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족이 자동차 지붕 위에 짐을 잔뜩 올려 싣고서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한 번은 작은 터널을 통과하려 했다. 그런데 지붕에 짐이 많아서인지 자동차가 터널에 꽉 끼고 말았다. 전 가족이 차에서 내려서 차를 밀기 시작했다. 형들은 자신들의 힘을 자랑하면서 걱정할 거 없다고 말했다. 막내는 저리 비켜 있어도 충분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밀어도 차는 꿈쩍하지 않았다. 지렛대로 바퀴를 들기도 했고, 지붕 위의 짐을 빼고 나중에 다시 싣자는 말도 나왔다. 운전을 한 아빠에게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느냐고, 막무가내로 터널에 들어가면 어떻게 하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어려서 아직 힘이 세지 못한 막내가 이런 가족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갑자기 자동차의 바퀴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자동차 바퀴의 꼭지를 뺐다. 그러자 바퀴의 바람이 빠졌다. 그때서야 자동차는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막내가 한 일은 힘이 들지 않는 정말 간단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복잡하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행동했지만, 막내는 아주 단순한 원리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이 일화는 얼마 전 타개한 고 이윤기의 어느 에세이에 들어있는 내용을 확장해 본 것인데, 복잡한 문제 속의 숨은 간단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제프리 클루거의 <심플렉서티>(김훈 옮김, 민음인 펴냄)의 논지와 일맥상통한다. 예컨대 서문에 나와 있는 19세기 후반 영국의 존 스노가 콜레라를 막은 사례도 그렇다.


▲ <심플렉서티>(제프리 클루거 지음, 김훈 옮김, 민음인 펴냄). ⓒ민음인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설사병(콜레라)을 해결하는 일은 어렵고 복잡한 문제였다. 하지만 존 스노는 설사병의 원인이 한 우물의 펌프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나무 망치로 그 펌프를 못 쓰게 하자 그렇게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던 설사병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심플렉서티>에서 '심플렉서티'는 '간단함(simplicity)'과 '복잡함(complexity)'의 합성어다. 제목 자체에서 이미 복잡계 과학의 학문적 논의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복잡계 과학이라는 학문의 기본적인 지향은 복잡성 속에서 단순한 원리를 찾으려는 것이다. 이 학문은 캘리포니아의 폭풍을 역추적해서 그것이 베이징 나비의 날갯짓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히려 한다.

사실 이러한 논의는 학자나 정책가의 로망에서 비롯된 사고틀이다. 제아무리 복잡한 사안이라고도 결국에는 단순한 조치 하나로 일거에 해결할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는 비단 현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간의 건강 상태를 바늘 침 하나로 통제할 수 있었던 동양의 침구학은 이런 단순성을 통한 복잡성 조율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경락과 경혈이라는 주요 포인트의 파악이다. 경락과 경혈은 복잡성이 단순성으로 단순성이 복잡성으로 오가는 허브에 해당한다. 학술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자면 주역의 논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동양의 <주역>이 지향한 것도 복잡한 세상을 64궤를 통해 간단화해 천지운행을 인간이 예측 통제하려 한 것이다.

이 <주역>의 핵심 원리가 바로 오행 사상인데, 다섯 가지 기본 요인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것을 더 간단하게 만든 것이 음양 사상이다. 세상의 운행을 두 가지 요소가 움직이는 것으로 압축한 관점이다. 오행 사상이나 음양 사상을 언급하면 주술 시대의 유물쯤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미 이것은 1950년대 말 MIT의 제이 포레스터가 시스템 다이내믹스(system dynamics)를 개념화하면서 탈주술화되었다. 포레스터는 세상을 양(+)과 음(-)의 관계로 보고 이것을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의학적으로 볼 때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은 이러한 플러스와 마이너스에 해당한다.

이러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복잡계의 논의와 맞물리면서 인간과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양의 피드백과 음의 피드백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비판이 많았지만 어쨌든 이렇게 복잡함 속에서 간단한 원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흐름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은 많은 사례를 요약, 압축했다.

과학자나 연구자가 아닌 바에야 이 책의 논의 가운데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의사 결정에 관한 부분이다. 예컨대 세계 금융 위기를 불러온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아주 복잡한 사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단순한 원인에서 비롯되었다. 엉터리 신용 등급에 따른 파생상품의 형성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정책 당국이 그 원인에 주목했다면 파국적인 경제 위기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의사 결정의 중요한 지렛대를 발견하는 것과 같은데, 이는 사건이나 현상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을 파악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그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자동차와 터널 사이의 메커니즘을 찬찬히 살피는 것과 같다.

앞에서 콜레라 유행의 원인을 파악한 존 스노가 초점을 맞춘 것도 바로 현상을 일으키는 전체 시스템의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을 파악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복잡성 속에서 단순성의 원리를 찾을 수 있다는 로망이 깨질 수 있다. 단순성의 원리를 찾는 과정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수많은 과학적 법칙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지만, 복잡함 속에서 간단한 원리를 찾는 일은 사회 현상의 분석에서도 의미가 크다. 수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의외로 간단한 정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스노가 전염병을 수많은 돈, 약이 아니라 나무 망치 하나로 막았듯이 말이다.

정치, 사회 체제를 논의하는 데도 이런 시각이 의미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 담론을 모색하면서 복잡한 수사나 난해한 이론이 동원되는 경향이 있다. 추상에 추상을 거듭하여 공허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클루거의 논리대로라면 역사적 기술이나 운동의 방향은 단순한 개입으로 달라질 수 있다.

거대한 독재 정권은 강력한 경찰력과 압도적 군사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단히 취약하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정권은 생태학적 자원의 고리가 끊어질 때 붕괴했다. 이라크의 후세인 독재 정권이 석유 자원 탓에 미국에게 붕괴된 것도 또 다른 (나쁜 방향의) 예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독재 정권의 가장 약한 고리는 윤리적인 부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고하던 정권이 어느 한순간 한 사람의 행동이나 죽음 때문에 붕괴될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 클루거의 관점에서 보자면,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는 것은 '그들'이 군대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군대 사조직을 없애는 것이야말로 민주화의 핵심적 조치라는 것이다.

이 책의 논의는 한나라당과 보수의 지배를 절망적으로 바라보는 많은 진보 인사에게도 생각해 볼 거리를 던진다. 한국의 보수처럼 이해관계로 얽힌 이들은 바로 그 부분에서 약점을 갖게 마련이다. 이처럼 복잡해 보이는 정국에서 단순한 원리를 찾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필요한 일이다.

다만, 우리가 그동안 복잡한 문제의 단순한 해결책을 간과해온 것이 이 책이 말하듯이 무지 탓인지, 현실적 가능성이 없어서인지는 실천 속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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