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중요하다. 누가 내 이름을 불러줄 때 꽃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잡초가 되어 뿌리째 뽑힐 수도 있다. 이름이 있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그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 

2.
동해인가, 일본해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이 논란에 대해 '평화의 바다'란 제안을 한 적 있다.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우익에서 난리가 났다. 이른바 진보라고 불리는 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기억된다.
지금 다시 논란의 중심이 된 이 바다는 한국에서는 동해, 일본에서는 서해인 셈인데, 오늘 뉴스를 보니 한국해라고 부르자는 주장이 있다. 친절하게 sea of korea라고 표기된 영국 지도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왜 시 오브 코리아가 한국해인가? 그러면 한국해와 함깨 북한도 고려해 조선해라고 병기해야 할까? 고려해로 통일해야 할까? 

3.
콜롬버스 덕분(?)에 아메리카 원주민은 인디안이 되었고 아메리고 베스푸치 덕분(?)에 아메리카는 아메리카가 되었다. 땅과 바다에 이름 붙이기는 전형적인 제국주의 시각이다. 어느 바다가 인도양이 되었든 스리랑카양이 되었든 바다는 그 바다에 살아가는 이들, 물고기와 프랑크톤과 해초와 어부의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름 불러주기는 대상을 인식하는 차원의 것이어야 하지 대상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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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유명한 구절이다.

김원의 책을 읽고 있다.

과연 괴물은 누구인가?

자본주의, 폭력, 테러리즘, 반인륜적 범죄... 광신도, 범죄자, 부랑인, 날품팔이, 껌팔이... 철거민, 빨갱이... 

우리는 정말 괴물과 싸우고 있을까?  

세상은 무엇을, 누구를 괴물이라 할까?

두려움, 절대적인 폭력, 이해불가능한 공포, 예측불가능한 행동.... 배제와 타자...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래동안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보게될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중에서...
 
   


우리의, 나의 심연을 들여다 보는 존재가 혹시 괴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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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상이 불순해서 그런지, 주변에 있는 이들 열에 아홉은(아니 열에 열 가깝다) 이번 평창 올림픽 유치에 딴지를 건다. 내 경우에는 남의 잔치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거 같아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역시 아홉시 뉴스를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뉴스에서 감격에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그들을 그저 무지몽매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넘겨서야 하겠는가. 어떤 동기가 부여됐을 수도 있고 이해관계가 있을 수도 있고 그저 애향심이 커서일 수도 있다.

평창에 대해 딴지를 거는 사람들을 보고 왜 잔치집에 재를 뿌리냐고 성내는 사람도 있다. 남의 잔치집에 가서 감놔라 배놔라도 웃기는 일이지만 잔치집에 가서 재를 뿌리는 건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이건 도대체 내 잔치인가, 남의 잔치인가, 우리 모두의 잔치인가?

우리의 잔치라면, TV에서는 대한민국의 경사라고 하는데, 그럼 나도 즐거워야 하는데 영 그렇지 않으니 문제다. 남의 잔치라기에도 뭔가 게름직하다. 진보신당은 논평에서 "국제 경기대회는 경제적 이익을 고려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고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동감이다. 너무 순진한 생각이지만 동계올림픽은 일단 전 세계 스키나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의 잔치여야 하고 그 사람들이 모여서 판을 벌일 수 있게 자리를 펴주는 평창, 강원도민의 잔치여야 한다. 잔치판을 벌이는데 얼마가 남거니 모자라거니 하는 건 아무래도 좀 천박하고 너무 야박하다. 내가 즐겁고 네가 즐겁고 우리가 즐겁다면 밑질 수도 있는 게 잔치인 것 아닌가.

문제는 제 주머니 불리는 놈과 밑지고 마당 쓸고, 음식하고, 뒤치다꺼리 하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다, 그럴 거 같다는 거다. 그래서 영 잔치 기분이 안 난다.

어쨌든 한창 기분이 업되어 흥겨운 사람에게 재를 뿌리지는 말자. 언론을 보고 재를 뿌려 달라는 말도 하지 말자. 대신 누가 뒷주머니를 챙기고 누가 뒤치다꺼리를 하게 내몰리는지에 대해서도 제발 균형감 있게 다뤄줬으면 하는 바램, 너무 큰 기대일까. 아무래도 그런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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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1-07-08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감이에요.. 스포츠인들을 보면 정말 잘 된 일이지만.. 같이 나오던 mb를 보면 왜 자꾸 원전수주가 떠오르는지..ㅠㅠ 평창 땅투기꾼들 신났죠 뭐..
그래도 김연아 눈물 글썽이는 거 보니까 마음이.. 잘됐다 싶더라구요.
 


멀리 있는 무덤             

                -- 金洙暎 祭日에(김영태)



6월 16일 그대 제일(祭日)에

나는 번번이 이유를 달고 가지 못했지

무덤이 있는 언덕으로 가던

좁은 잡초길엔 풀꽃들이 그대로 지천으로 피어 있겠지

금년에도 나는 생시와 같이 그대를 만나러

풀꽃 위에 발자국을 남기지 못할 것 같아

대신에 山 아래 사는

아직도 정결하고 착한 누이에게

시집(詩集) 한 권을 등기로 붙였지

객초(客草)라는 몹쓸 책이지

상소리가 더러 나오는 한심한 글들이지

첫 페이지를 열면

그대에게 보낸 저녁 미사곡이 나오지

표지를 보면 그대는 저절로 웃음이 날 거야

나같은 똥통이 사람 돼 간다고

사뭇 반가워할 거야

물에 빠진 사람이 적삼을 입은 채

허우적 허우적거리지

말이 그렇지 적삼이랑 어깨는 잠기고

모가지만 달랑 물 위에 솟아나 있거든

머리칼은 겁(怯)먹어 오그라붙고

콧잔등엔 기름칠을 했는데

동공(瞳孔)아래 파리똥만한 점(點)도 찍었거든

국적없는 도화사(道化師)만 그리다가

요즘은 상투머리에 옷고름

댕기, 무명치마, 날 잡아잡수

겹버선 신고 뛴다니까

유치한 단청(丹靑)색깔로

붓의 힘을 뺀 제자(題字)보면

그대의 깊은 눈이 어떤 내색을 할지

나는 무덤에 못가는 멀쩡한 사지(四肢)를 나무래고

침을 뱉고 송곳으로 구멍을 낸다우

간밤에는 바람소리를 듣고

이렇게 시든다우

꿈이 없어서

꿈조차 동이 나니까

냉수만 퍼 마시니 촐랑대다 지레 눕지

머리맡에는 그대의 깊은 슬픈 시선이

나를 지켜주고 있더라도 그렇지

싹수가 노랗다고 한 마디만 해주면 어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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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름을 정말 기억 못한다. 워낙 내 이름이 특이해서인지 상대방은 내 이름을 아는데 난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잠깐 공인으로 살던 때, 학생회 간부시절 참 민망한 일이 많았다. 최근에는 알콜성 치매인지 사람 얼굴도 몰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모르는 사람이 인사를 한다. 몇 주 혹은 몇 달 전에 안면을 튼 사이라고 얘기해주면 그때서야 '아, 그랬지'하며 떠오른다. 서너 번은 봐야 저 사람이 누군지 안다. 안면인식장애 초기 증세가 아닌가 의심해본다. 내가 선천적으로 이기적이고 타인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놈이라서 그런가 자책도 한다. 그래도 점점 실례를 범하는 일이 많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내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얼굴을 몰라봐도 어여삐 봐달라는 것이다. . 

.  
.
.
.
.
이렇게 적었는데 문득, 아래 시가 떠올랐다. 왜일까? 
 


너 죽은 날 밤 
차 간신 몰고 집에 돌아와 
술 퍼마시고 쓰러져 잤다. 
아들의 방.  
아들이 밤중에 깨어보니 
내가 화장실에서처럼 
소변보고 있었다. 
태연히. 
그리곤 방을 나가 
화장실에 누웠다.  
태연히. 

- 황동규 작 '너 죽은 날 태연히-같이 술 마시던 시절의 김현에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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