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이너라는 그야말로 마이너스러운 곳에서 퍼온 글... 

 

-------------------------------------- 
 
오줌권과 그림책 읽어줄 권리

권리는 본래 헌법과 법률에 따라 주어진 특정 자원이나 행위에 대한 배타적 향유 능력을 일컫는 법률용어이다. 하지만 우리는 삶에서 굳이 법률과 헌법의 조문을 따지지 않고 권리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들을 주장하며 산다. 그것들 가운데는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한, 그러나 사실은 아주 중요한 행위나 자원들이 포함된다. 이런 행위에 굳이 ‘권리’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이유는, 그것이 일상에서 잘 지각하지 못했던 그 행위나 자원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되고, 그러한 행위나 자원을 모든 사람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는데 편리하기 때문이다.
 
너무도 일상적이라 잘 감지되지 못하는 것들의 예로, 지체장애가 있는 한 후배가 종종 언급하는 ‘오줌권’을 들 수 있다. 배뇨활동은 헌법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에 포함되기 때문에 따로 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구체적인 행위의 자유가 파악되지 않는다. 그러나 ‘오줌권’이라는 구체적 언어를 우리가 떠올리고 사용하게 될 때, 그 파괴력은 강력하다.
 
(주로 지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오줌권의 중요성을 다 공감할 것이다. 오줌권은 모든 자유의 근간이다. 장애인들의 외출은 언제나 ‘접근 가능한 화장실의 존재유무’에 따라 판단된다. 식당 메뉴의 질은 두 번째 문제이며, 경관의 아름다움이나 흥미로운 놀이기구의 존재도 그다음 조건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화장실에 갈 수 있는가에 달렸다.
 
오줌을 눌 수 없는데 음식의 맛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오줌을 눌 수 없다면 연애는 무슨 소용이며 문화활동은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밥은 집에서 먹고 갈 수도 있지만 오줌은 밥보다 자주 해결해야 한다. 장애가 없는 대부분의 사람도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밥을 먹을 수 없다면 그것은 부당한 일이라고 분노할 것이다. 그러나 ‘오줌권’은 장애가 없는 사람들에게 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아니 사실은 더욱더 확보되어야 할 권리가 ‘배뇨’의 기회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장애인 중에 상당수는 방광염이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오줌권이 보장되지 않아서 배뇨를 참기 때문이다.
 
미세한 행위의 중요성을 포착하는 일은 장애인의 삶을 증진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부여한다. 지역 도서관운동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느티나무 도서관’에는 그림과 점자가 함께 있는 책이 있다고 한다. 시각장애인이 아닌 나는 왜 점자책에 굳이 그림이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시각장애인 부모의 그림책 읽어줄 권리'를 말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아주 중요한 핵심적 행위를 비시각장애인들에게 각인시킨다. 시각장애 부모로서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이들에게 아이에 대한 교육은 매우 중대한 책임이자 권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히 그 교육과정 안에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 포함되며, 그 책 중에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이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시각장애 부모가 시각장애가 없는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줄 수 없다면 이는 심각한 자유의 제한이자 권한의 침해다. 이처럼 ‘시각장애인 부모의 그림책 읽어줄 권리’의 창안은 우리의 삶에서 자연스럽고 중대한 함의를 갖지만, 쉽게 포착되지는 않는 현실의 문제를 잡아내 비시각장애인들의 뇌리를 충격한다.
 
이제는 거의 모든 법학자까지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용어인 ‘이동권’은 아마도 권리라는 이름 붙이기 전략이 만들어낸 가장 대표적인 산물일 것이다. 이전까지 이동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위였으므로 굳이 권리라고 이름 붙이는 사람이 없었다. 국가가 어느 날 밤 남산 아래로 끌고 가 폭행하고 영장 없이 구속하던 시기에나 사람들은 ‘이동의 자유’가 억압된다고 느꼈을 뿐, 누군가 적극적으로 방해하지 않으면 이동의 자유는 언제나 보장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선언하는 순간, 기존의 시스템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던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의 ‘이동’이 사실은 수많은 사회 인프라의 축적 속에서 가능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고, 그 가운데 인프라의 혜택을 부당하게 받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동권의 발명은 장애인의 자유를 어쩔 수 없는 불운이 아니라 달성해야 할 정치적 목표로 상승시켰다. 멋진 일이었다.
 
물론 권리라는 자격을 부여하는 일이 남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상 모든 것이 권리일 수는 없다.(그렇게 되면, 오히려 진정 권리의 이름을 얻어야 할 자원과 행위의 중요성이 저평가될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절실하고 당연하지만 이 세계가 언급하지 않는 미세한 행위와 자원들을 찾아서 권리의 이름을 부여해보는 일은 항상 매력적인 결과를 낳는 것 같다. 오줌권과 시각장애인 부모의 그림책 읽어줄 권리 이외에, 우리는 또 어떤 권리를 소유했는가? 본래부터 존재하는 권리라는 것은 사실 없다. 권리는 발명되는 것이다. 그 발명이 정의롭고 타당하며 세상에 충격을 줄 만한 것이라면, 언제나 성공한다.
  

글쓴이는... 

원영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 지체장애인. 올해가 20대의 마지막. 지하생활자로 15년간 살았고 세상으로 나온지 올해가 지나면 15년이 된다. 한국사회의 장애인치고는 운이 좋아서 대학을 지나 대학원까지 왔다. 관심사는 연극, 장애학, 생물학, 드라마, 소설, 진화론 등 다양하다. 까칠한 말투로 종종 비난을 듣는다. 스스로를 섹시하다고 공언하고 다닌다. 


아래는 요즘 읽고 있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길을 잃는 것은 길을 찾는 한 가지 방법이다.”


다들 한 번쯤은 길을 잃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모태 길치’라 할 수 있는 저는 지금껏 무수하게 길을 잃고 헤맸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지리도 배웠고 군대에서 나름 독도법 책장도 넘겨봤는데 그럼에도 시시때때로 길을 잃습니다. 심지어는 거금을 들여 구입한 내비게이션을 떡하니 운전석 옆에 붙여놓고도 고속도로 IC를 잘못 타서 수십 킬로미터를 돌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야 시간 낭비, 돈 낭비, 체력 소모와 자괴감 정도지만 어렸을 적에는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여섯 살 무렵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날은 마침 저희 집 이삿날이었습니다. 다들 이삿짐을 싸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유난히 심심했을 저는 나 홀로 ‘수사반장 놀이’를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최고 인기였던 TV 프로그램 ‘수사반장’에서처럼 미행을 한 겁니다. 범인은 주인집 아주머니였습니다. 시장에 가려고 나서는 주인집 아주머니를 살금살금 눈치 채지 못하게 뒤를 밟았습니다. 어느 정도 갔을까, 어느 순간에 그만 어느 길목에서 아주머니를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제야 이리저리 둘러보게 된 거리는 참 낯설었습니다. 아주머니 뒤꽁무니만 보고 쫓아왔으니 어느 사거리에서 가로질렀고 어느 골목에서 꺾어졌는지 알 턱이 없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무작정 뒤돌아 곧바로 가면 집이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낯선 동네에 다리는 아프고 길은 도무지 찾을 수 없고, 어느 순간 골목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제 모습이 보입니다. 다행히 어느 집에서 제 울음 소리를 듣고 대문을 열어주었고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인 뒤 저를 파출소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요. 삼촌이 파출소 문을 열어젖히면서 제 ‘수사반장 놀이’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2011년 올해 《사람》은 처음으로 연중기획이라는 것을 시도해보았습니다. ‘풀뿌리운동과 인권운동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인권조례, 핵과 에너지, 풀뿌리 정치,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 등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1년 동안 끈질기게 파고들어보자는 취지였지만 돌이켜보면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애초부터 뚜렷한 목표를 세우지 않고 시작했기에 어느 순간 길을 잃어버린 듯 우왕좌왕하며 임시방편으로 땜질하기 급급했습니다. (부족한 기획임에도 좋은 글로 지면을 채워주신 필자들에게 너무나 고맙습니다.) 그럼에도 풀뿌리운동과 인권운동이 만나서 대화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이 각성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은 여전합니다.


“나도 물어보고 싶다. 이 운동의 목표가 뭐냐? 이 운동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냐?”
“우리는 파워를 다른 식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권력을 재생산적이고 구성적인 것으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계와 위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뉴욕의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를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는 연구집단 ‘수유너머R’의 고병권이 전하는 시위대와의 토론 중 일부분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보며 “풀뿌리운동은 ‘비어있는 중심의 운동’을 지향한다. 사람들이 중심에 들어와서 계속 자기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중심을 비워두고 와달라고 하는 태도다. 이곳으로 와서 함께 일하고, 내가 힘이 드니까 같이 더불어서 가치 있는 것들을 해보자는 자세다.”[《사람》(2011년 1·2월, 48호) ‘풀뿌리운동과 인권운동의 대화’]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어찌 보면 ‘풀뿌리운동과 인권운동의 만남’은 인권운동을 어떻게 하면 더욱 레디컬(radical)하게 만들 것인가의 고민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레디컬은 근본적, 철저한, 급진적 등으로 번역하는데 그 어원은 라틴어 뿌리(radix)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저 월스트리트에서의 점거 시위와 풀뿌리운동의 묘한 공통점은 오히려 당연하다고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글머리에 적은 “길을 잃는 것은 길을 찾는 한 가지 방법이다.”라는 멋진 글귀는 아프리카 스와힐리 속담입니다. 어느 철학자의 블로그에서 보고 언젠가 한 번 써먹고 싶어서 기억하고 있었지요. 그러다 얼마 전 진보신당에서 활동해온 선배가 페이스 북에 근래의 답답한 심경을 올린 것을 보고 때는 이때다 싶어 힘내라며 댓글로 달아 주었는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정말 길을 잃어 황망한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다가는 욕을 들어먹기 십상이죠. 하지만 예사로 길을 잃다보면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만나는 기쁨도 알게 되고 낯선 길을 나설 때의 두려움도 차츰 덜해지기 마련입니다. 무엇보다 길을 잃었다는 것은 이전에는 걸어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는 뜻이겠죠.


솔직히 저는 진보정당, 또는 진보정당 운동에 대해 문외한입니다. 10여 년 전쯤 아주 잠깐 당적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만 그것도 사실 후원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지지의 표시 차원에서 입당을 한 것이었고, 영 내 몸에 안 맞는 옷을 걸친 것 같아서 채 1년도 되지 않아 탈당을 했습니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세 차례의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매번 뜨거웠던 ‘비판적 지지’를 둘러싼 논쟁을 지켜보면서도, 민주노동당이 쪼개지고 진보신당이 만들어지는 가운데서도, 그리고 최근 지지부진한 통합 논의를 보면서도 안타까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와중에 진보신당 대표에 출마 의사를 밝힌 홍세화의 글을 읽으며 잠시나마 당원 가입을 고민해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노동자 경영권을 요구해 주주자본주의를 흔들어야 하며, 상비군 폐지를 공론화시켜 병영국가의 성벽에 균열을 내야 합니다. 서울대는 없애고, 대학은 평준화하며, 각종 국가고시는 지역별로 할당하라고 요구함으로써 학벌사회를 전복시켜야 합니다. 지배 담론에 길들여져 허락된 것만 말하는 진보정당은 존재 이유가 없습니다. 금지된 것을 욕망하고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는 불온함 속에 세상을 바꾸는 우리의 힘이 있습니다.”(홍세화, ‘진보신당 당대표 출마의 변’ 중에서)


노무현 정부 인수위원회에서 쓰기 시작해 한동안 유행하다 요새는 거의 자취를 감춘 ‘로드맵’이란 말이 있습니다. 밑그림, 일의 처리 순서나 세부 계획이라고 할 수 있지요. 총선과 대선이 있는 바야흐로 ‘정치의 해’인 2012년, 누가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 길 위의 사람들을 위해 레디컬한 로드맵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뒤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한국에 녹색당도 생긴다고 하니 저 같은 ‘길치’는 조금 안심을 해도 좋을까요?


-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11-12월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람이사람에게 어떤 용역의 뒷모습
르포르타주 구미 단수사태, 5일의 기억
인권이내게로왔다 우리도 저 붉은발말똥게처럼
인권이내게로왔다 결국 인권에서 못 벗어난 나의 어학연수기
人터뷰 ‘자유인’으로 살기 위하여
기획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운동의 새로운 도전
기획 두 바퀴로 달리는 나눔과 보살핌의 공동체
특집 트위터와 기적의 매뉴얼
특집 단절의 꿈이 미래를 만든다
특집 무엇을 위한 연대, 무엇을 향한 적대인가
사람in인권 여기, 독립영화 하나 있어요
사람in인권 쥐 그래피티와 풍자 전쟁
사람in인권 복지국가를 의심하다
엄마에게쓰는편지 고향에 대한 권리
사람답게 다음 생에도 이 몸을 만날까
희망을위한직접행동 서로의 꿈을 응시하는 운동은 불가능한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금 행복한 사람 있으면 손 들어봐요?”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유명한 조세희 작가를 모신 강연회 자리에서였어요. 이 난데없는 질문에 번쩍 손을 들 뻔 했죠. 다행이 제 손이 올라가기 전에 늙은 작가는 다음 말을 이어갔습니다.

“지금 세상에서 행복한 건 도둑놈들이거나 아니면 바보들입니다.”

도둑과 바보, 저는 둘 중에 무엇이었을까요? 그 무렵 15개월 된 큰 딸내미가 한창 예쁜 짓을 할 때라 이런 게 행복이구나 싶었습니다. 사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에는 술을 한 잔 걸치고 밤늦게 집에 들어와 엄마 옆에서 잠든 아이를 물끄러미 보며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이 고통이 넘쳐나고 갈수록 험악해지는 세상에서 한 생명이 온전히 자라도록 키울 자신이 없었던 것이죠. 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어대는 아이 탓에 생활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우리 부부였지만 장모님은 멀리 사시고 어머니는 지병이 있으셨기에 마땅히 도움을 받을 곳도 없었지요. 게다가 아이 백일도 되기 전에 아이엄마는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집근처 어린이집도 없었기에 일주일에 이틀은 제가 아이와 대여섯 시간을 꼬박이 보내야 했던 것이죠. 꼭 포대기에 업혀야 잠이 들던 딸내미였기에 베개를 아이삼아 등에 올리고 포대기를 두르는 연습도 몇 차례 했지요. 그래서 아이 업는 것은 곧 능숙해졌지만 기저귀도 갈아주고 분유도 먹었건만 계속 울어대는 아이 때문에 진땀을 흘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녀석이 옹알이를 하고 돌이 가까워서 아장아장 걷더니 도리도리에 잼잼에, 동화책까지 짚어들고 읽어달라며 안기니 그제야 아이 키우는 맛이 뭔지 알겠더라고요.

조세희 작가의 강연이 있은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용산 재개발 현장에서 다섯 목숨이 한꺼번에 죽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작가는 아픈 몸을 이끌고 그 자리에 나와 또 비슷한 말을 했죠. 또 그는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져야 할 불행의 짐이 많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그 당시 저는 불행한 일을 겪은 사람들, 하지만 꿋꿋하게 불의에 맞서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었죠. 그러면서 이 시대에 희망을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수족구며 신종플루까지 이겨내고 무럭무럭 자라 벌써 다섯 살이 되었네요.

그리고 재작년 이맘때 덜컥 둘째가 생겼어요. 큰애를 낳고 하나 정도는 더 있어도 되겠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닥치니 좀 당황스러웠죠. 한편으로는 그 힘들었던 시기를 다시 겪어야 한다니 많이 우울해지더라고요. 그런데 아이엄마는 둘째가 태어나면 더 힘들 테니 그전에 연수를 받아야 한다며 저한테 큰애를 맡기고 2주간 연수에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일주일에 이틀 애를 봤다지만 이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죠. 휴가를 내고 아이와 처가로 갔습니다. 엄마가 없어서인지 떼가 늘은 네 살짜리 아이의 신경질을 받아주느라 2년 같은 2주를 보냈죠. 하루는 박물관, 하루는 도서관, 다음날은 놀이공원, 그리고 찜질방. 하도 성질이 나서 차안에서 우는 아이를 30분이 넘도록 달래주지 않은 적도 있지만 자다 깨어나 엄마를 찾다가 제 품에서 다시 잠든 아이를 볼 때면 ‘너야말로 무슨 고생이냐’ 싶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게 되더라고요.

작은애가 태어난 뒤 지난 일 년은 감기도 우리식구가 되었죠. 큰애가 어린이집을 다니니 줄곧 감기에 걸려 있는데 작은애가 피해갈 수 있나요. 한 번은 큰애 감기가 폐렴으로까지 가서 입원을 했는데 네 식구가 모두 병실에서 먹고 자고를 했어요. 늦은 밤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앉아 병원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는 세 명의 여인네를 보니 무슨 피난민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작은애는 큰 병치레 없이 첫돌을 맞이했습니다. 둘째라 노하우가 생긴 덕분인지 키우기가 훨씬 수월했지만 노심초사, 조심조심했던 첫째와는 달리 무뎌진 부모 때문에 혼자 베란다로 기어나가 세탁세제를 퍼먹는가 하면 큰애와 방바닥에서 뒹굴다 가구 모서리에 찍혀 얼굴을 꿰매기도 하는 등 아슬아슬했던 순간들이 몇 차례 있었죠.

그 사이 이사를 해서 작은애도 동네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귀신같이 엄마의 등과 아빠의 등을 구별해내는 젖먹이와 씨름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일주일에 하루는 아이엄마의 일이 늦게 끝나서 제가 아이 둘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와 지하철을 타고 아이엄마 직장까지 갑니다. 몇 십분이라도 아이들에게 엄마를 빨리 만나게 해주려는 생각이라기보다는 그렇게라도 해서 좀 더 일찍 아이들에게서 ‘해방’되고 싶은 게지요. 그 지하철에서 어떤 할머니에게는 “요새 아빠들은 애를 참 잘 본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듣기도 했고 어떤 할아버지에게서는 “시대를 잘못 만나 고생이 많다.”는 위로 아닌 위로를 듣기도 했습니다. 물론 대다수의 아이엄마들이 이 글을 본다면 고작 일주일에 며칠, 하루에 몇 시간인데 무슨 유세냐고 할 겁니다. 그래도 아이를 봐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바싹 침이 마르고 아이엄마에게 아이들을 넘기고 나면 무슨 큰일을 치룬 것처럼 홀가분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늘 비실비실 하다고 구박받는 몸으로 작은애는 안고 큰애는 업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면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끊임없이 물어보고 쉬지 않고 재잘거리는 큰애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작은애까지 함께 있다 보면 숨 한 번 돌릴 여유도 없고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리거든요. 그나마 작은애가 걸음마를 시작했으니 앞으로는 나아지리라 여겨도 좋을지, 아니면 또 다른 고비를 만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딸을 둔 아빠들이 대게 그렇듯이 저도 자칭 타칭 ‘딸바보’입니다. 아이엄마는 큰애가 아빠에게 너무 버릇없이 군다며 요즘 걱정이 많지만 그저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그렇건만 아직도 자다가 깨면 사정없이 저를 밀어내고 엄마 품으로 기어들어갑니다. 작은애야 말할 것도 없지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으면 “엄마아빠”라고 답하는 영악한 큰애지만 단 한 번도 ‘아빠엄마’는 아닙니다. 한 번은 그럼 왜 엄마하고만 자고 아빠랑은 안 자느냐고 물었더니 내일은 아빠랑 잘 거랍니다. 물론 그 내일은 한 번도 온 적이 없고 당분간도 오지 않을 겁니다.

추석날 보름달 아래서 큰애랑 강강술래를 하는데 아이엄마가 소원을 빌자고 합니다. 아이들이 도둑이나 바보가 되지 않기를, 이웃들과 불행의 짐을 나눠질 수 있기를……. 딸내미에게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물었더니 “어서 빨리 어른이 되게 해주세요.”랍니다. 저는 냉큼 딸내미의 소원이 될 수 있는 한 천천히 이뤄지게 해달라고 소원을 바꾸었습니다. 큰애의 내일처럼 말이죠. 
 


 

 

 

 

 

 

 

 


 

 - 보리출판사에서 나오는 잡지 <개똥이네 집>에서 청탁을 받아 보낸 글입니다. 이런 잡지가있는 줄 몰랐는데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과 부모가 같이 보기 좋은 잡지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망이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도 신뢰하지도 않는다. 이번 한진중공업에서도 희망버스보다 일찍이 희망퇴직이 있었다. 비단 한진중공업만이 아니라 아이엠에프(IMF) 이후 무수히 잘려나간 노동자들 중에 도대체 어떤 이들이 명예롭게 명예퇴직을 했는지, 희망퇴직자들이 무슨 희망을 갖고 일터를 떠났는지 모르겠다. 희망이란 말은 참 얄궂은 말이다. “네가 우리의 희망”이라거나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말은 대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상책이다.


2011년 새해가 밝은 지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았을 무렵 김주익 열사의 추모 동영상으로 처음 알게 되고 『소금꽃나무』란 책을 읽으며 열혈 팬이 되었던 김진숙 씨가 다른 곳도 아닌 85호 크레인 위로 올라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때 나는 희망이란 단어 대신 고행, 순교 같은 단어가 불현듯 떠올라 망측해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송경동 시인의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이야기를 읽고 다시 ‘김진숙과 85호 크레인’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 또한 희망에 관한 것이기보다는 85호 크레인에서의 죽음과 절망, 패배의 이야기였다. 이 죽음과 절망과 패배를 멈추기 위해 다만 우리의 적은 힘이라도 보태야 하지 않겠냐는 시인의 말이 공명을 일으켜 ‘희망버스’가 생긴 줄로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 솔직히 말해 희망버스는 그 출발이 절망이며 패배한 역사를 경로로 삼는 그래서 좀 사기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한다.


1차 희망버스는 장인어른 생신과 겹쳤고 2차는 어머니 칠순 날이라 타지 못했다. 3차도 뒤늦게 내려갔다가 반가운 이들을 만나는 바람에 술잔만 빨다가 서둘러 올라왔다. 무박 2일이었지만 ‘희망버스는 절망버스’라는 머리띠를 두른 영도주민의 욕설과 삿대질, 해방정국에서의 백색테러를 떠올리게 하는 어르신들의 ‘빨갱이 사냥’을 목격했다. 밤 열두 시가 넘도록 주택가 골목을 누비는 바람에 영도 주민들에게 큰 폐를 끼치기도 했지만 열대야에 무료했던 일군의 영도주민은 많이들 반겨주시기도 했다.


며칠 전 방바닥을 뒹굴다가 한진중공업 사태를 다룬 KBS ‘추적60분’을 봤다. 중간쯤이었을까, 덩치가 산만한 노동자 한 명이 현장에서 걸어 나오며 “살려 주세요”라고 울먹이는 장면이 나왔다. 경찰이나 용역에 손발이 들려 나오는 것도 아니고 곤봉에 죽도록 두들겨 맞는 것도 아닌데 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제 발로 걸어 나오는 그 노동자의 살려 달라는 말이 참 생뚱맞았다. 그런데 뒤이은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말았다.


“살려 주세요, 우리 진숙이 누나 좀 살려 주세요.”


그 순간 나는 정리해고로 십 수 명이 죽은 쌍용자동차가 떠올랐다. 아니 죽음의 행렬 속에 무력하게 무얼 해야 할지 몰랐던 내가 TV 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김주익이 죽고 살아도 산 사람같이 살 수 없었던 김진숙처럼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먼 훗날 내 아이가 “그때 아빠는 뭐 했어?”라고 물어볼 때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금 뇌리를 스쳤다. 적어도 내게는 희망버스는 면피버스인 셈이다.


어떤 교수 양반은 자본주의에서 정리해고,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은 불가능하단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몇 개월 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회장님은 정리해고만큼은 물러설 수 없는 경영권이라며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고 3년 간 영업실적이 없음에도 월급을 올려 받은 임원들은 외부 세력이 개입해 문제를 어렵게 했다며 성화다. 많이 억울한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한국의 법률은 긴급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라서만 정리해고를 할 수 있다고 못 박아 놓았다. 그 판단은 법원이 한다. 법원에서 탐욕은 죄일까 아닐까?


뒤늦게 국회에서 청문회가 열린다고 하지만 큰 희망이 생긴 것 같지는 않다. 냉정하게 말해 4차 버스도 매한가지다. 그럼에도 버스를 탈 생각이다. 적어도 부끄러움이 남아 있다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거기에 ‘인간 존엄과 관련한 긴급한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1-08-17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도 몰랐던 사실을 이 글에서 알고 가네요. 양귀자의 [희망]의 초반부에 느껴지던 절망과 퇴락의 분위기가 문득 떠올랐는데, 희망버스의 출발이 절망이라는 부분에서 겹쳐진 것 같아요. 별명과 책 제목과 글이 참 잘 어울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나무처럼 2011-08-18 11: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김진숙 씨가 다시 태어나면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있었는데...

saint236 2011-08-18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전 다음에서 김진숙을 검색하니 특수 단체인으로 나옵니다. 항목을 클릭하면 그제서야 민주노총 지도위원이라고 나오고요. 민노총을 민노총이라 부르지 않고 특수단체라 부르나 봅니다. 추적 60분 찾아서 봐야겠네요.