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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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찌는 더위에, 바깥은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니 가만히 책을 읽기도 힘든 여름이다. 더운 날들엔 기분 좋고 상쾌하거나, 때로는 서늘하고 오싹한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은 나와 관계없는 줄 알았는데 정도가 심해지니 너무 우울한 책은 몸과 머리로 피해지는 듯하다.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는 오묘한 제목이었다. 서유미 작가의 깔끔한 문체를 기억하고 있어서 이 책을 고르기도 했지만, 쓸쓸한 기분과 괜찮다는 위안을 동시에 주는 이중적인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읽어보고 싶어진 이유도 있었다. 여름이니까, 유난히 힘든 여름이니까, 쓸쓸한 기분보다는 ‘괜찮다는 위안’을 붙잡아두고 책을 읽었다. 퍼즐처럼 꼭 알맞게 비슷한 분위기로 맞춰진 단편들이 나왔다. 각자의 방식으로 살지만 비슷한 상실의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했다. 청춘이라 불리는 사회 초년생의 이야기부터, 이제는 엄마가 되어버린 딸의 이야기까지, 소설과 소설을 거쳐 시간은 흐르고 각자가 삶을 버텨내면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상실을 버텨낼 수 있는 것에는 수많은 것들이 있을 테지만 그중 별것 아닌 것이 소소한 행복이나 희망을 주기도 할 것이다. 꽤 유명한 로고가 박힌 달콤한 케이크 상자 (‘에트르’), 뜻밖의 인연이 진심으로 쓴 편지 (‘개의 나날’), 별 볼 일 없어 보이지만 늘 함께 하던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무심하게 일상을 보내는 것 (‘휴가’), 이제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엄마의 어렴풋한 미소 (‘변해가네’)와 같은 것들이. 이런 것들을 보며 우울한 이야기를 견뎠던 나처럼, 소설 속 주인공에게도 마찬가지로 작은 힘이 되어줄 것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은 세월이 흘러 엄마의 마음을 체험하게 되는 <변해가네>와 개인적인 사정으로 24시간 사우나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이후의 삶>이었다. 후반부에 나온 두 작품이었다. 초반부터 등장한 단편들이 우울하고 막막하며 때로는 허탈한 감정까지 드는 와중에, 우울함과 비릿함을 넘나드는 단편에서는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는데, 뒤로 갈수록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서유미 작가의 장점은 깔끔하고 담백하면서도 감정을 품은 문장과, 장황하지 않고 편안하게 쓰여지는 데 있는 듯하다. 돌직구도 아닌 화려하게 커브를 돌며 들어오는 공도 아닌, 받는 사람의 자세에 맞추어 적당한 속도와 거리로 날아오는 공처럼 말이다. 그의 장편을 흡족하게 읽었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어 기대감 때문인지 이번 소설집은 일부 단편이 완벽하게 마음에 들어오진 않았지만, 눈에 밟히는 장면들이 여럿 있었다.

 

 

 

● 20쪽, <에트르>
집에 대한 고민은 새해맞이 케이크로 어떤 걸 고를까,처럼 간단하거나 달콤하지 않았다. 그대로 살겠다는 건 돈을 더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고 이사를 가겠다는 건 서울 밖으로 밀려나거나 큰 방 하나에 거실 겸 부엌이 딸린, 두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을 줄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걸 의미했다. 휴식시간이 줄어들거나 휴식의 공간이 좁아지는 것,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견디기 쉬울지 선택하기 어려웠다.

● 58쪽, <개의 나날>
나는 이제 기억조차 희미한 초등학교 입학식과 졸업식을 떠올려봤다. 교실과 운동장에 흩어져 사진을 찍던 사람들 사이에서 몰래 셔터를 누르고 사라졌을 장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를 보러 왔으면서 나에게 오지 않은 장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 또한 버거웠다. 사진 뒤의 흰 봉투에는 졸업과 입학 축하,라고 쓰여 있었고 5만원이 들어 있었다. 중학생 이후의 사진은 서너장뿐이었다. 머리를 바짝 올려 깎고 여드름이 난 나는 표정이 침울하고 더 뚱뚱해졌다. 그리고 여전히 혼자였다.

● 85쪽, <휴가>
부탄가스와 라면과 번개탄은 잘 어울리는 조합이면서도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 평일 오후에 등산복을 입은 사내가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 사용할지 알 수 없었다. 그것들은 사물이고 비닐에 싸인 상태고 어떤 가능성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비닐봉투 안에 든 것들이 대머리 사내와 함께 멀어져간다는 게 불길했다. 은호는 누구라도 이런 장면을 보면 서늘한 기분에 휩싸이는 건지 자신이 특별히 예민한 건지 생각해봤다. 오늘이 이상한 건지 원래 삶 속에 이런 장면이 늘 섞여 있는 건지도 의문이었다.

● 171쪽, <변해가네>
"엄마는 어떻게 애를 둘이나 낳았어? 이렇게 힘든데."
나 역시 엄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다. 애 셋을 데리고 혼자 어떻게 살았을까. 이제 엄마는 지난 일의 고단함을 다 잊었을까. 아니면 현재가 희미해지니 과거의 장면들이 더 또렷이 떠오를까.
환갑쯤 되고 보니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그저 그때 힘들었지, 라는 전체적인 인상만 남아 있을 뿐 세세한 내용은 흐릿해졌다. 이 일과 저 일의 경중, 아픔과 후회가 뒤섞여 구별이 어려워졌고 몇개의 장면, 몇마디의 말, 표정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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