈수록 폭력적이고 불순한 상황에 자신을 내던진다. 마치 무언가를 빨아들이고 그것으로 인해 생명력을 얻는 것처럼 아델의 병적인 행동은 더욱 심해져만 가고 부부생활에도 균열이 인다. 그가 이러한 지경까지 오게 된 연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병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전제한다고 하더라도, 소설 속 아델의 모습이 편히 다가오진 않는다. 때로는 심히 불쾌한 장면이나 이해할 수 없는 불륜이 드러나니 도저히 참고 볼 수가 없을 정도다. 죄책감은 있을까, 하는 물음도 소용이 없으니 답답하다. “나에게 아무런 일도 아니었다"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아델의 모습에 어떠한 말을 하겠는가.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집어삼킨 그의 병은 화가 나면서도, 절망적이고 안타깝다. 그리고 아델을 끝까지 붙잡으려 하는 남편의 모습도 슬프기 그지없다.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는 아델의 행동에 면죄부를 부여하거나 어떤 누군가에게도 책임을 지우지 않고 그저 잔잔히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토록 당황스러운 이야기를 서정적이고 슬픔이 일 정도로 그리기도 한다. 다소 충격적이고 불쾌하기까지 한 소설이지만, 한편으로는 생각한다. 세상에 나온 수많은 문학들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던가. 텍스트 속에서까지 욕망을 짓누르고 감추고 소극적으로 대응해야만 하는 수많은 여성 캐릭터들을 떠올리면, 이런 캐릭터가 문학 속에 등장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여성의 삶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그려내는 작가의 후속작을 기대한다.

 

● 44쪽,
아델은 결혼한 것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이유로 아이를 낳았다. 세상에 귀속되어 타인들과 그 외 모든 것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면서 아델은 누구도 그녀로부터 제거할 수 없는 존중의 후광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그녀는 고통의 저녁에 몸을 숨기고, 방탕의 나날에 기댈 곳이 되어줄 피난처를 스스로 만들어나갔다.

● 126쪽,
강박이 그녀를 잡아먹는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거짓말을 구하는 그녀에게 삶은 그녀의 온 정신을 빼앗는 소모성 조직체일 뿐이다. 삶이 아델을 갉아먹는다. 거짓 출장을 만들어내고, 구실을 지어내고 호텔을 예약해야 한다. 괜찮은 호텔을 찾아내야 한다. 열 번씩이나 전화해 관리자의 확답을 받아내야 한다. "그럼요, 욕조가 있습니다. 아니요, 아주 조용한 방입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거짓말을 해야 한다, 그러나 설명을 늘어놓지 말아야 한다.



● 167쪽,
에로티시즘은 모든 걸 위장해주었다. 사물의 평범함, 덧없음을 에로티시즘이 가려주었다. 여고생의 오후에, 생일파티에서, 아델의 가슴을 곁눈질하던 노총각 삼촌이 빠지지 않고 참석하던 가족 모임에 탄력을 준 것도 에로티시즘이었다. 에로티시즘의 추구가 모든 종류의 규율과 체계를 소멸시켰다. 우정, 야망, 일상적인 계획, 모든 게 에로티시즘 앞에서 무너졌다.



● 293쪽,
아델, 그게 끝이 아니야. 아니야, 그렇게 끝나지 않아. 사랑은 인내일 뿐이야. 경건하고 열정적이며 폭군과도 같은 인내. 비이성적일 정도로 낙천적인 인내. 우리는 아직 끝난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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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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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이 책에 대한 극찬이 계속해서 눈에 띄었다. 스토너, 스토너, 스토너, 문학을 사랑한다는 이들이 감동을 받았다며 남긴 글들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때로는 그런 물결에 쉽사리 휩쓸리지 않으려고 갈등하면서도, 때로는 주체할 수없이 쉽사리 휩쓸리곤 한다. <스토너>는 전자였다. 왜인지 모르게 무겁고 진지할 것 같은 느낌이어서 나중을 기약하다가 이제야 읽었다. 생각지 못한 심플한 줄거리와 담백한 문체에 조금 놀랐다. 초반에는 계속 갸우뚱한 채로 읽어나갔다.

 

책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정말 특별할 것이 없다. 큰 줄기만 보면 가업을 이어 대학에서 농업을 공부하려던 ‘윌리엄 스토너’가 대학에 가게 되고, 문학을 사랑하게 되어 영문학 교수가 되어 일생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소설의 굴곡을 그려볼 만한 격한 갈등도, 비애도 없다. 인생을 뒤흔들 만한 선택이나 기쁨도 잔잔히 이루어진다. 곳곳에 작은 성공과 실패가 존재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어딘가에 가까이 있을 듯한 사람의 일생인 것 같다. 그런데 왜 스토너의 이름이 도통 잊히지 않을까. 길게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에선 도통 헤어 나올 수가 없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인생의 마지막 종착점에서 스스로에게 줄기차게 되묻는 이 물음은, 그리고 이어지는 회고의 장면들은 가히 장엄하기까지 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악착같이, 앞만 보고 바쁘게 달려가는가. 얼마나 찬란한 인생을 만들려고 온갖 허무한 것들을 지니고 있는가. <스토너>의 담백한 물음 앞에 온갖 거창한 말들을 붙여가며 우리는 지나온 짧은 인생과 앞으로 거쳐갈 인생의 모습을 대입해본다. 그리곤 알게 된다. 누군가에겐 성공이거나 누군가에게 실패로 보일 ‘스토너’의 인생처럼, 우리 인생도 다를 바 없음을. 무언가에 몰두하고 집착하고, 작은 목표들을 이루고 때로는 이루지 못하여도 그것 또한 인생인 것을.

 

그런데 이렇게 소설을 풀어보고 나니 조금은 걸리는 부분이 있다. 작가가 목표한 대로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잘 쓰인 소설이라 믿지만 함정도 존재한다. 스토너는 불륜을 자행하고, 소설 속 그의 시선 속에서 아내는 비정상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불륜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된다. (마치 <제인 에어>의 미치광이 ‘버사’ 부인을 떠올리게 했다.) 위에서 풀어낸 소설의 메시지에 따른다면, 그의 인생이 다수의 평범한 인생을 대변하는 데 있어 부정한 행동이 아무것도 아닌 일 또는 어쩔 수 없던 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조금 조심스럽다. 불륜보다 심한 죄를 지은 사람의 인생도, 삶에 치열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부는 실패한 인생’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조용히 머물러지게 되는 것인가 하는 우려 섞인 마음도 들고.

 

그러나 작가가 보기를 바랐던 건 나름의 삶을 묵묵하게 쌓아왔던 스토너의 모습들이었겠지. 약간의 껄끄러운 부분은 있지만 좋았던 장면들만 남겨놓고 싶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마지막 몇 페이지의 여운은 정말 압권이었다.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스토너 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이 한참동안 숨을 멈추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부드럽게 숨을 내쉬면서 허파에서 숨이 빠져나갈 때마다 옷이 움직이는 것을 세심하게 인식했다.
(…)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그는 검은 가운과 학사모를 들고 캠퍼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무겁고 성가신 짐이었지만 가운과 학사모를 놓아둘 곳이 없었다. 그는 부모에게 반드시 해야 하는 이야기를 생각하다가, 자신의 결정을 이미 돌이킬 수 없음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 결정을 무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다. 경솔하게 선택한 목표에 도달하기에는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고, 자신이 버린 세계가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자신과 부모가 잃어버린 것을 슬퍼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이 그 세계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 그는 자신의 책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래서 그것을 양손으로 들고 아무 장식이 없는 표지를 쓰다듬다가 책장을 펼쳤다. 섬세하고 활기 찬 아이 같았다. 그는 책으로 완성된 자신의 원고를 다시 읽고 나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뛰어나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얼마쯤 시간이 흐르자 그 책을 보는 일에 진력이 났다. 하지만 자신이 책을 썼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경이가 느껴졌으며, 자신이 그토록 커다란 책임이 따르는 일에 무모하게 나섰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 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 것 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그의 의식 가장자리에 뭔가가 모이는 것이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좀 더 생생해지려고 힘을 모으고 있었지만, 그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자신이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 그의 것이었다.





이 책이 망각 속에 묻혔다는 사실,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책의 가치에 대한 의문은 거의 하찮게 보였다. 흐릿하게 바랜 그 활자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는 환상은 없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작은 일부가 정말로 그 안에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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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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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찌는 더위에, 바깥은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니 가만히 책을 읽기도 힘든 여름이다. 더운 날들엔 기분 좋고 상쾌하거나, 때로는 서늘하고 오싹한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은 나와 관계없는 줄 알았는데 정도가 심해지니 너무 우울한 책은 몸과 머리로 피해지는 듯하다.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는 오묘한 제목이었다. 서유미 작가의 깔끔한 문체를 기억하고 있어서 이 책을 고르기도 했지만, 쓸쓸한 기분과 괜찮다는 위안을 동시에 주는 이중적인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읽어보고 싶어진 이유도 있었다. 여름이니까, 유난히 힘든 여름이니까, 쓸쓸한 기분보다는 ‘괜찮다는 위안’을 붙잡아두고 책을 읽었다. 퍼즐처럼 꼭 알맞게 비슷한 분위기로 맞춰진 단편들이 나왔다. 각자의 방식으로 살지만 비슷한 상실의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했다. 청춘이라 불리는 사회 초년생의 이야기부터, 이제는 엄마가 되어버린 딸의 이야기까지, 소설과 소설을 거쳐 시간은 흐르고 각자가 삶을 버텨내면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상실을 버텨낼 수 있는 것에는 수많은 것들이 있을 테지만 그중 별것 아닌 것이 소소한 행복이나 희망을 주기도 할 것이다. 꽤 유명한 로고가 박힌 달콤한 케이크 상자 (‘에트르’), 뜻밖의 인연이 진심으로 쓴 편지 (‘개의 나날’), 별 볼 일 없어 보이지만 늘 함께 하던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무심하게 일상을 보내는 것 (‘휴가’), 이제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엄마의 어렴풋한 미소 (‘변해가네’)와 같은 것들이. 이런 것들을 보며 우울한 이야기를 견뎠던 나처럼, 소설 속 주인공에게도 마찬가지로 작은 힘이 되어줄 것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은 세월이 흘러 엄마의 마음을 체험하게 되는 <변해가네>와 개인적인 사정으로 24시간 사우나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이후의 삶>이었다. 후반부에 나온 두 작품이었다. 초반부터 등장한 단편들이 우울하고 막막하며 때로는 허탈한 감정까지 드는 와중에, 우울함과 비릿함을 넘나드는 단편에서는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는데, 뒤로 갈수록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서유미 작가의 장점은 깔끔하고 담백하면서도 감정을 품은 문장과, 장황하지 않고 편안하게 쓰여지는 데 있는 듯하다. 돌직구도 아닌 화려하게 커브를 돌며 들어오는 공도 아닌, 받는 사람의 자세에 맞추어 적당한 속도와 거리로 날아오는 공처럼 말이다. 그의 장편을 흡족하게 읽었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어 기대감 때문인지 이번 소설집은 일부 단편이 완벽하게 마음에 들어오진 않았지만, 눈에 밟히는 장면들이 여럿 있었다.

 

 

 

● 20쪽, <에트르>
집에 대한 고민은 새해맞이 케이크로 어떤 걸 고를까,처럼 간단하거나 달콤하지 않았다. 그대로 살겠다는 건 돈을 더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고 이사를 가겠다는 건 서울 밖으로 밀려나거나 큰 방 하나에 거실 겸 부엌이 딸린, 두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을 줄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걸 의미했다. 휴식시간이 줄어들거나 휴식의 공간이 좁아지는 것,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견디기 쉬울지 선택하기 어려웠다.

● 58쪽, <개의 나날>
나는 이제 기억조차 희미한 초등학교 입학식과 졸업식을 떠올려봤다. 교실과 운동장에 흩어져 사진을 찍던 사람들 사이에서 몰래 셔터를 누르고 사라졌을 장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를 보러 왔으면서 나에게 오지 않은 장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 또한 버거웠다. 사진 뒤의 흰 봉투에는 졸업과 입학 축하,라고 쓰여 있었고 5만원이 들어 있었다. 중학생 이후의 사진은 서너장뿐이었다. 머리를 바짝 올려 깎고 여드름이 난 나는 표정이 침울하고 더 뚱뚱해졌다. 그리고 여전히 혼자였다.

● 85쪽, <휴가>
부탄가스와 라면과 번개탄은 잘 어울리는 조합이면서도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 평일 오후에 등산복을 입은 사내가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 사용할지 알 수 없었다. 그것들은 사물이고 비닐에 싸인 상태고 어떤 가능성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비닐봉투 안에 든 것들이 대머리 사내와 함께 멀어져간다는 게 불길했다. 은호는 누구라도 이런 장면을 보면 서늘한 기분에 휩싸이는 건지 자신이 특별히 예민한 건지 생각해봤다. 오늘이 이상한 건지 원래 삶 속에 이런 장면이 늘 섞여 있는 건지도 의문이었다.

● 171쪽, <변해가네>
"엄마는 어떻게 애를 둘이나 낳았어? 이렇게 힘든데."
나 역시 엄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다. 애 셋을 데리고 혼자 어떻게 살았을까. 이제 엄마는 지난 일의 고단함을 다 잊었을까. 아니면 현재가 희미해지니 과거의 장면들이 더 또렷이 떠오를까.
환갑쯤 되고 보니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그저 그때 힘들었지, 라는 전체적인 인상만 남아 있을 뿐 세세한 내용은 흐릿해졌다. 이 일과 저 일의 경중, 아픔과 후회가 뒤섞여 구별이 어려워졌고 몇개의 장면, 몇마디의 말, 표정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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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식탁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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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결혼에 대해 생각할 때, 도저히 오래 견디기 힘들 거란 생각이 드는 것 중에 하나는 어쭙잖은 공동체 생활이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을 제외하고, 친족 관계를 위해서나 가족 혹은 아이를 위해서 의무감을 우선으로 선택하고 견뎌야 하는 무수한 행동들이 상상되었다.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울며 겨자 먹기로 무언가에 소속되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 어떻게 참고 버틴다 해도 속에서 곪고 있을 스트레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던가.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 속에서 어떤 공동체에 소속된다는 건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지만, 세상이 완벽하고 밝게만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작가는 단편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에서 공동체에 대한 환멸을 표현한 바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냉정하리만큼 차가운 무관심만큼이나, 친밀을 가장한 과한 관심 또한 굉장히 무서운 것이었다. 전작에 비해 더 넓어진 그의 장편 <네 이웃의 식탁> 또한 비슷한 의도로 쓰인 것처럼 보인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는 작은 마을인 시골 공동체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반면에, <네 이웃의 식탁>은 조금 특수한 경로로 모이게 된 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갈수록 떨어지는 출산율, 치솟는 집값의 대안으로 만들어진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은 세 아이를 낳는 것을 조건으로 도시 외곽 산속에 지어진 열두 세대 규모의 아파트다. 서류와 면접, 추천으로 뽑힌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였고, 거의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공간 속에서 그들은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한다. 서로 돕고 의지하자는 처음의 의도는 그들의 거리가 차츰 가까워지면서 변질되기 시작한다. 공동육아, 동반 출근, 부부싸움의 공론화, 과도한 관심과 간섭, 가족과 가족 사이에 얇아도 너무 얇은 벽은 점점 공동체의 허울을 드러낸다.

 

 공동주택에 모인 사람들의 다양한 성향만큼이나 이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제각기 다르게 비춰지는데, 여성을 주체로 쓰인 소설의 특성상 소설 속 여자들의 모습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는 공동체로 인해 자신의 쓸모를 발견하고, 누구는 어떤 이는 한 가족을 챙기기도 벅차 애초부터 공동생활에 발을 뺄 준비를 하고 있다. 어떤 이는 공동체를 통해 힘을 얻으며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어떤 이는 이상한 점을 살피면서도 자신 때문에 일이 틀어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어떤 이는 이들은 현실에도 다 있는 사람들이라 누구 하나 '비정상'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각자의 상황에 맞게 스스로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이들의 모습일 뿐이어서, 이쪽에 공감을 했다가 이쪽이 이해가 되었다가 결국엔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이야기의 긴장감 또한 어마어마하지만, 구병모 작가의 숨도 쉴 수 없이 파고드는 집요한 문체는 소설을 더욱 스릴 넘치게 한다. 촘촘하고 날카로우며, 허점을 잡을 틈 없이 몰아치는 느낌이다. 주택 뒷마당에 을씨년스럽게 놓인 큼지막한 식탁의 이미지는 왠지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 식탁에 앉아 웃음짓고 있는 가족들은 각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출산율과 주거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실마리로 여겨졌던 정부의 '꿈미래실험공동주택'. 무엇도 준비되지 않고, 어떠한 기반도 다져지지 않은 땅 위에서 이 실험은 어쩌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 46쪽,
무엇보다도 며칠 밤을 도려내 가며 몰아친 작업으로 노그라진 몸과 마음 또한 진짜였다. 그림 작업을 하면서는 이 세상 어딘가에 젖병이나, 간 소고기랑 불린 쌀을 넣고 끓인 이유식이나, 그것을 숭고한 과업이라고 주입시키는 목소리들과, 플라스틱 폐기물이며 공공의 이익을 위한 회의 같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어떤 장소가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하나의 작업에 일단 마침표를 부실하게나마 찍고 나면, 세상 그 어떤 소음과 음식물 찌꺼기 위에 드러누워서도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50쪽,
자기가 좀 도와줘요. 여보, 가다가 기름 채워 줘야 해? 그 자리에서 생뚱맞은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면 요진 혼자 비협조적이고 정 없는 이가 될 판이었고, 요진은 자신이 휩쓸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어 그러죠 그래요 아니 천만에요 기름은 무슨, 엊저녁에 가득 채웠는걸요, 했다. 차라리 요진 자신이 먼저 합승을 제안했더라면 그리 꺼림한 기분까지는 들지 않았을지도……를 생각하자, 객관적으로 정말 별것 아닌 일인데도 요진은 자신이 고작 선의를 드러내고 보장받기 위한 선후 관계에 집착하는 예민함의 결정체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 82쪽,
아이를 낳아 봐야 진짜 어른이 돼. 그전에는 결혼하고 둘이 잘 살아 봤자 소꿉장난이고. 처음 요진은 그 말들이 저마다 스스로를 향한 격려인 줄 알았다. 출산과 함께 인생의 궤도가 틀어졌고 개성이나 욕망을 삶의 가장자리로 밀어 두는 데 익숙해졌지만 적어도 세상에 값진 생명을 내놓은 생산적인 인간이라는 성취감을 느끼고자 이를 악무는 위안의 제스처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실상 그 말들은 자기 변호에 가까웠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수치심을 모르는 인간, 모르지 않는다면 그것을 엉성한 뚜껑으로 덮어두거나 나일론사로 봉합하는 인간이 된다는 뜻이었다.



● 128쪽,
데면데면하다 그냥저냥. 정말 그런 걸까. 이 상황이 뭐 좋은 금붙이나 된다고 그렇게 묻고 지나가 버린 다음, 훗날 기회가 닿았을 때 다시 캐내어 더 큰 구멍을 만들고. 그러려고 사는 것 맞나, 부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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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나이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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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을 읽을 때마다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힘이 쭉 빠져 있는 듯 연약하고 섬세한 듯 보이면서도, 굳세고 강인한 면이 조금씩 드러난다. 꾸밈없는 문장 속에서도 단어 하나하나가 은은하게 빛난다. 독서의 폭이 넓지 않아 편협한 감상일지도 모르겠으나, 이번 소설 또한 그동안 읽었던 일본 소설들의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평범함과 익숙함,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과장되지 않은 문장을 통해 편안하게 스며든다.


 소설의 시작은 신선하다. 어느 날 주인공인 ‘사야카’에게 도착한 편지에는 ‘그 집 마당에 귀중한 무언가가 묻혀 있다. 실례가 안된다면 마당의 흙을 파도 될까요’라는 조심스러운 메시지가 적혀 있다. 알고 보니 메시지를 보낸 이는 첫사랑의 주인공이자, 젊음과 청춘이라는 삶 속을 온통 채우고 있던 ‘이치로’. 그를 추억하기 위해서는 행복한 기억과 끔찍한 사고의 기억을 동시에 떠올려야 하지만, 사야카는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다. 자신을 믿어주고 포용해주는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병으로 죽어간 친구이자 남편 ‘사토루’ (그와 부부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 그가 꼭 자신의 일부로 남기고 싶어 했던 사랑하는 딸 ‘미치루’,  사야카에게 “친구로만 있어준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라고 말하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가족이라는 이름들. 그들이 있어 사야카의 새로운 한 걸음은 절대로 두렵지 않다.

 <서커스 나이트>는 굉장히 신기한 소설이다. 발리의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일본 신사의 풍경, 사이코메트리 (사물을 만지면 기억을 알 수 있는 능력)와 신성한 믿음들이 배경을 이루고 있어 특이한 인상을 지닌다. 그런데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소재와 배경 속에서 오히려 일상적이고 편안한 이야기가 두드러진다. 특히 사람과 사람의 마음과 대사들. 우리를 살 수 있게 만드는 따뜻한 마음들이 돋보인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온 힘을 다해 도우고, 어떤 사람이 소중한 말을 누군가에게 건네주고, 얼마나 소중한 마음들이 왔다갔다하고 있을까.

 

“할 수도 있잖아, 앞으로.”
“앞으로.”란 얼마나 좋은 말인지 생각하면서. (292쪽)

 

 가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인연을 보이지 않은 끈으로 이을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정말 모두가 이어져 있을 거라고. 수많은 끈들이 우리를 묶어주고 있을 거라고. 이 소설을 읽으면 이런 상상이 마냥 터무니없는 것은 아닐 거라고 다시 생각하게 된다. 솔직히 말해 책의 분량에 비해 이야기의 흐름이 고요하고 잔잔하게 흘러가서, 느린 템포에 허우적대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읽고 나선 이런 예쁜 마음과 대사들이 기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러모로 신기한 소설이었다.

 



● 28쪽,
사람의 손이 사람의 손을 그렇게 꼭 감싸 쥐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가장 부드러운 것을 소중하게 옮기는 듯한 그런 몸짓을 그는 의식이 없는 와중에도 미치루에게 해 주었다. 그런 순간마다 미치루에게 전해진 사토루의 힘을 나는 전부 보았다.

● 115쪽,
공간이 좍 좁아지면서 흐물흐물한 것이 밀려왔다. 뭔지 모르겠지만 기억의 기척 같은 것, 소용돌이치는 뭔가가. 그 소용돌이가 사토루를 잃은 나, 아기를 낳은 적이 있는 나의 마음과 강렬하게 공명했다.



● 178쪽,
정말 굉장하지, 사는 힘이. 그런 작은 일을 떠올리면 행복해진단다. ‘어머니, 이거 공항에서 사 왔는데, 살아날 수 있을까요? 힘들까요? 보통 식물은 검역에 걸리는데, 공항에서 산 나무는 괜찮다고 해서 가져왔는데.’ 그러면서 마카다미아 초콜릿이랑 같이 꺼냈어. 그 아이가 가방에서 꺼낸, 라벨이 구깃구깃해진 히비스커스도, 그때 그 웃음도 나는 꼭 품고 살 거야. 살아 있는 한 언제나 이 가슴에 꼭 안고.



● 273쪽,
별거 아닌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
일상이야말로 멋진 것, 평범함이야말로 존엄한 것, 여러 가지 말이 있지만, 나는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특별한 하루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확고하게 쌓아 올린 토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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