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조그만 일에만 분노하는가, 조그만 일에만...  

사법연수원이 생긴이래 처음이라는 집단행동(문제점과 명분에는 모두 동의가 되지만 웬지 밥그릇 지키기로만 보이는... 그 무수한 불합리와 부정의한 일들이 벌어질 때 그들은 어디서 뭘 했나?), 어느 공영방송사 전 사장의 눈부신, 혹은 눈물겨운 변신(다른 건 몰라도 엄모씨는 가족에게, 자식들에게 자신의 변신을 어찌 설명했을까? 이러면 안 되지만 고문해서 자백이라도 받고 싶다), 5억짜리 전세를 놓으며 전세란 대책을 골몰한다는 해당부처 장관(이 대목에서는 참, 할 말이 없다). 

분노의 방향은 다른 데로 돌려져야 한다. 쌍용자동차, 삼성반도체, 이 자본의 왕국, 자본의 음탕함으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앞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 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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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병시절 우리끼리 하던 군대격언이 있습니다. 
 
"무능한 지휘관은 적보다 무섭다." 

당시 무서운 지휘관 참 많았지요. 또 이런 격언도 있었습니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해도 배식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지 못한다."

배식의 핵심은 공정성과 투명성입니다. 부족한 밥을 똑같이 나누는 것(고참이 좀 덜 먹기도 하고), 그에 앞서 오늘 밥이 얼마큼이고 뭐가 얼마나 모자라고 또 남는지 공개하고 지혜를 모으는 것. 그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전우끼리의 신뢰는, 아니 전우라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겠죠.

사랑받는 군, 자랑스런 군까지 못 가더라도 최소한 국민의 군대라면 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며칠전까지 작전 동영상을 알아서 언론에 배포하던 군이 이제는 기밀이라며 해경에게도 작전 동영상을 주지 않는다네요.

국민이 믿지 못하는 군대, 신뢰를 받지 못하는 군대는 어쩌면 적보다, 무능한 군대보다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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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스앤뉴스] 국방부, 1일엔 "교전 없었다", 7일엔 "있었다"

석해균 선장 몸에서 해군 총알 나오자 당황, 은폐의혹 자초


2011-02-07 20:10:25


국방부가 7일 해경 특별수사본부가 석해균 삼호주얼리 선장의 몸에서 해군 총탄이 발견됐다고 발표하자 크게 당황해하며 1주일 전 주장을 180도 바꿔 은폐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1일 다음 아고라에는 '석 선장 과연 해적이 쐈나', '석해균 선장, 아군 UDT 소지 MP5 총상으로 밝혀져', '석 선장 총상 6발, 해적이 쐈나, 아군 오발인가?' 등의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이들은 석 선장이 해적의 AK소총에 맞았다는 국방부 발표에 대해 "해적의 AK소총에 맞은 것이라면 몸이 산산조각 나야하는데 석 선장은 총탄이 몸 속에 박혀 있다"며 "우리 UDT 대원의 MP5 기관총에 맞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의료진이 총탄 1발을 분실한 데 대해서도 "가장 중요한 물증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그렇게 소홀히 했을 수 있겠느냐"며 "일부러 축소 은폐하려는 것 아닌가"라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러자 국방부는 당일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올린 '석 선장의 몸에서 꺼낸 총알 관련 사실관계를 알려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반박글을 통해 "석 선상의 총상은 해적이 쏜 총에 의한 것"이라며 "당시 석 선장이 인질로 잡혀 있던 장소에선 교전이 일어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정확한 탄두분석 결과가 나오기 전에 미리 예단하는 행위를 삼가해달라"고 경고했다.

한나라당 안형환 대변인은 더 나아가 지난 5일 논평을 통해 "석해균 선장에 대해서 우리 UDT 대원이 사격을 했다는 허위사실이 인터넷에 떠돌았다"며 "버젓이 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이고,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는 "문제는 이런 음모론을 믿는 국민들이 일부나마 있다는 것"이라며 "제가 만나본 사람들은, 이런 주장을 한 사람들은 찾아서 사법처리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주장도 했다. 우리 사회의 신뢰를 실추시키고 갈등을 부추기려는 간첩의 소행이나 다름이 없다는 말들도 있었다"며 네티즌들의 의혹 제기를 '간첩 소행'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국방부는 그러나 7일 해경 특별수사본부가 석 선장의 몸에서 해군 총알이 발견됐다고 발표하자, 크게 당황해 하며 다음 아고라에 180도 다른 내용의 해명 글을 올렸다.

국방부는 "1월 21일 새벽 아덴만 여명작전간 UDT 작전팀이 선교로 진입할 당시 석 선장은 이미 해적이 쏜 총에 의해 총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며 "UDT 작전팀은 선교로 진입후 해적과 교전시 근거리에서 정확하게 조준사격을 실시하여 해적 7명을 사살하였다"며 석 선장이 쓰러져 있는 선교에서 '교전'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해경에서 발표한 UDT 작전팀의 권총 탄환으로 추정된다는 1발은 교전간 발생한 유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추가 확인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정확한 것은 현재 조사중인 국과수 최종 감식결과가 나와야 확인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도도하던 국방부가 불과 1주일 사이에 말을 180도 바꾼 것. 국방부는 이와 함께 아고라에 실었던 지난 1일자 반박글을 아무런 해명없이 신속히 삭제하기까지 했다.

인터넷상에 각종 의혹이 떠돌게 만든 '원인 제공자'가 다름아닌 정부여당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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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1-02-11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침에 한겨레 1면 보다가 그럴줄 알았단 느낌이 들었어요. 뭐만 나왔다면 음모고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으니 이젠 주장하기 전에 국적 먼저 밝혀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격월간 <사람>이란 잡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원고를 부탁드리려고 전화를 드렸는데요. 저희 잡지에서 다음 호에 OOO을 특집으로 다루려고 하거든요."

"저는 잡지에 원고 안 씁니다."

"바쁘시겠지만 다음 달 말까지만 써주시면 되는데, 이 주제에 대해 필자를 찾기가 너무 힘들어서요. 조금만 시간을 내주실 수는 없는지..." 

"전 잡지에는 글 안씁니다. 미안합니다."

 

하루종일 언짢았다.

잡지를 만들다보면 청탁을 거절당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유도 여러 가지다. 일이 너무 바빠서, 집안에 일이 있어서, 쓰고 있는 게 있어서, 주제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아서, 이미 다른 데다 썼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등등등.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잡지도, 널리 알려진 잡지도 아니고, 고료는 정말 쥐꼬리만하고 그러니 못 쓰겠다고 하면 도리가 없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신선한 주제, 새로운 접근, 다른 시각을 기획하려고 하면 필자 찾기가 그야말로 하늘에 별따기다. 둘러보면 교수도 많고 학자도, 연구자도, 전문가도 넘쳐나는데 그렇다.  

흔쾌히 써주마 했다가 마감을 훌쩍 넘겨 편집자를 괴롭히는 분들이 야속할 때도 있다. 청탁을 할 때는 기본적으로 필자가 쓴 관련 글들은 찾아보는데 다른 데 쓴 글을 거의 옮겨놨거나 재탕 삼탕한 글을 받았을 때는 당혹스럽다. 한 가지 주장(혹은 이론)을 너무 울거먹는다는 생각이 드는 연구자도 있고 자기 분야가 아닌데 지나치게 기웃거리는 것 아닌가 싶은 학자도 있다.(물론 정말 좋은 글을 보내주시는, 게다가 원고료도 마다하시는 다수의 훌륭한 필자-교수, 연구자, 전문가 님이 이 동네에는 더 많다. 다만 마감은 고무줄이지만^^)

존경스럽고 늘 많이 배우고 있지만 솔직히 학자라면, 연구자라면 기본적으로 학문에 대한 전문성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하는데 이런저런 매체에 품앗이를 하느라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드는 분도 있다.   

그런데 어제 통화한 교수님은 그 정반대 경우였다. 단호했다. "잡지에는 글을 안쓴다."는 말은 곧 학술지나 단행본을 위해서만 글을 쓴다는 말로 들렸다. 어떻게 학자가, 또는 연구자가 이런저런 청탁에 다 응하고, 이런저런 잡지에 글을 쓰면서 무슨 시간이 있어 자기 학문을 연구하겠는가. 그 시간에 자신의 연구에 더 몰입하고 집중하는 것이 자신에게, 그리고 한국사회에 더 충실한 전문가로서의 역할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에서 "잡지에는 안 쓴다."는 원칙을 세웠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원칙이 그리 나쁘지 않고 틀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그 교수님이 재직하고 있는 국립대는(굳이 국립대가 아니더라도) 교수님의 연구활동에 세금도 들어가고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그에 걸맞는 사회적 발언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소통이 필요한 건 아닐까? 왜 학술지, 단행본은 되고 잡지는 안 될까? 최소한 OOO이란 주제가 어떤 취지이고 지금 시기 무슨 의미인지는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네다섯개의 물음표가 내 머릿속을 마구 어지럽힌다.   

우리는 모든 순간순간 최선의 삶을 살수는 없다. 아니 어떤 이는 신처럼, 성자처럼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지 몰라도 나는 그렇지 못하다. 다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다. 그래서 "이게 최선입니까?"라는 질문은 범인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렇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잡지에는 글을 안 쓴다는 교수님에게, 그리고 잡지를 만들고 있는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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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1-01-20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수 평가에 잡지는 그야말로 잡스럽게 취급해서 그렇겠죠. ㅎㅎ 뭐, 실력도 없을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나무처럼 2011-01-20 02:15   좋아요 0 | URL
그럴수도 있겠는데... 청탁 전에 찾아본 바로는 실력도 있고 나름 진보적(?) 관점을 가진 듯한 분이셨는데.. 게다가 사회과학 분야여서 제가 받은 충격이 더 심한 듯합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는 지구과학이란 과목이 있었습니다. 문과를 지망한 학생들은 대입시험에서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같은 과학 과목 중 하나를 선택해 시험을 봐야 했죠. 그 지구과학 첫 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오더니 대뜸 칠판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선을 쭉 긋고는 그 위에 점을 하나 딱 찍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 선이 인류의 역사라면 우리의 일생은 이 점보다도 짧다고 그럽니다. 또 이 선이 우주의 역사라면 지구의 역사 또한 이 점보다도 짧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은 다단계 회사 대표나 사이비종교 교주의 ‘포스’를 물씬 풍기던 분이셨습니다.  결론인 즉은, 이처럼 방대한 범위에서 대입시험에 나올 20문항을 뽑으니 문제가 그 얼마나 쉽겠나, 그러니 다들 지구과학을 선택하라는 것이었지요. 물론 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구과학을 선택했습니다. 지금 별로 기억에 남는 건 없지만 전혀 ‘과학’같지 않았던 지구과학 수업은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놈의 입시만 아니라면 물리, 화학, 생물, 심지어 수학까지도 아주 흥미로운 학문이란 사실을 십 수 년이 지나서야 깨닫고 있지요. 


지구가 또 한 바퀴 먼 길을 돌았습니다. 2011년 한 해 또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칠판에 찍힌 점은커녕 훅하고 불면 분필가루처럼 날아가 버릴 찰나일 수 있지만 지난해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연말이면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내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저뿐만이 아니겠지요. 개인적으로는 둘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지난 연말에 동갑내기들은 이제 마흔 살이라고 구시렁거렸지만 저는 속으로 마흔이든 마흔 다섯이든 빨리 둘째가 커서 어린이집에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래도 훌쩍 커버린 첫째를 보면 새삼 칠판에 그어진 줄이 떠오르고, 시간 참 빠르다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질까요? 누구는 한 살짜리 아이에게 1년이 1이라고 할 때 백 살 노인에게 1년=1/100인 셈이니 이렇게 계산하면 열 살의 1년=0.1이고 마흔 살 1년=0.025가 되어 열 살 때 비해 마흔 살 때는 시간이 네 배나 빠르게 간다는,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를 공식을 알려주더군요.


좀 더 과학적인 이야기도 있습니다. 대강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먼저 사람에게는 물리적인 시계 말고 생체시계라는 것이 있어 그것이 나이가 들수록 느려진다는 것이지요. 어느 심리학자가 70대 노인 그룹과 20대 젊은이 그룹으로 나누어 눈을 가린 뒤 한 번은 1분, 2분이 지났다고 생각될 때마다 신호를 하게하고, 그 다음에는 1분, 2분마다 얼마나 지났다고 느끼는지 말하게 했습니다. 실험결과 연령에 따라 명확한 차이가 드러났다고 합니다. 노인 그룹은 실제 1분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서야 1분이 흘렀다고 답하고, 실제로 2분이 흘렀는데 40초밖에 안 됐다고 했다는 것이지요. 물리적인 시간이 흐르는 강물이라면 생체시계가 빠를 때는 강물보다 더 빨리 달리지만 나이가 들수록 생체시계가 느려져 강물보다 뒤처지게 되고, 그러니 상대적으로 강물(시간)이 훨씬 빠르게 느껴진다는 겁니다. 또 다른 이유는 정보량의 차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초행길이 더 멀게 느껴지는 것처럼 매순간 낯선 경험을 하고 새로운 정보를 많이 접하게 되는 어린 시절은 길게 느껴지고 늘 반복되는 일상을 사는 성인이 되면 짧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기억 속에서의 시간 감각이 정보량에 따라 재구성되기 때문이라네요.


머리를 많이 쓸수록 뇌에 주름이 많이 잡힌다는 말을 들어봤는데 시간에도 주름이 잡히는 모양입니다. 굳이 이런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벌써 100년 전에 발표됐다지만 여전히 알쏭달쏭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아니라도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시간을 갖고 있거나 같은 시간을 다르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장소에 따라, 처한 조건 그리고 기분에 따라 1분 60초, 1년 365일이 다 같을 수 없는 것이죠.


그럼 안 해본 싸움 없이 다 해봤다는 기륭의 1895일은 어떠했을까요? 용산참사로 가족과 동지를 잃은 이들이 장례식까지 견뎌야 했던 355일은 또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시답지 않게 시간에 대해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이번호 <사람>에 실린 기륭과 용산에 대한 글 때문이었습니다.


2010년 막바지, 6년간의 질기고 질긴 싸움 끝에 마침내 사측과 조인식을 했다는 기륭 소식을 접하고는 ‘쓰잘~데 없지만 그래도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난해한(?) 요구에 성심껏 답해준 김소연 님의 글에는 1895라는 숫자를 만들어낸 시간의 주름들이 자글자글합니다. 방귀를 뀌고 잠꼬대를 하며, 단식을 하다  나물을 캐고, 안동찜닭을 먹으며 싸워온 그 주름들은 칠판을 가로지른 한 줄 선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일 테지요.


이제 곧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두 해째가 됩니다. 용산참사 유족 정영신 님이 인터뷰에서 했던 “정말 후회되는 건 장례식을 치룬 거”라는 말이 참 아프게 다가옵니다. 우리에게 용산참사가 일어나고 장례를 치르기까지의 1년, 그리고 그로부터 또 1년은 과연 얼마큼의 길이, 얼마큼의 무게일까요?


늦어진 마감에 개인적인 사정까지 겹쳐 해를 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폭설과 한파로 한반도가 다 몸살입니다. 수십만 마리가 살처분되었다는 가축들이며 4대강 사업으로 소리 소문없이 죽어가는 생명들은 어떤가요. 이 살처분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미군이 이라크에서 민간인을 죽여놓고는 전투 중에는 불가피하게 따르는 피해가 있다며 이를 부수적 피해라고 했다지요. 미국이나 한국이나 권력을 손에 쥔 자들은 늘 그런 식이지요.


올 한 해 또 얼마나 많은 ‘부수적 피해’와 부대끼며 결코 누구도 부수적인 존재일 수 없음을 증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가운데 더디 가는 생체시계를 너무 탓하지 마시길. 눈가나 이마 혹은 뱃살 어딘가에 새로 잡힐 주름에도 부디 노여워 마시길.


- <사람> 48호에 실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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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경 2011-01-05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안녕하세요 ㅎ
아마도 여기 이름이 꽃경내로 뜨지싶은데요(' ')
알라딘이 헌책방을 한대서
몇년 전 아이디 헤매고 겨우 찾아 들어왔어요.
돌아다니다보니 문득 여기 생각이 나는 거예요
'맞다! 알라딘이었지!' 하면서.
그래서 또 포차 르뽀르타주 르포... 하면서 찾아왔어요.
책읽기는 여전하시네요~ 서평 읽어보고 해야겠어요.
스산한 생각들이 스쳐가는 연말이기도 했고
<사람> 시작하는 말이기도 하군요.
새해 첫 책자가 사랑-48호라서 느낌이 좋아요ㅎㅎ
송년회 때 못 오셔서 신년회 해야된다구 막 그랬어요.
두아기의 아빠라 얼마나 바쁠까,싶기도 하구요.
짬 내서 다같이 얼굴 함 봐요^ ^

나무처럼 2011-01-10 17:41   좋아요 0 | URL
노래방까지 갔다는 송년회 이야기는 형석씨한테 들었어요. 신년회는 기필코 나가겠다는^^
 

그러니까 한 오년 전, 뭔가 배워보고 싶고 해보고 싶은 일이 생겼다. 삼십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별로 문제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생겼다. 그러고나니 돈도, 시간도, 따라서 심리적 여유도 빠듯해졌다. 아이가 자라 손이 덜 가게 되어 이제 뭘 좀 해볼까 주위를 기웃거리는데 또 덜컥 둘째가 생겼다. 사는 게 이 모양이다.    

첫째를 키우면서 돈도 비교적 적게 들고 시간도 짬짬이 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더랬다. 왜 뭔가를 새로 시작하고 싶었을까? 지나놓고보니 그게 삼십대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아리송하다. 그러다 아이가 말을 배우는 걸 보면서 문득 다른 언어가 배우고 싶어졌다. 신혼여행이랍시고 비행기를 타본 뒤에 바다 건너를 갈 일도 없고 길에서 두어 번 외국인과 마주친 것을 제외하면 살면서 별로 쓸 일도 없지만 영어로 된 글을 읽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해왔다.  

조지 오웰의 작품처럼 그 사이 많이 번역되어 출간 되기도 했지만 아직도 관심이 가는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또 번역과 원문을 읽는 것이 천지차이까지는 아니만 제법 감동의 결이 다르다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건 오로지 성문종합영어와 거기에 실린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문 덕분이다. 중학교 2학년부터 학교 공부와 담을 쌓고 밑에서부터 2,3등을 다퉜던 나는 재수를 하면서 비로서 영어공부라는 것을 하게 됐다. 썩 공부를 잘하던 친구에게 물어보니 성문기본을 두 번 보고 성문종합을 세 번 보면 학력고사에서 영어점수가 웬만큼은 나온다고 했다. (사실 내 영어점수를 알고 있는 이들은 맨투맨을 권했지만)

안 그런듯 보이지만 나름 성미가 급하고 뭐든 대충대충인 나는 성문기본을 한 달만에 후딱 보고 성문종합을 한 대여섯 달에 걸쳐 세 번인가 네 번 본 것 같다. 사실 보고 이해했다기보다는 거의 달달 외운 수준이었고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대입시험인 학력고사에서는 이런 방법이 통했다.  

 

   

 

 

 

 

 

  

 

 
그 성문종합에 실렸던, 전문도 아니라 발췌문으로 기억되는, 마틴 루터 킹의 '우리는 왜 기다릴 수 없나'쯤으로 제목이 기억되는 글을 독해하며 영어읽기의 즐거움을 난생 처음 느겼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 문예창작을 전공하게 되면서 내 영어공부는 여기서 끝이 났다. 그런 이유로 가끔 영어를 접하게 되면 성문종합에 나오는 고등학교 수준 단어는 아는데 성문기본에 나오는 중학교 수준 단어를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쨌든 근 이십년만에 다시 영어공부를 하자고 덤비니까 막막할 따름. 그래도 주변에는 영문과 출신도 여럿 있고 프리토킹은 물론 유엔인권이사회 결정문도 번역할 줄 아는 이들도 있어 든든했지만 역시 공부란, 특히 언어란 누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어디 입사시험 볼 일도 없고 외국인을 만나 수다 떨 일도 없으니 우선은 무턱대고 읽어나보자고 해서 추천받은 책이 바로 English Re-start다. 그리고 바로 오늘 이 책을 띠었다. (이것도 배이직과 스키킹 위주라는 어드밴스 1은 건너뛰고 리딩 위주의 어드밴스2를...) 태어나 처음으로 영어책 한 권을 다 본 거다. (이런 대견할 데가^^)   

 

 

 

 

 

 

 

 

 

고백하자면 이 233페이지짜리 책 한 권을 보는데 무려 6개월이 걸렸다. 보름 쯤 읽다가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뚝 끊기고, 또 열흘 쯤 읽다가 잡지 마감이 닥치면 쳐박아 놓고. 이렇게를 세네 번 반복한 거다. 그러다 문득 달력을 보니 12월. 내년이면 나이가 마흔인데 도저히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하고 12월 1일부터 하루 20페이지씩 읽고 싶은 책들 꾹 참아가며 한 달만 집중하자고 덤빈 덕에 예상보다 일찍 책거리를 하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책을 오전에 주문해서 오후에 받았다. 빠르다. (이렇게까지 빨라야 할 이유는 모르겠다.) 그 때문에 부랴부랴 책 한 권을 서둘러 마무리하게 된 듯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공로자는 바로 첫째 아이이지 않을까. 

이제 내년이면 다섯 살이 되는 아이는 요새 부쩍 한글에 관심이 많다. 물론 아이가 우리말을 배우는 속도는 내가 영어 배우는 속도를 훨씬 앞질러 갈 거다. 어휘력을 습득하는 것부터 실전 활용에까지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다. 문자을 깨우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 아이들은 언어를 더 빨리, 잘 배울까? 위 책에 의하면 아이들에게 언어, 모국어 배우기는 생존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영어 도전이나 정복은커녕 영어 원정이나 나들이쯤으로 여기는 내가 어찌 아이들을 따르겠는가. 하지만 아직까지는 우리말도 영어도 내가 훨씬 더 잘한다. 하하하.  

 



 

 

 

 

 

 

 

 - 방금 전 도착한 <노인과 바다>와 몇 달 전에 영어공부하니 내놓으라고 떼를 써서 얻어낸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내 책꽂이에 있다. 어느 게 알량한 내 수준에 맞을 런지? 아님 아이폰에 넣어놓은 <피노키오>부터 읽어야할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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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0-12-14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취미로 영어 공부한다고 큰소리 뻥뻥 쳐놓고 계속 책만 사고 있는 형편이에요. 유람기라지만 곧 영어로 읽은 책의 서평도 올라오는거 아니에요? 나무처럼님 화이팅!

나무처럼 2010-12-14 17:50   좋아요 0 | URL
위에 두 권을 오늘 몇 페이지 읽어봤는데... 진짜 화이팅이 필요하군요. 쩝...

카스피 2011-01-04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영어공부를 다사한다니 정말 대단하세요.나무처럼님 늦었지만 새해 복많이 받으세용^^

나무처럼 2011-01-04 17:52   좋아요 0 | URL
영어공부까지는 아니고 출퇴근 시간에 영어책을 읽는 정도인데.. 영 진도가 안 나가서... 다른 읽고 싶은 한국어 책도 많은데 이러고 있는게 맞나 싶기도 하고. 하여튼 올 한해는 꾸준히 한번 해볼라구요. 참 카스피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