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회이건 이념 논쟁과 이념 갈등이 활발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념은 정치·경제·사회적 가치를 가늠하는 사고의 기본 틀이며, 대다수 정책 역시 이러한 이념 틀 안에서 추진되기 때문이다.

최근 전 지구적으로 탈(脫)이념이 강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념의 시대가 종언을 고한 것은 아니다. 상황과 국면에 따라 이념 논쟁과 이념 갈등이 강화될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 인류는 이념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념 구도와 이념 갈등을 다루는 게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보다 그것이 정치 사회와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다는 데 있다. 경우에 따라서 이념 논쟁은 정치적 동원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며, 이 때 사실판단을 넘어선 가치판단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념 논쟁이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될 경우 그것은 비생산적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클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기도 한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 우리 사회가 갖는 특징 중 하나는 이러한 이념 논쟁이 유독 두드러진다는 데 있다. 여기에는 우리 현대사가 갖는 특수성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좌파와 우파의 대립은 해방 직후 본격화했다가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좌파가 사실상 불허돼 수면 아래 잠복했다. 이 대립이 다시 등장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이며, 이후 치열한 이념 논쟁이 진행돼 왔다. 이념 논쟁의 '뒤늦은 개화'가 이뤄진 셈이다.


▲ <좌우파 사전 : 대한민국을 이해하는 두 개의 시선>(구갑우 외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위즈덤하우스
서평의 서론이 길어졌다. 최근 출간된 책 한 권을 소개하고자 우리 사회의 이념 구도와 이념 논쟁에 평자의 생각을 잠시 적어봤다. <좌우파 사전 : 대한민국을 이해하는 두 개의 시선>(구갑우 외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은 여러 점에서 주목을 끄는 책이다.

첫째, 그 동안 치열한 논란을 이뤄 온 좌파와 우파에 대해 설득력 높게 설명하고 정리하고 있다. 저자들은 '국민주권과 대의제'에서 '고교 평준화와 학교 다양화'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서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핵심 쟁점들을 명쾌하게 비교하고 또 분석하고 있다. 책의 맨 앞에 놓인 '개념과 현실'은 좌파와 우파의 구분에 대한 여러 이론적, 경험적 토론을 일목요연하게 재정리함으로써 전체 논의를 효과적으로 이끌고 있다.

둘째, 좌파와 우파에 대한 서구적 특성과 한국적 특성을 적절히 결합시키고 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은 서구 근대 사회 사상에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좌파와 우파는 대외적으로 남북 관계나 한미 관계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적 맥락을 갖고 있으며, 대내적으로는 산업화와 민주화로 이어지는 우리 현대사의 경로 의존성이 반영돼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서구적 전통과 한국적 현실을 종횡무진 검토함으로써 좌파와 우파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제공한다.

셋째, 전문 학술서라기보다는 대중 교양서를 지향하는 것도 눈에 띠는 미덕이다. 책을 읽다 보면 적잖은 내용이 전문적 진술을 담고 있지만, 저자들은 시민들도 편하게 접할 수 있도록 기술하고 있다. 학문적 글쓰기에 익숙한 전문 연구자들이 대중적 글쓰기를 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을 생각할 때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서려는 저자들의 노력은 상당히 돋보인다. 더욱이 개별 주제 말미에 '더 읽을거리'와 해당 주요 개념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덧붙여 독자들을 배려한 것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물론 이 책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좌파와 우파가 대립해 온 치열한 쟁점 가운데 하나인 한국 현대사에 대한 상이한 시각이 상대적으로 소략하게 다뤄지고 있다. 북한을 어떻게 보고 어떤 대북 정책을 추진할 것인가와 더불어, 식민지 시대를 포함해 한국 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우리 사회에서 관찰되는 좌파와 우파의 구분에서 매우 중요한 쟁점이다. 평자가 보기에 필자들 가운데 역사학 전공자가 없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일 테지만, 나중에 개정판을 내게 된다면 이를 보완하는 것도 한 번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600쪽이 넘는 책을 모두 읽고 나서 맨 먼저 떠오른 것은 이념 구도는 물론 이념 논쟁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이들이 읽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특정한 정치 국면이 전개되면 어김없이 이념 논쟁이 진행돼 왔다. 대한민국의 정통성, 한국전쟁의 성격, 박정희 시대의 해석 등을 중심으로 논란이 불거지고 상대방에게 이념적 낙인을 찍어왔다. 최근에 북한 인권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더해졌지만, 좌파와 우파의 구도는 여전히 중요한 사회적 균열의 하나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이념 자체라기보다 그 이념 논쟁이 소비되는 과정에 있다. 하나의 이슈가 제기되면 그것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 근거가 없거나 빈약한 비난들이 이어지고, 의도했던 '정치적 효과'가 달성되면 이내 자취를 감춘다. 이념 비판에 대한 대응 논리도 차이가 없다. 문제에 대한 합리적 반론이 아니라 공격이 최선의 방어인 양 이념적 역공을 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친북좌파', '수구꼴통'과 같은 색깔론은 이러한 저급한 이념 논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말들이다.

평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념의 의의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다시 한 번 말하면, 이념은 현실 세계를 독해하는 틀이자 눈이다. 또 자신이 속한 집단의 가치 및 이익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기에 쉽게 양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평자가 우려하는 것은 이념 비판에 담겨진 정치적 의도의 과잉이다.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정파적 이익을 국가적 이익 또는 개인의 인권에 앞세우려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 통합의 제고가 우리 사회에 부여된 주요 과제 중 하나라면, 먼저 우리 사회가 왜, 어떻게 이념적으로 나눠져 있는지를 가능한 객관적으로 독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조건적 사회 통합이 중요한 게 아니라, 통합을 저해하는 균열의 원인과 구조를 가능한 정확하게 이해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 진정한 사회 통합은 상대방의 이념을 승인하고 그 공존을 모색할 때 가능한 법이다. 우리 사회의 이념 구도와 이념 논쟁에 관심을 두고 있는 학생들은 물론 시민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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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평등에 관하여>(김순영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는 민주주의 이론 분야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학자로 평가되는 로버트 달이 91세의 나이에 저술한 책으로, 거의 반세기에 걸친 자신의 민주주의 이론과 사상을 집약한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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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달의 민주주의 이론 속에서 이 책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그가 마지막 책의 주제를 '정치적 평등'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지향점이 책의 제목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달은 민주주의 이론 분야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와 자유민주주의 또는 대의민주주의를 출발점으로 하면서도, 그 한계나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자세를 끊임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학문적 입장이 시간이 갈수록 기존 체제에 대해 비판적이고 개혁적으로 변화되어 간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책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에서, 달의 이러한 문제의식이 더 심화되었음을 볼 수 있다. 달은 이 책에서 정치적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더 절박하게는 정치적 불평등의 확대를 막고 민주주의의 퇴보를 막기 위해서-대기업의 영향력에 대한 통제뿐 아니라, 자본주의가 시민 개개인의 의식과 문화에 스며들어 만들어낸 소비주의 문화를 극복하고 이를 대체할 시민권의 문화를 역설하고 있다.

달이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부정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달은 시장 경제가 탈중앙 집중화된 결정을 통해 운영되기 때문에 사회주의의 중앙 집중화된 국가 계획 경제 체제보다 민주주의와 더 잘 어울린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문제는 그것이 가져오는 정치적 불평등 효과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있고, 이 점에서 그는 대기업이 평등의 원리를 위협하지 않도록 하는데 최대의 관심을 갖고 있다.

민주적 가치와 양립하는 기업의 소유 및 운영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문제는 젊은 시절부터 달이 평생의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달은 시장 경제를 부정하고 자본주의 현실 밖에서 문제를 보는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자본주의 시장 경제 내지 시장사회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자이자 개혁자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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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로버트 달 지음, 김순영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후마니타스
달은 정치적 평등을 민주주의의 이상으로 강조한다. 하지만 그는, 통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을 강조하는 루소식의 민주주의나 직접 민주주의의 이상을 구현하려는 집회 민주주의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시민의 직접 참여를 강조하는 급진적 참여 민주주의자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지 않다.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을 정도로 달의 관심은 훨씬 현실적이다.

"어떻게 하면 큰 규모에서 민주주의를 실행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민주주의를 확장하면서도 여전히 소규모의 데모스에서 얻을 수 있는 대표의 질을 유지할 수 있을까? 평생 나를 매료시킨 문제였다."

달은 일련의 대의 민주주의 정치 제도-대표의 선출, 자유롭고 공정한 주기적 선거, 표현의 자유, 대안적인 정보 원천, 결사의 자유, 모든 데모스의 구성원을 포괄하는 보통선거권-를 통해 정치적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에 다가갈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달은 대의제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정치적 평등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과 그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구하면서 이를 향해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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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은 달의 학문적 입장의 연장선에서 볼 때 이 책은 그의 연구의 총괄이자 정점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달은 자신이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로 설정한 정치적 평등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답한다.

왜 정치적 평등이 요구되는가, 정치적 평등은 이성적으로 합당한 동시에 경험적으로 실현가능한 목표가 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정치적 평등을 추동하는 힘은 무엇이며, 반대로 정치적 평등을 제약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그런 제약 요인들은 향후 우리의 노력으로 개선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에 답하면서 달은, 정치적 평등이 도덕적으로 또한 현실적으로 판단해 볼 때 이성적으로 합당한 목표 내지 이상이 될 수 있다고 논증한다. 또 지난 18세기 이래 인류가 정치적 평등이라는 이상을 향해 진전해온 성취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정치적 평등이 실현 가능한 목표임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달은 결코 민주주의의 미래를 막연히 낙관하거나 민주주의가 끊임없이 진전할 것이라는 어떤 결정론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달은 현대 사회가 정치적 평등을 가로막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강력한 장애물-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비롯한 정치적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 시간의 제약, 정치 체제의 규모, 시장 경제의 위세, 비민주적인 국제 체제, 테러리즘과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적 불평등을 약화시킬 수 있는 요인도 있음을 지적하면서, 미래는 다음 세대의 실천에 달려 있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이러한 논의 중에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정치적 평등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사람들을 추동하는 힘은 무엇인가?"라는 그의 질문이다. 달이 이 질문을 중요시하는 것은, 정치적 평등을 추구하는 행위가 인간이 가진 어떤 기본적인 본성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정치적 평등이라는 목표나 이상 자체가 부적절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달은 인간 본성과 인간 사회에는 어떤 기본적인 한계가 있고, 그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시민들 사이에서조차 정치적 평등이 충분히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정치적 평등이란 결코 완전히 달성될 수는 없는 하나의 이상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정치적 평등을 향해, 민주주의를 향해 커다란 진전을 이룩해온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달은 이러한 놀라운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평등을 지지하고 이를 진작시키는 방향으로 인간의 행동을 추동하는 인간의 어떤 근본적인 특성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은 달의 기존 연구를 뛰어넘는, 그의 마지막 저작에서 새로이 개척된 연구 영역으로서, 가히 이 책의 핵심이자 백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으로 하여금 정치적 평등을 추구하도록 추동하는 힘은 무엇인가? 달은 그것이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정서나 감성 또는 열정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어떤 숭고한 감정이 아니라 불평등에 대한 혐오, 질투심, 시기 등과 같이 우리 주변의 평범한 동료 인간들에서 발견되는 것들이 그런 추동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달은 이러한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의나 공정함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힘으로서 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임마누엘 칸트를 비판하면서, 감정과 열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데이비드 흄의 이론을 끌어 온다. 주지하듯이 흄은 영국 경험론을 완성한 철학자로서, 인간의 구체적 경험을 뛰어넘는 어떤 초월적·선험적 능력으로서의 이성의 힘을 부정한다. 흄에 의하면 우리가 현실에서 추구하는 도덕적 목표나 윤리적 목표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과 열정에 의해 추동된다.

결국 흄의 논의를 근거로 하여 감정과 열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정치적 평등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근본적 특성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모두 갖고 있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달의 이러한 논의는, 정치적 평등이라는 이상을 향한 보통 사람들의 지혜와 실천을 중시해 온 그의 민주주의 이론에 하나의 완결점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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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주장이 갖는 의미는 자유주의나 공화주의 이론과 대비해 보면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자유주의 정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의 사적·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므로 개인의 자유의 영역을-특히 국가의 간섭으로부터-지키는 것이 우선시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정치적 평등 달리 표현하면 공동체의 일에 참여하는 것은 일반 시민들로서는 부차적인 관심사가 된다. 그것은 공적 영역에 관심을 갖는 정치적 인간-또는 정치 엘리트-이 주로 관여하는 영역이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 공화주의 이론가들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사적 영역에만 치중하려는 인간의 욕구를 억누르면서 공적 영역에 참여하고 헌신하려는 '시민적 덕성'을 키우고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달의 논의는 이러한 주장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달에 의하면 정치적 평등에 대한 요구는, 인간의 본성에서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며 특별히 어떤 시민적 덕성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감성과 열정 등 평범한 시민 모두가 갖는 인간의 어떤 특징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달이 결론 부분에서 정치적 평등의 실현을 위한 시민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어떤 규범적 차원의 요구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달은 결론에서, 인간은 소비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려는 충동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행복이나 복지를 위해 정치에 개입하려는 또 다른 충동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소비주의 문화'가 전자에서 연유한다면, '시민권의 문화'는 후자에서 연유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민권의 문화가 소비주의 문화보다 우위에 서게 될 때 정치적 평등을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결론 맺고 있다.

이 짧은 한권의 책은, 평생 보통 시민들의 현실적 조건에 기초를 둔 민주주의를 추구해온 달의 정치적 이상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관심 있는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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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BBC가 1999년 9월 밀레니엄을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사상가를 시청자에게 물었다.

카를 마르크스는 과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을 2위로 밀어내고 상당한 표차로 1위를 차지했다.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 방송국은 2005년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를 시청자에게 다시 물었다. 역시 1위는 마르크스였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한 금융 위기로 전 세계 경제가 지금까지 휘청대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평가에 토를 달 이들은 더 이상 없을 듯하다. 마르크스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아니, 2003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최근의 상황은 "자본주의의 오류에 대한 마르크스의 지적이 많은 부분에서 옳았다"는 것을 한 번 더 확인시켰다.

'마르크스 르네상스'를 지켜보면서 눈을 한국으로 돌려보자. 유럽은 물론이고 일본, 중국, 러시아, 타이, 이란 등 세계 곳곳에서 '마르크스 재조명'이 한창이라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찾아볼 수 없다. 대중은 물론이고 학계도 마르크스를 '죽은 개' 취급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강신준 동아대학교 교수(경제학)가 <자본> 번역을 마무리했다. 지난 2008년 1권을 펴낸 데 이어서 최근에 3권이 나왔다. 1987년 <자본> 번역과 첫 인연을 맺고 나서 23년 만의 일이다. 그는 "20년 동안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이제야 내려놓는 기분"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지난 27일 서울 통인동의 한 카페에서 강신준 교수를 만났다. 그는 1978년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대학교 2학년 때 <자본>을 첫 대면했다. 왜 그는 30년이 넘게 마르크스의 <자본>에 매달려 왔을까? 21세기에 다시 <자본>을 번역해 펴낸 까닭은 무엇일까? 그에게 직접 물었다.


▲ 강신준 동아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자본> 때문에 바뀐 인생

프레시안 :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 1권이 '김영민'이라는 가명으로 번역돼 나온 게 1987년이다. 23년 만에 <자본>을 완간했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강신준 : 그렇다. 지난 1000년 동안 출판된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로 꼽히는 귀중한 지적 유산이 이제야 한국에서 올바른 자리를 찾게 되었다. 사회과학의 큰 조류의 출발점이 되는 책이 <자본>인데,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 책의 원본을 제대로 소개할 수 있어서 20년 넘게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이제야 일부나마 내려놓은 기분이다.

프레시안 : 엄혹한 시대에 <자본> 1권이 가명으로 출간되다 보니, 그 뒷얘기를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다.

강신준 : 개인적으로는 <자본> 때문에 내 인생이 바뀌었다. 나는 1974년에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입학했다. 나중에는 독일에 가서 철학을 공부할 생각이었다. 당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재에 대한 반대 운동을 막고자 긴급 조치를 연달아 발표할 때라서 결국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끌려갔다. 군대를 다녀와서 1978년에 학교에 복학했다.

철학을 공부하려던 학생이니까, 당연히 마르크스의 <자본>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마침 독일에 누님이 있어서, <자본>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책을 그대로 보냈다가는 당장 검열에 걸릴 테니까, 누님이 <자본>의 표지를 벗기고 괴테 책의 표지를 입혀서 보냈다. <자본>의 주요 내용을 발췌한 문고본이었는데, 그게 <자본>과 나의 첫 대면이었다.

그 책을 읽다 보니 <자본>을 제대로 보고 싶다, 이런 욕구가 더 커졌다. 제대로 된 <자본>을 보고자 서울 시내의 대학 도서관을 다 뒤졌다. 당연히 어느 대학에서도 책을 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성균관대학교에서 사서가 <자본>을 찾아주었다. 독일어 원본을. 사서가 실수를 한 것 같은데….

그렇게 구한 책을 학교 앞에서는 복사를 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중앙정보부 요원이 학교 안팎을 사찰할 때니까. 의정부까지 가서 책 전체를 한 번에 복사하고 나서 파지까지 전부 다 수거하고서야 나만의 <자본>을 가질 수 있었다. 1978년 여름방학 때 마산의 경남대학교 도서관에서 그렇게 복사한 <자본>을 읽기 시작했다. <자본>과 정식 인사를 하는 순간이었다.

프레시안 : 그렇게 만난 <자본>과 인생이 엮이기 시작했는데….

강신준 : 그렇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내가 <자본>을 번역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같은 대학의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자본> 3권에 나오는 '이윤율 저하 경향'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 그런데 나는 석사 학위를 마치고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 없었다. 집안이 넉넉지 않아서 빨리 돈을 벌어서 어머니를 부양해야 했기 때문이다.

석사 학위를 받자마자 한국전력공사를 거쳐서 1985년에 농업협동조합(농협)에 취업했다. 당시에 농협은 아주 좋은 직장이었다. 본부의 대졸 직원 중에는 진보적인 이들이 많았다. 그들과 어울려서 공부도 하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그렇게 평범한 직장인으로 농협을 잘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자본>이 내 인생으로 들어왔다. 1986년의 어느 날이었다. 출판사를 경영하던 오랜 고향 친구가 만나자고 하더라. 그 친구가 바로 출판사 이론과실천의 대표였던 김태경 씨다. 김태경 대표와 최광열 편집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한테 원고 뭉치를 보따리에 싸서 주었다. 가타부타 얘기도 없었다. "집에 가서 한 번 읽어봐!"

집에 와서 원고를 살폈더니, 그게 바로 <자본> 1권의 원고였다. 깜짝 놀라서 사정을 들어보니, 김 대표의 얘기가 이랬다. "운동권 학생 6명이 오랫동안 강독을 하면서 나눠서 번역을 한 원고다. 그 원고를 출판하고 싶은데 출판을 해도 될 상태인지 한 번 봐 달라." 당시 이론과실천은 시국 사건으로 제적된 대학생의 집합소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이해가 되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틈틈이 살폈는데 원고가 들쭉날쭉했다. 어떤 부분은 번역이 상당히 좋은데, 어떤 부분은 매우 나쁘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독일어 실력도 편차가 있고, 한국어로 쓰는 데도 차이가 있었을 테니까. 검토 끝에 이 상태로 내기는 힘들다, 이런 결론을 김 대표에게 전했다. 그러자 김 대표가 이렇게 제안했다. "그럼, 자네가 교열을 봐!"

직장을 다녀야 하는 처지에 난감했지만 <자본>이 아닌가. 시간을 낼 만큼 의미가 있었다. 수개월 동안 초벌 원고를 고치는데 매달렸다. 분량이 많아서 나중에 일부는 산업은행에 다니는 후배도 참여했다. 그렇게 최종 원고가 만들어졌는데, 여전히 마음에 안 들었다. 애초에 남의 원고니까, 고쳐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자본>을 거칠게나마 해독이 가능한 한글로 옮겨놓았다는 것일 텐데…. 김 대표가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 김 대표가 원고가 좋은 상태는 아니지만 찍어내는 게 의미가 있다, 이런 결론을 내렸다. <자본>을 출간하는 게 '검열'이라는 지적 족쇄를 깨는 역사적 의미가 있지 않나, 이런 생각도 했었고.

당연히 찍으면 고발이 되고, 유죄가 될 가능성이 크니까. 애초에 김 대표가 나는 철저히 보호해 주기로 했다. 그래서 가명으로 출판을 했다. 어차피 문화공보부에 납본을 하고 1주일쯤 뒤 검열을 받으면 판매 금지가 될 테니까, 딱 한 주만 팔자, 이런 각오였다. 실제로 그 한 주일 동안 전국에서 상당히 팔렸다. 물론 그러고는 바로 고발되었고.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그 뒤에 이론과실천의 김태경 대표가 당한 고초는 많이 알려졌다.

강신준 : 그렇다. 김태경 대표와 최광열 편집장은 곧바로 따로 도망을 갔다. 나중에 들으니 김 대표는 충청남도 서산의 외진 곳에서 회만 실컷 먹었다고 하더라. (웃음) 그 와중에 당시 김 대표의 아내였던 강금실 변호사가 남편을 변호하고자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로 개업을 하고.

프레시안 : 결국 담당 검사가 기소를 못했다.

강신준 : 그렇다. 검사가 기소를 하려면 <자본>이 이적 표현물이라는 걸 입증해야 했다. 그런데 검사가 대여섯 번을 읽어봐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니까 답답했겠지. 사실 <자본>은 경제학 전공자가 읽어도 어려운데, 검사가 단숨에 이해를 할 수가 있었겠나. (웃음) 그래서 검사가 자문을 구할 전문가를 찾았다.

1987년 당시에 <자본>에 대해서 얘기를 해줄 만한 학자가 진보 측에서는 김수행, 박영호, 고(故) 정운영 교수가 있었다. 모두 다 한신대학교에서 재직 중이었다. 이분들이야 검사 측에 유리한 얘기를 해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검사가 서울대학교에 재직 중이던 학자들 그러니까 경제학과의 안병직 교수, 고 배무기 교수 두 분에게 자문했다.

그런데 안병직 교수, 배무기 교수 모두 검사의 자문 요청을 거절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설사 두 분이 자문에 응할 의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당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의 분위기가 그런 것을 용인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만약 검사 측에 유리한 증언을 하면, 당장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을 테니까.

결국 검사가 기소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상황에서 도망을 다니던 김태경 대표는 서대문경찰서에 자수를 했고, 조서를 꾸미던 도중에 검사가 마침내 기소를 포기했다. 우여곡절 끝에 <자본>을 옥죄던 족쇄가 풀린 것이다. 이렇게 <자본>이 한국의 독자를 처음 만났다.

프레시안 : 이렇게 <자본>과 인연을 맺고 나서 1990년까지 이론과실천에서 <자본> 2권, 3권도 번역해 펴냈다.

강신준 : 뒷얘기를 더 하자면, 원래 김태경 대표가 <자본>을 그렇게 낼 생각은 없었다. 김 대표가,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상당히 권위 있는 학자에게 <자본>의 번역을 의뢰하려 했었다. 그런데 결국은 그 분에게 일을 맡길 수 없었다. 위험 부담을 염두에 두고 영세한 출판사가 감당할 수 없는 상당한 금액의 선인세를 요구했으니까.

아무튼 <자본>의 족쇄가 풀리고 나서 이론과실천은 당연히 2권, 3권의 번역을 의뢰했다. 마땅한 역자를 못 구한 상황에서 다시 김태경 대표가 나한테 제안을 했다. "2권, 3권도 자네가 번역을 하게!" 1권을 검토, 교열했던 인연도 있었고, 대학원을 다니던 나는 싸니까, 김 대표가 쉽게 제안을 할 수 있었겠지. (웃음)

프레시안 : 그 제안을 곧바로 받아들인 건가?

강신준 : 마침 내 신상에 변화가 있었다. 당시 나는 농협에 다니면서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박사 논문 때문에 휴직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휴직을 하는 도중에 생활비를 벌 방도를 찾아야 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던 김태경 대표가 많지는 않지만 매월 생활비를 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그래서 휴직하는 기간 동안 하루의 반은 논문에, 나머지는 번역에 할애를 하겠다, 이렇게 약속을 하고서 <자본> 2권, 3권의 번역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번역을 해 놓으니까, 이론과실천에서 2권, 3권은 실명으로 내자고 제안했다. 물론 이미 족쇄는 풀린 상황이었지만, 나로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실명으로 <자본>의 번역을 출판하는 순간 학계랑은 영영 인연이 없어지는 것이니까. 애초에 대학 교수할 생각은 없었지만, 나에게는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게 농협에 복직하는 데도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농협의 여러 선배들과 공식, 비공식 면담을 통해서 양해를 받고 나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있었다. '그래, 이런 역사적인 일에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내 이름을 올리는 게 얼마나 영광인가. 설사 <자본> 때문에 농협에 복직을 못한다고 하더라도 밥이야 굶겠나.' 그래서 2권, 3권을 번역해서 1990년까지 순차적으로 이론과실천에서 펴냈다.

사실 나중에 당시의 원고 상태를 살펴보면서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다. 그 때는 박사 과정을 막 마쳤을 때니까, 아직까지 <자본>은 물론이고 마르크스의 사상 자체에 대한 이해가 일천할 때였다. 사실 <자본>은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그 면모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데…. 젊으니까 무모했고, 무식이 용감했다. (웃음)

프레시안 : 학계는에선 엄두도 못 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동아대학교에 1991년에 임용되었다.

강신준 : 그러니까 <자본> 때문에 내 인생이 바뀌었다고 하지 않았나! 1990년에 <자본> 번역도, 학위 논문도 끝내고 나서 1991년 9월에 농협 복직이 예정된 상황이었다. 그 즈음에 (그 뒤 한나라당 국회의원,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박형준 씨가 나한테 이런 얘기를 했다. "형, 동아대학교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칠 교수를 뽑는데 지원해 봐요."

1978년에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입학한 박형준 씨는 내가 아끼던 동아리 후배였다. 하도 강권을 해서, 밑져야 본전이니까 교수 지원 서류를 준비해 그에게 줬다. 자기가 지원을 하면서 내 것도 낸 모양이었다. 정말로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동아대학교 교수로 채용이 되었다.

알고 보니, 동아대학교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자를 교수로 채용하려고 했는데 지원자가 거의 없었던 모양이다. 당시에는 <자본>을 제대로 읽은 사람도 없었고, 심지어 그것을 논문으로 쓴 사람은 더 귀했으니까. 그나마 있었던 몇몇은 이미 다른 대학에 자리를 잡았고. 그런 상황에서 <자본>의 역자가 지원을 했으니 학교에서는 맞춤하다고 생각을 한 거다. (웃음)

프레시안 : 학계와 인연을 만들어준 1등 공신이 <자본>과 박형준 씨인데, 그와도 여전히 친분이 있나.

강신준 : 1991년에 같이 동아대학교 교수로 채용이 되었으니까 학교에 있을 때는 친하게 지냈었다. 그 때까지는 박형준 씨도 좌파 성향의 학자였으니까. 그러다 2004년에 부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출마한다고 얘기를 해서 덕담을 주고받고 헤어졌다. 그 뒤로는 우연히 공항에서 한 번 본 것 빼놓고는 연락을 끊었다. 자기 갈 길을 간 거지.


ⓒ프레시안(손문상)

독일어 원전 번역 완간의 의미

프레시안 : 그렇게 인연을 맺은 이론과실천의 <자본>은 지금 출판사 사정 탓에 절판 상태다. 그리고 약 20년 만에 다시 새로운 번역의 <자본>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미 비봉출판사에서 나온 김수행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의 <자본>이 널리 읽히는 상황이다. 또 북한에서 번역한 <자본>도 있고….

강신준 : 우선 김수행 교수의 <자본>은 독일어 원본이 아닌 영어판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예전에 읽던 소설 중에는 일본어판을 중역한 것이 많았는데, 그것의 문제점이 여러 차례 지적되지 않았나. 하물며 1000년 동안 출판된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꼽히는 <자본>의 원본 번역본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독일어 원본과 영어판은 그 자체로 많이 다르다. 게다가 김수행 교수의 <자본>은 원전에 충실한 번역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독자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원전의 화폐 단위를 전부 다 한국식으로 옮겨 놓았다. 독일 사람이 썼는데 '근'이 나오고, '필'이 나오고.

프레시안 : 북한에서 번역한 <자본>은 어떤가?

강신준 : 그것도 문제가 많기는 마찬가지다. 잘 알다시피 해방 직후에 마르크스, 엥겔스가 잠시 주목을 받다가 곧바로 전쟁이 났다. 마르크스, 엥겔스에 관심을 가지던 이들이 남조선노동당(남로당) 계열이었는데, 전쟁이 끝나면 이들이 숙청을 당하면서 북한에서는 사실상 마르크스, 엥겔스 연구의 명맥이 끊겼다.

우리나라에서 <자본>을 한글로 최초로 번역한 학자는 역시 남로당 계열이었던 전석담 교수다. 전 교수는 국민대학교, 동국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다 월북해서, 나중에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전 교수도 <자본> 1권의 일부를 번역하다 말았고, 이후에도 작업의 진척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북한의 <자본>은 러시아판을 중역한 것인데, 이 러시아판 자체가 문제가 많다. 레닌 사후 스탈린의 해석이 대폭 반영된 책이기 때문이다.


▲ <자본>(전5권, 카를 마르크스 지음, 강신준 옮김, 길 펴냄). ⓒ길
프레시안 : 기존의 <자본>과 비교했을 때, 새로 번역을 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 무엇인가?

강신준 :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김수행 교수의 <자본>을 비롯한 기존의 번역은 학술적인 면에서 보자면 부족한 점이 많다. 그래서 최대한 독일어 원본에 충실한 학술적으로 문제가 없는 번역을 하고자 신경을 썼다. 번역의 대본인 MEW(Marx Engels Werke) 판의 쪽수를 병기해, 누구나 학술적 인용을 할 때 원본의 출처를 밝힐 수 있도록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20년 전에 번역을 할 때는 가능하면 원전을 직역했었는데, 이번에는 독자들이 읽기 쉬운 방향으로 했다. 오랜 공부로 뜻을 확실히 아는 것은 자신 있게 풀고, 독일어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 원전 속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경우에는 다소 어색하더라도 엄격한 독일어식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다.

독자들이 읽기 쉬게 하면서도 학술적 엄밀함을 놓치지 않는 번역으로,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으려고 했는데…. 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한 80점은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계속해서 보완해 나가자고 다짐하면서 일단 책을 내놓았다.

지금 왜 <자본>인가?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자본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책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21세기 지금 이 시점에 <자본>이 다시 번역되어야 하고, 또 가능하면 많은 이들이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강신준 : 그 질문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준비된 답변이 있다. 대개 지금까지 마르크스의 사상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자본>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데만 주력했지,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을 놓고는 침묵했다'고 입을 모았다. 과연 그런가? 나는 20년 넘게 현장의 노동자와 <자본>을 같이 읽으면서 이런 평가에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 생각해 보자. 오늘도 밥벌이에 지친 노동자들이라면 자본주의가 잘못된 체제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택시 기사는 12시간 맞교대로 일해서 하루 14~5만 원을 번다. 그 중 11만 원을 회사에 사납금으로 바치고, 자기는 고작 4~5만 원을 가져간다. 그 택시 기사들이 과연 이런 어처구니없는 자본주의 체제를 정상이라고 생각할까?

850만 명이나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어떤가? 자동차 공장에서 정규직 노동자인 옆의 동료는 연봉 6~7000만 원을 받는다. 그런데 자기는 그들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고작 연봉 2000만 원을 가져가는 게 전부다.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본주의 체제는 잘못된 것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자본>을 쓴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자본주의 체제의 임금 노동자라면 누구나 자본주의 체제가 잘못돼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 왜 그는 번역을 해보면 3000쪽이나 되는 어렵고 방대한 책을 썼을까? 단지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 이런 책을 썼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프레시안 : 그럼, <자본>에서 진짜로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강신준 :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에는 변증법이 있다. 그에 따르면 봉건 사회의 모순이 폭발하면서 자본주의 사회가 등장했다. 그 논리대로라면, 바로 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하나씩 점검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 이후에 등장할 사회, 즉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의 모습도 찾을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그의 기획이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의 구체적 상(긍정의 미래)이나 혹은 그런 사회로 이행하는 방법에 대한 지침(이행 수단)을 쓰지 못한 대신에, <자본>의 곳곳에 그런 '긍정의 미래'의 모습과 '이행 수단'의 내용을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간접적으로 남겨 놓았다.

노무현, 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진보 진영에 절실히 필요한 게 바로 '대안' 아니었나? 바로 그 대안의 단초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파헤친 <자본>의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한국 사회는 <자본>의 제대로 된 번역도 가지지 못한 채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한국 사회에서 <자본> 1, 2, 3권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나? 특히 <자본>에서 가장 대안의 단초가 많이 들어있는 부분은 3권인데, 그것까지 읽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단언하건대, 한 다섯 명 정도일 것이다. 대안에 대한 가장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을 안 읽었으니 진보의 수준이 낮을 수밖에….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로 촉발된 대공황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적으로 드러난 상황에서 <자본>은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는 대안 논의의 출발점이다. 지금이야말로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본>을 읽어야 한다. 바로 지금이 <자본>의 시대다.

금융 위기 예고한 <자본>

프레시안 : 방금 지적한 대로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로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마르크스의 <자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정체를 해명하는 데 <자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1970년대부터 얘기했던 이들도 머쓱해진 상황이다.

강신준 : <자본> 3권을 읽다보면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현대 금융의 특징을 얘기할 때 빼놓지 않고 언급되는 게 '레버리지(leverage, 지렛대) 효과'다. 개인이나 기업이 차입금 등 타인의 자본을 지렛대처럼 이용해 이익을 올리려다 결국은 금융 위기와 같은 일이 발생한다.

그런데 바로 이 레버리지 효과가 <자본> 3권에 등장한다. 마르크스는 이 레버리지 효과가 결국에는 공황을 낳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보았다. 얼마나 놀라운가? 140년 전의 마르크스가 오늘날 금융 위기의 본질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류 경제학의 상황을 보자.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다는 <맨큐의 경제학>이나 요즘 대안 교과서로 많이 읽히는 <스티글리츠의 경제학>은 항상 시장에서 시작한다. 현실의 경제는 생산-교환-소비의 3단계로 이어지는데 주류 경제학은 '생산'이 빠지고 '교환(시장)'부터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황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마르크스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공황은 생산 영역에서 시작된다.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을 얻고자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 이상의 상품을 생산한다. 이렇게 과잉 생산된 상품을 소비하려면 더 많은 소비가 필요한데, 이를 금융 자본이 부풀린다. 여기서 아까 언급한 레버리지 효과가 등장하고.

그러다 더 이상 과잉 생산된 상품을 소비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는데 바로 여기서 공황이 발생한다. 생산을 자신의 체계에서 뺀 주류 경제학이 공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1847년 대공황, 1929년 대공황, 2008년 대공황, 이런 전 세계적인 공황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지적한 학자는 마르크스가 유일하다.

이런 공황의 메커니즘을 설명한 부분이 <자본> 3권이다. 이곳을 보면 의미심장한 대목이 있다.

"(공황을 촉발하는) 신용의 주요 대변인들은 협잡꾼과 예언자의 얼굴이 함께 뒤섞인 모습을 하고 있다."

'예언자'라는 표현에 주목하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공황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을 통해서, 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의 경제의 조건을 따져보려고 했던 것이다. 공황이 일어나는 원인을 파악하면 그것을 극복할 수단을 궁리할 수 있으니까.

프레시안 : 예를 들자면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 게 가능할까?

강신준 :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과 소비가 불일치한다. 시장을 맹신하는 주류 경제학자의 바람과는 달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항상 생산이 소비보다 많이 이루어진다. 생산과 소비가 시장에서 균형을 딱 맞춘다면, 왜 기업이 그렇게 많은 비용을 소비자를 현혹하는 광고에 쏟아붓겠나?

이런 불일치의 파국적인 결과가 바로 공황이다. 그렇다면, 공황을 극복하는 방법은 생산과 소비가 가능한 한 일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시장을 맹신하는 이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이다. 100개의 상품을 빌 게이츠 같은 이들이 승자 독식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는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다른 방식은 1929년 대공황을 겪으면서 케인스가 단초를 제시했던 방법이다. 바로 100개의 상품이 생산되면 무조건 50개를 떼서 사회의 구성원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방법이다. 그 50개를 '사회 임금'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그것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복지 제도다.

실제로 1998년부터 전 세계가 금융 위기로 큰 충격을 받았을 때, 가장 피해를 덜 본 국가들이 독일, 덴마크, 스웨덴과 같은 유럽의 복지 국가들이다. 바로 이렇게 <자본> 곳곳에 숨어있는 대안의 단초를 찾는다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한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손문상)

마르크스가 꿈꿨던 사회는…

프레시안 : <자본>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마르크스가 꿈꿨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강신준 : <자본>을 오랫동안 공부하면서 확실한 답변을 얻었다.

먼저 생산 부분부터 살펴보자.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사회주의'라는 말도, '공산주의'라는 말도 쓴 적이 없다. "생산 수단에 대한 공동의 통제"라는 표현을 쓰긴 했는데, 이것을 "생산 수단의 국유화"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생산은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는 것이고 마르크스는 그것을 명확히 인식했다.

"생산 수단에 대한 공동의 통제"는 노동자 전체가 의사 결정을 포함한 생산의 전 과정에 참여하는 모습을 뜻한다. 그게 무엇인가? 바로 민주주의다. 흔히 마르크스주의하면 즉각적으로 소련의 볼셰비키가 보였던 소수에 의한 독재,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연상한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절대로 마르크스가 얘기했던 그것이 아니다.

실제로 레닌을 포함한 당대 최고의 마르크스주의자는 모두 다 이 사실에 공감했다. 내가 2006년에 번역한 칼 카우츠키(1854~1938년)의 <프롤레타리아 독재>(한길사 펴냄)를 보면 이런 사실이 잘 나온다. 이 책은 레닌이 1919년 10월 혁명을 통해서 정권을 잡은 후의 행보를 놓고 진행된 논쟁 속에서 나온 것이다.

레닌은 정권을 잡자마자 제헌의회를 해산하고, 비밀 정보기관을 가동해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탄압한다. 프랑스 혁명 때 로베스피에르가 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간 것이다. 이런 레닌의 행보를 놓고 당시 제2인터내셔널의 걸출한 마르크스주의자 세 사람(로자 룩셈부르크, 카우츠키,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 모두 반대하고 나섰다.

그런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보면 레닌 역시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공개적으로는 카우츠키에게 "배신자"라고 손가락질했지만, 정작 카우츠키와의 논쟁 속에서는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레닌 자신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카우츠키는 이 책 속에서 그런 고민이 담긴 레닌의 글을 인용하면서 주장을 편다.

역사가 말한다. 똑똑한 소수가 "좋은 사회"라는 답을 내놓고 다수가 그것을 따라가는 식으로는 절대로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그런 사회는 '천국'보다는 '지옥'이 되기 십상이다. 마찬가지로 사회 전체의 수준, 그러니까 그 사회의 노동자의 역량이 사회주의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결코 사회주의의 이상향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러시아의 상황이 그랬다. 결국 소수의 정치인이 다수의 노동자를 이끌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독재와 폭력으로 귀결되었다. 그 체제를 바로 노동자들이 1991년에 끝장내지 않았나?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소련을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는 민주주의를 강조한 마르크스주의가 옳았다는 걸 입증하는 사건이다.

그렇다면, 소비 부분은 어떨까? 마르크스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일하고, 필요에 따라서 소비하는 사회"를 말했다. "능력에 따라서 일하는 사회"는 앞에서 얘기한 대로 생산의 전 과정에서 노동자의 의사가 반영되는 것이다. 한편,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욕망을 사회가 더 많이 채워주는 것이 바로 "필요에 따라서 소비하는 사회"다.

독일, 덴마크, 스웨덴과 같은 복지 국가는 교육, 보육, 의료 등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욕망을 사회가 채워주려고 노력했다. 이런 기반에서 생산의 영역에서 개인의 창의성이 마음껏 발현되는 사회야말로 마르크스가 가려고 했던 바로 그런 사회다. 마르크스의 이상은 이미 부분적으로 실현되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이 실현할 수 있다.

마르크스 르네상스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자본>의 완간을 앞두고 2009년 독일에서 1년을 보냈다. 실제로 마르크스와 <자본>에 대한 열광을 실감했나?

강신준 : 난리다. 독일의 베를린에 있을 때 새로운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을 준비하는 학자들과 교류가 많았다. 그 중에 게랄트 후프만 박사가 대학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강의하는데, 금융 위기 이후로 수강 인원이 세 배로 늘어서 나중에는 인원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독일의 디츠(Dietz) 출판사는 금융 위기 이후 <자본>의 판매량이 2007년에 비해 세 배나 늘었다. 심지어 2009년 기독교민주동맹(기민당)과 사회민주당의 대연정이 깨질 때까지 사민당 소속으로 독일의 재무부 장관이었던 페어 슈타인브뤼크가 "마르크스가 여전히 옳다"고 선언을 하기도 했고.

독일에서는 사민당이 1959년 고데스베르크에서 채택한 강령에서 마르크스주의를 폐기한 이래로 현실 정치에서 마르크스가 설 자리가 없다. 그런데 최근에 오스카 라퐁텐을 중심으로 한 좌파가 사민당을 나와서 결성한 좌파당(LINKE)의 강령에 마르크스에 대한 재해석을 반영하려는 논의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흐름 속에서도 얼마나 마르크스가 되살아날지는 의문이다. 여전히 수십 년의 분단을 경험한 독일 대중에게, 특히 서독 사람에게는 마르크스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마르크스에 대한 거부감을 마치 한국의 마르크스에 대한 거부감과 똑같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독일의 금속산업노동조합에서 펴내는 일반 노동자를 위한 교과서 중 한 권을 보면, 임금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노동자가 받아야 할 임금을 이론적으로 따져보면 '지불노동'과 '부불노동(不拂勞動)'으로 나뉜다." 지불노동, 부불노동, 이런 개념을 사용한 이는 마르크스밖에 없다.

이렇게 독일에서는 마르크스를 명시적으로 내세우지 않지만, 자신들도 모르게 일상생활 곳곳에서 마르크스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것은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도 마찬가지다. 즉, 이런 나라에서는 마르크스를 얘기하지 않아도 모든 논의의 전제에 마르크스의 사상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대중은 물론이고 학자 중에도 마르크스의 주저인 <자본>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사회에서 '마르크스 이후'를 얘기한다.

프레시안 : 요즘에는 마르크스 대신 소스타인 베블런, 칼 폴라니, 생태주의자를 거론하면서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강신준 : 아까 얘기한 것처럼, 마르크스는 그 모든 사람의 출발점이다. 베블런, 헨리 조지, 발터 베냐민, 폴라니, 생태주의자 모두 서양이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한 세기 동안 소화한 마르크스의 유산 위에서 마르크스가 단초로만 제시했던 것, 혹은 그가 생전에 보지 못했던 자본주의의 모습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채우면서 자신의 사상을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들 모두의 출발점이 되는 마르크스의 유산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시류에 휩쓸려 마르크스 이후를 얘기한다. 여러 번 강조하지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본주의 비판과 대안의 출발점이 되는 마르크스, 특히 그의 주저인 <자본>을 다시 읽는 것이다.

냉전 시대 마르크스 연구의 한계

프레시안 : 1960년대부터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자본>의 재해석에 목소리를 높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의 사상 전체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위상을 낮춰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런 흐름은 한국의 지식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줬는데….

강신준 : 냉전 시대 마르크스의 사상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었다. 1917년에 혁명이 일어나고 정권을 탈취하자마자 레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당대 최고의 문헌학자 다비드 랴자노프에게 유럽 곳곳에 흩어져 있는 마르크스의 원고를 모아서 정리토록 한 일이었다. 비록 랴자노프는 레닌 사후 스탈린에게 숙청을 당했지만 이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원고가 소련으로 집중됐다.

얼핏 생각하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적자였던 독일의 사민당이 마르크스의 원고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정이 그렇지 않았다. 1930년대 사민당이 도피 중에 마르크스의 원고의 상당 부분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독지가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이 원고의 상당 부분을 지금 네덜란드의 국제사회사연구소(IISG)에서 보관 중이다.

심지어 이때 사민당이 경매 시장에 내놓은 마르크스의 원고 일부는 일본으로도 넘어갔다. 당시 일본의 오하라 연구소의 구성원을 비롯한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유럽까지 와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고를 수집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은 지금도 대단해서 한 권에 1500부 정도 찍는 MEGA의 절반 정도가 일본에서 소화된다.

이런 얘기를 길게 하는 것은 냉전 시대 마르크스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서다. 마르크스의 유고 중 상당 부분, 특히 <자본>을 비롯한 후기 원고의 대부분이 소련을 비롯한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상황에서 서구의 마르크스주의 지식인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경제학-철학 수고>(강유원 옮김, 이론과실천 펴냄)와 같은 초기 저작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에 대한 이들의 관심은 <자본>과 같은 후기 저작을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는 스탈린에 대한 문제제기의 의미도 있었다. 이러다 보니,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자본>을 폄훼하는 흐름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 중심에 바로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등의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있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프레시안 : 마르크스 사상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위상을 간단히 설명한다면….

강신준 : 앞에서도 언급한 MEGA를 예를 들어보자. MEGA는 현재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고를 보유하고 있는 네덜란드, 독일, 러시아, 일본 등이 공동으로 펴내는 새로운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이다. 총 116권으로 출간될 예정인데 현재 절반인 58권이 나왔다. MEGA는 1부, 2부, 3부, 4부로 구성돼 있는데 이중 2부는 전적으로 <자본>에만 할애됐다.

그런데 이 2부의 권수가 전체 116권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자본>이야말로 마르크스 사상의 모든 것이 용해된 그의 주저인 셈이다. 경제학뿐만 아니라 철학, 역사학, 문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이 <자본>에 달려들어서, 마치 금맥에서 금을 찾듯이 마르크스 사상의 정수를 추출해야 한다.


ⓒ프레시안(손문상)

<자본> vs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프레시안 :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월급쟁이들 사이에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샤론 레히트 지음, 형선호 옮김, 황금가지 펴냄)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그 책을 읽고서 많은 이들이 "아, 이건 거꾸로 읽는 <자본>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책의 메시지는 "노동자로 살면 만날 그 모양 그 꼴이니, 자본가(자산가)가 되어라" 이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착취를 당하는 노동자에게 저항하기보다는 차라리 자본가가 되라고 유혹하는 책이었다. 1980년대에 마르크스와 <자본>에 열광(만) 했던 많은 이들이 이런 유혹에 넘어갔다.

강신준 : <자본>에 엥겔스가 오늘날의 '재테크'를 놓고 이렇게 주석을 써놓았다. 재테크는 노동자가 만들어 놓은 잉여가치를 자본가가 나눠 먹고자 경쟁하는 것이라고. 물론 이런 경쟁에 노동자도 참여할 수 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이런 경쟁에 참여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책이다.

그런데 노동자가 그런 자본가 사이의 경쟁에 참여해 돈을 벌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마르크스가 <자본> 3권에서 개별 자본가가 자본가 사이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지배할 수 있는 자본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써놓았다. 워런 버핏이나 조지 소로스가 대자본을 이용해서 버는 돈과 이른바 '개미'가 버는 돈은 비교할 수가 없다.

여기에서 또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1997년 외환 위기를 지나면서 2000년대에 본격적으로 재테크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1997~98년에 주식 시장, 부동산 시장의 폭락했다가 오르면서 현금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엄청난 차익을 챙기면서 모든 사람이 재테크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버핏이나 소로스나 또 개미들의 몫이 커지려면, 마르크스의 설명을 염두에 두면, 잉여가치가 커져야 한다. 잉여가치가 커지려면 노동자를 착취해야 한다. 누군가의 '대박' 뒤에는 노동자의 '착취'가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1997~98년을 기점으로 한국 사회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정부의 공식 통계를 봐도, 1997년 이전에는 비정규직이 250만 명이 안 되었다. 그런데 2009년도 비정규직은 570만 명이다. 정부 통계를 그대로 따라도 노동자 300만 명이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학자들은 비정규직이 350만 명에서 850만 명으로 약 500만 명이 늘어난 것으로 본다.)

1997년 이전에 월 250만 원을 받았던 노동자 300만 명이 이제는 150만 원씩 월급을 받고 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에게 애초에 월급으로 갔어야 할 돈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 돈이 다 재테크 시장에서 대박 터뜨린 이들, 그러니까 버핏, 소로스 같은 사람의 주머니로 돌아간 것이다.

정상적으로 받아야 할 월급 100만 원을 300만 명이 덜 받았다고 치자. 한 달이면 3조 원이다. 1년이면 36조 원, 13년이면 수백조 원이라는 엄청난 규모가 된다. 이렇게 노동자에게 착취한 돈이 다시 그 노동자, 즉 대박을 꿈꾸는 개미에게 돌아올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나는 15층 빌딩에서 뛰어내려 살아남을 확률과 비슷하다고 본다.

물론 개미도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 15층 빌딩에서 뛰어내려도 살아남는 사람이 가끔씩 뉴스에서 화제의 인물로 등장하는 것처럼. 자, 15층 옥상에서 뛰어내릴 자신이 있는 사람은 계속 재테크에 몰두해라. 그럴 자신이 없는 사람은 이 잘못된 자본주의를 가만히 둬서는 안 된다.

나한테 소박한 꿈이 있다. 제대로 된 노동조합이라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이렇게 변했으면 좋겠는데, 조합원에게 '노동 계급의 성서'인 이 <자본>을 선물로 줘야 한다. 지금도 노동조합 창립 기념일에 많은 돈을 들여서 조합원에게 선물을 준다. 텐트 같은 것. 그런 데다 돈을 쓸 게 아니라 이 <자본>을 조합원에게 나눠줬으면 좋겠다.

만약 그런 일이 현실이 된다면, 10주든 20주든 노동자들이 원하는 만큼 강의를 할 의향이 있다.

노동자가 <자본>을 읽는 방법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마르크스 본인도 얘기했듯이 <자본>은 읽기 쉬운 책이 아니다. 사회과학을 공부하지 않은 보통 사람이 <자본>을 읽기는 더욱더 어려울 것이다. 특별히 권하고 싶은 <자본> 읽기 방법이 있는가?

강신준 : <자본>은 앞부분이 어렵다. 보통 제1편(상품과 화폐)을 읽다가 더 이상 진도가 안 나가는 경우가 많다. 나는 뒷부분부터 읽기를 권한다. 1권 제4편(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부터 읽으면 좋다. 4편의 앞부분도 읽기 힘들면 12장 정도부터 읽으면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다.

제7편(자본의 축적 과정)도 읽어볼 만하다. 특히 7편의 제23장(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 법칙)은 나라와 연도만 빼면 한국의 얘기와 똑같다. 노동자를 정규직/비정규직으로 가르고, 임금을 깎고, 해고를 하고…. 이렇게 1권도 앞이 아니라 뒤부터 읽다 보면 <자본>에 익숙해질 수 있다.

2권은 경제학 공부를 하지 않은 독자라면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반면에 아까 언급했듯이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를 고민할 때 자극이 될 만한 부분이 많은 3권은 읽어볼 만하다. 특히 공황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설명한 부분이 중요한데, 한국 사람들은 요즘 화폐 금융 쪽에 상식이 많아서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3권을 읽다 보면 재테크에 눈을 뜰 수도 있다. 나 같으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같은 책을 읽을 게 아니라 자본주의의 핵심 비밀을 파헤친 <자본>을 읽겠다. (웃음)

프레시안 : 최근에 낸 <그들의 경제 우리들의 경제학>(길 펴냄)을 포함해 <자본>에 대한 해설서를 몇 차례 펴냈다. 그 책들은 <자본>에 대한 정확한 설명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자본>을 읽을 때 같이 보면 좋을 만한 책이 또 있는가?

강신준 : 요즘에는 <자본> 해설을 하는 책이 많이 나와서 그 중에서 한두 권만 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처음에 폴 말러 스위지의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The Theory of Capitalist Development)>(이주명 옮김, 필맥 펴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정리가 아주 잘 된 책이다.

그러나 어떤 해설보다도 <자본>을 직접 읽는 게 좋다. <자본>을 강의하는 독일의 교수들에게도 의견을 물었는데, 나랑 똑같은 의견이었다. 한 번 마음먹고 1권의 23장부터 천천히 읽어보라. 답답한 현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될 뿐만 아니라, 본인이 찾고 있었던 해답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 번역은 진행 중

프레시안 : 오랫동안 <자본> 번역에 매달려 왔다. <자본> 완간 이후에 계획하는 일이 있나?

강신준 : 이렇게 번역한 <자본>을 노동자들과 같이 읽는 일이다. 지난 학기에 전국금속노동조합 조합원 100여 명과 8주 동안 <자본> 강의를 했다. 앞으로 그들과 <자본>을 같이 읽으면서, 그들의 문제의 해답을 같이 찾아볼 생각이다.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자본>에서 단초처럼 제시된 대안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축적된 성과를 논문으로도 발표하고, 구체적인 정책으로도 내놓을 예정이다.

프레시안 : <자본> 외에도 번역이 안 돼 있거나, 번역이 다시 되어야 할 마르크스의 저작이 있는가?

강신준 : 사실은 MEGA를 펴내는데 참여하는 일본 도호쿠 대학교 오무라 이즈미 교수 등이 중심이 돼 마르크스의 원고 중에서 공황과 관련된 부분만 편집해서 책으로 펴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일본에서 그 작업이 이뤄지면 그것은 번역을 해서 국내에 소개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의 저술 계획 속에서 <자본>의 4권에 해당하는 <잉여가치학설사>도 번역해야 하는데, 분량이 많아서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언젠가는 해야 할 작업이다.

프레시안 : 인터뷰 중에 MEGA 얘기가 종종 나왔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철학자들을 포함해 MEGA 번역에 관심이 있는 학자들, 출판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본> 역자로서 MEGA 번역에 직접 참여할 의사가 있는가?

강신준 : 고민도 하고, 준비도 하는데 엄두가 안 난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를 MEGA 번역을 시작하려면 장애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두 권 하고 그만둘 수 없으니까. 장기간 번역에 몰두하려면 기금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사실 개인적으로 제일 급한 건 <자본>의 문헌 비판이다.

이번에 번역한 <자본>은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두고 1957년과 1968년 사이에 소련과 동독이 중심이 되어 발간한 MEW 판이다. 이 <자본>은 엥겔스가 정리한 원본을 놓고 소련, 동독의 학자들이 주를 다는 등의 작업을 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이 <자본>을 완성하기까지 세 벌의 초고가 있었다.

이것을 일일이 검토해서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 확인하고, 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자본> 번역도 아직 끝난 게 아닌 셈이다.

프레시안 : <자본> 역자로서 MEGA 번역을 비롯해서 마르크스의 저서의 번역에 나서려는 이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가? '함부로 시작하지 마!'와 같은…. (웃음)

강신준 : 한국에는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학자가 없다. 시류에 자꾸 흔들린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정체를 규명하는 데 마르크스만큼 중요한 학자가 막스 베버인데, 한국에서는 베버를 제대로 연구하는 학자도 없는 것 같다. 그나마 최근에 베버의 주저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김덕영 옮김, 길 펴냄)이 제대로 번역돼 나왔으니까….

초심을 버리지 않고,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마르크스를 연구하다 보면 언젠가는 광맥에 닿는다. 내가 그렇다. 20년 동안 동아대학교에서 마르크스를 강의하면서 <자본>을 읽었다. 또 해설서를 펴내느라 꼼꼼히 본 것도 여러 번이다. 그런데 한 15년이 지난 2004~5년에야 <자본>에 대한 깨달음이 오더라. '아, 이 책의 구조가 이렇구나.' 그 때야 어렴풋이 감이 왔다.

내가 존경하는 학자 중에 고 김진균 선생이 있다. 그 선생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고향 마을의 느티나무는 내가 동네를 떠날 때도 그 자리에 서 있었고, 타지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서 지쳐서 찾아가도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내가 죽을 때도 그 자리에 서 있다고. 이 느티나무처럼 한 곳에 뿌리를 내려라. 한 길로 매진하면 반드시 열매가 나타난다.


ⓒ프레시안(손문상)

우리의 천국은 우리가 만든다

프레시안 : 마지막 질문이다. <자본>과 같은 공부를 위한 책 외에 즐겨 읽는 책은 무엇인가?

강신준 : 나는 원래 문학을 좋아한다. 특히 소설을….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끊임없이 옆에 두고 반추한 소설이 이청준의 작품이다. 군대에 있을 때,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견해가 다르겠지만, 나는 이 소설을 굉장히 정치적인 작품으로 여긴다.

그 안에 마르크스가 얘기했던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핵심이 들어 있다. 한 사람이 소록도로 내려가서 나병 환자를 위한 천국을 건설한다. 그런데 정작 그 사람에 천국은 소록도의 환자들에게는 지옥이다. 당신의 천국이 우리의 지옥이다. 천국은 누가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나는 이게 바로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청준의 소설은 여러 번 읽으면서 음미해 볼 만하다.

다른 책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최근에는 레닌 관련 책이 여럿 나오지 않았나? 지젝 등이 공저한 것을 비롯해서. 나는 비교적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는데 사실 쏙 마음에 드는 책이 없었다. 마르크스만큼은 아니어도 레닌의 글에서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지금까지의 시도는 불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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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의 기자 생활 도중에 적지 않은 외국의 저명인사를 인터뷰했다. 그들 중 다수는 한국에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으로 알려진 이들이다.

지난 4일 한국을 방문한 영국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 테리 이글턴도 그런 인물이다. 그의 방한 소식을 듣자마자 인터뷰를 계획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더구나 '프레시안 books'는 최근 두 차례에 걸쳐서 그의 책(<신을 옹호하다>, <반대자의 초상>)을 소개하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이글턴과의 인터뷰는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그를 초청한 고려대학교 영미문화연구소에 인터뷰 요청을 했으나, "그가 거절했다"는 답변을 받았다. 영미문화연구소 측의 전언에 따르면, 그의 거절 이유는 이렇다. '나는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는데, 인터넷 매체와 인터뷰를 하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실제로 이글턴은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수차례에 걸쳐서 "자신은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그는 최근에 휴대전화가 생겼지만, 그것도 들고 다니지 않으려고 노력한단다. 왜냐하면 길을 걷다가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기" 때문이다.

이런 이글턴다운 대답을 들으면서 수긍이 갔다. 사실 1943년생인 그의 나이(67세)를 염두에 두면, 7박8일간의 이번 방한 일정은 빡빡했다. 장시간의 비행기 여행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서울, 광주, 대구에서의 총 다섯 차례의 강연이라니….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언론과의 인터뷰를 거절하고 싶었을 것이다.


▲ 테리 이글턴. ⓒ프레시안(최형락)

마르크스주의자, 신을 말하다

다행히 한국에서의 공식 일정이 시작된 지난 6일 오전 짧게라도 이글턴을 만날 수 있었다. 주최 측에서 기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했기 때문이다. 약 한 시간에 걸친 이 만남에서 그는 '종교', '윤리', '신념', '사랑'을 얘기했다. 마침 2009년에 펴낸 <신을 옹호하다(Reason, Faith and Revolution)>(모멘토 펴냄)가 나온 탓인지 기자들의 질문도 대동소이했다.

그 자리에서 나왔던 인상 깊은 이글턴의 얘기를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우선 쏟아진 <신을 옹호하다>에 대한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신을 옹호하다>를 보고 아마도 마르크스주의자가 신을? 이런 반응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아는 독자라면 이 책에 놀랐을 리가 없다. 나는 영국 맨체스터의 아일랜드계 노동자의 가정에서 가톨릭 신자로 자랐다. 1966년에 낸 첫 책(<The New Left Church)>도 진보적 가톨릭 운동에 대한 것이다.

더구나 마르크스주의자가 신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발터 베냐민, 에른스트 블로흐와 같은 이들도 신학의 자장 속에서 자신의 이론을 일궜고, 남아메리카의 성직자들은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의 만남을 통해서 '해방 신학'이라는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었던 전통을 세웠다.

최근에는 자크 데리다,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과 같은 좌파도 신학을 급진적으로 재구성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현실을 돌파할 무기를 찾는 좌파에게 신학이 새로운 자원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신을 옹호하다>와 올해 출간한 또 다른 책(<On Evil>)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1990년대 이래 좌파가 현실에서 힘을 잃어가고 나서, 좌파는 자기 생각을 반성해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오만하지 않고, 타자에게 열린 모습으로의 변화를 꾀했다. 이때 그들을 사로잡은 주제가 바로 윤리의 문제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바로 신학이 부상했다."

마르크스주의자, 윤리를 말하다

그러나 윤리는 이글턴이 비판하던 흔히 '포스트모더니스트'라 불리는 후기구조주의자들도 집중했던 문제가 아닌가? 최근의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과 같은 급진 좌파들의 윤리에 대한 관심과 후기구조주의자의 그것은 어떤 점에서 같고, 어떤 점에서 다를까? 또 그는 이 문제를 어떻게 정리하고 있을까? 평소에 궁금했던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더구나 이글턴은 국내에도 최근 소개된 2003년 서평을 모아 펴낸 책에서(<반대자의 초상(Figures of Dissent)>) 알랭 바디우를 평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간략히 언급했었다. 그 동안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 생각도 좀 더 구체화되었을 것이다. 기회다 싶어서 질문을 던졌다.

"푸코, 데리다와 같은 후기구조주의자들이 윤리의 문제에 집중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주장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밝히려면 아주 자세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윤리를 얘기하려면, '오늘날 윤리의 기반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기반에 대해서 답을 못한다.

데리다의 경우를 보자. 그는 윤리에 대한 논의를 펼치면서 칸트를 언급한다. 그러나 칸트는 윤리를 말하면서 '당위', '의무'를 강조한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겁을 주는' 방식은 성공할 수 없다. 그렇다면, 윤리를 얘기하면서 칸트가 아닌 어떤 원천이 있을까?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얘기했던 '덕성'을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공동체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자기실현의 한 수단으로서의 '덕성'을 강조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윤리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강조하건대, 덕성을 얘기하는 것을 고리타분하게 여기는 사회는 '잘못된' 사회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이런 얘기를 2007년에 펴낸 책(<The Meaning of Life)>에서도 강조했었다."

실제로 이글턴은 2008년에 윤리학에 대한 책(<Trouble with Strangers : A Study of Ethics>)도 한 권 펴냈다. 이 책에서 이글턴은 마르크스주의자답게 '추상적 도덕'보다는 윤리가 가능한 '사회적 조건'을 강조했었다. 그러나 이날은 현장의 분위기 탓인지, 이런 얘기는 들을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자, 사랑을 말하다

아마 이날 가장 인기를 끈 이글턴의 답변은 '사랑'이었다. 물론 그가 얘기한 사랑은 남녀 간의 낭만적인 사랑에 제한되지 않는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오늘날 사랑은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다. 사랑을 한정된 의미로만 사용하면 그것의 풍부한 의미를 포착하지 못한 채, 그것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축소하는 것이다. 서양에서 사랑은 '성적인 것', '낭만적인 것'으로만 여겨지는 경우가 있는데, 넓은 의미의 사랑을 정치적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

사실 마르크스가 <공산당선언>에서 얘기했던 이상향, 즉 '각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공동체'야말로 사랑이 넘치는 사회다."

이글턴이 얘기한 '사랑'은 최근 한국, 일본에서 대안적인 공동체를 고민하는 지식인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우애'에 훨씬 더 가까운 모습일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유산(자유-평등-우애) 중에서 가장 홀대 받았던 '우애'가 거의 200년 만에 세계 곳곳에서 강조되는 모습도 흥미롭다.

마르크스주의자, 신념을 말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랑이 넘치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바로 여기서 이글턴은 '신념(faith)'을 강조한다. 그는 이날 오후 4시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강연에서 바로 이 신념을 얘기했다. 약 30분에 걸친 강연에서, 솔직히 말하면, 그에게서 기대했던 명쾌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예수가 '다른 세상'을 꿈꾸면서 기꺼이 제국에 반대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모습, 제국의 박해를 무릅쓰고 예수를 따라서 순교자의 길로 들어섰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모습 등에서 일종의 '신념'의 원형을 본 듯하다. 그는 이런 '신념'이야말로 (이슬람, 기독교, 과학, 시장) 근본주의자들이 득세하는 이 시대를 극복할 일종의 '무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신념이 과연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이글턴이 강조한 대로 "기존의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희구하는" 비극적 휴머니즘이 이 시대에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그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그 대답은 우리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마르크스주의자, '빨갱이' 잡는 신문과 인터뷰하다

이렇게 한국에서의 첫 날을 보낸 이글턴은 저녁에도 쉬지 못한 듯하다. 이날 저녁 그가 한 보수 언론의 인터뷰에 응한 사실을 뒤늦게 들었다. 이 인터뷰가 누구의 의도였든 "세계적으로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가 한국까지 와서 한 일이 "빨갱이 때려잡자"는 언론과의 인터뷰라니! 그의 말대로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10일 현재까지 그 보수 언론은 어찌된 일인지 이글턴과의 인터뷰 내용을 부분만 공개했다. 그와의 인터뷰 사실을 알린 짧은 기사의 시작은 이렇다.

"북한은 사회주의를 굉장히 후진적 방식으로 실천하는 신(neo) 스탈린주의 체제입니다. 북한은 보편주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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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프랑스 철학을 대표하는 알랭 바디우는 한국의 철학도에게도 이제는 익숙한 이름이 되었다.

<철학을 위한 선언>의 첫 한국어판이 1995년 백의출판사에서 이종영의 번역으로 출간되었고, 그 후 <윤리학>(이종영 옮김, 동문선 펴냄), <들뢰즈 : 존재의 함성>(박정태 옮김, 이학사 펴냄), <조건들>(이종영 옮김, 새물결 펴냄), <사도 바울>(현성환 옮김, 새물결 펴냄), <비미학>(장태순 옮김, 이학사 펴냄) 등의 책들이 번역돼 이제는 쉽게 그의 사상을 접할 수 있다.

물론 바디우의 <존재와 사건> 같은 주요 저작이라 할 만한 책들이 아직 번역되지 않았고, 그의 철학적 사유의 난해함과 낯섦으로 그의 사상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적 어려움도 있지만, 시대를 가로지르는 그의 예리한 판단과 선언이 갈수록 설득력을 갖고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음은 분명하다.

실제로 철학적 사유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귀를 기울여 바디우의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강단 철학을 떠나 마치 실존주의, 마르크스주의와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이 그랬듯이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국내에 소개된 바디우의 <철학을 위한 선언>은 이 시대를 진단하는 예언자적 철학자의 강력한 외침으로 이해해야 한다.


▲ <철학을 위한 선언>(알랭 바디우 지음, 서용순 옮김, 길 펴냄). ⓒ길
<철학을 위한 선언>(1989년)은 혼돈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실천의 흔적이다. 니체 이후 반(反)플라톤적 사유가 지배적이 되었고, 형이상학의 종언을 통해 철학은 존재 위기를 맞았으며, 동시에 근대적 사유에 대한 비판으로 더 이상 존재에 대한 물음을, 진리와 주체에 대한 주장을 할 수 없는 철학의 장이 형성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이 책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바디우의 작업을 옮긴이는 해제에서 "철학의 귀환"이라고 말한다. 바디우는 플라톤적 몸짓을 취하며, 철학의 가능성을 선언하고, 존재, 진리, 주체의 지속을 말한다. 최근 수년간 <세계의 논리 : 존재와 사건 2>(2006년)가 나온 후, <철학을 위한 두 번째 선언>(2009년)이 나왔지만, 1988년 출간된 바디우의 이 책은 여전히 강력한 선언으로 읽힌다.

이 책은 또 공산주의가 몰락하는 상황을 앞두고 쓰였다. 잘 알려져 있듯이, 바디우는 사건을 말하는 철학자다. 옮긴이가 바디우의 <불투명한 재앙에 대하여>(1991년)의 내용을 언급하면서 강조한 것처럼, 그는 이미 오래 전에 죽은 현실 공산주의의 몰락을 '사건'이라 할 수 없으며, 더군다나 죽은 자의 죽음은 '사건'이 아니라고 규정한다.

정치적 재현의 체계로서 형성된 소련 스탈린의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철학을 과학과 궁극적으로는 정치에 봉합해 철학적 사유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126쪽) 바디우는 프랑스의 1968년 5월과 폴란드의 연대노조운동이 이른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함으로서 어떻게 철학의 탈봉합화를 보여주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디우는 정치적 재현의 체계로서 형성된 현실 공산주의 죽음을 정당한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이 시대에도 마오주의자임을 자처하며 "공산주의의 가설"을 주장하는 "평등"과 "해방"의 철학자다.

바디우는 <철학을 위한 선언>에서 철학의 가능성을 선언하면서, 그 조건으로 정치, 과학, 예술, 사랑의 4가지 유적 절차를 제시한다. 그는 새로운 한 발을 내딛기 위해서 하이데거와 그의 기술 이론에 근거한 허무주의를 근본적으로 비판한다. 하이데거처럼 기술에 근거한 철학에 종말을 선언하고 시로 "구원"의 문제를 떠넘길 것이 아니라, 철학이 아직도 자본의 높이에서 사고하는 법을 알지 못했으며 따라서 완성되지 못했음을 역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디우도 이 시대가 허무주의를 증언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바디우는 탈신성화 이후 도래한 우리 시대가 하이데거의 주장처럼 기술적이지도 허무주의적이지도 않다고 말한다. 철학적 사유를 불가능하게 하는 일련의 "봉합"을 만들어낸 역사적 흐름 안에서 빚어진 문제들이 허무주의보다 더 심각한 문제들이다.

이 책에서 바디우는 19세기가 폭넓은 봉합에 의해 지배되어 왔고 이로 인해 철학은 쇠퇴하는 것처럼 보였으며, 철학적 사유의 가능성이 봉합에 의해 닫혀져 있었다고 말한다. (94쪽) 한 가지 예는, 앵글로색슨의 아카데미즘적인 철학을 지배하고 있는 실증주의적 또는 과학주의적 봉합이다. 이로 인해 봉합된 정치는 자유주의적이고 의회주의적인 체제에 대한 실용적 방어 기제로 축소되었다.

마르크스주의의 정치적 조건에 대한 철학적 봉합은 또 다른 사례이다. 예컨대 스탈린의 지시로 만들어진 철학 사전에서 플라톤은 "노예 소유자의 이데올로그"라는 짧고 거친 내용밖에 나오지 않으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예술적 활동에서 실패했다. (95쪽, 144쪽)

정치와 과학에 의해 이중적으로 봉합되어 있는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의 편으로 뒤집으려고 시도한 알튀세르의 영웅적 노력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개입이었다. 과학보다 정치적 조건에 의한 지배의 봉합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알튀세르는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바디우는 19세기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유럽에서는 다른 주인을, 즉 시를 섬기려고 한다는 징후를 볼 수 있으며, 또 레비나스의 철학에 의해 사랑의 시종이 될 수 있음도 시사하고 있다. 철학의 몸짓은 탈봉합의 몸짓인 것이다.

<철학을 위한 선언>에서 우리는 본격적으로 사건과 유적 절차라는 바디우 철학의 핵심을 볼 수 있다. <존재와 사건>(1988년)에 이어 출간된 이 책은 옮긴이의 말처럼 바디우의 철학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바디우 철학을 위한 입문서로 추천할 만한 글이며 비교적 다른 저서에 비해 명료하며 쉬운 편이다.

그러나 바디우의 저술이 그렇듯이 함축적이며 이해하기 위한 선지식을 요한다는 점은 명심해야 한다. 이번에 새롭게 번역된 이 책은 이종영의 예전 번역 책을 더 이상 구입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저작권을 정식으로 구입해 서용순에 의해 새롭게 번역, 출간된 것이다.

새로 번역되어 출간된 이 책에는 바디우의 최근 현황을 비롯하여 그의 철학이 갖는 철학적, 시대적 함의와 또 바디우 저술의 연대기적 분석에 근거하여 이론적 변화와 그 의의를 추적하고 있는 해제가 담겨있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그에 대한 많은 궁금증과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역자의 땀의 결실의 산물임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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