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을 생각하는 이분법

아직도 '지식인/대중' 또는 '엘리트/대중'의 이분법에 의지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을까? 있는 듯하다. 대부분의 우파와 (소위) '지식인'의 일부가 그렇다.

그러한 이분법적 인식은 쉽게 재생산된다. 기실 매우 속편하고 별로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런 인식은 사고의 주체로 하여금 자신이 '엘리트'나 '지식인'이라는 허위의식을 누리게끔 해준다. 허점 많은 현대 민주주의 제도나 신자유주의라는 일종의 과두제가 대다수의 인간과 주권자(대중·민중·인민 등으로 호명되는)를 소외시키는 '물적 토대'일 것이며, 또 그것은 '지식인/대중' 또는 '엘리트/대중'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의 토대이기도 하다. 그 이분법은 '제도'나 '구조' 또는 그 작용의 결과인 '권력'의 자리에 주체(엘리트 혹은 지식인 등)를 놓은 논리적 오류의 소산이 아닐까?


▲ <군중과 권력>(엘리아스 카네티 지음, 강두식·박병두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바다출판사
바로 이런 점에서 재출간된 엘리아스 카네티의 <군중과 권력>(강두식·박병두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은 특별한 통찰을 담고 있는 책이다. 문제는 결국 권력이며, 권력을 배태시키는 인간 경험의 궁극적인 심급은 '(삶/)죽음'이라는 것이 책의 메시지이다.

따라서 이 책을 '대중은 무지한 일종의 개떼이다'는 식의 명제에 기초한 존재의 이분법을 증명하거나, 대중 행동의 양식을 설명하기 위한 참고서로 읽는 것은 심각한 오독이라 생각한다. (물론 오독은 자유다.) 또한 이 책 첫 장에서 제출되는 '군중은 언제나 팽창하기를 원한다', '군중은 평등을 지향한다', '군중은 밀집 상태를 원한다' 등의 명제는 탁월한 통찰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현대적인 대중 현상을 직접 설명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군중과 권력>의 내용적 본령도 아니다. 다만 도입에 불과하다. 아마도 이 첫 장을 읽고 지레 만족하거나 책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으리라. 십수 년 전에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도 그랬던 듯하다.

그러나 카네티는 '군중'에서 출발하여 장장 650쪽에 걸친 멀고 긴 길을 간다. 우선 종교로, 그리고 권력과 죽음의 문제로, 그리고 거기서 '살아남음'과 권력의 메커니즘으로. 긴 장정에서 결국 카네티가 멈춘 곳은 다니엘 파울 슈레버의 편집증 증례에서이다. (마침 최근에 이 권력자-정신병자의 자서전이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김남시 옮김, 자음과모음 펴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되었다.)

알다시피 슈레버는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환자' 중 하나이며, 프로이트 이후에도 라캉 등 많은 정신분석학자들이 주석 달기를 했던 20세기 초 독일의 미친 판사이다. 카네티는, 신의 여자가 되기를 원했다는 슈레버의 편집증 망상으로부터 권력의 근원적 속성을 논하여 전체 책의 대단원으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모든 권력은 일종의 편집증이며, 권력자는 궁극적으로 다른 인간 전체를 살해하여 '살아남는' 유일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때 '살해'는 상징이면서 또한 '심리적 현실'을 가리키는 그런 기표이다.

카네티의 장대한 사유의 드라마를 따라잡는 일은 쉽지 않다. 더구나 그의 서술은 다분히 비체계적이고 묘사적이라 사회'과학'과는 거리가 있어 뵌다. 때로 아포리즘에 가까울 정도로 '문학적'이다.

한국에서의 대중론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분명 '대중(대중 현상)'에 대한 우파적인 공포와 엘리트적인 불안을 담은 구스타브 르봉이나 오르테가 이가세트의 책과는 비교되기 어려운 차원에 있다. 유럽에서의 민족주의의 대두와 제1차 세계 대전 전후의 대중 현상에 근거해서 쓰인 구스타브 르봉의 <군중 심리>나 오르테가 이가세트의 <대중의 반역> 등은 국내에서 읽히는 대중론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이들 책이 읽히는 이유는 물론 근대 초기의 대중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겠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대단히 초기적이며 유럽 국민주의의 대두를 배경으로 한 것이라 오늘날의 현실에 대한 설명력은 매우 낮다. 원론적이고 1차원적인 논의가 대부분이라 생각된다.

더구나 파시즘·나치즘이 본격적으로 대두하기 전 상황을 배경으로 한 것이라서, 그 야만의 뜨거움(전체주의적 광기)과 차가움(기계화된 관료주의 살인 시스템)을 처절하게 체험하고 난 뒤에 비극의 톤으로 써진 베냐민·아도르노·라이히 등의 책과는 격이 다르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중의 반역> 같은 책이 대중론의 대표격으로 이해되거나 때로 심지어 고전으로까지 간주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귀족 사회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급격히 (소)부르주아 국민주의의 그것으로 대체될 때 토로된 불만이, 오늘날 한국에서 귀족연하는 '지식인'의 구미에 잘 맞거나 대중 현상의 표피를 설명하는 (우파적) '개론'으로서 적절하기 때문이지는 않은가?

한편, 유럽과는 다른 맥락을 가진 한국이나 아시아에서의 대중과 국민주의의 출현의 역사를 다룬 적절한 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생각해볼 수 있다. 만약 대중과 군중 개념의 정초자들이 중국과 인도, 혹은 터키나 인도네시아 등의 민중이 대중이나 국민으로 되는 과정과 제3세계 민족주의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했다면, 상당히 다른 논점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한국의 대중 현상과 그 역사성에 대한 논의도 이제야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역시 최근 발간된 <좌우파 사전>(구갑우 외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에서 한국 대중론의 쟁점을 정리해 놓고 있다.)

요컨대 카네티의 책도 <군중 심리>나 <대중의 반역> 등과 맥락과 논점 자체를 달리하기에, 동렬에 놓고 읽혀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한다. 카네티의 책과 비교되어야 할 것은 비슷한 시기에 제출된 마르쿠제·아도르노의 저작들, 그리고 혹은 아예 다른 지적 배경을 품고 대중사회를 논한 버밍엄 학파의 논변이 아닐까 싶다.

군중의 함축과 카네티의 발상법

다시 <군중과 권력>으로 돌아가자. 필자는 허두를 대중 인식의 문제로 시작했다. 하지만 분명히 할 필요가 있겠다. <군중과 권력>은 대중에 관한 책이 아니라, 군중에 대한 책이며 권력(의 본성)에 관한 연구서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군중'은 우리가 흔히 쓰는 '대중'이나 '민중' 등과는 다른 함축을 가진 어휘이다. 독일어 'Masse'의 뉘앙스는 모르지만, 역자들이 국역본 제목에서 '대중'이 아니라 '군중'을 택한 것은 아주 적절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어에서는 '군중'과 '대중'의 어의·어감 차이는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군중'은 어떤 공간에 있는 무리와 그 무리가 만들어내는 인간 현상을 가리킨다. 또 그 함축은 거대한 무리가 운동하고 감흥하는 동적 상태와 연관되는 데 적절하다. 따라서 공간과 운동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한 군중론의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

'대중'은 좀 다르다. 그것은 우선 '민중·공중·국민·다중' 등의 단어들과 인접어이다. '대중'은 또한 매스미디어와 자본주의, 민족주의와 대의제 같은 개념과 직접적인 환유관계에 놓인다. 또한 '대중'은 곧바로 '현대'와 그 주체성의 문제를 야기한다. 그러나 '군중'은 그에 비해 좀 더 원형적이고 초역사적이다.

카네티의 군중과 권력에 대한 논변은 인간의 본능적 충동이나 인류사의 원(遠)과거로 환원된다. 서문에도 명기되어 있는 바, 그는 아주 구체적인 모티프로부터 출발했다. 그것은 저자가 직접 체험한 20세기 초 중부 유럽에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야기한 대중 현상과 나치의 개전(開戰)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논변은 책의 거의 모든 곳에서, 원시 부족과 전제국가 혹은 그보다 더 오래된 전설과 신화를 끌어들여 전개된 것이다. 이런 점은 <군중과 권력>의 발상법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라 보인다. 그에게는 나치가 설쳐대던 1930년대의 "독일이야말로 원시적인 형태를 띤 전쟁이 마지막으로 터진 현장(617쪽)"이라고까지 여겨진다.

인류사의 원과거와 나치 독일이 연속선상에 있다기보다, 나치 독일이 벌인 일들이 인간 존재의 본질을 묻게 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쉽겠지만, 기본적으로 카네티는 인간의 원초적인 성벽이나 프로이트주의적인 유적 인간론을 믿는 듯하다.

카네티는 확실히 전쟁과 학살에 들려있다. 이런 발상법이 유태계 후손인 그의 고유한 성향에서 비롯된 것인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중부 유럽 지성의 한 풍경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대학살이 벌어진 시체 더미 속에서 일어서는 인간'이라는 바운드 모티프가 <군중과 권력>을 시작하고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발상과 논법은 그의 글을 상당히 문학적으로 보이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종의 환원론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나치 이외에는 20세기의 권력 현상을 구체적으로 다루지도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심을 염두에 둔 것인지, 카네티는 최후의 장 <에필로그>에 가서야 문득 길고 긴 상념에서 깨어난 듯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현재 하나의 신앙이 있다면 그것은 생산에 대한 신앙, 즉 증식에 대한 근대의 열망이다. 그리고 세계의 모든 국민은 잇달아 그것에 굴복하고 있다. 이 생산 증가의 여러 결과 가운데 하나는,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결핍 상태에 빠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은 재화를 생산하면 할수록 더 많은 소비자를 필요로 한다. (…) 비록 피상적이기는 하지만 기업은 모든 영혼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세계 종교들과 비슷하다. (616쪽)

오늘날에는 단 한 사람이, 그의 조상들의 모든 세대가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인간을 단번에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 이토록 엄청나게 급성장해 있는 살아남는 자를 다루는 방법이 도대체 있는가의 여부가 오늘날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현대 생활의 전문화 및 유동성 때문에 우리는 이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가 갖는 단순함과 긴박함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619~620쪽)

기업(시장)의 권력과 군중의 관계, 그리고 '전문가주의' 때문에 더욱 매개성이 강해진 현대 정치에 대한 예리한 논변이라 하겠다. 하지만 여전히 모호하다. '살아남음'론은 상당히 다의적으로 느껴진다. 카네티의 책은 전쟁과 학살 같은 어떤 궁극의 순간들에 꺼내 봐야할 묵시록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권력이라는 정신병 또는 권력자-신경증자 분석의 필요

그럼에도 그의 통찰은 권력과 군중의 역동(dynamics)에 대한 '다른 인식'을 제공해준다. 카네티의 정치학은 영미식 정당론이나 대의제론들은 결코 다루지 않을 주제와 문체로, 원초적인 도덕 감정과 무의식의 힘으로 행해지는 정치 행위의 심층을 사유하게 한다.

그래서 이번에 이 책을 재독할 때, 우리가 역사를 통해 보아왔던 또한 '지금-여기'의 현실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정치 권력과 그 담당자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반도의 정치사 또한 '죽음/살아남음'과 뗄 수 없는 관련을 맺고 전개되어 왔다. 그 속에는 학살과 전쟁, 그리고 쉼 없는 '예외 상태'가 개재되어 있다.

그 경험들은 어떤 정치적 (무)의식으로 작용해왔던가? 수없이 많은 의문들이 새삼 다시 떠오른다. '업적'이 아니라 죽음이 그들의 권력과 그들이 운영했던 국가성(stateness)을 재고하게 한다. 왜 4·19의 군중은 학살자 이승만을 살려줄 수밖에 없었는가? 누구보다 '살아남은 자'의 개념에 잘 들어맞는 절대 권력자 박정희는 왜 그런 식으로 부하에게 총살당했는가? 등등.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군중'. '살아남음'과 '죽음'이라는 모티프로 정치를 생각한다면 당분간 그들을 피해가기 어렵다. 하다못해 다음과 같은 구절 때문이기도 했다.

"비교적 자유로운 정부에 대해 사람들이 품는 의혹은 일종의 멸시로 변하는 경우도 흔히 있는데, 이것은 비밀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 독재에 부수되는 위엄의 대부분은 비밀의 집중된 힘이 있기 때문에 생긴다. 민주주의 체제하에서는 비밀이 여러 사람들에게 분산되어 그 힘이 약화된다." (397쪽)

카네티에 의하면 권력의 깊은 핵심은 비밀이다. 권력은 그 내면을 간파당해서는 안되기에, 권력자는 과묵해야 되고 그 신조나 의도는 아무도 몰라야 한다. 권력자는 과대한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밀이 많고 타인들이 서로 감시하도록 하기 위하여 비밀을 체계화시킨다. 많은 '국민'을 살해한 1960~80년대의 절대 권력은 수없이 많은 의문사와 의혹 사건들을 저질렀다. 반면 '민주정부'는 '진실규명위원회'를 만들어 많은 사건을 다시 조사하고 재심의해야 했다. 이야말로 '민주정부'의 '업적'이었다.

도대체 '민주정부'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스스로 '대통령 못 해 먹겠다'던 식의 솔직함으로 '권위'를 해체하려 했다. 그러나 이는 '권력'을 이해하지 못한 소치였다. 아마도 이전까지의 권력과는 판이한 권력이 되기 위해서 '민주정부'는 배전의 노력을 기울인 듯하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자기 해체와 중증 신경증 환자들의 집요한 공격적 선동이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권력인 언론 재벌이 이리 저리 휩쓸어 몰고 다니는 인간 무리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군중' 개념에 잘 맞는 존재들이다. 왜 '민주정부'는 자신의 역능을 탈취당할 수밖에 없었을까? 단지 신문(언어)의 '프레임'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 카네티의 가르침일 것이다.

물론 반격도 있었다. 카네티의 말대로 "살아남는 순간은 권력의 순간이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한 투쟁에서 가장 저급한 형식은 살해이다." 아쉽게도 카네티가 자살의 권능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논의를 펼치지는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살아남음'이 아니라 '죽음'의 힘을 통해 '살아남음'을 이룬 드문 경우이다.

평범 이하 수준의 권력인 현 정권이 끝내 그 죽음을 극복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물론 그들도 만만치 않다. 그들에게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길들이기 위한 가장 세련되고 문명화된 수단'이나, 전쟁과 학살에서 살아남아본 세력의 후원도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한부이다.

민주주의는 궁극의 순간들의 기폭장치를 서서히 풀어 해체하고, 죽임과 주검들 사이에서 일어선 광인이 권력을 갖지 않게끔 죽임과 죽음의 미혹을 이성의 힘으로써 조절하는 것일 테다. 그러하기에 오늘날 이 땅은 조짐은 꽤 불길하게 느껴진다.

가장 원초적인 힘을 가진 권력의 부족들-슈레버보다 더 지독한 신경증에 시달리는 법복 무리들, 살아남기 위해 어떤 수단으로든 권력 세습을 강행하는 이런저런 씨족들, 그리고 죽임이 왜 가장 천박한 수단인지조차 이해 못하는 백치 같은 권력자 무리들이 발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우리는 한국에서의 '권력-정신병'의 역사를, 또한 '권력자-신경증 환자'의 증상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겠다. 물론 거기에는 병이 어떻게 군중의 힘으로 "방전(放電)"되거나 전위(轉位)되는지 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는 문화학이나 정치학의 새로운 (그러나 오래된) 숙제겠다. 너무 정신분석주의적인 결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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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조선의용군을 연구해온 서울시립대 교수 염인호가 최근 주목할 만한 저서를 냈다. 무려 722쪽에 달하는 두툼한 분량이다. 그동안 그는 해방 이후 중국 동북 지역으로 진출한 조선의용군 및 한인의 동향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그는 머리말에서 그동안 발표했던 여러 편의 논문 가운데 15편을 선정하여 대폭 수정·보완한 뒤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밝혔다.

평자가 보기에 <또 하나의 한국전쟁 : 만주 조선인의 '조국'과 전쟁>(역사비평사 펴냄)은 주로 1940년대 조선의용군의 활동을 다루었던 <조선의용군의 독립 운동>(나남 펴냄)의 후속작이 아닌가 한다. 염인호는 연변대학교(2001년)와 북경대학교(2010년)에서 각각 반 년간 체류하며 연구와 강의를 했고, 재중국 한인의 민족운동에 관심을 갖고 일관된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동안 연구 방향을 초기의 민족운동가 개인에서 민족운동 단체나 조직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민족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재중국 교민 사회로 넓혀왔다. 이번에 나온 책은 그러한 동향을 반영한 역작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새삼 중국 동북 지역, 즉 만주 문제의 엄중함을 깨닫게 해준다. 흔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조선족 동포들이 사실은 중국 동북 지역(만주)과 남북한 현대사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 <또 하나의 한국전쟁 : 만주 조선인의 '조국'과 전쟁>(염인호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역사비평사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인민군의 선봉에는 10개의 만주 조선인 연대가 있었다"라는 책 뒷 표지의 문구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만주 조선족 동포들의 존재감을 다시 일깨워 준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의 병력 21개 연대 가운데 10개 연대가 만주에서 이동한 한인들이 주력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한국전쟁 발발 3일 만인 6월 28일 서울의 중앙청을 점령한 부대 역시 만주에서 온 조선인민군 제4사단의 18연대였다는 사실은 우리를 상당한 충격에 빠지게 한다.

다 알다시피 중국 동북 지방은 고조선이나 부여, 고구려, 발해의 고토일 뿐만 아니라, 항일 투쟁의 전적지가 도처에 산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곳은 또한 매우 전략적 가치가 높은 요충지이기도 하다. 지난 8월 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동북 지방을 전격적으로 방문하여 국내외의 큰 관심을 끈 적이 있다.

특히 김정일은 길림 육문(毓文)중학교와 하얼빈 등 김일성 전 주석의 항일 투쟁과 연고가 있는 지역을 방문하여 그 배경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였다. 해방 직후나 한국전쟁 기간의 한중 관계를 되돌아볼 때 우리 민족이 이곳에서 전개한 항일 투쟁은 그 이후에도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쳤는데, 그러한 사실을 바로 <또 하나의 한국전쟁>을 통해 재확인 할 수 있다.

이 책은 서론과 제1부 연변 조선인의 '조국'과 한국전쟁, 제2부 북만주 지역 조선인 사회와 독립동맹의 조국 통일 전략, 제3부 중국 국민당 지구 한국독립당의 조국 통일 전략과 좌절, 결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연변 지역 조선인 사회, 2부는 북만주 지역, 3부는 중국 국민당 점령 지역의 조선인 사회를 다루었다. 주요 내용과 이슈가 될 만한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남북 대결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곧 국제전으로 확대되었다. 전쟁 초기, 중국 동북에서 온 조선인 부대를 앞세운 북한 인민군이 불과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을 때 중국 동북의 한인 사회는 축제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미군의 참전 이후 전세가 북한에 크게 불리해지다가 중국 '인민지원군'의 참전으로 역전되었다. 이처럼 불리했던 전세가 다시 반전되자, 중국 동북의 한인 사회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즉 일제 시기 항일 투쟁을 통해 형성된 '채권자 의식'이 사라지면서 자연히 중국 연변 지역(과거 북간도)의 북한 귀속론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후 중국공산당은 비교적 순조롭게 연변 지역에 '조선족자치구'를 성립시켰다. 또 중국 안의 다른 소수 민족과 달리 자기 조국(남한과 북한이지만 주로 북한을 지칭)을 지닌 존재로서 '국방의 의무'를 규정받았던 만주 한인들의 특수한 지위가 약화되었다고 한다. 중국 인민지원군 참전을 계기로 중국 동북의 한인 사회는 점차 중국 일반 사회와 같은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변화의 귀결로서 중국 동북 한인들의 공식적인 조국관이 크게 변화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한반도의 두 국가는 만주 조선인(또는 한인)의 조국으로 간주하기 어렵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1950년대 후반 '반우파 투쟁'과 '민족 정풍 운동'을 거치면서 '중국 유일 조국관'이 자리 잡게 됨에 따라, 중국 동북 거주 조선인들을 일컫는 '조선족'이라는 명칭도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중국 동북 지역의 한인 부대는 1949년 7월부터 차례로 북한으로 들어가 최종적으로 10개 연대 규모로 편성되었는데, 저자는 이를 '조선인의 귀환'으로 평가한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이들의 '입북'을 대체로 중국 공산당이나 중국 정부의 '파병'으로 파악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또 하나의 한국전쟁>에서 저자는 세가지 이유를 들어 이러한 사태가 '조선인의 귀환'이었다고 주장한다.

즉, ①중국공산당 스스로 만주 조선인의 조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임을 인정했다는 점, ②조선인 부대의 간부 및 일반 병사들이 '만주기지론'과 조국애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입북을 '귀환'이라 간주했다는 점, ③입북은 부대 단위로 이루어졌지만, 나중에 집단적으로 중국으로 돌아간 예가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고 있다. 이에 따라 "만주 조선 사단의 입북은 중국공산당 정권의 파병이 아닌 조선인의 귀환"이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저자의 주장은 상당한 타당성이 있지만, 현재 한국학계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이색적인 주장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추후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필자의 경우 염인호의 이러한 주장이 경청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액면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왜냐하면 중국 동북 지역 거주 한인들은 국공내전의 우여곡절을 겪는 과정에서, 중국공산당 정권이 수립된 이후 그 영향력 아래 놓여있었고, 북한 정권의 입김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약 3분의 1 정도의 서술 비중으로 다룬(491~677쪽) 제3부 '중국국민당 지구 한국독립당의 조국 통일 전략과 좌절'에서는 우리가 거의 알지 못했던 임시정부 계열의 한국독립당이 추진했던 남북 통일 전략과 여러 가지 노력을 서술하였다.

조선의용군 출신 지도자들이 미국의 남한 진출을 경계하면서 만주(중국 동북 지방)를 기지로 한 '조국 통일' 역량 구축을 구상했듯이, 임시정부의 여당 역할을 했던 민족주의 계열의 한국독립당 세력 역시 비슷한 맥락의 통일 전략을 구상, 실천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은 소련의 북한 진주가 남한 공산화 기도로 계속될 것으로 보고, 중국 동북을 '민주 기지'로 강화하여 미국과 협력하는 한편, 북한 지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다고 한다.

당초 그 구체적 방안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을 남한으로 조기 귀국시켜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독립당은 곧 광복군 확장 운동에 착수했다. 그러나 중국 관내 지방에서 이들의 광복군 확군 운동은 주체적 역량 부족과 미국의 임시정부 불승인 방침 등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그 결과 수만 명 규모로 북한으로 들어갔던 선의용군 출신들과 달리, 광복군의 주요 지도자였던 이범석 지휘 하에 1946년 5월 남한으로 돌아온 광복군의 규모는 500여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중국 관내 지방에서 실패를 경험한 한국독립당은 "중국과 합작하여 민주 세력을 다소라도 마련해놓고 남한과 호응하여 북한의 공산 세력을 구축"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한국독립당은 중국 동북의 국민당 점령 지역 각지에서 한인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코자 하였다. 그러나 1947년 중국 공산당의 하계 공세 이후 국공내전에서 중국국민당은 크게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따라서 한국독립당 계열의 활동 역시 크게 위축되었다.

결국 1948년 고립되어 중국공산군에게 포위된 남만주의 심양(瀋陽) 부근 국민당 지구 한인들은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였다. 그 결과 일부 유산자와 지식인들은 전세 비행기로, 다수의 일반 동포와 가난한 농민들은 걸어서 천진(天津)을 향했고, 그곳에서 미국이 보내준 배를 타고 남한으로 귀국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동안 주로 중국 학계에서 중국 현대사의 일부로 취급되었던 1940년대 후반 중국 동북 지역 한인의 역사를 한국 현대사의 일부로 수용하고 새롭게 조명했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되는 책이다. 저자는 '한국전쟁'이란 커다란 역사적 사건의 봉우리 위에서 만주 한인의 역사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들이 지닌 조선(한) 민족으로서의 정체성과 한반도에 대한 조국애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연변·길림·목단강시 등에서 발행된 한글 신문과 중국 당안관(檔案館 : 정부기록보존소의 일종) 소장 문서, 문화대혁명 시기 남겨진 원자료들을 통한 생생한 증언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격동기 한국 현대사의 치열했던 현장을 되살리고 있다. 격동의 역사에 투신했던 중국동북 한인들의 삶과 투쟁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사실상 거의 공백 지대로 남아있던 해방 직후 중국 동북 지역(만주) 한인들의 동향, 특히 조선의용군을 중심으로 한 한인(조선인)들의 동향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열의 한국독립당이 추진한 만주 진출 및 조국 통일 전략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학술저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때 논란이 되었던 연변 지역의 북한 귀속 문제 등은 아직도 우리에게 상당한 여운을 주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을 꼽아본다면 다음의 몇 가지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중국에서는 '만주'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고 있다. 주로 중국 동북 지역(지구) 또는 동북, 동3성 등으로 불리고 있다. 물론 당시에는 '만주'로 불렀고, 지금도 우리에게는 '만주'가 더 익숙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중국 동북 지방, 또는 '중국 동북'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한 이 책은 심양(瀋陽) 등 남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조선의용군 제1지대의 활동이나 변천과정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상당한 서술의 불균형이 아닌가 한다. 제1지대는 '이홍광지대'로도 불렸는데, 나중에 북한 인민군의 6사단의 주력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는 남만주의 조선인 사회는 차후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아쉬운 부분이라고 하겠다.

"또 하나의 한국전쟁 : 만주 조선인의 '조국'과 전쟁"이란 책의 제목도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왜냐하면 이 제목이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내용을 충분히 담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북한으로 들어왔거나, 중국으로 돌아간 한인들의 동향에 대해서도 향후 심층적 연구가 진행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굳이 사족을 달자면 목단강(牧丹江) 지역을 북만주로 분류할 수 있을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평자는 목단강 지역이 원칙적으로는 '동만주'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또 속표지 바로 다음에 있는 '연변·목단강지구' 지도에 표시되어있는 '연변조선족자치구'는 '연변조선족자치주'로 바꿀 필요가 있다. 1950년대 초 성립 당시에는 '자치구'였지만, 얼마 되지 않아 '자치주'로 바뀌었고, 현재도 자치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새삼 중국 동북 지역, 즉 만주 지역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이곳의 동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한국 현대사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국제 정세와 국제 관계, 이 와중에 커다란 정치 세력을 형성한 한인 사회의 위상, 그를 둘러싼 국제적 안목과 외교 안보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기도 한다.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이하여 이 책이 한국전쟁과 재중국 조선족(조선인) 사회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깊이 다가온다. '부록'에 실린 방대한 참고 문헌과 원자료 목록, 새로 발굴한 사진과 중국 당안관 문서 등이 저자의 성실성과 학문에 대한 열정, 부단한 노력을 말없이 증거하고 있다.

이 책의 발간 의미는 매우 크고 장점도 많다. 학계나 교육계, 일반에 기여하는 바 클 것으로 전망된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상당한 전문적 학술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의 기본적 소양만 있는 일반인이라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비교적 평이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많은 분들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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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이른바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은 인류 특유의 현실을 구성하는 것이 분명하다. 동물들은 인간처럼 이 감정을 둘러싸고 복잡 미묘하고 어지러운 행태를 보이지 않는다. 그들도 일정 정도 질투와 애착 등을 느끼고, 성의 분배를 둘러싼 갈등을 드러내 보이지만, 인간처럼 법석을 떨어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감정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현실들은 인간 특유의 어떤 것이며, 따라서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인간 사이의 사랑은 압도적으로 이성애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것은 너무나 자명해서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여겨져 왔고, 동성애는 오랫동안 일종의 질환이나 성적 변태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 동성애는 새로운 이해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직까지도 동성애가 완전히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동성애가 어두운 지하실을 나와 밝은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루이 조르주 탱은 <사랑의 역사>(이규현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라는 야심만만한 책에서, 이성애는 처음부터 자명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으며, 오랜 기간에 걸친 사회적/문화적/정치적 헤게모니 투쟁에서 동성애를 밀어내고 우위를 차지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문학 텍스트를 꼼꼼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그가 분석 대상으로 택한 텍스트는 프랑스 문학 텍스트인데, 이 주제를 중심으로 한 권의 소략한 불문학사를 썼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12세기부터 20세기까지 통사적으로 이 문제를 살펴보고 있다.


▲ <사랑의 역사 : 이성애와 동성애 그 대결의 기록>(루이-조르주 탱 지음, 이규현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루이 조르주 탱에 따르면, 이성애 문화는 12세기 초에 형성되기 시작한 궁정 문화 덕택에 서양에 등장했다. 그 이전 시대에 남녀 커플이 그 자체로 예찬되는 일은 없었으며, 특별한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시대 이전에 상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오히려 동성애 커플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봉건 문화를 떠받치고 있던 기사도 문화가 남성들만의 사회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그 물적 토대로 가지고 있다.

무훈 시에 나타나는 남성들 사이의 감정은 단순한 우정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이 비록 육체관계로까지 나아간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유명한 무훈 시 <롤랑의 노래>에 보이는 두 영웅 사이의 감정은 분명히 우정 이상의 '아모르(사랑)'였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는 텍스트는 그 밖에도 많이 있으며, 현실 속에서도 그 증거를 드러낸다. 필립 2세는 조프르와와 그리고 이어서 사자왕 리처드와 열정적인 관계를 맺었다.

저자는 이 시대의 동성애적 관계는 중세 사회의 전면적이거나 통일적인 특징과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사적으로 체험되는 오늘날의 우정과는 달리, 중세기의 우정은 사적이면서도 동시에 공적인 관계였다. 심지어는 왕이 서로 깊은 우정을 맺도록 명령하기도 했다. 이러한 특성은 중세 사회의 필요와 일정 부분 연관되어 있다. 우정의 예찬은 봉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전사들 사이의 유대를 바람직한 방식으로 유지시키는 사회적 규제 장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궁정식 사랑, 이른바 '쿠르투아지(courtoisie)'가 등장하면서, 동성애 커플을 밀어내고 이성애 커플이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남녀 사이의 절대적인 사랑과 그와 연관된 우아한 풍습이 급속하게 지배 문화로 자리 잡게 된다. 이 새로운 사랑은 수많은 노래로, 그리고 소설로 그려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탱이 흥미롭게 드러내 보이는 바에 따르면, 쿠르투아지의 전범이라고 할 만한 소설들 안에서마저 동성애와 이성애 사이의 첨예한 갈등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궁정식 사랑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아더 왕의 아내 그니에브르(귀네비어)의 연인 랑슬로(란슬롯)마저도 동성애와 이성애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는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이것은 기사들의 덕성인 남성다움, 즉 '비르투스'를 훼손시키는 부드러운 감성, '몰리티아'와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었다.

궁정 문화 안에서 여성이 이상화되었다는 사실이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개선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저자는 오히려, 그 안에서 미묘한 통제의 시도를 읽어낸다. 한편으로는 여성의 환상적인 이미지를 예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이상에서 멀어지는 여성을 징벌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예로 저자는 작자 미상의 <그라엘랑의 단시>에 나타나는 충격적인 장면을 소개한다. 아더 왕은 매년 연회가 끝나면 왕비에게 식탁 위로 올라가 제후들 앞에서 옷을 벗으라고 명령했고, 제후들은 그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왕은 아름다운 여자를 자신의 소유물로 전시함으로써 자신이 지닌 권력을 과시한다는 것이다.

궁정 문화의 비상으로 구석에 몰리기 시작한 동성애는 급기야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1307년에 미남 왕 필립에 의해 잔혹한 사냥을 당한 성당기사단을 처형했던 외적인 구실 중의 하나는 바로 동성애였다. 고문에 못 이겨 성당기사들은 남색을 했다는 것을 자백했는데, 고문으로 인한 자백에 신빙성을 부여하기는 힘들지만, 그들의 상징물이나 평소의 행태로 보아서 성당기사들 사이의 관계가 동성애적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 결사체가 창설된 1118년에는 동성애적 관행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겠지만, 1307년 당시에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을 것이다.

르네상스에 이르면 동성애적 기사도와 이성애적 궁정 문화는 화해를 시도하게 된다. 그러나 동성애 문화의 저항은 끈질기게 계속된다. 이 갈등은 당시에 생겨나기 시작한 '국가'의 개념과 더불어 더욱더 미묘한 양상을 드러낸다. 몰리티아는 비르투스를 그 언제보다도 더욱 강력하게 위협한다. 다윗조차도 몰리티아에 비르투스를 희생시킨 비열한 왕으로 등장한다. 다윗은 옴팔레에게 팔려갔다가 결국은 옴팔레를 위해 실을 잣는 노예로 전락한 적이 있는 헤라클레스에 비교된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르면, 이성애 문화는 완전한 승리를 구가하게 된다. 이 시대의 위대한 두 극작가 코르네이유와 라신의 운명은 이 시대적 변화 위에 얹혀 있다. 코르네이유가 과거의 남성 전통에 더욱더 가치를 부여하고, 남녀 간의 사랑을 경시한 데 반해서, 라신은 그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통해 남녀 간의 사랑에 높은 품격과 비극적 색채를 부여하는 데 성공한다. 라신의 연인들의 사랑은 모두 비극으로 끝나지만, 그의 작품 안에서 남녀 간의 사랑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지위와 아름다움을 얻게 된다. 대중은 열광했고, 코르네이유의 실패는 분명해 보였다.

이러한 경향은 기독교 문화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에 따르면 육체는 만악의 근원이며, 죽음의 근원이다. 기독교 수도사들은 육체로 인하여 생겨나는 모든 문제에 철저하게 등을 돌린다. 그들의 육체적 욕망의 거부는 특히 여성에 대한 거부였다. 이들이 지닌 여성에 대한 거부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톨릭 교회는 궁정 문화의 이성애를 차단하기 위해 많은 성극(聖劇)을 창작하여 유포한다. 사랑의 문화는 가톨릭 교회와는 상극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한 시도였다. 그리하여 타협안이 제시된다. 결혼 대상인 미혼 여성을 상대로 상찬의 시를 쓰는 것은 허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생겨난다. 뿐만 아니라, 기왕에 존재하는 모든 연애 텍스트를 신비주의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일이 진행된다. 모든 사랑의 모험은 신앙의 모험으로 해석되며, 유일한 사랑은 신에 대한 사랑이었다.

이어서 탱은 의학적 관점에서 동성애를 근절시키려고 했던 여러 가지 시도들을 통사적으로 고찰한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주장과, 잔인한 '치료 방법'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의사들이 저주하고 근절시키려 했던 것은 비단 동성애뿐만이 아니라, 이른바 '사랑'이라고 불리는 인간 전체의 특별한 신체 반응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사랑이 병이 아니라 '약'이라는 것은 17세기에 이르러서야 의학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성애가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이후, 의학은 동성애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성애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에는 성과 생식의 상관관계가 놓여 있다. 그러나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생식 없는 성은 오늘날 매우 널리 퍼져 있는 현상이다. 따라서 생식이라는 핑계로 동성애를 단죄하는 것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더군다나 정신분석학 이후로, 성적 정체성이 자연 상태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분명해졌다. 그러므로 동성애에 대한 모든 편견은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논증 방법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이성애 문화에 정당성을 부여해 온 변화가 당연하고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갈등, 충돌, 저항, 타협, 협정, 화해 등으로 점철된 역사"였다는 것이다. 그 결론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성애가 12세기에 들어 생겨난 새로운 개념이라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가 이른바 '낭만적 사랑'이라고 부르는, 죽음으로 마감되는 남녀 간의 배타적인 사랑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대표되는 이 사랑 이야기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라는 브르타뉴 지방을 근원지로 하는 전설을 그 원형으로 가지고 있지만, 얼추 10세기 전후로 구성된 듯한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야기는 사실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디어무이드와 그레이네>에 대한 켈트 신화를 원형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서 '사랑'의 원형은 불멸의 여신과 필멸의 남성 인간으로 이루어진 짝을 통해 나타난다. 연인을 선택하는 것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모든 일은 여성의 주도 하에 일어난다.

이 글에서 낭만적 사랑의 기원을 논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탱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성애가 전적으로 쿠르투아지의 산물이라는 결론은 무리한 주장이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 당시의 쿠르투아지에서 파생된 남녀 간의 사랑(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사랑이 그 역사적 일화인)은 오히려 '감정의 주체적 관리'라고 하는 근대적 주체의 구성과 연관 지어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저자는 신화를 들여다보지 않음으로써, 중세 문학에 아직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류의 원형 심성(적어도 유럽인의 조상인 켈트인의 심성)을 간과해 버린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서 아더 왕이 벌거벗은 아내를 전시하는 것을 '권력의 과시'라고 해석한 것은 완전히 틀린 해석이다. 유감스럽게도 그것을 논증할 지면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장면이 켈트 신화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는 '주권 여신(déesse de la souveraineté)'이라는 개념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더 왕은 귀네비어의 '알몸의 신비'가 부여하는 왕권이 없이는 왕이 될 수 없다. 제후들은 왕의 소유물인 왕비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신비의 계시에 접하는 것이다. 귀네비어의 원래 이름은 그웨니파르인데, 그것은 "하얀 환영(幻影)"이라는 뜻이다. "하얀 환영"은 켈트 신화 전반에 출몰하는 "하얀 여신"을 암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즉, 귀네비어는 평범한 왕비가 아니라, 여신의 정체성을 가진 인물로 아더 왕 신화 전반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비르투스와 몰리티아를 동성 문화와 이성 문화의 대립으로 형식화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여성과의 사랑을 몰리티아의 원인으로 해석하는 것이야 말로 남성 중심주의적인 시각이다. 역시 켈트 신화를 원용하면, 루이 조르주 탱의 가설은 무너진다. 아일랜드 최고 영웅으로 꼽히는 쿠훌린과 그에 버금가는 영웅들은 모두 스카타흐라고 불리는 여전사로부터 최고 전사에 이르는 입문 교육을 받게 되는데, 이때 성적 입문도 함께 이루어진다.

또 다른 그레이네라고 볼 수 있는 데어드레(쿠훌린과 같이 아일랜드의 국민적인 여성 신화 영웅)의 연인 나오이즈는 끔찍하게 아내를 사랑하는 남자면서 동시에 혼자서 300명을 해치우는 비르투스의 화신이다. 원형적 수준에서 여성과의 사랑은 전사적 덕목의 방해물로 여겨지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전사적 덕목을 더욱 강렬하게 만드는 요소로 여겨졌다.

볼프람 폰 에센 바흐의 <파르치팔>에서 영웅은 전장에 나갈 때, "아모르"라고 외친다. 그것은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듯 분명히 동성애는 아니다. 그것은 또한 여성에 대한 사랑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아모르"라고 불리는 고결함의 극치, 자기 밖으로 자기를 끌어내기, 신비한 자기 부정의 힘으로 얻어지는 새로운 자아의 비전을 의미하는 말일 것이다. "아모르"를 동성애로 해석하는 저자의 해석은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저자는 동성애가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는 논거를 대기 위해 너무나 무리하게 텍스트들을 끌어오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무훈 시들 안에 드러나는 우정이 분명히 동성애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성애(性(愛)'는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복권시켜야 한다고 보는 동성애는 분명히 성애이다. 성애로서의 동성애에 주어지는 편견을 걷어내어야 하는 것이지, '남성적 우정'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세 문학에 나타나는 '지나친 우정'은 중세인 특유의 과장하는 습성과 고결함에 대한 갈망이, 어떤 영웅들에게 배타적으로 투사되는 현상이다. 중세인은 '나와 내 친구'가 아닌 모든 것을 타자의 지옥에 처박았다. 영웅들의 짝은 가장 탁월한 '나'를 두 배로 강화시켜 놓은 것이다.

영웅들은 타인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이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중세기 무훈 시에서 주인공들의 이름이 비슷비슷한 것은 그렇게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무훈 시에 나타나는 남성 짝은 동성애 커플이라기보다는 신화 속에 나타나는 '쌍둥이'의 주제와 연관지어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문제의식이 어디에 있는가가 논점인 것처럼 보인다. 이성애가 동성애를 밀어낸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동성애가 특이 현상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충분히 논증되었다고 본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성을 둘러싸고 현대 사회에 범람하는 모든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들에 대해 숙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문제는 이성애의 고유한 문제일까? 이성애를 동성애로 대치하면, 우리가 매일처럼 목격하고 있는 문제투성이의 성문화가 조화로운 것으로 변할까? 동성애 안에는 이성애가 보여주는 성적 착취, 강간, 성범죄, 과다하게 부풀려진 병적인 환상, 성의 상품화 등이 없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문제는 이성애에도 동성애에도 있다. 또 뒤집어서 말해보자. 이성애는 동성애의 고결한 이상을 구현할 수 없는가? 나는 이 질문에도 역시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다. 고결한 사랑은 이성애에도 동성애에도 있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동성애나 이성애나, 결국은 사랑, 더욱 범위를 좁혀 말한다면, 성애에 대한 성숙한 태도인 것처럼 보인다. 문제의 복판에 있는 것은 성애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 매체로 끼어드는 육체,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의 문제인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이성애자이든 동성애자이든, 사랑을 통해 주체의 깊고 의미 있는 변화를 끌어낸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동성애자이든 이성애자이든, 상대방의 육체를 파괴하고, 자신도 자신의 성적 판타지의 희생물이 된다. 모든 사랑에는, 그것이 진실한 것일 때, 이성애든 동성애든 상관없이, 신성한 무엇인가가 있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버리면서 자신을 확대한다. 그것은 주체의 망실이면서 동시에 주체의 강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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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이 책을 꺼내 읽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라는 기이한 제목을 단 책을 탐독하는 변태로 여겨질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강의 시간에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신디 메스턴·데이비드 버스 지음, 정병선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의 공저자이자 내 스승인 미국 텍사스 대학교 교수 데이비드 버스를 언급하면서 정작 그의 최신 저서가 얼마 전에 번역·출간되었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책 제목만 들은 학생들이 그 제자인 나까지(?) 이상한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사실, 여자든 남자든 섹스를 하는 이유는 빤하다고 사람들은 흔히 생각한다. 쾌락을 얻기 위해서, 상대방을 사랑해서, 혹은 아기를 낳기 위해서다. 그 밖의 다른 이유는 없거나, 있어도 아주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저자들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여성의 성애를 연구하는 심리생리학자 신디 메스턴과 인간의 짝짓기 전략을 연구하는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5년에 걸쳐 3000명이 넘는 피험자를 조사한 대규모 협력 연구를 통해 여성의 복잡하고 다양한 성적 동기 237가지를 밝혀냈다.

빈번하게 언급된 동기로서 "섹스가 즐거워서", "그 사람과 사랑에 빠져서", "상대를 만족하게 하기 위해", "그 사람의 외모에 반해서" 등이 있었다. 많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흥미로운 동기로서 "에이즈나 헤르페스 같은 성병을 옮겨주기 위해", "두통을 없애려고",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직업을 얻기 위해", "관계를 끝장내려고", "섹스를 하면 돈을 준다기에", "내기에 져서", "강제로 복종 당하고 싶어서", "자존심을 높이기 위해", "경쟁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다이어트 하려고", "나 자신을 벌주기 위해", "남편이 하도 들볶아서" 등이 있었다. 이 책은 다채롭기 그지없는 여성의 성행위 동기 237가지를 상대방의 특성, 성적 쾌감, 정서적 유대, 정복, 질투, 의무감, 자부심 상승, 교환 등 열한 가지 묶음으로 크게 나눈 다음, 각각의 묶음들을 진화 이론, 임상 의학, 심리학, 생리학 등의 이론 틀로 상세하게 분석한다.


▲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신디 메스턴·데이비드 버스 지음, 정병선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실제로 섹스를 한 이유를 생생하게 털어놓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풍부하게 실으면서 심리생리학과 진화심리학의 과학적 분석을 절묘하게 맞물려 놓았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저자들은 일반인 독자가 어렵고 생소한 과학 설명에 지레 움츠러들지 않고 구체적인 실제 사례와의 접점을 스스로 깨우치게끔 배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자원을 얻는 대가로 섹스를 허락하는 교환 행위의 한 가지 예로 저자들은 다음 반응을 든다.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남편이 반대할 것 같으면 섹스를 해 줍니다. 그를 설득하거나, 방임 하에 내 마음대로 하기 위해 수를 쓰는 거죠." – 이성애자 여성, 31세 (271쪽)

"여자라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게 있기 때문에 배우자를 성적으로 즐겁게 해 줘야 하는 상황이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어디 가서 저녁을 먹을지 결정하는 일부터 말이죠." – 이성애자 여성, 25세 (272쪽)

이토록 생생한 목소리를 들은 독자들은 성을 매개로 자원을 얻는 교환 행위는 정직한 연애 혹은 매춘으로 딱 부러지게 경계를 짓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저자의 결론에 기꺼이 동의하기 마련이다.

이 책의 의도가 여성이 왜 섹스를 하는가 살펴보기 위함이니만큼, 여성의 성행위 동기들을 열한 가지로 세분한 다음에 장마다 설명을 담는 형식이 아마도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인지 필자로선 이 책이 하나의 단일한 이론 틀을 바탕으로 탄탄하고 야무지게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느낌은 별로 받지 못했다.

특히, 두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저술한 게 아니라, 각자 업무를 나누어 어떤 장은 메스턴이 맡고 어떤 장은 버스가 맡는 바람에 진화심리학과 심리생리학의 유기적인 결합은 제대로 성취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눈썰미 있는 독자라면 어떤 장은 진화심리학 설명이 대세이고 다른 어떤 장은 심리생리학 설명이 대세임을 눈치 챘을 것이다. 요컨대, 이 책은 진화심리학과 심리생리학이 번갈아 나오는 코스 요리이지, 두 학문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상승효과를 내는 창조적인 퓨전 요리는 아니다.

성적 희열과 오르가슴을 논의하는 2장('그 짓의 즐거움')을 예로 들어보자. 저자들은 (사실은 메스턴) 여성이 성적으로 흥분하고 오르가슴을 느끼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피부, 젖가슴, 생식기, 음핵, 질의 생리적 변화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오르가슴에 따른 심리적 변화, 오르가슴을 잘 느끼는 방법, 일부 여성들이 오르가슴 장애를 겪는 까닭도 친절히 알려준다.

하지만, 여성의 오르가슴에 대한 진화적 설명은 2장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두세 쪽에 걸쳐 언급될 뿐이다. 그전의 심리생리학 부분에서 나오는 여러 흥미로운 사실들–예컨대 여자는 삽입 성교보다 음핵 자극을 통해 훨씬 더 쉽게 오르가슴에 도달한다, 여자는 남자와 달리 오르가슴을 누리는 방법을 열심히 학습해야 한다 등–을 그냥 나열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이 사실들을 진화적인 관점에서 설명할지 함께 논의했더라면 더 유익했을 것이다.

메스턴과 버스는 종종 미묘한 불협화음도 낸다. 저자들이 머리말에서 밝히는 대로, 오스틴 소재 텍사스 대학교 심리학과 건물에서 메스턴 심리생리학 실험실과 버스 진화심리학 실험실은 바로 이웃해 있다. 두 저자는 무척 친한 사이다. 그러나 필자가 아는 한 신디 메스턴은 여성의 성행동 장애를 주로 탐구하는 심리생리학자이자 임상심리학자일 뿐, 인간 심리에 대한 진화적 접근을 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학자는 아니다.

그래서일까, 메스턴이 주로 쓴 것으로 보이는 몇몇 장들에서 진화적 설명은 그저 고만고만한 여러 설명 가운데 하나로 건조하게 취급될 뿐이다. 예컨대 6장('의무감')에서 저자는 대개 남편이 아내보다 섹스를 더 바란다고 전제한 다음에 "남자들이 더 높은 성 충동을 갖도록 진화했고, 섹스를 주도하면서 더 편안함을 느끼도록 사회화되었다면 불가피하게도 여자들은 원하지 않는 섹스에 응해야 할 때가 더 많을 것이다"(205쪽)라고 설명한다. 다른 곳에서 저자는 "여성들은 보살피는 사람이 되도록 사회화된다"(209쪽)라고 말한다.

이러한 설명 방식은 인간 행동을 설명하고자 할 때 본성과 양육의 이분법을 일단 높이 설정하는 전통적인 사회과학적 설명 방식이다. 즉, 성 충동을 만드는 호르몬이나 뇌의 배선 양식은 어느 정도 생물학적 진화에서 기인할지 몰라도 본성의 영향력은 거기에서 멈춘다. 인간이 정작 어떤 사회와 문화 속에서 사회화되느냐에 따라 최종적인 행동 결과물은 양육에 의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이른바 '빈 서판 주의(Blank slatism)'이다.

메스턴은 인간 행동이 사회화나 학습, 문화에 의해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진화적인 관점에서 설명되어야 할 연구 대상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 섹스를 주도하게끔 사회화되기 쉬운지, 왜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남을 잘 보살피게끔 사회화되기 쉬운지는 궁극적으로 오랜 세월에 걸친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에서 그 원인을 규명해야 할 현상들이다.

진화심리학자인 필자로서는 데이비드 버스가 주로 쓴 것 같은 장들이 어쩔 수 없이 더 편안하게 다가왔다. 인간 성행동의 진화심리학 연구 내용은 버스의 저서 <욕망의 진화>(전중환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같은 여러 책을 통해 국내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지식이 또 재탕 되지나 않았을까 봐 우려되어 책을 선뜻 들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다행히, 버스는 배란 주기에 따른 여성의 욕망 변화 같은 최신 연구 성과들을 충실히 반영하여 여성의 성행동에 대한 한층 더 새롭고 흥미로운 파노라마를 펼치고 있다. 특히 1장('여자는 무엇에 흥분하는가?')는 국내에 번역된 다른 어떤 진화심리학 대중서보다 여성의 배우자 선호에 대해 가장 신선하고 업데이트된 설명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여성들은 연인을 고를 때 어떤 냄새가 나는지를 가장 중요한 기준의 하나로 삼는다든지, 여성들은 어깨 대 엉덩이 비율이 높은 이른바 V자형 몸통에 성적으로 끌린다든지, 노래 잘하는 남성보다 바리톤의 그윽한 저음 목소리를 가진 남성에 더 끌린다든지 등의 발견들은 남녀 독자들 모두에게 유용한(?) 지침을 제공할 듯하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여성이 섹스하는 수많은 이유들에 대해 진화 심리학과 심리 생리학의 관점에서 유쾌한 설명을 제공한다. 두 학문적 시각이 완전히 섞이고 어울리기보다는 종종 서로 데면데면하게 따로 논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우리가 모두 궁금해 하는 주제에 대해 부담 없이 한 번 쭉 훑어보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물론 버스나 지하철에서 대놓고 펼쳐 읽기에는 부담이 따른다.


한국 여성 100명에게 '왜 하느냐' 물었더니…

"왜 섹스를 합니까?"

이 도발적인 질문에 한국의 20~40대 여성의 46%는 "육체적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라고 답했다. "남편, 남자친구와 애정을 확인하기 위해서"(36%), "남편, 남자친구가 졸라대서 할 수 없이"(22%), "자신의 애정을 증명하거나 표현하기 위해서"(20%) 등의 대답이 뒤를 이었다.

'프레시안 books'와 사이언스북스가 여론조사 전문 기관 '디오피니언'에 의뢰해 20~49세 여성 100명에게 '여성이 섹스를 하는 이유'를 물었다. 이 조사는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정병선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의 출간에 맞춰 이뤄진 것이다.

조사 결과를 자세히 살펴보면, 여성들이 섹스를 하는 이유로 많이 답한 응답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육체적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46%), "남편, 남자친구와 애정 확인을 위해서"(36%), "남편, 남자친구가 졸라대서 할 수 없이"(22%), "자신의 애정을 증명하거나 표현하기 위해"(20%) 등이 많았다.

이런 한국 여성의 응답은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에서 많이 언급된 성적 동기와 일부 겹친다. 버스, 메스턴 교수의 연구에서도 여성은 "상대에게 애정을 느껴서", "육체적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등의 응답이 가장 많았다.

한국 여성의 소수 응답도 흥미롭다.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6%), "아이 출산을 위해서"(3%), "화해하기 위해서"(2%), "스트레스 해소"(2%). "남편과의 유대감 강화, 부부의 삶을 유지해 주는 수단이므로"(2%),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1%), "다이어트"(1%), "나도 여자라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1%) 등의 응답이 있었다.

연령대별로 살펴본 성적 동기의 차이도 흥미롭다. 20대 여성은 "육체적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51.6%), 30대 여성은 "남편, 남자친구와 애정 확인을 위해서"(45.7%), 40대 여성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11.8%)라고 답한 비율이 다른 연령대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특히 40대 여성은 다른 연령대와 비교했을 때 섹스를 하는 이유도 좀 더 다양하게 응답했다. "화해하기 위해서"(5.9%), "스트레스 해소"(5.9%), "남편과의 유대감 강화, 부부의 삶을 유지해 주는 수단이므로"(5.9%)와 같이 섹스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향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번 조사는 지난 9월 9일에서 11일 사이 20세에서 49세 여성 100명(20~29세 : 31명, 30~39세 : 35명, 40~49세 : 34명)을 상대로 이뤄졌다. 이들 100명은 질문("여자가 섹스를 하는 이유")에 복수로 응답했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9.8%P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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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두고 온 수술 가방>(창비 펴냄)의 저자 오인동 선생은, 책 뒤표지의 소개 글에 의하면, "통일과 의업(醫業)의 두 길을 걸어온" 재미 동포 의사이다.

부연하자면 저자는 한국에서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1970년 미국에 유학한 이래 정형외과 의사, 특히 인공 고관절(엉덩이관절) 분야의 전문가로 70대인 지금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1992년 재미한인의사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처음 평양을 방문한 뒤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6·15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는 등 통일운동가로도 크게 활약하고 있다.

이제 북한 방문기는 책으로 출판된 것만 해도 적어도 100종은 될 것이며, 개인 블로그 등에 실린 것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인 세상이 되었다. 그만큼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정도로 남북이 가까워진 덕택이다. 하지만 올해에 평양을 방문하여 그곳 소식을 전하는 한글 책으로는 이것이 유일하다. 최근 들어 경색되고 악화된 남북 관계를 잘 보여주는 현상이다.

북녘의 구체적인 모습을 처음 우리에게 전하고 그럼으로써 대중적인 통일 논의의 물꼬를 튼 것은 재미 동포들이었다. 북한에 대해 정부 발표 이외의 어떤 생각을 하는 것조차 금기였던 한국 사회에 전해진, 양은식·선우학원·최익환 등 재미 동포들의 방북기 <분단을 뛰어 넘어 : 북한 방문기>(1984년)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6월 시민 항쟁" 이듬해인 1988년 서울에서 정식으로 출간되기 전까지 몇 해 동안 "불법 복사물"의 형태로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면서 읽혔던 이 책이 들려준 메시지는 대체로 북녘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지극히 평범한 내용이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별 것도 아닌 메시지가 충격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오히려 당시 한국 사회의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 <평양에 두고 온 수술 가방>(오인동 지음, 창비 펴냄). ⓒ창비
그 무렵 이런 일도 있었다. 재미 동포인 홍동근 목사의 방북기 <미완의 귀향 일기>가 출판되자 1988년 11월 2일 그 일로 출판사 대표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그런데 한 달 뒤 18년 만에 귀국한 홍 목사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다. 사람들은 재미 동포의 "특권"에 새삼 놀랐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꿈도 꿀 수 없는 북한 방문을 재미 동포들은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고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다니.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 간의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요즈음도 해외 동포들은 북녘 고향을 방문하여 헤어졌던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고 있다.)

이듬해에 문익환, 황석영, 서경원, 임수경 등이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연이어 북한을 찾았지만 역시나 모두 중형을 받았다. 지난 6월 이 책의 저자인 재미 동포 오인동 선생과 한국인 한상열 목사가 각각 평양을 방문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한 목사는 구속되었고 오 선생에게는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았다.

필자가 재미 동포를 시샘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또 그들의 그 동안 활동을 폄하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오인동 선생과 같은 사람들이 한국 정부에게서 처벌을 받지는 않더라도 실제 행동이나 생각과는 무관하게 동포 사회 등으로부터 "친북적"이라는 낙인이 찍혀 적지 않은 냉대를 받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다만 남북 관계가 어려울 때일수록 재외 동포들의 역할이 더욱 막중하고 소중하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북한과의 의료 교류와 협력의 물꼬를 튼 것도 역시 재외 동포들이었다. 이 책에도 나오듯이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재일 동포 의사 김만유 선생이 1986년 평양에 1000 병상이 넘는 대규모 현대식 병원인 "김만유 병원"을 세운 일이다. (김만유 선생 역시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리고 재미 동포 의사들도 1980년대부터 북한을 방문하여 새로운 의료 기술을 전수하고, 필요한 의료 시설과 장비들을 지원하는 협력 사업을 계속해 왔다.

북한이 가장 자부심을 가졌던 분야는 의료와 교육이다. 1950년대부터 무상 의료와 무료 교육을 실시했던 것이다. 물론 그 내용과 수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있을 수 있다. 어쨌든 그렇게 자부해온 의료와 교육도 1980년대, 특히 1990년대 이래 어려움에 처했다. 북한 당국도 그러한 점을 인정하는 데 그리 인색하지 않다.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가 북한에 대해 본격적으로 협력과 지원을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95년 이래 북한에 닥친 극심한 식량 위기가 계기였다. 기왕의, 또는 신설된 시민단체들이 북녘 "인민들"을 지원하는 일에 나섰다. 처음에는 식량 지원에 집중되었다. 기아로 어려움을 겪는 사회에 사상과 이념을 떠나 식량을 지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같은 민족 이전에 인간에 대한 도리이고 예의였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자연히 알게 된 사실은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북한 사회의 많은 분야가 과거와 달리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의료의 경우도 의료 장비와 시설, 의약품이 크게 부족해졌다. 세운 지 오래 되어 노후해진 병원도 제대로 보수·개축할 수 없었다. 외부 세계와의 교류도 더욱 줄어들면서 의사들은 새로운 의료 지식과 기술에 접할 수 없게 되었다. 보건의료의 총체적인 위기였다. 보건의료의 위기는 곧바로 인간 생명과 건강의 위협으로 연결될 수 있기에 어떤 분야보다도 시급한 복구가 필요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위기는 어느 사회에든 닥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적인 협력이 중요한 것이다. 한국 사회는 과거 어려웠던 시절, 외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보건의료 분야가 특히 그러했다.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만은 아니다. 인간으로서 도리만도 아니다. 지금 어려운 사람과 사회와 국가를 지원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1990년대 중반 이래 국제 사회와 한국 사회는 북한 보건의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초기에는 의약품과 의료 도구 지원 위주였다. 그 뒤에는 그러한 물자를 만들 수 있는 생산 시설과 병원의 증·개축에도 지원과 협력의 손길이 미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의료 지식과 기술을 전습하는 사업도 병행되었다. 적지 않은 한국 의사들이 북한을 방문하여 그곳 의사들과 함께 수술 등의 진료를 하면서 경험과 지식을 교환해 왔다.

필자도 지난 2001년부터 1년에 몇 차례씩 북한을 방문하면서 보건의료 협력 사업에 작은 힘을 보태어 왔다. 그러면서 가장 절실하게 체득한 것은, 오인동 선생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신뢰와 역지사지와 소통의 소중함이었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오랜 동안 떨어져 있었고 그 때문에 오해도 없지 않았던 남북 사이의 관계가 개선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로 간에 신뢰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 신뢰가 싹트려면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상대방의 자리에 서려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주 만나야 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남북 간의 보건의료 협력 사업으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성과는 서로 간에 신뢰가 형성되고 그러면서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점이다. 물론 아직도 서로를 알고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것이다.

하지만 최근 2년 남짓 사이 남북 정부 간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보건의료 협력 사업도 거의 중단된 상태이다. 의약품과 의료 소모품 지원도 끊겼고 병원과 약품 시설 증·개축과 신축도 멈추었다. 결핵약 공급이 끊겨 내성 환자가 더 많이 생기는 일조차 일어났다. 물론 그 동안 어렵게 이루어져온 남북의 신뢰가 하루아침에 파탄나지는 않을 것이지만 교류 중단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신뢰 관계에도 위기가 닥칠 수 있다. 그러한 위기를 막아 주고 있는 것이 오인동 선생과 같은 이들의 소중한 활동이다.

이 책을 통해, 1년 반 남짓 만나지 못했던 평양의학대학병원 의사들의 소식을 알게 된 것, 그리고 그 사이 병원이 오히려 더 활기를 띠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것은 아쉽지만 반가운 일이다.

북한의 보건의료를 지원하는 것은 나 자신의 오늘과 내일의 건강을 증진하는 일이다. 세계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21세기에 우리와 바로 붙어 있는 북녘 사회의 건강 상태는 바로 우리의 건강 상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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