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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들해질 때도 되었건만, '유교 재해석'과 관련된 서적을 접하면 나는 여전히 반갑고 기쁘다. 일종의 유교 복권 노력이 지난 십 수 년에 걸쳐 적잖이 진행되어 왔음에도 아직도 유교는 전통 사상으로의 위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리라.

기껏해야 '유교 정당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는 것도 알지만, 아직까지는 여전히 '유교 정당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또 능력이 부족해서 문제이지, 능력만 된다면 기꺼이 이 대열에 동참하는 것이 나의 소박한 학자적 바람이다. 하여 최근 출간된 신정근의 <중용 : 극단의 시대를 균형의 시대로>(사계절 펴냄)를 읽으면서 솔직히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기간된 <논어의 숲, 공자의 그늘>(심산 펴냄) 등의 저술들로 이미 학계뿐만이 아니라 동양 유가고전에 관심 있는 대중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저자의 이번 책 역시 '전통과 현대를 잇는 대표적인 가교'라 해도 과찬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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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용, 극단의 시대를 넘어 균형의 시대로>(신정근 지음, 사계절 펴냄). ⓒ사계절
"중화(中和)를 달성하면
천지(天地)가 제자리를 찾고
만물(萬物)이 제 모습으로 자라게 된다.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중용> 첫 장(章)의 매듭 부분이다. 여기서 중화(中和)는 중용(中庸)을 의미한다. 그러니 중용을 이루면 천지만물이 제자리를 찾고 존재 목적을 달성한다는 말이 된다. 중용의 엄청난 효력에 대한 선언이다. 이후의 전개는 자연 그 까닭과 구체적인 내용, 방법에 대한 기술일 터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이에 대한 이해가 난해한 것으로 정평이 났었다.

신정근의 저작은 독자들이 보다 이를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애쓴 공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덕분에 이 책은 참으로 많은 미덕을 지니고 있다. 다만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몇 가지만 소개하기로 한다.

첫째, 저자는 독자들에게 <중용>을 이해시키고자 성심성의(誠心誠意)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지금까지 <중용>은 유교 고전 텍스트 가운데서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책으로 널리 인식되어왔고, 실제 전공생들에게조차 녹록한 텍스트는 아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중용>과 그 핵심 개념인 '중용(中庸)' 및 주요 개념과 관련 일상의 사례는 물론 나아가 독자들이 접했을 법한 영화나 가요 등의 문화 상품을 동원할 뿐만 아니라 중국 고대의 역사적 실제 등 풍부한 사례들을 동원하여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

둘째, 이를 통한 명쾌하고도 적극적인 개념 규명이 이 책을 기존의 작업들과 변별시키는 가장 큰 장점이다. <중용>의 핵심 개념인 '중용'에 대해 저자는 '중(中)'은 '중심, 균형, 중립, 실체적 근원, 공정성 및 적합성, 적절성' 등을 내포하는 것으로, '용(庸)'은 '평범성, 일상성 및 습관, 조율된 반응' 등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 양자가 결합된 '중용적 삶'을 "반대되는 가치와 성향들이 배척되지 않고 창조적으로 종합" 되면서 "공정성에 기반을 둔 균형 잡힌 삶"(47~48쪽)으로 요약한다.

물론 이는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삶', 곧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삶'이라는 주희(朱熹)의 중용 정의와 통한다. 나아가 이것은, 일견 추상적인 인식론으로 비칠 수도 있는 <중용>을 전국시대(戰國時代)라는 극단적 상황을 극복하고 궁극적으로 정치사회적 안정과 평화 추구라는 탄생 배경에 대한 인식도 놓치지 않는다.

물론, 저자 자신이 자임하였듯이, 중용의 이론적 측면과 현실에의 적용면을 동시에 고찰하고, <중용>의 중용과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중용을 비교하면서 동이(同異) 점을 찾으며, 사자(死者)와 생자(生者)와의 관계 속에서 <중용>의 귀신 장(章)의 의의를 밝히고, 일견 추상적인 언어로 표현된 <중용>의 난해성을 쉬운 예시로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며, 일견 비체계적인 <중용>의 구성과 체재를 저자 나름대로 재구성함으로써 일관성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들 또한 이 책이 높이 평가받아야 할 측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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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었을 때, 중용을 이루면 만물이 제자리를 찾는다는 식의 중용의 엄청난 위력을 공감하는 데는 다소 미진한 느낌이 있다.

첫째, '중용'의 정치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다루었으면 어땠을까? 장점은 대개 다른 측면에서는 단점이 되기 쉽다고, 중용의 풍부한 일상적 혹은 일반적 사례나 설명이 오히려 정치가들에게 특별히 중용을 강력하게 요구하려던 <중용>의 의도가 간과된 것은 아닐까?

어떤 인간도 요람에서 무덤까지 정치 세계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정치인의 중용적 태도 보유 여부는 해당 정치 공동체 전체의 행/불행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이다. 정치인의 중용적이지 못한 태도는 대개 불공정한 행위가 되고, 이는 흔히 불법 내지 탈법과 연결되며, 결국은 정치 부패로 귀결되어 해당 사회의 신뢰와 질서를 붕괴시키는 요인이 된다. 사실 <중용>의 제1역할은 <대학>과 더불어 오늘날 대학(大學)에 해당하는 최고 고등 교육 기관인 태학(太學)에서 미래의 정치가가 될 재목들을 상대로 중용을 비롯한 주요 실천 윤리의 덕목과 원리를 가르친 정치학 텍스트였다는 데 있다.

둘째, 서양의 인식론 내지는 분석 방법에 대해 '너무' 관대하거나 쉽게 양자를 대비시키는 이분법적 태도 앞에서는 '중용'의 위상이 더욱 왜소해지는 느낌은 과한 것일까? 예컨대 저자는 중용의 다양한 실천 방법의 성격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방법론적 다원주의'라고 규정하고 있다.

'방법론적'이란 수식어가 있기는 하나, 본질적으로 '다원주의'란 1960년대 영미식 민주주의의 자본주의적 성격에 대한 공격에 대응하고자 1970년대식 공리주의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공공의 복리 및 사회적 공정성을 우선시하는 중용의 원리를 다원주의적 방법론과 동일시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또 "서구 근대 정치 사상에서는 사람이 이기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타인에게 침해받지 않으며 자신의 개체성을 보존하려고 하는 것을 자기 보존의 원리로 긍정"하지만 "<중용>에서는 이기심을 극복하는 자기 수양, 즉 수신이 중요하다고 본다"는 진술은 양자를 쉽게 이분법적으로 대립시킨 예이다.

로크나 홉스 등 자연권에 입각한 계약론자들의 '이기적 욕구'란 타인에게 침해받지 않는 원칙일 뿐만 아니라 타인을 침해하지 않는 원칙과 동시적 조건하에 성립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근대의 자유라는 가치 혹은 도덕 윤리로 구성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그것은 독점자본주의 하의 통제되지 않는 무한대 이기적 욕구 관철 논리와는 다른 것이다.

다른 한편 <중용>에서 말하는 수신론이라고 해서 '자신을 보존하는 이기적 욕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보장하는 정치 공동체 건설과 유지를 위해 유교적 덕성들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여민동락(與民同樂)'론이나 '양민(養民)'으로 시작해서 '교민(敎民)'으로 완성된다는 왕도정치론 등이 그 예이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든 시장을 통해서든 무한대의 이기적 욕심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은 양자 모두 동일하다고 본다.

셋째, 유교적 수양론이 정치사회적 제도화와 거리가 먼 것처럼 인식하는 부분도 조심스럽다. 삼권분립 제도 혹은 헌법재판소 제도 등과 관련된 진술(144쪽), 또는 "<중용>의 저자는 (…) 제도의 완비보다 사람의 수양에 초점을 둔다"(146쪽)는 진술 등이 그것이다. 물론 유교를 인치(人治)로 간주, 법치는 제도를 중시하는 것처럼 '오해'하는 태도는 어제오늘 문제는 아니고, 유교를 따라 다니는 상표가 되다 못해 마치 본질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유교는 명문화된 법제도는 물론 각종 예법의 형태인 관습법을 비롯해 온갖 삶의 내용이 지나치게 제도화되어 있는 것이 문제였다고 할 만큼 제도의 문제를 중시했다. 다만 저자도 강조했듯이, 유교가 정치 주체의 수양을 강조한 것은 제도도 결국은 운영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정치란 기본적으로 물리적 강제력을 기반으로 해당 공동체의 가치를 배분하는 행위이고, 이때 물리적 강제력이란 어떤 형태로든 제도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 이름이야 어떠하건 간에 법이나 제도의 성격이 되기 때문이다. 자연인으로서의 수양이 아니라 정치가로서의 수양은 정치적 산출, 곧 그것이 성문법의 형태이건 관습법의 형태이건 간에 제도와 별개일 수 없는 점은 자명하다. 바로 이점 때문에 율곡 이이 역시 <동호문답>에서 '힘써 실천하는 것이 (군주의) 수기이다'라는 테제를 한 장(章)의 제목으로 걸기도 했다. 요컨대 정치인에게 있어서 수양의 실체란 바로 정치적 실천을 말하는 것이고, 정치적 실천이란 곧 법령 혹은 제도의 정비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로 위에서 언급한 점을 인정할 때 <중용>에서 말하는 '중용의 위대한 위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피력하는 것으로 평자의 역할을 마치고자 한다. <중용>에서 말하는 가장 중요시하는 중용을 향한 수양의 주체 혹은 대상은 기본적으로 정치가이다. 음악가의 수양이 아름다운 음악으로 열매를 맺듯이, 화가의 수양이 멋진 그림으로 화답하듯이, 중용을 향한 정치가의 수양은 훌륭한 정치 제도, 각종 정책, 공정한 인사 등의 정치적 산출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보편적인 공정성'으로서의 중용이 기실은 개인적 수양의 덕목이기보다는 정치적 덕목이기에 그 결과가 정치 공동체 전반에 사랑과 정의가 흘러넘치는 인정(仁政) 사회가 기대되고, 만물이 제자리를 찾는 각득기소(各得其所)의 사회가 기대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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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자의 소임상 어쩔 수없이 평자의 단견을 피력했지만 사실 책을 읽는 내내 재미와 감동이 교차되었고 배운 점이 많았다는 속내를 거듭 밝힌다. 하여 저자께 고맙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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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아벨라의 <두뇌를 팝니다>(유강은 옮김, 난장 펴냄)를 단지 미국의 냉전주의 외교 전략의 산실에 대한 이야기로만 생각한다면 큰 오해다. 이 책의 화두는 더 크고 의미심장하다.

이 책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미국 제국의 역사를 어떤 렌즈로 들여다보는 것이 적합한가를 묻고 있다. 민주당 대 공화당 정치 질서? 진보 대 보수의 시대? 뉴딜 대 레이건 시대? 이 모든 시기 구분은 일정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단호하게 지난 시대는 다름 아닌 '랜드 연구소의 시대'라며 한 단어로 압축하고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정치 질서도 랜드 연구소라는 렌즈로 보면 큰 차이가 없다.

랜드 연구소가 그렇게 대단한가? 이 책을 정독하다 보면 랜드를 연구소라고 부르는 것에 곤혹감을 가지게 된다. 이는 마치 한국 보수 정당에게 있어서 <조선일보>를 단지 언론사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지 않는 것과도 유사하다. 오히려 랜드 연구소는 보수와 자유주의를 아우르는 전위적 정당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해 왔다.

왜냐하면 시대의 거대한 방향, 주요 담론, 과학적 혁신, 핵심 기간요원 양성 등에서 전위적 역할을 수행해왔기 때문이다. 1948년 창립된 이래 2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연구의 그저 부산물(!)로 인터넷 발명에 기여하고, 1600명의 직원이 글로벌하게 활동하며, 베트남 전쟁에서 워터게이트, 별들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촉수가 뻗어있지 않은 곳이 없는 곳을 단지 연구소라 부르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크다.

그리고 이 책을 단지 미국 제국의 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로만 생각하는 것도 큰 오해이다. 이 책은 동시에 한국의 현대사와 우리의 삶 전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 나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것은 뜻밖에도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과의 개인적 인연이다.

차명진 의원이나 김문수 지사는 과거 한국의 탁월한 운동권 출신이다. 하지만 오늘날 그들은 급진 운동권 출신이면서 외교 안보에서 강경한 태도를 취한다는 의미에서 좌파 출신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 1세대와 매우 유사하다. 대학원 시절 차명진 의원은 참으로 명석하고 시대의 흐름을 앞서 이해하였다. 그는 과거 마르크스주의의 계급 집단주의 담론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며 반대로 개인의 합리적 선택으로 사회를 이해한 이론에 심취한 바 있다. 당시 난 대학원 수업에서 골수 운동권 출신인 그가 이 이론에 그토록 매료되는 것이 흥미로웠다.

사실 차명진 의원의 행보는 이 책에서 랜드 연구소의 행보와 정확히 일치한다. 저자가 보기에 랜드 연구소의 가장 큰 화두이자 미국 사회에의 업적 두 가지는 바로 강경 외교 안보 전략과 합리적 선택 이론이다. 랜드 연구소는 소련 공포증에 사로잡혀 '선제공격 독트린' 등 대응 전략을 세우는 과정에서 합리적 선택 이론의 정교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또 이 책은 계급 집단성 대신에 랜드 연구소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케네스 애로 등이 발전시킨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라는 패러다임은 공산주의와의 대결에서 가장 큰 사상적 무기로 작용하였다고 평가한다.


▲ <두뇌를 팝니다>(알렉스 아벨라 지음, 유강은 옮김, 난장 펴냄). ⓒ난장
이러한 랜드 연구소의 두 가지 화두는 한국 진보주의에도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 강경 외교 안보 전략은 한국의 네오콘을 만들어냈다. 합리적 선택 이론은 한국의 진보 486들로 하여금 정부를 개인의 합리적 선택에 장애물로 작용하는 이기적 괴물로 간주하는 작은 정부론 등 신자유주의적 패러다임에 기울어지게 하는데 큰 역할을 수행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미국에 대한 이야기이자 바로 오늘날 한국 정치 지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마 이 연구소의 주적이었던 레닌이 미국에서 가장 부러운 것이 있다면 미국판 전위 정당인 바로 이 랜드 연구소일 것이다. 레닌은 평소 입버릇처럼 볼세비키적 정신과 미국적 효율성의 결합을 언급하곤 했다. 랜드 연구소야말로 이 두 가지의 융합이라 할 수 있다. 랜드 연구소는 볼세비키적 열정을 가지고 소련 공산주의와 사상 투쟁을 벌이며 동시에 미국 자본주의의 위력에 근거한 과학적 혁신 투쟁을 전개하였다.

랜드 연구소 국방 연구의 부산물인 인터넷이야말로 이 사상 투쟁과 과학적 혁신의 융합을 잘 보여준다. 왜냐하면 인터넷의 개방성 철학은 폐쇄적 공산주의 체제와의 사상 투쟁 자체이며 동시에 과학의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은 이제 트위터 등 소셜 웹을 통해 이란 등 이른바 전체주의 체제의 붕괴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랜드 연구소의 두 대표 상품인 강경 외교 안보 사상과 합리적 선택 이론의 결합내지 공존은 다소 기묘하다. 왜냐하면 전자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같은 영화에서 보듯이 핵 선제 공격 등의 광적인 이론이고, 후자는 냉정한 개인 합리성에 대한 과학적 이론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두 가지가 적절하게 결합하면 과학적으로 계산된, 절제된 광인 전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이 쿠바 미사일 위기의 성공적 해소 이후 미국 외교 안보 전략의 최대 기둥인 강압적 외교 전략이다. (소위 '불량 국가'는 이를 '벼랑 끝 전술'이라 표현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나쁘게 작용한다면 전자는 네오콘의 광적인 선제공격 독트린으로 나타난다. 이는 냉전 시절 소련이 더 크기 전에 절멸시키고자하는 강박관념에서 비롯된다. 랜드 연구소의 가장 걸출한 스타이자 네오콘의 대부이기도 했던 앨버트 월스테터의 소련 공포증은 우주로까지 전쟁을 비화시키는 별들의 전쟁 프로젝트로도 이어졌다. 그리고 냉전이 사라진 21세기에 9·11 테러 덕분에 부시의 선제공격 독트린으로 잠시 부활하기도 했다.

후자인 합리적 선택 이론은 다시 두 가지 부작용을 양산한다. 그 중 하나인 국제 관계에서 개인 행동에 대한 수학적 계산 가능성에 대한 신화는 베트남 전쟁 등의 패배로 귀결되었다. 걸어 다니는 슈퍼컴퓨터 국방장관 맥나마라가 베트남 민족주의를 계산에 넣지 못했고, 가장 준비된 국방장관 럼스펠드가 이라크 반미주의를 계산에 넣지 못한 것은 가장 극적인 예일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이 이론은 정부를 약화시키며 미국 공동체를 분열시켜 결국 제국의 기초를 안으로부터 침식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개인의 합리적 선택 이론의 실험장이자 '미국의 빛나는 아침'으로 명명된 레이건 시절은 바로 양극화의 심화이자 미국 공동체의 해체 과정이기도 했다. 인문학 토대가 취약한 랜드 연구소라 그런지 이들은 자신들의 대표 상품들이 미국 문명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며 이것들의 관계가 어떤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을 낳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 두 가지 상품의 결합 내지 공존은 자유주의자들에게도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 월스테터는 자유주의자 케네디가 소련과의 미사일 격차라는 자신의 소련 공포증을 이어가는 것에 대만족을 표시한 바 있다. 결국 냉전 자유주의자인 케네디, 존슨 등은 비록 공군 사령관 르 메이 등 랜드 연구소 스타들과 사사건건 대립하기도 했지만 쿠바 미사일 위기, 베트남 전쟁 등에서 랜드 연구소의 담론과 인맥의 자장 안에서 움직였다.

국내적으로도 미국 자유주의자들은 랜드 연구소의 최대 상품인 합리적 선택 이론의 지대한 영향을 받아왔다. 1970년대 이후 민주당 내 새로이 부상한 계파인 신자유주의 그룹과 그들의 대표 상품인 클린턴, 고어, 하트 등은 이의 상징이다. 이들은 이후 '우리는 모두 작은 정부론자이다'라고 인정하며 작은 정부론 담론의 자장 안에서 움직이면서 자신들 스스로가 레이건 시대 민주당임을 분명히 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랜드 연구소판 민주당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랜드 연구소의 화려한 두 상품은 처참한 기록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소련 공포증에 기반을 둔 선제공격 독트린은 이제 영화 속 웃음거리의 대상이다. 랜드 연구소의 예상과 달리 소련은 선제공격 없이도 붕괴했고, 레이건은 때로는 변절하여 고르바초프와 손을 잡았다.

더 큰 문제는 냉전과 소련 붕괴의 시도 과정에서 오히려 미국이라는 거인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모든 것을 수학적 계산으로 환원시킨 합리적 선택 이론은 베트남의 민족주의를 계산하지 못했고 중동의 반미주의를 계산하지 못했으며 오늘날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을 계산하는데 자주 실패했다.

더구나 과거 영국과 달리 공납이 가능한 식민지를 가지지 못한 미국은 과잉 팽창된 제국을 유지하느라 허덕이고 있다. 과거 이라크 전쟁에서 마치 랜드 연구소처럼 광인 이론을 주창하던 <뉴욕타임스> 보수 컬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제 공공연하게 아프간 전쟁에서 발을 빼고 미국만 돌보자고 선동하고 있다.

프리드먼의 선동이 실감나는 것은 그간 작은 정부론 패러다임의 결과로 미국이 자본을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놓아버렸고 합리적 선택 대신에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이라는 홉스적 야만의 상황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 시절 카트리나 재난은 미국 공동체가 어디까지 파괴되어 있는 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미국의 공동체주의 철학자이자 오늘날 한국에서의 스타인 하버드 대학교 교수 마이클 샌델은 "연대가 무너지면 비극이 발생한다"고 한탄하고 있다.

여전히 군산 복합체 미국에서 랜드 연구소의 영향력은 크다. 하지만 랜드 연구소의 가장 영광스러운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미국은 이제 랜드 연구소의 군사주의보다 트위터, 구글, 애플이 주는 외교 안보 전략의 함의에 더 주목한다. 말하자면 소프트 파워의 시대인 것이다. 그리고 군사주의보다 중동 국가의 내수 부양을 통한 실업자의 테러리스트로의 전락을 방지하기 위한 새로운 테러 방지 전략이 시도되고 있다. 합리적 선택 이론도 이제 빛바래고 그 대신 선스타인의 '넛지'처럼 인간의 복합적 심리에 주목한 행동 경제학이나 마이클 샌델, 왈저 등의 공동체주의가 상종가를 누리고 있다.

소프트 파워와 공동체주의를 구현하는 오바마의 당선이야말로 랜드 연구소의 시대가 새로운 시대로 이행하였음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미 오래전 랜드 연구소 등이 열어젖힌 판도라의 상자로 인해 그 무수한 부작용 속에서 비틀거리고 있다. 오바마는 과잉 팽창된 미국을 대폭 축소하지도 그렇다고 유지하지도 못하는 곤혹스러운 상황 안에서 좌충우돌하고 있다.

이 책은 깊이 있게 맥락과 그 결과, 시사점을 보지 못한 채 미국의 최신 담론과 상품을 수입하는 한국의 수많은 랜드 연구소의 사생아들에 대한 중요한 경고장이다. 이제 모두 숨을 고르며 생각의 시간을 가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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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 집안은? 루스벨트? 부시? 케네디? 2009년 브루킹스 연구소는 정치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케네디 가문을 첫 번째로 꼽았다.

케네디 가문은 대통령 1명, 상원의원 3명, 하원의원 4명, 장관 1명을 배출했다. 케네디 가문을 1위로 만든 사람들은 재선 상원의원을 거쳐 대통령이 된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 법무부 장관과 상원의원 출신의 로버트 케네디, 9선 상원의원을 지낸 에드워드 케네디 등 케네디 3형제였다.

기실 케네디 형제는 미국 정치의 산 증인이다. 그중 2009년 8월 25일 세상을 떠난 에드워드 케네디는 1962년 상원의원이 된 이래 47년간 미국 민주당의 진보파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활약했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가난한 서민과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중요한 법안 제정을 주도했다.

1964년 민권법, 1965년 투표권법, 1990년 장애인법, 2002년 낙오아동방지법 등 중요한 개혁 법안을 추진한 그는 명연설로 '상원의 사자(lion)'라고 불리기도 했다. '검은 케네디'라고 불린 대통령 오바마는 그를 "이 시대 가장 위대한 정치인"이자 "미국 민주당의 혼(soul)"이라고 불렀다.

케네디와 미국 정치


▲ <케네디가의 형제들 : 에드워드 케네디 자서전>(에드워드 케네디 지음, 구계원·박우정 옮김, 현암사 펴냄). ⓒ현암사
최근 출간된 <케네디가의 형제들 : 에드워드 케네디 자서전>(구계원·박우정 옮김, 현암사 펴냄)은 에드워드 케네디가 50여 년간 모아 둔 일기와 메모들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책을 쓴 시간도 길다. 2004년부터 5년 동안 버지니아 대학교 밀러센터에서 자신의 생애에 관한 구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퓰리처 상 수상자인 작가 론 파워스와 긴밀하게 협력해 이 회고록을 완성했다. 이 책은 미국 의회와 백악관 구석구석의 정치 일화를 소개하면 미국 정치의 진면목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1960년 대통령 케네디가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무장 게릴라를 피그만에 보냈다가 참담하게 실패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케네디는 "제가 정부의 총책임자입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사석에서는 참모에게 "침공 작전에 대해 국방부 사람들을 너무 믿었다"고 말했다.

그가 의기소침해지자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당시 법무부 장관)는 형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아버지에게 전화하자고 제안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후원자이자 영국 대사를 지낸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는 이렇게 말했다.

"아주 잘했다, 네가 모든 책임을 졌다. 그게 국민이 지도자에게 바라는 모습이다. 내 말 명심해라. 국민은 당당하게 책임을 지는 지도자를 좋아한다. 이 일은 틀림없이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그 후 18개월 뒤 미국이 쿠바 미사일 위기에 직면하여 핵전쟁의 가능성이 커졌을 때, 케네디는 군부의 조언대로 따르지 않았다. 피그만 참사로 교훈을 얻은 케네디는 평화적 해결방안을 선택했다. 이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영화 <13일간(Thirteen Days)>에 자세하게 소개된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다

1961년 대통령 케네디는 경제 원조, 문맹 교육, 사회 계획, 민주 정부를 위한 체계를 구축하고자 '진보를 위한 동맹'이라는 10년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미국의 젊은이들이 개발도상국에서 봉사하는 '평화봉사단'을 창립했다. 이러한 외교 정책은 공산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힌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케네디는 베트남에 미국 군사 고문단을 보내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케네디가 1963년 암살되지 않고 살아 있었다면, 통킹 만 사건(1964년) 이후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을지는 미지수이다. 아마도 에드워드 케네디는 베트남 전쟁의 책임이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있다고 믿는 듯하다.

1967년부터 케네디 형제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 빠져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반전운동에 뛰어들었다. 셋째인 상원의원 로버트 케네디는 의회에서 "폭격을 중단하라. 그리고 북베트남과 평화 협상을 하라"고 주장했다.

로버트 케네디는 대통령 케네디가 남긴 유산이 퇴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1968년에 단호하게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공약으로 내세우고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다. 안타깝게도 로스앤젤레스에서 미국은 "위대한 나라, 이타적인 나라, 인정 많은 나라"라고 선언하고서, 총탄을 맞고 목숨을 잃었다.

케네디 형제가 죽지 않았다면…

케네디가 진정 꿈꾸던 일은 미국인의 달 착륙, 핵무기 축소, 공민권 법안의 통과였다. 형의 이상을 실현하려던 로버트 케네디는 베트남 전쟁 반대, 빈곤과 불평등의 추방, 정의로운 사회를 추구했다.

만약 이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도, 닉슨의 당선도,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도, 건강보험법의 연기도 없었을까? 역사를 가정하기는 어렵지만, 케네디 형제가 미국 민주당과 진보파에게 커다란 영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로버트 케네디는 미국의 어느 정치인보다 자신의 이상을 아름다운 문구로 탁월하게 표현했다. 그는 1968년 대선 후보로 나서면서 베트남 전쟁, 도시 폭동, 인종 불평등, 빈곤을 언급하며 사회 정의와 공동선을 강조했다. 그는 "국민총생산은 우리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을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의란 단순히 국민총생산의 규모와 분배에 그치지 않고 더 높은 도덕적 목적과 관련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졌다.

로버트 케네디가 대통령이 당선되었어도 미국이 유럽 복지국가처럼 한 번에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련과 대립하는 냉전도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케네디 형제의 꿈과 이상은 미국 민주당의 정책이 되어 서서히 미국 사회를 바꾸는 추동력이 되었다.

케네디 형제의 꿈은 헛된 것은 아니었다. 먼저 미국 민주당은 인종차별을 폐지하는 역사적인 공민권과 투표권 법안을 통과시켰다. 저소득층 학생을 지원하는 연방 지원 프로그램인 '헤드 스타트(Head Start)'를 실행했다. 대통령 존슨은 '빈곤과의 전쟁'을 선언하고 복지국가를 향한 '위대한 사회'라는 목표를 추구했다.

클린턴은 1963년 학생 시절 '보이스 네이션(Boys Nation)'의 대표로 백악관을 방문해 케네디를 만나고 나서부터 정치인이 되는 꿈을 키웠다. 그는 대학생 시절 반전 운동에 참여해 징집을 거부했으며, 베트남 전쟁 이후 최초로 베트남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1995년 베트남과 미국은 공식적으로 수교했다.

두 형이 떠난 후에도 에드워드 케네디는 우물쭈물하는 미국 민주당을 진보적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 레이건 정부의 군비 확대와 '스타워즈' 계획에 반대했다. 건강보험 개혁에 앞장서고, 교육 개혁을 추진하고, 이라크 전쟁을 비판했다. 많은 미국인들이 이라크 전쟁이 '애국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이라크에 선제 행동을 취하는 예방 전쟁은 국제법 원칙에 위배"된다고 역설했다. 네오콘이 이끄는 부시 정부에 맞서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신념의 정치인이었다.

건강 보험 개혁에 앞장서다

2010년 3월 24일 미국에서 역사적인 건강 보험 개혁 법안이 통과되었다. 평생 의료 제도 개선의 대의를 위해 싸운 에드워드 케네디가 세상을 떠난 다음 해의 일이다.

에드워드 케네디가 건강 보험 개혁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개인적 체험도 영향을 미쳤다. 1973년 에드워드 케네디는 자신의 아들 테디가 암에 걸려 투병하자 아동 병원에서 밤새 간호하며 다른 부모들을 만났다. 그는 보고 느낀 것을 자서전에 이렇게 적었다.

"대부분 세일즈맨, 비서, 노동자, 교사, 택시 운전사와 같은 근로자였다. 가족들은 어마어마한 치료비를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빚을 졌다. 보험에 들지 않았거나 일부만 가입한 사람들은 절망에 빠졌다."

그 후 에드워드 케네디는 모든 관심을 그 투쟁에 쏟았다. 그는 평생 동안 건강 보험, 교육과 직업 훈련의 부담을 줄이려는 신념을 실천했다.

가족의 비극을 넘어서


▲ 케네디가의 형제들. 왼쪽부터 둘째 존 케네디, 막내 에드워드 케네디, 셋째 로버트 케네디. ⓒ현암사
<케네디가의 형제들>은 한 가족의 비극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에드워드 케네디는 두 형의 암살과 가족의 잇따른 사망 속에서 커다란 고통을 겪었다. 부모님을 포함해 일곱 형제들의 죽음을 견뎌내야만 했다.

첫째 형 조 주니어 케네디가 제2차 세계 대전에 공군으로 참전하여 독일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전사했다. 둘째 누나 캐슬린도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둘째 형인 대통령 케네디가 1963년 암살로 떠난 지 6년 만에 셋째 형인 로버트 케네디도 암살로 목숨을 잃었다.

세상이 말하는 '케네디가의 저주'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 케네디의 아들 존 케네디 주니어와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 데이비드 케네디, 마이클 케네디 등 조카들도 잇따라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큰누나 로즈메리의 정신 지체, 아버지의 뇌졸중, 자식의 투병을 지켜보아야 했다.

에드워드 케네디 자신도 비행기 추락 사고와 자동차 사고를 겪었으며, 스캔들과 이혼으로 많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케네디 가문의 기둥이 되어 가족을 돌보았으며 케네디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최후까지 노력한 인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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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와 한국의 민주화운동

에드워드 케네디는 그보다 1주일 전 서거한 전 대통령 김대중과 각별한 인연을 가졌다. 그는 1980년 김대중이 전두환의 신군부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구명 운동에 앞장섰다. 훗날 김대중이 미국으로 망명하자 환영 리셉션을 열어주고 한국으로 다시 귀국할 때도 변함없는 지지를 보냈다.

에드워드 케네디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1987년 군사 정부에 의해 투옥되고 고문을 당한 전 국회의원 김근태에게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여한 것도 그였다.

로버트 케네디는 완벽한 인간은 아니었지만, 인권과 민주주의의 신념을 가진 정치인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자서전 <케네디가의 형제들>은 시대와 나라를 초월하여 케네디 형제들의 정치적 이상과 행동에 대해 생각해보려는 독자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20세기 파란만장한 국제 정세는 물론 미국의 선거운동과 정치 비사에 관한 사례도 흥미진진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736쪽의 두께가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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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소년'. 사회과 임용 준비생과 교사의 인터넷 커뮤니티 이름이다. 얼마 전 이곳에서 새로운 교육 과정 개편안을 두고 역사과와 비역사과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국사의 선택 과목화를 비판하는 목소리와, 국사의 필수 과목화를 비판하는 주장이 맞붙었다. 우선 국사의 선택 과목화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절대적인 대세를 차지하는 포털 사이트 게시판과 분위기가 달랐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국사가 여타 과목에 비해 특별 대우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눈여겨 볼 부분은 국사의 필수 과목화를 주장하는 쪽의 근거였다. 대개 일제 강점기를 들먹이며 역사는 되풀이되기 때문에 역사를 배워야 한다는, 민족정기 운운하며 한국 사람으로서 우리 역사를 모르고서야 어찌 한국 사람일 수가 있느냐는, 외국에서는 어떻게 하는데 우리는 왜 이러느냐는 등.

그런데 상투적이고, 밋밋하지 않은가? 무겁고, 버겁지 않은가? 민족의식, 역사의식을 내세워 역사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는 당위성만 강조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역사를 중요하다고 여기면서도 답답함을 느끼는 건 이런 데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당위성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이 역사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유쾌하면서 의미 있는 방법.


▲ <교과서가 깜빡한 아시아 역사>(유재현 글, 김주형 그림, 그린비 펴냄). ⓒ그린비
<교과서가 깜빡한 아시아 역사>(유재현 지음, 그린비 펴냄, 이하 <교깜>)은 유럽 중심의 세계사 체제에서 소외된 아시아 역사를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서 역사를 흥미롭게 보여주는 방법을 알 수 있다.

만약 당신이 40명의 중·고등학생을 놓고 역사를 가르친다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에게 역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설득시켜야 한다면? 일제 강점기, 민족정신, 역사적 사고력 운운할 생각 마시라. 학생들 곧바로 졸기 시작한다. 적을 알아야 싸울 수 있듯이 학생을 알아야 효과적인 전략을 구상할 수 있다.

요즘 학생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재미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과거에 비해 떨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면적이다. 왜냐하면 지금 학생들은 과거와 달리 재미를 느끼고 동기만 유발되면 정말 무섭게 달려들어 파고든다. 우리가 할 일은 학생들의 집중력을 탓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어른들 또한 다를 바 있겠는가? 이런 측면에서 이 책은 매력적이다. 왜냐하면 '예능 감각' 때문이다.

<교깜>은 개그, 해학, 기지, 패러디 등 모든 장르의 유머를 펼쳐 보인다. 역사 예능의 '향연'이다. 19세기 말 제국주의로 치닫는 일본을 한 개의 컷으로 웃겨버린다. 일본 제국주의 깃발을 들고 진흙탕으로 걸어가는 일본군. 잠시 후 진흙을 뒤집어쓴 채 멍한 표정으로 나오는 일본군. "좀-비-등-장".

1930년 호치민은 베트남 공산당을 만든다. 그러나 코민테른의 지시에 따라 베트남 공산당은 인도차이나 공산당으로 강제로 통합된다. <교깜>은 이 장면을 어떻게 묘사할까? 호치민 앞으로 갑자가 뭔가 날아온다. 살펴보니 밤송이. 무슨 뜻인가? "까라면 까"라는 것이다.

1950년대 미국의 지원을 업고 베트남 수상에 오른 응오딘지엠은 나라를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예식을 치른다. 다음 컷에 누가 등장할까? 교회 건물 뒤에서 얼굴을 내미는 MB. 그의 얼굴에 달린 큰 땀방울. 지나가는 행인의 대사 "비슷한 일이 지금도 있지!"

이런 유머가 역사를 우스개로 만드는 걸까? 아니다. 역사를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심각한 표정으로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할 게 아니라 유머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게 더욱 필요하다. 지명도 없는 가수들이 자신을 알리기 위해 무엇부터 하는가? 예능에 나와 유머를 통해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그나마 그의 음악이라도 들어주기 때문이다.

요즘의 역사도 인기 없는 연예인과 다를 바 없다. 역사는 대형 기획사에 소속된 아이돌 스타가 아니라 잊혀진 7080 세대의 스타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한물간 나이든 스타인 '역사'를 애써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의 관심을 역사로 돌리려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역사 교육의 최전방에 선 교과서의 실태는 어떠한가? 유머의 씨가 말랐다. 마치 웃음기를 뺀 정형돈 같은(정형돈은 그나마 몸 개그라도 하는데). 역사 교과서를 읽는 건 고행이다. 완독한 학생들의 몸에서 사리가 나왔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역사를 유쾌하게 보여주는 <교깜>의 모습은 타당하다.

이제 사람들의 눈길을 모았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갈고 닦은 노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한다. <교깜>은 유머로서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뒤 잊힌 역사를 생생하게 그려내 보여준다.

3권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벌어진 세 차례의 인도차이나 전쟁을 담았다. 전후 복구 사업을 벌이느라 알제리를 점령하느라 인도차이나 반도의 식민지를 유지하느라 정신없는 프랑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도 반성 없이 식민지를 유지하려고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유럽 열강들, 전후 세계를 주무르며 공산주의의 확산을 경계하는 미국, 미국과 냉전을 벌이며 공산주의를 확산시키려는 소련, 소련과 사회주의 이념 논쟁을 벌이는 중국, 식민지에서 탈피하여 독립 국가를 건설하려는 인도차이나반도의 국가들. 인도차이나반도의 상황은 얽히고 섞인다. 그럼에도 <교깜>은 그림을 통해 복잡한 상황을 논리적이고 구체적으로 깔끔하게 정리해낸다. 역사의 복합성과 중층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3권은 이 시리즈의 백미다.

그럼 왜 <교깜>은 인도차이나 전쟁을 말하려는 걸까? 인도차이나 반도의 역사는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역사를 아느냐 모르냐에 따라 현대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새롭게 볼 수 있다.

대개 우리 세계사 교과서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식민지 시대는 거의 종결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갔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발달, 과학기술의 발전, 국제적 협력의 증진 등으로 인류는 발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소 냉전에 가려 잘 언급되지 않는 인도차이나 전쟁을 세계사 맥락에 끼워 넣으면 '새로운 시대'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통킹 만 사건, 군산 복합체의 이익을 배려한 미국의 베트남 폭격,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 인도차이나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도 제국주의적 행태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여전히 제국주의의 맥락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인도차이나의 역사는 의미 있다.

가끔 우리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나 다국적 자본의 후진국 노동력 착취 등을 들으면 '이런 일이 지금도 일어나는가?'라고 의아해 한다. 또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표의식이 뒤따르는 건 아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사건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 맥락적으로 배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건이 역사적 맥락을 상실하면 의미와 가치를 지닐 수 없다. 사람들이 사건의 의미를 모르니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동기를 지니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과거의 역사는 단지 과거의 역사로만 존재하고, 현재 벌어지는 사건들은 이해할 수 없는 무의미한 사건으로 남는다. 역사를 배워도 흥미를 차츰 잃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교깜>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역사를 복원시킴으로써 아시아 역사, 나아가 세계사를 맥락적으로 다시 구성해낸다. 낱개로 떠다니던 사건들을 맥락 속에 배치하여 그 의미를 살려낸다. 역사를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보다 맥락을 구성하여 보여주는 게 역사를 느끼게 하는 것일 게다.

영화 시나리오 작법에는 다음의 원칙이 있다. 'Keep it visual!' 뜻은 간단하다. '그림으로 얘기하라!' 이야기를 관객에게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것이다. 복수심에 불타는 주인공이 있다고 하자. 그의 복수심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영화 <올드보이>의 대수를 떠올려보자. 일식집에서 산 낙지를 아작아작 씹어 먹는 모습. 그게 바로 복수심이다.

지금껏 우리는 역사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당위적으로 설명하려고 한 건 아닐까? 우리가 겪은 근·현대사의 시련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역사를 무겁고 딱딱하게 만드는 것 같다. 유머를 바탕으로 역사를 맥락적으로 보여주는 <교깜>은 사람들에게 역사를 유쾌한 것으로 기억하게 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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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이 자동차 지붕 위에 짐을 잔뜩 올려 싣고서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한 번은 작은 터널을 통과하려 했다. 그런데 지붕에 짐이 많아서인지 자동차가 터널에 꽉 끼고 말았다. 전 가족이 차에서 내려서 차를 밀기 시작했다. 형들은 자신들의 힘을 자랑하면서 걱정할 거 없다고 말했다. 막내는 저리 비켜 있어도 충분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밀어도 차는 꿈쩍하지 않았다. 지렛대로 바퀴를 들기도 했고, 지붕 위의 짐을 빼고 나중에 다시 싣자는 말도 나왔다. 운전을 한 아빠에게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느냐고, 막무가내로 터널에 들어가면 어떻게 하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어려서 아직 힘이 세지 못한 막내가 이런 가족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갑자기 자동차의 바퀴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자동차 바퀴의 꼭지를 뺐다. 그러자 바퀴의 바람이 빠졌다. 그때서야 자동차는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막내가 한 일은 힘이 들지 않는 정말 간단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복잡하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행동했지만, 막내는 아주 단순한 원리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이 일화는 얼마 전 타개한 고 이윤기의 어느 에세이에 들어있는 내용을 확장해 본 것인데, 복잡한 문제 속의 숨은 간단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제프리 클루거의 <심플렉서티>(김훈 옮김, 민음인 펴냄)의 논지와 일맥상통한다. 예컨대 서문에 나와 있는 19세기 후반 영국의 존 스노가 콜레라를 막은 사례도 그렇다.


▲ <심플렉서티>(제프리 클루거 지음, 김훈 옮김, 민음인 펴냄). ⓒ민음인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설사병(콜레라)을 해결하는 일은 어렵고 복잡한 문제였다. 하지만 존 스노는 설사병의 원인이 한 우물의 펌프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나무 망치로 그 펌프를 못 쓰게 하자 그렇게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던 설사병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심플렉서티>에서 '심플렉서티'는 '간단함(simplicity)'과 '복잡함(complexity)'의 합성어다. 제목 자체에서 이미 복잡계 과학의 학문적 논의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복잡계 과학이라는 학문의 기본적인 지향은 복잡성 속에서 단순한 원리를 찾으려는 것이다. 이 학문은 캘리포니아의 폭풍을 역추적해서 그것이 베이징 나비의 날갯짓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히려 한다.

사실 이러한 논의는 학자나 정책가의 로망에서 비롯된 사고틀이다. 제아무리 복잡한 사안이라고도 결국에는 단순한 조치 하나로 일거에 해결할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는 비단 현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간의 건강 상태를 바늘 침 하나로 통제할 수 있었던 동양의 침구학은 이런 단순성을 통한 복잡성 조율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경락과 경혈이라는 주요 포인트의 파악이다. 경락과 경혈은 복잡성이 단순성으로 단순성이 복잡성으로 오가는 허브에 해당한다. 학술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자면 주역의 논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동양의 <주역>이 지향한 것도 복잡한 세상을 64궤를 통해 간단화해 천지운행을 인간이 예측 통제하려 한 것이다.

이 <주역>의 핵심 원리가 바로 오행 사상인데, 다섯 가지 기본 요인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것을 더 간단하게 만든 것이 음양 사상이다. 세상의 운행을 두 가지 요소가 움직이는 것으로 압축한 관점이다. 오행 사상이나 음양 사상을 언급하면 주술 시대의 유물쯤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미 이것은 1950년대 말 MIT의 제이 포레스터가 시스템 다이내믹스(system dynamics)를 개념화하면서 탈주술화되었다. 포레스터는 세상을 양(+)과 음(-)의 관계로 보고 이것을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의학적으로 볼 때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은 이러한 플러스와 마이너스에 해당한다.

이러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복잡계의 논의와 맞물리면서 인간과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양의 피드백과 음의 피드백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비판이 많았지만 어쨌든 이렇게 복잡함 속에서 간단한 원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흐름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은 많은 사례를 요약, 압축했다.

과학자나 연구자가 아닌 바에야 이 책의 논의 가운데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의사 결정에 관한 부분이다. 예컨대 세계 금융 위기를 불러온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아주 복잡한 사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단순한 원인에서 비롯되었다. 엉터리 신용 등급에 따른 파생상품의 형성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정책 당국이 그 원인에 주목했다면 파국적인 경제 위기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의사 결정의 중요한 지렛대를 발견하는 것과 같은데, 이는 사건이나 현상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을 파악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그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자동차와 터널 사이의 메커니즘을 찬찬히 살피는 것과 같다.

앞에서 콜레라 유행의 원인을 파악한 존 스노가 초점을 맞춘 것도 바로 현상을 일으키는 전체 시스템의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을 파악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복잡성 속에서 단순성의 원리를 찾을 수 있다는 로망이 깨질 수 있다. 단순성의 원리를 찾는 과정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수많은 과학적 법칙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지만, 복잡함 속에서 간단한 원리를 찾는 일은 사회 현상의 분석에서도 의미가 크다. 수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의외로 간단한 정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스노가 전염병을 수많은 돈, 약이 아니라 나무 망치 하나로 막았듯이 말이다.

정치, 사회 체제를 논의하는 데도 이런 시각이 의미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 담론을 모색하면서 복잡한 수사나 난해한 이론이 동원되는 경향이 있다. 추상에 추상을 거듭하여 공허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클루거의 논리대로라면 역사적 기술이나 운동의 방향은 단순한 개입으로 달라질 수 있다.

거대한 독재 정권은 강력한 경찰력과 압도적 군사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단히 취약하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정권은 생태학적 자원의 고리가 끊어질 때 붕괴했다. 이라크의 후세인 독재 정권이 석유 자원 탓에 미국에게 붕괴된 것도 또 다른 (나쁜 방향의) 예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독재 정권의 가장 약한 고리는 윤리적인 부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고하던 정권이 어느 한순간 한 사람의 행동이나 죽음 때문에 붕괴될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 클루거의 관점에서 보자면,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는 것은 '그들'이 군대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군대 사조직을 없애는 것이야말로 민주화의 핵심적 조치라는 것이다.

이 책의 논의는 한나라당과 보수의 지배를 절망적으로 바라보는 많은 진보 인사에게도 생각해 볼 거리를 던진다. 한국의 보수처럼 이해관계로 얽힌 이들은 바로 그 부분에서 약점을 갖게 마련이다. 이처럼 복잡해 보이는 정국에서 단순한 원리를 찾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필요한 일이다.

다만, 우리가 그동안 복잡한 문제의 단순한 해결책을 간과해온 것이 이 책이 말하듯이 무지 탓인지, 현실적 가능성이 없어서인지는 실천 속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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