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조그만 일에만 분노하는가, 조그만 일에만...  

사법연수원이 생긴이래 처음이라는 집단행동(문제점과 명분에는 모두 동의가 되지만 웬지 밥그릇 지키기로만 보이는... 그 무수한 불합리와 부정의한 일들이 벌어질 때 그들은 어디서 뭘 했나?), 어느 공영방송사 전 사장의 눈부신, 혹은 눈물겨운 변신(다른 건 몰라도 엄모씨는 가족에게, 자식들에게 자신의 변신을 어찌 설명했을까? 이러면 안 되지만 고문해서 자백이라도 받고 싶다), 5억짜리 전세를 놓으며 전세란 대책을 골몰한다는 해당부처 장관(이 대목에서는 참, 할 말이 없다). 

분노의 방향은 다른 데로 돌려져야 한다. 쌍용자동차, 삼성반도체, 이 자본의 왕국, 자본의 음탕함으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앞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 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