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자들 창비청소년문학 76
김남중 지음 / 창비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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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이런 가상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 소설을 줄곧 읽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배경이나 전개 방향이나 갈등 양상 같은 것들이 더는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때였다. 재미있게 끝까지 읽지만 남는 게 없는 듯한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뒤따라왔다. 그러니 이 책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은 50대 50이었다. 기대감은 의외로 청소년 소설이 사랑(성욕을 포함한) 이라는 소재로 엮였다는 점에서 왔다.

 『해방자들』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설정이 있다. 이는 소설의 배경이 여섯 국가로 되어 있고, 이 국가의 특장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국가들은 가장 여유로운 삶을 사는 '렌막'이라는 국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농업, 수산업, 공업 등의 기술들을 가진 각국의 시민은 자격시험을 통해 렌막의 영주권을 얻는다. 주인공인 '지니'에게도 렌막은 꿈의 도시다. 가난과 위험에 찌든 도시를 벗어나 엄마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밀입국을 시도하고, 그저 풍요롭게만 보였던 렌막이라는 국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바로, 사랑을 통제당한다는 것. 렌막의 시민들은 복합 예방주사를 정기적으로 맞아 성욕을 억제당하고, 낳을 수 있는 아이의 수도 부富에 따라 제한된다. 그러한 렌막에 사는 '소우'라는 또 다른 주인공은 주삿바늘이 무서워 예방주사를 맞지 않았다가 곤혹스러운 경험을 한다. 그는 첫사랑에 실패하고, 우연히 '지니'를 만난다.


  한 평론가가 작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설마 거기까지는'이라고 안심하고 있을 때, 기습적으로 경계를 넘는 작가"라고. 흥미로운 설정은 당연히 특이한 상황을 낳는다. 밀입국한 여성들을 모아 만든 유흥업소는, 돈이 어느 정도 있지만 아기를 자유롭게 낳을만한 정도는 아닌 남성들에게 '아기 돌보기 체험'을 제공한다. 하룻밤 아빠가 된 남성들은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며 환희와도 같은 감정을 느낀다. 나는 이 장면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일반적인 경계를 넘은 상상은 파격이었다.


 아니, 이 소설 자체가 파격일지 몰랐다. '지니'와 '소우' 의 사랑이 주가 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이는 산뜻하고 가볍게 표현된다. 대신에 '사랑'이라는 감정 대신, 그것을 뺏긴 사람들의 행동이 강렬하고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자유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과, 이를 탄압하는 국가의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장면이나 상황을 연상케한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190쪽)"라고 되묻는 모습은 성인인 나에게도 낯설지 않은 질문이었으며, 교훈은 노골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좋았다. 단,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어선지, 분량과 이야기 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 유독 눈에 띄는 다양하고 독특한 설정, 재미난 인물들로 진행된 이 이야기가 이렇게 끝나기는 조금 서운한 마음이다.

 

 

52쪽,
지니가 분유를 타서 다미 아빠에게 건넸다. 다미 아빠가 아기를 안고 분유를 먹였다. 배가 고팠던 아기는 힘차게 젖병 꼭지를 빨았다. 꼴깍꼴깍 분유가 넘어갔다. 투명한 분유병을 통해 꼭지를 빠는 아기의 입이 동그랗게 보였다. 다미 아빠는 황홀한 눈으로 아기를 바라보았다. 지니는 그런 다미 아빠를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받은 돈을 차마 주머니에 넣을 수가 없었다.


123쪽,
"사실 고맙기도 했어. 이성 생각이 나면 더 힘들었을 테니까. 성욕이라는 건 엄청난 족쇄거든. 수염처럼 깎아도 깎아도 날마다 자라나지. 아침에 면도를 해도 잠시뿐이고 면도를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개운하지 않지. 그렇지만 말이야, 우리가 놓친 게 있어. 성욕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사랑마저 포기하면 안 되는 거였어. 성욕이 다 사랑은 아니지만 사랑에는 성욕도 포함돼 있거든. 우리는 불필요한 성욕을 제거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꼭 필요한 사랑까지 국가에 내줘 버린거야."

190쪽,
소우의 얼굴을 본 순간 지니는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소우와 오래오래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렇지만 소우의 뒤에는 진다이가 버티고 있었고 자신은 여전히 밀입국자 신분이었다. 소우를 따라간다는 것은 결국 진다이의 손으로 들어가 아빠가 누군지도 모를 아기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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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2-24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ㅡ 잘 읽고 가요 . 가상세계 ㅡ 저도 그리 좋아는 않는데 ㅡ이 책은 몰입또 좋더라고요! ^^

시읽는리니 2017-03-04 02:05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 안녕하세요. ^^ 몰입이 좋아서 술술 읽히는 소설이었습니다!

[그장소] 2017-03-04 08:28   좋아요 0 | URL
네에~ 정말 재미있었어요 . 세계관도 흥미롭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