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황하지 않게 말하기

영국의 정치철학자 애덤 스위프트는 <정치의 생각>(김비환 옮김, 개마고원 펴냄)을 쓴 이유를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대한 지지 혹은 비판에 두고 있지 않다고 적고 있다. 그는 서론에서 이 책은 논쟁적이지 않고 설명과 해설을 제공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의 목적은 독자들이 어떠한 정치적 견해에 도달하거나 기존의 견해를 바꾸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어떠한 정치적 견해를 지지하는 이유와 거부하는 이유를 알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설명을 위해 스위프트가 선택하는 것은 영미 분석 철학자로서의 장점인 개념들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 책 전체의 결론에서 스위프트는 '개념적 분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념적 분석'은 단지 사람들이 어떤 주장을 할 때 그들이 진짜로 의도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일단 어떤 주장의 의미를 알게 되면 어떤 표현을 사용했든 간에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320쪽)

여러 정치철학적 개념들을 분석적 방법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확실히 역사적 접근에 비해서 간단명료하게 의미를 구명하는 과정을 보여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적인 접근을 취했더라면 장황했을 것이고, 정치철학의 선조들을 모두 열거하고 소개하는 과정에서 그들 고유의 용어들을 불가피하게 동원하게 되면 난삽한 개념 사용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개념의 명료한 사용은 또한 이 책에서 스위프트 자신이 구분하는 정치인과 정치철학자의 중요한 차이이기도 하다.

객관적 분석, 은근한 회유


▲ <정치의 생각>(애덤 스위프트 지음, 김비환 옮김, 개마고원 펴냄). ⓒ개마고원
애덤 스위프트의 <정치의 생각>은 책 전체의 구성(목차)에서부터 미덕을 드러낸다. 총 5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현대 정치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들이 무엇인지 목차만 봐도 알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서론을 제외한 각 부는 사회 정의, 자유, 평등, 공동체, 민주주의 등과 같은 개념들을 다루고 있다.

1부에서는 사회 정의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사회 정의가 정치철학의 핵심 주제로 부각된 배경을 소개하면서 하이에크(1899~1992년)를 비롯해 롤스(1921~2002년)와 노직(1938~2002년)의 사회 정의 개념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 스위프트는 사회 정의에 관한 여러 입장은 결국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상이한 입장들이라고 정의한다.

먼저 사회 정의라고 하는 관념 자체를 부정하는 하이에크의 입장에 대해서, 스위프트는 불평등한 상황 혹은 정의롭지 못한 상황을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러한 결과를 낳은 정치적 행위에 따른 책임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비판한다. 아울러 원초적 상황(orginal position)과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이라는 가정에 기반을 둔 롤스의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설명하고 사회계약론에서 출발한 롤스 정의론에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 다음 롤스와 가장 빈번하게 대비되는 노직의 정의론을 권리로서의 정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명확히 노직의 손을 들어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노직의 자기 소유권적 개념에 기초한 정의 개념의 한계를 지적하지는 않고 있다.

2부는 자유를 주제로 삼고 있다. 2부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이사야 벌린이 구분한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에 대한 가장 광범위하고 일반적인 구분에 대한 부정이다. 스위프트는 미국의 철학자 제럴드 맥컬럼(1925~1987년)의 주장을 근거로 '~으로부터의 자유'라고 이해되는 소극적 자유와 '~할 자유'로 이해되는 적극적 자유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 이는 이사야 벌린의 잘못된 생각임을 지적하고 있다.

스위프트는 이사야 벌린과 같은 자유에 대한 이분법적인 구분을 극복하게 되면 자유에 대한 자유 관념들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벌린이 적극적 자유 개념을 전체주의적인 위험한 것으로 간주한 것에 대해 스위프트는 '자율성으로서의 자유'라고 하는 가치를 보호하는 것에 2부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평등에 대해 다루는 3부에서 스위프트는 평등이라고 하는 가치의 곤혹스러운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자유가 보편적 가치로서 확고부동한 지위를 굳히고 있는 동안 확실히 평등은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들의 낡은 슬로건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현대 정치철학은 평등주의적 전제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스위프트는 지적한다.

그 이유에 대한 스위프트의 대답은 실천적인 차원에서 평등이 배척되는 것은 분배의 문제와 결부시키기 때문이며, 정치철학에서의 평등의 의미는 모든 시민들의 행복이 똑같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환기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식의 전개는 스위프트 자신이 이 책에서 시종 견지해왔던 경제적 자유주의와 정치적 자유주의와의 구별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잘 알려져 있듯이 밀턴 프리드먼(1912~2006년)과 같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경제적 자유주의와 정치적 자유주의를 거의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자유주의를 옹호했던 것에 비추어보면 사뭇 이채로운 전략이다. 언어 분석적 방법과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의 이론이 함께 어우러지기는 쉽지 않겠지만 사실 이 책에서 그들의 자유주의는 별로 원용이 되지 않고 있다.

사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자유주의의 흐름에 하이에크나 프리드먼까지 포함시켜 다루면 이 책의 구성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은 아닌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유려하지만 공정하긴 한가?

공동체주의에 대한 스위프트의 분석은 스위프트의 글에 대한 마이클 센델의 평가가 정당한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하는 대목이다. 이 책의 겉표지 뒷면에 인용된 센델의 평가는 "애덤 스위프트의 글은 명석하고, 공정하며, 유려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동체주의에 대해서 스위프트는 완벽한 잡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공동체주의가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여러 가지 스펙트럼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스위프트 자신도 인정하듯이 어떤 주의(ism)든 항상 단일한 경향으로만 분류될 수는 없다.

스위프트는 4부에서 공동체주의자들의 오해를 언급하면서 필요한 경우에는 자유주의에도 여러 노선이 있음을 주지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공동체주의자들은 자유주의가 최소국가론에 입각해 있다고 오해한다고 지적하면서 노직은 그렇지만 롤스는 아니라는 식으로 자유주의를 옹호한다.

이런 점은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몇 가지 지적은 공동체주의자들로 하여금 심각하게 자기반성을 하도록 돕고는 있다. 자유주의에 관한 공동체주의자들의 오해 중 여섯 번째로 언급된 사항에 관한 분석은 꽤나 흥미롭다. 그에 따르면 공동체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이 공동의 관계, 공유된 가치, 공동의 정체 의식이 갖는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오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점에 대해 스위프트가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흥미로운 근거는 자유주의적인 정의 자체가 하나의 공동선이라는 것이다. 즉 자유주의적 가치 자체가 개인의 권리를 진술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개인들이 모인 공동체가 공동으로 추구해야 하는 공동선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그러한 공동선의 인정이 공동체주의가 지향하는 여러 정치적 목적의 실현 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주의 최선입니까?

민주주의가 과연 좋은 제도인가에 대한 5부에서의 문제 제기는 현대 정치철학이 좀 더 근원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임에는 분명하다. 어떤 드라마의 유행어처럼 '민주주의가 최선입니까? 확실한가요?' 하는 의문을 던져 봄 직하다.

민주주의에 대한 접근을 할 때 어려운 점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좋은 것으로 인정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중에는 아주 나쁜 놈들도 있다. 스위프트도 이러한 아이러니를 지적한다. 그는 민주주의의 핵심을 '인민에 의한 지배'로 보았고 이 개념의 요지는 의사 결정의 절차라고 본다.

민주주의에 대한 다각적 분석을 거쳐 그가 도달하는 이해는 민주주의가 여러 가치들 중에 하나의 가치라는 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민주주의는 일종의 정치적 만병통치약, 혹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고 있다. 바로 정치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오남용은 아마도 그들에게는 개념의 엄밀한 사용이나 도덕적 책임은 표보다 중요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 대중적인 차원에서 이 책이 주는 가장 유익한 점은 쉽게 이해하기 힘든 현실 정치인들의 모호한 태도들의 원인을 밝혀주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의 많은 정치인들이 자신이 한 말을 표현 그대로도 설명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반값 등록금' 혹은 '반값 아파트' 등이다. 이 말은 재화의 가격을 50%의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공급한다는 아주 쉬운 말이다. 초등학생도 그 의미는 안다. 그런데 이 말이 언제부터인가 '심리적 반값'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그들은 개념들을 모호하고 불명확하게 사용한다. 때때로 그들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사용하고 싶어 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의견 차이를 감출 수 있고 모든 사람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전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19쪽)

"그들은 내용과 실질보다는 수사적인 표현과 장광설을 좋아한다.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들리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지 주장의 실질적인 내용이 아니다." (319쪽)

정치인들이란 영국에서든 한국에서든 본질적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하기야 대통령조차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해버렸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상황이고 보면 정치인들에게 대한 기대가 오히려 순진한 듯하다. 다만 정치인들의 사기 공세에 면역이 되지 않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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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gdfgdfg 2012-07-05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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